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시라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 리워야단의 머리를 부수시고 그것을 사막에 사는 자에게 음식물로 주셨으며 주께서 바위를 쪼개어 큰 물을 내시며 주께서 늘 흐르는 강들을 마르게 하셨나이다(시 74:12-15)
녹취자: 박세원
11절까지 우울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들을 버리신 것 같은 환란과 악한 백성들의 침략을 인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던 시인이었습니다. 그때의 이 시인은 문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역사들이 생각이 났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는 모습중 하나는 우리가 유사한 고난을 당할 때 우리를 건져 주셨던 하나님의 큰 능력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아주 훌륭한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찬양하는 내용 중 하나님께 새삼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모두 당신이 행하신 일이고 당신이 알고 계시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행하신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그것을 다시 고백하고 영광을 돌리는 그 일을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들의 마음이 새로워지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인이 똑같이 바로 그런 경건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예로부터 나의 왕이십니다.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셨나이다." 라고 말입니다. 나의 왕이시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그 하나님이 왕으로서 자기를 통치하신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여기 나오는 인간은 모든 인간을 가리킨 다기 보다는 전능하신 신이신 하나님과 대조를 이루는 이 땅의 언약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시인의 찬송의 제목이었습니다.
우리는 왕의 치하에서 살아 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 말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옛날 왕정 하에 살던 사람은 사실은 왕이 백성의 자랑이요, 왕이 백성의 힘이요, 왕이 백성들의 구원입니다. 왜냐하면 왕은 그 나라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릴 수 도 있고, 죽일 수 도 있고, 백성에게 큰 자비를 베풀 수도 있고, 아니면 학대할 수도 있고 모든 권한을 왕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경건한 시인이 경험한 하나님은 이 세상에 제왕들과는 견줄 수 없는 일체의 자비하심과 사랑으로 자기를 통치해 오신 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인에게 악한나라의 백성들이 침공하여 예루살렘이 유린되고 시온이 짓밟히게 된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그것조차도 하나님이 악을 행하고 하나님께 진노를 살만한 일을 한 그 여호와의 기업인 자기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이요, 하나님이 책망하고 계신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하나님은 옛날부터 내가 어렸을 적부터 아니 더 멀리 우리 조상 때부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득한 옛날부터 하나님은 의롭고 자비로워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언약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회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전망이 어둡던 절망적인 역사의 상황 속에서 자기가 구원하기로 하신 그의 백성들을 건져주신 신실하신 하나님의 구원행동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그 구체적인 구원의 행동을 제일먼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명백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탈출해오던 날에 홍해를 가르신 사건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홍해 앞바다에 섰고 뒤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준 것을 후회하던 바로가 군대를 급파했습니다. 육백승의 병거가 군사들을 싣고 질풍같이 달려왔습니다.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불기둥으로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주시지 아니하였다면 아마 진작 멸망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그들을 구원해주시지 않으시고 그 무서운 애굽 군대와의 대치의 상황을 겪게 하시고 모세에게 명령하사 밤새도록 바다를 향하여 명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이 가난해 질수 있을 만큼 가난해지게 된 그때에 완악한 자들은 어찌하여 우리를 여기로 인도하여 죽게 하느냐고 모세의 지도력에 대항하고 있던 그때에 하나님이 큰 능력으로 바다를 가르셨습니다. 그리고는 마른땅과 같은 길을 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안전하게 벽처럼 선 물 사이로 걷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악한 나라의 군대가 성소를 유린하고 거기서 악을 행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을 더럽혀 땅에 엎어 버렸지만 그러나 그때에도 지금보다 더 절망적이었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회상하면서 인간의 절망의 끝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큰 권능을 생각하며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은 바로 이러한 목적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찬양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 하나님께 고정하게 하고 우리의 심령을 일깨워 하나님을 향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찬양의 목적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큰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셨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습니다. 리워야단의 머리를 파쇄하시고 그것을 사막에 거하는 자에게 식물로 주셨습니다. 이구절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13절에 나오는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바다를 나누신 사건과 같고 리워야단의 머리를 파쇄하시고 그것을 사막에 거하는 자에게 식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비유적회고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해석을 해봅니다. 이것을 왜 용으로 표현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습니다. 아마도 이 용들의 머리라고 하는 것은 저의 판단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따라 들어오던 많은 바로의 군사들이 파멸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조심스럽게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뜻은 아직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성경에서 이 용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상징으로 사용이 되었기 때문에 어쨌든 악한 자들이 파멸되는 것 그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저는 조심스럽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 물이 다시 합쳐지고 그 속에서 애굽의 군대들이 수장되는 그 광경들을 묘사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악한 자들이 잠시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것 같고 큰 권세로 파멸할 것 같이 용을 썼으나 하나님이 결국은 그들을 심판하여 머리를 깨뜨리셨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이악한 군대들의 만행도 하나님이 물리쳐 주실 것 이다. 라고 하는 기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리워야단의 머리를 파쇄하시고 그랬는데 이게 히브리어에서는 악어라고도 번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악어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은 포식자의 대표적인 상징인데 이것들의 머리를 파쇄 하셨습니다. 라고 했으니 용들의 머리, 악어들의 머리, 악어의 머리 그랬습니다. 이것은 결국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떤 것의 상징이고 그리고 머리를 파쇄 하셨다고 하는 것은 아주 완벽하게 진멸하셨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생각에는 이 14절은 그 문자적으로 악어라기보다는 또 이 악어는 바다에서 일어난 회고라기보다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광야에 들어섰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얕잡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는 길을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던 그런 광야에서 만난 많은 나라들의 왕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저는 해석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그 머리를 파쇄 하셔서 사막에 거하는 자들에게 식물로 주셨다는 의미는 그들을 깨뜨리셔서 그래서 이스라엘로 철저히 승리하게 하시고 그들을 파멸시켜 그들의 전리품들을 나누게 하신 것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에까지 이르게 한 후에 광야에 생활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가운데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산 왕 시온과 옥을 깨뜨린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여러 번 감사의 찬송을 올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들이 합비루 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라는 말이 거기에서 온 것입니다. 합비루 라는 이 말은 당시 고대 근동에서 이스라엘을 가리키기도 했지만 그 의미는 이주민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합비루 라고 부른 것은 이스라엘을 아주 얕잡아 본 어느 민족이나 왕을 모시고 있는 나라가 아니라 오합지졸들이 몰려다니는 거지 떼 같은 이주민이라고 하는 멸시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멸시하는 이 멸시받을 만큼 하찮게 보이는 이 이주민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래서 왕을 가진 나라들을 부수고 그 큰 애굽을 꺾고 그리고 광야에서 만난 수많은 나라들을 깨뜨리셔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그들로 패배하게 하셔서 그 전리품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 갖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람의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들을 향하여 인도하시고 이끄신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광야와 같은 이 인생의 길 혹은 섬김의 길에서 이렇게 시련을 만나고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할 때조차도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며 또 자기를 믿는 언약백성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 희망이 없는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이 바다를 나누시고 그 큰 능력으로 용들의 머리를 부수어 버린 것처럼 우리의 생애에 난관과 시련들을 하나님이 꺾으실 것이며 또 광야와 같은 우리의 섬김에 길에서 만나는 많은 시련과 고난들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의 번영을 헤치고자 하는 악한 원수들의 집요한 시도도 하나님이 깨뜨리셔서 파쇄 하셔서 우리에게 승리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무이고 이것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언약백성들이 행하여야 할 바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그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