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 받으실 하나님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셀라) (시76:7-9)
녹취자: 박세원
이런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 행동을 통해서 시인은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할 언약 백성의 의무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시 한 번 언약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굉장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특별히 이 진노는 하나님이 언약 백성들에게 내리신 진노가 아니라 언약 백성들을 하나님의 허락 없이 치려고 하는 이방의 군대들을 심판하신 진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함께 대적하고 계시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친 가족처럼 여기신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적에 대한 진노는 결국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신다. 라는 의미이고 이 보호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보호가 아니라 매우 특별한 보호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보호를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고 공경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 당신의 자비와 신실하심과 사랑을 나타내실 때 정반대의 상황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그 일들을 이루어 가십니다.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참한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자비롭다고 그들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의를 베푸실 때에는 그들이 무엇인가 불법하고 굽어져 있는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공의를 베푸심으로써 하나님은 그들에게 알려지시는 것입니다. 용서하시는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게 하실 때에는 그들의 죄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당신의 용서의 은혜를 펼쳐 보이시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일들로 미루어 볼 때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의 군대에 의해 포위되었다가 그들이 모두 멸망하는 광경을 경험 하게 된 이 시편의 기자는 이 사건이 한편으로는 악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보인 사건이고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행동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큰 자비와 은혜 그리고 그 넓은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이 하나님만 경외하여야 하겠다. 주님은 우리 언약 백성들에 의해서 공경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찬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 시인은 이런 하나님의 그 악한 이방군대를 향한 이 진노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만약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릇 행할 때 만약에 당신이 이런 진노를 백성을 향해 쏟아 부으신다면 누가 주의 목전에 설 수 있겠는가 하는 반성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왜 아이들이 학교에서 누군가 친구가 아주 혼나면 그러면 공부하는 자세를 바르게 하게 되지 않습니까? 왜 지나가는 내가 맞은 아이답다고 나도 잘못하면 얻어맞겠구나!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게 되듯이 이방의 군대를 파멸하시는 것은 한편으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나는 것 이였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시구나. 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해야 하실 그때에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실제로 당신의 심판을 수행하시는 분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하게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아울러 갖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판결이 하늘에서 이루어 졌다고 어느 시인은 말합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루어 졌다고 하는 말은 인간의 힘으로 그 판결을 제어하거나 바꾸거나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권위 있게 그리고 매우 높은 곳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하늘에서 당신의 판결을 선포하시고 그리고 이 판결 앞에서 땅은 두려워 잠잠하게 되는 상황이 있었는데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이 일들 때문에 이방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언약 백성들까지도 두려워하고 잠잠하게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9절에서는 이 심판이 가지고 있는 양면적 특성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자 뭐라 그랬냐면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려 일어나신 때에 로다. 이건 또 무슨 뜻입니까? 이건 하나님의 심판이 가지고 있는 양면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공평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이 땅을 내려다보시고 당신의 판결을 선언하실 그때에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게 살았던 인간들에게는 그것이 심판의 날이 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그 날이 구원의 날, 위로의 날, 그리고 하나님께 상급을 받는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온유한 자라고 하는 것은 언약백성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온유하다고 하는 것은 순하고 부드러워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거나 그것을 행하는데 있어서 순종적이 된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을 향해서도 부드러운 사람들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향한 의무를 행함에 있어서 쉽게 자기를 굴복시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이웃들을 향한 태도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하나님이 언약백성들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미명하에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그들을 정죄하고 심판하고 악을 행하고 하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친절은 항상 함께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을 향해 친절하고 사랑을 베풀고 자비와 은혜를 베풀고 하는 이러한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들을 자기의 백성들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오늘 성경은 온유한 자라고 표현 하는데 이런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심판하기 위해서 일어나신 때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경을 오늘 살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냐면 결국은 하나님이 현실 속에서 모순이 있는 것 같고 때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같은 것들이 무시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언약백성들을 붙들고 계시고 그리고 그 언약백성들을 인도하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큰 능력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언약백성들에게는 자비와 친절을 보이시고 그들을 해하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정당한 분노와 그리고 공의를 베푸심으로써 언약백성들로 하여금 당신을 따르고 의지하고 소망하며 사는 것을 기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이 깊어진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얼마나 의로우신 분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언약백성들을 향해서는 얼마나 사랑과 자비의 넘치시는 분이신지를 보면서 그러면서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깊어져 가는 것. 이와 같은 사실을 삶의 모든 방면에 적용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신앙생활이 바로 깊어져가는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아름다운 신앙생활은 당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오만하여 지지 않고, 하나님의 정의를 잘못 오해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유를 잃어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서도 하나님의 사랑에 이끌리며 살아가 결국은 하나님이 나와함께 하시는 한 내가 하나님 편에 서있는 한 내가 두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 신실한 신앙생활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