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대로를 마음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시 84:5)
녹취자: 정윤미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사람들이 어떤 복을 누리는지를 5절과 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원래 원문 성경에는 “주께 힘을 얻는 자의 행복이여,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를 둔자는 복이 있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께 힘을 얻는다는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들이 이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항상 기쁘고 행복한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이 어차피 인간의 존재라고 하는 그 자체가 그런 많은 시련과 고통들을 피할 수 없고, 그것을 모두 극복하면서 몸부림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모든 어려움들을 헤치고 그렇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어떤 힘이 없으면 그것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혹시 살면서 “아 이 시점에서 이제 내 인생의 끈을 탁 놓아버려야 되겠다.” 그런 생각해본 적 없습니까? ‘아 이제 여기는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이구나, 아 이제 여기서 꽉 붙들고 있었던 인생의 끈은 탁 놓아보려야 겠다’, 라고 하는 그런 한계상황까지 가 본적 없습니까? 아마, 상당히 많은 사람이 큰 고통과 시련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합니까? 예전에는 그것 보다는 더 심각하게 어려운 것도 극복을 했는데, 왜 그만한 어려움에 인생의 끈을 놔버려야겠다 라고 하는 그 한계를 느끼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예화)그 한강 철교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투신해서 자살을 합니다. 오죽하면, 거기 다리에다 전화기를 달아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전화 한통해보라고, 그래서 거기에서 전화를 24시간 받는 사람들이 상담을 해서 그를 살려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리에다가 ‘인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거기에 글귀를 써놓을 정도로 사람들이 그 다리에서 뛰어내려서 죽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어느 상황에서 더 이상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거기에서 인생의 끈을 탁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결국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힘이 부족해서입니다. 힘이 있으면, 그 많은 어려움이 와도, 그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자기가 약해지지 않고야, 정말 강하신 하나님밖에는 나에게 소망이 없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병들어 보지 않고야, 내가 이렇게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사는 것이 매일 매일 하나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구나, 그것을 현실적으로 느낄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정말,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오해를 당하고, 미움을 받아보기 전에야,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기쁨을 받으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가 있겠습니까? 이 인생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제가 늘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좋아 보이는 것을 통해서만 좋을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인간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빠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는 부분적으로는 죄가 들어온 이후 이 세상의 불안정성 때문에, 부분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성도가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불안전하기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려는 마귀의 궤계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불안전한 삶을 살면서 때로는 넘어지고 고통을 받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런 속에서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야되는 삶인데,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거기에 위로부터 내리는 어떤 힘이 필요 한 것입니다. 그 힘을 이 세상에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지난번 수요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이 세상에 있는 자원들도 어느 정도는 이 세상에서의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도 넉넉한 물질이 있으면, 좋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서, 죽는 것이야 면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그 증상은 완화시킬 수 있고, 가난하면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배신을 하고, 미워해도, 높은 지위에 있으면, 속으로는 저 자식하고 욕을 해도, 겉으로는 대놓고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서는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기에 “복이 있나이다”, 할 때의 그 복이 일반적인 복이 아니라, 언약 관계에 있는 성도들이 받는 복입니다. 그러니까, 신령한 복입니다. 예수님이 팔복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셨을 때에 그런 종류의 복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 힘을 세상에서도 얻을 수 있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 진짜 복이 있는 사람은 주님께 힘을 얻는 사람이다. 그래서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내 힘으로 헤쳐갈수 없는 것 같은 그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것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힘을 얻는 사람들은 신령한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께 힘을 얻는 자들입니다. 험악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사랑의 힘, 그리고, 생명의 힘이 주님께로부터 우리에게 부어질 때에 남들이 알지 못하는 지극히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시련과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의 길을 믿음으로 걸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 희망이 없는 것 같고, 낙심이 되는데, 예배당에 나와서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고 나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않고, 붙들어 주실 것이라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께로부터 힘을 얻는 사람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힘을 얻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는,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가 복이 있다” 고 했습니다. 사실은 히브리어 성경에 “시온”이라는 말은 안 나옵니다. 그냥, 무엇이라고 나오나 하면, ‘그 마음에 큰길이 있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큰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냥 큰길이 아니라, 의미상으로 순례자의 큰길입니다. 이 순례는 결국은 어디를 향하냐 하면, 예루살렘을 향하고, 시온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시온의 원래의 뜻은 마른땅, 요새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은총을 내리시는 장소, 예루살렘이 거기에 있는 그 장소,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신령한, 선택된,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이런 신약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시온이 그래서, 이러한 그 시온의 대로 즉 하나님의 임재와 선택,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 시온으로 가는 그 큰길 그것이 말하자면, 왕의 대로입니다. 그래서 왕들이 행차하는 큰 길입니다. 그러면, 그 시온의 대로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그 길을 따라서 우리에게 오시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런 대로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교통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어차피 우리의 인생은 불안전하기 때문에 끊임없는 시련과 고통, 고난과 역경에 처하게 되는데, 그 모든 것들을 겪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 그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이 은혜를 공급받고, 주님과의 교통이 있는 그런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면서 살아가는 행복입니다. 이것을 이 세상 사람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이길 수 없고, 극복을 할 수 없는 인생의 길을 하나님 의지하며 살고, 하나님 의지하며 이기게 되었던 기억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 그랬다고 해서 오늘도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예전에 주신 은혜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이제는 예전의 은혜가 아니라, 오늘,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그 은혜로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라시는 그것이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