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연단하심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시 80:4-5)
녹취자 : 김미현
이 4절과 5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야훼 쩨바오츠’, 혹은 ‘엘로힘 쩨바오트’라고 하는데 군대를 가리킵니다. ‘군대들, 군대들의 하나님’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표현이냐 하면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해서 싸우시는 용사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의 문맥에서 이 하나님이 많은 군대들을 거느리신 위대하신 전쟁의 신, 전쟁에서 이 모든 군대들을 지휘하시는 전사적인 영웅으로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전사적인 하나님을 그리고 있겠습니까? 어떤 문맥에서 그런 그림을 그릴까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워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급박한 위기상황,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전쟁해 주시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서 우리 하나님의 정체성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세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군대를 응원군으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시인도 현실적으로 이렇게 아마도 바벨론에 의하여 정복당한 이 상황을 극복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만군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용사로서의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굉장한 나라였습니다. 아마도 이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나라 가운데 아마도 가장 강력했던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던 제국 중 하나였습니다. 로마나 중국 같은 나라들은 유적들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많이 알려지지만 바벨론은 사막에 건설된 국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엄청난 모레들이 쌓이고 하면서 사실은 많이 유적들이 묻혀버렸습니다. 그리고 돌로 지은 건축보다는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광야에서 나는 모레 벽돌들로 지어졌기 때문에 아마 더더욱 대부분이 소실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이라크 지역인데 어마어마한 왕국이었습니다. 이런 주전 6세기, 7세기경에 벌써 한 도시에 15만 가까운 인구가 살았다고 하니까 그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도시였습니다. 그런 엄청난 대국의 힘에 눌려 있는 이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는 개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만군의 하나님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시인의 역사인식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시인은 ‘주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어느 때까지 노하시리이까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현실적으로는 자신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해 강대국에 정복되었지만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진노한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이 노하고 계시다는 것,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그 이후로부터 하나님께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구원을 간구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귀를 닫고 듣지 아니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5절에서 상세하게 제시하는데 그것은 바로 연단이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그들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통당하게 하실 때에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보복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당신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또 당신과의 약속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면서 이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끊임없이 거슬러 살게 하였던 그들의 마음과 모든 생각을 고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이 살았던 날들을 회개하고 그리고 자기들 안에 이렇게 주님을 반역하는 기질들이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하나님의 은총을 바라며 변화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벌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복수하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이 민족적인 고난을 주셨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이들을 갱신시키시고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눈물의 양식을 먹게 하셨던 것입니다.
눈물의 양식을 먹고 눈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바벨론에 그 비참한 악재에서 겨우 겨우 남의 나라를 위해 봉사하며 양식을 먹고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비참한 형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먹고 마시는 것을 위해서 눈물을 쏟지 않으면 안 되는 큰 고통을 이들에게 겪게 하셨고 이 치열한 눈물의 과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연단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멀리 떠나고 주님께 불순종하면서 산 쓰디쓴 결과를 맛보면서 과연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복이요 주님의 은총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을 이 시인은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을 이렇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때때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 같고 우리를 향해 노하시는 것 같지만 주님의 간절한 뜻은 우리가 재앙을 당하고 환란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눈물의 양식을 먹더라도 거기서 우리를 고쳐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완전한 사람이 있겠으며 이 세상의 어느 교회가 완벽한 교회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지 않은 사람, 완벽하지 않은 교회를 끊임없이 온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개인도 연단하시고 교회도 연단하시고 심지어는 한 국가의 죄악이 가득해도 하나님이 그 나라도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총을 입은 언약 백성들임을 명심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들뿐만 아니라 교회와 그리고 이 모든 나라를 위하여 이렇게 하나님께 대신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 사람의 역사는 우연의 연속인 것 같지만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하나님이 바라보시면서 우리를 끊임없이 연단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눈물의 양식을 먹게 하시고 눈물의 음료를 마시게 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정결해 지기를 원하시고 또 온전하지 못한 우리들을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런 큰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고 매일 하나님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우리를 깨끗케 하기를 원하시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사랑하시지만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님 앞에 온전해 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종종 우리에게 눈물의 양식을 먹이고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한정 이렇게 당신의 백성을 눈물 속에 세월을 보내도록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로 하여금 시련을 당하게 하시고 모욕을 당하게 하시지만 주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오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이 시인처럼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 얼굴의 광채를 비춰주시는 하나님이시고 그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이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의존하며 주 앞에 나아가게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이 주님 붙들고 이기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