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케 하소서
“주의 우편에 있는 자 곧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인자의 위에 주의 손을 얹으소서 그러하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하오리니 우리를 소생케하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시 80:17-18)
녹취자 : 이경순
여기에서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주시도록 탄원하는 내용이 마지막 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의 오른쪽에 있는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라고 나옵니다. 어려운 구절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오른쪽 있는 자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한 사람입니다. 주를 위하여 힘 있게 하신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라고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인자를 이스라엘의 택한 왕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인자를 왕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구약시대 때에 메시아에 대한 사상이 있었고 그래서 여기에서 이 인자는 메시아사상의 맥락에서 해석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그런 하나님의 특별히 선택하신 메시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적인 존재로서 이스라엘 나라의 신정정치의 부흥을 재건할 그런 메시아, 그러니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는 다분히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시키시는 그래서 다시 다윗왕 시대 때의 영광을 재건할 수 있는 그러한 무력과 정치적인 힘을 가진 메시아에 대한 사상과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통하여 육적인 이스라엘을 깨고 영적인 이스라엘을 만드실 구원의 전망이 함께 있었지만 후자에 대한 생각은 매우 미약하고 그렇기 때문에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시작되기 전 그 사이에 소위 유대교라는 것들이 일어나면서 거기에 하나님의 왕국의 앞에 요소들을 가진 신학이 강화가 됩니다. 아무튼 이것을 이스라엘을 지킬 위대한 구원자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의 왕보다도 미래에 오게 될 어떤 왕을 가리킨다.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여기에서 나오는 인자에게 주의 손을 얹으소서. 주의 손을 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다는 뜻이고 선지자나 왕이나 제사장들을 세울 때 기름 부어서 그에게 손을 언 져서 세우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그렇게 손을 언 져서 세울 때에 하나님의 큰 능력이 성신의 큰 능력이 그에게 임하였던 것처럼 그렇게 충만하게 임하게 하십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주의 손을 언지소서 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인자라는 말은 왕으로 해석을 하든지 메시아로 해석을 하든지 아니면 미래의 왕으로 해석을 하던지 어째든 이스라엘백성의 관심사는 이것이 이스라엘의 구원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때에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 한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비결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당신의 인자를 손을 언 져서 큰 능력을 그에게 부어주도록 호소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비참한 역사적인 상황에서 구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한 시대에 교회에 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축복은 하나님이 좋은 지도자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국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복은 훌륭한 지도자입니다. 그런 훌륭한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손에 붙잡혀 살려고 할 때에 한 민족의 역사는 바뀌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희소하고 아주 희귀한 것입니다. 저마다 다 자신이 지도자라고 말하고 또 누구든지 지도자가 되고 싶지 그 지도자의 그저 명령을 따르고 복종하는 추종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는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와 역사해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지도자는 사람이 일반역사적인 시각에서 저 사람이 위대한 지도자다 훌륭한 지도자다 그리고 가시적으로 저 사람이 오늘날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지만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보는 시각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무명한자 같으나 그러나 많은 영향을 끼치면 들어 사용하시고 도 반대의 경우도 있기도 합니다. 하나님 깨서는 이렇게 당신의 교회를 구원하시고 위기 속에서 건지실 때에 당신이 택하신 자들을 통해서 이 일들을 하십니다.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이 시인은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축복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18절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에게서 물러가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를 소생하게 해 주옵소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라고 나옵니다. 우선 첫 번째 주님에게서 물러가지 않겠습니다. 이 단어인데 구약성경에 이미 하나님을 향한 신자의 진정한 경외가 어떤 것인지가 나옵니다. 그것은 외적으로 율법을 준수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인데 소극적으로 율법을 준수하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위한 헌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신자의 내적인 상태가 하나님께 부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하나님께 붙어있는 것입니다. 다바크라는 단어입니다. 전치사 데가 동반되는데 속으로 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속으로 딱 붙어있는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지금도 데베크라는 것이 풀이라는 명사 인데 마치 풀을 붙여서 종이에가 발라서 벽에다 붙여놓으면 누가 잡아 뜯지 않는 한 떨어지지 않고 거기에 붙어 있듯이 이런 진정한 경외의 삶을 살게 하는 그 내적인 조건이 하나님께 딱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옛날 성경에서 부종하다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좀 어려운 말인데 붙어서 쫒아 다니다는 뜻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붙어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그 마음이 연합되어 있는 것 , 여기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오늘 이 시인의 고백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들과 구별되는 이유는 바로 그렇게 다바크의 삶 딱 붙어있어서 그래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들의 내적인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여기에서 많이 물러간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그렇게 당신의 지도자를 주셔서 그에게 당신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셔서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도하게 하신다면 우리가 주님께 붙어잇을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주님과 연합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뜻입니다. 우리 그런 경우 많이 보지 않습니까? 나이드신분이 손자를 보면 그렇게 귀여워합니다. 돌아가신 저희 아버님 말씀하시길 항상 자식보다도 손자들이 두 배는 더 사랑스럽다 이러시는데 그리고 막 보고 싶어진답니다, 그것이 붙어 있는 상태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우리가 반지하나만 좋은 것 사서 껴도 눈이 자꾸 그리고 갑니다. 마음이 다바크 되어 있는 상태 거기에 붙어있는한 그런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섬기겠습니다. 이런 모든 국가적인 시기와 난국을 만나고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된 것이 바로 그렇게 주님을 멀리 떠났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연합된 삶을 살아야 할 터인데 그런 삶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런 시련과 고난이 온 것입니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소생하게 하옵소서. 히브리말로 하야인데 살아있게 하옵소서. 살게 하옵소서. 혹은 존재하게 하옵소서. 그런 뜻입니다. 그것은 성경은 우리에게 육적으로 살아있는 모든 것이 산 것이라고 말하지 살았다 그래서 살아있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요라고 사대교회를 향해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살아 있어서 자신을 창조하고 구원하신 그 목적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져 있고 그 관계를 통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그때에 그것이 진정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 신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소생시켜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성경에 주님의 이름이라는 단어 여호와이름 하나님의 이름 많이 나오는데 아주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 이름을 때어 버려도 됩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뜻은 주를 부른다는 말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혹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하면서 이름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고 만 질수도 없고 접촉할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존재하시는 양식이 우리 피조물들이 다른 피조물을 보고 듣고 만지고 혀로 맛보고 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은 그런 분이시지만 당신의 이름은 우리에게 알게 하셔서 그 이름은 우리들이 들을 수도 있고 그리고 우리들이 그 이름을 볼 수도 있고 그리고 그 이름을 말할 수도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로 하나님이 이 땅에 계신 현존과 동의어로 사용이 됩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교통하실 수 있는 존재와 동의어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름은 그 이름이 지시하는 실체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그 이름에 대한 태도가 어떤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이름도 사랑스럽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사랑하면 그 사람을 만나면 더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과 이름이 지시하는 그 본체사이에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는 주를 부르리이다 주의 이름이 사랑스럽습니다. 주를 사랑한다는 뜻이고 주의 이름을 싸우겠습니다는 주를 위해 싸운다는 말과 완전한 동의어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는 무슨뜻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전부터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게 되어 있는 백성입니다. 한편으로는 시련과 고난이 올 때 지금 이 시인의 역사적 문맥처럼 시련과 어려움이 올 때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는 것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또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이 자신들에게 행하신 일도 찬양하는 것도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대부분 이 부른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소리를 내어서 부르는 것입니다. 또 위급한 상황으로 자기의 내적인 필요에 의해서 부릅니다.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를 때에는 뭔가 요구하는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를 때에는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면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인은 이렇게 하나님이 지도자를 강하게 하셔서 우리를 다시 이끌어 달라는 간절한 탄원을 세 가지 목적을 위해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물러가지 아니하고 주님께 연합된 생활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삶 그리고 주님을 어떤 경우에서든지 간절히 의지하는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바로 우리를 붙드시고 오늘도 우리를 지키시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