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도를 가르치소서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시 86:11)
녹취자: 백지영
시인이 무엇인가 큰 어려움을 만났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있는 장면을 그려내고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시인은 그런 큰 어려움을 만났을 때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이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라고 노래한 5절의 내용을 볼 때 아마도 시인은 자신이 이런 어려움을 만난 것이 혹시 자신의 죄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성찰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 용서를 빌었던 같습니다.
이런 모든 간구를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자신이 당한 어려움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베푸신 이전의 많은 은총을 생각하였을 것이고 특별히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셨던 크고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을 행하시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다.”라는 고백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불만족스럽고 매우 어려운 처지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자신에게 베푸신 위대한 일들을 회고함으로써 하나님이 정말 위대하신 분이시라는 것과 그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회고하면서 다시 하나님께 마음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읽은 성경의 본문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일심으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비록 어떤 사람이 잘못하고 죄를 지었다고 할지도 그런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깨닫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 하나님의 도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배우고 탐구하려는 간절한 마음이 없이 그렇게 교만하며 그러면서 스스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부족하지만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더욱 더 간절히 보시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복음을 그들에게 선포하시고 복음을 베푸셨습니다. 그 혜택을 제일 먼저 받은 사람들이 누구였습니까? 종교지도자들이나 율법을 성실하게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창기와 세리와 같은 죄인들이었고 당시 유대종교지도자들이 보기에는 율법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들이 죄를 많이 짓고 불순종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사랑을 받은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비록 죄를 짓고 율법에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제시된 복음을 믿고 의지하려는 마음이 훨씬 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먼저 복음의 혜택을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늘 불순종하고 죄 짓고 이런 사람들만 예수님이 만나 주신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결례를 받으러 왔던 아기 예수를 만나고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하였던 시므온과 안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들은 경건한 사람들로서 율법을 지키고 그리고 안나 같은 사람은 그 오랜 세월을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만나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독생자를 직접 뵈옵는 큰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들은 창기와 세리와 같은 죄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의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사도행전에서 이방인 선교의 새 장을 열었던 베드로와 고넬료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방인이었으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절대로 인생을 막 사는 창기와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모든 죄인이 복음의 혜택을 처음 받은 것도 아니고 율법을 지키며 경건하게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외면되었던 것도 아닙니다. 핵심은 그것이 아닙니다. 핵심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고 자신의 구원을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서 발견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모두 이 아름다운 구원의 열매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뽐내고 의시대고 그리고 자신의 작은 지식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판단하려고 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 자신을 던졌던 사람이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의존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간절한 기도와 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주의 뜻을 받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시인은 그런 마음으로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질 때가 얼마나 드믑니까? “주님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이런 마음을 가질 때가 얼마나 드믑니까?
이렇게 시인이 주의 도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할 때 그것은 “내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십시오. 내가 그 말씀을 따라 살지 아닐지는 나 스스로 결정하겠지만 어쨌든 한번 당신의 말씀을 들어나 봅시다.” 그런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는 탐구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그런 지식들이나 파악될 수 있을 뿐이고 오히려 이런 마음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절대로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갈피갈피에 숨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 시인의 마음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이것이 주의 도를 가르쳐달라는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말씀을 받들어 살겠다는 마음의 뜨거운 열심 그리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가장 탁월한 비결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시는 이유는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순종하며 살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자신을 합치시킴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되고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진리의 효용가치입니다. 그래서 자신만 행복할 뿐만 아니라 이웃도 행복하고 궁극적으로 그렇게 변화된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씀하실지라도 많은 시간들을 우리는 건성으로 그 말씀을 대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어도 감동이 별로 없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별로 깨닫는 것이 없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행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당신의 말씀 앞으로 나오는지에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기 서로 다른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이고 한 인간의 가치는 그가 가진 선한 의지의 크기에 달려있습니다. 비록 그가 이 세상에서 가진 것 없고 또 높은 지위에 있지 않고 젊은 날의 아름다운 미모를 잃어버렸다고 할지라도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고자 하는 선한 의지가 매우 큰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보이는 이 세상의 나라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돈 많은 사람들, 젊고 예쁜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여질지 모르지만 그 나라를 수단삼아 이루어져가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렇게 영혼이 아름답고 선한 의지의 크기가 큰 사람들에 의해 일구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이런 삶을 살며 주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원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열매는 진실입니다. 즉 진리가 객관적인 것이지만 그 진리가 우리의 마음속에 깨달아 그 진리를 향해 어떤 반응을 하게 될 때 그때에 우리의 마음속에 진실이라는 것이 깃들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에 자신의 마음과 삶을 합치시킨 상태가 진실입니다. 그런 진실한 사람들이 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 특히 신약에서 이런 가르침이 수없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십자가의 희생으로 우리를 구해주신 것 자체가 바로 이런 진실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옵소서.”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중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의 이름은 곧 주님과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분이시지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문제는 한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근심과 염려, 세상에 대한 사랑,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심 등등이 그의 마음을 찢어놓고 갈라놓아서 일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런 놀라운 사랑으로 붙드셔서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그 사람 안에서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뿐 아니라 그 사람도 이웃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을 경외하고 순종하라고 할 때 그것은 인간 왕이 백성들에게 하는 것과 같은 이기적인 욕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경배와 섬김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복되신 분이시지만 인간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순종함으로써 인간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갈망을 회복하고 주님의 진리를 따라 살기로 결심함으로써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된다면 오늘 우리가 닥친 어려움도 우리를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데 요긴한 시간들이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