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시온 사랑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아멘”(시편 87:1-2)
녹취자: 윤부진
‘고라자손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라는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교회 있는 시절에 모세를 대적하다가 족속 자체가 큰 심판을 받은 그런 족속입니다. 그 후손들이 큰 지진으로 하나님 그들을 쓸어서 땅에 집어넣으실 때에 모두 죽지 않고 아마 살아남았던 것 같습니다.그 후손들이 퍼져서 이제 이스라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었고 이 사람들이 다시 사회적으로 부곽된 것은 다윗이 임금이 될 때 그들을 거두고 그 다윗을 왕국수립을 위해서 협력하므로 이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봉사하게 되는데 성전에서 봉사하는 그룹들이 됩니다.
그 자손 중에 한사람이 아마 지은 시였을 거라 여겨집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그의 터전이라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터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터전을 가시고 계시느냐?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자기의 뜻대로 움직이시는데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하고 세계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실 때 하나님의 왕권을 펼치는 하나의 중심 기지로써 이스라엘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그 의 터전이 성산에 있으며 라고 이야기 합니다. 성산은 거룩한 산이죠? 이것은 뒤편에도 나오듯이 이것은 시온을 가리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루살렘은 시온 안에 예루살렘이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온산에 대한 극도의 존경심 그러니깐 왕이 다스리는 모든 나라가 왕의 것이고 그래서 존경과 경의를 받을 만하지만 특히 임금이 있는 궁궐은 더더욱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임금이 전부를 보기위해서 올라가 앉아있는 용상은 그야말로 최고의 권위와 위엄을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터전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터전에서 거기를 당신의 궁궐의 터로 삼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에 감읍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말씀을 온 세상 인류에게 전파하고 선포함으로써 그 하나님의 말씀이 또한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그렇게 전파된 속에서 사람들이 그 말씀을 따라서 살고 하는 그런 것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신약시대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왕권의 행사와 관련된 교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전에는 예루살렘에게 율법을 주시고 이사야에서도 율법이 시온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장 풍부한 빛을 가지고 있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서 그들이 자신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그 백성답게 이 세상에서 빛을 드러낼 수 있을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이방나라에 전해서 그들조차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 가운데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하나님이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야곱의 거처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야곱은 족장 중에 한사람이 야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애칭입니다. 우리도 자녀들의 이름이 있지만 우리가 너무 사랑스러울 때 애칭을 부르듯이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을 야곱이라 부르실 때 이것은 애칭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담아서 우리가 어린 딸들에게 우리 예쁜이 라고 부르듯이 부르는 애칭입니다. 그렇게 애칭으로 불러줄 정도로 예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있는 더군다나 함께 살아가는 그 모습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겠습니까? 그래서 시편에 보면 그 백성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인 생활을 칭송하고 하나님이 귀엽게 보시는 묘사들이 성경에 수없이 나옵니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보면 야곱이 이스라엘 사랑스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온 땅에 흩어져 살아갈 때 그들이 있는 그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곳이고 하나님의 사랑이 특별히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말입니다. 그런데 그것들보다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하시는도다 라고 말합니다.
고라 자손의 시대 때 우리가 어느 시대에 속한사람인지 명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만약다윗의 시대라고 본다면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판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요단강 건너까지 지배하는 큰 판도를 가지고 있던 때에 이 시온은 더더욱 비율적으로 보면 아주 작은 땅덩어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 넓은 국토 전역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은 시온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시온이란 말은 히브리말로 ‘찌욘’이라 하는데 자연적으로 보면 거기에 무슨 신령하고 깊은 뜻이 없습니다. 그냥 시온 그러면 히브리어로는 ‘요새’, ‘황폐한 곳’ 그런 뜻입니다. 그런데 그게 신학적인 개념을 가지고 발전하면서 시온이 하나님이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는 중심지 그리고 종교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서나 안 계신 곳이 없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제사만큼은 예루살렘에서 드리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종교의 중심지일 뿐만이 아니라 왕권이 행사되는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는 왕이 있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왕권이 행사하는 그곳에서 율법이 나오고 율법이 선포되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복합적인 곳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온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성문이겠지요? 문들을 사랑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문을 통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또 들어갑니다. 그러니깐 하나님이 이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 는 말은 그 문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관련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그 백성들과 만나는 곳입니다. 그것이 문입니다. 물론 종교적으로는 성전에서 만나지만 그러나 그 문을 통해서 시온과 상관없는 사람들이 시온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래서 시온백성이 되고 시온백성들이 나라를 정복하기 위해서 군대를 이끌고 그 시온에서 나옵니다. 그런 점에서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교제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구약성경에서 이 문 이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이 문이라고 할 때 이것은 하나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문 앞에 엎드린다고 할 때 그 문은 권세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보면 옛날에 보면 이 집이 얼마나 살고 권세 있는 집인가 하는 것은 문을 보면 압니다. 문이 다릅니다. 권세 있는 집은 문이 솟을 대문이 아주 크고 문자체에 그 집안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이나 위엄을 표현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이나 정부부처나 큰 기업을 가 봐도 높은 사람 방은 문의 크기가 다릅니다. 그 문을 다 쓰는 게 아니라 그 문의 크기가 높고 크고 그리고 심지어는 중요하지 않는 사람은 한 쪽문만 사용하고 중요한 사람은 일부러 문을 두 짝을 답니다. 그렇게 문은 하나의 위엄, 권세 ,힘 이런 것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시온의 문들을 사랑한다고 할 때 하나님은 그 시온이 아주 권세 있고 힘이 있는 시온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결국 신약시대에 이루어질 교회.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왕권이 시행되고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말씀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는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오게 하는 하나님의 권세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교회가 가져야 할 중요한 가치는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헌금하고 자신들이 봉사했으니깐 우리 거니까 우리가 그것을 누리고 산다 이것은 교회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누룩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 빵이라도 해주려면 술 발효 이스트를 따뜻한 물에 풀어서 밀가루에 넣고 반죽해서 뚜껑을 덮어서 아랫목에 놓습니다. 밀가루가 잘 부풀어 오릅니다.다시 거기서 이스트를 찾는 그런 주부는 없습니다. 이스트는 그렇게 다 풀어져서 그냥 밀가루 속에 들어가서 밀가루를 잘 부풀게 했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주인이 먹고 싶은 것은 술 가루가 아니라 술만 드는 재료 이스트가 아니라 빵을 먹고 싶은 것입니다. 그것을 드셔보십시오. 그것이 무슨 맛이 입니까? 시큼하고 냄새나는 맛만 납니다. 그이야기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향해서 하나의 소멸되고 사라져야 할 존재입니다. 종말에는 교회가 사라져서 세상과 하나가 됩니다. 그것이 마지막 날의 모습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든지 교회가 존재할 때 이 세상을 향해서 어떤 쓸모 있는 존재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교회를 위해 빌어야 할 중요한 이유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