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들이 시온에서 남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시 87:4)
녹취자: 허 혜숙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서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합니다. 제가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던 전도사였을 때 어느 학생이 저한테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전도사님, 세계사에 이스라엘은 두 줄 밖에 안 나오는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왜 평생 이스라엘을 배워야 됩니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이것입니다. 세상의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등학교 세계사에 두 줄밖에 안 나오는 나라이지만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세계사에 두 줄밖에 안 나오는 자그마한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을 알리는 계시를 전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 역사의 전개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신 뜻과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파노라마처럼 제시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의 ‘계시’ 하나님이 자신에 대해서 알리시는 이 행위는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독재국가들이 기독교를 무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뭐냐 면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이 사람들은 회고의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자주 율법에 나오는 명령형이 있는데 ‘잊지 말라’는 명령, 그 다음에 ‘기억하라’는 명령이 많이 나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바로 어제를 토대로 여기에 있고 또 오늘 여기에 있는 것은 내일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오늘 사람됨은 어제까지 살아온 삶의 결과이고 그리고 한 사람의 오늘 사람됨은 내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보여주는 좌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어제 저녁때 뉴스를 보니까 토막 살인범에 대한 재판이 나오는데 이 전두엽에 도덕적인 감각을 느끼게 하는데 이것이 죽어버린 사람들을 가리켜서 사이코패스라고 하는데 이 사람이 사이코패스냐 아니냐의 문제를 가지고 법정에서 도저히 판단을 못하겠으니까 의과대학에 의뢰를 해서 여러 차례에 걸쳐서 검증을 합니다. 그런데 사이코패스로 판정이 되면 중형을 면할 수가 없고 그렇지 않으면 경감이 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전개해 나가실 때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식, 그러니까 왜 사이코패스이면 중형을 형성하느냐 그 사람이 이미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죄를 저지를 수 있는 중대한 위험성이 엄청나게 높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에 중형을 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거기에는 법적인 판단이 또 하나 의무에 관한 점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그 사람의 하나의 정신적인 성향인데 그것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보면 법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 면탈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닌가?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 원인이 되느냐 하는 법 균형 감각의 문제 제기 같은 것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한 사람이 오늘 사람됨은 내일 결정됩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살아가는 오늘의 이 역사는 결국은 그래서 이 역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과거사가 아니고 현대사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역사는 현대사였습니다. 그 현대사가 자꾸 뒤로 가면서 그것이 중대사, 고대사 이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중세, 고대, 현대 이렇게 나누는 것 자체가 누가 그것을 줄을 그을 수가 있겠습니까? 역사는 실타래처럼 계속 이어져오는 것입니다. 그 이스라엘 역사를 타고 하나님의 계시가 이 인류에 전달되어 들어오기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는 너무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이 조금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여기에서 ‘라합’은 애굽의 하나의 대명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북방의 큰 나라가 바벨론이고 남방의 큰 나라가 애굽입니다. 그 두 나라는 엄청 큰 나라였습니다. 이 두 대표적인 두 나라가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그 애굽이나 바벨론에 비하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중국 대륙과 울릉도 같은 섬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정도의 비율밖에 안 되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하느냐 하면 그런 애굽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여호와를 아는 자 중에 있다, 구원받은 자들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사람들이 많은 족속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전파되어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는 날이 올 텐데 거기에는 라합과 바벨론, 다시 말해서 애굽과 바벨론도 있다 이런 뜻입니다. 이것은 결국은 예루살렘을 통해서 유럽이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어서 온 세계에 영향을 미칠 위대한 구원역사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 작은 사건, 그리고 유대 땅에서 일어난,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그 아주 사소해 보이는 재판 사건이 인류의 역사를 예수그리스도 이전과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 바꿔놓아 버렸습니다. 그것은 결국은 그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나라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서 발생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의 의미가 그 역사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그러한 구원의 전 우주적인 전파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위대한 전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에서 낫다 하리로다’이것들은 약간 작은 땅들인데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아래에 있는 지역이고 두로, 구스는 에티오피아 쪽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큰 나라를 위 아래로 이야기하고 그 사이에 있는 나라들을 이야기 했으니까 이것이 당시로서는 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계의 거의 전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에서 무엇을 알 수 있느냐하면 시온, 성산에 대한 이야기들이 1절과 2절 3절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그리스도의 교회인 성산, 시온,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 영광스러운 성, 이것이 하여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라합과 바벨론, 블레셋과 두로 구스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거기서 났다. 시온입니다. 시온으로부터 태어났다, 시온으로부터 태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기네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지만 영적으로 구원을 받음으로 시온에게서 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났지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났노라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온이 가지고 있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사명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교회는 존재하는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이 세계를 뒤웅치며 흐르는 위대한 구원의 역사의 물결에 동참할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헌금한 돈을 자신들이 사용하면서 교회를 화려하게 짓고 좋은 것을 누리고 그리고 그것을 마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물이나 그런 교회의 소유를 자기 자신의 소유로 알고 거기에 대해서 엄청난 주도권을 가지고 흩으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그런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세운 것을 회사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인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의 마지막 이상은 소멸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소멸적인 존재가 되어서 껍질이 깨지면서 신약의 교회가 웅장하게 탄생해서 오늘날 이런 보편교회가 서게 되었듯이 이 교회가 이번에는 마지막 종말에 다시 한 번 껍질이 깨트려지면서 소멸적인 존재가 되고 사라짐으로서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진정한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편만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작은 교회는 그것에 동참해 봐야 하긴 하는데 할 수 있는 역할이 매우 한정되어 있습니다. 큰 교회는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이 확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공교회적인 사명을 감당하면서 사는 것이 교회의 기본입니다. 그런데 무슨 문제입니까? 신학을 가르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고귀한 자원들을 쓸데없이 낭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썩어갈 소멸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교회가 죽지 않는 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을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웅장한 교회의 건물이나 자랑을 하고 교회가 교인들이 모이는 숫자를 자랑하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물이 흘러가서 수많은 메마른 농토를 살리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교회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이상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선교하고 전도하고 그리고 가난하고 위대한 꿈들을 가지고 사역을 펼치지만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관계적으로 도움을 주고 격려하고 그래서 쓰러질 것 같은 그들이 일어서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전 후에 독일이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을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학살한 것에 대해서 정직하게 사과했습니다. 위대합니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라고 하는 총리가 홀로코스트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그것도 비가 내리는 날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사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전 세계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독일 통일의 아버지 빌리 브란트입니다. 전 후에 독일은 이스라엘에게 천문학적인 액수의 보상금을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10원 한 장도 국민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막대한 천분학적인 보상금을 가지고 전 국토를 바둑판 모양으로 깔아서 완벽한 수로시설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농업국가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 보면 어디에 가든지 비옥합니다. 그럴 수가 없는 지역입니다. 강수량이 1000mm도 안 되는 지역이 허다합니다. 그런데 완벽한 관계수로를 만들어서 어디든지 기름진 토양이 되게 한 것입니다. 가서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온 세계가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온 세계의 작은 교회 그리고 무엇인가 사역을 하는 모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수로처럼 바둑판처럼 뻗어 들어가서 크고 작은 교회들이 그 역량을 집중해서 거기로 영적인 힘과 물질의 힘과 정신적인 힘과 관계적인 힘들을 실어 흘려보내면서 쓰러져가는 것 같은 교회들을 다시 살리고 일으키고 돕고 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 준표 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저도 갔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역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애도의 글을 썼습니다. 외국인 선교를 하고 있는 아주 가난한 한국인 목사였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을 데리고 끼니를 간신히 연명해 가면서 그 작은 방에서 외국인들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씨름할 때 이 준표 목사님이 오셔서 같이 예배를 드리며 눈물을 뚝뚝 흘리시면서 ‘우리가 못 하는 외국인 사역을 당신들이 하고 있군요’ 그리고는 가신 후 그 다음 날 교회에서 1500만원을 보내줬다고 합니다. 20년 전 이야기이니까 벌써 오래전 일입니다. 그래서 다 쓰러져가던 선교단체가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외국인들과 함께 와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보편교회의 이 세계를 향한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애굽에도 바벨론에도 두로에도 시온에도 에티오피아 구스에도 주를 아는 자들이 생겨나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