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몬 1:17-18)
녹취자: 원수연
여기서는 이제 사도 바울이 아주 구체적으로 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를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 빌레몬에게 사도 바울이 요청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오네시모를 영접하는 방식과 두 번째로는 그에게 입은 손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혹시나 빌레몬이 예전의 오네시모처럼 이 오네시모를 대하면 어떡할까 하는 염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오네시모는 도망쳐 나온 쓸모없는 노예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의 눈에는 이제 그것은 모두 이전 것이요 지나간 일이었고 오네시모는 하나님의 나라에,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역에 매우 요긴한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에 이 사람 오네시모가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다면 그는 정말 도망쳐 나온 노예에 불과하고, 그런 점에서 빌레몬에게는 노예로서도 쓸모가 없는 그런 사람밖에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그가 이전의 도망치는 노예로 실패한 삶을 살았을 때와는 비교되지도 않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쓰레기처럼 살았을 이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요긴한 일꾼이 되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이 오네시모를 도망쳐 나온 실패한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쓰임 받는 복음 사역자로 대해줄 것을 빌레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가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라고 한 이야기는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너의 동역자이기 때문에 너는 나를 매우 존중히 여기며 대하고 있지? 내가 보내는 오네시모가 바로 그런 사람이니까 너도 내가 오네시모를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복음 사역자로 대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두 인생 사이에는 얼마나 커다란 차이가 있을까요? 주님을 모르고 도망쳐 나온 노예로 살았더라면 지금도 지명수배를 받으며 두려운 마음으로 쫓기듯 살아서 노예로서도 쓸모없는 사람이었겠지만 이제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복음 사역자로 대우를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겠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예전에 주님의 그 사랑을 몰랐을 때에는 사도 바울과 빌레몬, 그리고 도망쳐 나온 범죄한 노예 오네시모는 한 자리에 만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저 종교 지도자를 꿈꾸던 사람이었고, 빌레몬은 그리스도인이었고, 오네시모는 범죄한 노예였다고 쳐보십시오. 함께 만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고 더욱이 사도 바울과 같은 유대인이 이방인인 이 오네시모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중재자의 역할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습니다. 오네시모의 인생이 바뀌었고 사도 바울의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빌레몬의 인생도 바뀌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하나가 되니까 이제 사도 바울은 그 사람을, 얼마나 쓸모없는 노예였던 그 오네시모를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복음 사역을 위해 요긴하게 사용하시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도망친 노예,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야 할 범죄한 노예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어 복음의 사역자가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우리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서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이 이런 사랑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두 번째는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마음이 오네시모와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아마 사도 바울에게 자신의 과거를 남김없이 모두 털어놓았을 것이고 적지 않은 손해를 입히고 노예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일, 주인의 집에서 도망치는 일까지 한 것을 보면서 그의 죄와 잘못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 하는 것을 사도 바울이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빌레몬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불의를 하였거나’ 이것은 아마 노예로서 도망친 사실을 언급한 것 같습니다.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이것은 아마 오네시모가 도망칠 때 빌레몬의 집에 적지 않은 물질적인 손해를 끼치고 온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불의를 행했거나 빚진 것이 있다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너에게 잘못하였고 너의 물질에 많은 손해를 내었을 텐데, 그랬다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이것은 결국은 오네시모가 잘못한 모든 것에 대한 대가를 사도 바울 자신이 갚겠다고 하는 서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빌레몬의 신앙이 어떠한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비와 같은 사도 바울, 오늘 성경 구절에 보면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라고 고백을 하며 빌레몬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런 자신이 신앙의 아버지로서 이 빌레몬에게 간청하면 빌레몬이 들어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그저 형식적인 말에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만약에 오네시모의 잘못이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었고 손해를 만약에 빌레몬에게 끼쳤다면 그것을 자신이 대신 갚아줄 용의도 있다고 고백을 함으로써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이 오네시모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얼마나 소중한 동역자이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이 두 사람이 얼마나 뜨겁게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런 편지를 빌레몬에게 쓸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의 관계가 생겼고, 그래서 오네시모가 저지른 이전의 불의, 그리고 명백한 범죄까지도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서는 긍휼의 대상이 되었고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제 주님께로부터는 모든 죄를 용서받았으나 사도 바울은 그가 지은 죄와 잘못 중 어떤 부분은 또한 빌레몬에게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도 인격적인 용서를 받도록 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기독교의 진정한 사랑, 진정한 인격적인 측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에게 명백하게 잘못하고 커다란 손해를 끼치거나 상처를 준 후에 자기 혼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님이 모두 용서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제 자유다, 심지어 하나님이 용서해주셨기 때문에 너 같은 사람에게서는 용서를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는 것입니까?
주님은 분명히 주기도문 속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라’고 말입니다. 그것은 결국 사람들 사이에 저지르는 잘못에 대해서 그것이 큰 것이건 작은 것이건 간에 그 사람이 그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한 사람이 죄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뉘우칠 때에는 그것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고 그것이 풀려짐으로써 죄 때문에 깨졌던 하나님과의 평화, 사람과의 화목이 회개를 통해서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의심할 수 없을 정도의 명백한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빌레몬에게 못할 일을 하고 도망쳐 나와서 손해를 끼친 이 노예가 복음 사역자가 되기까지 주님을 얼마나 깊이 만났겠습니까? 아마 이 오네시모는 자기가 저지른 모든 과오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바울 앞에 고백을 했을 것이고 아마 많은 시간 동안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 하는 것을 깨달으며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의 은혜를 구했을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로부터 충분한 용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도 바울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을 빌레몬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이 신앙 안에서 이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해줌으로써 빌레몬과 오네시모 사이에도 진정한 용서와 그로 말미암은 사랑이 두 사람을, 사도 바울을 오네시모와 하나 되게 만들었던 것처럼 하나 되게 해주기를 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의 윤리인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중요한 윤리의 기준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존귀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이 얼마나 존귀한 분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면 형제 이외에 누가 보이겠습니까? 형제를 전심으로 사랑하면 하나님 말고 누가 보이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모두 올바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사람을 볼 수 없는 것이고 모두 올바로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그 속에서 하나님을 뵈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신앙의 깊이는 사람을 대할 때 그의 외모나 소유나 재능이나 혹은 사회적인 지위와 상관이 없이 얼마나 주님 앞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것을 읽어내고 그를 향해 거룩한 예의를 갖추는 것이 신앙의 깊이인 것입니다.
이렇게 오네시모를 사도 바울이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는 계속해서 마음 한구석에 자신은 도망쳐 나온 노예이고 빌레몬에게 손해를 끼친 로마의 법을 어긴 수배자라는 의식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신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을 용서받게 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해서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는지를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오늘 이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었습니다.
우리는 이 속에서 그리스도를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주님이 지정해 주신 자리에서 도망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용서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렇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이 주어지기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불의와 우리가 하나님께 빚진 모든 것을 당신이 갚아주셨습니다. 그냥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 진 불의와 빚진 것을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에 온전히 감당하시고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대한 당신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당신의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범죄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또한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범죄한 사람들 사이에 중재자가 되어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그리스도께 그들을 보내어 그리스도와 화목하고 그의 죄와 불의에 대해서 용서를 받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 화목한 삶을 살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아직도 복음을 들려주셔서 그 복음을 전하며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전체가 살아 숨 쉬는 날 동안 이렇게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되었던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 땅에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화해와 그리고 평화를 이루며 살도록 그렇게 부름을 받았으니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