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다윗의 위(位)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내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며 내 종 다윗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하셨나이다(셀라)
(시편 89:3-4)
녹취자 : 조원정
1, 2절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성실함을 노래하면서 그 두 가지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영원할 것이라고 선언을 합니다. 3, 4절에는 무엇에 근거해서 그런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라는 것을 제시합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자하고 성실하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이기 때문에 또 다른 무엇이 있어야지만 하나님이 겨우 그렇게 되실 수 있다고 말하면 하나님의 전능하신 성품에 위배되는 해석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감격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인간과 피조물들을 너그럽게 대하시고 당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하나님이 게으르시거나 혹은 태만해서 돌보시지 않는 적이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늘 성실하신 분이지만 그런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다른 모든 인간들, 족속들과 구별되게끔 어느 한 백성들에게 아주 도드라지게 나타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게 바로 언약백성으로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에게 인류를 사랑하시고 인자하시고 성실하시지만 하나님은 당신 고유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탁월하게 보여주셔서 그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이 하나님에게 어떤 존재인지 드러내 보여주셨습니다.
시인은 어떻게 그렇게 특별한 인자와 성실하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이시는지를 말씀하시는데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두 단어가 언약과 다윗이란 이름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계약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계약이 맺어지고 계약의 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의무와 혜택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인간 사회에서 계약이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 대등한 당사자끼리 계약을 맺습니다. 원래 근동 지방에서 맺어진 계약의 문맥을 보면 평등한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계약도 있었지만 중동 지방에 있었던 이 계약은 성경의 이 계약과 관련된 고대의 근동지방에 계약의 사상은 신하와 왕이 계약을 맺는 것입니다. 그 계약을 책임 있게 이행하기 위해서 신을 둘러 댑니다. 그러면서 맺어지는 계약입니다. 왕이 큰 나라를 차지하고 그것을 조그맣게 잘라서 영주를 임명합니다. 왕이 내가 너를 영주를 임명하기로 했다는 자체가 커다란 은총입니다.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내가 영주로 임명해서 경기도만한 땅을 다스리겠다고 하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그 계약의 조건들이 둘이 협의를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위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공무원이 될 때에도 굉장히 많은 서류에 사인을 합니다. 그것도 자기 마음대로 넣고 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양쪽이 사인을 하면서 계약이 성립을 합니다. 왕이 내려 보내면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봉신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가지고 자기를 임명한 왕과 임명 받은 그 사람이 소를 쪼개 놓은 그 사이로 지나가는 것입니다. 피가 낭자합니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우리는 이렇게 언약을 지킨다. 만약에 이 언약을 어길 시에는 신이 우리에게 이렇게 벌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그런 예식을 치룹니다. 문서는 하나는 사당에, 하나는 자신이, 하나는 피 계약자가 가지면서 신들을 증인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런 약속의 심각성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조상 때부터 약속을 하실 때 이런 피의 맹세를 가지고 들어오셨습니다. 그것들이 제사 속에서, 언약의 체결 의식 속에서, 구체화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로 하나님은 무엇을 기대하시는가 하면 잡다한 신들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엄정하심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그 언약의 체결 의식을 통해서 이것이 확실하다는 것, 이것이 매우 엄숙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셔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매우 특별하다는 것과 이스라엘로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의무를 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커다란 은택을 입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만드는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런 언약에 관한 일이 우리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그 피로 하나님과 우리가 언약 관계로 묶이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고 감동을 받으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한다고 갱신된 마음을 갖듯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도 언약을 대했다는 것입니다.
좀 긴 설명이었지만 어쨌든 주님은 당신이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맨 처음에 멀리 보면 아담부터, 가깝게 보면 아브라함부터 이스라엘을 위한 구체적인 언약이 맺어집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그 후에 계속해서 야곱이라든지 족장들을 비롯해서 모세라든지 이렇게 언약이 맺어지면서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형성합니다. 그 언약은 하나님이 오늘 언약을 주시고 내일 언약을 주시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세대에 언약을 주십니다. 그 언약은 한 세대에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 가시는 핵심내용입니다. 언약이라는 것의 열쇠를 열고 돌리면 그게 바로 언약이 주어진 시대에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어떻게 경륜하시는지를 보여주는 핵심이 되는 것입니다. 언약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언약이 주어졌던 그 시대를 바라보는 것은 그 시대를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합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언약이 하나하나 따로 따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언약은 하나하나 다른 것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앞에 주어진 언약은 뒤에 언약에 의해서 발전되고, 뒤에 주어진 언약에 비해서 앞에 있는 언약은 그 다음언약이 어떻게 전개될 것을 예고합니다. 언약 하나하나가 각각 다른 언약과 구별되면서도 이 언약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데 서로 충돌하지 않고 그것이 일관성 있게 어떤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어 가는데 진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정신없는 분이 아니라면 한번 당신이 백성들을 창조하셨고 구원하시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 모든 작은 언약들은 하나님이 그 큰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게 아니라 하나하나가 완전히 떨어져서 따로따로 작동하는 언약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이해입니다. 그 언약 중에서 다윗 언약이 갖는, 다윗 언약은 다윗과 맺은 언약입니다. 다윗과 맺은 언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영원한 왕을 두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원히 떠나지 않고 다스리겠다고 하는 약속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결국은 다윗의 위는 남 왕국 유다의 멸망과 함께 끝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예언이 어떻게 성취된 것일까 하는 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됩니다.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하고 북 왕국은 물론 멸망하고, 720년 주전에 멸망하고 남 왕국 유다는 그때부터 180년 정도 후라고 586년에 망하게 됩니다. 150년 정도 후에 (나라가) 망하게 되는데 그렇게 망하고 나서 하나님의 언약이 실현이 안 된 것처럼 보입니다. (다윗의 왕위는) 툭 끊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포로로 끌려가고 나라는 망합니다. 그 망한 나라는 다시 복원이 안 됩니다. 1940년대에 시오니즘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남이 이미 살고 있는 땅에 들어가서 이 땅이 말하자면 2500년 전에 우리 땅이었다고 하면서 차지하고 만든 나라가 이스라엘입니다.
다윗의 왕위가 ‘툭’ 하고 끊어지는데 (성경의 내용을) 쭉 하고 넘어가면 마태복음 1장으로 넘어가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하고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고 그분이 유대인의 왕이 되셨습니다. 다윗이라고 하는 육신적인 혈통이 계속되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이제 왕이 되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고 사람들이 노래했지만 그분은 유대인의 왕이 되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고 마지막에 부활 승천하셔서 천국에 오르심으로 온 천하를 다스리시는,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요, 주 중의 주가 되기를 원하셔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실제 다윗에 의해서 유지되던 다윗의 왕위는 오히려 신약 시대에 와서 그리스도께서 온 땅과 만물 위에 뛰어난 주가 되셔서 온 우주를 다스리고 통치하시기를 하나님이 하신 것과 똑같이 하실 위대한 통치 이상을 보여주기 위한 예고편이요 그림자였다는 것을 우리들이 알 수 있습니다. 한 나라가, 그 위가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나라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다윗의 위가 영원하다는 것은 이 다윗 언약에서 바로 옛 인간 언약과 인간 다윗이 새로운 왕이신 하나님에 의한 영적인 통치로 구현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찬란했던 -찬란했다고 봐야 조그만 나라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나라에서 가장 넓은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작은 나라들이 와서 조공을 받쳤던- 영광스러운 때가 다시 복귀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땅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왕국에서 이루어질 위대한 역사요 나라입니다. 그것을 오늘 (시인은) 노래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훨씬 더 분명해졌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셨는데 그것은 다윗과 맺은 언약의 전개다. 오늘 다윗의 위를 영적으로 계승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와 맺으신 그 구원의 언약, 은혜의 언약을 기초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당신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 영원한 제사를 드리신 언약의 당사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누리는 은택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어떠한 인생의 처지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인자, 우리에게 당신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셔서 당신의 위대한 뜻들을 이루어 내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는 굳게 믿을 근거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눈을 들어 우리에게 이런 그리스도와의 언약을 통해서 성실과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