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서 인생을 생각함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시 89:46-47)
녹취자 : 김세나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시인의 심경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주님께 호소합니다. 언제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숨으시겠습니까? 언제까지 주님의 노가 불붙듯 하겠습니까? 라고 주님께 호소합니다. 하나님이 온 세계가 당신의 것이신데, 어디에 하나님이 숨으시겠습니까. 그리고 오히려 우리가 어디로 피한들 하나님을 회피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사랑하고 믿으면 친근하신 하나님을 뵈옵고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노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뿐이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시인의 이러한 투정과 같은 불평은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돕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자신에게서 얼굴을 숨기신 것처럼 주님의 노가 불붙는 것처럼 느끼는 생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시인의 이러한 생각은 믿음이 동반되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해 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낙심하고 좌절하게 만들 것입니다. 시련이 겹치고 고통이 뒤따를 때, 우리 인간은 그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이 고통의 뜻은 무엇일까. 그것을 자신에게 물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삶에 요동치는 현실 속에 살면서도 그것을 넘어서 우리를 붙들어 주고 있는 하나님이 주시는 인생의 의미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때 요동치면서도 우리가 갈 길이 어디인지 똑똑히 알게 되고 잠시 흔들려도 다시 일어서야 할 것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때 이 모든 우리의 삶의 상황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시인이 본문에서 기억하고 있는 이 고난은 우리의 상상하는 것보다는 훨씬 큰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하나님의 분노를 보았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도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어느 정도 흔들리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의심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인생의 모든 상황 건너편에 있는 인생의 실체를 보게 하는 힘이었습니다. 부지런히 고통과 싸우고 시련을 견디면서 좀 더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위해 애쓰는 동안 우리는 종종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애써야 하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냥 편하기 위해서 너무 괴로우니까 그렇게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러한 고통의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평화로울 때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우리의 인생의 본 모습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시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라고 노래합니다. 즉, 이 큰 시련을 통해서 고난을 받으면서 시인은 인생의 덧없음을 생각하였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나의 행복에 집착하는 동안에는 내 인생의 길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사라질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붙들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잠시 있다 사라질 분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큰 고난을 당하면서 시인은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단지 길이가 짧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인생이 덧없는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하나님은 이 세상에 들러붙어 있어서 그것이 영원한 것처럼 집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은 잠시 있다 없어지시는 분처럼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키시기 위해서 때로는 고난을 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배신을 당하게 하시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시고 인생의 덧없음을 깊이 느끼면서 오히려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신앙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이렇게 큰 고난 속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발견하고 그것을 깨달은 깊이만큼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무를 직시하던 눈을 들어서 하늘을 보는 것입니다.
(찬양)
주의 인자는 커서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넓은 궁창에 이르나니 하늘 위의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새벽에 일어나서 시편의 이 구절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렇구나. 우리 인생에 일이 일어나고 그 일 때문에 아침에는 웃고 점심때는 울고 밤에는 분노하지만 모두 덧없는 인생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입니다. 그 인생의 덧없음을 깊이 깨달으며 잠시 있다 머물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이 큰 고난 속에서 인생을 깨달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러했겠습니까? 아닙니다. 처음에는 가장 크게 떠오르는 관심사는 고통 받는 자기, 괴롭히는 악인들, 그리고 나를 힘겹게 하는 상황들. 치워버리고 없애버리고 떠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은 그 풍랑으로 인하여 주께로 더욱 가까이 갑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인생에 대한 또 하나의 깨달음을 더합니다.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큰 고난과 실망을 통해서 인생의 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허무하게 창조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허무는 하나님께 책임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 이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심하고 이 큰 시련이 계속되는 가운데 주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에 비로소 나는 허무하게 창조된 사물이구나.’ 이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러면 이제껏 자신이 의미가 있다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그리고 태어나 죽는 것은 정한 이치지만, 그러나 오늘 악과 싸우고 선을 추구하고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고 하는 이 모든 신앙, 그 신앙에 복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 이것 때문에 나는 허무하지 않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생은 원래 주님을 떠나고 나면 정말 그 정체가 허무합니다. 그러한 사실은 여러분들이 잠시 신앙을 내려놓고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금방 느끼는 사실입니다. 40년, 50년 혹은 60년의 세월이 바람처럼 지나고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죽음 저편으로 떠나갑니다. 몸부림치면서 싸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악 악 거리며 살았지만 인생 끝자락에서 보면 굳이 왜 그렇게 인생을 살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참 섬세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이 죽을 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고통을 배려하십니다. 그래서 죽기 직전에 우리 몸의 모든 엔돌핀을 쏟아내게 하셔서 살아있는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위안과 기쁨 속에서 죽게 하십니다.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갈 때 사람들의 마음에서 모든 미워하는 사람과 화해하게 하십니다. 죽음 끝에서 그 삶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나면 미운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워할 이유가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허무를 깨닫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의 큰 선물입니다. 그 허무한 마음이 우리로 하여금 부질없는 세상 사랑의 손을 내려놓게 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서 살 마음을 주어서 허무를 극복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사람에게 어찌 기쁨이 있겠으며, 주님을 향해 돌아선 사람들에게 어찌 기쁨이 없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완전한 행복이시기에 당신에게 가까이 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시인이 그 큰 시련과 고난, 혹은 징계를 통해서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짧은지, 덧없는지를 깨달았고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 허무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를 기억하소서.” 이 기도는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허무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이제 나에게는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시 있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이 짧은 인생에 주님이 나를 가까이 해 주시지 않으면 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주님을 찾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시련과 고난은 우리를 주님이 계신 항구로 실어 나르는 파도에 불과합니다. 그 풍랑 때문에 주님께 더 가까이 가서 결국 우리의 인생에 일어난 모든 일 때문에 내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 이것이 성도의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겠습니까. 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괴로울 때나 시련을 만날 때나 그 모든 것 때문에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완전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