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와 헌신(8장)
녹취자 : 한지인
31p 두 번째 공부를 지난시간에 했습니다. 순결을 잃어버리는 이유. 마지막 시내산과 십자가입니다. 마지막 장은 전체적으로 정리하면서 마무리를 짓는 부분입니다. 제사 제도가 개시된 것이 많은 청교도나 많은 사람들은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바로 개시되었다고 봅니다. 그랬기 때문에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있을 때에도 제사를 드리러 광야로 나아가겠다고 바로에게 제의를 합니다. 벌써 그때에도 제사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이전부터 제사제도가 있었습니다. 그 모든 제사 제도들이 아주 구체적인 형식을 갖추어서 엄격한 규칙에 의해서 계시된 것은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입니다. 그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해서 홍해를 건넌 다음에 시나이 반도에 도착한 때입니다. 거기에서 상당한 시일, 약 11개월 정도를 머물면서 애굽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습속들을 떨어버리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아주 구체적으로 율법을 주시면서 제사에 대한 제도들이 아주 세세하게 제시가 됩니다. 이것은 결국 순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제사제도가 계시되면 그 계시된 대로 예전에는 적당히 지내던 제사들이 엄격하게 율법의 규칙에 따라 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엄격한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 시점이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일까 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두 가지를 지배하게 되는데, 1번에 첫 번째가 나오고 2번에 두 번째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것입니다. 전에는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비천한 신분이었는데 이제는 아직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가나안땅을 약속으로 받은 민족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행복한 것입니다. 그런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 2번에 가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것입니다. 시내산에 도착하기 전에 아주 커다란 일을 한번 만나게 됩니다. 바로 홍해 사건입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홍해를 가르시고 그곳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보게 됩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너고 애굽의 병거들은 그 물결 속에 휩쓸려서 파멸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건너편에서 찬송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출애굽기 15장의 하나님에 대한 찬송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요지는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고 또 지극히 큰 능력으로 자기를 지켜주시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은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복 받기위한 순종이라든가 혹은 불순종하면 임하게 될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에 대한 무서움 때문이 아니라 항상 구원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가 너무나 감사하다 어떻게 내가 이 크신 사랑과 은혜를 감사할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 그 자체가 불순종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 자기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큰 은총적인 능력, 이것을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순종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다음 3번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시내산에서 계시된 성막, 그리고 거기에서 드려지는 제사 이런 모든 것들은 신약에 와서 예수님에게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죄를 짓고 타락한 다음에 하나님이 두 가지 은총을 베푸십니다. 첫 번째는 그 자리에서 죽임당하여야 할 인간을 일정기간동안 살려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생육하고 번성하고 자기는 죽지만 그 씨가 다시 남아서 인간들의 생명이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죽음을 유보하는 은혜를 베푸셨고, 또 하나는 메시야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메시야를 약속해 주셔도 사실 사람들은 그 약속을 굳게 붙들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 많은 약속들이 있는데 우리들이 그 약속들을 굳게 붙들고 살아가지 못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주시는 것이 제사제도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면서 매일매일 메시야가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이렇게 죽고 다시 사실 것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제사제도는 메시야의 오심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의식법이라고 하는 것, 율법 중에서 의식법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입니다. 이제는 왜 제사를 안 드리냐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이 제사는 모두 성취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그것이 성취되는 것인데,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제물로 드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번제를 드리면서 헌신을 맹세하고, 소제를 드리면서 자기 깨어짐을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전제를 드리면서 순결을 결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면서 결심하는 것입니다.
(찬양)
그 형상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짐승을 각 떠 바치지 않아도 그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피공로를 보면서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셨구나 그리고 우리 자신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훌륭한 헌신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생명을 버리고 죽으셨으니 이제는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겠구나 그게 회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면서 아직도 내가 내 안에 죄가 너무도 많구나, 아직도 내가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는구나,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사랑의 빛으로 비춰볼 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세 번째는 무엇을 깨닫게 될까요? 그 십자가를 보면서 자기가 불결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삼제에서 깨닫는 모든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다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제사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그 십자가를 보면서 삼제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모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헌신하지 않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절대로 깨어지지 않던 완고한 죄인들이 그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깨뜨려지고, 회개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 십자가 아래에서 불결함을 간직했던 사람들이 순결을 회복하고 그리고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기억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자기가 용서받은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그냥 불러주시는 것이지, 실제로 의인은 아닙니다. 그래서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목사님이 이 세상에는 죄인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용서받은 죄인이고, 또 한 종류의 사람은 아직 용서받지 못한 죄인입니다. 그 십자가 아래에서 인간이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다음에 불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거기에서 깨뜨려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무엇인가 하면, 용서받은 죄인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불결함이 남아있는 죄인이기 때문에 날마다 성령의 은혜 안에서 순결해져 가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깨달아야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문제는 이 책 전체를 깨달은 소감을 가지고 나누는 것입니다.
구역인도를 잘하려면, 이것은 하나의 기술의 문제인데 자기가 사람들에게서 사람들 속에 있는 말들을 끌어내는 것을 잘 해야 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무엇을 물어본 다음에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답을 먼저 말해주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이야기 해보라고 하십시오. 뻔한 답도 한번 이야기 해보라고 하고, 옆에 있는 분도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서 자꾸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맨 마지막에 사람들이 다 이야기 하고 나서 짤막하게 여러분들이 정곡을 찔러서 정확하게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절대 많은 말 말고 정확한 말로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에 사람들이 조금 틀리고 빗나간 이야기를 해도 최대한 연관이 있는 것들을 찾아서 도움이 되었다고 칭찬을 하고 다 뭉뚱그려서 문제가 원하는 답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구역모임에 들어가지 않는 많은 사람들 중에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구역예배에 들어가면 학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이 웬만큼 뛰어난 성경공부 교사가 되어서 무릎을 꿇어서 한수 배우고 싶은 처지 정도에 도달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기쁨으로 잘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역모임이 모였을 때 사람들 각자에게 모두 임무를 줘야 합니다. 최소한 그 구역원들이 한 가지 이상은 임무를 가질 수 있도록 임무를 주십시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구역들이 많습니다. 나는 사실 성경공부 인도를 하지만 옆에 있는 김집사님은 사람들에게 다 연락해서 참석시키는 사람, 옆에 있는 박집사님은 구역에서 모였으니, 각자 기도제목을 나누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럼 주중에 전화해서 쭉 적어서 복사해서 가지고 와서 한 장씩 나눠주고, 성경공부는 구역장이 인도했지만 기도모임은 이번에는 그 집사님이 인도하고, 이번에 제가 기도제목을 조사하다 보니까 모두 일반적인 제목인데 최집사님과 안집사님댁에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이분들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합시다. 그래서 같이 간절히 기도하고 그 사람이 기도하고 마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자기 역할이 있기 때문에 또 참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간식담당을 만들어도 됩니다. 간식담당은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만들고, 이렇게 하면서 모든 구역에 나오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임무를 맡아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교회에서 지정해서 벽보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같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하는 가운데 하나씩 하나씩 구역장의 책임 하에 임무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또, 지금처럼 아웃리치를 가게 되면, 아웃리치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필요한 기도가 무엇인가 시급할 것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가장 시급한 것이 전도입니다. 구역이 전도하는 구역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교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구역장을 까다롭게 시키니까 구역 수는 적고 교인들이 많기 때문에 한 구역에 열다섯 명씩 모여서 사실은 귀한 줄을 모르고 두세 사람 빠져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저도 그런 경험이 있는데, 구역장은 안 해봤지만 구역인도자할 때, 한구역이 세 명인데 구역에 가면 구역장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역식구가 세 식구인데 한 식구 전화해보니 아프다고 안 나오고 한 식구는 놀러간다고 안 나오고 한 식구는 손님이 왔다고 못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전도사님이 왔는데 구역장과 둘이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진짜 구역장이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기도 안 한것에 대해서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럼 전도사는 가서 위로하기 바쁩니다. 내가 더 낙심하고 짜증을 내야하는데 구역장이 더 하는 것입니다. 아....전도사님 저 이제 구역장 그만 해야겠습니다. 금요일마다 마음이 졸여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앙이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많은 구역은 열다섯 명씩 되니까 서너 명 안 나와도 한 열 명 모여서 공부하니까 끄떡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구역이 발전을 안 합니다. 그리고 구역장의 일을 감당하는 동안에 아주 나태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구역장들을 적절하게 훈련을 시켜서 구역을 자꾸 쪼개야 합니다. 그래서 진짜 정신 차리고 하지 않으면 구역인도자하고 단 둘이 예배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정신이 번쩍 납니다. 그러면 막 전화도 하게 되고 며칠 전부터 금요일에 어디 가지 말라고 하다가하다가 안되니까 내 체면 봐서라도 한번만 살려달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전도를 해야 됩니다. 전도할 사람 이름을 적어내고 모임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개네 제수씨가 교회에 나오려고 하는데 우리 기도해줍시다. 아무개네 옆집에 있는 사람이 지금 상당히 많이 마음이 움직였는데 우리 기도합시다. 이렇게 기도해서 그 사람이 나오면 따뜻하게 돌봐주고, 그렇게 하면서 구역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자기 임무를 맡겨야 합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지혜로운 구역장들은 하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집에 가서 일주일동안 기도하면서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교회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것을 하나씩 맡기십시오. 그래서 구역예배드릴 때 방석 가지고 오는 사람, 다 정리하고 치우는 사람, 마실 것 준비하는 사람, 전도위해서 기도하는 담당, 중보기도 담당하는 사람, 같이 함께 부를 찬송가도 매일 찬송가 펼쳐놓고 부르지 말고 복음성가 부를 수도 있으니 그거 복사해 와서 나눠주고 같이 불러주는 사람. 이렇게 해서 구역예배 드리는 동안에 한사람이 한 가지씩 다 참여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기쁨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리고 이야기하기도 굉장히 좋습니다. 당신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합니까. 중보기도 담당인데, 오늘 안 나오면 누가 중보기도 인도합니까. 그럼 책임감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씩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거기에서 다시 구역장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안에서 교제, 돌봄, 전도, 중보기도, 찬양, 섬김, 헌신. 그런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구역이 되어야 합니다. 구역원들 다 모일 때 늦게 와서 성경 몇줄 가르치고 급한 일이 있다고 성경찬송 들고 후딱 일어나서 가버리면 구역이 안 됩니다. 그렇게 구역을 인도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근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하면, 구역 식구들이 점점 사랑으로 뭉쳐지게 됩니다. 따뜻한 구역이 됩니다. 여름 같을 때 얼마나 좋습니까. 여름에 우리 이번에 시간 맞춰서 어린이 대공원 가서 구역예배 드립시다. 구역예배 드리고 한 시간 반만 전도 합시다. 이러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그 안에서 함께 협동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력 있는 구역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한번 해보십시오. 그렇게 해서 구역원들을 모두 격려해서 함께 품고 끌고 가는 구역이 되어야 합니다. 구역장이 계모 같은 구역장이 되어서는 안 되고 친 엄마 같은 구역장이 되어야 합니다. 계모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고 친엄마보다 더 좋은 계모도 있지만, 우리들이 전통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오면 오고 말면 말고, 한수 배우려면 본인이 와야지 구역장이 그걸 오라고 사정하는 사람인가 하고 가만히 있는 것 말입니다. 엊그제 이찬수 목사님하고 같이 저녁 먹으면서 이야기 했는데 정말 부러웠습니다. 거기는 구역장들이 세 구역씩 맡는다기에 왜 그러냐니까 훈련받은 사람은 적고 교인들은 막 밀려와서 한 달 전에 교회 나온 사람을 구역장 시킬 수 없으니, 세 구역씩 맡는다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교회에 봉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역이 세구역이니 구역예배만 세 번 드려야 하고, 그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돌보고 챙기고 그러면 결국 일주일이 다 간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서울, 분당 방방곡곡 돌아다니면서 구역예배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제가 알기로는, 여러분들은 두 구역, 세 구역씩 맡은 구역장들은 없지 않습니까. 사실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열 명이 넘으면 구역을 두 개로 쪼개서 두 번 구역예배를 드리게 해야 합니다. 구역장은 똑같아도 따로따로 가서 예배를 드리게 했기 때문에 세 구역 심지어 유능한 사람은 네 구역씩 맡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집사입니까, 전도사이지. 그렇게 다니면서 다하고 그 사람들 데리고 전도하고 병원에 문병가고 일 나면 가서 뒷바라지 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얼마나 충성스럽게 보시겠습니까. 우리 구역장들이 이제 그런 구역장들이 되어야 합니다. 다음 주에 기대해 보겠습니다. 다음 교재는 하나님과 동행함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