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게으름』 집필동기
녹취자: 장미연
우선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를 처음 책이 나온 것은 1996년으로 제가 기억을 합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냐면 그 한 해전에 부산에 있는 브니엘 신학교라고 하는 곳에서 저를 강사로 초청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여기저기 많이 집회를 불려 다니기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브니엘 신학교를 갔습니다. 부산에 있는 어느 기도원에 모여서 집회를 해달라고 하는데 특이 했던 게 학생들이 100여명 됐나요? 많지 않았고요. 두 번째는 저를 많이 시킬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새벽에 잠깐 말씀 전하고 하루 종일 할 일이 없고 그 다음에 밤중에 한 번 설교 하는 것이었습니다. 월요일에 도착을 해서 월요일 저녁에 말씀 전하고 목요일까지 설교를 했습니다. 허름한 기도원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며칠 동안 비가 추적추적하고 내리는데 비가 오면 사고가 잘되는 거 아십니까? 음이온이 많이 나와서 사고 활동이 굉장히 빨라집니다. 강사 방이라고 줬는데 완전 시골집입니다. 기어들어갈 정도입니다. 현대식 건물이 아닙니다. 문을 열면 댓돌에서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운치 있는 집이었습니다. 침대도 아니고 온돌방에 이불을 깔았습니다. 새벽에 말씀을 전하고 와서 조용히 앉아서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경을 차례대로 읽는데 누가복음 1장 읽을 차례였습니다. 1장 80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1:80) 그 성경 한절을 4일 동안 읽었습니다. 사로잡히고 나서 “와∼”그러면서 감동을 받고 다시 읽고, 다시 읽고, 다시 읽고, 계속 읽기를 반복하고 마침 헬라어 성경도 가져갔기 때문에 헬라어 성경도 보고 다 외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깨달은 것을 깨알같이 메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노트북 하나가 있었습니다. 배터리 저장시간이 한 20분정도 되는 그러한 80MB 자리 흑백 노트북이었는데 전기에도 꽂아놓고 계속 깨달은 것을 입력을 했는데 4일이 끝나고 금요일 날 돌아올 때는 A4용지 40매 정도가 나왔습니다. 그것이『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의 완벽한 초고가 되었습니다. 돌아와서 그 책을 쓰기 위해서 제가 한 200권의 책을 방에 쌓아 놓고 그 당시에 저는 학교에 강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을 땐데 우리 집사람이 늘 내 건강을 염려하는데 침대에서 우리 집사람 재워 놓고 살며시 제 방에 가서 문 잠그고 밤 12시부터 새벽5시 사이에 글을 썼습니다. 5시 되면 교회 새벽 예배 가고 끝나고 돌아와서 한 2시간 자고 그 다음에 하루를 시작하고 그 당시에는 가능했습니다. 그때 제 나이 마흔둘? 진짜 소년시절이었습니다.
그때 한 편 저의 글쓰기는 어떻게 됐냐면 맨 처음에 돌아가신 하용조 목사님이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김목사님이 혹시 책을 한 권 내겠다면 두란노에서 내줄테니 원고를 보내보시오.” 그러셨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아주 무명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게 95년도 일이었습니다. ‘뭘 내볼까?’ 그러다가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한다』 라는 그 책의 원고가 일부가 있었고 그때 한창 청교도와 설교자에 대해서 불붙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한 번 이걸 써봐야 되겠다.’ 그러고 진짜 순식간에 신들린 듯이 썼습니다. 불과 원고 가져와보라고 해서 넉 달 정도밖에 안 걸렸던 거 같습니다. 그 원고를 하목사님 하고 두란노에서 만나서 원고를 드렸더니 보시더니 책을 출판해주라고 넘겨주었습니다. 그 책이 『설교자는 불꽃처럼 타올라야한다』 그러는데 설교자가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책은 안 팔릴 거다.’ 그렇게 믿고 주었습니다. 믿음이 참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란노도 그 당시에는 제가 무명의 작가였으니까 사실 그 출판사 입장으로서는 낙하산을 타고 한 사람이 내려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목사님하고 각별한 친분관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94년도부터 “목회와 신앙”, “빛과 소금”에서 제 글을 요구하는 걸 목사님이 보시고 인상 깊었던 모양입니다. ‘김 목사한테 책을 내게 하자.’ 그래서 썼습니다. 그러고 나서 ‘책이 잘 안 팔릴 거다.’ 생각하고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시죠? 1권이 죽을 쒀서 안 팔리면 두 번째 책 쓸 기회는 안 줍니다. 왜냐면 거기는 돈을 벌어야 되니까. 예를 들어 “내가 출판비를 한 5백만원 헌납하마.” 그러면 해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해줍니다. 그러고 나서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서점엘 갔는데 『불꽃처럼 타올라야한다』라는 책이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나온 책이지.’ 하고 봤는데 쭉 넘겨보니 사판인가 오판인 것입니다. 계산해보니까 찍힌 지가 두 달밖에 안됐는데 그 정도만 되면 사실 출판사에서 저자한테 정중하게 전화를 해서 “저자가 써준 책이 현재 잘 팔리고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처럼.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쓰고 물음표를 딱 찍어서 보냈더니 출판업자가 느낌표를 딱 해서 답장을 했다는. 그런데 그런 대우를 안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좀 다르겠지요. 전화를 했더니 “어, 잘나간다.”고 합니다. 잘나가는 게 어느 정도냐면 15일에 3천 권씩 새로 계속 찍은 것입니다. 신문에 한 줄도 광고 안 내줬습니다. 그리고 막 찍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 번에 2만 5천부 3만부를 찍은 것입니다. 그 당시에 획기적인 게 책이 두꺼워서 7천원 자리였습니다. 두란노에서 그때 “책이 보통 4천원 아주 두꺼워야 5천원이었는데 7천원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나왔다는 것은 기록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책이 나왔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불꽃처럼 타올라야 한다.』불꽃 시리즈를 차례대로 냈습니다. 불꽃처럼 타올라야 하는데 괜찮았습니다. 10위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 『영적회복은 불꽃처럼 번져가야 된다』 그건 죽을 쒔습니다. 거의 안 팔렸습니다. 눈빛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네 번째 책을 썼는데 대박을 냈습니다. 한 번에 4만부가 순식간에 나갔고 현재까지는 10만부 정도 나간 걸로 제가 추산을 합니다. 두란노에서 한참 찍어내다가 판권을 생명의 말씀사로 옮겨서 계속 찍어내고 지금도 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아마 120쇄나 30쇄 정도. 그런데 그 책의 얽힌 예화는 너무 너무 많습니다. 제가 쓴 책을 가지고 얘기하는 게 웃기지만 어쨌든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그 한동안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그 제목은 내가 정한 게 아니라 두란노에서 편집회의를 해서 정해졌습니다. 맨 처음 내가 황당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잘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이 책에서 저는 뭘 말하고 싶었냐면 목사가 되고나서 5년이 지난 다음에야 목사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를 대충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사실 한 15년쯤 하고 나니까 ‘목회가 무엇인가?’ 그것이 일체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목회라고 하는 활동 말고 목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원대한 그림이 생겨나게 되었고 나이 60이 넘고 나니까 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알 수 있는 저기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는 어떤 생각을 했냐면 요한이 제사장인 부모집안에서 태어나서 광야로 보내지고 보내진 그 요한이 광야에서 몇 살에 버려졌는지 알 수 없지만 베이비 때 보내졌다고 봐야 합니다. 파이디온 이라는 말이 나오긴 하지만 그런 속에서 성장해서 어느 한 순간에 공적인 무대에 딱 나타났을 때는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강력한 말씀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서 나타난 것입니다. 궁금한 건 무엇이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목회자가 되고 설교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요한처럼 한 시대에 파도와 같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많은 사람이 목회자가 되는데 그런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이 안 나올까? 이런 것들을 나 자신이 고민하던 문제를 그 텍스트 속에서 읽으면서 역사, 목회, 신학 그 다음에 성경 심지어 영적인 거인들의 내면의 세계에 이르기 까지 모든 것을 종합해서 그것을 그려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준비를 해야 되겠느냐? 그것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육체, 아이가 자라매 갓난아기를 들어서 하나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신 것입니다. 거기서 육체와 건강, 육체적 준비 건강과 순결 그래서 육신의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가? 라고 하는 것, 그 다음에 성적인 순결 이런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가하는 것을 다뤘고 그 다음에 성품 그 인간성과 신앙과 성품, 그 다음에 성경과 학문, 그 다음에 체험과 정서 그리고 영적인 준비의 문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섯 가지 정도로 나누어서 그것을 한 번에 쭉 진술해 낸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저는 그걸 쓸 때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이 있었던 것 같고 하나님이 그 책이 너무 너무 필요하셨기 때문에 그때 써내게 하셨다고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예화) 그 책이 나오고 얼마 안돼서 있었던 일인데 대구에 있는 대구 신학교가 있습니다. 지금은 대구 신학 대학교가 됐습니다. 도서관에서 그 학생들이 중간고사 때 잔뜩 모여서 공부를 하는데 한 학생이 도서관에서 갑자기 통곡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깜짝 놀랐는데 알고 보니 그 학생이 그 책을 읽다가 회개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계기가 되어서 그 학기에 모든 학생이 성경하고 그 책하고 가지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고 그 때 그 당시에 읽고 즐거워하던 학생들이 지금 벌써 40대 후반이나 50대에 접어들게 되었으니까 참 많은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미국에 갔을 때 어느 목사님이 그 책을 읽었다고 하면서 이 책을 제가 20년 전에 읽었으면 내 인생을 10년 정도 줄일 수 있었는데 길을 너무 겉돌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내 책을 그 책을 막 선전하고 하는 것도 아니니까 안 읽은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제가 쓴 70여권의 책 가운데서 제게 가장 사랑받는 책 중에 하나이고 이 책이 그 책 중에 하나입니다.
그 다음, 『게으름』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게으름』은 저를 매우 행복하게 해 준 책입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지금은 『게으름』이 아마도 180쇄 정도 나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간 총 권수는 40만권 정도. 기독교 책 시장이 일반 책 시장의 딱 10분의 1일입니다. 지금은 10분의 1도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곱하기 10을 하면 일반 책 시장에서 4밀리언셀러 입니다. 그 책은 그렇게 고민하면서 쓴 것은 아닌데 고민하지 않으면서 쓴 것은 하나도 없지만 목회를 하는데 교인들이 너무 게으릅니다. 그 자극을 준 것이 우리 아이들입니다. 제가 아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목사가 되어서 미국 웨스턴민스트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딸은 대학 나와서 직장에 다니는데 자기네 딴에는 아니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너무 게으릅니다. ‘저렇게 해서 밥을 벌어먹고 살 수가 있을까?’ 그럴 정도로 게으르고 우리 집사람과 저는 게으름을 혐오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잘못된 것인데 쉬는 거 자체를 혐오했습니다. 죄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짜 하나님 앞에 잘 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농땡이 치면서 살지는 않았습니다. 안 놀고 안자고 공부하고 사역하고 그랬습니다. 특히 학교 다닐 때는 저는 직장 다니면서 학교를 다녀야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야간 신학 대학교를 들어가게 됐습니다. 4년을 다니고 3학년 2학기 때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에 올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대원 때는 당연히 교회 전도사 생활하면서 교회 신대원을 다녔는데 7년 동안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하나님 앞에서 너무 부끄럽지만 ‘나에게 다시 한 번 7년 전으로 돌아가라고 해도 그 이상은 살 수가 없다. 더 이상은 나는 못한다.’ 그럴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한 학기도 교회 봉사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교회 섬기고 심방하고 그렇게 하면서 미친 듯이 살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책 읽고 특히 그때는 제가 구약을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 전체 3분의 1을 노트로 파싱해 가면서 신대원 3학년 때까지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모음 없는 자음 사본도 두루마리에 놓고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공부를 했고 그거 가지고 모자라서 우가리더 쇄기 글자 독학으로 사이러스 고든의 600페이지짜리 책을 읽고 토판을 제가 띄엄띄엄 해석 할 수 있을 정도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그렇게 부지런히 살았는데 이 사람들은 너무 게으릅니다. 우리 할머니가 늘 그러셨습니다. 뭐 좀 하라고 그래서 안하고 게을러하면 “다 죽으면 썩을 살이다. 죽으면 썩을 살인데 왜 그렇게 아끼냐?”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되겠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게으를까?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으름의 본질이 무엇일까? 그리고 오후 예배에 연속 설교를 10몇 번쯤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뒤집어졌습니다. 엄청나게 회개했다는 것보다도 사람이 아마 사기치고 사람 죽이고 간음하고 돈 뺏고 이런 건 죄라는 것이 명확하지만 게으른 것에 대해서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해본 사람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이 우리에게 은근히 슬쩍 주머니에 넣어주는 죄가 게으름입니다. 우리보고 살인 주면 받겠습니까? 안 받습니다. 슬쩍 넣어주는 죄가 게으름입니다. 그래서 그걸 한 번 분석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insight를 주셨고 존 오웬을 비롯해서 제가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들도 게으름의 문제를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추적을 해나가면서 그것을 한 번 주일학교 아이들 까지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제 설교가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쉽게 한 번 해보자.” 해서 성공 했습니다. 그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 달에 잘 안 나갈 때 만부씩 나가는 것입니다. 한 번 찍을 때 2천부에 찍는데 2천부가 아니라 한 번 찍을 때 만 부씩 찍었습니다. 만부 찍을 때 만부 쾅 찍고 한 달에 다 나가고 그 다음에 다시 만부 찍고 한 번에 나가고 쾅 쾅 쾅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아이들것까지 해달라고해서 아이들것까지 썼습니다. 아이들 것도 7-8만부 나간 것 같습니다.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참 행복했습니다. 인쇄도 아마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쓴 책이 세어보진 않았는데 어떤 분이 70권쯤 된다고 합니다. 대충 계산을 했는데 2백만 부 쯤 팔았는데 그 중에서 40만부니까 얼마나 큰 겁니까? 게으름이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는데 예를 들어서 제가 직장 다닐 때 난리가 난 것입니다. 건설업자들이 입찰을 붙이는 날이었습니다. 입찰이 다 끝났는데 떼로 사람이 몰려 온 것입니다. 뭐냐고 물었더니 막 소리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타이피스트가 “이 건설 공사에 입찰하고자 하는 사람은 입찰 전날까지 입찰 금액의 10분의 1을 가지고 납입하고 영수증을 가져와서 신청할 것.” 그런데 “전”자를 빼 버린 것입니다. 시간만 써 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그건 전날입니다. 전날까지 하고 추첨까지 다 해서 상정을 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전날”이란 말은 없고 그날이라고만 되어있어서 건설업자들이 와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중징계를 당했습니다. 아마 해고 됐을 것입니다. 그 타이프에 “전” 자 하나를 빼먹어서. 그게 게으름입니다. 논리와 지성을 온전히 사용하지 않은 것은 게으름입니다. 교통사고도 보면 언제 사고가 많이 나냐면 휴대폰 조작할 때도 사고가 많이 나지만 피곤할 때. 피곤하면 하나 하나 집중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등산하면서 사고는 올라갈 때 거의 사고가 안 나고 내려올 때 사고가 납니다. 왜냐면 긴장이 풀어지고 몸이 기운도 없고 밟아야할 스텝을 잘못 밟는 것입니다. 그러다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그런 것부터 시작을 해서 이성의 게으름부터 시작해서 하나, 하나 다 짚어가는 것입니다. 결국 게으름의 뿌리를 계속 내려가 보면 자기를 너무 사랑하는 것입니다. 쉬운 게 좋은 것입니다. 편한 게 좋은 거고. 모든 일에 대해서 사람들이 다 게으르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화) 우리 교회에 어느 집사님 딸이 있는데 아침에 세수만 45분을 한다고 합니다. 이름 하여 고현정 세수입니다. 자기가 이 얼굴 관리에 너무 좋아하고 아끼니까 45분이나 세수를 하는 것입니다. 자매들 중에서 화장을 곱게 하는 자매들 있잖습니까? 인정해줘야 합니다. 보통 거울 앞에 앉아서 한 시간은 기본이고 한 시간 반 에다 화장품 종류는 25가지 정도 사용해야지만 그 정도 작품이 나옵니다. 비용은 또 막대합니다. 더욱이 세수했을 때 얼굴하고 차이가 많이 날수록 많은 노력이 들어갑니다. 엄청난 노력이. 그러니까 보십시오. 제가 그 책에서도 썼지만 너무 게으릅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해도 놉니다. 텔레비전만 보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이 망가졌습니다. 그것도 게으를까? 아닙니다. 들고 서비스센터로 뜁니다. 빨리 봐야하는데 망가져서. 결국은 게으를 수 있는 것은 그 일의 결과가 자기에게 사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선하고 의미 있는 일에 대해서 게으른 게 문제지 악하고 못된 일을 하는 것이 게으른 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도둑이 되어서 도둑질에 게을러서 되겠니? 그러고 우린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부하는 학생이 게으릅니다. 공부를 안 합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제일 혐오하는 학생들이 시험 때 와가지고 갑자기 “전도사님, 우리 같이 밥 먹으러 갈까?” 저는 그때도 가난할 때니까 “그럴까?” 자기가 돈을 내겠다고 합니다. 밥도 사주고 커피도 사주고 “전도사님, 이번 기말고사 정리 뭐, 뭐 있어?” 되게 얄밉지요? 어떤 때는 주고 어떤 때는 안 주고 한 번도 마음 내키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 모든 게 게을러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위인들을 보면서 하나 가슴에 깊이 새기는 것은 시간을 정말 아낀 사람들 그 가시고기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이 나는 게 “당신이 오늘 아무렇게나 사용하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내일입니다.” 어제 죽은 사람들은 못 누리는 특권을 오늘 우리들은 누리고 있으니까 만약에 어제 죽은 사람보고 오늘 하루만 더 살라고 하면 얼마나 열심히 살겠습니까? 그리고 그 날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책을 어쨌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저도 기분이 좋은 책이고 여전히 지금도 많이 읽히는 책이고 어떤 사람의 말에 의하면 “김 목사님이 쓴 모든 책 가운데 가장 접근하기 쉬운 그런 편안하고 쉬운 책”이라고. 그래도 그 책의 가치를 인정받아서 내년 4월에 미국 웨스트민스터 프레스에서 영어로 출판이 됩니다. 얼마나 팔릴지는 모르지만 인세를 필라델피아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출판사를 세워서 첫 번째 출판하는 책이고 인세를 향후 10년 동안 그 학교에 모두 donation했습니다. 어쨌든 여러분들이 제 책을 관심을 가져 주시고 불러 주신 것만 해도 저는 너무 감사하고 또 여러분들과 격이 없는 대화를 나누어서 여러분들에게 책 읽기를 자극할 수 있다면 저는 행복하겠다고 생각됩니다. 이상 제 책에 대한 소개를 마쳤습니다.
질문)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돕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까지 잠자코 있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뜻 구하기 전에 내 생각대로 움직이기도 마음에 걸립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목사님)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이런 일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런 예화에 신학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어떤 분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기도원에 올라가서 밤새워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아무리 돌아봐도 도저히 살 길이 없고 누가 날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뭐든지 할 수 있으니 로또에 당첨 되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고 밤새도록 기도를 했는데 응답이 있었다고 합니다. “복권부터 사고 기도를 해라.” 사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게으르지 말아야한다는 것에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삶의 목표와 방향이 하나님이 동의할 수 있는 곳으로 고정되었는가?’ 그게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부지런한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쪽 방향으로 정해지고 그 다음에 부지런한 삶을 사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혹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인생사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하나님이 홀로 행하시는 위대한 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가로막혔을 때 아무 갈 길이 없잖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이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홍해를 가르셔서 길을 내시잖습니까? 성경에 이런 예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보다 더 많은 경우에는 하나님이 인간이 그 인생 속에서 자신의 삶을 해쳐 나가려는 그 인간의 노력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이루어진 곳에는 빌립보서 1장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하실 때에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이 이루어지는 곳에는 항상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품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갈망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깊으신 뜻을 보이면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자신의 삶에 목표가 정해지고 열정이 깊이 생기게 되면 그것이 사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일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살게 될 때 하나님은 그 열정을 품지 않은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 사람들을 도우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결국 “하나님 때문에 이 일이 이루어졌다.”라고 고백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게으르게 사는 사람치고 치열한 기도 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부지런한 모든 사람이 열렬한 기도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이 건강하고 깨끗한 영성을 가지고 순결하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순결하고 하나님 사랑에 불타면 그는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날들은 너무 짧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게으를 수가 있겠습니까? 게으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지만 엄청 건강했습니다. 그래서 50세 될 때까지 평생 소원이 병원에 한 번 입원해보는 거였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하얀 시트에 조용히 누워서 가녀린 손으로 위로의 꽃다발을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링거 한 번 꽂아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그렇게 건강했습니다. 그런데 소용없는 게 50대 중반 접어들면서부터 10년 동안 11번 입원하고 9번 수술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심각할 때는 체중의 18킬로그램을 잃어버렸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태어나서 처음 저는 모든 아픔은 정신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때문에 교역자들이나 직원들 교인들이 많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왜 아프냐? 사도 바울은 목이 잘리고도 몇 미터를 걸어갔다더라. 그런데 왜 아프냐?” 입술을 딱 깨물고 피가 나올 정도로 특히 여성다운 여성은 뭔가를 해야 되겠다고 탁 결심을 하고 입술을 깨물면 한 줄기 피가 흘러야 된다. 그게 진짜 아름다운 여자다. 그런 서리도 없이 그걸 어떻게 여자라고 할 수 있느냐? 제가 “그렇게 흐느적거리는 그런 여성은 아름다움이 없는 거다. 뭔가를 결심하면 남자는 못해도 탁 깨물면 한줄기 피가 흘러야 된다. 하고야 말리라.” 서리발이 서는 그런 여자하고 결혼을 해야지 남자도 뭔가 좀 잘못된 길을 갈 때 앞을 막아서고 여호와의 사자가 되어서 목에 칼을 들이대고 너 살 거야 죽을 거야? 그렇게 한 번 해볼 수 있지요. 남편이나 아내나 그냥 흐느적거리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혐오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정신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쓰러지고 나서 일상에서 쓰는 숟가락이 그렇게 무거운 물질인 줄을 처음 알았습니다. 깨닫고 나서 아주 겸손해져서 이제 아픈 사람들을 보면 너무 가엾습니다. “쉬워라.” 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 이런 지경에 이르기까지 되었으니 좋게 생각하면 인간의 대한 이해가 넓어졌고 나쁘게 생각하면 게으름의 저자로서 자격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게으름이 나오고 나서 벌써 15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 독자들은 좀 헷갈릴지 모르지만 게으름이라는 책을 썼으니까 이번에는 반대되는 책 게으름 해놓고 게으름을 타박했다면 이번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을 가해서 사람들을 쉬게 해서 균형을 잡을 때가 되지 않았나? 예를 들면 제가 병원에 입원하고 아프기 전 까자만 해도 새벽기도라는 책에서 새벽에 누워있으면 어떤 때는 주일날 6번씩 설교를 하고 심하면 7번씩 설교할 때도 있는데 사람이 녹초가 됩니다. 월요일 날 진짜 죽어도 못 일어나겠는 것입니다. 저는 청교도 신학적으로 월요일 날 쉬는 거 반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못 쉽니다. 월요일 날 일정이 있어서. 게으름에 한대를 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서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이다.’ 그러고 벨이 울립니다. ‘아후. 그럼 힘들어요.’ 그러면 내 마음에 또 한 자아가 말합니다. ‘많이 힘들어?’ 내 마음에 다른 자아가 말합니다. ‘어. 힘들어. 많이 힘들어?’ ‘너무 힘들어. 맞고 일어날래? 순순히 일어날래? 주님은 어떠셨는지 생각해봐.’ 그러면 이제 충성 그러고 이불을 발길로 뻥 차고 벌떡 일어나서 그 전날 몇 시에 잤던지 새벽기도 내려갑니다. 그런데 그게 몸이 그것을 안 받혀 주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을 50대 중반이 넘어서야 겨우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제가 쓰는 글들은 예전에는 좀 번뜩번뜩 칼도 나오고 피도 나오고 했는데 요새는 인간을 깊이 이해하면서
(찬양) 우리 죄와 강팍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사십시오. 그러나 자기처럼 못사는 사람을 손가락질 하거나 열등한 사람으로 그렇게 하지 말고 연약한 걸 이해하고 그런데 진짜 게으른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으로 꾸짖고 가르치고 일으켜 세우면서 걸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게으름』이 목사님을 행복하게 해준 책이라면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책이 있다면?
목사님) 애착이 가지 않는 책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시집가서 장가가서 아기를 한 6-7명 낳고 아이들 중에 누가 제일 애착이 가냐 그러면 거기서 대답을 하면 나머지 애들이 얼마나 그렇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쓴 책 중에서 깊이 애착이 가는 책이 있다면 『영원 안에서 나를 찾다』 “GNOSCO ME IN AETERNITATE 노스코메인 아이떼르 라떼”라틴어 부제가 붙은 책입니다. 그 책은 제가 얼마나 걸렸을까요? 두 달 정도 걸렸을까요? 한 390페이지 정도 되나요? 어거스틴의 『고백록』 해설입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은 제가 120독정도 했습니다. 그래서 한창 때는 거의 완벽하게 외웠습니다. 전 권을. 성경도 120번을 못 읽었는데 계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책을 어마어마하게 연구하신 교수님들처럼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겠지만 교수님들보다 훨씬 다방면의 책을 읽었고요.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책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깜짝 놀랄 것입니다. 6만권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교 웬만한 도서관보다 훨씬 더 크고 클 뿐만 아니라 책이 신학교 도서관에서는 사기 어려운 그런 책들이 제 도서관에는 많이 있습니다. 저 혼자 노는 꽃밭입니다. 놀이터입니다. 그렇지만 자아가 태어나면서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쓴 사람은 진짜 천재다.’ 이런 사람은 한 사람도 못 만났습니다. ‘정말 머리가 좋고 뛰어난 수재다. 나하고 비교가 안 된다.’ 이렇게 생각했지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천재다.’ 이런 생각은 아무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한계는 인정합니다. 자연 과학에 대해서 깊은 지식을 안 갖고 있기 때문에 그쪽 방면에도 사람들이나 예술 방면의 책을 보면서 천재성을 몰라봤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보면서 이 사람은 천재다. 특히 인문이나 신학 쪽의 책을 보면서 그런 적은 없습니다. 제가 조나단 에드워즈를 존경하고 전 저작을 거의 다 읽었고 존 오웬도 존경해서 전 저작을 다 읽었고 칼빈도 마찬가지고 그랬지만 정말 뛰어난 분들이고 나는 그야말로 발 벗고 따라가도 못 따라갈 분들이다 그렇게만 생각했지 천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어거스틴.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어렸을 때도 읽었고 신대원 다닐 때도 한 번 읽었던 거 같은데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40대 중반에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다시 읽으면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게 아니라 사람의 위대한 지성의 크기 앞에. 그리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 이 사람은 천재입니다.” 두 번을 읽고 내가 승복을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어거스틴의 책을 탐독 했습니다. 거의 다 읽었을 것입니다. 250권정도 어거스틴이 썼는데 신국론을 포함해서 어떤 것들은 신국론처럼 길고 어떤 것들은 짧고 또 어떤 것들은 설교고 그렇습니다. 설교는 제가 다 읽었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거의 다 읽었다고 봅니다. 그걸 계기로 해서 플라톤 철학을 다시 공부하게 되었고 50이 넘어서 개인적으로 라틴어를 공부하는 도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에 관한 책들은 방대하게 소장을 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에 관한 학술지가 지난 한50년 동안에 20종류 정도가 나왔고 지금도 발간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 중요한 것들은 제가 40년치 정도의 모든 논문을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30년대 이후에 박사 논문 중에 중요한건 제 방에 다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렇게 어거스틴에 심취했고 나의 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이 아닐까 생각되고 교회 안에 어거스틴 파크를 만들어서 어거스틴에게 헌정할 정도로 그렇게 흠모하는 그래서 120번 정도를 읽고 그 동안에 제가 배운 여러 가지 것들로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해설한 것입니다. 해설 할 뿐만 아니라 어거스틴이 잘못 생각한 것을 바로 잡으면서 비평하면서 참된 기독교 신앙에서 어거스틴의 참된 언급에 의도를 어떤 것인가를 해서 anthology(선집, 문집)같이 100개의 명문을 뽑아서 라틴어를 다시 한글로 정확하게 번역을 하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논설하면서 한 꼭지에 4페이지 정도 되게끔 한 것입니다. 그 방면은 신학, 역사, 철학, 성경, 심리, 미학 이런 모든 다방면에 걸친 것들을 다 했습니다. 그 책을 사람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는데 어려운가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그러고 거기서 끝납니다. 잘 안됐습니다. 그 책이 저에게는 최근에 쓴 책 중에서 애착이 가는 책입니다. 한 2-3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산다는 것은』 그 책은 제가 인문학적인 큰 충격 속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한 구절을 가지고 450페이지 정도 썼습니다. 거기서 보면 다양한 인문학과의 만남을 여러분들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정도입니다.
질문) 목사님께서 쓰신 책들의 서명마다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코멘트가 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꾼’이나 ‘사명감의 표현’대신 ‘노예’라는 표현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목사님) 영어의 번역가운데 중대한 오역이 나온 게 특히 신약의 사도 바울 서신에서 “for the servant Jesus Christ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나옵니다. 종이라는 말이 영어로 “servant”입니다. 그런데 그게 오역입니다. 희랍어는 원래 “둘러스”라고 되어있습니다. “둘러스”는 servant가 아닙니다. 영어로 정확하게 말하면 “slave”입니다. slave와 servant는 다릅니다. 우리 옛날에 머슴 제도가 있었습니다. 머슴은 신분이 낮은 사람입니다. 주인집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그 머슴은 급료를 받았습니다. 그걸 세경이라고 부릅니다. “네가 우리 집에 와서 농사짓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머슴을 살아주면 가을에 곡식 걷이를 할 때 너에게 벼 다섯 섬을 주마.” 계약을 넣는 것입니다. 그러고 머슴을 하는 것입니다. 머슴은 하기 싫으면 떼려 칠 수 있는 것입니다. 떼려 치면 살길이 막막하니까 그 집에 가서 머슴을 하는 것입니다. 이건 고용관계입니다. 그 당시에 servant는 정당하게 급료를 받았고 하기 싫으면 사표를 낼 수도 있었고 심지어 출퇴근 하는 servant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slave는 고용의 개념이 아니라 소유입니다. 개 있지 않습니까? 요즘은 개를 너무 예뻐해서 거의 가족 수준으로 대하잖습니까? 옛날에 똥개 있다고 보십시오. 소유입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그래, 그럼 오늘 저녁에 잡을게.” 잡을 수 있는 게 소유입니다. 그게 노예입니다. 노예는 머슴살이를 하는데 장가를 가서 아기를 낳으면 당연히 그 아이는 신분적으로 그 주인집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결혼을 해도 내가 이 집에 머슴이지 내 아내는 이쪽하고 계약을 하지 않는 한 이 집 머슴이 아닙니다. 그런데 노예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그 집 소유입니다. 자기가 혹시 무슨 일이 생겨서 그 집을 떠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를 같이 나가게 해주느냐는 전적으로 주인의 권한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사람들이 번역할 때 킹 제임스 버전에서 그 탁월한 헬라어 전문가들이 slave라고 번역을 안 했느냐?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 영국은 최대의 노예 소비국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 노예를 사냥해서 잡아와서 쓴 것입니다. slave라는 단어를 차마 사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용하게 되면 자기 자신들이 양심에 너무 가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증해주는 게 나오는 게 제가 그걸 가지고 논문도 썼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17절에 보면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라고 나옵니다. 희랍어로 “스티그마타”입니다. “스티그마”라는 말은 그 당시에 노예들이 도망을 가면 노예를 잡아다가 어깨나 팔뚝 심한 사람은 이마에다 찍어 버렸다고 합니다. 자기 가문의 독특한 문장을 불에 달궈서 몸에 지져버리는 것입니다. 그거면 아무리 비누로 닦고 해도 문신보다도 더 깊이 살이 타서 새겨지니까 일평생 안 지워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스티그마”입니다. 노예의 흔적. 사도 바울이 그거를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육체에 남은 흔적이 아니라 자기 정신과 영혼 속에 나오는 그리스도 사랑의 흔적을 말한 것입니다. 어쨌든 그런 점에서 나는 그때도 한참 깊이 은혜 받았을 때 40대 초반에 “다 그런 거 필요 없다.” 그리고 지워버리고 결국 나는 “그리스도의 노예다. the slave Christ다.”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실 호가 아닙니다. 호는 지어준 사람도 있고 내가 가지고도 있었는데 다 버리고 나 자신의 identity는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하자.” 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질문) 담임 목사님의 입장에서 타 교회와 본 교회를 보았을 때 열린교회의 최대 장점과 최대 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과 기뻤던 것은 무엇인지?
목사님) 우선 뒷부분부터 답하면 사역에 있어서 즐거웠던 부분은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인생에 막장까지 내려가서 내가 생각해도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저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나고 새 사람이 되어서 어둠속에 있던 사람이 빛으로 걸어가는 삶을 살 때 형언할 수 없는 제일 큰 행복이었고 그것은 교회가 아주 작은 교회였을 때나 큰 교회였을 때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교회였을 때는 그게 다 제가 보이니까 지금 교회가 커지니까 그런 일을 제가 직접 못 보긴 하지만 듣고 심방하고 하면서 그런 것들이 저에게 제일 큰 기쁨이었고 어려움은 목회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웬만하면 하지 마라. 자네 정말 그 길을 가지마라.”
사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하고 짝을 이루는 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입니다. 그 책도 엄청나게 팔렸습니다. 히트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책이 학교에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총신학생들이 신대원 학생들이 얼마나 약았냐면 자기 신붓감을 대학에 가서 고릅니다. 그럼 나이 차이도 있고 그 다음에 싱싱한 젊은 자매들 중에서 찾습니다. 찾았는데 신앙이 별로 없으니까 “목사 아내가 될 텐데 신앙생활 좀 잘해라.” 그러면서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그 책을 준 것입니다. 자기도 안 읽고 준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님이 썼으니까 어련하려니 하고 준 것입니다. 그거 읽고 더 열심히 기도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한 두주동안 연락이 없는 것입니다. 만나자고 하더니 얼굴이 아주 초췌해져서 “내가 아무래도 전도사님하고 결혼 안 해야 될 거 같다.”고 그제 서야 ‘무슨 일인데 이걸 읽고 변했을까?’ 하고 가서 읽어보니까 ‘주면 안 되는 책이었다고.’ 그래서 이제 격언이 생겼는데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는 책은 연애시절 선물 금지 도서입니다. 그 대신 ‘결혼한 다음에 줘라.’ 어려운거라고 하는 것 자체가 목회자로 사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회가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데 물론 보람되는 때도 있지만 그러나 이번에 인터뷰를 하면서 똑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24년 전에 열린 교회를 개척하고 공식설교를 5,300번쯤 했더군요. 저는 설교 원고를 먼저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하고 원고가 나옵니다. 그 원고를 모두 다 가지고 있지만 결국 보람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저에게 “설교는 언제나 이국의 언어”이고 “목회는 원하지 않는 가슴앓이다.” 그래서 언젠가 목회가 끝나게 될 때 아쉽고 슬프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 됩니다.
우리 교회에 우선 팔불출인데 자기네 교회 이야기 하는 건 우리 교회는 장점을 말하기 보다는 다른 교회하고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일단은 신앙이 예배가 가장 중심에 와 있다는 거 그래서 예배 시간에 교인들이 다른 교회와 다르게 놀라운 집중력을 가지고 물론 그 중에는 게으른 교인들도 있지만 그러나 게으름에 있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는 탁월한 집중력으로 설교를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고하고 독서하고 그러는 교인들이 많다고 봅니다. 저희는 구역예배를 교인들이 3분의 2정도가 참여하고 있는데 3분의 1은 직장 다니고 지방에 있고 구조적으로 참석하기 어려운 사람들이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참석하게 되면 일단 1년에 경건서적과 신앙서적을 포함해서 4-5권정도 공부하게 되고 10년을 다니면 50권 정도를 읽고 공부하게 되고 구역장이 되면 더 많은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 혹시 여러분들이 아실지 모르지만 『죄와 은혜의 지배』라는 책을 2004년에 써서 기독교 출판 문학상을 받았는데 4번 받았습니다. 그 책이 굉장히 어려운 책이지만 최근에 쓴 『신학 공부 나는 이렇게 해왔다』650페이지 책이 나왔지만 그 책을 목차만 놓고 교인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교인들이 한 500명쯤 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는 지적인 기반들을 잘 만들려고 애를 써서 교회 도서관이 3개나 있습니다. 하나는 김남준 목사 도서관이고 거기에는 저만 들어가는 도서관입니다. 책이 제일 많고 그 다음에 교인들을 위한 도서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지금 5,000권정도 책이 있고 거기에 사서 한 사람이 있어서 언제든지 교인들이 와서 조용한 곳에 앉아서 독서도 할 수 있고 책도 빌려 볼 수 있고 교인들이 등록하면 자동으로 도서관에 명단이 올라가서 언제든지 책을 빌릴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어린이 도서관이 있습니다. 주일날 와서 거기에서 책을 보고 빌려 갈 수 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있고 청소년들 같은 경우하고 장년들 같은 경우 특히 청년들은 현대 문화에 대해서 없던 이해를 갖게 해주는 노력들을 많이 합니다. 최근에는 “공각 기동대”를 가지고 제가 2시간 동안 강의를 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뜨거운 시간을 가졌는데 그런 것들이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아닐까? 10년 정도 다니면 인문학에 대해서도 교회에서 꽤 많이 눈을 뜨게 될 거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단점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교회 자체가 공부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농담 삼아서 어떤 교인이 열린 교회는 이과 출신이 굉장히 신앙 생활하기가 힘들다. 그 정도입니다.
질문) 개인적으로 목사님이 동영상이나 책을 통해서 아우구스티누스 조나단 에드워즈의 공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신학적 주제라든지, 공부하고 있는 주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목사님) 공부를 하는 것, 그 다음에 가르치는 것 두 개가 내 평생의 일이었습니다. 공부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교수님은 훌륭한 학생이 만듭니다. 또 훌륭한 학생은 훌륭한 교수님 밑에서 태어납니다. 지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학생은 교수가 발전하는 원인이 되고 그런 자극을 줄 수 있는 교수에 의해서 학생들은 발전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아시다시피 교회가 크고 그러니까 할 일이 엄청나게 많고 외부에서 오는 요청도 많고 상당히 많은 부분을 거절하지만 한 몸 가지고 일을 하기에는 벅찰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살고 있습니다. 요즘에 읽고 있는 책은 근현대 유럽의 지정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벌써 70년대 이후로부터 케임브리지나 이런 학자들을 선두로 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런 것들에 대한 식견을 가져보려고 책을 읽고 있는 중이고 틈틈이 포스트 휴머니즘, 트랜스 휴머니즘 아까 이야기 했지만 공각 기동대에 나오는 것들이 포스트 휴머니즘, 트랜스 휴머니즘을 지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무엇인가? 쉽게 이야기 하면 공각기동대에서 나오는 것처럼 모코토가 기억이 모두 빼버리고 자기가 알고 있는 기억도 사실 칩을 집어넣은 거고 이렇게 되었을 때 자아란 무엇인가? 이런 묵직한 담론들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직 정보가 부족하시겠지만 외국에서는 이 논의들이 굉장히 심각하게 되고 있고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복제 인간이 나왔을 때 인간이 과연 영혼을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 봐야하는가? 그 다음에 복제 인간뿐만이 아니라 인간이 뭔가 모자라기 때문에 뇌를 가르고 뇌를 끄집어내고 기계 장치를 집어넣어서 인간처럼 움직이게 했을 때 그는 하나님을 믿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겠는가? 영혼은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많은 논의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요새 책을 읽으면서 식견을 넓히고 있는 중이고 신학적으로는 제가 South Africa에 초청을 받아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강의하고 왔지만 그런 거 있을 때 틈틈이 옛날 연구들을 또 돌아보고 하며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창 건강이 완성할 때는 제 방에서 저희 교회에서 월요일마다 스터디를 했는데 그 학생들이 70명 한 클래스에 15명 내지 20명 정도 모여서 공부를 했는데 시험 보고 들어와서 대부분 영어로 수업을 하게 되니까 예를 들면 한참 아침 7시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metaphysics 그 다음에 끝나고 나면 9시 반쯤 17세기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 이번에 그 사람 책이 번역된 거 아시죠? 꼭 구해서 읽어 보십시오. 좋은 책입니다. 물론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병수 교수가 그 변증신학을 번역했는데 그 책을 원서로 감독을 했고 2시 되면 중세 철학사 에띠엔느 질송(E. Gilson) 중세 철학사를 가르치고 저녁7시 되면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를 밤늦게 까지 공부했습니다. 주일날 하고 월요일 그 프로그램을 다 돌리고 화요일 날은 다시 또 일하고 그랬습니다. 지금은 그 정도는 못하고 한 클래스 정도 에드워즈에 대해서 공부를 해 왔고 이번에 11월 달에 다시 모집을 해서 20명이 같이 공부를 하게 됩니다. 주된 관심사는 언제나 신앙이지만 신앙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과거와 현재 그 다음에 미래에 대한 전망 이런 것들을 적절히 안배 하면서 공부해 나가야지만 한 쪽에 쏠리지 않는 사람이 될 거 같습니다.
질문) 사랑의 한마디
목사님) 어떻게 하면 훌륭한 그리스도인 그리고 좋은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다른 질문이 아니라 다 똑같은 질문입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은 훌륭한 목회자가 될 수 없고 훌륭한 목회자는 반드시 곧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 5가지를 말하겠습니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라.” 두 번째 “치열하게 기도하라.” 세 번째 “목숨을 걸고 공부하라.” 네 번째 “하나님과 모든 사람에게 신실하라.” 다섯 번째 “교회의 한 지체로 살아가라.” 어느 한 교회에 속해서 아픔과 기쁨을 지체들과 함께 나누며 그렇게 자기를 죽이며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배워라. 다섯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머지는 무슨 책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 책을 읽으시면서 주님을 깊이 만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