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한인목회자 세미나
녹취자: 정유선
그것이 없으면 신학이 아니라고 봅니다. 고통을 못 느끼면. 그래서 한 사람이 신학자가 되는 것은 독서하고 명상함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서 죽고 다시 태어남으로써 신학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어떤 힘들이 기독교의 힘을 형성하고 그게 뭐냐면 하나는 사상의 힘, 하나는 윤리의 힘 두 개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개만 사람들이 이야기하는데 그런데 두 개도 안합니다. 요새는 하도 한국교회가 개판이니까 윤리만 이야기합니다. 윤리가 사상에서 나오지 어디에서 나오냐 이겁니다. 그런데 이것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다른 데도 다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에는 필요한 게 뭐냐면 이 두 개를 가능하게 묶어주는 브릿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냐면 그라티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사상을 지성과 오성으로 배우고 그 다음에 그것을 철저하게 실천해서 올곧은 윤리로 나타내는 것이 사명인데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라티아,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역사할 때 그것을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피에타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정신적이고 영적인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결국은 사상과 연관을 갖고 마지막에 윤리와 연관을 가져서 그래서 통합적인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스티게트가 〈데오레티카 프락티카 데오로기아>라는 책 제 1권 첫 장에서 ‘독트리나 에스트비벤디 데오 베르크리스툼’이라고 얘기하잖습니까? 교리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것이 신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 목사란 누구냐 하면 한마디로 딱 잘라 이야기하면 divine wisdom을 아는 사람이고 divine wisdom이 뭐냐면 true philosophy입니다. 참된 철학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 두 가지를 예를 들자면 이성으로 접근한 철학과 그 다음에 성경에서 출발한 신학에 대한 답이 두 개가 일치를 이룬다고 본 사람도 있었고 일치를 이루지 않는다고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일치를 이루지 않는다고 보기 시작한 것들이 유명론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일어나고 두스스코트누스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데 그게 다른 진리라는 것이 아니라 소위 이야기하는 double truth 이론, 이중진리이론인데 그게 뭐냐면 진리를 설명하는 방식이 두 개가 다르다고 본 것입니다. 여기는 유비적이고 여기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철학이 참되다면 참된 종교가 충돌할 수 없고 종교가 참되다면 참된 철학에 대한 답을 주어야지 그것이 진정한 종교지 그것을 못주는 것은 진정한 종교가 아니다, 그것이 어거스틴이 초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직 플라톤주의자였지만, 그때 고민한 내용들이 바로 그런 내용들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통합적인 사고를 가지고 16세기 종교개혁자들 1725년 전까지 그러니까 튜레틴이 나올 때까지, 완전히 자유주의로 넘어가기 전까지 제네바 아카데미를 비롯해서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견지하고 있던 신학이 굉장히 우주적이고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그런 구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거인과 같은 아주 우주적인 신학이 지금은 아주 왜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화란에서 공부하는 유익은 그런 거인들을 접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오늘날의 화란의 spirituality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는 개혁파정통주의를 가르치고 여기에서 답습하는 방식도 여러분이 신뢰하기 어려운 측면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17세기 개혁파정통주의를 공부하는 세계적인 학자입니다. 나도 그 사람 논문과 책을 즐겨 읽고 그 분이 쓴 책을 거의 모두 가지고 있는데 최근에 웨스트민스터 세미나를 위해 체프 주에 교수하고 교분이 있는데 그래서 그분하고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교회 안다닌답니다. 개혁주의 공부하는데 교회 안다닌답니다. 그런 경우는 신앙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개혁주의입니다.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을 많이 하라 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신학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하셔야 됩니다. 지금 목사 된 처지에서 도스토예프스키나 러시아 문학에서도 보면 톨스토이는 판사의 시각에서 인생을 봤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수의 입장에서 인생을 봤고 고골리는 검찰의 입장에서 보고 안톤 체호프는 방청석에서 본 겁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그런 것을 다 읽을 수 없잖습니까? 목사가 됐는데. 그래서 안타까운 겁니다. 그래도 어떡하겠습니까? 넘어가잖습니까? 그래도 여기서 개혁주의 신학 한다고 17세기의 몇 개 자료, 논문 써야할 자료만 가지고 몸부림치다가 한 4~5년 보내고 오면 주변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방학 딱 하면 석 달에 100권정도 독파 목표를 세우고 쫙 쌓아놓고 한국의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나오고 있으니까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책들은 거의 다 번역이 돼있고 대단합니다. 그런 것들을 갖다 놓고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문학, 미술, 건축, 심지어 요리, 복식사 등등의 모든 책들을 놓고 자기 전공 이외의 것들이 무엇인가, 전공에 대한 인사이트도 비전공에서 나옵니다. 그러면서 공부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서 대화를 해보면 금방 압니다. 이 사람은 자기 논문 이외의 no nothing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면 그냥 그야말로 선생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선생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선생은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공부를 해나가야 됩니다. 그러고 확고한 성경에 입각한 자기 사상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면서 수천 번의 설교를 하면서 일관성 있는 신학, 물론 발전하지만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그런 지성의 근육들을 계속 발전시키고 그 다음에 목회를 해야 되는데 그런데 지금 목회하면서 공부하기가 쉽지 않고 목회 자리가 다 안 나잖습니까? 그러면 교사라도 하십시오. 영혼 때문에 심방도 다니고 전도도 하고 눈물을 흘리고 하는 것이 신학 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실천이 없이 신학을 하게 되면 나중에 사람이 영원히 그런 것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까 절대 그러지 말고 미국을 기준으로 보면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명한 신학자의 명단은 유명한 설교자의 명단이었습니다. 완전 same입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에 오면서부터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정말 여기에 있는 공부하는 기회를 잘 살려서 정말로 유익하게 그렇게 공부해야 되고 절대로 학위를 목표로 삼지 말고 이런 얘기하면 초치는지 모르겠지만 하다가 논문 못 끝내면 못 끝내지 내 인생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런 고민을 더 많이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목회자로 쓰시든지 뭘 쓰시든지 간에 목회밖에는 못할 사람이 돼서도 안 되고 학교밖에는 못 갈 사람이 돼서도 안 되고 어디에다 갖다 놔도 영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자기 자신을 치열하게 훈련하고 절대 한국에 있는 목회자들에다 레벨을 맞추지 말고 세계적으로 미국이나 외국에서 개혁신학을 가지고 영향력 있게 설교 사역을 하고 있는 그런 수준 높은 사람들을 자기의 목표로 놓고 신학생들도 한국에 있는 신학생들에 비해 내가 그래도 상당히 우월하게 여기에 와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여기 유럽에 있는 공부하는 신학생들에게 눈높이에 맞춰서 그런 사람들하고 자기 자신을 비교하면서 공부를 하려고 해야 합니다. 어차피 한번 태어났다가 살고 죽는 것인데 뭔가 있어야 되잖습니까? 공부하다가 한번쯤은 응급실에 실려가야 되잖습니까? 기도를 하다가 쓰러지든지, 전도하다가 엎드러지든지, 말하자면 사즉생의 정신으로. 그래서 스퍼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건강을 미리 생각하면서 자기 조절한다고 이러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데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죽도록 하나님을 위해 사십시오. 그러다 진짜 죽을 때가 되면 살려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살려주면 다시 또 그렇게 살고 그러다가 죽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치열하게. 아무거나 읽어도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책 몇 권 읽으면 그 소양이 갖춰지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고민을 해야 됩니다.
Q) 존 오웬과 조나단 에드워즈를 어떻게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까?
A) 존 오웬과 조나단 에드워즈는 시대가 하늘과 땅 차이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한 사람은 18세기를 살았고 한 사람은 17세기를 살았는데, 17세기는 여러분 알다시피 영국의 국교도에 의한 피비린내 나는 박해가 시작될 때였고 여기는 그런 게 문제가 아니라 계몽주의가 밀려온 때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시대 때는 미국에 천주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개혁신학의 통일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쓰나미처럼 이신론과 이미 존 오웬 시대 때에는 소키누스주의, 알미니우스주의, 카톨리시즘 그다음에 조나단 에드워즈 시대에는 알미니우스도 있었지만 알미니우스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계몽주의입니다. 유럽에서 한창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자유주의가 퍼질 때 어느 역사가의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600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그럴 정도로 어마어마한 계몽주의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나단 에드워즈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대표해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계몽주의 사조와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싸우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신학을 하는 범위나 이런 면에 있어서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박사 논문 쓸 때에는 전공을 하는데 한 사람을 일평생 팔로우어가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을 20년 내지 40년을 읽을 마음을 가지고 꾸준히, 그래서 그 사상을 전수해야 되는데 칼빈을 이야기해도 칼빈을 다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칼빈의 주석은 또 안 읽습니다. 그 다음에 칼빈의 논문도 안 읽고 편지는 더더욱 안 읽습니다. 그리고 칼빈이 미는 루터가 너무 주관주의로 빠져서 안 읽고 데자 이후로는 이성주의 때문에 안 읽고 쯔빙글리는 칼빈이 싫어했기 때문에 안 읽고 그리고 나머지 학자들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안 읽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외로운 섬 하나가 남는데 기독교 강요입니다. 그것도 초판은 안 읽고 최종판만 읽습니다. 그게 개혁신학의 유일한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알미니우스주의자인 아미로가 칼빈을 이용해서 극단적인 알미니우스적인 해석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공언하기를 역사상 내가 칼빈을 가장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고 칼빈주의자들은 칼빈을 비튼 사람들이다, 나를 믿어라 그럽니다. 그러니까 칼빈의 책 하나도 원천이기 때문에 칼빈이 전혀 동의하지 않는 해석을 그 안에서 끌어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신학을 할 때에는 역사적인 맥락에서 전체를 놓고 봐야 됩니다. 제일 먼저 신학을 할 때에는 칼빈을 공부한다 그러면 칼빈의 연대표부터 작성해서 시대별로 이 사람의 사상이 어떻게 내부적으로 변천했는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 놓고 그것을 먼저 고려를 하면서 칼빈을 읽어야지 여기서 하나 딱 집어서 칼빈 전체인 것처럼 이야기 하면 안 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읽을 때 그렇게 읽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공부를 하든지 역사 공부를 안 하고 하는 공부는 굉장히 독단적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야 됩니다. 기도 많이 하고 그래서 어쨌든 어디서든 여기 남든지 한국에 오든지 유용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서른한 살에 총신을 들어갔는데 바람같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박사 끝내면 사십대 중반쯤 되고 이것 좀 해볼까 저것 좀 해볼까, 이교회 가서 몇 년 있다가 그만두고 저 교회 가고 그렇게 두 번만 하면 오십대 중반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오라는 데도 없습니다. 그래서 심각하게 잘 생각하면서 자기가 공부에 정말 재능이 있는가, 그것을 진지하게 묻고 내가 사역을 할 때 중심축을 어디다 두고 사역을 할 것인가, 그렇게 고민하면서 아주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길을 가도록 그렇게 인생을 설계해야 됩니다. 그러나 공부를 죽을 때까지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여러분이 책을 모으고 책을 읽고 그것을 자기화 시키면서 그렇게 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소장하신 책들은 누구나 다 가서 읽을 수 있는 거지요?
A) 앞으로 박사 과정 이상 박사학위 소지자들과 교수에 대해서 일차로 개방을 하려고 합니다. 한 3년 정도 후에. 그리고 좀 더 시스템이 갖춰지면 지금은 신학교를 하나 할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학교는 M.Dv도 아니고 Th.M도 아니고 no degree 그리고 포스트세미나리 코스, 그러니까 대학을 나오고 M.Dv를 마친 사람에게 우리로 말하면 Th.M과 Ph.D 중간 정도에 있는 수준으로 한 4년 정도 월요일마다 수업을 하고 일 년에 두 주 정도 인텐시브 수업을 해서 인문학적인 토양과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했던 비슷한 방식으로 공부를 해서 통합된 사상을 가지고 세상을 읽고 설교를 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100억 이상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도서관만 해도 내가 보기에는 내가 은퇴할 때까지, 지금 1년에 2억씩 붓고 있는데 10년 하면 20억이고 -내가 20년은 살지 않겠습니까- 20년 한다고 하면 그것만 해도 40억이잖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가야 됩니다.
Q) 그런 것보다 오히려 총신대학교 총장으로 가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A) 이번에 총신대학교 총장으로 나를 불렀습니다. 전말이 어떻게 되냐면 작년 6월이었는데 재단이사회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나한테 정중하게 총장으로 와줄 수 있겠느냐, 나는 콧방귀도 안 뀌었습니다. 내가 지금 교회를 내버려두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교인들을 두고. 그리고 4년 끝나고 나봐야 그때 내 나이 62세인데 총장 하려면 양수겸장은 안 되잖습니까? 이건 사표 완전히 내야 되는데. 그래도 기도 많이 해서 학교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가서 내가 열린 교회에 다시 리턴 못하더라도 내가 한 4년 동안 매일 새벽기도 인도하고 이 학교를 완전히 엎어보자, 왜냐하면 나는 두려울 것도 없고 두 번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정치적인 세력이 나를 뒤에서 미는 것도 아니고 돈이야 내가 열린교회 은퇴하면 거기서 생활비 줄 텐데 내가 돈도 필요 없는 사람이고 그렇게 해서 한번 해보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더티하게 다른 교단도 있는데 안 되겠지만, 또 똑같이 예전에 되풀이 됐던 문제들이 총장 선거 과정에서 되풀이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적인 신념을 양보하지 않고는 내가 안 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나를 투표를 해서 총장을 세우기로 한 그것이 정치적인 것에 의해서 무산이 되고 연기가 되면서 내가 정리를 했습니다. 이것은 아니다, 그래서 깨끗이 정리하고 나는 다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교회를 떠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교회가 벌써 움직이기 시작하잖습니까? 그래서 걱정하지 마라, 내가 안갈 테니까, 그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지 안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지금 현재 요구하는 그런 스타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을 접으면서 총장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됐고 학교는 꾸준히 돕고 있고 앞으로도 총신이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많이 기도해야 되고 총신뿐만 아니라 대신, 합신, 고신 전부 다 올바르게 잘 되어야지요. 그래서 4월 6일 날 고신에 갑니다. 장학금도 가지고 책도 가지고 밥도 싸가지고 가서 섬기려고 하는데. 고민을 많이 하십시오.
Q) 도서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질문 드리고 싶은데 digitalization까지 같이 병행하고 계신다고 그랬는데 진행은 어느 정도 됐습니까?
A) 제가 확실하게는 모르겠는데 지금 현재 우리들이 모아 놓은 것이 나의 생각으로는 5만 타이틀 이상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니까 교부, 개혁자 정통주의, 종교개혁, 종교개혁 이후까지. 그 정도 가지고는 안 되고. 그러다 다 모아보면 그래도 10만 타이틀 이상 되면 오픈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그러면 그 전까지는 아직은 장서랑 자료랑 축적하시는 것입니까?
A) 축적하고 있고 지금 계속 개인 라이브러리 안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계속 책을 전 세계 사이트를 뒤지면서 일단 서지학적으로 사는 겁니다. 예를 들면 SMART시리즈가 있다고 하면 그 중에서 좋은 책 몇 권이 아니라 whole 카타로그를 completion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으면 다 있게. 그 시리즈 하나를 completion 하려면 대략 삼천만 원 정도 듭니다. 그런 것들을 이제 계속 완성해 가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평범한 사람들보다는 신학을 전문적으로 하려는 사람들의 도서관이 되겠지요. 책이 분실되고 그러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잘 유지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입니다. 그래서 좋은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와서 볼 수 있게. 교수님들은 가끔 와서 라이브러리에서 찾습니다. 없는 책들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공부하고 오면 스페이커르 교수님 장서가 다 넘어왔으니까 화란어 자료나 이런 것들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상당량이 구비되어서 아마 국내 도서관에 없는 것들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Q) 성서공회에 있는 성경 신학 자료들도 굉장히 빈약한 것 같은데요?.
A) 빈약합니다. 그래도 굉장히 칭찬해줄만한 시도를 한 것입니다. 그나마. 그래도 일단 박사논문은 성서신학에 관한 것은 거의 다 들어오잖습니까? 그 논문 구입비만 일 년에 오천만 원 정도 든다고 그럽니다. umi에서. 우리도 이제 최선을 다해서 구입을 하고 있고. 지금 사실은 공부환경이 안 되는 겁니다. 지금 하이델베르그 같은 데는 무제한으로 다운받게 열어 놨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umi 같은 데다가 돈을 얼마나 주는지 난 궁금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umi에서 한 권에 다운받는 데에만 거의 우리나라 돈으로 7만 원정도 되고 바운딩 된 것은 백 달러 정도 받거든요. 그런데 학생들이 무제한으로 다운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스템들을 갖추려면 사실 거기서는 내가 보기에는 1년에 몇 십억씩 줄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 인프라가 따라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우리 힘으로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우리는 ebbo는 접근이 가능하고 ecco는 내가 10만 불 달라고 하는 것을 2만 불로 깎아서 개인적으로 샀습니다. ecco는 지금 보고 있고. 이런 것들을 링크를 다 걸어서 우리 교회에서 지금 현재 외국에서 나온 박사논문 중에서 95%까지는 들어가 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제 나는 자료싸움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입니다.
Q) 예전에 개인적으로 한 번 메일을 보냈더니 ebbo를 개인한테 안 판다고 너무 비싸다고 합니다.
A) 아닙니다. 잘 얘기하면 팔긴 하는데 2억 6천만 원에서 2억 8천만 원 정도 나옵니다. 그것을 나한테 5천 5백만 원까지 흥정을 했는데 내가 안 샀습니다. 다른 데서 쓸 수 있는 방법을 내가 찾았습니다.
Q) 일단 카타로그라도 한번 공개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A) 카타로그는 굳이 우리로 안 들어와도 되고 그것을 제대로 하려면 키레타스 같은 기계를 갖다 놓고 그게 옛날 판본들을 걷어서 로봇칼이 움직이면서 찍거든요. 한 시간에 천이백 페이지가 스캔이 됩니다. 그 기계도 한 2억 6천만 원 달라고 그러는데 지금 굉장히 좋은 것이 뭐냐 하면 구글에 어마어마한 양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빨리 받아야 됩니다. 왜냐하면 올라오다가 싹 없어져버립니다. 그래서 빨리 받고 그 다음에 헨리미터 센터에 PRDR 들어가면 거기에 지금 상당히 많은 것들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먼로 교수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9만 타이틀이라고 합니다. 언제든지 없으면 자기한테 이야기하라고 언제든지 보내주겠다고 그러는데 뭐가 있는지 없는지 찾아보는 것도 나는 힘들고 직원들이 다 서칭해서 하고 매 분마다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일단 그런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시면 아마 거의 중복된 것도 많고. 그래서 난 자료는 많습니다. 이번에 먼로 교수가 이제이브릴 자회사에서 만든 아케이브 있잖습니까? 처음에 나왔을 때 이천사백만 원 정도 하던 건데 이번에 나한테 넘겨줬습니다. 지금 리더기하고 같이 가지고 왔는데 이제 마이크로피셔 보던 시대도 지났습니다. 지금 마니크로피셔 가지고 계셨는데 그 중에서 70% 이미 벌써 내가 책이 있는 것입니다. 오프라인 볼룸으로. 디지털이 아니라 실제 볼룸으로. 책 한 권 한 권. 이번에 북카누스도 내가 샀습니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값이 많이 나가는데 그래도 내가 의미 있게 여기고 계속 사가는 것은 이런 식으로 해서 박물관처럼이라도 소장을 해야지 사람들이 도전을 받고 공부를 하겠다 생각이 돼서 계속해서 구입해 가는데 여러분도 부지런히 고민을 하면서 유용한 시간을 보내십시오.
Q) 아까 말씀하셨던 궁극적으로 도서관 시스템이나 학교 시스템 같은 것들이 볼펜뷔텔에 언제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독일의 볼펜뷔텔이라고 세계 3대 고서 전문 도서관인데 마침 그렇게 해놨습니다. 전 세계에서 관심 있는 학자들이 오고 거기서 기숙도 하면서 연구할 수 있도록 해서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책을 직접 자기가 가져올 수 없고 한 시간 전에 신청을 하면 갖다 주고 하는 시스템인데 거기가 거의 대부분의 옛날 자료들이 원본으로 다 있습니다.
A) 그게 모두 디지털화 돼서 모든 원하는 사람이 거기에 접근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게 말하자면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인데 그런 노력을 해야 됩니다. 지금 도서관이 기본적으로 땅값이 너무 비싸고 건물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은 책을 대학에 갖다 줘도 안 받는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일단은 책이 들어오면 기본적으로 ebook하고 그냥 책하고 같이 들어와서 그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이 전부 다 거기에 ebook 형태로 존재를 해야 됩니다. 특히 옛날 책들의 경우에는 컴퓨터 가지고 들어가면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고 인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되고 장기적으로는 번역 시스템까지 들어와서 원하면 쭉 긁어서 툭 치면 한글로 뜨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결국은 학문적인 자극을 받고 그리고 학문의 폭도 넓어지게 됩니다. 한국 교회가 돈을 그런 데 써야 되는데 나같이 뜻이 있는 사람은 돈이 없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뜻이 없습니다. 다 엉뚱한 데에 씁니다. 총신 김인환 총장님 계실 때도 항상 말씀했습니다. “목사님, 10억 원 어치는 책을 사야 됩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신학교 중에서 내가 내 도서관을 유지하는데 쓰는 돈보다 많은 돈을 쓰는 학교가 거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영세합니다. 그러니까 발전이 안 됩니다. 건물만 지으려고 하지, 도서관 책을 보충했다는 것은 총장의 명예가 안 되잖습니까? (이렇게 마무리 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