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할 일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25:22-23)
녹취자: 김경애
우선 여기에는 주인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그래서 주석가들은 이 달란트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회 혹은 재능이라고 해석합니다. 여기에서 영어 ‘talent’ 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재능은 사람마다 다르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그것을 파 보았기 때문에 그것이 있는 것이 입증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발현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있는데도 재능을 그냥 묻히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재능은 해보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노래에 재능이 있어도 평생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자기가 노래에 재능이 있는 것을 알 리가 없고 글을 쓰는 재능이 있어도 훈련을 받아 보고 실제로 써보지 않는 한 그것이 있다는 것을 자기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놀랍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주실 때도 있지만 우리에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이끌어 내서 우리에게 남다른 삶을 살게 하시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떠날 때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는데 이 한 달란트가 굉장히 큰 돈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어떤 것을 맡겼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갖느냐하면 주인의 주권에 속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저런 달란트를,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정경화와 같은 그런 음악적 달란트를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뛰어난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 못한 것을, 그 대신 그 사람은 또 다른 달란트를 갖게끔 하셔서 하나님이 창조하십니다. 그런데 그 맡은 종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사실은 다섯 달란트를 맡은 종을 설교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나의 매력을 끄는 것은 두 달란트를 맡은 사람입니다. 나는 다섯 달란트를 맡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진짜 특별한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이고 나는 공감을 느끼는 것이 두 달란트입니다. 그런데 칭찬은 놀랍게도 거의 똑같습니다. 여기의 칭찬의 요지는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입니다. 첫째는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하였다는 것은 두 가지를 그 안에 내포하는데 첫째는 정성이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최선을 다할 수 없었다.’ ‘진짜 잘했다.’ 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기술에 있어서 최고의 기술을 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누군가에게 무엇을 시켰을 때 ‘정말 잘되었네!’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것을 충분히 충족시켰을 때 그런 말을 합니다. ‘야, 먹어봐! 밥 진짜 잘 되었다!’ 이것은 자기가 기대한 것만큼 혹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되었을 때 우리들이 잘되었다는 표현을 씁니다. 주인이 볼 때 잘했다고 인정해 주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이 절반은 보증이 됩니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일을 맡긴 그 사람이 ‘진짜 걔 잘한다.’ 정성에 있어서 마음을 기울인 사람이고 기술에 있어서 그만큼 따라갈 만한 사람이 없다. 이렇게 인정을 받게 되면 그 사람의 앞길은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 주인은 하나님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볼 때 우리가 너무 잘합니다. 정성도 최선을 드렸고 최대한의 정성을 드렸고 기술도 뛰어나서 너무 잘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의 앞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돈을 많이 주실지 지위를 높여 주실지 그것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사실은 하나님이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당신이 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히 당신의 영광도 받게 하시고 인정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실장으로 지내던 사람도 있고 팀장도 있고 팀장들에게는 팀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지도자로서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어쩌면 이렇게 마음에 안 듭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일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그 사람의 인간성이나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일은 하려고 거기에 사람을 놨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자기 일을 잘해내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일을 잘못하면 좀 도와주고 내 일이 아닌데도 가서 해줄 수 있지만 그것을 365일 동안 항상 그렇게 살수는 없습니다. 여기가 무슨 복지기관도 아니고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가장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사역을 하는 길은 자기 몫을 충분히 해내서 그 사람이 그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잘 해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다가 자기는 팀장도 아니지만 아르바이트 하는 학생을 데리고 일해 보면 아 쟤는 어떻게든 설득해서 다음에는 꼭 해야겠다는 것이 있으면 ‘내가 왜 쟤하고 왜 1년을 약속했지? 6개월만 약속할 걸…….’ 그런 사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 하면 어디에 있든지 떠나겠다고 할 때 말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가 인생을 살면서 자존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비결입니다. 가정에서도 자기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자기가 제일 높이 올라가는 것 말고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내 이야기를 해서 너무 미안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체국장을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마지막에 있던 직전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승진해서 그리로 가고 승진하고 3, 4개월 있다가 사표를 냈습니다. 그랬는데 정확하게 5년 동안 직원들이 집을 찾아왔습니다. 꽤 멀었습니다. 직장부터 거기까지 오려면 지하철로 열댓 정거를 타고 와서 한참을 걸어야 합니다. 왜? 그 사람들이 내가 보고 싶어서 왔겠습니까? 다 업무적인 것 때문에 나를 찾아왔습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이것입니다. 세월이 지나서 여러분들이 떠나고 다른 사람이 왔을 때 여러분들이 그리운 사람들이 되는 것 그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해야 합니다. 너무 할 이야기가 많고 나는 이것 가지고 세 시간을 설교하라고 해도 할 수 있지만 왜 그것이 중요한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두호가 와서 영상을 만들 때 혼자는 못하고 이 부서, 저 부서 도움을 받고 협의를 하고 그 다음에 남의 도움을 받으려면 평소에 자기도 도와주어야 하고 등등 하면서 해 나가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영상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두호 형제가 몇 년 후에 외제 차 세일즈맨이 되었다고 칩시다.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되었다고 칩시다. 품목만 영상에서 외제차로, 무대가 교회에서 사회로 바뀌었지만 작동하는 원리는 똑같습니다. 이것을 만들 때 영상을 만들면서 사람에게 호감을 주었던 사람은 벤츠를 팔아도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이것을 만들 때 외톨이가 되었던 사람은 비행기를 팔 때도 외톨이가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일을 잘하기 위해서 애를 썼던 그 정신은 무슨 일을 하든지 노하우가 되기 때문에 비유를 하자면 여러분들은 지금 특히 젊은 여러분들은 기계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시간과 물질이라는 것을 집어넣어서 인생이라는 기계를 돌려서 여기에서 결과물들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는 사람은 하고 못하는 사람은 못합니다.
차병원에 갔는데 황당했습니다. 병원에 사무총장이 왔는데 병원장입니다. 뭐라고 합니까? 병원장이 진짜 오너인 차 씨가 있고 그 사람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니까 밑에 병원을 맡기는데 이사장은 아닙니다. 병원을 직접 움직이는 CEO입니다. 병원이니까 당연히 의사가 해야 하는데 호텔의 지배인을 부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이야기가 자기를 불러서 이사장이 차병원의 CEO를 제시했을 때 너무 황당했답니다. 그런데 설명을 하는 것을 보니까 이해가 되었습니다. 왜? 병을 고치는 것은 어차피 의사가 합니다. 그런데 의사들은 어떻게 고객을 친절하게 해야 할지를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아는 사람이 혹시 있다고 하더라고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병원의 최고 책임자를 맡기고 이 사람을 병원 전체를 보는 것을 의료는 의료담당 부원장이 하고, 병원 전체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을 고객만족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병원보다 좀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훨씬 낫습니다. 내가 보증할 수 있는데 훨씬 낫습니다.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A라는 일을 잘 못했던 사람은 일을 B도 바꾸어도 못하고 장소가 α이었는데 β로 환경을 옮겨도 못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자기보다 훨씬 더 수준도 있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 속에서 일을 하면 자기가 일을 잘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그룹은 그 사람을 원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수준의 사람을 원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까? 잘하는 사람들만 자기가 발전을 하는 것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를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운동을 합니다. 운동을 하면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은 해 뜨기 전에 나가서 일을 하고 튼튼합니다. 그러나 서서 걸어가는 것을 보면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사람하고 밭일을 해서 운동을 한 사람하고는 체형 자체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일을 할 때에 그 일을 자기가 어떤 자세로 일을 하는가 하는 것은 일의 성과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운동은 운동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 쓰던 근육을 쓰려고 애를 쓸 때에 고통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 전 요셉 전도사의 표현에 의하면 근육이 발달되는 것은 근육이 찢어지는 것이랍니다. 찢어지면서 거기서 단백질 같은 물질이 나오면서 근육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잘하는 것은 내가 잘한다는 것이 아니라 못해 봤던 것에 도전하고 이것이 신경 쓰는 것이나 힘을 쓰는 것이 찢어지는 것처럼 통증을 느끼면서 잘할 때에 능력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력이 떨어지고 생각이 나지 않고 심지어 어떤 때는 여러분들의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얼굴은 또렷한데 이두호인가? 김두호인가? 왔다 갔다 합니다. 여러분만할 때는 나도 안 그랬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렇게 됩니다. 능력이 많이 발전되는 것은 저축 잔고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젊을 때 그런 일하는 자세들이 잘되어 있어서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병원에서 행정을 잘하는 사람은 학교에 데려다 놓아도 잘하고, 학교에서 잘하는 사람은 가락시장에 갖다 놓아도 잘합니다. 못하는 사람은 못합니다. 그런 것들이 능력은 자신의 잔고처럼 되어 있어서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쓰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잘하려고 할 때 거기에서 인생의 결과물들이 나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늘 내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일을 만듭니다. 그래서 잘하려고 애를 쓰면 사람이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직장에서 자존감도 잃고 자신의 운명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과는 상관없이 주변의 변수에 의해서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너무 부끄러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대해서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일을 할 때 잘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착하다는 것은 그냥 무골호인처럼 우리가 어저께 본 동영상에서 무조건 수용형구역장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보면 20여 년 전부터 내가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일은 네모지게 그리고 마음은 둥글게’ 마음은 둥글고 일은 네모지게 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둥근 사람은 대부분 일도 둥급니다. 그리고 일을 각 지게 하는 사람은 성격도 까칠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인생의 숙제입니다. 그래서 일은 아주 각지고 네모지게 하면서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모포를 접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각 지게 하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둥근 마음이 되어 있어서 그래서 누구나 이렇게 밥 먹고 싶은 사람이 되고,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그래서 사람 자신으로서 매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냐 하면 겸손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화가 서로 달라도 이것이 놀랍게 소통하게 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겸손입니다. 그래서 저기 미국사람부터 시작해서 동양 사람을 거쳐서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남이 가르치는 것을 계속해서 듣고만 있을 사람을 없습니다. 그러면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고 배우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을 문화와 상관없이 모든 나라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때로는 인간관계 속에서 약간 부딪히는 것이 있어도 곧바로 거기에 대해서 복수하듯이 똑같이 하면 그 사람이 인격적인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런 사람을 보고 부딪치는 것을 보면서 ‘아 나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이 이렇게 상하고 따가우니 나도 참 안 다듬어진 부분이 많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남이 잘 못 지내는 까다로운 사람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에게 아부하고 편을 들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조차도 나에게는 이상하게 다가오고 싶은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과는 소통이 안 되어도 그 사람과는 소통할 수 있는 그러한 인간관계에 폭넓은 적응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일을 참 잘해!’ 하며 감동을 받는 것은 거기까지지만 ‘사람이 참 착해!’ 그 이야기는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잘할 뿐만 아니라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도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아니고 평신도들 속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느 교구에서 일을 너무 잘하는 사람이 나온 것입니다. 일을 너무 잘합니다. 그러니까 맡겨 놓으면 돌파해서 해내고야 마는 것입니다. 한번 행사를 치르고 나면 일을 안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것입니다. 외롭게 일을 해야 합니다. ‘소인배는 큰일을 하고 나면 적들이 많이 생기고 군자는 큰일을 하고 나면 동지들이 많이 생긴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 일을 해낼 뿐만 아니라 일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사람을 세우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관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을 세우는 사람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어디에 가든지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을 잘하는 것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정미처럼 밥 먹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승현 자매처럼 힘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열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착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격려를 받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 될 때에 여러분들이 무엇을 한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누구는 결혼을 하면 굉장히 못보고 교회를 떠난 지 몇 년이 된 사람들도 몰려오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그것이 그 사람의 인간성 하나만 가지고 결정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쁜 일이 있을 때 자기와 공감해줄 수 있는 것은 많은 씨앗을 뿌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첫째는 잘하라. 둘째는 착한 사람이 되라.
마지막 세 번째는 ‘충성된 종아!’ 라고 부르시는데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충성된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잘하는 것도 중요하고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을 움직이는 원리가 하나님 사랑이어야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충성스러울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다 나타납니다. 표현하지 않아도 정말 저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 일을 하는지 나타납니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우리 마음먹은 대로 안 되고 여러분들이 일을 하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분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여러분들을 도와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고 심지어는 여러분들을 돕는 사람들 가운데 내 마음을 몰라주고 때로는 비난하고 혹은 배신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무엇이냐 하면 신앙입니다. ‘내가 하나님 때문에 잘하고 싶다.’ ‘내가 하나님 때문에 더 많은 기술을 배우고 싶다.’ ‘하나님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일에 맞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나님 때문에 사람들에게 착하고 그리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그 모든 것을 예를 들자면 잘하는 것이 앞바퀴이고 그래서 한쪽이 기술이 뛰어난 것이고 마음을 다하는 것이라면 그 다음에 착한 것은 인간관계이고 그 사람의 성품이라면 이것을 움직이는 엔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이런 신앙으로 내가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부르심이 있어서 이 길을 간다고 믿기 때문에 혹시 어려움이 생기면 그것을 신앙으로 극복하면서 못하던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사람들 사이에 어려움이 오면 자신의 인격을 성숙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첫날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에 이상한 것은 우리가 일하고 있는 우선순위가 기도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 큰 모순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개인적으로나 많이 신경 쓰는 것이 기도제목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데 이럴 때 그 사람이 부패한 것입니다. 신경을 많이 쓰는 일이 있는데 기도할 수 없는 제목일 때 예를 들어서 내가 세속적인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우리가 기도할 때 그것이 최고의 기도제목이 될 수 없는 것은 너무 분명합니다. 그런데서 신앙의 모순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신앙의 생활의 힘찬 생활 열렬한 은혜생활은 삶과 자신의 기도제목이 일치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기도와 삶이 미스매치 될 때에는 기도를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지를 묻는 것과 함께 삶의 우선순위에 모순이 없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열렬히 기도할 수 있는 것이 말하자면 가장 위로 올라오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은혜에서 미끄러지면 이 두 개가 완전히 찢어져서 따로 놀뿐만이 아니라 아예 이쪽 기도 쪽은 작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를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신앙입니다.
그래서 내가 늘 이야기하는 것이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열렬히 설교해도 내 마음은 그 은혜에 젖지 않을 수도 있고 설교방송을 내보내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는데 돌리고 있는 나는 그냥 기계 쟁이 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런 점에서 매우 익숙해지기 쉬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아무도 성희롱 당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누구도 담배 심부름을 하거나 아시아나 항공처럼 그렇게 강요당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그래서 사실은 우리의 기도가 약화되는 면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을 끊임없이 접하고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하면서 내 신앙을 지켜야겠다는 이런 몸부림들이 직장 생활 속에서 분명히 있고 괴로움도 있는데 그런 것들에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가 열렬히 신앙생활하려고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앙이 잘 자랄 수 있는 좋은 환경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내려놓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는 상황일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의 문제가 우리 어렸을 때는 온 세상이 다 지저분했습니다. 그래서 질병도 많았지만 또 아이들이 면역력도 강했습니다. 아이들은 흙을 먹으면서 키워한다고 돌 지난 애들이 땅바닥에서 노는 것을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러다가는 큰일 납니다. 완전히 무균 속에서 삽니다. 면역력이 떨어집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면 사실 이런 좋은 환경 속에서 살지만 성찰을 하고 들어가 보면 사실 불신자들이 모여 사는 직장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없을 그런 기도제목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여러분들이 무슨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담배 만드는 KT&G에 다닌다고 하면 여러분들이 담배가 많이 팔리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에 다니면 책이 많이 팔리게 해달라고 설교가 많은 사람들이 청취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일매일 하는 일이 새로운 연예편지처럼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연애할 때 편지 50통을 보냈다면 ‘이 글쓰기가 뭐이래? 만날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야?’ 연애편지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마찬가지로 주님을 사랑하면 매일 매일 똑같은 일이 되풀이 되어도 판박이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새로운 빛깔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일이 그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것을 만듭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 속에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첫째는 잘 하는 사람, 잘하라! 두 번째는 착하라! 세 번째는 충성된 사람이 되라! 여러분들이 말씀을 붙들고 다음 6개월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