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섬긴 예수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눅 7:36-38)
녹취자: 이경순
바리새인은 당시 종교지도자였기 때문에 예수님을 초청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너도 예수와 한패지?”하는 비난을 받으면 그 사회에서 발 부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왜 이 사람이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초청했을까요? 밥을 함께 먹는다고 하는 것은 형제가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그냥 예수님을 한번 집에 모셨을 리는 없습니다. 그럼 이 사람은 신분은 바리새인이지만 예수님께로부터 병 고침을 받았든지 혹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뭔가 심중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집에 초청했고 그랬으니까 예수님이 이집에 가셨지 밥 한 끼 잡수시려고 초청에 응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식사를 하고 계실 때 초대받지 않은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누구였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 여자에 대해서 성경이 계속 말하고 있는 것은 죄를 많이 지은 여자, 뒤에 데나리온의 비유로 추측해볼 때 작은 죄를 많이 지은 여자가 아니라 큰 죄를 지은 여자입니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이 조심스럽게 아마 이 여자가 어쩌면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비참하게 여기는 두 종류의 사람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남자는 세리이고 여자는 창기입니다. 술을 팔면서 몸을 파는 사람입니다. 특히 이 세리는 세금을 거둘 때에 자신의 생활비까지 거둬야하기 때문에 항상 가렴주구가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사람이라고 더럽게 여겼고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의 남자들과 성적인 관계를 갖는 사람은 개돼지만도 못하게 여겼습니다. 확정지을 수는 없지만 이렇게 많은 죄, 큰 죄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에 이 여자가 그런 더러운 직업에 종사하던 여인이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여자가 초대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집에서 식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이 만남이 예수님과의 첫 번째 만남으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그 이전에 틀림없이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거나 혹은 먼발치에서나마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께 올 때에 첫째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왔고 두 번째는 자신의 손에 향유 옥합을 들고 왔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향유는 향료로 사용되고 약으로도 사용되던 것인데 그 당시 향유는 오늘날의 향수와는 달리 오늘날의 금처럼 재산을 축적하는 수단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시장에 들고나가면 언제든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소위 경제학적인 유동성이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향유를 들고 왔는데 그냥 인사치레로 들고 왔음이 아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이 향유를 가지고 아마도 이 여자는 그런 천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언젠가는 이러한 수치스런 삶을 청산하고 시골에 가서 땅을 사거나 요즘말로하면 개인택시라도 얻거나 혹은 가게라도 내어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재산을 축적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니 이 여자에게 있어서 이 향유는 어쩌면 가장 소중한 자신의 재산목록 1호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진짜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게 되니까 그 담에 이 향유는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가 이제는 이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제일 소중하신분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 이것을 부어서 섬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사랑의 대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것들을 사랑하고 이것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이제는 그것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사랑하게 되는 것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들은 그 사랑에 의해서 모두 다 재편 되는 그것이 구원을 얻은 사람의 진정한 표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이 무더위에 와서 이렇게 앉아있는 이유는 비교적 시설이 좋고 편안한 수련회를 하고 있으나 그래도 여러분들이 여기에 앉아있는 이유는 이제 것 살아오던 여러분들의 삶의 장식품 하나를 얹어놓기 위해서 여기에 모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예전에 사랑하던 것들은 우리가 마땅히 사랑해야 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사랑합니까? 노래, 세상의 문화, 특히 우리 남학생들은 게임 그리고 옷, 장식품, 화장품,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아무리 사랑해도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사랑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두 가지 대상을 가집니다. 하나는 우리가 사랑해야할 대상, 두 번째는 우리가 사용해야할 대상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진짜 진심으로 그것을 좋아하고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한 대상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에 붙어 있으려고 하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의 작용입니다. 그 사랑해야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고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이외의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없습니다. 그럼 나머지들은 사용하는 것들입니다. 사용하는 것은 그것을 사용해서 사랑에 도움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그게 바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사용해야할 것은 사랑하고 사랑해야할 것은 사용하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지만 진정으로 자기가 깨뜨려지는 기도 하나님 앞에 자기를 부인하는 기도가 없고 따라서 회개가 없고 그냥 자기 가는 길에 하나님이 나 가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시고 계속 후원만 해 달라고 하는 기도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전에 하나님 아닌 것들을 사랑해서 불행해진 우리들을 바꾸어서 하나님 사랑하게 만드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이 여자는 비록 비참하고 더러운 여자였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그 말씀의 은혜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된 여자입니다. 그 사랑을 주체할 수 없어서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가져와서 그것을 깨뜨려서 식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부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이 여자에게 가장 커다란 재산이었습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 부어버린 것입니다. 그럼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한번 이것은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은 꼭 지켜야할 것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그것이 죽음의 순간에 그 때에도 변하지 않을 만큼 값어치 있는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지 않으면 지금 방황하는 여러분들이 20대에도 똑같이 방황하고 30대에도 방황하고 40대에도 50대에도 방황하고 아니면 포기하고 그리고 살든지 그렇게 살고 싶으세요? 아무것에도 진지해지지 않는 사람 그리고 먹고 쓰고 즐기고 놀고 하는 것으로 충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혼을 주셨습니다. 그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그 영혼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여러분 마음대로 살아가면 영혼은 이 안에서 끊임없는 고통을 당합니다.
여러분들이 잠시 침묵하고 눈을 조용히 감고 여러분들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면 그 영혼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단은 철저히 여러분들의 마음을 어지럽혀서 그런 것을 생각을 안 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짐승처럼 살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미있는 게임하면 깔깔거리고 웃고 아이돌 가수 노래 부르면서 즐거워하고 맛있는 것 먹으면 좋아하고 친구들 만나서 웃고 떠들고 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인간이 살아야할 삶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행복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두 넘어서는 어떤 하나의 인생의 목표에 대한 생각을 가져야 됩니다. 여러분 모두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천연 기념물입니다. 과거에도 없고 지금도 아무도 없고 여러분들이 죽은 이후에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은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의 인생은 남이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사는 것입니다. 그 온 우주에 한줄기 빛을 그리면서 살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그렇게 천재가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그렇게 노래를 하면 그 뛰어난 가수들처럼 되겠습니까? 우리가 운동을 하면 수십만 명중에 한두 명 나올만한 그런 금메달리스트들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을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내 인생이고 나의 인생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그 사람보다 내 인생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아무도 내 인생을 살수 없고 나만 내 인생을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내 이름으로 내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어서 단 한번 영원히 한 사람만 내 인생을 살 수 있는데 그 사람이 나 자신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무엇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유품을 단 한 개 남겨 여러분에게 준다면 여러분은 일평생 그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남기신 것이 작은 반지입니다. 감정을 해보니 금도 아니고 합금입니다. 이 세상에는 금반지, 백금반지, 그보다 더 좋은 다이아몬드 수없이 많은 반지하나에 수십억 하는 것이 있어도 여러분들은 결코 그것과 바꾸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왜냐하면 엄마가 나에게 남겨준 유일한 유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그런 사람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이렇게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에도 인생은 흘러갑니다. 그리고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꽃다웠던 여러분들은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고 그리고 나중에는 자기 기력으로 일어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서 영원한 세계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있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시는 것일까요? 왜 그렇게 우리에게 섬김을 받고 싶어 하실까? 하나님이 만약에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아야지만 겨우 행복해질 수 있는 분이라면 하나님이실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가지신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성경만 열면 하나님은 너희는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고린도후서 16장에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렇게 악담과 같은 말까지 퍼붓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기억해야할 것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사랑받아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절히 여러분보고 하나님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해야지만 여러분들이 비로소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당신 사랑하라고 부르시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고 여러분들의 육체를 사랑하면 때로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징벌하셔서 라도 여러분들이 후회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당신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비록 비참한 사람이었고 큰 죄를 지은 여인이었고 많은 죄를 지은 여자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그러면 두 번째 왜 이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이 여자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용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죄가 사하여 졌느니라. 이유는 이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한 이유는 예수그리스에게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 못나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위대한 인물들은 단 한사람도 예외 없이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죄의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경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일반적인 복이고 하나는 특별한 복입니다. 일반적인 복은 여러분들을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고 좋은 엄마 아빠를 만나게 해주시고 좋은 학교를 다니게 해 주시고 착한 남자친구를 만나고 결혼을 하게 해 주시고 등등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모두 사물의 질서를 움직여서 여러분들에게 간접적으로 유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복은 하나님이 직접 여러분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서 영혼을 변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 영혼의 변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오지만 그 결과는 항상 똑같으니 예전에 사랑하던 것들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 인생의 모든 질서를 다시 재편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것까지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지 못했다면 여러분들의 살아가는 인생의 틀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주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삶의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야구선수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공을 던지는 투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선수가 자기 스스로 수술을 받아서 손가락을 더 깊이 찢었습니다. 사람들 보기에는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는 너무 기뻐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비로소 내가 원하는 공을 던질 수 있도록 적합한 손가락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만약에 누군가 여러분들에게 손 가져와라 두 번째 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 사이를 2센티를 찢어주마 그러면 아마 네가 동네야구를 잘할 수 있을 거야 할 때 저요 하고 손 들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은 야구를 그 사람만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만약에 우리가 사랑의 대상이 바뀌게 되면 그 바뀐 대로 우리의 삶의 모든 구조들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주체에 대한 자각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아 이제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가야하는구나 신앙 좋은 엄마 돈 많은 우리아빠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결코 아니구나. 그것을 느끼면서 내가 어떻게 내 인생의 주체가 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할 힘이 사랑에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바로 나를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창조하시고 그리고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서 죄짓고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다가 죽을 사람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나를 구원하셨구나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마음속에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했던 것들은 너무 헛된 것이었고 그리고 잠시 있다 사라질 것들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고 높은 표준을 가져야지만 변화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공부를 할 때에도 자기보다 공부를 못한 친구들만 생각해서는 발전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에서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를 보고 그리고 그들을 기준으로 삼아서 공부의 목표를 정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공부가 아니라 어떤 또 다른 건전한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세상에 있는 것들을 가지고 말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그런 것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예배를 드리는 태도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난 이렇게 움직이고 산만한 청소년들에게 설교한 적이 없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이렇게 설교를 듣지는 않았습니다. 지나간 이야기를 하나 하면 여러분들에게 비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8년 전쯤에 저는 여러분과 같은 중고등학생들에게 설교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학생들에게 2년 정도 설교하고 고등학생들에게 설교했습니다. 여러분하고 똑같았습니다. 제가 설교하러 올라간 날 너무 산만해서 30분을 설교할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 보세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설교합니다. 그럼 마음속에서 끌어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산만하니까 이 속에서 끌어내어지지를 않아요. 똑같았습니다. 심지어 예배시간에 비행기를 접어서 날렸습니다. 그래서 내가 야단을 쳤습니다. 야단을 치면 새로운 전도사님을 그들이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데 그 무슨 태도입니까? 거기 하나님 없습니다. 괜히 쓸데없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기 왜 오겠습니까? 시장바닥 같고 게임하는 것만큼도 몰두를 하지 않는데 거기 왜 오십니까? 솔직히 얘기해서 그래서 토요일마다 밤을 새워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형제자매들을 변화시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일이 정말 일어났습니다. 놀랍게 주님을 만나고 수많은 학생들이 회심하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것을 이야기 합니다. 놀라지 마세요. 매주일 180분 설교했습니다. 3시간했습니다. 아무도 안 움직였습니다. 3시간을 설교하는데 그럼 화장실은 어떻게 합니까? 90분 듣고 10분 화장실 갔다 와서 두 번째 설교를 들었습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석고를 깎아놓은 것 같았습니다. 안경을 들면 잘 보입니다. 이렇게 안경을 든 채 90분을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태도로 예배를 드리려면 겨울수련회부터 오지 말고 집에서 수학문제 한 문제라도 푸세요. 하나님 못 만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렇게 요렇게 비껴가면서 다 만나주고 그런 사람을 피해가십니다. 뺑 돌려서 형 언니 누나들이 주님 만나고 완전히 변화되었는데 가운데 있는 아이는 어름 짱 같이 돌아갑니다. 두렵지 않습니까?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에 해 주실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일 두 가지는 죄에 대해서 회개하는 일과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천년 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그것이 나의 죄를 위해 죽었다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180분 동안 아무도 안 움직입니다. 똑바로 꼿꼿이 앉아서 설교를 듣고 집에 가서는 그날 들은 설교를 완벽하게 복구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기도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하루에 20분 이상 기도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마지막으로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였습니까?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냐면 예내들은 선생님 안 나오는 것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공과공부를 안하고 집에 가니까, 선생님이 안 나오면 당연히 아프셨나? 사고가 났나?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을 해야 하는데 선생님이 못나오셨습니다. 이야기하면 환호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애들이 놀랍게 변화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도 기억이 또렷이 나는데 12명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돌아가면서 성경을 읽으면서 한 사람씩 한사람씩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 중에 한 아이의 기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학생이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하나님 우리선생님이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되도록 도와주세요. 선생님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보니까 자기의 선생님이 그렇게 주님을 깊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아이의 마음에 느껴진 것입니다. 그리고는 기도가 온 교회를 덮는 것입니다.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수련회에 참석하고 예배에 나오고 엄마아빠가 용돈 안 준다고 협박해서 할 수 없이 예배에 참석하고 이런 사람들이 진짜 변화되는 영혼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영혼의 변화는 분위기나 혹은 사람이 많이 모인 데에 따라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고 마음을 주님께 모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데에서 주님과 만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주 좋은 비유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여러분들이 그런 것 가지고 놀지 않지만 옛날 아이들은 장난감도 없고 비디오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할아버지 돋보기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겨울에 돋보기를 비취면 초점이 모아집니다. 뭐든지 탑니다. 먹지도 타고 심지어는 나무책상 붙들고 있으면 연기가 나기 시작합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의 초점을 하나님께로 모으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이렇게 산만하게 예배를 드리면 여러분들이 수십 번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모여도 마음은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죄를 큰 죄를 많은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내가 무슨 신문에 날만한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학교에서 정학을 맞을 만한 일도 한 것도 아닌데 그러나 여러분 죄는 크기도 문제이지만 큰 죄나 작은 죄나 죄는 모두 그 품질이 똑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이 여자는 굉장히 크고 많은 죄를 지어서 정말 슬프고 비천한 인생을 살다가 진리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때에 이 여자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요? 아무도 자기를 사람처럼 여겨주지 않았을 이 여자에게 최초로 하나님이 이 여자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여자의 죄를 용서해주셨을 때 이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소중한 분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모든 사람에 의해 버림받은 인생을 살던 이 여자에게 단 한분이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이여자의 병든 영혼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죄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여러분들의 많은 죄를 큰 죄를 진심으로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여자에게 말씀해 주시고 이 여자를 만나주셨더니 이 여자는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최상의 것을 드리는 섬김인 동시에 눈물이 있는 섬김이었습니다. 눈물은 거짓으로 흘리는 눈물일수가 없습니다. 배우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어떻게 그렇게 사실도 아닌 장면에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눈물이 쏟아질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들의 공통된 답변은 감정이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자기들도 눈물이 나지 않는답니다. 그래서 너무 감정조절이 안되면 안약을 넣고서라도 연기를 하는데 대부분 탁월한 배우들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그 시나리오에서 나오는 장면 속으로 몰입되어 가서 자신이 그 비참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가짜 눈물이 아니라 진정한 눈물이 쏟아져 나온답니다. 그 전환이 빠르면 빠를수록 탁월한 배우입니다. 그러니까 배우의 눈물은 거짓된 눈물이 아니라 그 시나리오를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그렇게 보면 거짓눈물 이라고 하는 것은 거의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진심으로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마음이 기뻐하면 그것은 기쁜 것이고 그 사람의 마음이 칼로 찌른 것처럼 아프면서 눈물이 쏟아지면 그는 진짜 슬픈 것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섬기면서 눈물을 한없이 흘렸습니다. 이 긴 성경의 이야기 속에 바리새인의 대사와 예수님의 대사는 나오지만 이 여자의 대사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이 여자는 오직 눈물로 자신의 모든 할 말을 대신했습니다.
이 눈물이 무슨 눈물이었을까요? 그것은 죄인이었던 자신을 구해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드려도 아깝지 않고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셨으니 이것은 나에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라는 감격의 눈물입니다. 자신의 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사이에 좁힐 수 없는 위대한 격차가 이 여자로 하여금 다만 눈물만 흐리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 중에도 아마 아무도 지어낸 눈물을 마음까지 감동을 받으며 흘린 적은 없을 것입니다. 그 눈물이 의심받을 이유가 대부분 없습니다. 그러면 한번 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다른 이유 때문에 우리들이 우는 때가 많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성적이 떨어져서 내 재능이 못마땅해서 혹은 가정 형편 때문에 친구들과의 갈등 때문에 눈물 흘린 적은 많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 왜 하나님이신 그분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을까?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얼마나 가슴 아픈 것인가를 생각하며 눈물 흘린 적이 있는지 한번 반성해보세요. 그러면 묻고 싶은 눈물 흘리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들을 위해 살을 찢고 피 흘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죽으신 그 형벌의 십자가가 여러분들을 울리지 못한다면 무엇이 여러분들의 마음을 찢어놓고 눈물이 쏟아지게 만드는 것일까요 무엇이 그렇게 하고 있을까요? 만약에 여러분들의 마음을 그렇게 울리는 것이 있다면 정말로 그렇게 가슴을 찢고 슬 피울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인지 나는 묻고 싶은 것입니다. 이 여자는 예수그리스께로부터 그 무한한 사라오가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이었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이 여자로 하여금 눈물만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주님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이 더럽고 추악한 죄에서 나를 씻어 용서받게 해 주셨으니 다시 나를 사랑해주시니 이제는 내가 주님을 위해서 살겠노라 하는 것 아닙니까? 거기에서 오는 눈물입니다.
우리는 이 눈물 속에서 티끌만큼도 하나님이 몰래 사랑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 사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이 여자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진실의 힘입니다. 마음에 없는 판에 박은 수천마디의 말보다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말을 잇지 못 한 채 슬피 눈물을 흘리는 그 마음이 하나님을 만나기에는 더 좋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하고 말입니다. 눈물은 우리의 마음에 흘러 더러운 찌끼와 추악한 욕망을 씻어버리고 맑은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깊이 깨닫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버려야할지 알게 해 주는 것입니다. 이 젊은 날에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작년한해동안에 우리 아파트와 우리 맞은편에 있는 아파트에서 두 명의 청소년이 투신자살했습니다. 중국에 갔는데 거기에 시안이라고 하는 한 도시에서는 기숙사 한 동에서 한 해 동안 한 동에서만 네 명의 대학생이 투신자살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왜 그럴까요? 무엇을 위해서 인생을 살아야할 지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여러분들을 그 모든 죄에서 구원하여 이 여자처럼 용서받고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으니 여러분들이 오늘 밤에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새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