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llin 2019.11.19. 존 오웬의 신학
존 오웬의 신학
녹취자: 이길순
정말 존 오웬((John Owen)을 듣고 싶으신가요? 정말인가요? 매우 좋은 선택을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혼자 읽기에 가장 난해한 저작 가운데 한사람이 존 오웬입니다. 존 오웬이라는 사람이 한국교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 존 오웬의 책은 별로 팔리지 않았지만 제 책은 200만 권이 팔렸습니다. 거의 책마다 존 오웬을 사명감을 가지고 소개했습니다. 지금은 존 오웬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런데 이름에만 익숙해졌을 뿐이지 책을 읽지는 않습니다. 제가 장담하건대 이 강의를 듣는 여러분들도 아마 책을 안 읽으셨을 겁니다. 그러나 ‘아마도 소수는 읽으실 것이다. 그래서 저처럼 인생이 바뀌는, 대박 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서론을 하겠습니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저한테 수없이 들으셨을 겁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실컷 공부하라 그랬더니 유학을 가버립니다. 유학을 가서 박사까지 공부를 합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목회를 하고 싶어 합니다. 처음에 공부에 도전을 받은 것은 ‘어떻게 하면 훌륭한 설교자가 되고,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지식으로 성도들에게 말씀을 먹일 수가 있을까’ 여기에서 시작이 됩니다. 총신을 졸업하고 사역을 좀 하다가 슬럼프에 빠질 정도 되면 35살쯤 되어서 유학을 가게 됩니다. 45세 내지 47세쯤에 간신히 박사학위 하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다고 한국 신학교에서도 써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목회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결정적인 시기에 목회의 근육이 풀어져버린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 화이트리스트에서 우리를 삭제하면서 곤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훌륭하게 잘 극복하고 있다고 우리는 그렇게 믿습니다. 많은 일본의 사회학자들이 일본이 저렇게 한국에 대해서 경우 없는 일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질투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잃어버렸던 30년이 있는데, 저 밑의 하수였던 중국과 한국은 30년 동안에 최고의 성장을 구가해서 GNP를 기준으로 할 때, 일본이 지금 39,000달러이고 우리가 최근에 32,000달러를 넘었습니다. 2023년은 골든크로스가 된다고 합니다. GDP 총생산량이 일본이 3배가 많다고 하지만 인구가 2배니까 사실은 1.5배 차이이고 이것도 언젠가는 넘어서게 될 것입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하면, ‘휴대폰 하나를 만들면서, 이거 해봐야 다 미국하고 일본 좋은 일 시키지는 것이지 우리는 남는 것도 없다’라고 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하는 사람들의 철학은 아주 뚜렷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일본은 계속해서 두 세대, 세 세대 걸치면서 부품을 만들었고 그래서 세계 최고의 부픔을 만드는 부픔 생산 업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미래를 바라보던 IT계통의 사업가들, 삼성이나 LG같은 이런 수뇌부에서는 이미 앞서서 세대를 내다보았습니다. 뭐냐 하면 ‘부품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 부품은 전 세계에서 무한 경쟁을 시켜서, 많이 쓸 테니까 싼 값에 최고로 좋은 것이 어느 나라 것이든지 사다가 제품을 만들면 된다고 보았습니다. 최고의 부품을 만드는 기술과 이 부품들을 어젬블리(assembly)해서 디바이스(device)를 만드는 기술은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그러면 내가 여러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목회를 한다는 것은 부품을 생산하는 업자들과 유사합니까? 아니면 어젬블리해서 새로운 디바이스를 계속 만들어 내는 후자와 유사합니까? 전자입니까? 후자입니까? 후자입니다. (여러분들 알고 있네) 그리고 외국에 공부하러 나가도 부품 업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외국을 다녀 보면 10명 유학 간 학생들 중에서 2명 정도입니다. 8명은 부품 업자도 되지 못합니다. 그래도 2명은 박사 학위를 받는 순간을 기준으로 보면 부품 업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서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공부한다는 전제 하입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 와서 누군가가 하나에 대해서 깊이 가르치면서 세계적인 모든 학문적인 성과를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비판하고 어떤 부품이 훌륭한 부품인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부품을 생산 할 수 있는 생산자가 많은 학교 일수록 실력 있는 학교가 됩니다. 그 부품을 생산하는 사업가들, 생산자들은 관심사 자체가 이것(부품)을 어젬블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관심이 너무 많으면 학문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계속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나 되는 것입니다. 이해되십니까?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목회하다가 공부를 해야겠구나 하고 가서 공부한 사람들이 훌륭하게 목회에 성공하는 것이 왜 그렇게 드문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서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일평생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물론 나는 박사학위는 안 받았습니다. 하지만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것들을 계속 연결시켜서 디바이스를 이제까지 수십 년 동안 생산해온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분명하게 이 강의를 통해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나? 부품업자가 되고 싶어’ 그러면 밤새워서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좁게 공부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한 분야에서 빨리, 그것도 40대 이전에 박사학위 받고 돌아오셔서 총신을 비롯해서 메이저에 좋은 신학교 들어가셔서 자리를 잡고, 정치에 기웃거리지 말고 깊이, 미친 듯이 공부해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는 논문을 외국과 한국에 계속 내면서 따라오는 사람이 없어도 곧게 그 길로 가서 세계 최고의 부품업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나는 은사도 아니고 그렇게 까지 할 마음 없이 공부를 하고 싶다 하면 여러분들은 독학을 하셔야 됩니다. 외국에 가서 유학을 할 수는 있는데 그렇게 10년 15년의 세월을 바쳐서 요만한 것 하나를 공부하고 와서 여러분들이 목회를 하는 것은 실력으로 목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심사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두 번째, 그럼 부품에 대한 지식이 아무 것도 없어도 되느냐? 아닙니다. 지금 보잉 737 맥스가 전 세계적으로 운항이 중단되었습니다. 부품을 잘못 사용해서 그것이 찢어지고 갈라지는 것입니다. 이미 벌써 400명 가까운 사람이 죽었습니다. 보잉이 현재 지급 할 액수를 천문학적인 액수로 준비하며 보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잘못하면 회사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비행기를 생산 해 냈는데 딱 하나 부품을 잘못 써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여러분들이 부품을 어젬블리해서 만들어 내는 기술만 배우면 그것도 또 하나의 술사가 되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일평생 제품 그것만 공부하는 사람, 예를 들어서 하팍스레고메나(Hapaxlegomena)아시죠? 성경에 한번만 나오는 단어를 하팍스레고메나(Hapaxlego mena)라고 합니다. 하팍스레고메나(Hapaxlegomena)와 우가릿어의 연관성을 가지고 공부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미친 듯이 히브리어와 우가릿어를 공부하고 그것을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최고까지는 아니지만 그 그룹에 어울릴 정도의 무언가를 가졌다고 칩시다. 그렇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목회를 하면서 그런 것을 그 사람처럼 다 따라서 할 수도 없습니다. 왜? 똑 같은 인생의 길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되지 않습니다. 중심점을 어디에 놓느냐가 중요합니다. 목회를 할 것이다, 그러면 목회에다가 중심점을 놓고 뭐든지 다 알아야 합니다. 부품에 관한 정보를 다 가져다 놓고 쭉 훑어보면서 ‘아, 이 사람은 지금 잘못된 부품을 생산하는 중이구나, 야 이건 정말 좋은 부품인 것 같다.’ 이것을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없으면 보잉 737같은 사태가 벌어집니다.
그러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제가 존 오웬을 여러분들에게 강의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존 오웬을 20년 가까이 읽어 왔습니다. 전집 16권중에서 2권 내지는 3권을 못 읽고 나머지는 모두 숙독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16세기 영어이기 때문에 영국 사람에게 줘도 그 책을 읽어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저는 어쨌든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재미? 만약에 재미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읽지 못했을 겁니다.
저한테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일 년이 되었을 때인데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때는 주님을 나름대로 만나고 설교사역에 보람이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지하실에서 7명을 데리고 시작하면서 한 1년 정도 열심히 설교 하면 300명 정도는 모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을 했는데도 50명에서 60명 모였습니다. 물론 그때 저는 목회를 제대로 안하고 밖으로 많이 돌아다닌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간 번 아웃되는 느낌을 받았고 몸까지 아팠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침대에 이렇게 누워있는데, 내 마음에 ‘너 왜 이렇게 낙심해 있느냐, 하나님의 종, 존 오웬의 글을 읽어 보거라’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서재로 가서 사다 놓고 별로 읽지 않았던 존 오웬의 전집을 꺼냈습니다. 그 중에서 6권, 7권을 집중적으로 읽었습니다. 한 권을 꺼내서 딱 펼쳤는데 그때 그 논문의 제목이 “On mortification of sin in believers”라고 하는 제목의 논문이었습니다. 60페이지 정도 되는 “신자 안에 있는 죄 죽임에 관하여” 라는 것입니다. 제가 영어를 그렇게 잘 하지는 않지만 못하지도 않았습니다. 평생 읽어 왔으니까. 그런데 되게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단어가 나오는데 사전에 나오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다 바뀐 단어들이었습니다. 어쨌든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 4페이지 정도 읽었는데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태어나서 이런 책을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소명 받은 목사이기 전에 크리스찬인가 하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책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열시부터 대여섯시까지 천천히 천천히 메모하며 읽었는데 15페이지를 읽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3일 만에 60페이지를 모두 읽었습니다. 내가 전혀 들어가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세계였습니다. 칼날 같은 논리, 폭풍 같은 감화, 그러면서 내가 존 오웬이라는 한 인간 앞에서 머리끝부터 마지막에 내복까지 싹 벗겨지는 것을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이 존 오웬과 저의 숙명적인 만남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오웬을 전공하신 분은 자기 분야에 대하서 최선을 다해서 공부 하셨고 저는 죽을 때까지 해도 그분을 따라 갈 순 없습니다. 그것은 인정합니다. 그 대신 그분의 관심사와 저의 관심사는 다른 것입니다. 존 오웬의 신학을 공부하면서 계속 읽어 나갔습니다. 저는 숙제를 하기위해서 읽은 것도 아니고 누가 읽으라고 강요해서, 학점을 따기 위해서 읽은 것도 아닙니다. 나는 내가 좋아서 요즘 말로 말하면 오타쿠가 될 정도로 그렇게 깊이 빠졌습니다. 집중적으로 빠진 기간이 한 5, 6년 정도 됩니다. 그리고 집중적으로 읽은 기간이 10년이었고 더 길게 보면 여태까지도 입니다. 지금은 사실 존 오웬에 대한 관심사가 다른 쪽으로 약간 떠나 와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에게 감화를 끼치고 있습니다.
책을 들어오시면서 받으셨나요? 안 받으셨어요? 빨리 나눠주세요. 그 책 강의 할 때 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 책을 제가 3일 만에 썼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대단한 사람이다. 여러분들이 한권만 제대로 읽으면 아마 충격을 받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제가 어떻게 해야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했더니 어느 목회자가 충고를 했습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뭐라고 했는가 하면 “당신이 성경 빼놓고 책이라는 것은 조나단 에드워즈와 존 오웬만 읽어라. 그것을 다 읽을 때까지 성경 외에 아무것도 보지 마라. 그러면 당신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오늘은 제가 서론을 강의를 드립니다. 여러 분들이 가셔서 그 책 전체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책이 존 오웬의 신학 전체를 쓴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렇게 작은 볼륨으로 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1장에서 존 오웬의 신학의 개관을 다루고, 2장, 3장, 4장에 걸쳐서 존 오웬의 성화에 관한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가지, On indwelling sin in believers, On temptation,그리고 On the mortification of sin, 이 세 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읽으면 사실 여러분들은 존 오웬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성화론) 성화론은 존 오웬에게 있어서는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옥스퍼드 출신의 한 학생이 입학하고 바로 전도를 받아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 깊은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그때에 선배들한테 “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랬더니.. (책은 좀 이따 보시고 절 보세요. 집에 가면 다 보잖아요. 드렸으니 가져가서 보세요) 그랬더니 뭐라 했냐 하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주님께 모든 걸 맡겨라. 네가 뭘 하려고 하지 마라.” 그래서 이 젊은이는 시키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의 침체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 청년이 하나님의 은혜로 두 권의 책을 만나게 되는데. 한 권이 존 오웬의 전집 제 6권이고 그 다음에 존 라일(John Ryle)의 “holliness”, 거룩함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슬럼프에서 헤어나서 위대한 청교도 연구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제 책을 잘 읽으시면, 그 다음에 전집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너무 고마운 것은 부흥과 개혁사에서 존 오웬의 전집 몇 권을 번역했습니다. 물론 번역본을 읽을 때에는 원서를 읽을 때의 그윽한 향기는 많이 사라집니다.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한번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런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어차피 제게 주어진 시간이 질문 빼놓고 1시간 10분정도 남았는데 다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이 안 되고 강의하는 데까지 할 테니 여러분들이 가서 1장을 꼼꼼히 읽어보시면 답이 나올 겁니다. 그러면 오웬의 생애는 생략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616년부터 1678년까지 살았으니까 한 70세 정도 살았던 분입니다. 이분은 여러분들이 영국의 역사에서 잘 알고 있는 크롬웰의 혁명, 그 이전과 그 이후 왕정복고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청교도들이 많이 있고) 청교도들이 남긴 책들이 역사적으로 한 10만권 정도 되고 그 중에서 가치 있는 것이 한 5만권 정도, 그중에서 남아있는 것들이 2만권 정도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청교도를 제가 되게 좋아했습니다. 신대원을 졸업하고 청교도에 빠져서, 지금도 제가 가지고 있는 청교도 책이 4천 권 정도 됩니다. 그런데 제가 이 사람을 만나고 나서 청교도에 대해서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의 책을 읽고 나서 나머지 청교도 책을 읽으니까 글이 초등학생하고 대학생하고의 차이였습니다. 초등학생은 너무 심했나요? 중학생하고 대학생정도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너무 심심해서 못 읽게 되었습니다. 모든 책들이 이분의 책 앞에서 설교집처럼 변하고 내용도 빙빙 돌고... 최고의 책을 읽은 것입니다. 당대에도 이 사람의 별명은 복음주의의 신탁이었습니다. 그래서 논쟁이 생기면 이 분을 찾아가서 물어 볼 정도였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어떠한 학문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존 오웬이 사실 최근 한 20년 동안에 다시 조명을 받고 한국에서도 존 오웬을 박사로 연구하고 오신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청교도 신앙에 대한 관심이 재고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지금 전체 교회가 감소하고(decline) 있는데 유일하게 계속 성장하고 있는 교단이 있습니다. 프리 처지 계열의, 말하자면 엄격한 개혁주의적인 입장에 서서 청교도적인 전통을 추구하는 교회들입니다.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이것은 여러분들이 공부를 좀 하셔야 합니다. 여기 나오는 개신교 정통주의라고 하는 신학이 1970년대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아예 신학대학원에서 17세기를 연구한 학자가 안 들어오면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의 교수진이 완성이 안 되는 것 같을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분야가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입니다.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이라는 것은 종교개혁 1세대가 마틴 루터나 마틴 부처 같은 사람들이잖아요? 2세대가 칼빈이라고 말할 수 있고 루터파 쪽에서는 멜란히톤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루터파주의에서는 멜란히톤, 칼빈 쪽에서는 칼빈 이후에 데오도르 베자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종교개혁의 큰 파장이 끝나고 그 다음에 소키누스주의 그 후에 나오는 알미니우스주의 그 다음에 캐톨릭주의, 이런 것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을 구체화해야 될 필요가 생겨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역사적으로 도르트 회의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런 회의가 일어난 것은 유니우스의 후계자로 들어왔던, 레이든 신학교에 들어왔던 알미니우스 같은 사람이 개혁신학자들이 심어놓은 Five 포인트의 그 대의에 대해서 도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인본주의신학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와 성직자들은 이미 유니우스의 제자인 고마루스((Franciscus Gomarus)같은 사람을 화란에서 지지하고 있었고 그러한 대의들이 잘 지켜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성숙되면서 소위 말하는 학문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Five 포인트에 대한 도전이 시작되고, 엄밀하게 말하면 그런 개혁 신학의 중요한 교리에 대해서 도전하기 시작하면서 튤립(TULIP)이라고 하는 이것을 변증하는 과정에서 신학이 아주 상세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위 개신교 교부들의 시대라고 불리는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가 열리는데 이것을 16세기 후반, 칼빈이 죽은 후 1560년대부터 시작을 해서 1725년 정도까지를 개혁파 정통주의 시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볼피우스같은 사람이 이성주의 신학을 받아들이면서 전체적으로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는 끝이 나고 이성주의 시대로 들어가서 기독교가 전통적인 개혁신학의 큰 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가 요새 아주 굉장히 핫한 학문의 분야입니다. 여기에서 16세기 종교개혁과 17세기 개혁파 정통주의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이미 헤이코 오버만(Heiko Augustinus Oberman)이나 이런 사람들에 의해 연구된 중세와 르네상스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문제와 같은 프레임을 가지고 이 문제를 연구하는 학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여기에 은퇴하신지 얼마 안 되는 칼빈 신학교의 교수이신 리처드 멀러 같은 분의 ‘Post-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라고 하는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파 교의학 같은 책들이 말하자면 선두를 달리고 있는 책들이었고 많은 후발 학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학문적인 조류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관심과 재조명 때문에 존 오웬에 대해서 연구를 하게 됩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존 오웬을 그냥 청교도 중에서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존 오웬의 책을 읽어보시면 청교도의 글하고는 너무 다른 게 느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당시 학문적인 트렌드 자체가 개혁파 정통주의 시대였는데 그때가 아주 활짝 꽃피던 개화기였습니다. 그때에 대륙에 영향을 미치면서 영국에서 활동을 하던 몇 안 되던 신학자였습니다.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존 오웬에 대한 연구가 재고되는 것이니 역사신학적인 지식이 좀 필요합니다. 이렇게 넘어가겠습니다.
이것이 존 오웬의 16권으로 되어 있는 전집입니다. 히브리서를 일곱 권으로 썼는데 전체 페이지수가 한 4000페이지 정도 됩니다.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정도 길이의 히브리서 주석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아무 곳을 펼쳐서 한 페이지만 읽으면 ‘깊도다. 지혜의 부요함이여’ 하고 찬탄할 수밖에 없는 글들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리고 이 옆의 책은, 저는 이것을 아직 완독하지 못했습니다. 이 옆의 책은 아주 중요한 책인데 희랍어로 ‘떼오레고메나’(תיאולוגיה מקראית, Biblical Theo logy)라고, 우리말로 번역하면 <신학서론>쯤 됩니다. 대부분이 언약신학을 중심으로 진술해가고 있는데 존 오웬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면 저는 이 책을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번역이 아직 안된 것 같기는 합니다. 원래 존 오웬은 라틴어로 썼는데 그것을 스테판이라는 사람이 영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 읽지 않고 넘기기만 해도 얼마나 학문적으로 웅장한 작품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그리스 문학의 작품들과 역사서들이 이 책에서 등장을 합니다. 여기에 있는 이 책들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만도 아마 한 시간은 걸릴 정도로 방대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맡깁니다.
이렇게 책 한 권에, 예를 들어 6권을 보면 ‘On mortification of sin’, ‘On temptation, In duwelling sin in believers’, 그 다음에 ‘Exposition of Psalm 130’ 이렇게 4권의 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것이 16권이지만 작품 하나하나를 책으로 본다면 최소한도 한 60권이 넘어서 90권이 될 정도의 분량이 되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무엇이든지 하나 선택해서 읽어 보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누가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공부를 하면 굉장히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 보겠습니다. 존 오웬의 학문적인 배경을 어떻게 보는가, 우선 첫째로 기본적으로 존 오웬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성경입니다. 신학적인 논쟁이 시작이 되면 항상 이 사람이 하는 첫 번째 작업은 이 논제(locus)에 대해서 성경이 뭐라고 말하는지를 찾고, 그 성경구절을 철저하게 주석하는 것으로 논쟁을 시작을 합니다. 오늘날은 상실한 논쟁의 기술입니다. 대단한 깊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부흥과 개혁사에서 마스트리흐트(Mastricht)의 ‘이론과 실천 신학’(Theoretical-practical theology)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이 책은 여러분들이 사야 합니다. 백금산 목사를 형제처럼 생각을 해서 사라는 것이 아니고, 제가 그 책을 읽으면서 제2의 충격을 받은 작품이고 조나단 에드워즈가 성경 다음으로 탁월한 책이라고 추천한 책입니다. 그 책이 라틴어에서 번역이 되었는데 지금 번역된 것은 아마 전체 라틴어 쿠퍼스 전집의 6분의 1정도 길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타드라는 형제가 번역을 했습니다. 그 책은 돈이 없으면 가지고 다른 책을 고물상에 팔아서라도 그 책을 사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재미있게 읽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매우 매우 중요한 책이고 마스트리흐트라는 이름 자체도 여러분들이 낯설겠지만 17세기 화란의 최고의 개혁파 전통주의 신학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르트리흐트의 ‘이론과 실천 신학’이라는 그 책과 그 다음에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의 ‘변증신학강요’(Institutio theologiae elencticae)이라는 책, 저는 원서로 읽었는데 이 책도 번역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레이든의 사인방이 쓴 ‘신학 공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은 아직 한글로는 번역이 안 되었고,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개가 개혁파 정통주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세 개의 명 조직신학 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깊이에 있어서, 논쟁적인 데에 있어서는 프란시스 튜레틴의 ‘변증신학강요’가 최고지만 그러나 신학공간은 조금 깊이가.. 지금 이 기준은 다른 책 두 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지 우리가 볼 때에 절대적으로 수준이 낮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심오한 깊이, 논쟁의 깊이는 프란시스 튜레틴이 최고이고 그것을 실천신학까지 아우르면서 아름다운 기독교 사상을 건축하는데 있어서는 마스트리흐트의 책이 최고라고 봅니다. 아직 여러분은 젊으니까 라틴어를 공부해서 원어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존 오웬을 가장 근본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겠지만 성경에 대한 사상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마 어마하게 공부를 합니다. 옥스퍼드를 약 13살부터 21살까지 8년 정도 다녔는데 더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옥스퍼드가 말하자면 알미니우스주의화 되면서 결국은 중간에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죽을 위기에 도달할 때까지, 목숨이 위태로울 때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는 모국어처럼 읽었고 70인 역 아람어까지 능통합니다. 제가 히브리에 관심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펼쳐가는 것을 보면 실력이,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성경 히브리어뿐만 아니라 랍비들의 논쟁을 모두 읽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학문적인 배경 두 번째는 개혁신학이 존 오웬 사상의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그런데 존 오웬을, 예를 들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존 칼빈이나 루터나 이런 한 사람을 똑바로 따라간 사람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학문의 크기에 있어서 이 사람은 존 칼빈이나 마르틴 루터한테 뒤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존 칼빈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존 오웬이 존 칼빈을 스승처럼 생각하면서 그 사람만 공부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저작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마틴 부처((Martin Bucer), 스트라스부르그의 목회자였다가 나중에 영국에 와서 가르치다가 영국에서 죽습니다. 그 다음에 존 칼빈은 너무 잘 알고 있고, 피터 마터 버미글리(Peter Martyr Vermigli)는 존 칼빈이 제네바의 후계자로 여섯 번을 초청했지만 결국은 성사가 안 됐던 이태리 출신의 개혁신학자입니다. 존 칼빈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피터 마터 버미글리에게 물어보았고, 칼빈이 가지고 있는 그에 대한 존경심은 너무 대단했습니다. 존 칼빈의 편지의 목록을 찾아보면 피터 마터 버미글리에게 쓴 여러 통의 편지가 나옵니다. 그 중에 “어째서 당신은 제네바로 오지 못하는 것 입니까? 당신을 오지 못하게 하는 것들의 손을 내가 가서 뿌리치더라도 당신을 데려오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할 정도로, 어떤 의미에서 사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피터 마터 버미글리의 작품이 현재 영어로 한 10권 정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Two natures of Christ’ 같은 작품을 읽어보세요.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관한 것인데 보면 아, 개혁신학이 이정도인가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대단한 작품입니다. 대학자였고 고난 받는 목회자였습니다. 데오도르 베자(Theodore Beza)는 너무 잘 알고 하인리히 불링거(Henry Bullinger), 루체르니의 목회자였습니다. 그 다음에 슈펜하임, 구약학자였습니다.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는 여러분이 너무 잘 알고 피스카토르 이런 개혁신학자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옥스퍼드에서 이 사람을 형성 했던 것이 당시 휴머니즘이라고 하는 인문주의입니다. 이것은 좀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고 인문주의라고 이야기 하는데 르네상스는 하나의 문화적인 운동의 맥락에서 이름이 나온 것이고 인문주의는 학문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인문주의라는 것은 Human 사람, ism이니까 '인간중심주의'를 보여주는 겁니다. 우리들이 인본주의라고 하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더 가닥이 복잡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언젠가는 르네상스에 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종교개혁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하게 꼭 골수분자 같은 이상한 시각으로 종교개혁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종교개혁은 이러한 르네상스 운동이나 인문주의가 없이는 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종교개혁자들은 대부분이 가톨릭의 사제들이었고 그 사람들의 공통적인 점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기독교 인문주의자였다는 것입니다. 인문주의 중에서도 확고하게 기독교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이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이 된 겁니다.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이 아니면 종교개혁과 같은 사고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얘기하면 또 굉장히 길어지니까.. 어쨌든 공부하시면 참 좋겠습니다. 르네상스에 대해서는 정말로 꼭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학문적으로 인문주의가 되는데, 인문주의라고 표현하는 번역의 적실성에 대해서는 제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휴머니즘이라고 했는데 그냥 휴머니즘이면 도대체 그 휴먼의 기준이 무엇인가? 글을 중심으로 휴머니즘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고전을 읽는 운동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왜 이 사람들이 고전을 읽었는가 하면 (그때 고전은 그리스 고전입니다) 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상이 크게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신 앞에 ‘온전한 자신이 되고 그 다음에 이 세상에서 참 인간다움을 구현하며 사는 것’ 이것이 이 사람들의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관심이 신과 인간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이전의 로마 가톨릭에서는 인간이 관심사가 아니었고.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에 의해 위계적인 질서의 구도 속에서 교회를 자리매김하고 그렇게 종교가 권력화 되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 반기를 들면서 고전을 읽기 시작한 겁니다.
왜 그렇게 그리스 고전들을 탐닉했을까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그리스 고전을 몇 권이라도 읽어보면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라든지 아니면 플라톤의 ‘이상국가’라든지, 그리고 플라톤의 또 다른 작품들을 읽어보면 얼마나 신과 인간에 대한 사고를 집요하게 추구했던가를 볼 수 있을 겁니다. 굉장히 민주적인 시대, 정치체제가 직접 민주주의였습니다. 많은 문제들도 있었지만. 오스트라카(ostraca)라고 폐각 추방하는 것도, 권력자를 탄핵할 수 있는 제도도 거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자유로움 속에서 자유로운 사고를 하면서 말하자면 당대 최고의 철학의 유산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전 5세기에서 3세기까지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 나와서, 사실 서양의 이후에 일어날 철학의 모든 프레임들을 이미 짜놓았습니다. 그리스 철학을 공부해보세요. 전공자처럼은 못 하지만 최소한 국가론이라도 몇 달에 걸쳐서 같이 스터디를 하면서 공부해보시면 눈이 열리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인문주의에다가 개혁사상이 더해집니다. 알다시피 이런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들, 위클리프(John Wycliffe)라든지 종교개혁이전의 종교가들, 저 멀리는 기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라든지, 얀 후스(Jan Hus)라든지, 이러 사람들에 의해서 기독교 인문주의 운동들이 펼쳐져가는 데, 헤아릴 수 없는 학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제 원어로 읽는 운동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성경을 모국어로 읽는 운동이 시작되고, 이렇게 하면서 인문주의 운동들이 기독교 인문주의가 되고 이것이 결국은 준비단계가 되면서 여기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연히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서 존 오웬이라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이 옥스퍼드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공부한 것이 수학과 철학이었는데 다양한 학문들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뭐냐 하면 이 분이 돌아가셨을 때 유족들이 오웬 목사님이 가지고 있던 책들을 경매에 부칩니다. 그가 어디에 관심사를 갖고 있는 가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 목록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아주 아주 힘들게 캠브리지 대학에서 이 사람의 옥션 목록을 찾았습니다. 2,500권 정도 되는 책이었는데, 그 당시 2,500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권수였습니다. 아주 수많은, 아랍어부터 시작해서 플라톤의 전집이 두 권이나 나오고 어거스틴은 물론이고 교부들의 책들로부터 시작해서 천문학에 관련된 책들까지 나왔습니다.
존 오웬의 세 가지 학문적인 준비가 있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성경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입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을 컴퓨터로 찾는 검색기능도 없었기 때문에 이것은 완전히 암기 싸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서삼경 같은 것을 거의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 다음에 유학을 공부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성경을 거의 완벽하게 외울 정도로 자유자재로 생각 속에서 색인(concordance)처럼 성경구절을 찾아내고 원문을 거론할 수 있을 정도까지 철저하게 성경에 몰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칼빈도 그런 전통을 따라 공부했고 사실 종교개혁시대 이전에도 기본적으로 신학을 공부한다고 할 때 라틴 교부, 그리스 교부, 동방교부와 서방교부에 대한 저작전집을 모두 읽는 것으로 신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몇 권이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는데 현재 CCSL이라는 시리즈로 Tvrnholti에서 출간되고 있는 것이 한 질에 일억이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것이 한 500권 정도 되고 제가 한 300권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읽는 것으로 신학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중세시대 때에는 성경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이 되지 않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부터 성경에 대한 중요성이 확 부곽이 되면서, 이제 이(성격역사에 대한) 실력과 성경 자체를 아는 실력이 겸비되는 그것이 중심기둥이 되어 신학공부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의해서 목회를 합니다. 설교도 그런 식으로 하고 그런데 그것이 피곤한 겁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들을 때에는 반짝하고 재미있지만, 누가 그렇게 한 교회에서 20년, 30년 설교하면서 매주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고, 두 번째는 매주 반짝인다고 한들 그것이 사상이 될까요? 사상이 안 되는 겁니다. 사도 바울의 위대한 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명료한 듯 하면서 애매한 이야기 중심의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했다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기독교가 서게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이 설교의 목적이 아니라 일평생 그가 하는 설교를 다 듣고 나면 웅장한 기독교의 사상의 집이 지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경건의 능력이 더해져서 사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진짜 그렇게 살아야 행복 하겠다 하는 강한 끌림을 가져다주는 것이 설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분은 성경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서 소위 이야기 하는 Extra Biblical History라고 하는 성경밖에 있는 역사까지도, 심지어 당시 이슬람의 역사나 타종교에 까지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이 인접 학문입니다. 철학, 문학, 논리학, 수사학, 천문학, 생물학 이 외에 많은 학문들에 대한 것이 나옵니다. 어떻게 그럼 그의 전집에서 이런 것을 찾을 수 있는가, 예를 들자면 점성술에 관한 당대의 아주 중요한 과학적이고 점성학적인 글에 대해서 내용을 인용하면서 강력하게 비판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학자가 그것을 비평한다는 이야기는 그것을 이해하고 그 사상을 검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천문학, 논리학, 특히 철학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것을 따로 모아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작품에는 크게 논쟁적인 작품과 설교 같은 것이 들어가는 목회적인 작품이 있습니다. (논쟁적인 작품은 예를 들면 소키누스주의라든지..) 그가 직면했던 커다란 세 마리의 용이 있었는데 소키누스주의, 알미니우스주의, 로마 카톨릭입니다. 소키노스주의는 극단적 이성주의자로 이성의 논리에 배치되는 것은 모두 진리가 아니라고 기각합니다. 이것은 마틴 루터 시대 때부터 있었던 분파입니다. 그 다음에 알미니우스주의, 로마 카톨릭, 로마 카톨릭의 논리도 무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응하면서 글을 써나가는데 논쟁적인 작품이 있고 목회적인 작품이 있고 교화적인 작품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종류의 논쟁적인 작품은 아주 치열합니다. 제 10권 ‘성도의 견인’ 같은 책을 읽으면 깊은 밀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서 어디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들어왔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게 심오한 논쟁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수많은 디그레이션들이 나오는데 디그레이션들이 순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하다가 논쟁점이 생기면 그 논쟁을 다 풀고 지나가는 겁니다. 하나, 둘, 셋, 넷 풀고,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 원치가 어디인지를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날 오웬 전집을 보면 숫자가 붙어있고, 문단도 나누고 했는데 다 후대에 만든 것이고 원래 쓸 때는 다 통으로 쓴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러한 학문들이 전부 다 융합되면서 결국은 성경의 진리를 변증하는데 사용이 됩니다. 개혁신학의 지식이나 아까 말씀드린 개혁자들에 대한 논거가 수없이 인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특히 이 사람이 강했던 것이 교부학입니다. 고대는 물론이고 중세에 대해서 아주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존 오웬은 아버지가 목회자였고 그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카톨릭의 사제였다가 돌아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15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의 사람들이었는데 1517년 종교개혁이 일어났을 때부터 시작해서 한 1590년대까지가 집중적으로 돌아왔던 시기입니다. 이 사람은 벌써 후대 때, 1616년생이니까 그때로부터 100년 정도 흘러갔고 조나단 에드워즈는 여기서 다시 100년 지나갑니다. 우리는 거기서부터 300년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겁니다. 이 사람은 이미 개신교의 전통들이 수립된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카롤릭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고대와 중세의 교부학을 아주 능통하게 알고 있어서 교부들의 성경해석과 신학을 깊이 이해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세웠나갔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어거스틴을 비롯해서 이레나이우스, 테르툴리안 이런 사람들에 대한 언급이 수없이 나오고 노바티아누스, 키프리아누스같은 교부들에 대한 인용도 라틴어로 번역도 하지 않고 바로 인용하는데 한 페이지씩 계속 라틴어가 나오고는 합니다. 그런 것들을 당대의 개혁신학적인 관점에서 조망을 하면서 소위 이야기 하는 교회의 뿌리에 호소하는 신학을 해 나갔습니다.
이 당시 옥스퍼드의 학풍을 보면 중세의 교육방식을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그 얘기를 부정적으로 보시면 안 됩니다. 중세, 그 자체는 신앙적인 관점에서는 거의 죽어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우리가 종교개혁이라고 할 때 그 religion이라는 말, 종교 자체가 신앙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서구사회가 전부 다 기독교 세계였기 때문에 종교라고 할 때 단일했었습니다. 그래서 종교 자체가 경건이었고 신을 경배하고 두려워하는 것, 이런 것이었는데 옥스퍼드가 중세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는 신앙적으로는 그렇지만 학문적으로 내용이 아니라 학문의 방식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중세의 학문이 많은 발전을 합니다. 11세기에 우리가 이야기하는 스콜라주의가 들어오게 되는데 스콜라주의가 이전에 있었던 서구 문명의 많은 지적인 유산들의 형태를 변질시키지 않고 보존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존 오웬도 마찬가지로 스콜라주의자입니다. 스콜라주의라는 것이 중세시대 때의 스콜라주의 내용은 철학이 신학을 거의 대신하는 정도로 까지 넘어가지만 17세기 개혁파 정통 스콜라주의자들이 개신교 스콜라주의자라고 이야기할 때 그 스콜라주의는 학문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고 학문의 방식에 관한 말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공회가 했던 종교회의 결정들, 이런 것들에 대한 아주 풍부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부들을 인용하는 것도 어떤 교부들을 통째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모두 그것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세워가는 데 있어서 유리하고, 성경을 논증하는데 있어서 바람직한 것들을 부분적으로 차용하는 소위 이야기하는 eclecticism, 절충주의를 보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여러분들이 깜짝 놀라겠지만 이 사람은 학자들이 분류하기를 토미스트로 분류합니다. 그 얘기는 그럼, 존 오웬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계승자라는 이야기인가?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모든 전집을 꿰뚫고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이에 비해서 윌리엄 퍼킨스 아시죠? ‘설교의 기술(The art of preaching)’ 이라는 책을 비롯해서 퍼킨스의 전집이 세 권이나 있습니다. 영어로 나와 있으니 여러분이 안 읽더라도 구해서 가지고 있었으면 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작품입니다. 윌리엄 퍼킨스가 쓴 대표적인 중요한 책 가운데 ‘황금체인’(Golden chain)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구원의 서정을 황금사슬처럼 엮어서 진술한 책인데 개혁신학에서 아주 빛나는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플라톤니스트였습니다. 그러면 윌리엄 퍼킨스는 플라톤을 추종한 사람이고 존 오웬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추구한 사람이냐, 그 뜻이 아니고 당시 17세기의 많은 신학자들은 어떻게 보면 거의 대부분이 토미스트였습니다. 여기서 토미스트라고 하는 말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과 사상을 베꼈다는 뜻이 아니라 신학 방법론에 있어서 아퀴나스의 방식을 따르고 있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퀴나스는 누구의 방식을 따랐을까요? 그렇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반드시 공부하셔야 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제가 하나의 예화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 95세쯤 되셨습니다. 기력이 없으셔서 요양원에 계시는 윌리암 판 스페이꺼르라고 하는, 영어로 스파이커라고 하는 교수님이 계십니다. 이분은 현존하는, 마틴 부처의 최고 연구가입니다. 지금은 병원에 계시기 때문에 제가 찾아가지 못하는데, 이분과 제가 개인적인 교분이 있습니다. 아주 굉장히 가까운 교분을 가지고 10년 이상 교제를 해왔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그 분이 평생 모은 라이브러리를 저에게 물려주셨습니다. 만권 정도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받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님께서, 직접 제가 본 것입니다. 제가 여기 앉았고 교수님은 여기 앉아 계시고, 이분은 가장 엄격한 보수주의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뻴도른의 신학교의 교장선생님이셨고 화란에서 가문대대로 정상급 역사 신학자였습니다. 여기 한국학생이 두 사람 있었습니다. 이 한국 학생이 영어로 질문을 합니다. “교수님, 신학에 있어서 철학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 한 세기 최고의 개혁신학자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답이 나왔습니다. 거의 단어도 안 틀릴 정도로 똑 같이 답하셨습니다. 이렇게 “네가 철학과 신학의 연관성을 묻니? 아니 어떻게 철학을 공부하지 않고 신학을 공부 할 수 있니? 특히 철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란다.” 그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기분 좋은 얘기를 하나 하셨는데, 제가 영어로 논문을 하나 썼습니다. 신학공부 방법론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신학에 있어서 학문의 구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한 것 이었는데 그 논문이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은 모든 지식은 하나님 한 분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모든 지식의 근원은 하나님이고 하나의 사물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은 모든 다른 사물과 연결되어서 하나님으로 수렴한다는 논지였습니다. 책으로 출판은 안 되었고 내부에서 출판한 책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시면서 “김남준 목사가 나에게 요만한 책을 한권 보냈더라. 거기에 쓰인 것처럼 너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신학을 공부해야 된다.” 그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격려가 되었고. 화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이 학생은 그 이야기가 굉장히 충격적으로 들렸던 것 같았습니다.
화란에서 이미 개혁신학에 헌신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더 놀라운 것은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들이 아직도 존 오웬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존 오웬의 굉장히 많은 책들이 화란어로 17세기에 다 번역이 다 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학자였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은 칼빈주의가 가장 잘 보존된 것이 화란으로 건너가서인데 그 사람들이 번역해서 전공을 해야 될 정도의 학문적인 깊이를 그 섬나라에서 느꼈다는 것 자체가 보통이 아닌 것입니다. 대륙에 있는 사람들 콧대가 얼마나 높은데 말입니다. 그렇게 개혁파 정통주의 주류의 역사 흐름 속에 참여했던 인물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새겨들어야 되는데 그럼 여러분들 스트레스 확 받으시겠죠? ‘도대체 지금 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뭘 또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하라고 하나’,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나 신학,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정도,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50권 정도의 다양한 책을 썼는데 모두 읽을 수 는 없고 그 중에 몇 작품들은 여러분들이 공부하셔야 됩니다. 정 혼자 못 읽겠으면 대학의 교양 강좌라도 들어가서 들으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여러분들이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려고 한다면. 그런 점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따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25세 되던 해에 ‘A Display of Arminianism’이라는 책을 씁니다. 말하자면 데뷔작입니다. 사실 데뷔작이 얼마나 의미가 있어요? 칼빈은 데뷔작이 세네카의 관용론에 관한 주석이었는데 안 팔렸습니다. 존 오웬은 데뷔작품으로 ‘알미니우스주의의 실상’이라는 책을 약관 25세 무명의 시절에 썼는데 이것이 주는 충격파가가 얼마나 컸는지 이 책을 읽고 교회의 지도자들이 25세밖에 안 된 존 오웬을 포드햄(Fordham)이라는 목회자로 가게끔 밀어줍니다. 그래서 포드햄이라는 곳에서 목회를 시작하게 됩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교회는 아니지만 아직도 그 교회가 있어서 전설처럼 이 사람이 설교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포드햄에서 목회를 하다가 코기쉘(Coggeshall)이라고 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거기서는 매주 한 2,000명 정도의 성도가 모여서 존 오웬의 그 유창한 설교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On Mortification of sin’이 16세에서 17세의 어린 학생들에게 설교한 내용입니다.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그의 이야기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올려놓고 자기가 판단해서 받아들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무릎을 꿇고 배우는 스승이 없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기 자신이 새로운 역사를 써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 중에서 ‘John Owen, reformed catholic, Renaissance man’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자꾸 사람 이름을 잊어버리는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있었던 아, 칼 트루먼, 칼 트루먼의 작품인데 읽어보세요. 그것은 두껍지도 않아서 쌈박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말로는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번역되어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면 역사적인 맥락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존 오웬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소위 말하는 철학적 신학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깊이 있게 신학을 전개하는 철학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때에 ‘신학대전’이라든지) 피터 롬바르드라는 10세기의 서방교부가 ‘명제집’(Sententiarum)을 씁니다. 그리고 모든 신학자들의 데뷔는 그 명제집에 대한 주석으로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신학대전 이전의 조직신학 기본 교과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도 이 피터 롬바르드의 명제집, 역사시간에 배웠던 ‘Sententiarum’이라고 하는 이 책을 주해하는 것으로써 신학자로 데뷔를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내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아주 정치한 스콜라주의의 논쟁방식을 가지고, 그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알미니우스주의를 해부하고 비판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ca) 정도는 그냥 쫙 깔아놓고 그것의 옳은 것을 빼서 쓰고 옳지 않은 것은 비판하고 하는, 모든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의 책들까지 모두 놓고 자기 나름대로의 신학을 구성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스콜라주의라는 것이 나오는데 스콜라주의라는 것이 뭐냐 하면 원래 히랍어 ‘스콜레’(פנאי)에서 온 것입니다. ‘스콜레'는 한가한 이라는 뜻으로 거기에서 영어의 ‘School’과 독일어의 ‘Schule’ 라는 말이 옵니다. 학교입니다. 학교가 한가한 이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먹고 살기 위해 바빴기 때문에 배운다는 것은 사치였습니다. 그런데 돈 많은 사람들이 하도 무료하니까 우리 술만 마시고 밥만 먹고 놀지 말고 우리 유식한 선생 하나 불러다가 놀이삼아서 들어보자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것이 소위 귀족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스쿨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사실 기독교권 안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 정죄되고 플라톤의 책은 아주 잘 보호가 됩니다. 왜 그런지는 여러분들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한 권씩 읽어보면, ‘아, 이래서 기독교가 플라톤에 대해서 이렇게 우호적이었구나.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 이렇게 반항적이었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사유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플라톤의 사유는 인간의 존재가 보이는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어서 일자를 만나고 그 만남, 천상의 일자에게서 정신이 하강을 하면서 이 모든 세계를 해석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사물로부터 시작이 되어서 개별사물자 위에 보편자를 찾고 그 보편자위에서 또 보편자를 찾으면서 말하자면 초월자를 찾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고방식 자체가 스승과 제자간이면서도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라파엘로의 ‘아데네 학당’(Schola Atheniensis)이라는 그림을 보면 손가락을 하늘로 가리키고 있는 사람은 플라톤이고 땅을 가리키고 있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가 되든지 플라톤주의자가 되든지 둘 중 하나가 된다.’ 이렇게 보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사유방식은 어떤가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로부터 하강하면서 이 세계와 이런 것들을 해석을 하면서 안정감을 찾는 겁니다. 그러니까 플라톤은 보호가 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싹 정리가 되어서 거의 금서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책들이 다 폐기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것들을 보존해준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리우스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정죄되고 나서 핍박을 받으면서 다 도망을 갑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면 이슬람제국이 엄청난 세력을 얻게 되고 (스페인을 7세기 정도에) 쇠퇴해가는 기독교권을 지배하면서 이슬람 제국들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놀랍게 그 자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사람들도 상당한 학문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니까 이슬람 학자들이 보면서 ‘이것은 보통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로부터 왔지만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 것도 아니고 모든 학문에서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아랍어로 번역을 시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이 기독교권 안에서는 박해를 받고 모두 불태워져 없어졌는데 이슬람권에서 보호를 받으며 그 책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야사의 이야기이지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나 그리스 고전들을 아랍어로 번역해서 오면 양피지의 무게와 똑 같은 무게의 금을 달아서 주었다고 할 정도로 그렇게 번역가들을 잘 대우했고, 놀라운 것은 그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도록 놔두었다는 것입니다. 관용을 베풀면서 그들의 자료를 베껴왔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책들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책꽂이에 정리가 됩니다.
서구권에서는 대학의 시작을 11세기, 12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초창기에 생긴 대학들이 캠브리지나, 옥스퍼드 같은 대학들인데 대부분 수도원에서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이슬람 사회에서 대학의 역사는 10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0세기와 12세기의 차이는 두세기 차이인데 양쪽 세계가 완전히 벽을 쌓고 살았습니다. 십자군의 명분 가운데 하나가 ‘저 어두움 가운데 짐승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서라도 이 십자군의 전쟁은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하면서 쳐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충격적인 사실들이 발견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정말 미개한 인간인줄 알았는데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되어 있고 학문이 자신들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정돈되고 체계화되어 있는 겁니다. 대학들도 막 생겨나 있었습니다. 이게 뭘까 하고 보니까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너무 큰 충격을 받고 그 사람들의 학문 방법론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십자군 전쟁은 그래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그러한 정교한 논리를 가지고 기독교에 대항하는 논리들을 비판하고 기독교 안에서도 옳지 않은 논리들을 비판하고 논증하는 데에 스콜라적인 방법들이 사용이 됩니다. 그러면서 스콜라주의가 한창 화려하게 꽃피우고 정점에서 딱 기울어져 가고 있을 때 나타난 사람이 토마스 아퀴나스였습니다. 이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세를 가지고 발생론적이고 종합적인 방법으로 기독교의 논제들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모두 읽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자들도 다 안 읽으니까. 그러나 한권쯤은 읽어봐야 합니다. 구조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정도는 봐야 합니다. 그러나 안 읽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논리적인 훈련이 안 되었기 때문에 어려워서 읽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내용을 종교개혁자들이 다 해체를 해서 자기의 맘에 맞는 것들은 빼서 쓰고, 이 사람이 따랐던 이 방법론이 기독교의 진리를 변증하는데 있어서 최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받아들이는데 베자이후, 프란시스 튜레틴이라든지 이 이후에 있는 사람들이 1세대, 2세대 종교개혁자들보다 훨씬 적극적이었습니다. 이유는 뭐냐 하면 처음에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는 종교개혁에 대한 공격도 투박했습니다. 카톨릭에 대한 공격도 약간 투박했고 개혁신학에 대한 공격도 투박했습니다. 그래서 방어하기가 쉬웠던 겁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깨고 들어오는 논리가 아주 정교해집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마르틴 루터를 법정에 세웠던 카제탄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 논리들이 들어오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논리들을 아주 정확하고 정밀하게 방어해야 했습니다. 개념을 정리하고 논리의 틈새를 비집고 논리를 논리적으로 막아내기 위해서 논리를 발전시키고 하면서 개신교의 독자적인 신학을 갖게끔 만들어 준 것입니다. 스콜라주의가 나쁜 역할만 했다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 유산이 어마어마합니다. 대부분이 라틴어로 되어있지만 영어로 된 것들도 있고 독일어로 된 것도 많고 화란어로 된 것도 아주 많습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유산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 바로 17세기입니다. 스콜라주의적인 방법을 사용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것 하나만 봅시다. 여기에 4번이 있습니다. 45페이지부터 51페이지까지 하나님의 완전성에 대해서 논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학문을 구축해갔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11세기부터 12세기에 걸쳐서 살았던 피터 롬바르드라는 사람의 ‘명제집’입니다. 너무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틴 루터가 신학공부를 했던 에르푸르트 수도원에 갔는데 책 한권이 완전히 봉함된 유리 속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학생이 국판으로 된 큰 책 가상 자리에 깨알 같은 글씨로 자기가 들은 강의 내용들을 적어 내려갑니다. 그런데 그 원판이 바로 롬바르드의 명제집, ‘Sententiarum’였습니다.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주의는 이런 관계가 있습니다. 스콜라주의는 ‘scholástĭcus’라고 하는데 이 스콜라주의시대 학문방식은 첫째, 논리를 가지고 개념을 정의합니다. 이것은 오늘 굉장히 많이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의가 뭐죠? 개념정리를 안한 상태 속에서 설교자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용어를 남발하니까 정확한 전달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먼저 용어가 나오면 그 용어의 개념부터 확실하게 정리를 하고 그 다음에 그것을 세부적으로 구분하는 겁니다.
저는 왜 이렇게 존 오웬의 신학이 복잡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이 사고의 방식에 있어서 저한테는 맞았습니다. 저는 설교에 있어서 체계적이고 정밀한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은혜라는 말이 있으면 이것은 성경에서 일의적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달하기 전에 이 은혜가 무슨 용례로 성경에서 사용되는지를 설명하고 자기가 읽은 본문에서 이 은혜가 여기에 몇 번째에 해당하는지를 말해주면서 설교를 이끌어 나가야지 사람들이 알 수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나옵니다. 첫째는 구원의 길 자체이고. 두 번째는 객관적인 호의, 세 번째는 하나님 사랑의 감화입니다. 성경에서 나올 때마다 이것은 셋 중에 하나로 사용됩니다.
만약에 토마스 아퀴나스같은 사람이랑 이야기 해보면 개념정의를 하지고 않고, 세밀한 구분을 하지 않고 은혜를 이야기하는 것은 전달자체가 안 되는 방식으로 논의를 하고 있는 거라고 볼 것입니다. 한번 공부해보시면 빠져들 것 같은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법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딱 맞을 겁니다. 여러분들의 설교를 아주 정밀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스콜라주의의 내용을 배우지 말고 방법론이라도 좀 배워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세밀한 구분을 한 후에 분석을 합니다. 그렇게 분석을 해서 반론에 답변을 합니다. 그러면 반론에 답변을 하면 당연히 이 반론에 대해서 반론을 합니다. 그 반론에 대해서 재반론을 제시합니다. 그래서 존 오웬에게서 많이 나오는 것이 ‘이것은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런 뜻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음과 같이 반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반박이 쫙 나옵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에 대해선 우리는 이렇게 재반박할 수 있다.’ reobjection, answer, objection, reobjec tion, answer, objection 그 다음에 objection of against objection 그래서 reanswer가 나옵니다. 논리적으로 이성이 도망칠 수 없을 때에 믿기 좋은 환경이 제공된다고 본 것입니다. 이해 가십니까?
이런 사상이 개혁가들이 붙들고 있는 사상이었고 존 오웬이 붙들고 있는 사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상을 아주 확고하게 붙들고 목회한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즈였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을 한글로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찬송해야 될 찬송의 제목입니다. 물론 원서로 읽는 것 같은 맛까지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퓨전 한식입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은 먹어보는 겁니다. 읽어보고 왜 김남준 목사가 와서 심지어 조나단 에드워즈까지도 이런 스콜라주의의 영향아래 있었다고 말하느냐 라고 하는 것을 한번 작품자체를 보면서 살피라는 겁니다.
이것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찾아낸 스콜라주의의 구조입니다. 이해되시죠? 이런 방식으로 전개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교도 논박 같은 것이 나오면 이교도에서 주장하는 주제들을 떠올리면서 개념을 정의하고 그 다음에 그들의 주장을 세분하고 세분한 것들을 다시 분석하고, 분석한 것들을 반론하고, 반론한 것들에 대해서 또 반론을 받고. 또 반론의 예상 되는 반론에 재반론을 제시해서 결국은 더 이상 논리적으로 빠져나갈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구나 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안 된다. 결국은 하나님을 믿게 하는 것보다 이성으로 이해하는 일에 집중했던 사람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는데 아퀴나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안셀무스의 ‘프로스로기온’(Proslogion)이나, ‘모노로기온’(Monologion), ‘꾸르데오호모스’(Cur Deus homo) 같은 책들에 대해서 그런 시각, 안 좋은 시각으로 보는 겁니다. 그건 그 사람들이 쓴 방식이 아닙니다. ‘프로스로기온’에서 했던 안셀무스의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여 저는 믿기 위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은 더 잘 믿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지혜를 추구하는 신앙입니다. 참된 신앙은 이해를 추구하고 참된 이해는 우리를 신앙으로 이끈다고 본 것입니다. ‘프로스로기온’이나 ‘모노로기온’을 읽어보세요. 여러분은 아직 젊으니까 시간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안하면 안 됩니다. 목회를 시작하면 보통 비장한 결심을 하지 않고는 책을 읽을 수가 없습니다.
중세 후기 르네상스시대의 정신사적인 조류가 어떠했는지를 설명을 드립니다.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시대, 이것이 어떨까요?) 한 12세기부터 르네상스시대니까 한 14세기, 15세기까지 이때의 정신적인 트렌드가 어떠했나하면 아우구스티누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스콜라주의, 인문주의 이 네 개의 학문적인 사조가 유럽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주의는 기반자체가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입니다. (신플라톤주의는) 플라톤은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고 그 이후에 플로티누스(Plotinus)라는 인물이 플라톤주의를 재건합니다. 플라톤주의를 재건할 때는 순수하게 플라톤주의를 재건한 것이 아니라 여기에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미하고 심지어 스토아철학을 가미하면서 믹스된 아주 역동적인 철학을 만들어 냅니다. 예를 들자면 플라톤에서는 이원론이었는데. 플로티누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계승하면서도 역동적인 일원론을 갖게 됩니다. 플로티누스의 저명한 저작 가운데 하나가 많은 철학자들의 주목을 받는 ‘엔네아데스’ (Ennea des)라는 책입니다. 그 책을 읽어보면 꼭 기독교조직신학을 읽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데 다만 그 속에는 신비주의 요소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주의가 한 대세를 형성하고, 두 번째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속에서 논리와 형이상학들이 보존되고 개념들이 보존이 되고 많은 지식들이 체계화 되는가하면 스콜라주의에 의해서 정밀한 논쟁들이 이루어지면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자기 안의 모순들을 점검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기반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말한 것이 인문주의, 사고하는 인간을 중심에 놓고 신과 온전한 관계 속에서 참된 인간으로 자라고 사회에 의미 있게 이바지 하는 사람으로서 성장하는 두 가지 이상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의 기반을 저 멀리에는 프레드릭 2세부터 시작을 해서 여러분들이 잘 아는 아시스의 프란시스 같은 사람까지로 기원을 올려서 잡습니다. 그 이전에 이미 슈와레츠라든지 새로운 철학자들, 유명론자 같은 사람 윌리엄 오캄, 그 유명한 오캄의 면도날이라든지 이런 논리에 의해서 중세 철학의 중요한 근간들, 마지막으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웅장하게 수립해놨던 그런 것들이 잠식되기 시작하고 무너지는 붕괴의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서 정신사적인 붕괴 속에서 르네상스가 탄생하게 됩니다. 르네상스는 그런 점에서 선구자적인 노력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카톨릭 교회에서 다 파문을 당합니다. 유명론을 말했던 사람들, 윌리엄 오캄이나 슈와레츠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이미 토마스주의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아주 광대한 인문주의적인 사고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또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제가 이 정도에서 그치겠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사람들이 무너지는 것만 본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것 속에서 쉽게 얘기하면 인문주의자들이 그리스 고전으로 돌아가서 참된 인간의 사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배웠다면 기독교 목회자들과 기독교 사상가들은 이 사람들과 똑같은 논리로 교부들에게로 돌아가서 맨 처음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이 어떻게 예수에 대해서 생각하고 성경에 대해서 생각을 했느냐 라는 똑 같은 방식의 사유를 하기 시작하면서 교부들의 원전을 읽기 시작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이라 라틴어하고 히랍어 공부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하면 성경의 가르침이 있고, 속사도 교부들이 있고, 이 사람들과 바로 붙어 있는 시대에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 교부들의 시대가 아우구스티누스를 끝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중세로 들어가게 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중심에 서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흘러나오는 조류 속에서 이 사람들이 신약성경을 이해했던 것과 오늘날 우리에게 르네상스시대에 종교개혁 전야의 교회에 의해서 가르쳐지던 이 두 개의 가르침사이에 엄청난 갭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솔직히 여기 한 항목 한 항목이 두 시간 내지 세 시간은 강의할 정도의 내용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겠죠? ‘언제 저것을 하나, 그거 할 시간에 가서 제자훈련이라도 하나 더하지’ 하는 생각들 하시죠?. 저는 아주 절대적으로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만약에 일평생 학교에서 있었던 선생님이라면 말 빨이 서지 않습니다. 저는 스탠드 포인트가 목회자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설립한 교회에서 제 목회의 인생의 끝자락을 끝내는 것이 나의 꿈입니다. 그러면 목회자인 내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호소력이 있지 않나요? 이런 공부가 없었으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무슨 영광을 받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나이가 많아서 이미 기울어져 가는 사람이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받고 싶을까요? 욕은 먹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박수치든지 안치든지 나는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지금까지 해온 사람으로서 이런 공부가 나를 목회자로서 살아가게 하고 여러 가지 사상의 변천 속에서 흔들리지 않게 내 걸음으로 내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준 내적인 힘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신학과 철학을 가지고 현대의 부품업자들을 나는 판별 할 수 있습니다. 부품생산자를 모두 알지는 못합니다.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매일매일 발표되는 논문을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하려면 제가 목회를 쉬어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필요하면 나는 검색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최신의 논문을 읽으면서 (무슨 ‘그린 띠올로지’라고 나오는데) 어디까지 용납할 수 있고 어디까지가 용납이 안 되는가, 나는 그것을 발표할 용의는 없지만 그것을 검증을 해서 이 사람의 용도는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목회자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이해되세요? 그렇다고 저의 강의를 듣고 낙심하거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지 마세요. 이 모든 것들이 나로 하여금 설교자가 되게 하는 일에 너무 너무 중요한 공부였고, 솔직히 목회하면서 교회 안에서 왜 즐거움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아무것도 고난을 이길 만큼 그런 즐거움은 주지 않았습니다. 보람을 주었습니다. 나는 이런 공부들로 그 모든 시련들을 이겼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은퇴하면서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이 있었지만 거기서 이 대통령직을 계속해오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백악관에서 잠들기 전, 한 시간의 독서였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진리를 알고 배워가는 기쁨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존 오웬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동시대의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The Great philosopher’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지 않아도 그냥 아리스토텔레스였습니다. (이것은 뭐냐 하면 아주 올바른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 여겨졌고) 존 오웬은 학문적인 벙법론에 있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잘 이용했기에 방법론에 있어서는 토미스트라고 불리지만 그러나 당연히 그 사상이 그의 원천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언급합니다.
이에 비해서 플라톤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언급을 하게 됩니다. 플로티누스가 3세기에 살았던 사람인데 (이 사람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이 사람의 사상의 하나가 이것입니다. 마지막에 결국은 회의주의자가 되는 가르침을 주지만 동시에 믿음으로써 사물을 알 수 있다는, 두 개의 상반되는 사상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의 작품 중에 ‘아카데미 코스를 반박함’(Contra Academicos)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불가지론자 내지는 회의주의자들을 겨냥한 작품입니다. 그런 가르침이 플로티누스의 한 축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이 회의주의자의 수제자격은 포르피리오스라는 사람이었고 믿음으로 사물을 알게 된다는 사상을 받아들였던 제자가 있었는데 기독교권에서 유명한 오리게네스(Origenes)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원리강론’(De Principiis)이라는 책이 있는데 고맙게도 사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번역을 누가 했습니다. 그것을 가서 읽어보시면 아주 신비한 얘기들이 펼쳐집니다. 기독교 신학의 형성 초기였으니까 기독교 신학을 정확하게 반영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 책을 보면서 우리들이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가 하면 이 사람과 옛 사람을 비롯해서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신플라톤주의에 얼마나 매료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어거스틴을 읽으면서, 저에게 가장 영향을 크게 끼친 신학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저는 솔직히 말해서 태어나서 여태까지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저자가 천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최초로 이 사람의 책 두 권을 읽으면서 아, 이 사람은 진짜 천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의 한 권이 ‘고백록’(Confession)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거스틴조차도 사실은 플라톤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었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 철학이 영향을 미칠 때 존 오웬은 이런 것들을 절충적인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강의를 오늘 여기까지 해야겠습니다. 도저히 끝까지 나갈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지금 여러분들에게 나누어드린 책 제 1장을 꼼꼼하게 읽으시면 강의된 만큼은 아니지만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약속된 시간이 약 10분정도 남았는데 질문을 받겠습니다. 질문을 하시죠. 저쪽부터 먼저, 큰소리로 해주세요. 본인이 누구신지 밝히시고.
(질문)
아, 그것은 오해를 하시면 안 되는데 제가 기독교가 결국은 플라톤을 따랐기 때문에 이원론주의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는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사고가 그러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플라톤주의와 후에 나오는, 3세기에 나오는 신플라톤주의 사이에는 굉장히 커다란 갭이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플라톤의 사상을 그대로 리바이벌한 것이 아니라 플라톤의 사상에 스토아철학이 들어가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들어가고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사실은 한편으로는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소위 이야기하는 ‘있음의 결핍’이라는 이론을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있음의 결핍이 뭐냐 하면 사물들이 이렇게 있다는 겁니다. 이 사물들이 이런 식으로 결핍이 되었다는 겁니다. 이 결핍이 가장 작은 것이 인간이라면 결핍이 가장 많은 것이 물질이라고 봅니다. 신 이외에 모든 것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이런 식으로 있음의 결핍이 된 것들이 개입됩니다. 이것을 신플라톤주의자는 악이라고 봅니다. 소위 이야기기하는 ‘물질계약설’이라는 것과 ‘존재도’라는 것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얘기하고 싶은 요점은 이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몸부림쳤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은 플라톤주의에 치우치고 어떤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치우쳤지만 알다시피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플라톤적인 사고를 전혀 배제 할 수도 없고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사고를 배척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플라톤은 이데아에 대해서만 말 하고 개별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안 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자는 이야기하지만 궁극적인 보편자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강조점이 어디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신학자들은 모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이렇게 방향을 보이는데, 존 오웬 같은 유수한 기독교 개혁신학자들은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썼고 부분적으로 세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그런 성경에 나오는 구조들을 설명할 때에 이런 사고들을 차용해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왜 기독교 신학이 성립이 되는데 있어서 그런 플라톤주의나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그렇게 영향을 미쳤느냐 라고 하면, 특히 기독교 발생의 초기일 경우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기독교를 체계화 할 때에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세계관 자체가 플라톤주의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은 아시죠? 역사적으로, 세계선교 역사에 유래가 없는 것이 한국입니다. 왜냐하면 선교사가 복음을 들고 한반도에 들어오기 전에 조선의 중요한 사대부들 선비들은 기독교에 대한 사상적 검토를 끝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가 하면 그때 선교사는 안 들어 왔는데 이미 ‘천주실의’같은 책들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중국이 마테오 리치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훨씬 더 이전에 기독교가 들어왔는데 사대부들이 이 중국어로 된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갖다놓고 비판적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굉장히 많은 수는 이것은 유교사상과 양립할 수 없는 사교라고 결론을 내렸는데 놀랍게도 그 중 소수의 사람들이 강한 흡입력으로 이 기독교사상에 끌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여기에 잠재적인 기독교인이 구교를 포함해서 생겨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봅시다. 지금 그런 문헌들이 아직까지도 한국교회의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기독교를 받아들여서 세계에 대해서 설명한다고 이야기할 때, 우주에 대해서 설명한다고 할 때 그것을 쓰고 있는 사람도 유교와 성리학 아래 있던 사람이고 그것을 썼을 때 읽어 줄 사람도 유교의 세계관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무슨 사고의 틀을 사용을 하겠어요? 당연히 유교와 성리학의 틀을 사용해서 이것을 설명해 나갑니다. 그런 방식에서 기독교 신학이 논리적으로 세워지고 체계를 갖추는데 있어서 당대의 모든 사람들이 소통하는 사고방식이었던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사용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얘기하면 ‘아, 그러면 사도 바울의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기독교의 고유성이 있다고 보기보다는 플라톤 사상의 변형이구나’ 하는 이것이 자유주의자들과 비평주의자들의 기독교 신학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래봐야 바울신학이나 이후에 변증가들에 의한 신학이라고 해봐야 결국은 ‘엔네아데스’를 상세하게 설명한 것이 아니냐‘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틀을 차용하면서 독자적인 기독교의 고유한 내용으로 채워간 것이고 그것을 플라톤주의라고 보는 것은 그 플라톤주의의 선입견을 가지고 와서 비슷한 것을 모두 찾아내서 결국 기독교의 독특성을 상쇄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식의 접근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인간 역사의 종교적인 개념들 가운데 어느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매우 독특한 개념들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중보자 사상도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식의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이러한 개념과 유사하게 설명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것에 대해서 비평을 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참된 중보자의 개념이 아니라고 보고 이방 철학에 물든 사상들이 결국은 그런 중보자와 중재자를 이야기해도 결국은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독특성을 허물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한분만 더 질문을 받죠. 여기 먼저 손을 드셨어요.
(질문)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만약 제가 전도사님의 입장에 있다면 그때는 저도 잘 몰랐지만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적극 권장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새로운 책을 먼저 읽으려고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책들이 있죠? 기독교 신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굵직한 기둥과 같은 책이 있습니다. ‘기독교 강요’도 그 중의 한 권이고 마르틴 루터의 ‘신학 총론’같은 책도 그런 고전중의 하나입니다. 종교개혁까지만 국한 지어 이야기 해봅시다. 그런가하면 종교개혁자들의 작품, 존 오웬의 작품, 더 내려오게 되면 루이스 뻘콥이나 안토니 후크마, 약간 뒷시대에 있는 분들이지만 완전히 구닥다리는 아니고 걸쳐있으면서 그 사람들의 주장 중에는 개혁신학의 주장에 어긋난 것이 없는 확고한 기초를 기둥처럼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안 읽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슬쩍슬쩍 배우면서 내가 다 안다고 넘어가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런 기본적인 책들을 아주 정독을 하면서 자기화하는 작업을 하겠습니다.
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여러분, 신대원에서 요새 Mdiv 논문 씁니까? 안 쓰죠? 그럼 무엇으로 졸업을 증명합니까? 졸업 시험 보나요? 성경고사? 그게 아니라 1학년 때부터 졸업시험을 보기 시작해서 학력고사처럼 신학교 Mdiv에서 읽어야할, 거의 외워야할 책을 50권내지 60권을 지정해서 그것들은 그야말로 책을 덮고도 한 권을 강의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습득을 하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 권의 책을 암기하는 것은 15권의 책을 암기하지 못한 채 읽은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것을 기둥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성경신학, 신약신학, 구약신학, 조직신학, 역사신학 그 다음에 실천신학, 선교학 이런 기둥들에 속하는 아주 고전적인 책들을 아주 철저하게 읽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이것과 동시에 일생 동안 여러분께 주고 싶은 충고가 뭔가 하면 한 사람을 파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지 자기 사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대원 다닐 때는 ‘로이드 존스’가 대 히트를 쳤습니다. 덕분에 저도 꽤 읽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들처럼 관심사가 좀 다른 것이었기 때문에 로이드 존스에 폭 빠졌다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로이드 존스에 폭 빠졌고 졸업을 했는데도 로이드 존스와 헤어지지 못한 사람들은 지금 설교를 한 가닥씩 합니다. 처음에는 로이드 존스를 베꼈지만 지금은 완전히 자기화되어서 합니다. 정착지 없이 이리저리 떠돌던 사람들은 지금도 쌈박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엄청나게 로마서를 풀어서 설교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볼 때에는 그렇게) 설교는 기록으로 남겼을 때 150년 후에도 읽을 정도의 내용이어야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시작을 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저처럼 존 오웬이든지 아니면 조나단 에드워즈든지, 어거스틴이든지 한 사람을 전문적으로 파세요. 제가 그렇게 독서를 해본 경험이 얼마나 유리했는지 말씀드리고 싶은 겁니다. 저자 한 사람을 물면 한 몇 년 동안 그 사람한테 올인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읽어서 그 사람과 함께 호흡하고, 그 사람과 함께 울고, 그 사람과 함께 기도하고, 그 사람과 함께 분노하고 하면서 그 사람처럼 성경을 보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븥드는 사람이 동네에 있는 설교자여서는 안 됩니다. 신학적인 깊이가 있고 상당히 많은 분량의 책을 쓴 사람이어야지, 달랑 한 권 쓴 것 가지고 파고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 하면 그 뒤에 있는 사상의 배경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사상의 설교자가 될 수 있습니다. (될 수 있고말고) 10년만 한 사람을 파고나면 어떤 학자들과 마주 앉아서도 그 사람과 이야기할 때 뒤로 물러서지 앉을 수 있는 그런 내공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물론 자기가 일평생 전공한 하나가지고 이야기한다면 못 따라가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목적이 아니니까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지막 한 분만 더 받고 끝내겠습니다.
(질문)
쉽게 설명하면 어렵게 공부한 사람만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쉽게 공부한 사람은 절대로 쉽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렵게 공부했는데 쉽게 설명을 도대체 못 한다 그것은 재능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재능의 문제이지만 어렵게 공부 안했는데 항상 쉽게 설명한다. 그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언젠가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이 처세술에 관한 책이고 일본에서 많이 팔리는 책은 경영에 관한 책입니다. 물론 소설 빼놓고 입니다. 유럽에서는 거의 안 읽히는 책이 처세술에 관한 책입니다. 그래서 유럽 사람들하고 한번 얘기를 해봤는데,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아주 명쾌합니다.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왜냐하면 결국 처세술이라고 하는 것, 어떻게 처신하면 살아가야하는가 그것을 배워야 된다는 것은 뭘 의미하느냐 하면 (자기가 독자적으로) 세계와 인간과 사회, 자기에 대한 분별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짐나지움에서부터 철저하게 사고하는 훈련을 배우고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거기에서는 6학년쯤에 읽는 책입니다. 그러면서 인문학, 문학, 역사, 철학 이런 것들을 철저히 배우면서 대학 교육이 끝나고 나면 그 다음에 독자적으로 그것을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나와서 단답형으로 남의 이야기를 의존해야할 그런 필요를 못 느끼지 않습니다. 그것이 교육이 제대로 된 나라입니다.
이 말을 왜 하는가 하면 ‘시대의 옷을 갈아입으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면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시대의 옷을 안 갈아입고 옛날 옷을 입고 나오면 누가 귀를 기울려 줍니까? 어차피 안 들을 사람은 안 듣고 들을 사람은 듣습니다. 오늘 제가 강의를 하는데 망건을 쓰고 도포를 입고 와서 공자께서 이르기를.. 하면서 제가 여기다가 이런 강의안 대신 그 까맣게 유교 경전을 깔면서 강의를 하면 듣겠습니까? 원판을 못 읽겠는데? 짜증 날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든지 현대 여러분들이 숨 쉬는 화법으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듣는 것은 아니시죠? 많이 온다고 하더니 이것 밖에 안 왔잖아요. 듣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그냥 맡기고, 살아있는 한은 뭔가 전해야 될 테니까 당연히 자기를 알고 역사를 알고 현대까지 알면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작업을 할 때 사람들에게 호소할 확률은 높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사람도 모르고 역사도 모르고 자기에 대해서 분수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이야기하면 아무도 공감하지 못 할 가능성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강의를 통해서 ‘아, 김목사님은 진짜 공부 많이 했구나 진짜 많이 했구나.’ 이런 얘기를 듣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생각해주는 것이 대단한 명예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내가 살아온 발걸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어느 신학교에 가서 이야기를 했더니 그렇게 하면 무슨 열매가 있습니까? 하고 물어봐서 제가 그랬습니다. 무슨 열매를 말하는 거야? 그랬더니 대답을 우물쭈물 합니다. 무슨 열매를 말하는 거냐? 질문의 의도가 뭐냐? 대답을 못해서 제가 그랬습니다. 개혁신학 가지고는 목회가 안 된다고 다들 그러는데 나는 내 신념대로 목회를 했다. 지하실에서 7명으로 시작을 해서 한 번도 내 신념을 양보하면서 설교 스타일을 바꾸거나 내용을 바꾼 적이 없다. 그렇게 하면서 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듣더라, 변화되더라. 물론 더 많은 사람은 와서 듣다가 짜증을 내고 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들 없을까요? 누군들.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존 사람도 있고 예수님의 설교를 듣다가도 안 들은 사람이 있는데 누가 설교하면 완벽한 청쥐자를 가지겠냐 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식으로 해서 지식을 팔면서 산 사람이 아니라 이것이 전부 다 내속에 들어가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리고 나는 이 시각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독자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표절사건이 한국교회에서 있고나서부터 제가 결심을 했습니다. 150년 이내의 설교집은 읽지 않겠다. (나도 신경수씨처럼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니까) 안 읽는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진짜로 안 읽습니다. 나는 내가 독자적으로 성격을 해석을 해내고, 그 결과가 개혁신학의 정신에 부합하고 기독교 전체 정신에 부합하는 결과를 내 놓고, 목표자체는 150년 후에 내 설교 녹취본을 읽어도 읽을 가치가 있는 설교를 매주 매주 남기겠다는 정신으로 설교합니다.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곧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걸음입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안 받고는 진짜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오해하지 마시고 이 강의가 현학적으로 들렸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조금도 현학자체를 추구하면서 살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이렇게 유장한 신학을 공부한 것이 나의 설교를 깊이를 더해주었고 누구의 설교를 베껴야 할 필요 없이 이번 주 설교 뭐하지 하고 토요일까지 안절부절 하면서 다른 사람의 설교집을 넘기지는 않았습니다. 왜? 그냥 성경을 해석하고 풀고 설교할 수 있는 그런 자양분을 나에게 제공해주었습니다.
장자에 보면 “유용지용의 지식은 소용의 지식이요, 무용지용의 지식은 대용의 지식이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릇 쓸모 있어 보이는 지식은 아주 작은 지식이요, 쓸모없을 것 같아 보이는 지식이야말로 큰 지식이다. 이런 뜻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궁금하면 열린 교회 인터넷 홈피에 들오셔서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시리즈를 들어보세요. 저는 이 주제, 시간이란 무엇인가? 자유가 무엇인가?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잘 아고 있는 인간의 선택의 자유와 하나님의 예정이 과연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이런 것들로 여러 해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발표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나 자신의 신앙에서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설교 가운데 파격적인 제목의 설교가 있습니다. ‘열매 없이 알리라’ 열매로 알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열매 없이 알리라, 이런 사유들이 그런 설교를 하는데 엄청난 힘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철학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철학? 저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항상 가까이 놓고 공부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것이 이것을 풍성하게 합니다. 궁극적으로 저의 관심사는 성경을 설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모든 학문의 목표입니다. 마지막까지. 그것이 여러분들이 갈 길을 제시해주어야 할 진리의 선포자로서 사는 길입니다. 예정된 시간을 조금 넘겼기 때문에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