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 관한 Q & A
녹취자: 이 솔
질문 1) 40대 중반이 되니, 방황이 됩니다. 이 방황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요? (녹음불량-편집자주)
A) 40십대 중반인가 교회를 개척하고 6년 정도 세월이 흘렀을 때였습니다. 저하고 여러분하고는 그런 점에서 다른 것 같은데 저는 일찍 갈 길이 딱 정해졌으니까 예전에는 직장생활을 해서 좀 높은 자리에 오르고자 마음을 갖기도 했고 그전에는 학자가 되고자 하는 꿈도 가졌지만 이미 이제 이십 대 후반에 주님을 만나고 삼십 대에 신학대학원에 오면서 너무 명료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십 대 중반에는 제가 이미 학교도 교수도 그만두었습니다. 열린교회 하나를 목회하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여러분처럼 사십 대 중반에 이렇게 방황하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십 대 중반이 되었는데 허리가 안 좋아 고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냥 고쳤으면 되는데 병원 갈 돈이 없는 것은 아닌데 시간이 아까워서 병원에 누워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막 살았던 그때는 (제가) 아직 미숙했기 때문에 사람을 잘 이해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데 사람이 왜 변하지 않나. 한 번 주님을 만났으면 그냥 똑바로 한길을 가야지 왜 저렇게 마련이 많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별 도움이 안 되지요. 다음 분.
질문 2) 구역예배를 가족 단위로 하지 않고, 남녀로 나누어 하신 이유가 있나요?(녹음불량-편집자주)
A) 구역예배를 가족단위로 하는 것 좋습니다. 아주 좋지만 장단점이 있습니다. 아내하고 둘이 앉아 있는데 보통 친한 사이 아니면 자기 고민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또 저렇게 되면 구역예배를 가족단위로 하는 단위로 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히려 개척하면서 쭉 관찰해온 바로는 남성이 여성 교역자에게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쉽지 않고 또 여성이 여성만의 이야기만을 남성 교역자에게 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래서 구역 안에 교구 안에 남성교역자 여성교역자 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둘 다 유익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남편과 아내 모두 다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또 가정이 원만한 사람들로 이루어 졌다면 구역단위를 부부로 묶어서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 부부 단위로 묶어 놓을 경우에 오히려 참석이 더 저조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장일단이 있고 우리 배경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생각을 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신방을 한다든지 행사가 있다든지 또 아니면 체육대회라든지 이런 것들을 남편과 아내를 같이 묶어서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질문 3) 목사님 설교 배경이 주로 영적인 축복에 대해서 많이 강조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물질 축복과 건강에 대한 축복 회복 등등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는 많이 못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 무시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삶에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채워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못 들어 본 것 같아서 혹시 그런 부분에 대해서 간증해 주실만한 것은 있으신지요? 설교 대부분이 영적인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메시지임을 알고 있고 그게 성경에서 말하는 원래 성경 메시지인 것은 맞는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주목적이지만, 병자를 고쳐주시고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켜주신 부분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채워주시는 예수님의 축복에는 실질적인 삶에서 필요를 채워주심도 포함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목사님의 설교 중에서는 그런 부분보다는 거의 영적인 축복 하나님께로 우리가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성경의 주 메시지지만 그 외적으로 우리 삶의 실질적인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A) 정확하게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기독교에서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것은 (자기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최선을 다해서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만 축복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적인 모든 삶도 책임져 주신다. 그것이 지난번 염려하지 말라 시리즈 설교의 핵심 내용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기독교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수 있다든지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든지 어떻게 하면 병이 나을 수 있다든지 그런 것을 가르쳐 준다면 기독교의 본질은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신앙이 좋은 사람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진짜 훌륭한 신앙을 갖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이어갈 수도 있고 심지어는 너무나 예수를 잘 믿었기 때문에 박해를 받아서 가족들이 죽음에 처하거나 자신도 순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저의 설교는 육체적인 축복이 하나님의 복에서 제외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그리고 은혜 충만한 삶을 살고 주어진 자신의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최선을 다해서 살 때 우리는 염려할 필요 없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준다. 그런데 설교할 때 신앙적인 법칙과 육적인 번영 사이에 규칙을 만들려고 할 때 이것이 자칫하면 번영신학적인 요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았더니 하나님이 재정의 축복을 주시고 건강의 축복을 주시고 (명예를 주시고) 등등 이런 것들을 얻었다는 간증을 설교에서 많이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기 때문입니다. 자칫하면 신앙적으로 살려고 하는데도 앞서 말한 세 가지가 해결되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너는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세상에서 무엇을 먹고 얼마나 잘 사느냐 그것을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올바르게 하느냐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삶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나님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람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냐 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 모든 것들에 복을 주신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잘 더듬어 가보면 그래도 밥이나 먹고 살 수 있게끔 된 때가 하나님 믿으면서였다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축복이라는 것은 인간이 어디에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물질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모든 복을 주셔도 부자가 되지 않는 한 자신은 복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만약에 원하는 바가 높은 지위에 올라서 권력자가 되는 것이 비전인 사람에게는 다른 많은 것들을 하나님이 주셨는데도 그 가치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삶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구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만족하는 삶을 살아라. 하나님 때문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라. 그래서 돈이 좀 없어도 하나님이 내게 좋은 가족을 주시고 좋은 교회를 주시고 나의 영혼에 복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그렇게 자족하는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신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바라는 복의 관점입니다.
더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부자이고 여러분들에게 자녀가 있는데 자녀가 여러분들을 떠나서 가출을 합니다. 그러면 배고프고 춥고 위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에 빠질 위험조차 있습니다. 가출하면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탕자처럼 집으로 돌아와서 여러분들과 관계를 올바르게 합니다. 그러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아버지 집안에서 안전하고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누리고 아버지가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이고 심지어는 아버지가 죽으면서도 자기 유산을 자기에게 물려줄 것이고 아버지의 명예를 어느 정도 힘입어서 자신의 사회생활도 할 것이고 모든 것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제 우리가 접근을 해야 됩니다.
Q) 이전에 교회를 다녔을 때(는) 번영 신앙이나 기복 신앙에 대한 설교를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목사님 설교의) 주 메시지 내용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부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목사님 조심스러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 아니 내가 조심스럽다기보다도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기독교 신앙에 관한 관심사가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고 성공해서 부자가 될 것이냐 아니면 오래 살 것이냐 아니면 높은 지위에 오를 것이냐 그런 것이 관심사가 아닙니다. 쉽게 이야기가 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방황하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끊임없이 자살을 결심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비하고 놀라운 사랑을 깨달으면서 매일매일 은혜 가운데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시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시점으로 돌아가 보면 지금 말씀드린 세 가지는(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어떻게 내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나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이고 하나님의 뜻이 나를 부자로 만드시는 것이면 기꺼이 내가 그렇게 될 용의가 있고 부자와 상관없이 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목회자가 되어서 저기 어디 시골이라도 가서 내 이 평생을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하나님이 그런 사명을 저에게 주신다면 그것도 괜찮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예수를 믿은 다음에 몇 년 만 살다가 날 데려 간다고 해도 나는 더 이상 욕심이 없는 그런 사람이 되잖아요. 우리의 경험이잖아요.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갖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가난하게 되고 또 높은 지위에 오르고 낮은 지위에 오르고 하는 그것이 신앙에 의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이냐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과 바른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를 쓰시고자 하는 대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동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지위나 존엄이나 물질이나 우리 인생에 전혀 필요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이 우리 인생을 움직이게 하는 신앙보다 더 큰 동기는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번영 신학은 규칙을 만들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을 잘 믿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물질의 복을 주신다. 그것은 수많은 증거를 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안 맞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설교시간에 그 권사님이 정말 신앙생활을 잘했는데 정말 남편 사업이 잘되게 해주셨고 자녀들에게도 복을 주셔서 첫째는 하버드, 둘째는 스탠퍼드, 셋째는 예일을 들어가게 했다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는데 화가 났습니다. 왜냐면 우리 애들은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도 스탠퍼드 못 갔습니다. 하버드도 갈 확률이 없습니다. 예일은 더더욱 안 됩니다. 아니 수능도 지금 고민하고 있는 애가 무슨 스탠퍼드를 갑니까. 그걸 그렇게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해당되는 사람에게는 감동이 될 수 있지만 해당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말 실망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결국에는 해도 해도 안 되는 애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애들을 길러봐서 알지만, 그 아이가 회심하고 은혜 받고 놀랍게 변화되어 그럴 수 있는 애들도 있는데 그런 애들은 기본적으로 머리가 되는 애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뭐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됩니까. 제가 아는 한 사람은 학교를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자살을 했습니다. 그런 삶이 낫습니까. 아니면 의사 갈 실력이 도저히 안 되어서 간호학과 정도 나오고 아니면 간호조무사가 되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의지하면서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서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비록 의사들이 받는 월급의 1/5도 안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이 행복해요.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모두 의사가 되면 자살 하냐. 그것도 아닙니다. 의사가 되고도 계속 착하게 신앙생활 하면서 돈과 명예와 상관없이 사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를 이제 설교의 관심사는 기본적으로 여러분들의 관심사에서 설교가 시작되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하나님의 관심사하고 어떻게 일치시키느냐 하는 것이 설교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질문 4) 제가 책을 읽다가 같은 장면에서 매년 감동을 받는데 목사님도 읽으신 톨스토이 부활의 대목입니다. 형제님들하고 나누고 싶고 목사님의 해석도 듣고 싶어서 1페이지 정도 낭독하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메일도프랑 어떤 노인이랑 대화하는 씬인데 어떤 영성에 관련되어 나옵니다. 제가 감동을 받는 건 왜 받는지도 잘 모르겠고 정확한 해석도 궁금해서 가져왔습니다.
톨스토이의 <부활> 중
도시에 있는 오오트니치 성당의 둔탁한 종소리가 강물을 타고 들려왔다. 메일도프 곁에 있던 마부와 짐마차 수레꾼들은 하나둘씩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하지만 난간에 바싹 붙어 있던 한 노인만 성호를 긋지 않았다. 메일도프는 처음에는 이 노인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크지 않은 키에 머리털이 헝클어진 노인은 고개를 치켜들고 메일도프만 응시하고 있었다. 노인은 더덕더덕 기운 농민복에 두꺼운 모직바지를 입고 너덜너덜해진 장화를 신었으며 어깨에는 작은 가방을 메고 머리에는 닳아빠진 높은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늙은 양반 당신은 왜 기도를 올리지 않소. 메일도프의 마부가 모자를 고쳐 쓰며 물었다. 세례를 안받았소. 누구에게 기도하라는 말이오. 헝클어진 머리에 노인은 단오하고 공격적인 어조로 단어 하나하나를 꺼내며 즉각 대답했다. 누구긴 누구겠소. 하나님께죠. 마부가 비꼬는 투로 말했다. 하나님이라는 분이 어디에 계신지 나에게 보여줘 봐요. 노인의 말은 진지하고 강건한 기류가 흘렀다. 마부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자 약간 당황했는지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다. 마부는 말문이 막히면 주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까봐 재빨리 대답했다. 어디라니요. 당연히 저 하늘 위에 계시지요. 당신이 거길 가 봤소? 가보고 말고는 중요한 게 아니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은 만인이 다 알아요. 그 누구도 어디에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소. 하나님은 자신의 품안에 계신 독생자 한분만을 지상에 보내셨을 뿐이요. 노인은 엄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즉각적으로 대꾸했다. 보아하니 그리스도 교인이 아닌가보오. 당신 불리파지. 땅굴이나 파서 땅굴에나 기도하세요.
마부는 채찍을 허리춤에 쑤셔놓고 보조 말에 엉덩이 끈을 고쳐주며 말했다. 누군가 웃음을 터트렸다. 영감. 그럼 당신의 신앙은 뭐요. 짐마차 옆에 있는 중년의 사내가 물었다. 난 신앙이 없소. 난 나 자신 말고는 누구도 믿지 않아요. 노인은 언제나처럼 빠르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이지요. 메일도프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실수할 가능성도 있잖아요. 절대 그럴 수 없소. 노인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 다양한 종교가 있겠습니까? 메일도프가 물었다.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나오는 믿음이니까 종교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저도 남을 믿었던 때가 있었고 타일가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벗어날 생각조차 못할 정도로 지독하게 방황했습니다. 국유, 신규, 안신일 엄숙일, 폴리스트, 사제인성파, 사제부정파, 오스트리아파, 몰로칸, 거세파 모든 종파는 자기만 옳다고 합니다. 모두 눈먼 개처럼 각자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가 말하는 영성은 하나입니다. 당신 안에도 제 안에도 저 사람 안에도 똑같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영성을 믿으면 결국 모두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믿어야 되요. 그래야 만인이 하나가 됩니다. 노인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사방으로 고개를 돌려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 당신은 오래 전부터 그런 믿음을 가지고 계셨던 것인가요? 메일로프가 물었다. 저요. 오래되었습니다. 벌써 23년째 쫓겨 다니고 있습니다. 쫓겨 다니다니요? 예수님이 쫒겨났듯 저도 그렇게 쫒겨 다니고 있습니다. 재판도 다하고 사자에게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학자들과 바리세파에게 잡혀가기도 했고 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아무 짓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전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니 이름이 뭐냐 묻더군요. 제가 저 자신한테 어떤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나봐요. 하지만 전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저한테는 이름도 없고 집도 없고 조국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저 자신일 뿐입니다. 이름이 뭐냐구요. 제 이름은 인간입니다. 나이는 저는 나이를 세지 않습니다. 셀 수가 없어요. 왜냐면 전 과거에도 존재했고 미래에도 항상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의 아버지 어머니가 누구냐 묻더군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저에게는 아버지 어머니가 없습니다. 저에게는 오직 하나님과 대지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입니다. 대지가 어머니입니다. 그들은 또 황제를 인정하느냐 묻더군요. 인정 못할 것 없지 않습니까? 그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황제이고 저는 저 자신에게 황제입니다. 그랬더니 너와는 대화가 안 되는구나 하고 말하더라구. 그래서 제가 대답했지요. 저와 대화해 달라고 부탁한 적 없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괴롭히더군.
지금 어디로 가시는 중입니까? 메일도푸가 물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갑니다.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없으면 빌어먹어야지요. 노인은 도아선이 건너편 강가에 거의 도달하자 말을 마치고 자신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을 의기양양하게 둘러보았다. 도아선이 건너편 강가에 닿았다. 메일로프는 지갑을 꺼내 노인에게 돈을 주려고 했지만 노인은 거절했다. 저는 돈을 받지 않습니다. 빵은 받지요. 노인은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없어요. 절 모욕한 게 아니니까요. 그럴 수도 없고.
목사님, 이 노인의 영성이 올바른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노인의 말 중에 이렇게 신자가 주님이 주신 계획이라는 그런 마음을 믿고 흔들림 없이 가면 좋겠다는 부분에서는 은혜를 받았는데 이 노인의 태도가 과연 크리스찬으로서 올바를 수 있는지 궁금하고 그런 것들이 궁금했습니다.
A) 이야기를 하면 길어지지만 여기 문학 담론시간도 아니기에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하도 읽은 지 오래 되어서 마음도 멀어졌습니다. 톨스토이는 쉽게 이야기하면 접근하는 방법이 플라톤적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플라톤적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냐면 비록 자기가 지키지 못할지라도 신이 있고 도덕률이 있고 인간은 그런 도덕률에 맞추어 살 때 인간은 그 상호질서 안에서 가장 행복한 것을 얻을 수 있다. 그게 톨스토이의 기본적인 사상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정신과 영혼 모든 것 안에 그것으로만 가득 찬 사람이 있을 수 있겠어요. 그리고 톨스토이가 그 당시에 제가 보기에는 참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지금 보면 기독교 신앙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유치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면 신앙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질서를 세우라고 가르치고 자연인 톨스토이는 여전히 자기를 중심으로 삼으면서 살아가려고 하는 두 개가 톨스토이의 마음속에서 충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다 기억나지 않지만 그 대목에 대한 저의 생각은 톨스토이가 젊었을 때 느꼈던 실존적인 고민을 인물 속에 투사시켜서 그려낸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인물이 톨스토이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고 했던 그 인물은 아닐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톨스토이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었던 인물은 메르도프입니다. 그 사람 속에 참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기를 투사시켰고 나머지 많은 인물들을 사용해서 자기가 오류에 빠지거나 혹은 그릇된 생각 세상 사람들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이나 이런 것들을 투입시켜서 부각시켜서 궁극적으로 많은 고난과 방황을 딛고 결국은 메르도프가 마지막 그 모든 인간성을 카츄샤와 더불어서 완성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생각합니다. 워낙 오래된 거라서 이 정도까지밖에 설명을 못 드리겠습니다.
Q) 저는 몇 년 동안은 노인처럼 하나님이 좋아서 어떻게 보면 좀 폭력적이고 직설적으로 사람들에게 교회 다니자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너무 종교에 대한 강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성이 생겼습니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못사는 것에 대한 자책이 커서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고 마음으로 기도하다 보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떨 때는 노인처럼 폭력적이었던 나, 어떤 때는 그냥 방임 방관하는 나, 이 둘 사이에서 한 10년 흘렀던 것 같은데 이 신자의 태도가 어떻게 하면 지혜롭고 무엇이 좀 사랑을 듬뿍 담은 행동인지 고민이 될 때가 많습니다.
A) 내일 설교에서 답을 해드리겠습니다. 자 그다음에 이제 우리 하나님을 찾는 것과 버리는 것에 대해서 같이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 김정환 집사님 오늘 설교를 나누어 주십시오.
질문 5) 역대상 28장 9절 말씀이 본문이고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깊은 뜻을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관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래서 다윗은 먼저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다윗은 자기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왕이 될 솔로몬에게 군병을 늘려서 그 어떤 나라도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하도록 이스라엘을 강력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자기를 이어서 이스라엘 왕이 될 솔로몬에게 이스라엘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의 하나님, 자기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말은 다윗이 평생 살면서 실제로 경험한 죽어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자기가 사울과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쫓겨 다닐 그 절체절명 위기 상황에서 살려주신 하나님, 온 가족이 자기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버리지 않으시고 지극히 낮고 천한 신분에서 지극히 존귀한 왕이 되게 하신 하나님, 골리앗과 전쟁을 포함한 수많은 전쟁에서 죽지 않고 살게 해주신 하나님, 이 모든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해주신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을 가리켜 다윗은 내 아버지 하나님 즉 내 하나님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들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알면서 소망하는 것과 또 현실하고는 약간의 간격이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살려고 노력은 하지만 또 어떨 때는 힘들거나 무너질 때도 있고 그런 상황 속에서 성경에서 다윗이 솔로몬에게 요구했던 것도 솔로몬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을 솔로몬이 하나님을 알면서 따라가면 당연하게 그 나라도 바로 설 것이고 여러 가지가 될 것을 자기 경험을 통해서 솔로몬에게 이야기했는데 솔로몬은 다윗이 생각했던 만큼 따라가지 못했던 측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방향일 수도 있지만 참 어렵습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사는 것이 참 힘든데 우리에게 잘 가르쳐주시는 목사님의 신앙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A) 여기서 기본적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라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계속해서 신앙은 내가 왜 이럴까 고민을 하는 것만이 신앙이 아니라 전심으로 사랑하는 아이가 물에 빠졌으면 풀숲에 앉아서 수상구조대를 부를까 헬기를 부를까 배트맨이 오기를 기다릴까 내가 저기에 들어가면 바지가 물에 젖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온 몸을 던져서 자신이 죽더라도 자기가 헤엄을 못 치더라도 아이에게 뛰어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찾는 것이 신앙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백임봉 집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어떤 교훈을 발견하실 수 있었습니까?
질문 6)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신앙이 설 곳이 없다는 말씀에 마음이 와닿았습니다. 지난주 설교 때 미워할 때 마음이 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깨어지었을 때 깨어진 마음이 자꾸자꾸 불어나는 것을 이성으로는 압니다.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가 기도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는데 죄가 내맘에 들어오면 계속 커지는 것처럼 마음이 깨어졌을 때 이성은 알지만 그 이성을 거부하고 계속 깨어진 마음을 키우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신앙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체험하지만 깨어진 마음을 그대로 두려는 마음도 발견하게 됩니다.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신앙이 설 곳이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머리만 아는 지식이다는 부분이 맘에 와닿았습니다.
A) 그래서 결국은 이 설교가 그런 문제에 대해서 어떤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까?
Q) 하나님께 마음을 쓴다는 것은 전심으로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마음이 전적으로 지배를 당할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는 것이 아니면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쭉 이어서 말씀하셨는데 결국은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올바른 신앙을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A) 제가 유튜브에서 인상 깊은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살아 있을 때 마스터 클라스를 열었습니다. 마스터 클라스는 대가 앞에서 학생들에게 한번 연주를 해보라고 하여, 대가가 학생들에게 팁을 주는 것입니다. 거기에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겠습니까. 그런데 한국 사람이 한 사람이 마스터 클라스에 들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토스카의 유명한 아리아 중에 하나인 ‘별은 빛나건만’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도 별로였습니다. 목소리는 외국 유명한 사람에 미치지 못하지만 전혀 못했으면 거기에 뽑히기나 하겠습니까?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한마디 했습니다. 야 너는 한번 생각을 해봐라. 어떻게 노래에 느낌이 없냐? 지금 토스카에 나오는 이 아리아는 애인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리고 허무한 마음에 밖으로 나갔는데 별은 빛나고 있는데 애인은 죽었고 자기는 쫒기고 있는 신세고 사랑하던 사람이 사라졌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부를 수 있냐? 그 마음이 전해지지 않냐? 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설교자로써 파바로티의 코멘트를 들으면서 이 코멘트는 설교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진짜 필요하면 사람이 간절해지는 법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그 이야기를 설교시간에 한 번 이야기했었는데, (옛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권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미국 비자가 달려있어서 잘 넣어둔다고 책 사이에 넣는다고 넣었는데 (나중에 보니 없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출국 날짜가 다가오는데 비자를 다시 하려고 하니까 너무 복잡한 것입니다. 비자를 얼마나 찾았는지 한 3일 동안은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누워도 여권생각이 나고 집이 4층이었고 1층에 제 방이었는데 잠자다가도 1층에 뛰어내려와 이 책 저 책에서 뒤지고 찾았습니다. 결국에는 못 찾았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을 찾는다는 우리의 인생 또는 신앙의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생각은 많고 걱정은 많이 하고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닌데 간절히 찾지를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찾는 것은 결국은 세 가지 초점으로 나타나는데 말씀과 기도와 자신의 삶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한테 푹 빠졌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모든 사물들이 오직 그 사람과 연관 지어서만 생각이 됩니다. 그런 상태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너희가 나를 만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해병대 사령관이 별이 셋인데 그분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아침에 차가 데리러 와야 하는데 아직 안와서 이 녀석이 왜 안 오나 해서 행길(큰길)에 잠깐 나왔더니 육군 중위가 거기에 서있었습니다. 그런데 경례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령관이) 일부러 육군 중위 앞으로 걸어갔는데 (그래도) 경례를 안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령관이 너무 기가 막혀서 어이 중위 하고 불렀습니다. 그제야 중위는) 별 셋이 보였고 큰소리로 경례를 했습니다. 중위가 쓰리스타를 만났을 때는 어땠을까요? 보통이 아니었겠지요. 자네는 육군 중위인데 왜 나에게 경례를 안 하나 했더니 육군 중위의 말이 걸작입니다. 애인을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자기가 약간 늦은 것 같은데 (애인이) 안 보여서 열심히 찾다가 사령관님이 안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찾는다’라는 것은 그런 점에서 해당되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많고 아무리 하나님에 관하여 많이 들어도 간절히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도록 간절히 찾으라는 것이 이 설교의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다른 분에게 들어봅시다. 백준호 집사님.
질문 7) 설교를 들으면서 여섯 가지의 주제를 만들어 봤습니다. 배경은 다윗은 솔로몬에게 왕위 계승을 하도록 열조의 하나님을 어떻게 찾고 만나고 섬겨야 할지를 자신의 삶을 통한 경험과 교훈을 통해 당부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파란만장한 생애 가운데 하나님께서 늘 동행해주심을 경험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모범을 따라 솔로몬도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 역대상 말씀을 통하여 솔로몬에게 당부하게 됩니다.
저는 신앙생활의 진보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우리 인간의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것과 하나님과 버리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등을 말씀을 통해서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우리 생에 있지 않으면 신앙에 있어서 진보가 있을 수 없다고 하셨고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하나님을 내가 마음으로 진실하게 추구하는지 점검해봐야 한다는 말씀에 깊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의 일반적인 세속적인 영역에 하나님의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합당한 자를 찾으시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온전히 합당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슬퍼하신다는 말씀에 저 자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신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다윗도 하나님께 대하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안을 누렸고, 나의 마음도 하나님이 다 들여다보시고 그분에게 합당하신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늘 가변적이고 불완전하여 신앙을 받아들이면서도 또 불신앙을 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마음으로 섬김이요, 마음으로 섬김이 아니면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생각이 마음에 가득한지 하나님이 계실 마음에 자신이 있는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지 점검을 해봐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것이 아니면 결국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의 증거로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들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는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 결핍, 죽음의 공포, 사람들을 향한 증오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의 몫인데 행여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 않기에 우리의 삶 또한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심으로 당신을 찾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또 하나님을 만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열조의 하나님 안에서 자유한 자의 삶을 추구해야할 것입니다.
A)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집사님 생애에서 가장 하나님 간절히 찾았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Q) 하나님을 내가 깊이 삶에서 나의 호흡과 같이 느끼고 산 적이 별로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으로써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좀 더 이때까지 내려놓지 못한 삶의 솔직한 부분들을 다 내려놓고 정말 제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인지 그 증거들을 위해서 기도하려고 합니다.
A) 한광석 집사님. 언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습니까? 그때는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Q) 간절히 찾던 적은 두 번 기억이 나는데, 박사를 못할 것 같아서 머리도 아프고 두통이 심해서 그때 학업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하나님께 회복시켜달라고 책임져달라고 매달렸던 적이 기억이 납니다.
A) 그때 마음이 어떠했습니까.
Q) 매일 새벽기도 다니고 부르짖었죠. 살려달라고.
A) 그렇지 않을 때와 어떻게 달랐어요. 하나님을 찾지 않을 때와 마음이 어떻게 달랐습니까.
Q) 절치절명했습니다. 그것이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복 못 받으면 나는 이제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요즘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까.
Q) 요즘은 아닌 것 같습니다.
A) 그러면 방법이 많이 있나 보지요?
Q) 다른 방법이요?
A) 절체절명 상황은 아니여서 그렇습니까?
Q) 여전히 절체절명의 순간이긴 한데 하나님을 찾는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들을 제가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제 자신이 인식했습니다. 설교말씀을 듣고 제 자신을 비췄을 때 반성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제가 스스로 부풀려서 나는 이 정도면 괜찮다 라고 속이고 그 반대적인 모습 예를 들어서 제가 하나님을 찾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버렸던 순간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은 모두 애써서 외면하면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잘 서 있다고 제 자신을 속인 것을 이 설교를 들으면서 더 비춰보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순간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셨구나 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아 내가 그렇게 불순한 사람이구나.
A)우리 다른 분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이용수 집사님. 읽으면 재미없으니까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줘요.
질문 8) 사실 저는 간절하지가 않습니다. 생활이 편합니다. 관계에서도 큰 어려움도 없고 사실 한 집사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절대절명인 어떤 상황이 벌어지면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잖아요. 안 믿던 사람이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하나님을 찾는데 그런 상황들이 저한테는 제가 온유한 건지 운이 없는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상황들이 저한테는 없었습니다.
사실 간절해지는 법을 여쭈어보고 싶다. 제가 어떻게 해야 간절해질 수 있는가?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찾을 수 있는 간절해지는 상황이 간절해질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 한번 여쭈어봅니다. 말씀 중에 잠깐 보면 말씀에서 기도해서 우리의 삶에서 그런 간절함이 언급하셨구나. 아 내가 말씀을 덜 읽어서 기도를 덜했기 때문에 간절함이 없나보다 나름 또 생각을 했습니다. 간절해지게 하나님만 바라고 제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그런 희열이 기쁨이 과거에는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최근 10년 동안에는 전혀 아무 무미건조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A)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받쳐주고 집안도 후지지 않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나이도 젊어요. 나도 저 여자가 나쁘지 않아요. 좋아요. 그런데 이 여자가 여러 남자에게 집적거리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그 여자와 결혼할 사람이 있을까요? 아니죠. 만약에 여러분이 그 여자에게 일체의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집적거리지도 않겠지요. 그럼 한번 생각해보세요. 비록 그 여자처럼 탁월하게 아름답지는 않고 돈이 좀 없고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 물론 나도 그 여자가 좋아야겠지만 그런 여자를 선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죽어도 싫은 사람하고는 못하겠지만 애정의 정도가 비슷하다면 쪼금 차이가 난다면 여러 남자에게 지금 집적거리고 있다고 파악되는 여자를 난 버릴 것 같습니다. 물론 거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3명을 다 짤라내고 나한테만 집중하게 만들어야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근본 자체가 집적거리는 여자니까 나는 싫다.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잖아요. 남자가. 그게 정상이잖아요. 똑같이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런 여자에게는 관심을 안 가지면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을 안 갖는 것은 아닌데 세상도 집적거려보고 하나님에게도 집적거려 보고 그러니까 무엇인가 강력한 필링이 안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집사님은 나는 그렇게 절실한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성경은 그런 태도를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계시록을 보면 나는 부자다.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본인의 느낌이고 그의 참모습은 부족한 것이 많고 모자란 것이 많고 옷은 벌거벗고 있고, 눈도 안 보이고 그럼 처지에서 살아가는데 본인은 그것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그럼 느끼게 해주는 것이 무엇이냐 지하실에 교회를 개척할 때인데 예전에 섬기던 교회가 5, 6백명 모이던 교회인데 거기 권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정말 매일 밤 교회에서 철야하시는 성경에 나오는 권사님 같은 분이셨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밤 11시에 시작하면 새벽 4시까지 한 문장입니다. 한 문장으로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저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저하고 같이 기도하고 싶어 하셨는데 하루는 소고기 한 근을 까만 비밀봉지에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지하실에 목회하는 저에게 내오면서 전도사님 이거 꼭 맛있게 드시라고. 그분이 하는 말이 자기는 너무 슬프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니까 자기는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자기만큼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사람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자기를 보여주셨는데 마치 뭐냐면 커튼을 닫아 놓고 막 이불을 개다가 할머니 묘사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이불을 열심히 개키고 그렇게 했는데 커튼을 착 걷으니까 햇빛이 쫙 들어오면서 얼마나 먼지가 많은지 억 하게 되는 내가 얼마나 죄가 많은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심오하게 회개를 하셨어요. 그리고 회개를 끝날 때 하나님이 데리고 가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 장면을 매우 심오하게 느끼면서 결국 하나님이 너무 사랑하셔서 마지막에 그 영혼을 깨끗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았던 영혼을 세탁해서 데리고 가시는구나 하고 느꼈거든요.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그냥 간절해질 수 없습니다. 사람이 간절해지는 것은 심리적으로 어떤 것이냐면 도달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는 사람은 간절하지 않습니다. 큰 인생의 파도가 몰려와도 그냥 눈감고 죽자. 이렇게 체념 한 사람은 간절해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죽을 수 있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될대로 되라. 난 그냥 죽고 싶다. 그리고 입술을 깨무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절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떻하든지 내가 여기에서 살아갈 아이들과 가족들과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때 현실은 죽을 것 같은 것입니다. 그 격차를 느낄 때 자기가 이것을 극복했을 때 느끼는 행복과 극복하지 못했을 때의 불행을 대조시키면서 갈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갈망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만족이 있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만족을 느낀다면 그것은 말하자면 올바르지 않은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읽고 마음으로 들어서 하나님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셨을 때의 나와 그렇지 않은 지금의 내가 얼마나 큰 격차가 있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써 갈망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세속적인 갈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서 다 똑같이 그냥 그저 그렇게 삽니다. 친구들이 어울리면 별로 못 느낍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너무 잘나가는 친구를 만난 것입니다. 어떤 마음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누구는 참 저렇게 잘나가고 나는 초라하다. 라는 느낌도 갖겠지만 또 한편으론 내가 이렇게 안일하게 살아선 안 되겠다. 나도 무언가 좀 열심히 살아서 저 친구처럼 한번 잘 되고 싶다. 라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겠어요?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훌륭한 신앙 내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더 훌륭한 믿음 이런 것들에 도전을 받으면서 거기에서 우리의 갈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망은 왜 중요한 것이냐면 이런 이치입니다. 여러분 어렸을 때 돋보기 갖고 장난치잖아요. 겨울에 바람이 생생 불어서 고드름이 달렸는데도 돋보기를 딱 펼치고 우리는 먹지를 항상 갖다놓고 장난을 했어요. 까만색이 빛을 많이 흡수하니까. 먹지를 갖다 놓고 딱 조정해서 초점을 맞추면 먹지가 타기 시작해요. 심하면 불이 붙어요. 우리의 마음도 똑같이 하나님을 향해 딱 고정이 되고 초점이 맞으면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놀라운 정신의 작용들이 일어납니다.
한원석 집사님이 말씀하셨듯이 박사 과정을 다 못한 어려움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이 다 열렬히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못하게 되었으니까 또 다른 길은 없고 결국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의 초점이 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 방법과 하나님이 당신을 찾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아서 당신을 간절히 찾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건 환경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만의 문제가 아니라 햇빛이 아무리 비춰도 초점이 맞춰지지 않으면 결코 불붙지 않듯이 태울 수 없듯이 이런 나무 같은 것도 태우잖아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합니다. 그건 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매달릴 때 그때 찾는 것이 무엇인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연애하고 나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거랑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최복진 집사님이 발표해보겠어요?
질문 9) 설교를 7주째 다 들으면서 이번 설교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하나님으로 가득하게 해달라고 저 나름대로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고 괜찮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전심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면 간절히 찾는 것이 아니면 버린 것이라는 말씀 그다음에 하나님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서 굉장히 많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간절히 찾는 것은 아니었구나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또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이 (심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 대신에 불순종을 택해 사는 모습들 아 그것이 불순종이고 그것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구나 이런 것들. 매일매일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고 또 마음 안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이 가득차야 한다는 그런 말씀에 도전을 많이 받았습니다.
A) 연애하고 비슷해요. 뜨겁게 사랑하다가 마음이 변했어요. 그래서 같이 있어주고 만나자고 하면 전화하면 만나주고 밥도 먹고 그러는데 말하잖아요. 오빠 나 버렸어.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같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면 그건 버리는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버린다는 것이 우리들이 막 남녀관계가 깨져서 막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고 발로 차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 말로 아자브입니다. 아자브가 뭐냐면 떠나다 입니다. 떠나다. 네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 첫 번째 쓰여진 단어입니다. 네가 부모를 떠나 아자브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으로 연합되어 있는 단단한 마음과 정신의 결합이 이완될 때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의 특성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그렇게 말하잖아요. 누가 상대방이 있는데 여성이 있는데 한참 뜨겁게 사랑하다가 만나줘요. 그리고 공식적으로 난 너 버렸어. 헤어져. 이런 이야기는 안 합니다. 결혼 생각해봐야지.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계속 만나서 다른 사람 문자 주고 받고 갑자기 나 급한 일이 있어서 가봐야겠다. 그런 일을 반복할 때 그때 무엇을 느끼냐면 아 이 여자는 나를 버렸구나. 눈치를 채잖아요. 그것을 그대로 대입하면 너무나 쉽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결국은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열애에 빠진 삶입니다. 아무리 부부가 같이 살고 같은 집에 있고 아니면 어쩌구저쩌구 다해도 기본적으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고 서로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실상 마음속으로 이혼한 것입니다. 그렇게 생소한 표정을 지으세요.
질문 10) 예전에 목사님 책에 보면 성경공부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성경과 원어성경을 준비해서 공부하라 하시는데 원어성경을 저희가 성경을 읽으면서 원어성경을 어떻게?
A)원어성경을 읽으려면 공부를 해야하니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제가 권하고 싶은 것은 이런 것입니다. 굳이 우리말 성경이 정말 그런지를 확인해보고 싶다면 두 권 성경은 갖고 있으면 됩니다. 정 없으면 한 권만 있으면 됩니다. 킹 제임스 버전 1판입니다. 그런데 그 영어가 쉽지 않습니다. 킹 제임스 버전 1판입니다. 뉴 킹 제임스 버전도 있습니다. 킹 제임스 버전이 가장 번역이 정확합니다. 그리고 현대어로 된 성경 가운데는 NIV버전입니다. 현대어로 되어 있는 성경 가운데는 가장 원문에 근접해 있습니다. 그러나 100%라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제가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것은 성경의 굉장히 많은 불량을 제가 27개 번역을 대조하면서 읽은 사람입니다. 제가 강의했고. 그래서 영어로 되어 있는 성경 가운데에서는 킹 제임스 버전을 능가할 버전이 없습니다. 일단 킹 제임스 버전을 굉장히 존중해줍니다. 그건 탁월할 번역입니다. 그래서 원어까지 그건 설교자들에게 강의한 내용이고 우리말 성경이라도 읽으세요. 김태진 집사님.
질문 11) 제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찰하신다는 부분에 은혜를 받았고 말씀을 들으면서 윤동주의 서시가 생각났습니다. 일제시대 때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말 마음에 티끌 하나도 없을 만큼 순수해지고자 했던 윤동주 시인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생각해보았고 제가 말씀을 통해서 느낀 바는 신앙생활을 제가 그래도 꽤 오래 해오고 있는데 외적인 것에 좀 많이 집중을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에 대학교 다닐 때에는 신앙생활을 공로 정도로 생각을 해서 예를 들어서 예배 참석하고 꾸준하게 기도 모임에 참석을 하면 하나님께서 이걸 공로를 인정해주셔서 축복을 주신다. 이런 유치한 신앙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그런 외적인 것에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고 예배 참석한다고 하고 또 심지어는 열린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에도 제가 어떤 섬김을 하고 예배를 참석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하기는 하지만 그 중심에 제 자신을 되돌아봤을 때 진짜 하나님을 사랑해서 내가 이 영혼을 사랑하고 예배를 참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기보다는 제가 좋아서 제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 마음의 위로와 평안을 얻기 위해서 그런 목적으로 예배에 참석한 경우도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섬김을 하면서도 이 섬김은 외국인 선교에서 섬김을 했었는데 그럴 때도 이건 내가 해야 될 일이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섬김을 해야 된다는 사명감이 있었는데 그 사명감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진짜 하나님 사랑 안에서 한 것이 아니라 제 만족을 위해서 이렇게 외적인 행위를 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는 그런 것도 외적인 섬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감찰하신다.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좀 저 자신의 내면을 다시 한번 되돌아 봤습니다.
A)그다음에는 정인창 집사님.
질문 12) 저는 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6년 전까지만 해도 창피한 일이지만 열린교회에서 쌀까지 받아서 도움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제가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제 잘못으로 교도소에 갔다온 적도 있습니다. 저의 큰 애가 사랑부에 있습니다. 집사님이 잘 아시는데. 25주 만에 건물 옥상에서 타인에 의해서 애기 엄마가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본 거예요. 자살하는 것을. 그래서 애를 일찍 낳았어요. 그래서 제가 총각 때 벌어놓은 돈으로 산 집도 그 애 때문에 다 버렸습니다. 사업이 잘 나갈 때 주님을 멀리했습니다. 한 10억 가까이 하는 집에 살다가 백만 원짜리 집까지 살아봤습니다. 제가 지금 5년 동안 계속 열심히 교회에 나오고 기도를 좀 하고 생활을 하다보니까 너무 지금이 행복합니다. 큰 애가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주신 것도 저한테는 너무 고마운 거예요. 정상적인 애들보다 더 사랑스럽습니다. 하나님을 경험상 멀리했을 때 항상 시련이 왔었고, 내가 하나님하고 평탄한 (관계를) 계속 이렇게 해오다 보니까 그 기간 안에는 너무 행복하고 이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A)하나님을 멀리 떠날 때 인생의 모든 어려움이 왔다는 것을 체험했다는 것입니까?
질문 13) 저는 거의 있다가도 왔구요 제가 상대방 음주 차량이 정면으로 부딪쳐서 제 가족이 4명이었는데 차가 6번 굴러서 저는 차에 끼어서 두 다리를 절단을 하라고 했습니다. 큰 병원을 몇 군데 갔는데도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이 보험을 안 들어서. 그래서 제가 그쪽 상대방 부모도 애를 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너무 불쌍한데 살더라구요. 그 당시에는. 그래서 돈 10원도 안 받고 구속상태에서 풀어주었어요.
A)그쪽도 가난한 집이었군요.
Q) 철산동에서 살았었습니다. 청소하시던 분이셨구. 애기 엄마에게 엄청 혼났습니다. 돈 10원 안 받고 합의했다고.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맘도 편하구요. 부부생활도 좋고 애들하고도 너무 좋습니다. 너무 맘 편하게 열린교회 나와서.
A)그러면 한번 옛날에 그렇게 돈 많이 벌고 잘 나갈 때 본인에게 뭐라 충고해주고 싶습니까?
Q)제 자신에게는 자만하지 말라.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잘나갈 때 저 때문에 내가 잘해서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힘들 때 주님을 붙잡고 기도하고 마음도 편해지고 또 내가 꼭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 않거든요. 그냥 버리고 내가 기도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되면 되는대로. 이렇게 항상 감사하게.
A)욕심을 버리는 지혜를 얻으셨군요. 박정문 집사님.
질문 14) 저는 마음을 다해서 찾지 않으면 버려진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아침에는 기도생활도 하고 출발하지만 회사 안에서는 다시 또 우리의 삶은 우리의 욕심이나 우리가 가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살다보면 또 저녁에 가족에 와서 끝내는 하루가 되는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셨듯이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감찰하시고 마음을 보시는 분인데 우리의 마음은 어떤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말씀이 좀 떠오르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하는데 내가 과연 그리스도인이고 내 육신과 탐심을 못박았는가 하는 부분에서 좀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A)최정운 집사님 오셨습니까?
질문 15)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주머니 비유를 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에 말씀하셨던 제 지위 향상과 세상의 인정과 부유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바란 것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실 제가 이번 세미나도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께서 저를 찾으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항상 제가 세상으로 빠지거나 조금 더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하나님이 찾아주심을 세미나를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얘기 들으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지금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제가 저는 참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제가 사실 좀 인생을 살아오면서 잘 안 되었거나 힘들었을 때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원래 그런 생각도 했었는데 결국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버렸더라도 어느 순간 저를 챙겨주시더라구요. 잡아주시고. 열린교회에 오게 된 것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세미나도 인생에서 저는 하나님의 합한 자 다윗 같은 삶을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진짜 하나님께서 찾아주시고 저를 붙잡아주시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 감히 하나님을 제가 알 수 없고 알려고 노력하는 것도 저에게 과분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저 하나님을 붙잡고 잡아주시면 잡아주신 해주시는 것에 따라가고, 하나님을 잘 알고싶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A)그다음에 나준균 집사님 오셨어요?
질문 16) 염려 시리즈를 통해서 그동안 제 삶이 살면서 교과서적으로만 신앙생활을 알고 진심으로 제 생활에 적용했을 때 과연 그대로 살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지난주쯤 저에게 큰 시련이 왔고 그거에 대해서 이제부터 아까 언제 가장 저의 신앙에 하나님을 찾아야 하냐고 그때가 지금인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창피한데 이렇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리고 더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A)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김학민 집사님 오셨어요?
질문 17) 하나님을 겉핥기식으로 제가 바라만 봤습니다. 제 삶이 마흔 중반인데 초코파이 신앙입니다. 초코파이를 주시면서 교회 등록하라고 해서 믿은 초코파이 신앙입니다. 저희집에서는 저만 교회를 다녔습니다. 저의 어머니를 교회로 전도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저의 동생을 전도했고 저의 동생이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성경말씀에 처음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된 것처럼 지금은 인제 지방에서 한 천백 명되는 교회에서 수석 부목사님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얘기하다 보면 목회자들의 그런 지식과 정반대로 가자 내 신앙대로 아니다. 제 동생이 가끔 권면을 많이 합니다. 제 삶은 좀 불운한 환경 속에 살았습니다. 저의 아버님은 술만 먹으면 좀 안 좋으세요. 술을 안먹으면 좋으신 분인데 술만 먹으면. 그래서 제가 이 삶을 타게 해야겠다. 하나님께서 그 도와 주셔서 저에게 제 삶이 대학을 성적으로 도저히 못 갔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SKY 명문대를 들어갔습니다. 이런 삶을 살기 싫다 외국에 나갔는데 일하다가 백인한테 맞았습니다.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그런 식을 해서 맞았구요. 그런 삶을 왜냐면 외국 생활 꿈이었는데 밥이 없었어요. 식량이 없어서 식당에 가보면 빵조각을 버리거든요. 식당의 쓰레기통에 그것을 주워서 우유 붓고 죽을 만들어서 먹었어요. 그게 하루 끼니였어요. 주말에는 한인교회 가서 식사를 먹었는데 그런 것 까지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챙겨주시는 것 같아요. 이런 삶을 저에게 주신 것 같아서 정말 저는 그냥 지금 생각해보면 나쁜 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좋은 대학을 보내주셔서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셨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좋은 가정을 이루게 해주셨고 제 생각에는 잘된 거라 생각했는데 안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일이 바쁘다보면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더라구요. 나락에 빠져요. 일이 다가 아닌데 하나님을 믿어야 되는데 교회를 잘 안 나가게 되고 그러게 되다보니까 시간이 점점 안 좋아지면 범죄할수 있는게 생기더라구요. 예를 들면 천원 만원 때문에 직원들을 질책을 해요. 너 왜 많이 써. 이런 식을 닦달하면 직원이 못 이기고 그만두는 경우가 있어요. 나가면서 자린고비라는 그런 친구도 있고. 사장님은 정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다. 제가 하나님을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런 것 같아요.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록 마음이 온화해지면서 저는 제 삶이 조금 저의 아버지하고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있거든요. 저의 아버지는 교회를 안 믿었어요.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은 판검사였어요. 판검사 검사 같은거 사법고시를 8개월 동안 신림동에 공부를 해봤고 성공한 다음에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진짜로. 8개월 하다가 제 머리가 아니다. 엄청 어렵다. 제 삶이 와일드한 사람인데 골방에서 딱 갇혀서 책만 보는 스타일이 아닌데 그런 경우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실패했는데 8개월 만에. 그러면서 해외에서 돌아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하나님께서 항상 저를 도와주시는구나. 신앙에 기복이 있잖아요.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잘되는 것 같고 하나님을 멀리하면.
A)가장 단순하면서도 정답입니다. 유경렬 집사님.
질문 18) 이번에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을 간절히 마음으로 찾는데 마음으로 간절히 들어보면서 그렇지 않음을 느껴서 사람 마음이라는 게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느꼈습니다. 마음으로 찾는 것이 무엇인가 마음으로 찾으면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은 나는데 정리는 잘 안 되고 정말로 마음으로 찾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목사님이 그때 한 여자를 사랑할 때 정말 관심이 집중되고 초점이 맞추어지고 하는데 그것도 우리가 의지를 갖고 사랑을 해야지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가만히 있다고 그 마음이 들지 않고 그래서 지금 그런 게 고민입니다.
A)아주 비상하게 집중해서 말씀을 들으세요. 주일에 제일 좋은 방법이 사실 나이가라폭포 밑에 들어 가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맞으면서 내가 구경을 하고 왔다 그 이야기를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말은 없습니다. 제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더 집중된 상태에서 설교를 들으세요. 그리고 설교를 집중된 상태에서 설교를 듣고 거기에서 나에게 말씀하신 바가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노력하세요. 그렇게 해서 몇 번만 시도해 보세요. 그러면 어떤 분명한 깨달음이 올 거예요. 그리고 만약에 한번 듣고 이해가 안 되면 집에 가셔서 다시 한번 설교를 반복해서 들으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그 희미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붙들고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말씀에 집중해보는 것이 가장 영적으로 변화를 위해서 가장 빠른 길입니다. 임종찬 집사님.
질문 19) 저는 우선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에 대해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씀을 듣고 제가 살면서 과연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찾은 적이 있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인데 제가 하나님을 마음속에서 대부분 삶 속에서 하나님을 얻는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제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쭉 하면서 간절히 하나님을 찾지 않았고 이런 삶이 쭉 10년간 지금까지 마찬가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찾기 위해서 이제 마음을 비우고 세상으로 채워진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을 온전히 내 마음에 채워서 간절히 기도하고.
A)결국은 멈칫멈칫하고 참된 신앙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의 괴로움이 가중됩니다. 그리고 엊그제 제가 병원을 갔는데 인간의 불행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가를 느꼈어요. 허리의 통증이 있어서 갔는데 허리의 통증이 심해져요. 그래서 갔더니 등뼈하고 척추를 보여주면서 저의 증상을 설명하면서 그 사람이 의사이지만 저의 대한 애정이 있겠어요. 무슨 이야기를 했냐면 계속 감당하던 의사는 우리 교인이었는데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셨고 새로운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고통표를 보여줍니다. 사소한 아픔부터 10번까지 나오잖아요. 10번은 거의 으악 하고 소리를 질러야 하는 고통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러다가 극한 통증에 계속 시달리는데 멈추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른데 열 시간 정도 약간 뜸하고 열네 시간 정도를 극심한 통증으로 시달리고 어떤 사람은 그 통증이 이십 시간 가까이 계속되기도 하는데 의사들은 불지옥의 고통이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고통이 거의 끝까지 가는 상태의 통증이 온몸에 느껴져서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통제도 안 듣는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기계를 하나 탁 꺼내더니 이럴 경우 쓰는 기계가 이 기계입니다. 하면서 보여주는데 요만해요. 이걸 몸속에 집어넣고 여기에서 바늘을 꺼내서 그 아픈 부분에 주위에다가 집어넣으면 이게 자기 스스로 작동해서 통증을 느낄 때마다 여기서 액이 나갑니다. 당연히 전기 자극을 주어서 다른 자극을 주어서 그 고통을 잊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니 허리가 아파서 온 환자에게 저런 식으로 불지옥을 설명해야되나. 의사의 마음이 저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또 하나는 진짜 우리의 불행이 우리 가까이 있구나. 가까운 거리가 몇 밀리미터입니다. 신경이 몇 밀리미터를 빗겨 가느냐에 따라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아무 고통을 안 느끼기지 하고. 암에 걸려서 마지막 죽으면서까지 고통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신경을 빗겨가서.
그래서 저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었습니다. 만약 저에게 불지옥같은 고통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제가 마음을 많이 정리하면서 두렵거나 걱정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생각이 느껴졌냐면 인간이 스스로 행복하다 다행이다 라는 상태가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가. 나는 돈도 있고 자녀들도 속 썩이지 않고 아내도 나를 사랑하고 부모님 건강하시고, 재산도 있고 사회적으로 난 대접도 받고 직장도 있고 모든 것을 가졌는데 통증 하나만 살짝 빗겨 가면 인생 자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불같은 고통에 열네 시간을 시달린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게 나머지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하나. 차 타고 오면서 인간이 이렇게 약한 존재구나.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매 순간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면서 사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오늘 모든 공부를 마치면서 제가 다섯 주 동안 여러분과 함께 기도했고 세 번 만났지만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는 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많은 고민을 이야기해도 결국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이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장 여러분들이 시급하게 해야될 일들은 예배시간에 집중해서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그게 변화에 이르는 좋은 길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의외로 열린 교회에 온 첫날 설교를 통해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면 얼마나 많은 시간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었느냐 책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집중입니다. 분산되지 않은 정신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서 이해하려고 할 때 거기에서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이번주부터 실험을 하세요. 뒤에 앉지 말고 앞에 앉으세요. 일찍 오셔서 맨 앞자리는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연주회에 가면 오케스트라석에 앉으세요. 앞에서 한 서너 줄에서 뒤에서부터 시작해서 거기서 중간 안에 들어오는 지역에 앉으시고, 집중해서 설교를 들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변화가 올 것입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갔는데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