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녹취자 : 오희열
[삽입영상] “신은 없어! 평생 무신론자로 살거야!” 바람만 쓸쓸하게 불던 어느 시골의 들판, 죽는 것보다 삶이 더 두려웠던 한 중학생 소년의 외침. 우주보다 더 큰 칠흑같은 공간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채 지독한 그 외로움의 무게에 짓눌린 소년이 할 수 있는 건 들판에 엎드려 우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년은 다시 일어났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목회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 인생의 무게가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즐거운 일이 있으면 쉽게 그 무게를 잊어버리지만 어떤 사람은 집요하게 그 무게가 느껴져서 힘겨워하기도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동요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습니다. 누나가 떠나고 없다는 내용의 가사였습니다. 사실 제게는 누나가 없었는데 말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월은 흐르는 것이고 그 세월은 결국은 이별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어린마음에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의 끝은 결국 외로움이었습니다. 저는 고독 속에 잠들고 외로움 속에 눈 뜨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썼습니다. 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다소 포함된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밝혀주고 싶은 한 개의 작은 촛불과 같습니다. 불 꺼진 방에 있어도 원래 외롭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살면 됩니다. 그러나 그 밤이 너무 외롭고 너무 무섭고 외로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불 꺼진 방에 홀로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습니다. 왜 일까요? 어쨌든 저는 그렇게 된 저는 그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살면서 항상 저처럼 어두운 밤, 불 꺼진 방에 홀로 있어 외로운 모든 사람들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책은 일곱 살 때쯤 읽은 성냥팔이 소녀였습니다. 그 성냥팔이 소녀는 남루한 차림에 목도리를 두르고 성냥불로 추위에서 몸을 덥히다가 결국은 죽는 것으로 소설이 끝납니다. 그런데 인생의 파도가 거셀 때 쪽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은 때에 그 동화는 제 마음속에 재해석되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추워서 죽은 것이 아니라 빛이 없어서 죽었다고 말입니다. 이 책은 대단한 책이 아닙니다. 그저 그냥 한 사람이 인간으로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고 길을 잃어서 흐느끼고 다시 그 길을 찾았기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이 어디도 마음 둘 곳 없었던 그런 처지에서 마음을 내려놓을 곳을 찾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이 저와 함께 어떻게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갈 지에 대한 길을 발견하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쓴 보람이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 여러분을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삽입영상] 그 소년이 걸어야 할 길을 밤하늘 별처럼 밝게 비춰주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개의 문장과 함께 떠나는 여정,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김영사에서 출간한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이전의 신앙서적에서는 다룬 적이 없었던 파격적인 형식으로 장르를 뛰어넘는 음악, 소설을 아우르며 하나님의 위대한 경륜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목사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들을 이 북콘서트에 초대한 김남준 목사입니다. 여러분이 이미 알고 계신 바와 같이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북콘서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이 책의 이야기를 한번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아주 어린 나이에 자아에 대해서 눈 뜨면서 남들보다 일찍 고뇌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나이 열네 살 2개월 되던 때였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고 있었고 주일 아침, 교회를 가다가 문득 하늘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닥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해일과 같았습니다. 저는 가던 길에서 곁으로 꺾어져 논둑이 있는 곳으로 갔고 거기 엎드러져서 펑펑 울었습니다. 울면서도 도대체 내가 왜 우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엄청나게 두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얼마를 울고 저는 눈물을 닦고 일어섰습니다. 때는 2월달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생 최초의 선언을 했습니다. “신은 없다. 나는 이제 나 혼자의 힘으로 살아간다. 신이 있다고 해도 그가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지독한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저는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구원의 길을 실존주의 작가들의 작품과 그리고 소설문학작품을 읽으며 찾아보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내가 전혀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문학작품 속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글도 읽어보고 작품도 읽어보았지만 결국은 “너는 이 세상에 던져지듯 태어난 존재이니 왜 태어났는지 묻지 말고 용감하게 살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외로우면 자유라도 와야할 텐데 외로웠지만 자유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저는 열아홉 살 되던 해에 자살을 결심하기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결국 이 모든 혹독한 방황을 통해서 제가 깨닫게 된 사실 하나는, 결국 인간은 누구도 자신을 도울 수 없으며 결국 이때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을 애워싸고 있는 이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답은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누군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되나? 나 이외에 다른 사람과 세계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은 존재하는가?”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에 물건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물건을 보시고 제가 세 가지를 질문하겠습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이 한번 답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보시겠습니다. 자, 이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마십시오. 그리고 질문에 대답하십시오. 예쁩니까? 좋습니까? 그리고 탁월합니까? 여러분 중 아무도 제가 묻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실 분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그림을 보시겠습니다. 이것은 바로 2003년 콜롬비아 우주왕복선, 저 큰 로켓처럼 보이는 것이 연료통인데 거기에 붙어있는 단열재였습니다.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면서 가방크기만한 저 단열재가 떨어져 나오고 왼쪽 날개를 때리게 됩니다. 결국 진입할 때 마찰열로부터 이 우주선을 보호해주는 외피에 손상을 입힌 것입니다. 이것도 모른 채 16일 동안 다섯 명의 남자 비행사와 두 명의 여자 비행사들이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대기권에 진입할 때 일어난 것입니다. 마찰열의 뜨거운 불길은 손상된 그 부위를 파고들었고 우주선은 저렇게 불덩어리로 변하기 시작했고 지상 60km 상공에서 저렇게 작렬한 폭발을 경험하게 됩니다. 전원이 사망하였고 흩어진 수많은 파편들을 40% 찾아서 저렇게 진열하게 되었을 때 우주선이 왜 폭발하게 되었는지는 너무나 명료하게 드러났던 것입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요?” 이것을 알아야만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 하는 것도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설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저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고통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의미를 대신 찾아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무리 남의 인생을 흉내 내도 그것으로 여러분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나입니다. 이전에도 태어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절대 태어날 리가 없는 그런 사람, 나입니다. 그리고 나는 나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 것입니까? 저는 이 책에서 여러분에게 이 길을, 여러분보다 훨씬 잘 살고 여러분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으로서가 결코 아니라, 여러분과 똑같이 연약하고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밤을 지나는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과 함께 이 이야기를 펼쳐가려고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밤을 지내는 때는 없습니까?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있는데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없을 때, 그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불행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책은, 이 콘서트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나라는 인간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한번 보여주고 싶은 의도에서 저술되었고, 이 콘서트는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우리 콘서트와 함께 하는 가운데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비로소 여러분이 주체적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대하는 마음을 다음 순서를 기다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이 시간 유튜브로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극동방송에서 “좋은 아침입니다”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송옥석 피디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지금 유튜브로 많은 분들이 보고 계신데 놀라시지 않을까, 저 사람은 누군가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라디오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피디입니다. 누군가는 저를 보고 윤종신을 닮았다고도 합니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겠습니다. 친근해 하시라고 말씀드려봤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이기 때문에 온라인 북콘서트로 진행하고, 이 공간에는 정말 적은 인원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을 다해서 유튜브로 들어오신 수많은 방송가족들이 있고 가족들이 있으신데 여러분을 위해 잘 오셨다고 박수 한번 쳐드리고 싶습니다. 박수와 환호성 한번 부탁드립니다!
유튜브 방송으로는 어떻게 소리가 나갈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만큼은 여러분, 정말 잘 오셨습니다. 조금 전 정말 귀한 목사님께서 오프닝을 열어주셨습니다. 먼저 목사님을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이 밤, 그 밤을 누군가가 맞고 계시지 않을까, 바람이 붑니다. 이 겨울에 마음이 춥습니다. 오늘 혹시 그런 분이 계시다면 따뜻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북콘서트, 제가 이분을 그냥 “목사님입니다!” 이렇게 소개드리기는 싫고 오늘은 “작가님”으로 소개해보겠습니다. 열린교회 김남준 작가님,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함께하시는 네 분의 패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책을 먼저 다 읽어오셨습니다.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먼저 전주대학교 한병수 교수님, 박수 주십시오. 네, 한국진로적성센터 박에스더 교수님, 박수 한번 주십시오. 환영합니다. 오늘 북콘서트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더해주실 피아니스트 김순배 교수님, 박수 주십시오. 그리고 정원영 밴드의 보컬이자 그룹 오후에 만난 성아의 멤버 홍성지 자매님을 박수로 모십니다.
오늘 네 분을 만나기 전에 마임콘서트를 보셨을 것입니다. 한분이 나오셔서 연기했고 그 외로움을 우리가 느낄 수가 있었는데 이 방송을 보신 분들, 혹시 이밤 외로우십니까? 먼저 김순배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은 마음이고, 많은 분들에게 한분 한분 여쭤보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시고 한 사람 한 사람 우리가 대화를 해볼텐데, 먼저는 이 책을 쓰신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목사님”이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작가님”도 자연스러울 것 같기도한데, 그래도 지금 2000여 명이 이 방송을 보고 계신데 인사를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남준 작가님 인사해 주십시오.
[목사님] 네, 반갑습니다. 김남준입니다.
[사회자] 작가님, 제가 이 말씀은 좀 드려야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족 같은 마음에 말씀을 드립니다. 방송을 시작하는데 우리 스텝들이 이렇게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잖습니까? 스텝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틀리면 죽는다!” 유튜브를 보고 계신 여러분, 우리가 서로 너무 긴장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제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김남준 작가님과 함께 행복한 시간, 예수님을 아는 분들, 기독교인들도 이 방송을 보고 계시고 비기독교인들도 보고 계신데, 맨 먼저 우리 김남준 작가님께서 비기독교인분들에게 잘 오셨다고 환영인사를 하고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 네,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비록 종교는 서로 다르고, 혹은 가지고 있거나 안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러나 공통점은 우리 모두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서로 한번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지혜 속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네, 감사합니다. 그럼 김남준 작가님의 북콘서트,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그 밤으로 떠나겠습니다.
[삽입영상] 안녕하세요, 저는 출판사 김영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이혜림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의 책임편집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편집자이기 전에 이 원고의 첫 독자로서 이 책을 마주했을 때 저 또한 그 마음의 울림과 감동이 있었는데 그런 원고를 책으로 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 있어서 그 점이 참 좋았던 것 같고, 이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철학자가 1600년전의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문장 가운데 굉장히 현대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그 문장 하나하나가 굉장히 주옥같고 저도 오랫동안 곱씹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이번 작업이 되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기존 기독교 독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에세이 독자들에게까지 닿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을 중점으로 표지 디자인 논의를 했고 특히 표지를 보시면 g, o, d 라고 되어있는 부분의 색깔이 화려하게 칠해져 있는데 저희가 이 책을 읽고 나서 형식이 어떠하든지 이 책이 담고 있는 그 핵심과 본질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그 부분에 레터링 색을 넣어서 상징을 담아보려고 많이 노력했고, 내지 디자인의 경우는 이 책의 형식이 굉장히 문장 문장마다 되게 짧은데 그 부분에 있어서 좀 더 이 활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백을 많이 두고 분위기 있는 그림들을 삽입하는 장치들을 활용했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질문이 있는데 나는 누구인가?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사실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법한 질문인데 그런 질문에 대해서 김남준 목사님께서도 방황하고 고뇌했던 감정들이 이 책에 그대로 묻어나는데 그 감정과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을 따라가면서 이 책을 읽다보면 첫사랑을 잃어버렸던 분들께는 회복의 시간이 될 것이고,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좀 불현듯 마주한 진리로 인해서 인생이 변하는 경험이 되셨으며 좋겠습니다. 저도 이 책을 작업하면서 마음에 굉장히 큰 위로와 나도 다시 믿음을 붙잡고 나아갈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된 책이었습니다. 또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저희 마케터나 디자이너, 제작부 여러 많은 분들께서 협조해 주셨고, 특히 김남준 목사님과 김은영 팀장님께서 많은 수고를 해 주셔서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고, 또 이 책이 조금 더 오랫동안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으로 기억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삽입영상] 목사님의 글이라는데, 전혀 목사님의 글 같지 않은 글입니다. 아닙니다. 이런 글이 정말 목사님의 글입니다. 나는 평소 생각합니다. 정말로 좋은 시가 되려면 시인과 시의 울타리를 벗어나 시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지고 이해가 되는 시가 되어야 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철저하게 목사님의 글, 정말로 목사님다운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의 신도들만을 위한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 하나 내려놓을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삽니다. 그런 세상에 목사님의 글은 큰 의미를 줍니다. 그야말로 마음을 내려놓을 안식처를 줍니다. 쉴 곳을 마련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더구나 오래된 인류의 스승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듣는 목사님의 진솔한 고백은 시를 읽는 것보다 더 깊은 영혼의 울림이 있습니다. 영혼의 울림, 이보다 더 큰 마음의 축복은 없습니다.
[사회자] 오늘 북콘서트에 오신 여러분, 조금 전 풀꽃의 시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도 크리스천이십니다. 모르셨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함께 하신 분들, 저는 여러분이 이 방송을 보시는데 어떤 마음의 상황인지 어떤 형편인지 어떤 길을 걷고 계신지, 또 어떤 외로움을 가지고 계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네 분의 패널들과 함께 우리가 가진 외로움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먼저 우리 김순배 교수님도 외로우셨습니까?
[김순배 교수님] 네, 제가 생각할 때는 외로움에도 어떤 스펙트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삶의 시기와 어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목사님의 열네 살 그 논둑길의 경험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저도 중학교 2학년 비슷한 나이에, 논둑길은 아니었지만 불 꺼진 방, 일기장에서 그 동안의 어떤 세계에 대해서 반항하는 글들을 끄적이면서 방황이 시작되었고,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과의 불화, 책에서 목사님도 말씀하셨지만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불화, 이런 것들이 대답없는 질문처럼 마구 쏟아졌고, 그것은 한편 저를 우주의 중심을 나로 만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회자] 그러면 외로울 때, 그 외로울 때를 피아노로 표현할 때 어떤 곡이 생각나십니까?
[김순배 교수님]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피아노곡에 외로움들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곡가들의 영혼, 이것이 반영되는 것이 음악이니까,
[사회자] 연주하실 때 느껴지시나 봅니다.
[김순배 교수님] 많이 느껴집니다. 오늘도 이따가 제가 들려드릴 음악에 몇 스푼 쯤 들어있을 것입니다.
[사회자] 이따가 우리 김순배 교수님의 피아노 연주곡을 전해드릴텐데, 피아니스트입니다. 외로움이 몇 스푼이 담겨 있을지 한번 느껴보시고, 옆에 성지 자매님이 계신데 음악을 하시고 노래를 부르시는데 그 외로움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홍성지 자매님] 어려운 것 아시지요? 사실 제가 이 책을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외로움은 저의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안 좋은 친구. 좋은 친구이자 안 좋은 친구. 제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주어서 좋은 친구라면, 끝없이 밑으로 내려가게 하는, 외로움의 끝이 없도록, 그래서 헛다리를 많이 짚으면서 위로를 많이 받고자 했습니다. 그게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어떤 작품이었을 수도 있고, 사랑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것이 공감대를 얻고 싶어하다보니까 더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공감을 얻을 수가 없으니까.
[사회자] 지금 송인준 선생님이 유튜부 댓글로 이런 질문을 하셨고 얘기하셨습니다. “맞아요, 까닭모를 끝도 없는 외로움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를 못하지요.”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성지 자매님의 얼굴을 화면으로 보시면 그렇게 외로움을 안 느끼셨을 것 같은데 느끼셨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외로움은 나만 아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지금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내 속은 울고 있는 것, 겉으로는 미소짓고 있어도 내 마음은 찡그리고 있는 것, 아마 나만 알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마음을 알고 계시는 그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느껴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보면 외로움이라는 감정 뿐만 아니라 이것에 대해서 내가 지혜를 얻고 싶은데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인간의 보편적인 본능이라고 할까요? 그런 부분들이 느껴지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남준 작가님도 아우구스티누스이 여러 책들에서 그런 비밀을 찾고자 했었는데, 우리 교육학자 박에스더 원장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교육학자 입장에서 이렇게 한 지혜를 향한 동경, 사랑,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능적인 것입니까?
[박에스더 원장님] 네, 본능 맞습니다. 제가 너무 확실하게 말씀드렸습니까? 20년 넘게 인간의 성향과 적성, 이런 것들을 연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진로적성 상담을 하면서 보니까 인간 안에는 이 지혜와 사랑이 점철되어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눈에 안 보이지 않습니까?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의 사랑이 보이도록 드러난 것이 재능, 달란트, 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 내가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에 ㄷ한 고민을 끝없이 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 사랑과 지혜를 추구하려는 본질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그 사랑이 안에 들어있다는 이류를 드러낼 수 있는데, 한 사람 한 사람 여러분을 만드실 때 사랑을 담아서 한분 한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때 재능을 함께 주시면서 “네가 이 재능으로 행복하게 살아라. 가끔 나도 생각해주렴.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한단다. 너도 나를 좀 사랑해주겠니?” 이렇게 만드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머! 얘, 내가 깜빡 졸았다. 너 재능이 덜 들어갔다.” 이러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너 맨날 그렇게 살다가, 진로방황하다가 가는 게 네 팔자야.” 이러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모두에게 다 들어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성경말씀에서 예수님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도 상대방의 재능을 존중하고 나의 재능을 존중하면서 사랑이 생길 수가 있다고, 책을 읽으시면서 외로움을 느끼셨다고 앞서 교수님과 가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사랑을 많이 느꼈습니다.
[사회자] 책을 읽으시면서 사랑을?
[박에스더 원장님] 네, 사랑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김남준 작가님 책의 3장에도 나와 있는데 질서있게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질서있는 사랑이 재능을 질서있게, 하나님이 주신 이 재능들을 질서있게 펼쳐나간다면 사랑도 질서있게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성경 로마서 8장에 이런 말씀이 있는데, 누구도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다, 이것을 책을 읽는 내내 느꼈습니다. 지혜와 어떤 사랑에 대한 동경, 이것은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지혜와 사랑에 대한 동경은 본능이라고 느끼신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교육학자, 진로에 대해서 우리 교수님은 정말 전문가시고 그런 부분에 본능이 있다고하셨습니다. 신학자이신 우리 한 교수님에게 여쭤보고 싶습니다. 본능입니까?
[한병수 교수님] 네, 본능이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선물이다?
[한병수 교수님] 저도 개인적으로 일곱, 여덟 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부모의 죽임이라는 밤, 사랑의 근원이 사라져서 사랑의 빛조차 꺼져버린 캄캄한 밤의 외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저도 나름대로 외로움이 도대체 왜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고민을 참 많이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가장 냉대하는 것 중에 하나, 가장 박대하는 감정 중에 하나인데, 제가 김남준 목사님의 책을 읽으면서 외로움이라는 것을 진리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의 감정으로 승화시켜서 이해하는 것을 보면서, 이 외로움이라는 것은 진리를 찾아가는 길목에 반드시 있다, 생략하지 못하고 반드시 통과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동시에 진리를 만나고자하는 자는 이 외로움이라고 하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외로움의 아름다운 등짝을 우리에게 살짝 보여주신 것 같아서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외로웠기 때문에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주변에 사람없음을 유지하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계속 외롭습니다. 그런데 외로움도 생물이라서 근육도 생기고 맷집도 길러지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쨌든 서서히 커집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두 번째 방법이 있다면, 계속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주변에 사람을 두고 내 곁을 공유하는 그런 만남을 가지다 보면 일시적인 외로움의 해소는 일어나는데 한번 만났다가 헤어지면 쭉 없었을 때보다 훨씬 큰 외로움이 저를 또 찾아옵니다. 이 두 가지 방법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까? 1번을 선택하면 결국에는 외로움의 희생물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도 2번을 선택하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기하급수적인 외로움의 증폭현상이 일어나는데 과연 이 길이 옳은 길일까 했을 때 옳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 판단을 제가 김남준 목사님의 책을 읽고 확신을 얻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소식,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극도의 외로움을 체험한 유일하신 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거기서 부모님도 떠나가고 사랑했던 제자들도 떠나가고 심지어 하늘의 아버지도 외면하는 외로움, 하늘과 땅이 통째로 자기를 떠나버린 이 극도의 외로움이, 진리가 매달려 있는 십자가에 동시에 공존했다는 것이, 외로움과 진리 사이에 뭔가 연관성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봤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이라는 것은 진리를 찾아갈 때 반드시, 가능하면 극도의 외로움에 가깝도록 다가가는 것이 진짜 진리를 만나는 올바른 선택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자] 여러분, 외롭다고 합니다. 진리로 가는 길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이 방송을 보고 있고 유튜브로 지켜보고 계시는 2200여 명의 분들이 아마 각자의 환경에 계실 것입니다. 저도 얼마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아버님과 쇼핑을 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떤 옷 매장으로 들어가시면서 “얼른 와요!” 하더랍니다. 아버님이 속으로 기대하셨다고 합니다. ‘내 옷을 사주려나 보다.’ 하시면서 “여보, 거기 110없어, 없을거야.” 했더니, “무슨 소리에요, 우리 아들 옷 사주려고 하는 건데”하셨답니다. 그때 아버님이 너무나 외로우셨다고 합니다. 깜짝 놀라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각자마다 그 외로움이 있을 텐데 오늘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김남준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감당하기 힘든 이 삶의 무게, 이 지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습니다.
[목사님] 아까 우리 한교수님이 너무 감동적으로 이야기해주셨는데, 결국 그 외로움은 진리를 만나러 가는 길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외롭지 않았더라면 아마 생각없이 인생을 살았을 텐데, 외로움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지만 어쨌든 그 외로움을 통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결국 인생을 살면서 제가 제일 두려운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생각없이 사는 것, 반드시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는 무서워하면서 사는 것, 사는 게 사는 게 아닐 것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혼자 넉넉히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기가 너무나 외로워서 도저히 혼자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인간에게서는 그 외로움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결국 하나님을 찾아가는 한 수단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외로운 것 자체를 피하지 말고 그 외로움을 승화시켜서 지금 나보다는 훨씬 더 나은 나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으신다면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밤이 있었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오늘 북콘서트 시간, 여러분 잘 듣고 계십니까? 저희가 이렇게 말씀으로만 외로움, 진리로 가는 길목에서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연주곡을 한 곡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김순배 교수님께서 이 겨울 밤 우리에게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게 하는 느낌의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실 예정입니다. 이 시간도 함께 해 주시고 박수로 김순배 교수님의 연주를 청해듣겠습니다.
[사회자] 여러분, 박수 한번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아니스트 김순배 교수님이었습니다. 자리해 주십시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여러분 어떠십니까? 지금 유튜브로 댓글이 정말 많이 도착하고 있고, “짝짝짝!”하면서 테슬리 윤, 이경자, 조정윤, 나윤희, 석준님, 이선정님, 비닉바님, 김재형님, 많은 분들이 유튜브 댓글을 주시는데 인상깊은 댓글이 있습니다. 우리 루미와이님 외 세 분이 “음향 시설이 정말 좋네요, 정말 은혜롭게 들었습니다.”라고 했는데 이건 정말 우리 스텝들의 승리입니다. 박수 한번 주십시오! 성공했습니다. 오늘 이 온라인 콘서트로 정말 좋은 음악을 여러분에게 선물해주고 싶었고 집에 계신, 여러분이 있는 공간에서 우리의 이 마음을 북콘서트 시간에 누리고 싶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오늘 그 진심이 여러분에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김순배 교수님, 조금 전에 연주곡을 들었는데 베토벤 피아노 8번 비창?
[김순배 교수님] 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곡의 2악장입니다.
[사회자] 지금 그 곡에서 몇 스푼의 외로움이 있을까 했는데 누가 “2257”이라고 댓글에 적어 주셨습니다. 2257스푼인가? 했더니 지금 2257분이 실시간으로 보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베토벤의 이야기, 그 곡 속에서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진리로 걸어가는 그 길목에서 오늘 이 밤 함께 하고 있는 여러분을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이 책을 사전에 저희가 많은 분들께 공유드렸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분들이 읽으셨고 오늘 유튜브에도 책을 읽으신 많은 분들이 와서 북콘서트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책에 여덟 문장이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여덟 문장 가운데서 김남준 작가님이 얻으셨던 그 마음의 고백들, 아마 여러분은 아실 텐데 이 시간에 4장, 5장의 제목이 있었습니다. 좀 아이러니 합니다. “공간은 주고 시간은 뺏어간다”, “있는 것은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김남준 작가님은 글 속에 “불멍”이라는 아주 찐 신세대 용어를 사용하셨는데 불을 보면서 멍을 때린다는 의미인데 오늘 세상을 살아갈 때 허무해질 때가 있는데 그 불멍을 때린다고 하는데, 그 허무에 대한 이야기, 혹시 우리 패널분들 가운데 이 불멍을 경험한 분이 계실 거 같은데, 우리 홍성지 자매님 어떠십니까?
[홍성지 자매] 불멍 좋아합니다. 캠핑 가면 나무를 직접 주워와서 불 속에 넣습니다. 타닥타닥 소리가 나면서 냄새도 되게 좋습니다. 불을 보고 있으면 다른 데로 가는 것 같아서 굉장히 좋아합니다.
[사회자] 정말 좋아하는 얼굴이어서, 하하하... 다른 것은 뭐 즐기는 것 없습니까? 불멍 말고 다른 멍.
[홍성지 자매] 글쎄요, 갑자기...
[사회자] 눈이 내릴 때 눈멍?
[홍성지 자매] 눈 내리는 것 말씀하시니까 오늘 준비하기 위해서 그저께 책을 두 번째로 다시 읽는데 책 내용에 나오는 음악들을 들으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글 쓰시는 순간들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한테는 너무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결국에는 사랑으로 가는 내용이고 저의 영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너무 감사한 시간이었는데, 저는 정말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결국은 하나님께로 저를 향하게 했지만 외로움의 기억들, 굉장히 묘사를 잘 하셨잖습니까?
[사회자] 네, 책속에서
[홍성지 자매] 그것들을 다시 제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서 감정들을 겪을 때, 눈이 막 내리는데, 방금 눈 내리는 것을 말씀하셔서, 눈 내리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그 책들을 보는데 옆에 수건을 놓고 울면서 책을 읽었습니다. 감사한 시간이었는데 또한 힘들었습니다.
[사회자] 이 방송을 보고 계신 분들 중에 저희가 지금 이렇게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이디가 쿨스 라는 한 분이 이런 댓글을 주셨습니다. “저는 자장면 먹을 때 안 외로운데?” 제가 볼 때는 그게 자장면 멍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먹을 때 좋은 것이지요. 우리가 불멍을 이야기를 했는데 김남준 작가님은 이런 멍 이야기를 책 속에서 하셨습니다. “공멍”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공멍”에 대해서 우리 한 교수님께서도 이야기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병수 교수님] 네, 저도 이 공멍 대목을 읽으면서 김남준 목사님께서는 허공을 보시면서 허공이 나인지, 내가 허공인지, 참 놀랍다는 생각을 했는데, 왜냐하면 사실 이 허공을 보면서 나 자신이 없음으로 느껴지는 순간, 내 존재의 가치가 공기의 무게와 같아지는 느낌, 불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유쾌한 자아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성경에도 보면 이사야라는 선지자가 인생을 산소로 묘사한 경우가 있습니다. 호흡이 코에 매달려 있는 인생, 정말 연약한 인생을 표현한 것인데 진짜 인생의 초라한 정체성을 체험할 때 그게 나쁘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진짜 나를 만났을 때가 바로 나는 하나의 허공에 불과한, 공기의 무게를 가진 가치밖에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 중요한데 그 이유는 아우구스티누스, 저도 좋아하는 분인데 그분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재앙과 비극은 무엇인가? 나를 향하여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비참하고 치명적인 재앙이 바로 자기애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자기애를 중단시킬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 내가 공기의 무게밖에 안 된다는 이 비참한 자아 정체성을 정확하게 체험할 때 비로소 자기로부터 등을 돌리고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주어집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하겠습니까? 최소한 먼지같은 또는 공기같은 이렇게 초라한 자아보다는 괜찮은, 좀 더 존귀한 존재를 찾아가게 되는데 이런 차원에서 저는 존재의 질서로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 자아가 있으면 기독교에서는 천하 모든 만물이 한 사람 인간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 없기 때문에 인간은 동등합니다. 그런데 그 인간보다 좀 더 가치있고 보배로운 존재는 하나님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극도의 허무, 극도의 공허함, 마치 허공이 나 자신같은 그 느낌이 주어지는 그 체험은 비로소 나보다 좀더 존귀한 가치를 가진 존재, 절대자, 그 하나님께 눈을 돌리고 그 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추구하고 그분을 향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치명적인 재앙과 비극으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열쇠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인생의 분기점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자] 오늘 그 허무, 존재가 허무해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라한 정체성을 내가 알게 될 때, 그때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그 지혜를 오늘 우리가 이 시간에 얻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우리 김순배 교수님께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허무해지는 경험들을 방송가족들과 나눠주셨으며 좋겠습니다.
[김순배 교수님] 인생 자체가 허무였습니다. 목사님 책에 나오지만, 허무를 벗어나기 위해서 알을 깬다는 표현이 헤세의 책에 나오는데, 끊임없이 나의 어떤 한계를 깨뜨리려고 노력을 무지 많이 했었지만, 문제는 무엇을 위해서 그 알을 깨야하고 또 알을 깬다면 어떤 세계가 기다리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알을 깨고 또 깨고, 사실 아직도 깨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그 행위 자체가 허무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허무에 대한 대안을 붙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예전의 허무가 갖는 그 뉘앙스는 아닙니다. 제가 신자가 되고 난 뒤에서 허무함에 대한 인식은 똑같은 것 같습니다.
[사회자]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유튜브로 방송을 보시는 중에 기독교인들도 계시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분들이 계십니다. 기독교인이 아니신 분들이 기독교인들을 바라볼 때 약간 이런 인식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뭔가 좀 다 알고 있고 허무하지 않고, 아까 알을 깨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는데 마치 기독교인들은 알을 다 깬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저희도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알을 깨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비기독교인들도 보고 계시니까 오늘 그 접촉점을 여러분이 부담갖지 마시고 교회라는 공간에 거룩한 사람들만 있을 거 같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정말 저희도 어떻게 보면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알을 깨고 있고 그 허무감을 느끼고 있고 세상 속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성지 자매님은 어떠십니까? 아까 멍 이야기를 하셨고 이제는 허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홍성지 자매] 두 친구였습니다. 첫 번째 친구는 외로움, 두 번째 친구는 허무함. 되게 놀랐습니다. 다들 비슷한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중학교 때 모의고사가 끝나고 책상을 뒤로 밀고 엎드려서 음악을 들으면서 청소는 하지 않고, 유재하씨의 노래를 듣고 있었습니다. 노트에 “허무”라고 쓰면서 너무 허무해서 글자를 막 쓰고 있다가 울고, 친구에게 물어봤습니다. “너는 언제 어떨 때 허무해?” 했더니, “그게 뭐야?” 라고 대답할 때 저는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회자] 그 친구분 아까 자장면 드시던 분 아닙니까?
[홍성지 자매] 그런 짜멍같은 친구들이 저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 다음에는 이런 이야기를 아무한테나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경험들과 함께 하면 사라질 줄 알았는데 허무함이라는 감정이 뭔지도 몰랐고 그것이 저에게 붙어서 외로움이라는 친구와 허무함이라는 친구와 10대와 20대를 함께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제대로 다시 알게 되기 전에는, 그 질서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뭐가 뭔지 몰랐기 때문에 계속 그런 감정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저를 찾기 위해서...
[사회자] 아마 이 방송을 보고 계시는 기독교인 가운데서도 내가 맞나? 이 걸음이 맞나? 하시는 분들이 계실텐데, 그 질서 안으로 걸어가는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면 좋겠고, 아까도 4장, 5장에서 공간과 시간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부분들, 실제로 우리 김남준 작가님께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공멍이야기, 불멍이야기, 어떠십니까 작가님.
[목사님] 저는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항상 얼굴이 여학생처럼 예쁘고 수줍어하고 말이 없는 친구였는데 우리보다 한 살 정도 나이가 더 들었습니다. 어느날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병원을 다녀왔는데 너희 친구 아무게가 자살을 했다.” 그분은 생물 선생님이셨습니다. “온 몸이 새파랗게 푸른 기가 도는데 못 살 것 같다. 너희들은 그러지 말아라.” 하셨는데 아이들은 굉장히 큰 쇼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 무슨 괴로움이 있었는지 까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희들은 아무게가 자살했다고 놀라니? 내가 보기에는 우리가 살아있는 게 너무 신기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결국 불멍을 즐기는 이유도 알고 보면 현실의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려는 심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불멍의 경험, 공멍의 경험을 통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깨닫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아까 한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의 존재가 정말 깃털처럼 가벼워서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내가 인간으로서 짊어져야 할 이 멍에를 나 이외의 사람들 중에는 나누어 질 사람이 없다, 심지어 나 자신도 스스로 이것을 짊어질 수 없으니 그런 공멍의 경험, 불멍의 경험을 통해서 한 번 그 압박에서 벗어나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두 번째 느끼는 것은 마지막에 자기가 그렇게 가벼운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벼움과 반대되는 어마어마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삶이다, 아무렇게나 살면 최대의 피해자는 나 자신이 되니까 내가 어떻게 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현실로 다시 내려오는 힘을 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수학문제를 풀다가 나가서 놀다오면 다시 그 문제를 시작하듯이, 공멍에서 돌아오면 다시 현실에서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문제를 어떻게 푸시렵니까?
[사회자] 목사님께서, 김남준 작가님께서 여러분을 응원하고 잘 푸시면 좋겠다는 그 마음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노래를 한 곡 선물해드리고 싶으셨고 노래가 책에도 담겨 있는 것 같았는데, 작가님 어떤 노래였습니까? 노래 제목이?
[목사님] 바람이 분다
[사회자] “바람이 분다”, 노래 들어보셨습니까 작가님?
[목사님] 엄청 많이 들었습니다.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사회자] 오늘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를, 이 정도면 찬송가를 한곡 선물하실 법도 한데 그게 아니라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를 유튜브를 보는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오늘 이 선물과 같은 노래를 전해드립니다. 홍성지 자매가 준비하고 있고 기타리스트 차윤호 선생님의 연주로 같이 합니다. 박수로 청해듣겠습니다.
[사회자] 와! 여러분 박수 부탁드립니다. 김학진님, 민혜린, 골드주, 황보경님, 임경혜, 남수현, 최승윤님, 지금 댓글들이 막 올라오고 있습니다. 테슬리 윤, 아임향기, 김자영, 임연정, 김학진님 외에도 수많은 분들이 유튜브 댓글로 여러분 마음을 표현해주고 계십니다. “바람이 분다”, 신숙찰로님은 이런 댓글을 주셨습니다. “이소라씨보다 더 잘하시는데요?” 하하하,
[홍성지 자매] 제가 이 노래를 좋아하지만 불러본 적이 없었습니다. 차마 부를 수도 없었고 한동안 듣지도 않았습니다. 너무 떨리고 힘들어서 안 들었는데 목사님 책에 나오고 해서 부르면서 기쁘고도 굉장히 힘들고 이 노래를 부르는데 책을 읽었던 것과 나눴더 대화가 자꾸 생각나서 감정을 잡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회자] 저는 김남준 작가님께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이 “바람이 분다”를 책에 넣으셨고 오늘도 부탁하셨는데 선곡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목사님] 제가 아사밤을 집필할 때 거의 매일 밤 서울대공원 밤길을 홀로 헤드셋을 쓰고 걸었습니다. 그때 굉장히 많이 들었던 노래가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였습니다. 이미 벌써 사실 오래 된 노래인데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는, 그 절절한 외로움, 인간이 자기가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자각할 때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에 가장 와 닿았던 가사가 이것이었습니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저는 이것을 발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할 때 이상하게 생각하고 사람들에 대해서 미워하는 감정을 갖게 되는데 사실 “그대는 내가 아닙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그대가 되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인간의 참 모습을 읽어내는 외로움에 대한 찬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두 번째는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똑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나에게는 천금같이 새겨졌는데 이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새겨져서 나는 그 추억 때문에 이 사람을 떠날 수 없고 이 사람은 나를 언제든지 떠나도 좋은 그렇게 가벼운 사람이 되어가는 이중주, 이 불협화음 속에서 결국 인간은 사람에게로 향하던 관심을 하나님께로 향할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 들어가 보면 이 노래를 한 시간 듣기 세 시간 듣기가 있습니다. 한 시간 내내 듣다가 마지막에 충분히 외로운 감정을 가지고 찬송가를 틉니다.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Our fathers를 틀면 웅장한 찬양이 나오면서 그 외로움을 하늘로 승화시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것을 한 번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사회자] 박수 한 번 주십시오. 지금 또 엄청난 댓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제가 댓글을 읽어드리니까 재밌지 않으십니까? 박미진님이, “목사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듣고 싶어요.”하셨는데 시간 관계상 안 듣겠습니다. 듣고 싶지만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목사님 엄청난 댓글 아닙니까? 김남준 작가님의 목소리로 부르는 바람이 분다. 중요한 것은 이 북콘서트, 아사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북콘서트로 함께 하고 계신데 여러분의 질문을 한 번 받아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질문을 주셨는데 독자분들 가운데 사전에 질문을 받았습니다. 지금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양석주] 안녕하세요? 저는 의왕시 포일동에 사는 양석주라고 합니다. 아사밤 책을 읽고 질문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저자분께서 오랜기간동안 어거스틴의 전집을 읽으시고 그 중에 여덟 문장을 뽑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꼭 여덟 문장이었는지가 궁금하고, 만약 여덟 문장 외에 더 많은 문장을 생각하셨다면 아홉 번째 문장으로 나올만한 또 다른 문장은 무엇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회자] 와, 질문이 날카롭고 좋고, 아홉 번째 문장을 선택한다면 김남준 작가님은 어떤 것을 선택하실까
[목사님] 우선 두 가지 질문인 것 같습니다. 왜 여덟 문장이냐고 하셨는데 일곱 문장은 너무 많이 써 먹었습니다. 스티븐 코브의 성공하는 사람의 일곱 가지 법칙,
[사회자] 첫 번째는 상업적인 이유가...
[목사님] 그 다음에 열 개는 너무 많고, 아홉도 많고, 그래서 여덟, 남이 안 쓴 숫자를 고르자고 해서 여덟이었고, 마침 그렇게 하니까 책이 적절한 두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덟 개를 택했고, 실제로 제가 삼위일체를 읽으면서 선택한 너무 아름다운 문장만 278구절이었습니다. 전체를 아우르면 1천 구절도 넘습니다. 아홉 번째 문장이 있다면 뭐가 되겠느냐고 물으셨는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시작은 정의의 시작이며 사랑의 진보는 정의의 진보다. 위대한 사랑이야말로 위대한 정의니 완전한 사랑이야말로 완전한 정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본성과 은혜”라는 작품에 나오는 것인데 이것이 작년에 제 마음을 크게 울렸습니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보복을 하고 싶어하고 남은 정죄하고 사랑이 있는 사람은 부도덕한 것까지 다 끌어안고 올바름의 감정이 없는데 어거스틴은 참된 정의라면 사랑을 완성하고 참된 사랑이라면 정의를 완성하기 때문에 둘은 결국 하나가 된다, 완전히 정의로울 때 사랑할 수밖에 없고 완전히 사랑할 때 정의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 마음에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그게 아홉 번째 문장입니다.
[사회자] 박수 한 번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질문이 참 좋습니다. 두 번째 전화로 질문하신 분이 계신데 한 번 연결해보겠습니다.
[신미숙] 안녕하세요? 서울 은평구에 사는 신미숙입니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하기도 하고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저자는 끊임없는 사유의 확대를 통해 자문자답하는 형식으로 진리를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현대인의 안타까운 특징 중의 하나가 사유를 기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로서 현대인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목사님]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진리를 향해서 우리의 사유를 일깨우는 것은 우리의 정욕을 일깨우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고 말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들이 순진무구하게 자랍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부모의 돈을 훔칩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까먹습니다. 뭘 까먹고 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 자신이 영웅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그것도 굉장히 재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면서 지갑에 손을 대게 됩니다. 좀 더 큰 것, 좀 더 많은 욕심을 표출하면서 아주 작은 도둑이 커다란 도둑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에는 결국 욕망을 따라 살고자 하는 본성이 있고 진리가 없이는 살 수 없는 본성이 있어서 헤르만 바빙크라는 네덜란드의 신학자가 “인간은 불가해한 존재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열렬히 찾으면서 한편으로는 미친 듯이 도망가는 모순적인 존재다.”라고 했습니다. 다 인정하면서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을 외면하려고 하는 것도 인정을 하고, 그 대신 강력하게 하나님을 외면하려고 하는 그 마음의 이면에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또 다른 감정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삶으로, 친절한 언어로, 그리고 생각하는 내가 그 사람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그들의 사유를 자극하는 것이 우리가 진리를 전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항상 겸손하게 온유한 방식으로 우리가 가진 소망이 그들이 가진 욕망보다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보여줄 때 그들도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박수 한번 주십시오. 여러분. 두 번째 질문, 지금 책을 읽고 있고 이미 읽으신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교보문고, 영풍문고에도 이 책이 나온지 얼마 안 됐는데도 순위가 올라가서 여러분이 그만큼 많은 분들께 추천해주고 계시고 알려주고 계신 것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 질문을 받겠습니다.
[금다은] 안녕하세요? 안양에 사는 금다은입니다. 책의 내용 중 독자들이 가장 공감하는 내용이, 1장의 짧은 인생이다, 자기로 살아라, 그러니 속일 수 없이 참된 자신을 찾아라, 나와 나 사이가 얼마나 먼가, 라고 설명하신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와 나 사이의 간격을 좁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회자] 간격을 좁히려면...
[목사님] 네, 혹시 여러분 미러제품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거울에 상품을 비춘 것처럼 너무 똑같아서 진품과 나란히 놓았을 때 거울에 비친 것처럼 똑같다고 해서 미러제품이라고 하는데 미러제품에는 일반 상품은 없고 명품에만 미러제품이 있답니다. 최근에 어떤 사람이 핸드백을 만들다가 검거되었는데 짝퉁 핸드백이 1300만원이랍니다. 우리는 그 돈이면 명품을 사지 않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진품의 가격은 1억3000만원이랍니다. 1억3000만 원짜리 핸드백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결국 명품만 짝퉁이 있듯이 우리가 우리 안에 명품인 우리와 짝퉁인 우리가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아까 우리 에스더 원장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처음 주신 것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열이 아니라 다름입니다. “다름다움”을 인정할 때 “아름다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우리의 나쁜 본성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이 짝퉁입니다. 우리는 이 둘 사이에 끼어서 분열을 느낍니다. 여러분도 그럴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왜 그랬지?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자기 행동을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가면 그 행동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것을 한 것입니다. 분명히 옳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다른 내가 그것을 시킨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 참 이상합니다. 머리가 손더러 명하면 움직이고 발더러 명하면 가나이다. 그런데 내 마음이 내 마음에 명할 때는 왜 말을 듣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참된 나와 참되지 않은 나 사이의 균열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에 갇혀있으면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로부터 이탈해서 제3자로서 자신을 공정히 내려다보면서 참으로 있어야 할 나와 현실적으로 있는 나를 함께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심리학에서 메타인지라고 하는데 자기 자신보다 높은 처지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런 메타인지를 활발하게 학습시켜주는 것이 신앙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나면 하나님이 보는 시각에서 나를 보도록 만들어주어서 결국 진리에 부합할 때 짝퉁인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참된 자신은 점점 커져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면서 자아가 일치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인데, 이것이 기독교에서 이상적인 신앙생활이라고 생각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자] 박수 한번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지금 김남준 작가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메타인지처럼, 요즘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 아십니까? 아십니까? 저만 보는 것입니까? 거기 최고기씨와 유깻잎씨가 나오는데 이분들이 이혼을 했고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하나하나씩 깨달아가는 과정, 자기들이 찍어 놓은 프로그램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 우리가 이랬었구나, 상대방은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면서 하나하나 이해해나가는 그 모습, 다른 사람이 보는 나도 있겠지만 내가 내 자신을 보는 그 나, 오늘 그 간격을 좁혀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김남준 작가님의 그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아사밤,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 북콘서트. 벌써 시간이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우리가 온택트 시대에 살고 있는데 한 공연을 보내드릴 예정인데 이분은 저 멀리 파리에서 함께 해 주고 계십니다. 파리에서 가장 한국적인 음악으로 여러분을 위해 공연을 준비하셨는데 박수로 모셔보겠습니다.
[사회자] 오늘 북콘서트, “내가 늦게야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오늘 그 인생의 여러 외로움 속에서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게 됐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되었을지, 우리 김남준 작가님의 마지막 강의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목사님] 제가 태어나서 처음 읽은 글은 아마 일곱 살, 여덟 살 때 읽었던 성냥팔이 소녀였던 것 같습니다. 남루한 외투에 목도리를 두르고 골목에서 추위를 피하기 위해 성냥불을 켜면서 결국은 죽은 소녀의 이야기말입니다. 제가 아주 극심한 인생의 고통 속을 지날 때 어렸을 때 읽었던 그 동화는 제 마음 속에 재해석되었습니다. 그 소녀는 불이 없어서 추워서 죽은 것이 아니라 빛이 없어서, 어두워서 죽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 책을 쓰면서 그렇게 지금 이 시간도 아무도 사랑할 수 없는 인생의 밤을 지나는 사람에게 행복은 줄 수 없어도 그렇게 불빛이라도 밝혀주고 싶은 마음에서, 촛불하나 밝히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오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창조하셨고 너무나 존귀한 걸작품으로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여러분은 외로워도 혼자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함께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누구든지 마음으로 “내가 이렇게 외로우니 나를 도와주십시오!” 라고 간청한다면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이 저를 인생의 수렁에서 인도하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인도하셔서 이 어두운 밤의 터널을 지나 반드시 눈부신 햇살이 있는 인생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그 날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읽으시면서 여러분이 인생의 어두운 밤을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