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날개를 달다
녹취자 : 이재호
주영훈MC) 인간이 삶의 의미가 없을 때 우리는 삶의 소망을 버리게 되겠죠. 오늘 모실 분도 이런 경험을 하셨지만 하나님을 만나서 삶이 180도 변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송지은MC) 저는 이분을 뵈면서 하나님은 죽음이 아닌 부활을, 절망이 아닌 희망을 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요한MC) 아마 오늘 많은 정말 많은 분들한테 위로가 되는 시간일꺼 같은 데요.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님 한 번 모셔보겠습니다.
주영훈MC) 우리 목사님은 목회자이시고 교수님이시고 기독교 출판상 4회 이상 상을 받으셨고 지금까지 쓰신 책이 80권이더라구요.
담임목사님) 80권 좀 넘은 것 같은데 세어보지 않았습니다.
주영훈MC) 인세도 괜찮으실 꺼 같은데 사모님이 좋아하시지 않으시던가요?
담임목사님) 대개 민감하시군요. 저는 25년 30년 가까이 글 써서 한 번도 아내 가져다 준 적이 없습니다. 선한 일에 쓰고 해오고 있습니다.
주영훈MC) 책 인세를 받으신 금액은 다 좋은 일에 따로?
담임목사님) 초창기에는 제가 제 책을 사는데 많이 썼고 나중에는 교회에서 많이 도와주니까 그것을 가지고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그렇게 생활해 왔습니다.
주영훈MC) 그러면 반대로 사모님께서 섭섭해 하시지 않으세요?
담임목사님) 그래도 말씀을 넓게 전파한다는 것에 기뻐합니다.
주영훈MC) 목사님 책을 읽고 스님이 교회를 왔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담임목사님) 어떤 청년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너무 고뇌가 심하니까 속세를 떠나겠다고 절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이 되는 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어느 스님한테 걸렸습니다. 법당에 가서 늘 참선을 하고 있는데 귀에 무엇을 꽂고 있는 것입니다. 귀에다 꽂고 참선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너 뭐야” 하고 뺐으니까 설교테이프가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잡고 주지스님께 끌고 간 것입니다. “주지스님, 이상한 놈이 있습니다. 승려가 되겠다고 절에 와서 설교 테이프를 듣고 있습니다.” 사유가 뭐냐 하고 물었더니 주지스님이 이런이런 책을 사 가지고 오라고 시켰습니다. 가서 책을 사다가 제 오디오북이 있었는데 그것이 호세아서 강의였습니다. 그 것을 자기가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 사가지고 듣다가 자꾸 기독교 쪽으로 마음이 쏠리게 되는 거죠. 그것을 진솔하게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주지스님 말씀이 더 재밌습니다. “나도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니가 아무래도 그쪽이 맞는다면 떠나서 내려가라” 해서 그 형제가 우리 교회에 왔고 지금은 목사님 되셨습니다.
박요한MC) 야! 이거 엄청난 에피소드이네요. 그러니까 법당에서 참선을 하시면 여기는 목탁소리가 들리고 한 쪽에는 목사님 설교 들으면서
주영훈MC) 저는 그 주지 스님이 주일학교 선생님 하시다가 주지스님이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이번에 또 새로 쓰신 책이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이요? 이 책은 다른 책하고 다른 분위기입니다. 어떤 책인가요?
담임목사님) 제가 예수를 믿고 나서 기독교 인물로서 저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분이 네 위인이 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그분의 책을 오랫동안 속독해 왔는데 그분의 수 백 권의 책 중에서 최고의 명문을 8개를 뽑아서 나의 자전적인 해설을 붙여서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닌 완전히 제 3의 형식으로 책을 썼어요. 그래서 그 책을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던 밤’이라고 했는데 특이한 건 저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주영훈MC) 그러면 오늘 우리 목사님의 자전적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14살 때 무신론자가 되셔서 세상에 굉장히 회의적인 생활을 많이 하셨나봐요. 그 전에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거잖아요?
담임목사님) 저의 집안의 배경이 있는데 저는 7살 때 강원도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고 할머니 집에 머물렀고 할머니가 고모 2분과 함께 사셨고 그분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고모 등에 업혀서 어려서부터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착실히 다녀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왔는데 14살 2개월 되던 때에 주일 날 교회를 갔는데 갑자기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걸어가다가 논뚝 위에 올라가서 통곡을 하면서 울었어요. 울었는데 그때 저에게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막 울었는데 운 원인은 4가지였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세상은 나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 건가?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주영훈MC) 보통 그때 학교는 왜 가야 하는가?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 이런 거 공부하는데
박요한MC) 이 따 짜장면 먹고 싶다. 이런거
주영훈MC) 끝나고 뭐 먹을까?
담임목사님) 그런데 그렇지는 않구요.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걸 가지고 있는데 누군가 그런 것을 끄집어 내 주지 못할 뿐이라고 전 생각하고 저는 그런 것이 워낙 꽉 차서 스스로 폭발을 한 케이스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거기서 한참을 통곡하고 울고 인제 흐르는 눈물을 주먹으로 씻고 결심했어요. 나는 인제 신은 없다. 신이 있다면 나를 이렇게 내버려 둘리가 없지 않느냐? 그러니까 신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신은 나에게 내 인생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나는 그냥 무신론자로 살아간다. 영원히. 그러면서 일어서서 그 순간을 계기로 교회를 끊고 무신론자의 길로 가게 된 거죠.
주영훈MC) 그 당시 교회 다닐 때 교회 친구라든가 교회 누나라든가 존재들이 있잖아요? 별로에요?
담임목사님) ‘사람이 살아야 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지고 고민할 때에는 그런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관계가 되는거 아닌가요?
주영훈MC) 저랑 정신연령 차이가 좀 ...
박요한MC) 정말 조숙하셨던 것 같아요.
주영훈MC) 14살인데,
송지은MC) 정말 중학교 2학년이면 천진난만한고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면서 지낼 것 같은데 특별히 그런 깊은 고민을 하셨던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담임목사님) 아마 저의 성향과도 관계가 있다고 보고, 저의 성향은 끝까지 파고 들어가서 바닥을 보지 않으면 안되는 성향도 있었고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어머니가 저를 5학년 한 참 예민할 때 저의 곁을 떠났어요. 그러면서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이 세상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런 고민을 하면서 결국 무신론으로 제가 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주영훈MC) 어머님 떠난 마음의 상처가 아무래도 좀 영향이 있었겠네요.
담임목사님) 그렇죠. 뭐 예를 들어서 성인이 다 된 다음에 가족들과 헤어지는 것과 한창 11살 12살 때 그 때 헤어지는 것 하고는 다르지 않겠어요?
주영훈MC) 어떻습니까? 그 순간, 나는 무신론자로 살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그 이전과 어떻게 달라지던가요?
담임목사님) 달라지는 건 의지할 게 없으니까 확실하게 내 인생의 문제는 내 스스로 해결해야 된다 것이었어요. 그리고 책을 안 읽을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신은 없다고 선언을 했는데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래서 열심히 책을 읽었어요. 그 때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문학서부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는데 문학을 계속 읽으니까 문학에서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데 친구들과 다른 사람들하고 나눠보면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내가 그때도 글을 썼는데 교회 다니는 어른들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어요. 내가 가끔 이런 질문을 해도 아무도 답을 못하거나 아니면 참 별걸 다 물어본다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문학작품을 읽으니까 거기에 나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 거예요.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위로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러면 그럴수록 현실하고는 멀어졌죠. 그러다가 굉장히 많은 세월, 한 5~6년 정도 세월이 흘렀는데 고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에는 문학작품을 읽어도 도움이 안되는 거예요. 공감은 하는데 대답을 주는 건 아니에요. 그 다음에 철학자들 쪽으로 넘어갔죠.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글들, 이런 걸 읽으면서 니체, 사르트르, 하이데거 등등 읽으면서 나 나름대로 무신론의 내공을 이렇게 키워갔습니다.
주영훈MC) 누가 어떤 질문을 던져도 거기에 대한 답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자아가 강해진 거네요?
담임목사님) 그 때 정말 후회했던 게 내 동생이 교회 잘 나가고 있었는데 제가 순수하게 대화를 하다가 신앙을 버리게 만들었어요.
주영훈MC) 동생까지 설득한 거네요? 왜 신이 없는지를 설득을? 뭐라고 설득을 하셨어요?
담임목사님) 그 신이 참 이상하지 않냐? 있으면 보여주지 왜 안 보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그러냐? 성경을 보면 다 비겁하게 신이 자기가 빠져나갈 수많은 통로를 다 만들어 났어요. 그냥 나 너 교회 다니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다. 근데 너 주체성을 가져라. 설득했어요. 몇 달 만에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교회를 포기했고 나중에 제가 회심하고 나서 제일 먼저 회개한 게 그거였고 다시 전도했고 다시 예수 믿고 지금 우리 교회 장로님이에요.
박요한MC) 그래도 일단은 해피엔딩이어서 다행이에요.
주영훈MC) 왔다 갔다 하셨네요. 근데 그 시간이 어떻게 14살이 지나서 고등학생 때가 되면 철이 들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19살 나이에 생을 포기하시려고 하셨어요?
담임목사님) 그러니까 무신론자로 사는데 사실은 예수 믿는다고 할 때마다 무신론자로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를 니가 몰라서 예수 믿는다는 게 힘들다 그러는 거지 한번 살아봐라. 무신론자로 사는 거예요. 무신론자로서 이야기하는 건 간단하잖아요. 네 근원이 어디인지 묻지 마라. 그것을 대답해 줄 사람이 없다.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 그것도 묻지 마라. 쉽게 이야기하면 고대 그리스 작가의 어록을 동원하자면 영원을 탐내지 마라. 그리고 호라티우스의 송가에 나온다는 카르페 디엠이라고 하는 것, 오늘을 잡아라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지 말고 오늘을 그냥 즐겨라 그런 의미잖아요? 그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시에요. 그런데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사르트르도 보면 나는 그냥 이 세상에 꼭 필요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잉여의 존재로 태어난거다 하이데거는 그냥 우주에 던져진 존재기 때문에 너의 기원을 묻지 말아라 그렇게 얘기하는데 그리고 도덕이고 모든 것도 다 필요없고 그리고 다 그 것은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니까는 니 갈 길을 정하라 그러는데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고 하는데 저는 그 자유가 너무 힘이 든 자유였어요. 그들의 말에 의하면 무시무시한 자유였어요. 모든 것을 다 버렸지만 자유롭지 않았고 마지막에는 자살을 택했죠. 그 때 19살 때였어요.
주영훈MC) 왜 그 존경하는 철학자한테 실망이 왔나요? 아니면 결론을 생각해보니 죽음 밖에 없다고 느낀 건가요?
담임목사님) 실망을 하게 됐죠. 한 때는 미친 듯 빠졌는데 사르트르도 알고 보니까 그렇게 고상한 철학을 이야기했는데 그의 삶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계약 결혼을 하고 계약 결혼 중에도 서로 불륜을 하고 그러고 내가 아무리 신이 없다고 선언했지만 내가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박요한MC) 원치 않는 자유이네요.
담임목사님) 맞아요. 그런 식의 삶은 원하지 않았어요. 그렇고 니체도 한참 탐독을 했는데 마지막에 제자에게 고백하다가 차이고 마지막에 길거리에서 노숙해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게 무슨 초인이냐? 나는 저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도대체 너희들이 삶으로써 한 번 행복했다는 것을 보여줘라. 내가 예수를 믿을려고 한 것도 항복하려고 믿은 거고 집어치우고 무신론자로 돌아간 것도 내가 항복하려고 한 것데 무신론이 나에게 행복을 안 준다면 뭐냐? 나는 갈 길이 없는 거죠. 그 때에 제가 탐독했던 사람이 있어요. 누구인지 아세요? 헤르만 헤세였어요. 거의 다 읽었어요. 19살 때 전 세계에서 헤르만 헤세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다섯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다섯 사람 중 한 사람일거다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책을 읽으면서 제가 자살의 유혹을 받게 됐어요.
주영훈MC)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담임목사님) 헤르만 헤서가 그도 불행한 삶을 살았는데 기독교인이었다가 이교로 넘어가고 생애를 마쳤는데 황야의 이리라는 책에서 인간에게 있어서 자살의 권리, 자살의 자유, 살다가 불이 나면 비상구를 사용하듯이 인생에서 비상구 같은 것이 자살이다. 거기서 힘을 얻었죠. 그리고 자살을 생각했죠.
주영훈MC) 요즘 젊은이들에게 절대 보게 하면 안 될 책이네요.
담임목사님) 비판적으로 봐야죠.
주영훈MC)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결심을 하시고 실행을 하셨어요?
담임목사님) 네. 그리고 제가 3일 만에 깨어났어요. 약물에서. 눈을 딱 떴을 때 눈물이 주르르 흘렀어요. 살고 싶지 않은 세상에서 내가 다시 눈을 뜨는구나. 그거였죠.
주영훈MC) 아 그게 다시 눈 뜬 것 때문에 눈물이 나셨던 거예요?
담임목사님) 네
주영훈MC) 주변에서는 깼을 때 얼마나 놀랐을까요?
담임목사님) 아무도 몰랐어요. 할머니만 아셨는데 제가 우리집 다락에 있었는데 제가 이상하니까 저의 새 어머님이 할머니에게 연락하셨고 그래서 제가 아마 택시에 태워져서 할머니 집으로 옮겨지고 애는 계속 잠들어서 잔다고 생각하셨겠죠?
주영훈MC) 그러면 그 당시 대학 가는데 어려움이 없으셨어요?
담임목사님) 제가 대학을 못 갔죠. 떨이지기도 했고 또 한 번은 붙었는데 등록금이 없어서 못 가고 그리고 저는 꿈이 영문학자와 수필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 때 영어를 매우 좋아했고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때는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자유롭게 읽었어요.
박요한MC) 머리가 좋으셨군요.
담임목사님) 아니 영어만 그랬어요. 영어 원서로 버트런드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행복의 정복’ 이런 책들을 원서로 읽으면서 무신론자의 내공을 키워갔죠. 그래서 영어를 그렇게 좋아해서 고등학교 2학년 때도 자살의 충동을 느꼈는데 영어가 너무 재밌어서 사실은 못 죽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영어가 나를 안 죽게 했었던 것 같아요.
주영훈MC)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뭐 이런 거네요. 영어가 제일 쉬웠어요.
송지은MC) 너무 신기해요.
주영훈MC) 이렇게 책만 많이 읽으시고. 어떻습니까? 그렇게 방황하시다가 언제 하나님의 콜링이 다시 우리 목사님 마음 속에 탁 오셨을까요?
담임목사님) 제가 할 수 없이 취업을 해야 하니까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어요.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하다가 낮에는 시끄러워서 공부를 할 수 가 없어요. 밤에 공부하다가 새벽에 나오면 뒤에 넓은 벌판이 있었어요. 서울 변두리였으니까. 가면 담배를 한 대 피워요. 후 피우면 저기서 한 개 속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교회 새벽종소리. 그렇게 평안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실라 라이언의 저녁 종소리를 좋아하는데 땡그렁 땡그렁 하고 울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톨스토이를 읽으면서 제 마음의 감동이 오면서 나는 신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을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내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어요.
주영훈MC) 결국 교회 종소리가 목사님 마음을 울렸군요. 어떻게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니 돌아온 탕자처럼 하나님 품 안에 탁 안기는 그런 느낌이 들건가요? 어땠어요?
담임목사님) 제가 스스로 찾아간 데가 2층 교회였는데요. 째끄매요. 한 30명 앉으면 다 앉을 정도로 째그만데 난로가 타고 있었어요. 삐그덕 삐그덕 그러고 풍금소리가 나는데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이여 그러고 풍금소리가 나오는데 막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오랜 기간 눈이 내리는 눈길을 걸어서 먼 길을 다 오고 사리문 열고 집에 들어가서 따뜻한 아랫목에 화로 앞에 앉아 있는 그 기분이었어요. 그것이 태어나서 처음 느낀 평화였어요. 그리고 나중에 많은 회개를 하고 신앙을 고백하게 됐죠.
주영훈MC) 그러면 하나님께로 돌아오신 다음에 늘 궁금했던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해결이 되던가요?
담임목사님) 처음에는 사실은 별 답이 없었어요. 교회에서 그런 스위치를 끄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마음 속에는 오히려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하면서 옛날의 나같이 똑같이 방황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그것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실은 목회하고 제가 학교를 떠나고 다음에 본격적으로 자유로운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초창기에는 인쇄를 받아서 책도 많이 사고 제가 지금 제 개인 서제에 가지고 있는 책이 6만권입니다. 결국 이거예요. 나는 누구일까? 철학의 역사에서 보면 아무도 대답 못했어요. 결국은 그거죠.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거는 어디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고 결국은 하나님이 계시구나라는 사실을 내가 믿는 그 순간 아 비로소 내가 그 하나님께 지음 받은 존재구나 내 인생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된다 세계는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결국은 하나님이 나도 만드시고 세계도 만드셨고 이 세계 안에 살게 하셨기 때문에 결국 이 모든 의미들이 하늘로 수렴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이 의미는 찾아지는 거다. 신은 있는가 없는가? 내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면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할 필요가 없는거예요. 질문은 4가지이지만 답은 하나에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이 내 가치다.
실제로 한 법관이 있었어요. 법관이 계속 재판을 했는데 어느 날 재판을 하면서 의문이 생기더래요. 인간은 존엄하다라고 세뇌교육을 받아왔는데 왜 존엄한지 이유를 델 수 없더래요. 그래서 이분이 법을 그만두고 철학으로 유학을 가셨어요. 그런데 기독교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명쾌하게 이야기 하는거예요.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소중한 존재다. 집안에 이런 가보가 있어요. 아버지가 너무너무 일평생을 아끼는데 얘들이 보기에는 밖에다가 버리면 누가 주서도 안 갈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가 워낙 아끼면 온 식구들이 그 거 건드리지마 아빠가 너무 소중하게 여기는 거야 이렇게 되어서 작품의 가치가 결정이 되듯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하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존엄한 존재다. 그러니까 이웃을 대할 때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돈도 없구나 권력도 없구나 이렇게 보지말고 이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구나 존엄한 존재구나 이런 것을 제가 나중에야 정리가 되게 되면서 정리는 됐지만 그것을 어떻게 불신자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가르칠 수 있을까 그러면서 불신자를 상대로 시도한 첫번째 책이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밤’ 이었습니다. 거기서 이런 것들을 이야기해 나갑니다. 지금은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 한 것은 예수님을 믿은 것이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철학의 의문점들을 해결됐다고 나는 그렇게 믿고 싶어요. 최고의 철학자 어거스틴이 그랬어요. 진정한 철학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면 최고의 철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되는 것이죠.
주영훈MC) 그래서 하나님 곁으로 돌아온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 들어졌고, 하지만 주님 곁으로 왔다고 해서 목회자의 길, 소명의 길을 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 이잖아요? 어떻게 목회자의 길을 선택하게 되셨을까요?
담임목사님) 그렇게 회심하고 나서 얼마 있다가 교회를 옮기고 장년 100명정도 모이고 어린이 70명정도 모이는 교회로 가게 되었어요. 가서 목사님을 만나고 제가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그랬는데 어는 부흥사님이 제게 가르쳐주었어요. 교회갈 때 그렇게만 말하지 말고 ‘목사님 제가 뭐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기쁘게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이렇게 말하면 복을 받는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이야기했더니 목사님이 너무 좋아하시면서 주일학교 가서 얘들 좀 가르치라고 그랬어요. 주일학교 가르치다가 24살에 부장집사가 되었어요. 전도사님이 안 계셨어요. 성경학교가 되는거예요. 기도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직장을 다니면서 일주일을 기도했어요. 5박 6일을 교회에서 자고 교회에서 출근하고 하면서 했는데 금요일이었어요. 직장 갔다가 와서 강단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아주 선명하게 주님이 제 마음에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는 목회자가 되어라. 나의 어린양을 먹여라. 그리고 울면서 순종하겠습니다 그러고 목회자의 길의 소명을 받게 되었죠.
송지은MC) 결혼하고 나서 목사님이 되신거죠?
담임목사님) 결혼하고 나서 신학교를 갔어요. 우리 집사람이 졸업한 신학교요. 저는 야간으로 갔거든요. 왜냐하면 낮에는 제가 직장생활을 해야 되니까 야간에 가서 공부하고 그렇게 하면서 인제 제가 마지막에 우체국장까지 하다가 사표내고 신학에만 전념하다가 신학대학원에 가게 됐죠.
송지은MC) 공직에 있다 보면 경제적인 것들이라던지 안정적인데 목회자의 길을 가시기로 선택하셨을 때에는 뭔가 불안정한 것들이 생겨났을 꺼 같아요.
담임목사님) 가난은 예고된 거였죠. 가난으로 인한 고생. 목회로 인한 고생. 이런 것들은 다 예견하고 있었고 진짜 실제로 가난했죠.
주영훈MC) 어떻게 견디셨어요?
담임목사님)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거는 제가 결혼을 하고 얼마 안됐고 직장을 막 그만두고 교회로 들어갔어요. 교회에 사찰을 못 구했는데 사찰을 못 구했는데 사찰을 구할 때까지 3개월만 교회에 들어와서 좀 살면서 도와달라고 해서 들어갔는데 3년반동안 있었어요. 그러면서 사찰처럼 하다가 나중에 전도사 생활하면서 있었는데 겨울에 늘 자다가 늘 물 마시는 버릇이 있어서 집사람 머리 위에 물을 한 그릇 떠 놓고 잤는데 새벽에 조갈이 나서 먹으려고 했는데 물이 안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왜 물이 안 나오냐 하고 이렇게 보니까 얼었어요. 완전히 얼음이 됐고 우리 집사람은 코가 하얗고 빨갛고 그래서 숨을 쉬면 입김이 나오는 거예요. 너무너무 추운 거예요. 여름이면은 그릇을 여섯 일곱개 놔야 할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그러면서도 감사하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힘들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주영훈MC) 그래도 영양실조까지 걸리셨다는데 ...
담임목사님) 신대원 들어가서 또 한 번의 시련이 있었어요. 우리는 결혼을 했는데 아이가 이상하게 안 생겼어요. 첫 아이 유산하고 나서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태어났을 때가 민주화 운동이 막 시작되던 때였어요. 총신대 앞에 살았거든요. 체류탄이 날라와 가지고 터지는 바람에 얘가 모세기관지염에 걸렸어요. 얘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는데 아무 수입이 없는 거예요. 제가 신대원 3학년 다니면서 히브리어 강사를 했는데 그거 들어오는 작은 수입 가지고 사는데 이 아이의 병원비를 댈 수가 없는 거예요. 보험료도 없고. 그렇게 가난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아이가 그렇게 병에 걸려서 죽을 정도의 위기까지 가게 되었어요. 너무 고통스러웠는데 그 때에 제가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어느 날 하루 교수님 연구실에서 일을 보다가 공부를 하고 일어났는데 확 바닥이 도는 거예요. 이게 무슨 현상이지 하고 쓰러졌어요. 두 번 세 번 정도 쓰러졌던 거 같아요. 나중에 알아보니까 영양실조였어요. 그 때에는 학교가 휴교령이 내렸을 때고 하루에 한 15시간씩 공부를 했고 그 때에 제가 한 2년 전에 하나님이 기도원에 가서 기도를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일주일씩 금식기도를 하는데 분명하게도 응답을 해주시더라구요. 너는 신학교의 선생이 될꺼다. 그랬는데 왜 공부할 시간을 안 주시는 지 모르겠는 거예요. 많이 울면서 기도했는데 그러고 나서 내가 공부할 수 있게 되자 온전히 힘을 쏟아서 하루에 15시간씩 공부하면서 기도하면서 그렇게 넘어왔죠.
주영훈MC) 그럼 학교 옆에서 체류탄 쏘는 것 때문에 아이에게 폐 문제가 있었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고 다 견딜 수 있지만 아이 아픈 것은 부모 입장에서 못 버티잖아요? 너무 힘들잖아요? 어떠셨을까요?
담임목사님) 참 희한해요.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기대도 안 했지만 정말도 없었어요. 신기하더라구요. 학교가 끝나고 나면 저녁 때가 되면 4시간쯤 되면 채플실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는데 짧으면 1시간반 길면 2시간반 기도를 하는데 저는 원래 소리지르면서 기도하는 형이 아니거든요? 얼마나 간절해졌는지 여름인데 한 2시간 기도하고 나면 바가지에다 물을 쏟아 부은 것 같이 티셔츠, 내복, 바지까지 다 젖었어요. 그리고 기도를 하고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부르던 찬송이 있었어요.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 뵈오리다라는 찬송이었어요. 계단을 내려오면서 거기 앉아서 한참 울고 그렇게 하면서 어쨌든 하나님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들을 주셨던 것 같아요. 집은 공무원 퇴직금 타 가지고 전세로 들어갔는데 주인이 빚을 잔뜩 지고 쉽게 얘기해서 사기를 하고 세입자들을 길거리로 내쫓게끔 만들고 자기는 도망을 간 거예요. 그래서 저는 길거리로 또 우리 가족이 내쫓길 위기에 놓이게 되기도 했었어요.
주영훈MC) 그럴 때 하나님께서 어떤 위로를 주시던가요?
담임목사님) 진짜 삶의 벼랑 끝에 그런 비유를 많이 하거든요. 몰리다가 몰리다가 벼랑 끝에까지 가게된 거예요. 벼랑 끝에서 아 이제 내가 인생이 끝이구나 주님을 부르다가 악 하고 떨어졌는데 떨어지는 나를 붙들어서 날개를 달아주시는 거예요. 그런 상상을 많이 했어요. 으악 하고 떨어졌는데 절벽 위를 날고 있는거죠. 이렇게 절망적이고 비참한데 낙심이 안되냐 하고 물어보면 할 말은 없었어요. 그런데 기쁨은 솟았어요. 그리고 슬픔과 함께 기쁨이 공존하면서 나의 가는 길을 주가 아시나니 나를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실 것이다. 그 사이에 단련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받았던 거 같아요.
주영훈MC) 가난을 겪으면서 어려웠던 시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환경이 변화되는 반전이 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어떻게 변화가 되던가요?
담임목사님) 말도 안되는 변화였죠. 신학대학원에서 구약으로 논문을 쓰고 논문이 통과가 되었어요. 그것을 정서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어요. 대학에서 제가 졸업했던 대학교에서 교수로 뽑는데 빨리 30분안에 원서를 써 가지고 와라. 원래 신학교 쪽에서는 구도가 같은 석사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3년 공부하는 것은 목회자가 되기 위한 석사과정이고 그 위에 다시 2년을 해야지 교수가 될 수가 있었거든요. 사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것이 무엇인가 하고 선배 교수님이 몇 년만에 전화 오셨어요. 빨리 써 가지고 오라고 그래서 써 가지고 달려갔어요. 그 때 여러 쟁쟁한 교수님이 공모를 했죠. 그런데 기적적으로 제가 그 학교에서 교수로 채용이 된 거예요. 그 채용이 된 순간과 집에서 쫓겨나는 순간이 절묘하게 일치했어요. 딱 한 달 차이 정도. 그러고 학교의 교수가 됐죠. 그게 제 나이 34살. 만으로 32살의 일이었어요.
박요한MC) 정말 일찍 교수가 되셨네요.
주영훈MC) 학생들하고 별 차이가 안 날거 같죠? 학생들이 그냥 형님해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이른 나이가 교수직까지 얻으셨는데 목회를 위해서 교수직까지 모두 내려 놓게 되셨을 때 아깝지 않으셨어요?
담임목사님) 그것도 참 그렇더라구요. 사실은 어느 날 밤이었어요. 학교에서 아주 잘 대우해줘서 간신히 전세집에서 사는데 학교에서 돈을 이렇게 빌려줘서 말로만 듣던 방배동에 42평에 산 아래 빌라에 살게 되었어요. 물론 전세지만. 잊히지도 않아요. 아들이 막 걸어가면서 친구들한테 자랑하는데 우리 집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한 참 걸어 가야 해. 화장실이 두 개야. 막 그랬어요. 아주 평화로웠죠. 저는 그 때 이미 글도 쓰고 있었고. 그런데 잠을 자는데 우리 집사람은 깊이 골아 떨어졌는데 저는 잠이 안 와요. 그래서 내려와서 침대 밑에서 기도를 했어요. 그런데 잠깐 기도하고 올라가서 자야지 그랬는데 기도가 되기 시작했어요. 그 기도가 무엇이었냐면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였어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저 영혼들을 하나님이 좀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다가 나도 모르게 하나님 내가 개척교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쇼. 이게 미쳤나? 지금! 교수로 소명을 받았는데 무슨 개척교회냐 그 개척교회 아무나 하는게 아닌데. 그런데 또 기도가 나왔어요. 그래서 그 날 밤을 꼬박 새웠어요. 새벽까지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정신이 멍해요. 학교는 강의를 하러 나가야 되는데 이게 아마 너무 몰두한 나머지 오바를 한 것 같다. 그러고 잤는데 그 다음날 한숨도 안 잤는데 그 다음날 또 잠이 안오는 거예요. 똑같이. 다시 침대 아래로 내려갔어요. 그 날밤 또 새웠어요. 똑같이. 그렇게 애끌는 기도가 나오는 거예요. 그걸을 3일을 똑같이 경험하고나서 ‘아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구나’ 그러고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어요. 하나님이 나를 아무래도 교회를 개척하라고 그러시는 같애. 그 때 우리 집사람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뻘떡 일어나더니 두 손을 하늘로 번쩍 쳐들더니 ‘만세 할렐루야’ 그러는 거예요.
박요한MC)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주영훈MC) 저도요. 쓰잘데기 없는 소리하지 말고
담임목사님) 그러는거예요. 그랬더니 ‘난 솔직히 경제적으로나 모든 것으로는 교수 부인으로 사는 게 좋지만 나는 이게 만족이 안 됐어. 당신 교회 개척한다니까 나는 마음속에 너무 기뻐. 합시다.’
주영훈MC) 박요한 목사님 개척하시는데 사모님 반응은 어떠셨어요?
박요한MC) 지금 상황과 많이 상반된 상황이네요.
주영훈MC) 아! 만세를 부르세요?
담임목사님) 제가 아는 교수님 한 분은 자꾸 교수하다가 목회를 해볼까 해볼까 그러니까 사모님이 그러시더래요. ‘당신, 사표내면 나 이혼할꺼야’ 우리 집사님은 좀 반대였어요. 벌떡 일어나서 ‘만세, 할렐루야’
박요한MC) 참, 진짜 응답 맞네요. 그죠?
담임목사님) 우린 기쁜 마음으로 했고 그 일이 있은 것이 지금 제 생각에는 10월 말, 11월 초였던 거 같아요. 그런데 12월 12일날 결국 교회를 개척했어요. 지하실 하나 얻어서 개척했어요. 거기도 재미난 일화가 있는데요. 가보니까 흉가같이 다 무너졌어요. 습기가 차고. 싹 뜯어내고 우리가 스스로 인테리어를 하고 했는데 앞에 교회가 두 번 섰다가 안 돼서 문을 닫고 나간 자리였어요. 거기서 열린교회가 시작이 된 거죠. 그것이 1993년 12월 12일의 일이었어요. 제 생일이었어요.
박요한MC) 그럼 개척하시고 바로 교수직을 그만 두신 거예요? 아니면 어떻게 좀.
담임목사님) 2년 있다가
박요한MC) 병행을 일단 좀 하신거예요?
담임목사님) 병행을 하고. 목회 소명을 받고 신학교 교수가 될 것이라는 소명도 신학교 들어온 2학년 때 주셨어요. 그랬는데 사실 더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면 1989년도의 일이었어요. 교수가 된지 2년이 되었는데 그 때 제가 안수를 안 받고 교육 전도사로서 내수동교회를 섬기고 있었는데 학생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가게 됐어요. 거기서 제가 하나님의 큰 영광을 경험하면서 설교자로 태어나게 되는 생애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때는 아마도 7월 마지막주였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가는데 어마어마한 비가 왔어요. 산 속에 들어갔는데 모두 교통이 두절됐어요. 우리는 섬처럼 갇히게 됐어요. 그래서 군부대에다가 헬기 구조 요청을 해 놓은 상태였거든요. 마지막 날이었어요. 설교를 하는데 갑자기 하나님이 막 엄청난 확신을 주시는 거예요. 오늘 설교에서 내가 놀라운 일을 행할 것이다라는 응답이었어요. 그래서 설교할 때 선생님들 밖에 있지 말고 모두 들어오라고 하고 자가 발전기로 희미하게 등불이 켜진 그런 상태에서 폐교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한 100명정도 드렸어요. 그 때 제가 45분 정도를 설교했어요. 그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끌려가는 장면을 설교하고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설교를 하는데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있었어요. 8시에 설교가 시작해서 8시45분에 설교가 끝났어요. 설교 끝나면 대개 수련회에서는 ‘다같이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이러잖아요? ‘다 기도합시다.’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1시에 안 끝났어요.
박요한MC) 새벽 1시요?
주영훈MC) 언제까지 했어요?
담임목사님) 새벽 1시가 좀 넘었는데 장로님 한 분이 오셔서 ‘전도사님, 저러다가 아이들 쓰러지겠습니다. 이 정도에서 좀 마무리를 해주시면 어떻겠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계속해서 아이들을 울지 못하게 하고 그만 울게 하고 그렇게 해가지고 의무적으로 멈춰라 그렇게 해서 1시반쯤 마무리를 했어요. 그 때에 굉장히 많은 아이들이 회심을 했어요. 그래서 그 때에 그 하나님의 영광을 저는 설교자로서 처음 봤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 때는 공부도 상당히 하고 있었을 땐데 나의 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거였어요. 내게 일어난 그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건이 내가 신학에서 다 배운 건데 그 때 신학에서 배운 때는 흑백 사진이었어요. 그런데 그 광경을 보면서 그것은 총천연색 동영상이었어요. 그것도 고화질의 동영상이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하나님이 그 다음에서부터는 완전히 제가 다른 설교자가 되어 있는 걸 느꼈어요. 설교하러 올라가면 충만한 기운이 느껴지고 그 다음에 가슴이 터지도록 외치지지 않을 수 없는 메세지를 주시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저로 하여금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될 것인가에 대한 명료한 좌표를 준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주영훈MC) 그래도 편안했던 생활에서 어떻게 보면 아스팔트에서 비포장도로로 들어가셨잖아요? 남들은 다 포장도로로 가는데 얼마나 어려움이 많으셨을까요?
담임목사님) 그 때는 교수직이 대단하다는 것을 몰랐어요. 사표를 낸 다음에 2년 뒤에 교회일하고 중복할 수 없다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압박감이. 그러면 무엇을 택할 것이냐 할 때 그 때에 교인이 얼마 안됐어요. 저는 사실 교회 개척할 때 1년하면 300~400명은 모이겠지 바보가 아닌데 그렇게 생각했어요.
주영훈MC) 보통 다 그런 생각을 하실 꺼 같은데
담임목사님) 그런데 저는 그 때 이미 주님을 깊이 만났고 사실은 설교자로 하나님이 세워주셨고 많은 회심의 역사도 이미 있었고 나의 지명도도 점점 알려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좀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한 1년 했는데 한 60명 정도 모였더라구요. 그러다가 그 다음에 1년 후에 내가 이러면 안되겠다. 내가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겠다 하고 기도를 했어요. 그러다가 과감하게 사표를 냈어요. 그러고 나니까 미국에서 집회 요청이 들어왔는데 대사관에 신청을 하니까 제가 무직자로 분류가 되어 있더라구요.
주영훈MC) 재직증명이 안되는 거군요?
담임목사님) 그러니까 이만큼의 번역한 서류를 요구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그냥 재직증명서 하나만 떼다 줬으면 됐는데 대사관에 면접까지 갔어요. 서류를 이만큼 뗀 거예요. 그 업체 브로커에 이야기해서. 상담하시는 분이 ‘어머, 교수님이셨네요?’ ‘아! 예’ 하고 탕 찍어 주는 거예요. 그 때에 비로소 잃어버린 것이 참 큰 것이었구나 그런 것을 처음 깨달았어요. 정확하게 교수직을 사임하고 교회로 돌아오니까 수입도 별로 없었던 상태인데 정확하게 수입이 3분의 1이더라구요. 그런데 위로를 주셨어요.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제 책이 베스트셀러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 중에 히트쳤던 책 중에 하나가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였는데 한 10만권 정도 나갔는데 그 당시에 1년 받은 인쇄가 학교의 연봉보다 많았어요. 그 한 권이. 그런 식으로 또 위로를 해 주시더라구요.
주영훈MC) 그런데 연봉보다 많은데 다 집으로 안 가지고 가고 다 헌금하셨으니까 ...
담임목사님) 그 때에 다 헌금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그 때에 교인이 굉장히 가난한 사람들만 모였어요. 그래서 다들 그런 말 했어요. ‘우리 교회에서 목사님이 제일 부자에요’ 그러면서 아침에 심방을 떠나면 다 가난한 사람들이에요. 집 한 칸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면 이제 심방 갈 사람 이름을 보면서 이 사람은 어떤 형편 어떤 형편 적어서 봉투를 만들어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 가서 심방을 하고 하나씩 나눠주고 오는 거예요.
주영훈MC) 오히려 목사님이 다 주시는 거예요?
담임목사님) 제가 제일 부자였으니까요. 그래서 그 지하실 교회에서는 거의 제 도움을 안 받은 성도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또 이제 쓰면 그 다음에 다시 또 채워지고 쓰면 또 채워지고 저에게는 하나의 간증거리였어요.
주영훈MC) 오병이어의 기적이네요.
담임목사님) 저축에 대한 개념이 없이 그렇게 살았었죠.
박요한MC) 목사님 궁금한게 살다보며는 지금 목사님이 경험하신 두 가지 중에 무엇인가 하나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이때 진짜 많이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을지 좀 궁금해요.
담임목사님) 제일 중요한 것은 사실은 하나님의 응답이 아니라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매우 쉽다. 문제는 비유를 하자면 이거예요. 연못에 물이 호수의 물이 잔잔해요. 그러면 풍경을 읽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에요. 거울처럼 나무, 숲, 그림자 모두 다 비치는 거예요.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것을 구별하기가 힘든 거예요. 결국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닌데 어려운 이유는 내 욕망이 마음 속에서 장난질을 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뜻으로 몰고 가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인데도 자기가 가고 싶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증거를 자꾸 찾아 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혼란이 일어나면서 분별하기가 어려워지는 거죠. 이런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저에게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은 일단 열렬한 기도 있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사심은 다 버리는 것이에요. 주님의 뜻이라면 교수도 내려 놓을 수 있고 심지어 교회를 떠날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유언을 남길 수 있고 그렇게 다 비운 다음에 비우면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주영훈MC) 그 후에 지금 교회가 위치한 평촌으로 이사를 가게 되셨죠? 그 당시도 재정적인 압박 때문에 많이 힘드셨다면서요?
담임목사님) 뭐 말도 못하죠. 지하실에 개척을 했는데 제가 학교를 그만두고 나니까 교인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잠깐 사이에 200여명 모였어요. 지하실인데 사람이 막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모여서 산소가 모자라서 몇 사람이 기절을 했어요.
주영훈MC) 밀폐된 공간에 그 정도로 모여서
담임목사님) 나중에 구멍을 뚫고 난리를 했죠. 그 때에 제가 얼마나 열렬하게 설교를 했는지 보통은 100분을 설교했거든요. 주일 낮 예배에.
박요한MC) 기절할 만하네요. 1시간 40분인데.
주영훈MC) 저도 기절했을 거 같아요.
담임목사님) 그리고 더 재밌었던 일은 오후예배 3시반쯤 하는데 제가 여기저기 불러 다닐 때였어요. 차를 들고 와서 저를 데려가려고 저녁집회 데려가려고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막 설교를 하고 그렇게 신앙생활을 해도 되겠냐고 주기도문도 안하고 회개하라고 모두 기도하자고 기도를 시키고 나는 가고 거기가서 저녁먹고 저녁집회하고 돌아오면 아직도 교인들이 남아서 기도하고 있었어요.
박요한MC) 대단하시다. 진짜.
담임목사님) 전부 다는 아니고 3분의 1은 남아서 여전히 기도하고 있었어요.
주영훈MC) 그러면 교회가 부흥해서 평촌으로 이사가신 거예요?
담임목사님) 그것도 스토리가 있는데 너무 많아 가지고 그 골목에서 작은 사무실을 일곱개를 빌려서 썼어요. 교인들이 그 때 장년이 220명정도, 주일학교 학생들이 70명 80명정도 모였는데 그 골목이 열린골목이라고 했어요. 도저히 수용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야 데는데 그 많은 인원을 데리고 어디를 가겠어요? 돈도 없고. 교인들이 와서 은혜는 받지만 가난해서 돈이 없어요.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철야를 혼자 했어요. 밤을 세우고 새벽에 나오는데 항상 차를 몰고 이쪽 골목으로 나와야 하는데 딴 생각을 하다가 반대 골목으로 나간 거예요. 반대 골목으로 나갔는데 커다란 교회 빌딩이 하나 있는데 월세 임대 이렇게 써 있는거예요. 이건 뭔가 그러고 들어가 보니까 예배당으로 쓰던 건물을 건축업자에게 넘겨주고 그 교회는 그 옆으로 지어서 가고 건축업자는 그 것을 부수고 오피스텔을 지으려고 하다가 IMF가 터진 거예요. 있는 건물도 지금 팔리지 않은 판이니까 못지고 할 수 없이 세를 놓을려고 하는 거예요. 제가 딱 보니까 전세는 못 들어 가겠고 월세를 들어가야해서 그래가지고 그 때 해서 그 날 새벽에 가다가 봐 가지고 그 날 밤에 재직회까지 모여서 계약을 해서 월세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것이 총신대 사거리에 있는 예배당이었어요. 거기서 한 3년반 만에 장년이 1000명, 주일학교가 300명이 모여서 도저히 거기에 수용이 불가한 상황이 되어서 오게 된 곳이 평촌 예배당이었어요. 평촌 예배당에서는 진짜 너무너무 재밌는 간증이 있는데요. 그 땅을 살려고 갔는데 땅이 없데요. 그래서 알아봐 달라고 그랬더니 하나 있긴 있는데 주인이 팔라고 내 놨다가 계속 땅값이 오르니까 도로 집어 놓은 땅이 있데요. 그런데 그래도 주인을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집을 가르쳐줘요. 우리 집사님들이 찾아갔어요. ‘사장님 우리 그 땅 좀 우리에게 파시면 안됩니까?’ 이러니까 ‘안 팝니다. 자고나면 오르는데 왜 팝니까?’ 그러는거예요. ‘그래도 제발 부탁합니다. 한번만 다시 생각해주십쇼.’ 그랬더니 ‘내가 안 팔겠다고 그러는데 왜 그렇게 귀찮게 하냐고, 그런데 내가 만약에 땅을 팔면 당신들 거기다 뭐 하려고 그러오?’ 그래서 ‘교회를 지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요?’ 이 할아버지가 팔순이 다 되신 분인데 ‘일주일만 생각해봅니다.’
박요한MC) 무엇인가 태도가 좀 달라졌네요.
담임목사님) 일주일 열렬히 기도를 했죠. 갔더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분이 70년대에 거기에 공장을 짓고 가발공장부터 시작해서 전자제품까지 모든 사업을 하시다가 이제 은퇴를 하시던 때였어요. 은퇴를 하시면서 ‘우리 공장 건물이 싹 사라지고 여기에 교회가 들어오면 참 좋겠다’ 그러셨는데 이 분이 알고 보니까 26살에 한경직 목사님한테 안수를 받으셨데요. 장로님으로. 그리고 한경직 목사님이 매주 한 번씩 그 직원들을 위해서 60년대 일이었겠죠. 성경 공부를 가르치러 오셨던 그 유서 깊은 공장 건물이었어요. 그런데 기적은 그 다음에 일어났어요. ‘그래요? 그러면은 내 땅을 가져가슈’ ‘그러면 계약금 가지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럽시다. 만납시다.’ 그래가지고 만났는데 ‘얼맙니까?’ 이랬더니 그 당시에 천평인데 36억이라고 그러셨어요. 사실은 교회 통장이 1500만원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뭐 그냥 믿음으로 하는거죠. 그 땐 나도 젊었었고.
주영훈MC) 잔금은 준비하셔야죠!
담임목사님) 그런데 어떻하겠어요? 가야하는데. 저질러 놓고 보는 거죠. 그 때는 그럴 패기가 있었고. 그래서 열렬히 기도하고 3억원이 없어서 쩔쩔맸는데 어느 교인이 빌려줬어요. 그래서 3억원을 가지고 가서 계약을 하려는데 그 할아버지가 그러시는 거예요. 30억은 계약서를 쓰고 6억은 현금으로 달라는 거예요. 요즘 얘기하는 다운 계약서죠. 그래서 ‘왜 그러신다냐’ 그랬더니 세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것을 교회를 짓는다고 그래서 계속 나두면 올라갈 땅인데 넘겨주는데 내가 돈을 보태서 이것을 청산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래서 그럴 수도 있겠다 돌아와서 물어보니까 건축위원들이 다 요즘 그렇게 한다고 괜찮다 그러는 거예요. 제가 마지막으로 공인회계사가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목사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부를 두 개 쓰셔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하나는 진짜 장부, 하나는 가짜 장부. ‘나는 그렇게는 안한다.’ 그래서 다시 사람을 보냈어요. 그 할아버지 한테 가서 ‘세금이 얼마닙니까’ 그러니까 세금이 3억이래요. ‘우리 목사님이 이중계약서는 못 쓰시겠답니다. 39억 받으시고 땅을 넘겨주시죠.’ 그래서 36억 달라는 것을 39억을 주고 계약을 했어요. 기적이 일어났어요. 잔금 문제 가지고 당연히 고민을 하죠. 한두푼이 아닌데 6개월 안에 다 갚아야 하는데. 그런데 할아버지가 ‘돈은 있수?’ 그러는거예요. ‘예, 저희가 믿음으로 준비해야죠.’ ‘있긴 뭐 있어. 믿음만 있겠지.’ 걸어가시더니 금고를 열더니 인감도장하고 등기부등본하고 다 꺼내시는 거예요. 계약금 받으시고 돈을 찍은 다음에 ‘이거 등기부등본이고 이거 인감증명이니까 갖고 가서 교회 명의로 먼저 올리고 그것을 가지고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아서 가지고 와라.’ 그런거 들어보셨어요? 내가 주인이라도 그런 거래를 안하죠.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아요. 성령의 역사였다고 생각해요. 그 할아버지가 다 넘겨주신 거예요. 기적적인 일이요. 그래 가지고 대출을 받고 그 사이에 교인들이 헌금을 하고 해가지고 무사히 갚고 땅은 인수를 했는데 교회를 지어야 되잖아요? 싹싹 긁어서 다하고 교회는 짓지를 못하고 1년이라는 세월이 더 지나간 거예요. 저쪽에서는 ‘안나가면 소송하겠다. 우리는 빨리 건물을 지어야 하니까 빨리 나가라’ 그래서 막 너무 괴로워서 견딜수가 없어서 매달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어요. 그랬더니 제 마음에 딱 들어오는 생각이 나가라는 기간하고 업자를 불러서 짓는 기간하고 안 맞는 거예요. 그럴 여유가 없는 거예요. 우리는 10개월이 필요한데 저기서는 2개월 안에 나가라는 거예요. 내 마음속에 ‘네가 지어라’ 그래서 제가 직접 도면을 지어서 일꾼들을 데리고 제가 진두지휘를 하면서 공사를 하기 시작해가지고 그 전에 제가 그럴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해서 건축공부를 계속 했어요. 한 3년을. 건축 공부를 하고 미국과 프랑스에서 건축 잡지를 받아 가지고 계속 읽으면서 건축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3년정도 계속 하고 있었어요. 그 것 계획한대로 주위의 전문가 도움을 받아가지고 ‘돌격’ 해가지고 두달만에 싹 예배당을 고치고 들어갔죠. 두달반.
박요한MC) 이게 아까 것보다 더 큰 기적인데요.
주영훈MC) 지금 뭐 이렇게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받으셨을 스트레스와 걱정과 근심이 얼마나 목사님 내면에 쌓여 있을까 싶어서 건강은 어떠셨어요?
담임목사님) 저는 그래도 건강했어요. 소화제를 한 주에 한 박스 씩 먹긴 했지만 그래도 건강했구요. 타고 났어요. 그래서 50대 중반까지는 내 평생 소원이 병원에 입원해 보는 거였어요. 입원해서 하얀 침대에 우아하게 누워서 문병을 받고 싶었어요.
송지은MC) 아픈 사람 대우를 받고 싶으셨어요?
주영훈MC) 심방 받아보시는
담임목사님) 그런 말을 하고 나서 한 2년 뒤에서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11년동안 12번 입원하고 10번 수술했어요.
박요한MC) 이래서 말을 함부로 하면 안돼요.
주영훈MC) 그래서 설레발 이즈 과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아프셨어요?
담임목사님) 마지막에는 몸무게가 20kg 줄었어요. 지금은 이제 하나님 의지하면서 열심히 사역할 수 있을 정도로.
주영훈MC) 그래서 건강해야 목회도 잘 할 수 있잖아요? 목사님이 건강이 자꾸 약해지면 하나님 앞에 어떤 기도를 올리세요?
담임목사님) 나이가 들면서 젊은데 어디가 사고가 나가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그런 게 아니니까 나이가 들면 생명 기운은 빠져나가고 죽음의 기운이 들어오는 거니까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면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지혜로운 인생을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아주 순순히 받아들여요.
주영훈MC) 어린시절 김남준 학생 중학교 때부터 굉장히 철학적이고 삶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했던 그런 어린 김남준의 모습으로 지금도 19살의 김남준의 모습으로 생을 포기하고 싶고 그런 젊은이들이 요즘 많잖아요? 그런 젊은이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주고 싶으세요?
담임목사님) 최근에 들은 이야기인데 작년에 죽은 20대 사람 중 절반이 자살이에요. 너무 가엾은 거죠. 자살하고 죽은 사람 집에 가보면 거의 예외 없이 위로에 관한 책이 꽂혀 있데요.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 누군가에게 나를 좀 위로해 달라고 손을 내밀다가 마지막 아무도 손잡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 인제 죽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떠한 절망의 순간이 와도 이것을 생을 포기하지 말아라. 왜냐하면 결국 인간은 살려고 태어났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이기 때문에 절망의 끝에서 거기서 벼랑을 바라보지 말고 거기에다가 그 벼랑을 타고 내려갈 사다리를 찾지 말고 날개를 달아 주시는 주님을 찾아라. 날개만 있으면 그 벼랑 위를 날아갈 수 있으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그런 인생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살아 계시니까 그 분을 찾아봐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주영훈MC) 많은 젊은이들에게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정말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예전에 먼저 세상떠난 우리 그 모 아이돌 멤버도 그토록 ‘수고했어요’ 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수없이 노래 가사에까지 적었잖아요? 본인이 본인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그렇게 많이 했던 저희가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그랬던 거 같아요. 나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위로가 필요한 수간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 결국은 떠나버리게 되는 것이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을 넘기셔서 목사님도 이렇게 훌륭한 목회자가 되시고 그죠?
담임목사님) 너무 감사한 건 저에게는 죽음같은 시간이었지만은 그래서 이렇게 얘기하는 순간에도 인생의 벼랑 끝에서 아무도 사랑하고 싶지 않은 밤을 생각하면 절절히 느껴져요. 얼마나 아플까? 그래서 사실은 제가 ‘아무도 사랑할 수 없던 밤’을 쓰면서 책을 쓴 가운데 가장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그 책을 쓰면서 참 많이 울었어요.
주영훈MC) 시청자 여러분도 그 책 찾아서 꼭 읽어봤으면 좋겠네요. 우리 지은자매 어떠셨어요?
송지은MC) 저는 오늘 목사님 이야기를 쭉 들으면서 초반부에 나눠 주셨던 이야기가 많이 남는데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갈망 하잖아요? 더 자유롭고 싶어서 뭔가 더 편안해지고 싶은 삶? 잊고 싶은 삶을 선택하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 자유가 있다는 걸 이 방송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보고 포기하시지 말고 위를 바라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들었습니다.
주영훈MC) 우리 프렌즈 교회 박요한 목사님 어떠셨어요?
박요한MC) 오늘 목사님 말씀 들으면서 제 학창시절에 목사님이랑 비슷한 친구들이 꼭 한 명씩 있었어요. 아주 정말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친구죠.
담임목사님) 좋아하셨어요? 싫어하셨어요?
박요한MC) 저는 조금 부담스러웠죠. 같이 놀려고 갔다가 자꾸 저한테 질문을 하는 거예요. ‘인생이 뭐라고 생각하니’ 막 이러면서. 그런데 제가 오늘 목사님의 그 지난 인생을 들으면서 ‘아 그 친구도 어디서 찾을 수 없는 근원의 해답 때문에 참 외로웠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지금 앞으로 만나게 될 그런 친구들이 제 앞에 놓인다면 저는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싶어요. 또 외로워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고 저에게도 오늘 너무 깊은 생각을 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주영훈MC) 저는 사회 뉴스에 관심이 많아서 시사 프로그램 중에 ‘그것이 알고 싶다.’ ‘궁금한 이야기’ ‘실화탐사대’ 이런 거 굉장히 많이 봐요. 그런 뉴스거리들 중에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의 뉴스 가운데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말이 무엇이었나면 ‘~할까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말이 굉장히 비교적 많이 들어가요. 다시 말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아직 벌어지지 아닌 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할까봐 아이를 두고 왔다.’ ‘~할까봐 버렸다.’ ‘~할까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니까 사실 벌어지지 않은 일인데 그 사람을 둘러 싼 너무나 많은 걱정과 근심이 결국 그 사람을 이렇게 세상을 떠나게끔 만든 것이 아닌가 하지만 하나님께서 오늘 목사님 말씀을 들어 보니까 저렇게 내가 감당할 수 없어 1500만원 밖에 없는데 39억짜리 땅을 얻을 수 있는 큰 교회까지 예비하시고 모든 한순간 한순간을 한 단계 한 단계 오를 때마다 하나님께서 미리 다 준비하고 계신 미래가 있는데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준비하실 지금 닥칠 오늘의 고난이 얼마나 힘들지 모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반전시킬지 하나님에 대한 기쁨이 얼마나 기대가 되지 않겠습니까? 목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나눠 주셔서 저도 역시 앞으로의 저의 꿈에 대해서도 비전을 갖게 되고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우리 열린 교회 그 평촌 땅에서 더 크게 열려서 많은 분들에게 더 큰 부흥의 바람이 있는 그런 교회로 성장하시길 저희도 응원하고 중보 하겠습니다. 목사님, 오늘 귀한 간증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