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옥합을 깨뜨린 여인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은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눅 7:36-50)
녹취자: 김경애
예수님이 한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이상합니다. 바리새인은 당시의 종교지도자이고 예수님을 시기하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을 집에 식사에 초대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그 일이 알려지면 자기의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당시 식사를 한다는 것은 형제가 되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하고나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내용의 기록이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4복음서에 모두 실려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마태복음에는 문둥이 시몬의 집에 초청을 받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종합해 보면 바리새인이었는데 문둥병에 걸린 시몬이 예수님을 초청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문둥병은 유대인들에게 1급 법정전염병입니다. 그 병에 걸리면 무조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의 밖으로 내보내졌습니다. 함께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성경에서도 금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마을에 있었을 리가 없었습니다. 종합해보면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 하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사람은 신분은 바리새인이었고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그랬다가 문둥병이 치료되어서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것입니다.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아마도 이 사람이 예수님에 의해 병 고침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고쳐 주신 예수님을 초청했을 것이라고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개 그렇게 추측합니다. 아무튼 그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 그랬는데 초청하지 않은 손님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손님은 여인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등장인물만 나오지 대사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어떤 행동만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기에 나오는 옥합을 깨뜨린 여인입니다. 이 여자가 와서 예수님을 위해서 뭔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시몬이 생각하기를 ‘이 예수가 정말로 뛰어난 선지자라면 이런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을 텐데 이 여자는 죄인인데…….’ 세상에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습니다. 죄인이라는 이야기가 이 짧은 성경구절에 5번이나 나옵니다. 학자들이 추측하기를 이것도 이 여자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죄인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지만 결코 상종해서는 안 되는 두 부류의 낙인찍힌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남자의 경우는 누구냐 하면 로마에 빌붙어서 동족들의 피를 빨아먹는 세리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가 어떤 식으로 세금 정책을 했느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세금을 걷을 때 형편을 잘 모르니까 이스라엘 출신 사람을 어느 지역에 세리로 임명을 합니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얼마큼의 세금을 받아서 로마정부에 내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네가 가져도 좋다. 그 대신 그 사람들은 월급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항상 세금을 훨씬 더 많이 받아서 그중 일부를 로마에 보내고 나머지 돈을 자기가 착복해서 호의호식하며 살았습니다. 돈은 많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러한 세리쟁이를 하는 사람들을 개만도 못하게 여겼습니다. 실제로 핏줄만 이스라엘이지 우리로 말하자면 일제 강점기 때 매국노 노릇하던 인간들이라고 낙인을 찍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돈은 있었지만 소외되고 고독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어떤 여자냐 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여자로서 이방인들과 정을 통하는 것은 개나 하는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히브리말로 ‘조나’ 라고 했는데 기생입니다. 자기의 몸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는 여자였습니다. 그런 여자들도 역시 똑같이 깊이 낙인이 찍혀서 핏줄을 이스라엘이지만 이방인만도 못한 죄인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런 것을 종합할 때에 여기에 나오는 이 여자가 ‘사람 중 죄인은 없나니’ 할 때에 그런 일반적인 죄인이 아니라 창녀요, 기생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입니다.
이 여자가 예수님이 어떻게 여기에 계신 줄을 알고 왔습니까? 초청했을 리도 없고 예수님이 내가 여기에 가니까 나를 만나러 오라고 말씀하셨을 리도 없으니까 이 여자는 풍문을 듣고 이 문둥이 시몬의 집에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 여자는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은 처음일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여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던 여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와서 이 여자가 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돌아서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을 정면으로 뵙는 것도 너무 과분해서 예수님의 눈의 띄지 않게 뒤로 돌아 들어와서 발 곁에 섰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밥을 먹을 때 여러분들이 지금 앉아있는 자세로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쓰는 것은 소파같이 옆으로 길게 되어 있는 의자였습니다. 그래서 비스듬히 앉아서 두 다리를 옆으로 소파위에 쭉 뻗고 그리고 앉아서 기대서 야트막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비스듬히 기대어 두 발을 뻗고 계신 그 발치에 와서 거기서 제일 먼저 한 것이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예수님의 발 위에 그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발을 겨냥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눈물이 쏟아졌고 상당히 많은 눈물이 쏟아졌기 때문에 이 여인은 너무 황망해서 자기의 긴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에 떨어진 눈물을 닦고 그 발에 수도 없이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향유를 다리에 부은 것이 아니라 향유는 원래 머리에 붓는 것입니다. 머리에 부으니까 예수님도 그때는 장발이었으니까 머리에 부은 기름이 흘러서 발치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런 행동을 했습니까?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여자에게 무엇인가 예수님과의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이 여자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데서 오는 감격이 시킨 것입니다.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을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셨고 그 말씀을 들었던 이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은혜를 받고 예수님이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헤어졌어도 자기를 용서하고 구원해 주신 감격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동리에 오신다고 하니까 이 여자는 자기가 생전에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향유가 담긴 옥으로 만든 그 그릇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달려가서 예수님 발에 눈물을 흘리고, 머리에 기름을 부어드리고, 수없이 입맞춤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섬겼던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예수님 앞에 우리의 신앙의 가장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다름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은 자각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 성경의 인물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성경에서 하나님을 많이 사랑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사람이었다든지, 뛰어난 사람이었다든지, 태어나기를 아주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들로서 그 사랑의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경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용서받아야 하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느끼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복입니다. 뭐냐 하면 내가 내 의지도 아니고 어쨌든 태어났는데 고맙게도 우리 엄마, 아빠가 굉장히 부자여서 어린 시절을 가난을 모르고 편안하게 잘 살았습니다. 또 태어났는데 엄마, 아빠가 머리가 엄청 좋습니다. 그리고 아주 공부를 잘 시켰습니다. 내가 교육을 잘 받고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복입니다. 또 이 나이가 되도록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한 체질을 타고났습니다. 이것도 일반적인 복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더니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아니면 남에게는 없는 특별한 예술적인 재능이 있어서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서 일반적인 복이라고 합니다. 특별한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이 직접 어루만지시는 복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Spiritual Blessing 영적인 복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어떤 것보다도 더 확실하게 믿게 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 그 죄를 회개하게 해주시는 그런 간절한 기도, 용서를 경험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런 것들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이 직접 어루만지심으로써 주시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전도사였을 때 여러분 같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중학교 형제자매들도 가르치고 고등학교 형제자매들도 가르쳤습니다. 그중에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유치부 때 교회에 와서 유치부 때부터 교회를 쭉 다녔고 엄마, 아빠 모두 신앙생활하시는 분입니다. 그 아이가 한번은 ‘전도사님 저 상담 좀 해주세요.’ 그럽니다. ‘그래 하자.’ 하며 교회 뒤쪽 테라서 나무 아래 앉아서 상담을 했습니다. ‘전도사님 저는 유치부 때 교회를 다녔는데 하나님이 안계신거 같아요.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라고 하고 친구들도 모두 교회에 있기 때문에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오지만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이 믿어지지 않아요.’ 그리고 솔직히 자기고백을 털어놓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래 우리 기도하자.’ 마침 그렇게 상담을 하고 한 달이 채 안되어서 특별기도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특별기도가 시작되었고 여름수련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여름수련회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골짜기를 여섯 개를 넘어서 진짜 깊은 산속에 있는 어느 기도원으로 갔습니다. 가고 나서 어마어마하게 비가 쏟아졌습니다. 개울이 6개가 생겼는데 도저히 수련회가 끝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홍수가 쏟아졌습니다. 군부대에 구조요청을 해놓았습니다. 봉고만한 커다란 바위들이 개울에서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홍수였습니다. 그날 마지막 날 저녁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산속에 있었기 때문에 전기도 없었습니다. 조그만 발전기를 통통 돌려서 희미하게 형광등 몇 개를 켜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계속하고 있는데 번개가 치고 ‘쾅’하고 우레가 치면서 학교의 분교였는데 학교유리창에 빛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날 저녁에 많은 학생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7시 30분에 찬양을 해서 8시에 마쳤고 8시에 설교를 해서 8시 45분에 마쳤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합시다.’ 하고 기도를 했는데 중간에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그 기도가 새벽 1시 반에 끝났습니다. 실화입니다. 중간에 끊지 않고 내버려두었는데 모든 학생들이 그 마룻바닥에서 하나님께 죄의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고 기도를 했는데 1시 반이 되었는데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곳곳에서 쓰러졌습니다. 장로님이 ‘전도사님 이 정도에서 마칩시다.’ 그래서 올라가서 ‘딱딱딱!’ 그치지를 않습니다. 제발 그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우리 이제 마치자.’ 마지막으로 내가 찬양하고 기도하고 마쳤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어제 밤에 주님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왼쪽 방으로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매가 왔습니다. 그러더니 ‘저 주님을 만났어요.’ 지금 느낌이 어떠냐고 했더니 ‘전도사님과 상담할 때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것 같았는데 지금은 내 마음속에 와 계셔요.’ 이것이 바로 특별한 영적인 복입니다.
죄를 회개했기 때문에 이 여자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깨달았고 그랬기 때문에 자기의 인생의 방향이 바뀐 것입니다. 증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 여자가 가지고 온 향유에 힌트가 있습니다. 당시 향유는 바르는 용도로, 치료용으로, 미용용으로, 위생용으로 쓰는 것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귀합니다. 그래서 요즘으로 말하자면 그 향유는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금 같은 것을 사서 모아놓으면 우리가 언제든지 시장에 들고 가면 현금과 바꿀 수 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고 한 때에는 금융시장이 불안하기 때문에 금값이 훨씬 더 치솟습니다. 언제든지 안전한 자산입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거의 똥값이 될 수 있지만 금은 그럴 수 없습니다. 금 이야기가 나왔으니 더 해주겠습니다. 금은 화학기호가 Au입니다. 인류역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금을 만들어 보고 싶어 했습니다. 만들기만 하면 대박입니다. 그런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나중에 과학자들이 왜 실패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원소에 열을 가해야지 금이 되는데 그 온도가 1조도가 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천체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금은 외계에서부터 온 것입니다. 운석 같은 것을 통해서 들어온 것입니다. 지구 안에서 자동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온도가 되어야지만 금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만들 수 없고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시에 향유가 그랬습니다.
우리가 추측을 해보면 이 여자는 술을 팔고 웃음을 팔면서 남자들로부터 돈을 버는 여자였는데 매일 매일 버는 돈을 모았던 것입니다. 향유를 모았는데 이것이 자기가 원하는 만큼 적금이 쌓이듯이 쌓이고 나면 이것을 팔아서 현금으로 바꾸어서 뭔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 했을 수도 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술집에 다니는 여성이 돈을 많이 모아서 음식점을 차리든지 아니면 자동차를 사서 운수사업을 한다든지 아니면 꽃가게를 낸다든지 이렇게 상상해 보시면 됩니다. 모았습니다. 이것이 마가복음에는 이것이 얼마치의 향유였는지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눈짐작으로 300데나리온 될 것이라고 했는데 아마 정확했을 것입니다. 그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당시 로마시대 때에 1데나리온이 어른 남자가 해 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일하고 받는 급료였습니다. 그러면 300데나리온이면 일주일에 하루씩 휴가를 한다고 하면 일 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현재 아무 기술이 없는 사람이 가서 삽질만 해도 적게 받아도 15만원을 받고 많이 받으면 20만 원 이상을 받습니다. 그러면 15만원만 쳐서 300일이면 4,500만 원쯤 되는 향유를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려서 예수께 모두 부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사치하고는 거리가 먼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느냐 하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말씀하시면서 집도 없이 사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런 화려한 식사를 원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이 여자를 꾸짖는 장면이 안 나오고 오히려 사람들이 꾸짖습니다. 예수님은 꾸짖지 않고 오히려 이 여자를 칭찬해 주시면서 마태복음에 뭐라고 하느냐 하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어디든지 이 여자가 행하는 일도 전해져서 함께 기념이 되리라.’ 고 말씀하시니까 이 여자의 행위를 영원한 가치가 있는 탁월한 착한 일을 한 것이라고 주님이 높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 여자가 자기의 향유를 가지고 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 앞에 그것을 모두 깨뜨려서 부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만나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의미입니다. 여태까지는 그렇게 웃음을 팔고 술을 팔고 그렇게 해서 돈을 모음으로써 자신의 인생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살아서 동족들에게 죄인이라고 낙인이 찍혀도 자기는 상관없고 빨리 돈을 많이 벌어서 새로운 삶을 꿈꾸고 그렇게 하면 새 인생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그렇게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예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당신의 온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여자가 바로 그 예수님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고 그리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께 용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불결한 죄인이 아니라 거룩한 성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눈처럼 자신의 죄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앙의 본질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 예수가 자기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깊이 아는 것입니다. 거기서 진실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예수를 만난 사람입니다. 그렇게 예수를 만나고 보면 인생에 있어서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들의 순서가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술을 팔고 웃음을 팔면서 재물이 제일인줄 알았던 이 여자가 이제는 그 재물이 자기의 사랑의 대상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사랑이 예수님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귀한 것을 가지고 나와서 깨뜨려서 예수님께 1년 치 수입을 모두 부은 것입니다. 낭비처럼 보이지만 낭비가 아니라 사랑을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나의 삶의 희망은 이까짓 향유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를 따라 사는 삶이라고 하는 고백을 갖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자기의 무한한 죄를 용서받는 용서의 의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 여자는 그렇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껏 까지 자신이 하나님 없이 살아온 것이 인생의 비극이었고 슬픔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문제가 하나님 없이 산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었고, 불행하게 되었고, 동족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죄인이라고 낙인이 찍혔고,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서 이 문둥이 시몬의 집까지 불청객으로 찾아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놓을 수 없는 한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이 여자도 역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우리를 위해서 부활하실 것이라는 것까지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자의 이 옥합을 깨뜨리며 자기에게 눈물을 흘리고 향유를 모두 부어준 사건을 가리켜서 이 여자가 나의 장례를 예비하는 것이었다고 해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리고 우리의 죄를 위해 구속을 모두 이루셨을 때 모든 죄 용서받은 사람들이 따라야할 미래의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 모든 사람은 죄를 용서받은 기억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바로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눈물이 있습니다. 이 여자는 그 눈물을 예수님의 발에 떨어뜨렸지만 우리는 그 눈물을 우리의 무릎에 떨어뜨립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주님의 은혜를 찬양할 때, 눈물이 흐릅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었지만 우리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춥니다. 발은 우리의 신체의 모든 부분가운데 가장 더러움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비천한 신체로 여겨집니다. 거기에 입을 맞춘다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의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춘 사랑은 예수님과 동등하게 어깨를 겨루면서 ‘서로 사랑하십시다.’ 하는 고백이 아니라 ‘나는 죄인이요 아무것도 아닌 인간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해 주시는 것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도 나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라는 고백이 이 입맞춤의 고백 속에 담겨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볼에 입 맞추지 않았고 예수님의 손에 입 맞추지 않았고 발에 입 맞추었습니다. 이 여자가 아무 말도 없이 침묵으로, 눈물로, 향유로, 입맞춤으로 예수를 섬겼던 이것은 죄를 용서받은 은혜의 경험이 얼마나 인생을 바꾸어 놓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은 이런 예수를 만났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아무리 오랫동안 교인생활을 해도 예수님을 만나고 특별한 복을 받지 않으면 이렇게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삶의 목표도 변하지 않습니다. 몸으로는 교회에 나오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데 자기는 자기를 위해서 인생을 살고 죄를 위해서 살고 세상을 위해서 삽니다. 그러면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얼마나 면목 없는 인생이 되겠습니까?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 때문에 내가 공부하고 어떤 훌륭한 일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보다 먼저 여러분 시대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주눅 들지 마십시오. 저도 못했습니다. 목사님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하루도 학교에서 행복한 날이 없었습니다. 항상 학교에 가기 싫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에 대해서 회의를 느꼈습니다. 공부를 잘할 리가 있겠습니까? 집안도 가난했습니다. 제때에 등록금을 낸 적이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매일 방과 후에 남아서 선생님에게 등록금 언제까지 내겠느냐고 심문을 당했습니다. 진짜 싫었습니다. 그런데 영어는 재미있었습니다.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3학년 때는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를 자유롭게 읽었습니다. 나머지는 다 싫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죽으려고 했겠습니까?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공부 못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 공부를 학교공부로 국한하면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정할 수 있습니다. 1등은 한 반에서 한 명입니다. 전교에서도 한 명입니다. 두 명도 아니고 한 명입니다. 그러면 나는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내가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은 나에게 잘할 수 있는 뭔가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성공하는 일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에게 매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합니다.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하지 말라.’ 우리 딸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성적표를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관심사가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해도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진짜 해야 할 것은 학원을 다니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무엇에 소질이 있는지를 생각하기 위해서 많은 직업을 Contact해 보는 것입니다. 유투버가 하고 싶습니까? 유투버를 만나 보십시오. 아이돌을 하고 싶으십니까? 아이돌을 만나 보십시오. 안되면 아이돌학원 다니는 애들이라도 만나 보십시오. 학원 다니는 애들도 안 되면 학원을 다녔던 애들이라도 만나 보십시오. 음식점을 하고 싶으시면 레스토랑 주인을 만나 보십시오. 안되면 웨이터라도 만나보고 동네 분식집 아줌마한테라도 말을 걸어 보십시오. 꽃가게를 하고 싶으면 꽃가게에 가서 알바를 해보십시오. 무엇이든지 해보는 것입니다. 젊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관심이 쏠리는 어떤 분야가 생깁니다. 여러분은 그 공부는 아주 잘할 수 있습니다. 왜? 그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나중에 살아가면 됩니다. 너무 훌륭합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아이가 있습니다. 한 아이는 그렇게 공부를 아주 어마어마하게 잘하지는 않지만 괜찮게 합니다. In Seoul을 했습니다.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대학등록금을 다 대주었습니다. 한 놈은 자기는 공부에 취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냥 기술을 배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 아이는 그것도 모자라 대학원을 가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해외연수까지 갔다 와서 겨우 일류기업은 못 들어가고 이류기업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에게 너무 미안한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이렇게 이렇게 하다가 어떻게 하다가 트럭회사에 들어가서 트럭운전수로 일하는데 아빠가 너무 미안하니까 트럭을 한 대 사주었더니 열심히 해서 그 사이에 돈을 벌어서 큰 트럭 두 대를 마련해서 사업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연봉이 있어서 누가 많겠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연봉만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을 굳이 그렇게 공부 하나에 목매인 것처럼 살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공부가 잘되면 공부를 하십시오. 그나마 확률이 높습니다. 안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굳이 미련 갖지 마십시오. 그리고 더 좋은 길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신앙을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만약에 무엇을 하고 싶으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내가 사업을 하는 것, 꽃집을 하는 것, 유투버가 되는 것, 가수가 되는 것, 래퍼가 되는 것, e게이머가 되는 것, 무엇이든지 이 직업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를 생각해서 자신에게 있는 가장 훌륭한 재능이라는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무엇인가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왜?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겠지만 잃어버린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이 있습니다.
이 여자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향유가 전부였습니다. 그것이 인생을 바꿔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이것이 하찮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용서가, 예수님의 사랑이 자신의 인생을 이미 바꿔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바꿀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서 갈 것이고 이제 다시는 죄와는 결별한 여자가 되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을 만나고 그 여자가 술집여자였다면 당장 그만두었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살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때로는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갈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부모를 빼앗아 가기도 하고 우리의 돈을 빼앗아 가기도 하고 사랑하는 동생이나 친구를 데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예수님을 세상이 어떻게 빼앗아 갈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버릴 수도 없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버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은 세상이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 든든한 마음을 가지고 무엇이든지 한번 태어난 인생이니까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의 부모가 뭐라고 하든지 여러분들이 주체적으로 마음의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 대신 그것은 진지해야 합니다. 왜? 석 달 하다가 집어치우고, 일 년 하다가 집어치우고, 2년 하다가 집어치우면 나중에 나이만 먹고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됩니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창조하신 것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기 때문에 창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그것은 그냥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꽝’ 소리가 납니다. 큰 돌산에서 돌을 뜨는 소리입니다. 그 돌을 떠서 작업실로 가지고 옵니다. 승용차 하나는 될 만한 큰 돌멩이가 작업실에 놓입니다. 그리고 석수장이, 돌쟁이, 조각가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거기에 그림을 그립니다. 형체를 만든 다음에 머릿속에 있는 정신과 느낌을 가지고 한 손에는 정을 한 손에는 망치를 가지고 부지런히 두드리면서 바위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깎고 두드리고 깨뜨리면서 몇 달 걸려서 어떤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을 사는 것을 그것에 비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장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의 인생은 누구도 다시 살아주지 않습니다. 집안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흙수저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고 등등하며 살아봐야 못난이들이 하는 짓입니다. 이미 내가 고칠 수 없는 과거에 일어난 것은 그냥 그렇다고 인정하고 자기 출발선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계속 ‘왜 나는 이 집안에 태어났을까?’ ‘나는 왜 성격이 이럴까?’ ‘내 머리는 왜 이럴까?’ 전부 다 과거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렇게 과거를 생각하는 것은 현재는 안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를 안 살면 이 현재는 금방 과거가 되어서 또 잠시 후에 있을 현재에는 과거를 고민하면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면서 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긴 세월을 살았지만 한 번도 산적은 없고 과거를 붙들고 후회만 하다가 사는 사람, 혹은 미래의 꿈만 쫒으면서 살던 비현실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개나 주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이혼하셨습니까? 깨끗이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들은 그분들의 갈 길을 찾아간 것입니다. 바꿔놓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엄마 아빠를 데려다가 묶어놓을 것입니까? 그런다고 가족이 됩니까? 깨끗이 잊으십시오. ‘그런 일이 일어났구나!’ 하며 접습니다.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다.’ 그래봤자 그것은 엄마, 아빠의 인생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분들이 여러분들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책임질 능력도 없습니다. 책임질 마음이 있으면 그렇게 가지도 않았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것 다 필요 없고 자존심을 가지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가장 든든한 밑천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여자는 그것이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당시 300데나리온의 돈을 가지고 있으면 서민 중에서는 꽤 많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학생이니 당연히 없을 것입니다. 알바를 해도 모을 수 없는 돈입니다. 그렇지만 이 여자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명예나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기쁘고,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기쁘고, 내가 정말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그 무엇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 살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생의 진정한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 어른도 아닌데 무슨 그런 고민을 하나?’ 여러분들이 고민하는 모든 내용이 그런 내용들입니다. 이런 내용과 관련된 것이 아닌 것은 중요한 고민도 아닙니다. 누구도 이 문제를 영원히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의 부모가 여러분들에게 몇 천만 원, 몇 억의 유산을 남겨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돈이 많으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인생에 큰 도움이 안 됩니다. 왜? 헤치고 살아가야하는 것은 나 자신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내 인생을 헤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류대학을 나옵니까? 소용없습니다. 제가 아는 박사, 의사, 사업가 이런 사람들 중에 진짜 돈이 많은 사람들 중에 자살한 사람이 허다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자기 안에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그 힘을 사랑의 힘이라고 해석합니다. 무슨 사랑의 힘입니까? 예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과 내가 예수를 사랑하는 힘으로 내가 모든 시련을 이기고 극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신앙입니다.
이 여자는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 중에 아무도 이 여자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났지만 창녀요, 기생이요, 술을 파는 여자요, 동족들에게 매장당한 사람입니다. 죄인으로 낙인찍혔고 사회에서 철저하게 상대해 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겨우 찾은 꿈이 돈이나 모아서 좀 다른 삶을 살아보고자 했던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완전히 다른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돈이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난 사건이 바꿔놓은 것입니다.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릴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하시네
그러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새로운 인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향료를 모으는 것은 이 여자의 옛사람의 꿈이었고 이제 예수를 사랑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하신 것은 새사람의 꿈이었습니다. 새사람의 꿈을 찾는 것이 진정한 의미입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아십니까?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다 소통합니다. 옛날에는 안 되었습니다. 부산지역에 있는 초등학생들이 일어를 너무 잘하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보았더니 위성안테나를 잘 세우면 일본방송이 잡히는데 일본만화가 나오는 것입니다. 번역이 안 됩니다. 그때는 구글번역기도 없었습니다. 애들이 너무 만화가 재미있는데 모르는 것입니다. 지들끼리 모여서 선생님을 불러다가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일본만화를 다 보는 것입니다. 하고 싶으면 아무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너무 쉽고 재미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꿈입니다. 그것을 어디서 찾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꿈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새롭게 발견한 그 꿈은 무엇입니까?
이 여자는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용서를 경험했고 용서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어떠한 진홍같이 붉은 죄가 있을지라도 주님 앞에 자기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면 이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해 주셨던 것처럼 여러분들의 죄도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었던 옛날의 그 모든 어리석은 꿈을 버리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해주십니다. 그것을 따라서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한없이 느끼며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나도 내가 이 세상에 있으므로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살아가는 그것이 신앙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오늘 이 말씀을 듣고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이렇게 예수를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