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생활에 관하여
녹취자: 백지영, 이새봄
1. 대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40대가 되면서 저의 일이 하나님 나라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것인지 회의가 듭니다. 처음에는 이 일을 통해 주목받고 경제적인 안정을 얻게 되어 모두들 부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희 팀이 하는 일은 내면이 공허한 현대인들을 유혹해서 없어도 되는 비싼 물건을 사게 하는 것입니다. 돈도 없는 젊은이들이 저희 회사 물건을 할부로 사서 갖고 있는 것을 보면 답답합니다. 월급이 적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비영리 단체나 국가기관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부양하는 가족 때문에 제가 돈을 버는 기계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지만, 일을 하면서 사회에 어떠한 기여를 하는지, 하나님 나라에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고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대기업에 못 들어가서 난리인데 들어가고 그다음에 돈도 벌고 대우도 잘 받는데,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런 것 두고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시는지 잘 표현이 안 돼 있는데, “없어도 되는 물건을 구입하게 하는 것이다.” 그 말은 좀 어폐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필요하냐, 안 필요하냐고 하는 것은 개인적인 판단의 문제이니까. 본인이 보기에는 그게 뭐가 필요할까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무슨 물건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일단 이 고민에 대해서 몇 가지를 말씀을 정리해서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뭐냐 하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선 그것부터 먼저 생각해 보자면, 뭔가 물건을 판매하는 일이고, 그 물건이 필요할까? 그게 무엇일까요? 잘 모르겠는데, 혹시 명품을 취급하는 그런데 계시는 게 아닐까요? 아니면 사치? 뭐 그렇겠지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좀 생각을 바꾸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어떤 기업에 다니면서 일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업에서 하는 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에 직접 상관되는 일을 하는 기업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교회는 기업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본다면 신발을 만들어내는 일, 그다음에 외투를 만드는 일, 심지어 카메라를 생산하고 마이크를 만드는 일, 어떤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기여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마이크가 생산이 되는데, 이것을 만약에 여기다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이바지하지만, 노래방에서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데 사용이 된다면, 아니면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지휘관이 부하에게 명령하는 소련군인용 마이크로 쓰인다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일단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연관시키는 것은 좀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요? 물론 이제 환경계통에 종사한다든지 등등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지금 일에 대한 태도를 바꾸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내가 이제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면서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생산된 어떤 물건들을 판매해서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는 것 그것이 나의 임무이고, 내가 그 일을 함으로써 회사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그 반대급부를 받는 것이다, 그렇게 정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나는 그것에 정말 만족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뭔가, 이런 일에서 그 정도 의미로는 나는 만족할 수 없다 환경을 개선한다든지 뭔가 하는 일들을 위해서, 뭔가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사람들이 사회를 좋게 하는 어떤 일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극단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직업을 바꾸어야 되는 문제가 나오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첫 번째 그것을 정리해 주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건축자재를 만든다든지, 아니면 기계를 만든다든지, 아니면 어떤 서비스업을 한다든지 이런 것을 할 때, 만약에 그런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우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될까요? 예를 들자면, 우리 주위에 보면 크리스천인데 미용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머리를 깎아주고 예쁘게 만들어주고 마사지를 해 주고 하는 그런 일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어떻게 연관이 된다고 연관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일단 직업에 대한 그런 이원론적인 생각은 조금 접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두 번째인데, 그러면 이제 이렇게 공허감이나 이런 것들을 느끼는 것의 근원이 무엇일까 이렇게 생각을 해 보면,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요?
미국을 갔습니다. 제가. 그런데 재미있는 일인데, 저는 남한테 신세를 지고 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통해서 연락이 왔는데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나에게 꼭 식사를 대접을 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인터넷 설교를 듣고 많이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사야 된다고, 그래서 나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사코 찾아왔습니다. 식당에 가보니까 그 사람이 이미 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할 수 없이 밥을 얻어먹었습니다.
그다음 이야기가 이제 재미있습니다. 그분이 열린교회 설교를 듣고 어떻게 자기와 자신의 남편이 변화되었는지를 감동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 여성도님의 직업이 뭐냐 하면 LA에서 마사지를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마사지인데 샵을 차려놓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더(order)가 오면 그 집을 방문에서 해주시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대개 사람들이 할 때 한 번만 하는 게 아니라, 돈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10회 정도 끊어서 계속 일주일에 한 번이고 이렇게 받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분이 몇 번 하다 보면 손님들이 자기의 그 힘든 사정을 다 털어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예외 없이 거기에 가정의 문제가 걸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돈도 많이 벌어오고 등등 하는데 바람을 피운다든지, 아니면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든지, 등등 얘기가 나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혼 이야기도 나오고.
그런데 그때에 이분이 항상 설교를 들어보도록 권하는데 그 설교 제목이 <이혼을 생각하는 그대에게>라는 설교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 당시만 해도 CD를 만들어서 CD를 하나씩 주었답니다. 아주 옛날이야기지요. 지금이야 인터넷에서 다 듣는데. 주면, 사람들이 듣고 나면 대개 열 명 중의 여덟 명은 생각을 바꾸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자기는 이 마사지사로 자기를 불러주신 하나님의 매우 특별한 섭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면서 자기가 고객에게 찾아가서 이 열 번을 만나는 동안에 그 사람을 전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 분도 일 그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 이것보다도, 그 일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그런 보람을 느끼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보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생각됩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이제 이렇게 나는 돈을 버는 기계인데, 기계이면 굉장히 돈을 많이 버시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기계라고 하게 되면 아마 엄청나게 많이 생산돼야 되지 않습니까? 그 기계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많이 있습니다. "아, 나도 그런 돈 잘 버는 기계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자식을 위해서 돈을 버는 기계라 생각하면 너무 슬프고, 연봉 받는 것을 365로 쪼개고 또 그 365를 다시 근무하는 시간 10시간 정도로 쪼개면 한 시간에 내가 얼마짜리인가 하는 계산이 나오고, "그 돈에 내가 한 시간 동안 팔려서 이 일에 노예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면 인생은 너무 슬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그런 방식으로 직장생활을 해석하시지 말고, "오직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이 형제인지 자매인지 모르지만 이 질문하신 분을 왜 그 직장에 두셨을까, 그리고 거기서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하셨을까, 그리고 어떻게 일하게 하실까 이렇게 하면서, 이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이 성숙하고 온전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 거기에서 정신적이고 영적인 보람을 함께 느끼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됩니다.
뒤집어놓고 이야기해서, 아직 취업 자리를 얻지도 못하고 아이들은 몇 명 있고 아내도 있는데 돈도 없고 먹여 살릴 능력도 안 돼서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식생활을 염려해야 할 정도가 된다면 아마 편안한 생활을 하기 힘들겠지요. 그리고 마음에 여유도 없고, 또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는 데도 많은 방해가 있을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시면서, 그러면서 생각을 일 자체에서 관계로, 그리고 그 속에서 성숙되어가는 나, 나를 통해서 온전해져 가는 나를 만나는 사람들, 가족,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함께 커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2. 특정한 일에 재능이 있고 그 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40대 이후 직업은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하는 일은 사회사업이나 교육 등 세상에 특별히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나쁜 일도 아니고, 일반 사무직 업종입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정을 받고 돈을 벌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능은 인정받고 있는 일이지만 세상에 특별히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이 아닌데 계속 이 일을 하는 것이 옳은지 알고 싶습니다.
1번하고 좀 비슷한 질문 같지요? 그러니까 선한 영향력을 끼칠지 안 끼칠지 봐야 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과학적인 사실을 발견하고 그다음에 이론들을 만들어내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서 사람들을 위한 좋은 가전제품을 만들기도 하고, 그 수학공식을 이용해서 원자폭탄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가치중립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보면 뭐라고 했느냐 하면, “그냥 일반 사무직업종입니다.” 그리고 또 뭐라고 했느냐 하면, "사회사업이나 교육 등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은 아닙니다." 사회사업을 하는 모든 사람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비리로 얼룩진 요양병원에 대한 이야기나 비리로 얼룩진 고아원의 탈법 운영이나 이런 것들, 또 어린이집을 하고 일하고 있는 부모를 위해서 아이를 돌보는 일은 외관상으로 얼마나 선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하는 그런 것들을 한번 보십시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 그 자체만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관계에 달린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일반사무직에 근무하신다고 하는데, 앞서 말한 내용과 똑같이 말씀드릴 수 있는데, 그렇게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저도 교회에서 변화를 못 받았던 사람이 직장에서 깊은 영혼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제가 너무 침체에 빠져있고 힘들었는데 누군가가 나보고 사내에서 하는 성경공부모임에 가자 그래서 갔습니다. 창고에 점심시간에, 한 시간 점심시간인데 삼십 분 동안 빨리 도시락을 먹고 삼십 분 동안 모여앉아서 창고에 둘러앉아서 성경공부를 하는 곳인데, 거기서 주님이 저를 깊이 만나주셔서 제가 목회자가 되는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하고 있는 일이 아니라,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서 보람을 찾을 수 있지요. 그렇게 해서 결국은 제가 그 성경공부 모임의 인도자가 됐습니다. 거기서 방황하고 있는 동기를 불러서 "너 왜 그렇게 방황하느냐?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해 줄게." 그리고 성경공부모임에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를 열심히 믿기 시작해서 나중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5월 11일 열린교회 여기 와서 설교합니다. 그리고 거기 있다 보니까 이제 가난으로 고통 받고 회사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정당한 배상을 받지 못하고 이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 열심히 상담하고 인생에 도움을 주고, 이혼의 위기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독교적인 가르침을 주어서 극복하게 만들고, 또 열심히 병자를 찾아다니고, 그래서 부활절 때쯤 되면 직원들이 50명, 60명씩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요. 저도 그때에 일반직장 업무 했습니다. 기획, 서무, 보안, 이런 종류의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 자체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그 속에서 이루어져 가는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자면, 나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뭐냐 하면, 아무리 사회사업기관에, 훌륭한 교육기관에 근무한다고(근무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거기서 만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그 사람들이 변화되어가고, 그 사람들과 함께 성숙해져 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그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분명히 보람을 찾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좀 바꾸시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의 예를 들고 싶습니다. 다니엘이 다리오 왕 치하에 국무총리를 지냈잖습니까?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사람인데 바벨론의 나라에 가서 열심히 봉사해서 바벨론이 부자나라가 되고, 그다음에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질서 있는 사회가 되게 하고, 그런 일을 위해서 충성해야 했던 사람입니다. 과연 그에게 그 직업이 정말 맘에 드는 직업이었을까요? 어떻게 말하면 자기 고국인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적국이지 않습니까? 거기서 국무총리를 하면서 그 왕을 위해서 충성하고 봉사하는 그 일이 행복한 일이었을까요?
그런데 그가 사자 굴에 갇혔을 때 다리오 왕이 가서 자기의 지시를 후회하면서 다니엘을 부를 때 한 말이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단 6:19)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일은 다리오 왕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 왕이 보기에도 그는 자기를 섬기는 다니엘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다니엘이었던 것입니다. 하고 있는 일이 중립적인 일이어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여러분들 약과입니다. 어느 한 교인이 저한테 와서 직업을 바꿔야 되는지 이제 고충을 털어놓고 상담을 했습니다. 그 사람 직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포르노를 들여다봐야 되는 직업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그것을 들여다보고 검사를 하면서 그것을 캐내는 그런 직업인 것입니다. 정보부처에 있는 사람, 예를 들자면 음란물 적발 심사위원회 뭐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토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저녁때 올 때는 너무 자기가 더러워진 것 같고 토할 것 같은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충고했을 것 같습니까? 우리 박준완 청년의 추측을 한번 들어봅시다. 어떻게 조언했을 것 같습니까? 이쪽 좀 비춰주세요. 내가 그 상담을 받으면서 어떻게 충고했을 것 같습니까?
“제가 막 들은 생각에는 목사님께서 방금 말씀해 주신 직장 내의 관계를 통해서 어떤 인격적인 성숙이나 하나님 나라 확장의 그런 마인드로도 견디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내가 어떻게 충고해주었을 것 같습니까?”, “이직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목사님, 저 알 것 같습니다.”, “저쪽에 마이크를 줘보겠습니다. 자기소개하고.”
“저는 강은애입니다. 비록 하는 일이 그런 음란물을 다루는 것이지만, 그 사람이 그곳에 있음으로써 그것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더 이롭게 하기 위해서, 그게 꼭 돈을 부유하게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것이 정말로 사람들을 범죄에서부터 예방하고 지켜주는 그게 만약 일반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어떤 본능에 의해서 결정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경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인도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그 자리에 있어서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그 자리를 지키라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오, 박수. 강은애 자매가 은혜를 많이 받으셨네요.”
얘기가 나와서 더 재미있는 얘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똑같은 케이스인데, 여러분은 그때 너무 어려서 잘 몰랐겠지만 디비오방이라고 기억하십니까? 비디오방이 아니라 디비오가게 기억납니까? 가게가 크고 비디오가 꽉 차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퇴근하다가 사람들이, 혹은 퇴근 안 하더라도 와서 무엇을 볼까, 그러면 여기 추리물, 공포, 그다음에 섹스, 아니면 섹스비디오는 못 빌렸지만 그러나 이제 에로물, 아동, 만화 이런 식으로 도서관처럼 분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빌려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매가 열린교회에 와서 은혜를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비디오 가게 주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상담을 온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직업에 대해서 회의를 느낍니다.” 왜 그러느냐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와서 빌려 가는데 저녁때 와서 남자들은 대부분 에로물을 빌려 간다는 것입니다. X등급이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야한 비디오를.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인데, 이것을 빌려주면서 내가 이것을 돈을 하루에 1,500원이고 얼마고 받아서 먹고산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너무 비참해지는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답해주었을 것 같습니까? 이일호 집사 얘기 들어볼까요?
“아까 저 청년이 했던 것과 비슷한데..”, “그래서 어떻게?” “예, 일단 하나님의 관점에서 고민을 해보라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에로물을 빌려주는데 무슨 어떻게..”, “에로물을 빌려주지만, 관계적인 부분 말씀하셨듯이 비디오가게 자기가 주인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으로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비슷합니다. 결론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내가 얘기를 했습니다. 제가 굉장히 열린 사람 아닙니까? 열린교회를 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때 이 상담 들어온 게 지금 벌써 20년 전입니다. 이십 년도 넘었지요? 그런데 내가 얘기했습니다. 뭐냐 하면, “너를 비디오가게를 하게 하신 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표면적인 한두 가지에서 자기 직업에 회의를 느끼지 말고, 아까 얘기한 대로, 관계에서 답을 찾아봐라.”
그래서 그다음서부터 자매가 사람들에게 “빌려주세요.” 그러면 “어디 사세요? 아이가 참 예쁘네요.” 이러면서 말을 걸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다음에 얘기가 막 통하는 것입니다. 매일 와서 그런 애로비디오나 빌려 가고 이러는 사람들은 사는 게 너무 활기차고 희망찬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합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냐 하면, “아, 정말 너무 괴로워죽겠어요.” 이렇게까지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비디오 가게에 비디오만 하지 말고 테이프도 해라.” 그래서 열린교회 그때 설교가 그 당시 카세트테이프로 나왔습니다. 한 세트씩 시리즈별로. 작게는 한 4개짜리부터 시작해서 많게는 한 30개짜리까지 세트로 되어 있는데, “그것을 내가 너를 빌려주마.” 그리해서 서점에서 그것을 해가지고 이만큼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리해서 ‘목자와 양’, ‘십자가를 경험하라’, 그다음에 ‘가족과 함께 잘 사는 길’ 이런 식으로 이제 비치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셨습니까?”, “아, 뭐 이러이러하고..”, “그러면 비디오만 보시지 말고 이것 한번 들어보세요. 시편 23편 강해”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비디오가게 주인하고 한참 소통하다 보니까 사람이 신뢰가 생깁니다. 그 사람이 항상 방글방글 웃으면서 너무 행복해 보입니다. (그분이) 시편 23편을 갖고 가서 틀었습니다. 시편 23편이 대출 순위 1위였습니다. 아예 여기다가 터놓고 한쪽에다가 비치해 놓은 것입니다. 그리해서 가서 이 자매가 들은 것입니다. 그 비디오가게에서 그 테이프를 듣고 여러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관계에 달린 것이지 않습니까, 그게. 관계에. 그렇게 해서 결국 그 자매가 여기에서 아주 기쁨을 얻고,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비디오 빌려가는 유형을 다 찾았다가 말을 거는 것입니다. 그리고 막 고르면 “이것보다 요새 이게 나왔는데 이제 좀 재미있어요.” 서로 소통하다가 그다음에 마지막에 “지겨우시지요? 이것 한번 들어보세요.”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은 안 됩니다. 직업 자체가 범죄에 가담하는 직업, 그런 것은 안 됩니다. 그런 것은 일률적으로 우리 기독교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그러나 굴뚝을 소재하는 사람은 여전히 굴뚝을 소재하고 또 타일을 만드는 사람은 타일을 만들고 잔디를 파는 사람은 잔디를 팔고 종이를 만드는 사람은 종이를 만들고 이렇게 하면서 어떻게 그 일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느냐 거기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직업관을 일 중심에서 관계 중심으로 한번 바꿔보십시오. 자, 1, 2번 했습니다. 3번으로 넘어가겠습니다.
3. 직업상 일이 많아 야근을 할 때가 많습니다. 또 주말에 나가야 하는 상황도 수시로 발생합니다. 이런 환경이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이대로 있기에는 주일에 예배드리는 문제로 인해 마음이 괴로울 것 같습니다. 평일에는 바빠서 경건생활도 생각만 하고 못할 때도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조차 줄어드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힘들겠지만 지금이라도 다른 일을 찾아보아야 할까요?
고민이 되겠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이제 이렇게 생각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뭐냐 하면, 제일 좋은 것은 주일날 일을 하지 않고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직업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의사, 그다음에 소방사, 지하철 운전사, 간호원(사), 구급실에 있는, 응급실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고구조요원, 이런 사람들이 다 성수주일을 하면 불이 나도 끄러 갈 사람이 없을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런 것은 어떤 의미에서 참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분은 그런 분은 아닌 것 같고 직업상 야근이 많다 이러시는 것 같습니다. 우선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은, 지금 이게 순수한 직장의 문제만인가 이런 것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입니다. 야근을 하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토요일에 야근을 했는데도 그래도 그 피곤을 이기고 여전히 주일을 지키려고 몸부림치느냐는 문제, 그것을 먼저 돌아봐야 됩니다.
왜 말씀들이냐면, 결국 우리의 신앙의 부패는, 우리의 환경에 전적으로 달린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 반응한 우리의 마음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주일을 야근도 없는데 밤새도록 피시방에나 가 있다든지, 집에 와서 텔레비전이나 보는 것으로 소일을 한다든지, 주일날 주일을 잘 지킬 수 있는 직장에 다니는데 아무것도 게을러서 봉사하지 않고 예배도 간신히 나오거나 게을러서 안 나온다고 하면, 그에게 그렇게 주일을 잘 지킬 수 있고 야근이 없다고 하는 근무조건이 그의 신앙생활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렇지요? 그러니까 나는 먼저 반성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직장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배에 못 나오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나머지 시간에는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는 것을 먼저 점검해 보라 말씀드립니다.
두 번째로 넘어가서, 구조적으로 주일을 지킬 수 없게 할 때, 그때에 선택할 수 있는 큰 선택지는 세 개입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진짜 주일을 못 지키게 하는가? 그런데 노력을 하면 그 직장에 있으면서도 다른 날 자신이 더 많이 희생하고 봉사하면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경우, 그럴 경우에는 그렇게 해야 되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경우,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은 그런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또 그런 사람들도 매번 주일날마다 일터에 나오라고 그런 식으로 근무를 배치하지는 않습니다. 돌아가면서 배치를 합니다. 그러니까 그러면서 모자라는 경건은 보충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고, 마지막 세 번째는, 주일을 못 지킨다면 나는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겠다고 하고 과감하게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직업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좋은 선택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뭐냐 하면, 여건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열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씀을 드립니다.
셰퍼드라는 목사님이 주일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로님, 왜 교회 안 나오셨습니까?" 그랬더니 "목사님, 제가 주일을 빠지려고 빠진 것이 아니라, 주일날 교회를 오는데 송아지가 웅덩이에 발이 빠져서 낑낑거리고 못 나와서 씨름하면서 그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보니까 예배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면 제가 교회 오려고 하는데 우리 집 송아지가 웅덩이에 빠져가지고 그렇게 고통을 받는데 내가 걔를 내버려 두고 주일예배를 와야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셰퍼드 목사님이 그랬습니다. "아니지요. 그렇게 송아지가 빠져서 고통을 받으면 당연히 건지셔야지요. 그런데 장로님, 너무 자주 빠지면 그 송아지 팔아버리세요."
그래서 이제 질문하신 분에게 제가 권고의 말씀을 드리자면, 퍼스트스텝을, 첫 번째 스텝을 직장 때려치우는 것으로 시작하지 말고, 퍼스트스텝을, 첫 번째 발자국을 어떻게 떼어놓느냐 하면, 최대한 신앙생활에 방해받지 않고 근무를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보십시오. 그리고 거기에 노력을 많이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신앙생활에 방해받지 않는 그런 직장생활의 구조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은 열렬히 하나님을 찾고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그러니까 수요예배든 그게 주일예배든 주일 오후 예배든 어느 예배든지 간에, 가서 간절히 예배드리고 간절히 기도하고 그렇게 하십시오. 두 번째 스텝, 그런데 나는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내가 이렇게 예배도 못 나오고 기도할 시간도 없으면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되면, 기도 많이 하고 그 둘을 조화시킬 수 있는 직장을 찾아보십시오. 그런데 신앙생활하고 잘하고 있지 않은 모든 것이 다 직장 때문이라고 직장에다가 뒤집어씌우지는 말라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더 악조건 속에서 근무하면서도 그렇게 몸부림치며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제가 개척교회 전도사 할 때 일이었는데, 옆에 거기에 청년들을 제가 맡았는데 청년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많이 나온다고 그래봐야 걔네들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교회 자체가 장년부 한 삼십 명 모이는 교회였으니까 대여섯 명, 또 많이 나올 때는 전도 많이 하고 해서 열다섯 명, 이십 명 나왔는데, 이 아이들이 교육을 많이 받은 애들이 아니라 시골에서 중학교쯤 마치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온 애들이고, 또 옆에 큰 과자공장이 있었습니다. 24시간 돌아가는 과자공장입니다. 12시간씩 일을 하는데, 24시간을 반으로 쪼개서 12시간씩 일을 하는 그런 구조인데, 그러니까 밤새도록 일한 아이들은 아침에 와서 푹 자고 다시 밤에 들어가는 것이고, 낮에 일한 아이들은 푹 자고 그러는데 그게 밤낮이 계속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근했다가 주간 근무했다가 이렇게 바뀌는데 엄청 고단했지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너무너무 주일날은 근무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더 많은 시간을 근무하는 것으로 하고 주일을 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적게 근무하는 것으로 하고 주일은 들어오는 것이고, 이렇게 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밤새도록 야근하고 그다음에 바로 교회로 달려와서 주일학교를 하고, 그리고 성가대를 하고, 그다음에 오후에 전도 나가고 그렇게 하고 저녁때 또 출근하는 것입니다. 그런 열렬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젊은이들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얼마나 그 저임금에 그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오히려 평일에 더 가서 근무하겠다는 신청서를 써내고, 그런 광경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좀 더 신앙에 열심을 내면서 현재 상황에서 승리하는 경험을 해 나간다면 더 좋은 길도 열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됩니다. 4번입니다.
4. 서울에서 근무하는 일반 회사원입니다. 요즘 40대는 50대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노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퇴근 후 저마다 세컨잡을 찾아서 하고 있습니다. 세컨잡의 이유는 맞벌이를 하지만 앞으로의 고용불안, 직업수명, 자녀양육, 노후대책 등 여러 가지로 인해서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50대에 가서 준비하면 이미 늦어서 자격증 위주의 준비가 대부분이고 그마저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불안해서 아내와 대화를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쓴맛을 느낍니다. 일이라는 게 무엇인지, 가정을 책임진다는 게 무엇인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고 현실로 여겨집니다. 40대들이 세컨잡을 어떻게 이해하고 준비하면 좋을까요?
상당히 열심히 사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세컨잡을 가지고 그렇게 직업 전선에서 살아보지를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제가 답하는 것은 평면적인 직장생활은 제가 8년 정도 했으니까 말할 수 있겠지만 요즘 이렇게 각박하고 변화된 시대에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권위 있게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드리자면, 노후에 대한 준비치 않습니까? 노후에 대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지금 40대 이신가 본데 아내와 함께 일하고, 그것도 노후를 위해서 부족하다고 생각이 되니까 그다음에 남편이 세컨잡까지, 부업까지 뛰면서 그렇게 하니까, 보통 직장이 몇 시에 퇴근할까요? 한 5시쯤, 여섯 시쯤 퇴근한다고 하면 밤일을 하시겠습니다. 아니면 휴일 날 일한다든지 그렇게 되겠지요. 경제적으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사회보장 체제가 완벽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사실 돈이 없는 노년은 너무 비참하고 빈곤은 상상하기 끔찍한 대우를 받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심경은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열심히 벌어야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 40대 여러분들이 있지만 여러분 중에는 벌써 이제 노후를 잘 준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결혼했든 안 했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살아보니까, 저도 의식 없이 살았는데 살아보니까, 노후 준비는 직장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부터 시작이 되어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런 것들을 좀 더 빨리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젊었을 때는, 여러분 유행가 가운데 ‘내 예금 통장은 정류장’이라는 노래 아십니까? ‘내 월급통장은 정류장’이라는 유행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사가, “내 월급통장은 정류장이다. 그래서 들어오기만 하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뭐 이런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써야 할 돈보다 들어오는 돈이 적고, 들어오는 돈보다는 더 많이 쓸데가 있으니까. 아주 특별하게 대기업에, 아니면 전문직으로 취업한 사람이 아니면 월급이 얼마 안 될 텐데, 그때에 거기서 다시 떼어내서 노후를 준비한다고 하는 것은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꿈도 못 꾸는 일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뭐냐 하면, 아예 그것은 수입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래서 20대 들어서면서부터 한 스물여덟쯤 직장을 가졌다 치면, 그러면 내 소득의 10% 정도는 “이것은 무조건 다른 것 말고 오직 노후를 위해서 쓸 돈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그때부터 시작해서, 28세부터 시작해서 38, 48, 58, 30년이지요? 그리고 68, 그것은 너무 길고, 38, 48, 58, 거기에다가 60세부터 받는다고 치고 2년을 더 보태면, 32년 계획을 세우고, 만약에 월급의 10퍼센트씩만 계속해서 저축을 한다면 엄청난 액수의 돈이 될 것이고, 그리고 아주 조금만, 그때부터 시작하면 아주 조금만 불입을 해도 아주 여유 있는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자기 생애 주기 전체를 바라보는 재정계획을 수립하기를 나는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게 아예 몸에 탁 붙어서 빼내 쓸 수도 없고, 계속해서 직업 활동하는 동안에 그렇게 붓는다 하면 훨씬 더 여유 있는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분도 지금 40대 중반이라고 보고, 처음 직장생활을, 경제활동을 시작하신 것을 20대 후반이라고 본다면, 만약에 그렇게 뭔가를 해놓았다면 지금 이렇게 뭔가 쫓기는 듯한 마음이 훨씬 적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것을 1번으로 얘기하고 싶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미래에 대한 염려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보면 40대니까 아이들 기껏 커봐야 아직 초등학생일 가능성이 많겠습니다. 그렇지요? 아주 일찍 결혼했다면 중고등학교 다니겠지만, 그러나 대충 보면 초등학생이거나 아니면 아주 늦게 했으면 유치원 다니거나, 아니면 조금 일찍 했으면 중학생쯤 되겠지요. 돈 들어갈 날이 쌓였습니다. 아이 하나 낳으면 3억이 들어간다고 하니까, 대학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 많은 돈을 미리 모아놓아야지 되겠지요. 그러니까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뭐냐 하면, 너무 중요하지요. 그런데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 가운데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 있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돈을 많이 벌려면 일을 많이 해야 됩니다. 아니면 남다른 기술을, 재능을 가지고 있든지. 그런데 둘 다 아닐 경우에 돈을 많이 벌려면 어쨌든 일을 많이 해야 됩니다. 그리고 만약에 일을 많이 하면 삶의 질은 점점 나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서 낮에, 무슨 직업을 하시는 분이라고 말을 안 했는데, 낮에 회사원으로 근무하고 밤에 배달을 뛴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것은 엄청난 육체적인 노고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그다음에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렇게 아침서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다음에 성경을 읽고, 가정에서 아이들과 관계를 가지고, 이렇게 산다는 것 자체는 꿈꾸기 굉장히 어려운 현실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과 아내는 자고 있을 것이고 깨어나기 전에 자기는 출근을 해야 되고, 이런 식이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이제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하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를 좀 줄여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소비패턴을 가지고 절약하는 생활을 하면, 경제적으로는 약간 쪼들리지만, 쪼들린다는 것은 상대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배고파서 갈 길을 헤매던 사람들에게는 밥하고 따뜻한 잠자리만 있으면 다 문제가 해결된 것 같지만, 그러나 여러 가지 욕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게 안 채워지면 그러면 자기가 박탈감을 느끼고 상실감을 느끼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소비에 대한 것을 줄이면서, 그러면서 그래도 자기를 혹사하고는 살지 않는 그러한 중립의 길을 택하라고 저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선 그다음에 또 어떤 문제도 있느냐 하면, 우리의 몸이라고 하는 것이 항상 한계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세컨잡을 뛰고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하다가 건강을 해치게 되면, 그다음에 최악의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뭐냐 하면, 안락하기 살기 위해서 돈을 벌었는데 이번에는 빚을 얻어서라도 자기 병을 치료해야 되는 그러한 상황에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에도 기가 막힌 암을 고칠 수 있는 기가 막힌 약이 발견됐는데, 한번 치료받는데 3억 6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그런 치료를 받으면, 한 세 번 정도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우리 중에 10억을 현찰로 가지고 있는 사람, 10억을 주고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런 일들은 우리에게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삶 자체가 파산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몸이 그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 번째로는, 무엇보다도, 이분의 글을 읽으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무엇을 느끼느냐 하면, 막 헐떡거리면서 쫓겨 가는 사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을 그렇게 사는 것은 오래 지탱하면서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유입니다. 여유. 라틴어로 ‘오띠옴’라고 이야기하는데, 여유입니다. 그런데 그 여유라고 하는 것은, 돈이 많아서 누리는 시간적이고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공감입니다. 정신적으로 자기를 반성하고,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반성하고, 은혜를 받고, 자기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그런 정신의 여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수첩에다가 놓고 계산만 하면 지금보다도 더 미친 듯이 일해야 되고 돈을 벌어야지만 겨우 살 수 있는 계산이 나올지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이 보는 계산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떻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그분이 주시는 은혜로 내가 현실을 이기면서,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지만 이것들을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내가 한 사람으로서 완성되어가는 계기로 삼을 것인가라는 이 고민이 빠지면, 돈을 아무리 벌면 뭐 하겠습니까?
벌기도 쉽지 않겠지만, 뜻대로 되어서 상당한 돈, 이렇게 투잡까지 뛰어서 모으는 이분이 재벌이 되려고 투잡을 뛰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원하는 대로 해서 1억이나 2억 정도를 더 벌어서 노후를 준비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미친 듯이 쫓기면서 사는 그 사람이 정신적으로 번아웃되거나, 아니면 육체적으로 질병에 걸리거나, 아니면 아이들이 한참 초등학교 때 자라면서 아빠와의 관계가 필요하고(필요한데) 함께 있어 주어야 할 아이의 엄마 아빠 모두 다 밖으로 돌고 아빠는 아예 얼굴도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고 할 때, 돈을 1, 2억을 더 모아도 나중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더 큰 가정의 문제가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탱하려면 은혜를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여유가 있어야 되는 것이지요. 그 여유가 돈의 여유가 아니라, 자기를 반성하고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올바른 교회 생활을 하고 이럴 수 있는 여유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여유 있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을 정하고, 그리고 거기서부터 생명의 은혜를 공급받으면서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양보하지 말고, 그다음에 나머지 하나님의 뜻에 맞게끔 내가 일하면서 하나님의 축복과 도움을 구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그것이 올바른 인생에 대한 해결이 아닌가 생각이 되고, 염려가 너무 많이 된다면 ‘염려에 관하여’ 시리즈를 다시 한번 정독하시면서 그 안에서 뭔가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그런 말씀을 찾고, 그렇게 하면서 정신을 가다듬으시는 것이 더 좋겠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어쨌든 지금 제가 볼 때는 매우 불안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미친 듯이 쫓기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인데,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으니까 신앙적인 여유를 가지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5. 최근 원하던 진급도 하고 업무에 성취감도 느끼고 있지만, 반대로 신앙생활이 점점 무너지고 있고 하나님께 게으른 자가 되어 감을 느낍니다. 균형을 잡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 것도 같지만 갈팡질팡하는 이 마음에서 신앙생활을 바로 잡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원하던 진급도 하고 업무에 있어서 성취감도 느끼고 있지만, 반대로 신앙생활은 무너져가고 게으른 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균형을 잡고 싶은데 알 것도 같지만 갈팡질팡하고, 또 바로 잡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굉장히 애매한....그렇지요? “진급도 하고 성취감도 있는데 신앙생활은 무너져가고 게으른 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침체에 빠진 것 아니겠습니까? 신앙생활에 태만해진 것이지요. 진급도 했으니까 이제 지위도 높아졌고, 그다음에 업무하는 것도 재미있는 것이지요. 일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볼 때는, 마음은 약간 교만해지고 정신은 워커홀릭에 빠진 게 아닌가, 그러니까 일 중독증에 어느 정도 빠져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런데 반대로 자기 내면의 세계는 굉장히 공허한 것입니다. 공허하고, 그리고 무엇인가 자신이 일하는 면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데 신앙 생활하는 면에 있어서는 아주 무기력한 것을 느끼는 것이고, 그리고 그다음에 갈팡질팡하고 있는, 질문 자체가 좀 갈팡질팡합니다. 원래 영적인 침체에 빠지면 혼돈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이것을 어떻게 처치를 해야 될 것이냐 하는 게 문제이지요?
이분은 지금 이 질문의 상태로 보면 기도를 하려고 해도 기도가 잘 안 되는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에 와도 하나님의 말씀에 깨달음이 별로 없을 것이고, 교회 안에서 은혜를 많이 받은 지체들과 활발하게 교제도 하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마음이 교회와 은혜를 떠나있고 세상에 가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이분에게는 그래도 신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속에서 마음에 어떤 깊은 공허함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 것인가?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게 뭐냐 하면,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한번 공정하게 생각해 보라고 말씀드립니다. 어떤 식으로 생각하느냐 하면, 지금 상황이 계속될 때 마지막에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무엇일까? 그러니까 그러면 지금의 상황이 뭐냐 하면, 진급을 계속하고 업무에 성취감을 느껴서 미친 듯이 일하고, 그다음에 마음은 공허하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그런 나태한 생활이 계속될 때, 그때에 자기의 인생의 그래프가 어디로 가겠는가 하는 것을 한번 보라 이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뭐냐 하면, 과거를 돌아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의 그래프를 그려보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때마다 내 마음이 어땠고 나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돌아보라 이것입니다. 그것을 계속 극단적으로 연결시키면 마지막에 어떤 상태에 도달할까 하는 것이 나오는 것이지요.
인간이 지위가 올라가고 일은 잘하고 돈을 벌고 하는데 신앙이 없으면 인간이 갈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좋은 지점이 아닙니다. 그러면 진짜 만족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직장이라는 것은 또 항상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이용 가치가 있을 때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시간이 흘러가고 내가 이용가치가 없으면 차갑게 버리는 곳이 직장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보면, 결국 지금 갖고 있는 경쟁력을 앞으로도 계속 가질 수 있겠는가라는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한번 생각해 보라 이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신앙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 그리고 자기가 어디에서 이렇게 신앙생활의 끈을 놓치게 되었는가라는 것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저는 이런 방법을 권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기도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반성이 드니까 이 질문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한번 이렇게 해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길게는 결심을 못하더라도 내가 이번 일주일 동안은 하여튼 직장 끝나는 대로 곧바로 퇴근한다, 일체의 스케줄을 잡지 말고. 일주일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일주일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맘만 먹으면. 그렇게 하고, 만약에 집이 멀지 않다면 퇴근을 교회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일주일 동안 내가 저녁기도를 해야 되겠다 마음을 먹고, 직장 끝나고 교회에 와서 간절히 기도를 하십시오. 기도가 잘 안 되겠지요. 그러면 기도 안 되는 것을 보면서 자기 신앙이 얼마나 미끄러졌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일이 있어도 일주일 동안은 새벽기도까지는 몰라도 저녁때 퇴근하고 교회에 들러서 기도하고 성경 다섯 장을 읽고 가겠다, 그러면서 성경을 읽고 그다음에 기도를 하십시오.
그리고 더 좋은 방법은, 자기 상황에 딱 맞는 설교 시리즈를 찾아서 일주일 동안 내가 개인 사경회를 하겠다, 해서 퇴근하고 한 편 정도 설교를 듣고, 그러면 마음이 좀 열리겠지요. 그렇게 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그리고 집에 들어가고, 이렇게 하면서 한번 자기 생활을 최대한 단순화해보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휴가를 낼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이렇게 하고, 개인 경건에 헌신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저도 직장 다닐 때 곤고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제가 했던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특별 새벽기도를 나간다, 아니면 저녁때마다 기도한다, 심지어는 일주일 동안 내가 교회에서 철야를 한다, 더 곤고하고 심할 때에는 내가 일주일 동안 금식하면서 직장을 다닌다, 그렇게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자기의 신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됩니다. 반성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그런 침체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는 뭐냐 하면, 목회자나 좋은 지체들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세상적인 사람 만나는 일을 좀 끊고, 이런 은혜를 많은 받은 지체들, 구역장이나 아니면 교역자의 심방을 받거나, 아니면 은혜를 많이 받은 형제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면서 그들이 믿음 생활하는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나눈다면 자신의 마음도 따뜻해지리라고 봅니다.
네 번째는 뭐냐 하면, 책을 읽기를 권합니다. 성경을 읽는데,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성경을 탁 펼쳤을 때 막 꽂히듯이, 성경이 빨려 들어오듯이 그렇게 읽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읽고 싶은 책을 읽으십시오. 경건서적을. 그래서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책, 그 책이 뭐냐 그러면 내가 답을 주기보다 여러분들이 주일날 와서 도서관이라도 가서 찾으면서 이렇게 읽고 싶은 책, 이렇게 읽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책들을 찾으십시오. 그런 책을 읽으면서 놓지를 말고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과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을 하십시오. 그리고 절대적으로 정신을 분산시키려는 것들과 자기를 좀 떼어놓아야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수많은 회식, 모임, 만남, 그다음 놀이, 그다음에 인터넷 게임, 그런 것으로부터 자기를 좀 떼어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시작을 하시면 좋으리라 이렇게 생각됩니다. 그래서 영적 침체에 관한 설교가 시리즈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 중의 어떤 것이든지 하나 택해서 듣는다면, 무엇인가 여러분들에게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6. 직장 내에서 비윤리적인 일에 관여되어 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이럴 때 목소리를 내기 위해 평소에 최선을 다해 이타적으로 직장생활을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범죄는 아니나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나 심하게 비난받을 일에 연루될 때 내부 고발자가 되어야 하는지, 그래도 범죄는 아니니 참고 해야 할지, 사표를 내야 할지, 설득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직장에서 죄를 지으라고 시키면 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것은 신앙적으로 하나님 앞에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됩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밥을 먹고 살 사람으로 우리가 태어난 게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뭐냐 하면, 만약에 직장에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도록 압박을 가하거나 혹은 유혹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회사라는 것은 냉혹한 곳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이익이 될 때는 우리를 포용해 주지만, 자기조직에 부담이 된다고 생각될 때는 하시라도 뱉어버리는 것이 조직입니다. 그러니까 조직에 그렇게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충성할 이유는 없다 이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들 산업부 블랙리스트 나오고 다 나오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이, 아니 거기 담당 국장이나 이런 사람이 무엇 때문에 밖에 있는 기관장들에게 전화해 가지고 빨리 옷 벗지 않으면 너 큰일 난다고 겁주었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위에서 시켰으니까 그런 것이겠지요. 아니면 시키지 않았더라면 미리 윗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충성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전부 다 감옥 들어가지 않습니까? 보호 안 해줍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선을 분명히 그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기 이전에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에 자신에게로 다 돌아옵니다. 바보짓입니다. 더군다나 거기에 돈이나 몇 푼 받고 그런 짓을 저지른다고 하면 쓰레기로 사는 것 아닙니까? 신앙생활 이전에 시민으로서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신앙을 가진 우리들은 불법으로 행하는 일에, 그것을 강요받을 때 충성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 일에 내가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이 직업을 잃게 되어서 길거리에 나앉아도 내가 이 짓을 안 한다는 그런 결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고, 두 번째, 모든 일이 이렇게 불법이냐? 그게 아니라 비난을 받을 수는 있지만 불법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럴 경우에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것은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선택하시면 됩니다. 둘 중의 하나. 그것을 고발하고 한번 회사하고 맞서서 “이것도 회사냐?” 한번 두드려 업고 뛰쳐나오든지, 아니면 참고,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뚜렷하게 인정하면서 최소한 거기에 연루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그러면서 “어떻게 조직의 문화가 이럴 수가 있나? 내가 십년 있다가 저 자리에 오르면 이 지저분한 관행을 다 없애버리라.”하고 미래를 꿈꾸면서 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 라고 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 지시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그것은 본인이 택할 몫입니다. 그래서 내부고발자가 되어야 하는지 참아야 할지 본인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내부 고발자가 되어서 내가 이것이 옳다는 확신이 서면, 모든 것을 다 고발하고 정리해서 내가 한번 이 부조리와 잘못을 사회적으로 바로 잡고 싶다 그러면 살아야죠.
그런데 치사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전직 화장품회사 임원이 밝히는 화장품 회사의 비리, 전직 제과회사의 간부가 밝히는 과자제조의 비리, 무슨 말 하려고 하는지 아십니까? 왜 현직이 아니라 전직이냐고.(전직이냐는 것입니다.) 현직의 화장품회사 현재 간부인 사람이 밝히는 화장품 제조의 비리, 양심선언, 왜 그런 게 아니냐 이것입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사회를 바로잡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어떤 이유로 쫓겨난 게 앙심이 되어서 보복을 하는 마음으로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야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아까 얘기한 거기의 케이스에 해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이익이 없어야 됩니다. 그 안에서. 거기서 만약에 월급도 잘 주고 잘했더라면 절대로 밝히지 않았을 것을 퇴출당했기 때문에 다 까발리고 고발한다고 할 때, 그것은 사회를 바로잡는 정의감이 아닙니다. 포장하고 나오지만 그 내면에서는 그게 아니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결국은 사표를 내느냐, 아니면 두드려 엎느냐, 아니면 자기는 관련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자신을 지키면서 미래에 자기가 그 자리에 올라갔을 때 이런 회사의 문화나 무엇을 바꾸겠다고 하는 마음을 갖든지, 셋 중 여러분들이 자신이 선택하기에 달린 문제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런 것들이 감정적으로 결정될 것이 아니라, 아주 간절하고 깊은 기도 속에서 확신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되면 그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거기에 물들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이 물들지 않는 것. 그런데 이제 물드는 게 문제이지요. 자신이 물들지 않고 그런 이익에 탐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7번과 8번이 거의 같은 질문 같습니다. 그래서 두 개를 한꺼번에 읽고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7. 악랄하고 비열한 상사가 있습니다. 그 상사가 부당한 절차로 일을 지시하고 갑질을 할 때 증거를 다 모아서 갑질로 신고해야할 지 아니면 살살 달래가며 참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됩니다. 선배들은 어차피 “그 사람은 바뀌지 않고 너도 일을 편하게 하려면 대충 비위 맞춰주고 눈 감고 귀 닫아 가며 일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그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을 모르고 자신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는 그 상사가 불쌍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참고 받아주는 것이 맞는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8. 직장 내에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격모독적인 말과 욕을 수시로 듣습니다. 점점 우울해집니다. 주일날 설교에 은혜를 받고, 지체들과 교제하면 일시적으로 좋아지는 것 같은데, 다시 출근을 하면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매사에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요즘 같은 때에 사직하고 직장을 새로 구하기도 어렵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어서 쉽게 그만두고 상사에게 반항하기도 어렵습니다. 대형 회사는 고충처리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으나, 소형 회사에서는 이런 제도가 없고 싫은 사람이 나가야 하는 현실입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직장생활 안 해봤으면 대답을 해주기가 참 어려울 텐데, 이런저런 일도 다 겪어보고, 남의 밑에도 있어 보고 부하직원도 제가 열세 명까지 거느려보았는데, 그러다보니까 제가 충고를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선은 이제 둘 다 똑같은 이야기가 뭐냐 하면, 악랄하고 비열한 상사, 괴롭히는 상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당한 절차로 일을 지시하고, 갑질을 하고, 인격적인 말과 욕을 수시로 한다.” 상사가 나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한번 말하고 싶습니다. “그 자식 나쁜 자식이다.” 이렇게 얘기해보아야 직장생활에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한번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뭐냐 하면, “저 사람이 왜 나를 저렇게 못마땅하게 할까?” 그렇게는 생각을 잘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답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저 사람은 왜 나를 이렇게 못마땅하게 할까? 저 자식이 나쁜 자식이니까.”, “나한테 왜 저렇게 욕을 할까? 나쁜 자식이니까.”, “왜 인격적인 모독적인 말을 할까? 나쁜 자식이니까.” 이렇게 돌아가고 나면 모든 책임이 다 갑질하는 상사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상사도 해 봤고 직원도 해 본 사람의 입장에서, 상사가 미워하면, 그러니까 모든 사람을 똑같이 이렇게 대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이 사람의 성품의 문제이지만, 나한테 유독 더 많이 그런다고 하면 그 사람이 이 상사에게 마음이 안 드는 게 있는 것입니다. 태도가 기분 나쁜 게 있든지 무엇인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호의를 가지고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사람을 거울이라고 한다면, 우리를 좋아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거울에는 내가 잘 안 비칩니다. 진실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나를 품어주니까. 오히려 나를 싫어하고 나를 별로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거울에 나의 참된 꾸밈이 없는 민낯이 그게 잘 보이는 것입니다. 아마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하면 말이지요, 책을 안 읽습니다. 책을 안 읽는데 얼마나 안 읽느냐 하면 처세술 책도 안 읽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처세술 책을 이야기하면 다들 “아, 그 무슨 처세술에 관한 책을 읽습니까?” 그리고 목사님은 그래도 뭔가 성경을 읽어라, 논어를 읽어라, 플라톤을 읽어라, 파스칼을 읽어라, 이럴 줄 알았는데. 사실은 플라톤의 국가론이나 논어나 이런 것들은 인생을 근원적으로 잘사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지만, 직장생활을 당장 잘하게 만드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그래서 처세술 책을 읽어라, 손자병법을 읽어라,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 무엇인가?, 그리고 왜 사람들이 나만 미워하는가?, 그리고 왜 어떤 사람은 내가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인데 조직에서 사랑받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을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따라 하느냐 안 하느냐는 각자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그것이라도 알아보라 이것입니다. 그런데 안 읽습니다. 그러니까 윗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떠냐 하면 눈치가 되게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곱게 안 보이는 비뚤어진 평가가 상사의 마음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질문하신 두 분께 내가 말씀드리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여태까지 했던 것이 그것이지 않습니까? “왜 나한테 갑질할까? 나쁜 놈이니까.”, “왜 나한테 인격적으로 모독할까? 나쁜 놈이어서.”, “왜 나를 괴롭힐까? 나쁜 놈이라서.” 그런데 그런 답은 이미 다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한번 그것을 잠시 내려놓고, 이 카드를 아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여러분 말씀대로 자타가 공인하는 나쁜 놈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재수 없이 그런 사람들한테 걸린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사표를 내고 떠나려면 그런 것 질문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떠나면 됩니다. 그런데 그다음 가는 회사에는 그런 놈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잘못하면 쓰레기차 피하려다가 똥차를 만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놈이 생각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놈이 낫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언제든지 쓸 수 있는 카드니까 잠깐 내려놓고, 그리고 한번 냉정하게 물어보라 이것입니다. “나의 어떤 부분이 모자라서 저 사람이 나한테 저렇게 갑질을, 무시를 하고, 심지어는 인격적인 모독의 말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한번 그 사람 입장이 되어서 자기를 한번 보라 이것입니다. 냉정하게.
교역자들 사이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제가 이제 시켰습니다. 서로 자기의 일에 열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교역자는 협업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것은 없습니다. 폭풍 속을 지나가는 배입니다. 그리고 선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폭풍 속에서 소리도 잘 안 들립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지만 그 폭풍 속에서 배는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지요? 돛을 내려라! 그러면 빨리 내리고, 올리라고 하면 빨리 올리고, 노를 이쪽은 젓지 말고 이쪽은 빨리 저어라 암초를 피해야 된다, 암초를 피해야 되면 이쪽은 부지런히 젓고 이쪽은 젓지 말아야지만 배가 회전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 노질을 하고 있으면 암초에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됩니다. 교역자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보면 눈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런데 “너 눈치 없는 1위, 너 2위, 3위” 내가 이렇게 순위를 정해주고, 그다음에 네가 1등을 한 이유, 그리고 내가 적어서 발표를 하면 그 사람 떠나라는 이야기이지요. 그것은. 그래서 내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아이디어를 낼까 그러다가 이제 서로 질문지를 만들어가지고 체크를 한 다음에 그룹을 지어서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너무 웃기는 결론이 나온 게 뭐냐 하면, 박춘한 전도사라는 사람이 있는데 모든 사람이 이러이러한 점이 박춘한 전도사의 단점이라고 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리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좀 괴로움을 당하는데, 본인은 그 단점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강점이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한 사람만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그 거울에 비친 것을 사람들이 솔직히 다 보여준 것입니다. 한 사람을 놓고 하면 인신공격이 되지만 서로서로 비춰주니까 이제 다 개방된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은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생동안을 이게 나의 최대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나를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7번과 8번을 질문하신 분들이 어느 회사에 가든지 간에 “너 없이는 안 돼.” 이러는 사람인데 이 상사들이 나쁘기 때문에 전적으로 상사들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고 나는 생각을 안 합니다. 거기에는 상대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무도 정답을 말 안 해줍니다. 심지어 괴롭히는 그 사람도 “내가 왜 너를 괴롭히는지 아니?”라고 하면서 조리 있게 나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럴 정도의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밥을 사주면서 얘기를 하지 그런 식으로 인신공격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그러니까) 그것을 알아보려고 한번 노력을 해 보십시오. 그러면 분명히 뭔가 이유가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것만이 아니라,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입관과 잘못된 판단, 그다음에 파괴적인 성격, 이런 것이 다 결합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머지는 고칠 수 없지만 여러분의 태도는 나름대로 고칠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직장 다닐 때의 일이었는데, 굉장히 높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여튼 그분이 발령이 나서 떠나면 직원들이 모두 일어나서 만세삼창을 불렀습니다. 얼마나 까탈스럽고 직원들을 괴롭히는지, 그런데 저는 안 그랬습니다. 저는 압도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아부하거나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나하고 상관없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4시 반이면 나는 퇴근했습니다. 신학교 다니고 할 때 학교가 5시 10분인가 이렇게 시작하기 때문에, 5시 50분인가에 시작하기 때문에 (? 1.28.20) 한 번도 그 일 때문에 야단맞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내가 분석을 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일도 잘하고 이러는데 왜 저렇게 야단을 맞을까?” 한번 화가 나면 거의 이성이 마비되는 것 있지 않습니까? 복도에서건,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건 막 깨트리는 것입니다. 부하직원들이 있는데 상사가 그렇게 깨지면, 더 높은 상사에게 깨지면 그 권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가만히 분석을 해보았습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야단맞는 원인이 뭐냐 하면, 빨리빨리 보고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지시를 했는데 그다음에 보고를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흘러가면 이 사람은 궁금하니까 이제 “그것 어떻게 됐어?” 그러고 비서실을 통해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때는 벌써 감정이 상했을까 안 상했을까요? 지시를 했는데 보고가 없어서 상사가 전화를 걸어서 “야, 그것 어떻게 됐냐?”라고 물어볼 때, 마음이 상했겠습니까, 안 상했겠습니까? 이미 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그때 와 가지고, 어떤 일이 안 될 때는 안 되는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무엇처럼 들립니까? 변명처럼 들리는 것입니다. “아, 저게 공통점이구나.”
그다음에, 지시를 하는데 항상 인터폰을 해서 지시한다든지 아니면 불러서 한다든지 그게 아니라, 엘리베이터 타서 “어이, 미스터 김, 이것 어쩌고저쩌고 어쩌고저쩌고 그것 좀 한번 해봐.” 이렇게 하고 지시라고 쏟아내듯이 하고 가는 것입니다. 자기도 잊어버립니다. 그것을 자기가 다 적어놓고 지시하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다음에 뭐 불러서 지시하고, 아니면 심지어는 내가 아닌 윗사람을 통해서 지시가 내려오고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시 내려오면 즉시 다 적어놓습니다. 그리고 딱 일을 처리를 한 다음에 2, 3일쯤 지난 다음에 정리를 합니다. 그리고 비서실에 얘기를 해서 한번 뵙게 해 달라고 합니다. 우리 같은 말단의 사람들이 만나기가 쉽지 않은 데 뵙게 해 달라고 하고, 지시하신 상황 때문에 시간 많이 소요 안 된다고 2분이면 된다고 그러면 만나게 해 줍니다. 두 개를 가지고 와서 하나는 드리고, 하나 가지고 “당신이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 어디서 이런 지시를 했습니다. 지금 이것을 알아본 결과 잘 처리가 되어서 이것은 종료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몇 월 몇 시 어디 어디서 지시를 했는데, 이것은 법적으로 안 되는 일이라고 판명이 났습니다. 세 번째, 뭐 뭐 했는데, 이것은 지금 협의하고 있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한 5일 정도 더 기다려야 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 이렇게 지시했는데, 이것은 금년에 할 수는 있는데 예산이 뒷받침이 안 돼서 돈을 딴 곳에서 조달을 해 주시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으면 이것은 내년으로 미뤄야 됩니다.”
그것을 한 세 번 하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완벽하게 신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자기가 지시한 내용을 깔아뭉개지는 않는다고 하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얘기를 해도, 그것 만약에 일을 맡겼는데 미스터 김이 그것을 못 했을 때는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오히려 자기가 나를 옹호해 주는 것입니다. 한 번도 야단 안 맞았습니다.
마지막에 오히려 이랬습니다. “너 이번에 승진한다. 너 오늘 네 시에 승진한다. 너 어디 가고 싶냐? 내가 너 가고 싶은 데로 보내줄게.” 그래서 내가 “윗사람들한테 하도 치어서 나도 한번 대장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나 우체국장 가고 싶습니다.”라고 그러니까, “그래? 잠깐 기다려.”, “여보시오. 여기 아무개라는 사람이 있는데 국장으로 발령 내 주시기 바랍니다.”, “알았습니다.”, “해 준대. 국장으로 가.” 이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또 전화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게으름에다가 썼는데, “어이, 오래간만이야.”, “네.” 높은 사람끼리 통화하는 것입니다. “거기 이번에 누가 승진해서 가거든?”, “어어.” 뭐 그러는 것 같습니다. “가거든 좀 괴롭혀. 아주 못돼먹은 놈이야. 알았지?” 탁 끊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양복 잘 차려입고 승진했다고 설레는 마음으로 갔는데, 이미 벌써 나쁜 놈, 일 못 하는 몸이라고 벌써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는 벌써 안경을 쓰고 보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지요? 그러니까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이 늘 자기 편에 서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미워할 때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하고 한 번쯤은 자기를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사에게, 혹은 동료에게 내가 상처 안 받을 테니까 내가 어떤 점이 그렇게 좀 부족하냐고 이야기를 좀 해 달라고 하면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개발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서 판명이 났습니다. 내가 이렇게 잘못한다는 게. 깨끗하게 한번 상사를 만나서 단도직입적으로 한번 붙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한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대하시는데 제가 엄청 기분이 나쁘고 회사를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이러이러한 점에서 너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깨끗이 인정합니다. 잘할 테니까 저를 좀 지도해 주시고 한 번만 기회를 한번 주십시오. 저를 좀 지켜봐주십시오. 제가 노력하겠습니다.” 이것 어떻습니까?
진짜 나쁜 사람이라도 상대방이 그렇게 깨끗하게 당차게 치고 나와서 깨끗하게 이야기를 하면, 진짜 나쁜 사람이야 안 그러겠지만 웬만큼만 나쁘면 “어? 이 자식 변했네. 얘가 뭐가 태도가 달라졌네.”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너 잘한다더니 왜 그것밖에 못해?” 이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예, 그것도 잘못했습니다.”
그것은 비굴하게 사는 것하고 다른 것입니다. 깨끗하게 자기를 반성하고 깨끗하게 인정하고 다시 한번 자기 자신을 고쳐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번 당차게 부딪혀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분들이 그럴 수 있을 정도의 심성을 가지신 분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강력한 처방 중의 하나라고 나는 봅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도 굉장히 한번 해봄 직한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 뭐냐 하면, 너무 괴롭히고 말도 안 되는 것 하지 않습니까? 때려치우고 나갈 수 있으면 가십시오. 그리고 더 좋은 직장에 남보라는 듯이 가십시오. 그러려면 뭐가 있어야 됩니까? 능력도 있고 줄도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둘 다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때려치우겠다고 하면 누가 말립니까? 본인이 때려치우겠다는데. 그리고 남이 보라는 듯이 더 훌륭한 직장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됩니다. 그런데 그럴 처지가 못 되고 거기 있어야 됩니다. 참으십시오. 있어야 될 것이면 참으라 이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참는 방식이 어떻게 참느냐? 필요한 부분은 받아 듣고 반성하고 자기를 고쳐나가고, 이것은 경우에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면 “아이, 저 개소리” 그리고 무시해 버리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담지도 마십시오. 지나가다가 여러분 잘 아는 친구가 “이 나쁜 자식” 그리고 욕을 하면 마음이 상하겠지만, 또라이가 걸어가면서 술 취한 채로 해 가지고, 그리고 또 명찰은 또 모르고 차고 나왔습니다. “박춘한이 너 이 바보” 이런다고 마음이 상하고 밤에 집에 가서 괴로우면 그것은 정신이상 아닙니까? 아니 또라이가 한 얘기인데 그것을 뭘 마음에 둡니까? 그리고 “아이, 또 개소리하는구나.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갈 길 간다.” 그리고 기다리다 보면 그 사람이 잘릴 수도 있고 부서를 딴 데로 옮길 수도 있고 다 그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상사한테 무지 막 열 받아서 “내가 네 밑에서 직장 생활하느니 다 때려치운다.” 그리고 사표를 냈는데 그다음 날 상사가 잘렸습니다. 하루만 참았으면 될 텐데. 비위에 걸려 가자고 잘렸습니다. 갑자기 잘렸습니다. 아니 좀 참지 뭘 그럽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개소리다. 그리고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갈 길 간다.” 그리고 딱 정리하고, 또 따지고 보면 그 사람이 회사 주인도 아니고 지나 내나 월급쟁이인데, 그 직장 영원히 따 놓은 당상도 아닌데 언제 어디로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인간인데, 그것 가지고 무슨 마음이 뿌리째 흔들리고 그렇게 목매어서 살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또 다음에 뭐냐 하면, “부양가족이 있어서 쉽게 그만두고 상사에게 반항하기 어렵다.” 그런 생각을 왜 합니까? 그러니까 세상에 그 비굴하기 짝이 없는 게,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새끼 먹여 살리려면 내가 이걸 참아야 된다.” 왜 그렇게 합니까? 돈 버는 기계입니까? 뭡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멋있게. “내가 이 말도 안 되는 수모를 겪는데 이런 과정도 필요하기 때문에 나를 성숙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말도 안 되는 인간을 나에게 부쳐주셨구나.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살면서 내가 한번 다듬어져 보리라.”라는 마음을 가져야지, 거기에다가 부양가족 이야기가 들어오면 삶이 너무 비참해지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설교시간에도 한번 이야기했는데, 영국의 하원의원이 매일 그 큰 승용차를 타고 기사의 봉사를 받으면서 출근을 하는데 너무 국정이 꼬이고 일이 많으니까 항상 여기 배에다가 손을 얹고, 위통 때문에, 다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자기 집골목을 쓰는 청소부가 있는데 막 찬송가를 부르면서 신이 나서 매일 청소를 하는 것입니다. 하루는 가다가 차를 세워서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한 나라의 국회의원인데도 이렇게 괴롭고 아침마다 이렇게 위통을 느끼면서 출근을 하는데 너는 뭐가 그렇게 즐거우냐?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렇게 즐거우냐?” 그랬더니, “의원님, 저는 청소부가 아닙니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청소부가 왜 아니야?”, “저는 청소부가 아닙니다.” “그럼 뭐냐?”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정화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스케일이 얼마나 다릅니까? 그러니까 직장생활을 이런 하나로만 보지 말고 인생 전체에서 이렇게 바라다보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이런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9번, 10번이 똑같은 내용 같습니다. 이것도 같이 모두 읽고 답하겠습니다.
9. 직장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게 많은 것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처음에는 신앙을 잘 지키기 위해서 회사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술도 권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2차 3차 등 모임에 참여를 하지 않는데,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회사에서도 형님 동생하면서 소위 사내정치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적인 부분에서 고립되어지는 것을 느끼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사회생활을 못 하거나 관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 관계적인 부분에서 한계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10. 젊을 때는 너무 경직되어 있어 술을 강요하는 상사에게 대들었다가 찍히기도 하였습니다. 너무 경직되게 대처한 것 같아 작전을 바꾸었습니다. 한 잔만 마셔보라고 해서, 술 한 잔이 어때 그냥 마시는 시늉이라도 하자고 했다가 그 이후로 지난번엔 마셨는데 이번에는 왜 안 마시냐는 식으로 지속적으로 권하는 것을 보고, 안 되겠다 싶어서 절대 안 먹는다고 선을 확고하게 그은 후에는 더는 권하지 않았습니다. 직장생활에서의 술 문화 등 신앙인으로서 지켜야 할 부분에 어려운 요구들을 당할 때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9번, 10번이 맥이 통한 겁니다.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잖습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자기가 안 먹는다 그러면 존중해 주고 그거를 강요하면 그것도 직장 괴롭힘이 되는 겁니다. 우리 직장 다닐 때는 그런 거 없었습니다. 무조건 가면 술 먹어야 되고 술 안 먹으면 심지어 “이 자식 내가 주는 술 안 먹어?” 그러고 술병으로 머리를 툭 때릴 정도, 그 정도였는데 말입니다. 문화가.
근데 놀라운 건 뭐냐 하면은 처음에 사람들을 어떻게 길들이느냐에 달린 겁니다. 처음에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면, 그 사람들은 술 안 먹는다는 사람에게 술을 먹이는 것에서 어떤 쾌감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이제 술집에 가서 양주를 따릅니다. 그러면 양주를 “뭔 맛인지 먹어 보자” 이거 하나에 몇 만 원씩 될 수도 있잖습니까? 양주가. 근데 “나 안 먹어, 안 먹어” “아이~ 먹어 이 사람아, 그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야 이거 비싼 거 먹어 인마” “난 먹으면 안 돼.” “왜?” “몸이 안 좋아.” “그게 이열치열이야, 안 좋을수록 먹어” “나 지금 약 먹고 있어” “그래도 약은 약이고 오늘 분위기를 봐서라도 먹어야 돼” 이런 식으로 하는 겁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의 경우에는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데, 그런데 확실한 것은 “딱 나는 안 먹습니다. 나는 신앙적인 이유 때문에 안 먹습니다.”라고 선을 딱 그으면 그저 첫날은 좀 욕을 먹어도 그다음에 일관되게 행동하면 그다음에 사람들이 안 권합니다. 나 같은 경우는 이제 술을 먹으려고 그러면은 주위의 사람들이 양식이 있는 사람이 “하지 마, 미스터 김. 안 먹는다잖아. 교회 다니는 사람이야. 강요하지 마, 그렇게 딱 막아주었습니다.”
근데 나는 말입니다. 술자리에 대한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나는 술자리에 다 따라다녔습니다. 그 당시에는 2차, 3차 해도 술집에서 술집으로 옮기는 풍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 1차로 술을 먹고 그다음에 유흥업소를 가거나 더 나쁜 상황이 벌어지게 되니까, 지금은 이제 상황이 달라지고 그건 좋지 않습니다. 근데 저는 하여튼 첫 번째 모임에는 웬만하면 찾아갔습니다. 내가 교회 예배에 겹쳤다든지 아니면은 그런 아주 매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난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 술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해치는 일이 아닙니다. 거기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와가지고 너무 못 올 자리에 온 것처럼 괴로워하고 이런 사람들 있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술은 그 사람들의 문화니까 술을 먹고, 자기는 앉아서 대화를 즐기고, 그 사람들은 술을 먹고 나는 또 다른 술을 먹는 거지, 안주. 맛있게 먹고. 그러고 이제 얘기를 나누고. 그리고 이제 나름대로 그 사람들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처세술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모임이 딱 봐서 이게 별로 질이 안 좋은 모임 쪽으로 간다든지, 유흥업소를 드나든다든지 하면 그때는 이제 단호하게 안 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굳이 너무 경직되게 그럴 필요가 없다, 그 대신 거기에 꼬임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러면은 이제 문제가 되는 겁니다.
한 사람이 이제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저한테.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 너무 괴로워하면서 이메일을 보낸 것입니다.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이메일로 보낸 겁니다. 그러면서 제가 너무 괴로워서 목사님밖에 의논할 사람이 없어 보낸다. 우리 교회 교인은 아니었습니다. 사연을 길게 보냈습니다. 사람이 직장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신 겁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인 걸 사람들이 다 아는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을 넘어서 술을 마신 겁니다. 그 사람들이 이제 그 정체성을 인정 안 해주고 술을 마신 겁니다.
술을 잔뜩 먹다가 이 사람들이 사창가를 간 겁니다. 아니, 사창가를 간 게 아니라 무슨 접객업소, 접객업소 같은 데를 간 겁니다. 이 형제가 거기에 넘어간 겁니다. 그러니까 그날은 이제 술에 취해서 다 곯아떨어진 모양인데, 그다음 날 회사에서 만나면 안 믿는 사람들이 “야, 너 그렇게 교회 다닐 거면 때려쳐라.” 왜? 그걸, 그걸 다 본 겁니다. 같이. 근데 그 사람들이 자기들도 똑같은 짓을 했는데 가르쳐(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입니까?), 결국 세상 사람들이 똑같이 예수 믿는 사람이 죄짓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돌이킬 수가 없는 실수를 저질러서 직장 속에서 갈 때마다 양심의 가치를 느끼면서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긴 사연을 보낸 겁니다.
그가 이 결정적으로 잘못한 겁니다. 결국 뭐냐면 왜 술을 먹었냐? 니가 평소에 술을 안 먹는 것으로 딱 선을 그었으면 절대 그 모임에 끼워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술을 안 먹었으면 그렇게 될 리가 없습니다.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안 그랬을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술을 먹고 곤드레 만드레가 됐으니까 그런 죄에 빠지게 된 겁니다. 근데 그 사람들이 죄에 빠질 때까지는 같이 격려하면서 데리고 가고 죄에 빠지고 나면 그다음에 돌이켜 서서 발톱을 드러내면서 니가 어떻게 하나님 믿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 넌 인간도 아니다. 야 교회 때려쳐라 니가 기독교인이라니 야 집어치워라,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그 얘기를 결국은 똑같이 죄 지은 사람들한테 듣는 처지가 된 겁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거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선을 분명히 그어야 됩니다. 그리고 요즘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분들이 다니는 직장이 어떤 직장인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많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건 있습니다. 뭐냐 하면 직장 다니는 사람도 있을 텐데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그 직장에 근무하는 시간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가서 자기네들 밤중에 술 마시면서 높은 사람들은, “누구 어디로 보낼까?” “쟤 쟤” “너 잘할 수 있어?” 이런 식으로 하면서 불합리하게 인사 같은 것들이 결정되는 겁니다. 우리 때에는 그랬습니다. 지금도 상당 부분 그렇게 이루어진다고 봐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 그리스도인이 살아남는 비결 두 가지를 얘기해주겠습니다. 첫째는 뭐냐 그러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십시오. 그러니까 사람들이 술을 먹고 함께 접객업소에 가지 않으면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입니다. 그러지 말고.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든지 가장 좋은 방법은 전도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그럼 똑같은 취미를 갖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기가 같이 술을 먹고 그들과 함께 접객업소에 어울리지 못하니까 이 사람하고 나 사이에는 더 좋은 콘택트 포인트가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같이 낚시를 간다든지 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골프를 한다든지 아니면 그 사람의 취미가 뭔가 해서 농구다 그러면 K-리그 농구 티켓을 끊어서 (같이 가겠느냐?) 이렇게 적극적으로 교제를 하면서 술자리에서 그렇게 보충되지 않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충하면서 인간관계를 형성해 가려는 노력을 해야 되는데, 그리스도인이 좀 약간 변종이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 요령도 없고 괜히 한구석에 치여서 이러고, 그리고 마치 괴로운 세상에 할 일이 많아서 날 가라 명하셨다고 할 수 없이 여기에 와 있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직장생활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근데 두 번째 그것만큼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돼라. 일을 잘 해야 됩니다. 그래서 그 조직에서 여러분 없으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정도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누구도 무시하지 못합니다. 나는 직장 다니면서 소외당하여 본 적 없습니다. 술 한 방울 안 먹었지만 난 소외 안 당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제가 그 직장을 떠났는데 5년, 5년 후까지 후임자들이 찾아와서 나한테 일을 풀었습니다. 5년 후까지. 5년 지나고 나니까 후임자의 후임자까지 와서 나한테 일을 물었습니다. 그리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서고를 보면서 이 일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처리하고 간 사람은 누구냐 하니까 아무아무개 선배다, 날 찾아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래서 나를 두고 상사 둘이서 서로 다투는 겁니다. 데려가야 되겠다, 우리는 못 놔준다. 그렇게 소용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 그건 현실의 문제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탐나는 사람이 돼야지. 진짜 일을 잘하고 탐난다 그러면은 성격이 좀 지랄맞아도 내가 그 지랄 당한다 그리고 부릅니다. 비위를 맞춰서라도 왜? 그거 비위를 맞춰주는 게 일이 안 돼서 뒤죽박죽되는 것보다 덜 고통스럽기 때문에 아랫사람을 부르면서도 내 비위를 맞춰 줘야 되겠다, 어느 정도, 100% 아니면 상당히 생각을 하고 불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해가지고 최고의 기술을 가진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 조직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야 합니다.
그래서 같이 접객업소는 안 가지만은 일에 있어서 저 사람을 제외해놓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런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소외되지 않는 비결입니다. 상사들이 지금 별로로 생각하는 사람은 누군지 아십니까? 일도 못 하는데 성질이 지랄맞은 사람. 아주 최악의 부하직원입니다. 이렇게 트레이드, 이렇게 교환할 때가 오면 일 순위 아니야 너, 우수 직원으로 차출됐다고, 우수 직원이 아니라 열등 직원으로 차출된 겁니다. 그런 거에 눈을 떠야 되는 겁니다. 냉혹한 세상입니다. 실력이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11. 40대가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중간에 위치해 있는 것 같습니다. 상명하달 위주의 상사들, ‘라떼’세대와 자기중심적인 ‘MZ’세대 사이에 끼어서 다리 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상사들은 ‘MZ’세대는 말도 잘 안 통하고 잘 안 들어서 귀찮아서인지 상명하달이 마지막으로 통하는 세대가 저희 40대라고 생각하는지 일을 몰아서 줍니다. 그들과의 소통도 저희에게 대부분 맡겨버립니다. 라떼세대가 나보다는 회사 중심이라면 MZ세대들은 회사보다는 나 중심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자유로움이 어떨 때는 부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같이 일을 해야 하고 지시를 하고 받아야 하기에 어려움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라떼와 MZ 모두 이해가 되긴 하지만, 일이 바빠질 때는 중간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습니다. 양쪽과 어떻게 소통하며 일을 해야 할지 한계를 많이 느끼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본인이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습니다. 그 뭐냐 하면 자기는 양쪽과 다 통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근데 이것은 무지무지한 착각입니다. 왜냐하면 라떼세대는 얘하고 잘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 MZ세대도 이 사람하고 자기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디서 나오는 만용인지 자기는 이쪽도 잘 통하고 이쪽도 잘 통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MZ세대가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라떼라는 얘기를 한 겁니다. 이 사람은 저쪽 보고 라떼라고 하지만, 이쪽에서 이를 볼 때는 초코라떼입니다. 그게 그런 착각을 하는 것 자체가 꼰대가 되어 가는 증거입니다. 깨끗하게 MZ세대들은 모르면 딱 모른다고 얘기하잖습니까?
그러니까 벌써 이게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질문하신 분은 자기는 양쪽을 다 통하기 때문에 브릿지 역할을 훌륭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라떼가 보기에는 저쪽과 소통을 못 해서 답답한 사람이고 여기의 MZ이 보기에는 MZ하고 소통이 안 돼서 답답한 사람이라서 성처럼 고립되어 있을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양쪽 세대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하는 생각부터 교정을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얘깁니다.
그다음에 이제 회사에서 보면 똑같이 MZ하고 말단으로 근무하면 자기가 그냥 MZ이 되면 됩니다. 근데 좀 늙은 MZ이겠습니다. 근데 이제 이게 똑같지 않고 중간, 어중간하게 여기에 우리로 말하자면 한 과장쯤 된다 그럴까, 지금 그렇게 위치가 그 정도 될 정도, 될 겁니다. 부장 됐으면 아예 라떼로 넘어간 거고 과장이나 아니면 고참 대리쯤 됐겠습니다. 그래서 이게 이제 하는 겁니다. 이쪽 양쪽에서 보면 둘 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겁니다. 근데 이제 본인이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게 뭐냐 하면 깨끗하게 인정을 하십시오. 나는 라떼의 세대에도 잘 모르고 MZ세대도 잘 모른다, 이렇게 시작을 하는 게 오히려 더 깨끗한 출발이다, 이렇게 봅니다.
두 번째,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두 번째 어떻게 하냐면 우선 라떼의 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한 세대의 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 세대가 놓여 있었던 사회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MZ세대들은 이미 선배들이 다 이루어놓은 풍요로운 기반 위에서 이미 태어나고 생활한 사람이고. 위에 있는 라떼 세대가 어느 정도까지 짚어야 될지 모르지만 지금 질문하고 있는 사람이 40대잖습니까? 40대 초반쯤 그러면 40대 중반에 부장이 됩니까? 큰 기업에서?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죠?
근데 뭐 40대 초반쯤이라고 놓고 설정을 하겠습니다. 그럼 뭐,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하기 전쯤 대우받는 사람이라고 보겠습니다. 라떼세대의 사람들이 얘기하는 게, 그 사람이 얘기하는 게 50대, 60대는 나 같을 것이고, 50대를 두고 하는 겁니다. 50년 시계추를 뒤로 돌리면 그러면 1972년생 정도 될 거 아닙니까? 그러면 그때는 진짜 가난한 때입니다. 국민소득 74년도인가에 1,000불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니까 드럽게 가난하던 시대였습니다. 진짜 먹고살 게 없을 정도로 그렇게 가난한 시대였고 거지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살아나서 반공이데올로기 속에서 그렇게 하면서 살면서 이렇게 독재 시절을 겪고 이랬던 사람, 군대 갔다 오고 이랬던 사람들입니다.
그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 왜 저런 사람들이 생겨났는가 하는 거에 대해. 나는 깨끗하게 젊은 세대를 나는 이해를 잘 못 한다, 나는 이해한다는 착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렇게 놓고 보면 겸손해지는 겁니다. 그래서 그 세대를 이해하려고 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쪽 세대들도 똑같이 이렇게 접근해서, 난 모른다고 생각하고 접근해서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지 노력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쪽의 이야기들을 이쪽에 전달할 때, MZ세대한테 전달할 때는 MZ세대, 자기들이 라떼 세대한테 받았던 똑같은 방식으로 전달을 하면 MZ세대는 때려치운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회사에 충성 그런 거 없습니다. 우리 가족을 영원히 책임지는 직장이 그런 개념 없습니다. 여기서 오늘 가서도 내일 여기서 돈 더 준다 그러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것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말고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서 양쪽과 어떻게 소통을 해야 되겠느냐는 건 한마디로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그 세대를 배워가려고 노력을 하고 어떻게 하면 라떼 세대의 지시를 MZ세대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전달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제 어떤 거냐 하면은 라떼 세대는 모든 일을 연역적인 방식으로 해결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도자가 뭔가 딱 생기면 그다음에 그걸 상명하달식으로 확 해서 모든 사람이 돌격, 앞으로 해서 일을 마무리 짓는 그런 방식을 선택했지만. MZ세대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결국 자기가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그거를 연역적으로 결론을 먼저 내려서 주지 말고 토론을 하게 하고 계속하기 위해서 마지막에 결론이 그 방향으로 오게끔 만들어야 되는 그런 정신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겁니다.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 MZ세대와 라떼 세대의 소통에 관한 강의들이 유튜브에 되게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번 강의를 들으면서 도움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2번으로 넘어가겠습니다.
12. 직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라, 정치 이야기가 빠지질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항상 저에게 교회 다니니까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말해보라고 농담 반 진담 반 저에게 물어보곤 합니다. 그때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는 부분이 기독교인 전체 의견으로 전달될까 봐 조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조차도 사실 정리가 잘되지 않는 부분도 많아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이 땅에서의 나라(국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정당, 정치인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요? 또 선거 때가 되면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면서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는 동료(기독교인, 비기독교인)에게 어떤 조언을 해 줄 수 있을까요?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정치적인 인물이고 정치에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가담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거고 내가 정치에 관심이 없이 살겠다는 발언 자체가 정치적인 발언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가 뭐냐면 이제 기독교는 기독교 외에는 다 우파일 거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기독교 안에서도 사람들이 저기 아주 극좌 진보적인 생각부터 극우 태극기 부대를 능가하는 그런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그 사람들이 어느 것이, 어느 것을 택하는 것이 신앙의 수준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치적인, 정치적인 견해인데? 그래서 이제 저는 흉허물 없이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 아니면 정치 얘기는 하지 마라, 그게 자기에게 도움이 될 게 하나도 없다고 그랬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나한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젊은 목사님 같은데 너무 고민이 되어서 목사님밖에 의논할 사람이 없어서 보냅니다. 질문한 내용이 뭐냐 하면 교인들이 자꾸, 교인들이 이제 그 자꾸 정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리고 지금 어느 견해를 지지하냐고 자꾸 집요하게 물어보잖습니까? 심지어는 목사님은 좌파입니까? 우파입니까? 그걸 물어본다는 겁니다. 그랬는데 이제 그 정도가 좀 심하답니다. 그래서 그렇게 물어보는 교인들 중에는 우파에 속한 교인도 있고 좌파에 속한 교인도 있는데 양쪽에 치우친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온건한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안 합니다. 나는 뭐라고 생각하든지 간에 자기 생각대로 투표에 참여하고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고 살면 되잖습니까? 물어보는 겁니다.
내가 뭐라고 조언했을 거 같습니까? 뭐라고 그랬을 거 같습니까? 절대 말하지 말라 그랬습니다. 더군다나 그걸 물어보는 사람들에게는 더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자기와 똑같은 우파인지, 확인되는 순간 좌파 견해를 택한 사람한테는 적수로 몰리는 것입니다. 교인들도 가끔 나한테도 물어봅니다. “목사님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내가 그걸 왜 대답을 하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은 내가 좌파라고 생각합니까? 우파라고 생각합니까?” 모든 교인들이 정확하게 “우리 목사님은 예수파입니다.” 듣기 좋은 얘기입니다. 근데 나쁘게 보면 애매모호하다는 뜻입니다. 어떤 분이 솔직히 내가 이렇게 질문을 했더니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목사님 소리를 계속 듣고 보면 약간 좌쪽으로 가는 우 정도, 어떤 교인은 그런 줄 알았는데 요즘 설교를 들으면 약간 우쪽으로 넘어온 좌. 다 쓸데없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절대 자기가 어느 정당을 지지한다든지 그런 얘기를 하는 거 아닙니다. 그리고 목사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 더 무책임한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인들 중에는 여기에 저기 그 태극기부터 시작해서 음모론을 추정하는 사람도 있고 한쪽으로는 당장 그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해가지고 통일돼야 된다는 사람까지 양쪽 다 이렇게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양떼들이고 교회에 와서 예수 믿고 구원받으려고 하는데, 너 이거 믿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그런 말 안 합니다. 그럼 내가 견해가 없냐? 견해가 왜 없습니까? 현 정치 상황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내가 2시간이라도 이야기하겠습니다. 어떤 놈이, 어떤 놈들이 나쁜 놈인지 내가 다 얘기를 할 수 있고 다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걸 왜 얘기하겠습니까?
그냥 혼자 저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왜 그렇게 해서 내가 표적이 되고 또 올라가서 설교를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저건 우리와 반대파인 우파를 지지하는 목사의 설교다.” “저거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좌파를 지지하는 목사의 설교다.” “저 속에는 분명히 좌파 사상이 혹은 우파 사상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거를 하나님의 말씀과 구별해서 우리가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혼란을 왜 주겠습니까? “저분은 강단에 서서 늘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사람이다. 스트림은 좌파고 우파고 다 두드려 깨고 아니면은 세상에서부터 다 손가락질받아도 두둔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마음을 가지고 설교를 듣게 하는 것이 나은 것입니다.
여러분 팔복 설교할 때 내가 재벌에 대해서 얼마나 비판을 했습니까? 내가 <카트> 산업재해 영화 또 뭐지? 그런 거 내가 다 보면서 나 자신의 식견을 계속 넓혀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은 그런 거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쉽게 어리석게 드러내고, 예수를 변증할 때는 그렇게 열을 안 내더니 좌파 할 때는 침이 튀고 막 그냥 그냥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하는 겁니다. 복음의 열정을 지니시오, 복음의 열정을. 왜 그럽니까? 그다음 13번.
13. 사기를 당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욕심이 과해서 일을 그르친 것 같아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기도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사기를 친 분을 고소해도 돈을 받을 가능성이 낮고 기다리면 준다고 해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분이 신자는 아니지만, 성경 말씀대로 서로 고소를 하지 말아야 할까요? 고소해도 돈 받을 가능성은 낮은데 그분 인생도 불쌍하고 법적으로 벌을 받게 해야 할까요? 고소하면 돈을 안 줄 것 같습니다. (재산이 없어서요.) 아니면 이 사건을 용서하고 넘어가야 할까요?
이제 본인도 압니다. 무슨 사건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탐욕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투자 같습니다. 이렇게 투자를 하면 돈을 불려주겠다고 했던 게 아닐까, 아니면 이거 이거를 사면 큰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결국은 이제 말하자면, 그게 뜻대로 안 돼서 손해를 보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질문하신 분은 상당히 그런 희망을 가지신 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반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 취할 수 있는 게 딱 두 개입니다. 그게 뭐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떼먹은 거는 나쁜 겁니다. 그리고 그거는 죄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 돈을 받아낼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독하게 받아내는 방법이 있고, 독하게 받아내는 방법. 그래서 소송을 하는 겁니다. 소송을 합니다. 그리고 소송을 해서 받아내는 돈이 없다고 그러는데 최소한 고통이라도 줄 수 있잖습니까? 그리고 얼마든지 법적인 장치가 돈을 벌어도 자기 수익으로 못 들어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잖습니까? 더 나쁜 사람들도 있습니다. 갚을 능력이 있는데 안 갚는 사람들.
제가 방배동에 살 때 일인데 지하실에 어떤 여자 한 사람이 거기에 세를 들어 살았습니다. 옛날에 1,200만 원의 전세를 대고 살았는데 주인이 되게 나쁜 사람입니다. 여자가 급히 부산에 직장을 구해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된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문을 잠그고 짐을 꺼내가지고 먼저 가버린 겁니다. 그리고 이제 주인한테 보증금 돌려주면 열쇠 주겠다고 빨리 좀 빼달라 그러는데, 주인이 아주 실적으로 나쁜 사람입니다. 몇 번을 얘기하는데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데 이 여자도 대단한 여자더랍니다. 근데 그렇게 돈을 몇 번 찾아가서 못 받는데 그다음에는 알았습니다, 그러고 가더니 일주일만의 돈을 받았습니다.
조폭들을 불렀습니다. 조폭들을 불렀는데 조폭이 셋이 왔는데 여름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험한 소리 할 거 같습니까? 안 그럽니다. 깍두기 머리 딱 하고 반팔하고 문신이 쫙 있는 사람이 셋이 와서 “사장님, 집주인이십니까? 쟤 우리 동생입니다. 언제까지 돌려주시겠습니까?” 딱 그 말만 한 겁니다. 일주일 안에 딱 입금해줬습니다. 나중에 얘기 들으니까 그 사람이 와서 그 사람 셋이 와서 한마디 해 주는데 400만 원을 받더라고. 그러니까 이 자매가 못 받게 생겼으니까 소송을 해봐야 그 몇 년 걸립니다. 그러니까 또 변호사 사야 되고 그러니까. 어차피 너한테 떼어먹힐 수도 있는 돈인데 400만 원 주고 조폭 사서 깨끗이 정리하고. 화끈하게 해가지고 이 주인한테 딱 받아 갔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까? 뭔가 이렇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요즘 조폭들 세련됐습니다. 옛날에는 가서 협박하고 그러는데, 아닙니다. “우리 동생입니다. 돌려주시죠. 언제까지 돌려주시겠습니까?” 점잖게 해도 그 위세에 눌려서 그냥 가서 자기가 사채라도 얻어서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불법이냐? 불법 아닙니다. 그래서 다 채권 회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얄미워서 돈 받아내게 돼, 그러면은 저기 사채 회수업자한테 얘기해서 극약 처방을 하는 겁니다.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방법입니다.
근데 그게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에 안 들고 그 사람을 그렇게 했다는 것으로 내몰아서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갑자기 문신이 쫙 새겨진 그런 세 사람이 와서 이렇게 딱 그 안방에 앉아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제 식구들도 있고 가족들도 있고 한데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받았는데 신앙의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근데 아무래도 이분은 그러기에는 좀 착한 분 같습니다. 그렇게 못할 것 같은데, 그러면 나 같으면 깨끗하게 잘해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서 “어차피 못 갚을 돈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당신이 잘될 때까지 내가 기도하면서 기다리겠습니다. 돈 많이 벌면 갚으시오.” 그리고 감동이 되면 “요새 끼니가 간데없다면서요?” 한 20만 원 주면서 “밥이라도 사다 드시고 힘내시고 내가 매일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러고 깨끗이 접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성공하면 얼마나 고마워하겠습니까? 그 괴로운 날 이 사람이 지금 한 사람한테 시달리는 게 아닐 거 아닙니까?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시달릴 거 아닙니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인데 깨끗이 자기를 기다려준다고 딱 얘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그러면 돈 벌면 그 누굽니까? 이상민입니까? 그렇게 빚을 많이 졌다며? 근데 저 빚 준 사람이 집도 빌려주고 자기 집에 와서 살라고 하고 그러고 빚쟁이들이 막 보약도 해가지고, 그런데 용돈도 주고 그런데 이거 먹고 힘내고 가서 돈 벌어서 갚으라고, 그래서 결국 다 파산 신고 안 하고 칠십몇 억을 거의 다 갚아간다고 하잖습니까? 그러니까 나 같으면 그러겠습니다.
깨끗하게 하나님 앞에 내가 욕심을 내서 이렇게 당했구나, 어차피 못 받을 돈 징징거리다가 결국 사람도 잃고 그 돈도 잃지 마십시오. “아유 박 선생 사람 살다 보면 그 힘든 일이 있지, 근데 처음에는 많이 화가 나고 나도 고통스러웠는데 내가 마음을 정했소, 성공하면 갚으시오, 그 대신 성공하면 꼭 갚으시오 그리고 내가 당신을 위해서 매일 성공하라고 기도해 주겠소. 착하게 사시오”하고 그러겠습니다. “애들하고 밥이나 좀 사서 드시오. 건강 챙기시고” 그렇게 하고 더 마음이 감동되면 한 달에 한 번씩 전도 편지 쓰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깨끗이 털고 가는 게 낫지, 그거 뭐 돈도 못 받는다는 거 뻔히 아는데 그걸 징징거리고 해봐야 나중에 결국은 돈도 못 받고 사람도 잃고 그러는 거지. 화끈하지 않습니까? 잃어버렸을 때는 딱 접으십시오.
14. 가족 중에 정신과 질환이 아닌, 만성적인 우울함 등 기질적인 문제와 성격, 인격장애 등 약물로 치료가 어려운 경우 어떻게 믿음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믿음으로 극복이 가능한 건지 평생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요? 일생 동안 생기가 없고 우울감이 지속되고 무력합니다. 사회생활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힘들어하고 소극적으로만 살아갑니다. 성경과 기도로 권면을 할 때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기질이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분은 본인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가족들이 문제가 있다고 지금 그러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분이 지금 정신적으로 상당히 많이 손상을 입으신 것 같습니다. 상처도 있고 그다음에 우울감도 있는. 지금 이게 질문해 주신 분인데 정신과 진료를 받아보십시오. 우울증 진단이 나올지 모릅니다. 우울증이 커트라인이 높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우울증 나옵니다. 그러면은 자기 컨트롤이 힘든 겁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뭐냐 하면 질문하는 분에게 말씀드립니다. 가족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아내일 수도 있고 부모일 수도 있고 자식일 수도 있고 형제일 수도 있는데 가족 챙기시기 전에 본인을 먼저 챙기십시오.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모든 힘은 본인에게서 나옵니다. 본인이 그 힘이 없으면 가족들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1번, 첫째, 본인, 가족 건강, 가족 정신 건강 생각하지 말고 본인 정신 건강부터 챙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금 너무 버겁다고 생각되면 두 사람을 찾아가십시오. 정신과 의사 찾아가셔서 지금 현재 어느 정도 디스트레스(distress)가 주어지고 있는지 검사를 하십시오. 그리고 정확한 처방을 받으십시오. 의외로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십시오. 두 번째 목회자를 찾아가십시오. 찾아가셔서 자기가 어떤 점이 어려운지를 이야기하고 이쪽에서는 정신적인 도움을, 그리고 이쪽에서는 영적인 도움을 받으십시오. 정신과 영혼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를 떼어놓고 다른 하나를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도움을 받으십시오. 두 개를 같이 병행하셔야 됩니다. 약을 처방하면 처방받으면 의사가 지시하는 대로 정확하게 약을 드십시오. 그게 가장 빨리 낫는 길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도움을 받으십시오. 자, 이게 1번입니다. 1번.
2번 그러면 그 가족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말씀드립니다. 이 가족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가족이 누군지 모릅니다. 근데 이게 너무 심각해서, 너무 심각해서 여러분들의 삶에 위협을 느낀다고 생각되는데 그 대상이 형제면 좀 떨어지십시오. 그래서 같이 살고 있으면 분가하십시오. 그리고 좀 덜 만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 자신부터 먼저 보호하십시오. 그리고 만약에 그분이 부모님일 경우에 헤어질 수 있으면 헤어지십시오. 그러니까 감당도 안 되는 사람들하고 같이 살면서 자신도 망가지지 마시고 헤어지십시오. 헤어지셔서 만약에 여러분이 독신이라면 그러면 독립하십시오. 그리고 결혼을 안 하셨다면 독립을 하시고. 결혼을 하셨다면 분가를 하십시오.
그리고 부모님은 부모님이 이런 상태에 있다면 도움이 필요하잖습니까? 너무 멀리 가면 안 되겠습니다. 가까이 사십시오. 근데 독립된 살림을 하십시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찾아가서 봬 오면서 그러면서 도움을 드리십시오. 여러분이 살지 않으면 가족들을 위해서 봉사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한순간에 한꺼번에 우르르 무너지고 마는 겁니다. 여러분 그러다가 깊은 우울증에 걸리면 어떡할 겁니까? 그렇게 해서 그게 만약에 더 안 좋은, 예후가 안 좋은 정신병으로 번지면 어떡할 겁니까? 그러면은 이제 가족들이 여러분에게 짐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물속으로 빠져드는 가족하고 손잡고 함께 물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컨트롤하는 것부터 먼저 생각을 합니다. 그래야지만 살릴 수 있습니다. 헤엄 못 치는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살리려면 내가 하다못해 판자때기라도 붙들고 있어야 이 식구들을 건져줄 거 아닙니까?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헤어지십시오.
그런데 이제 곤란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아내일 경우, 남편일 경우에는 이 병으로 헤어질 수 없잖습니까? 그럼 이제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합니다. 또 자식일 경우에. 이제 가족이라고 보니까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자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뭐 아내과 남편 같지도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아내와 남편일 경우에는 너무 증세가 심해져서 위기를 받을 상황까지 간다면 당연히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근데 그 정도가 아니라면은 당신은 힘을 내야 됩니다. 여러분 그게 한두 달 안에 끝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고 어떻게 살아내야 할 것인가라고 하는 것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그리고 현실을 감당해야 한다는 거를 인정해야 됩니다. 왜 나는 이런 처지에 있나 그런 투영 같은 거 하는 거는 바보짓입니다.
이건 현실이라고 생각을 하고 어떻게 내가 이 현실을 아내와 함께 남편과 함께 살아낼 것인가를 생각하고 정신적으로는 정신과의 도움을 받고 영적으로는 목회자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육체적으로는 의사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건강이 다른 데 손상되지 않았는지 보고 그리고 원기를 찾으십시오. 삶의 명랑함에 관한 시리즈를 들으면 되지 않을까? 우울할 텐데, 그렇게 하면서 말씀으로 치료를 받으면서 힘을 내서 살아야 합니다. 가족 한 명이 이렇게 됐다고 내가 죽을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잖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죽으려면 우리 이미 벌써 오래전에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됐겠습니다.
용기를 내야 합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살아야 합니다. 가족을 위해서도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뭐라고 얘기했냐면 일생 동안 생기 없고 우울감이 지속되고 무력한데 상당한 정도까지 진척이 된 겁니다. 우울증이 진척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빨리 병원에 가십시오. 근데 이게 신기한 게 약 몇 달만 먹어도 금방 이게 차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더 깊어지지 말고 가십시오. 그리고 ‘성경과 기도로 권면할 때에는 일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기질이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기질 문제가 아닙니다. 기질 문제가 아니라 기질이 아니라, 그 기질 속에 깃들어 있는 우울증 증세와 비관적인 세계관, 이런 것들이 문제고 그다음에 영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 정신적으로 그게 문제인 겁니다.
그러니까 이걸 나는 원래 기질이 이래서 어쩔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나쁜 기질은 없습니다. 그게 죄가 깃들어서 나빠진 거지, 이 기질이 왜 나쁩니까? 그러니까 뭐냐 하면 활기찬 사람은 활기찬 기질을 가진 사람이 죄가 파고들면 경솔한 사람이 되고, 그다음에 진지한 사람이 죄가 파고들면 우울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근데 죄가 사라지고 나면 경솔한 사람은 활기발랄한 사람이 되고 그다음에 우울한 기질이 우울한 사람은 죄가 사라지고 하는 신중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단호한 사람이 죄가 들어가면 결국은 경박한 사람이 되는 거고, 그리고 단호한 사람에게 죄가 사라지고 나면은 용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기질은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해서 만든 기질입니다. 정신과 상담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목회자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또 옥타그노시스 같이 성향 검사를 해 보는 게 좋습니다. 성격 검사. 그래서 자기의 성향이 어떤 성향인가라는 것을 같이 보면서 정신과 진단도 받고 목회자의 치료도 받고 의사들의 도움을 받아서, 운동도 하시고 우리의 생각은 음식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들에게 활기찬 운동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이 잘 안 들겠습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걸 하십시오. 탁구든지 테니스든지 수영이든지 뭐든지 재미가 끌리는 걸 하시면서 발산하면서 그걸 좀 잊어버리십시오. 그 정도는 조언이 됐을 것 같습니다. 15번?
15.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요양원에 보내야 할지 모시고 살아야 할지 고민입니다. 부모님은 정신이 깨끗할 때는 일반 사람과 비슷하고 활동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요양원에 보내면 분명 치매가 악화되고 더 안 좋아질 것 같습니다. 집에서 혼자 둘 수가 없고,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간병인을 풀타임으로 구하기에는 저희 부부 중 한 명의 월급이 몽땅 들어갑니다. 지금은 요양보호사 파트타임으로 두고 있지만 나머지 시간 혼자 계시는 게 위험하여 걱정이 됩니다. 어머님은 요양원에 절대 가기 싫어하십니다. 저도 보내기 싫습니다. 제가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어머님을 봐야 할까요?
참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그렇죠? 사랑하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데 어머니가 이제 치매에 걸리신 겁니다. 저렇게 되면 어떡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근데 그것도 본인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무슨 답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근데 요양원을 가길 좋아하는 치매 걸린 사람이 있겠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가고 싶으십니까? 아무도 가고 싶은 사람 없습니다. 본인이 가기 싫다고 다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행복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니까. 선택지가 있습니다. 첫째 나는 직장을 그만둘 수 있다. 그래도 가정 경제는 지탱할 수 있고 일에 대한 성취도 나는 포기할 수 있다. 그리고 얼마나 사실지 모르지만 어머님하고 최대한 즐겁게 그 어머님을 돌보면서 보람을 느끼면서 나를 내가 어머니를 섬기면서 마지막까지 보내드리고 싶다. 그렇게 하십시오.
근데 내가 묻고 싶은 건 한 20년 더 사시면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때는 여러분들은 60대 중반이 되어서 연세가 얼마인지 모르겠는데 40대니까 45세라고 칩시다. 어머니가 스물다섯에 나왔으면 70세쯤 되셨을 것이고 서른에 나셨으면 75세쯤 되셨겠습니다. 그죠? 이 정도 나이면 충분합니다. 왜냐면은 그 당시에 30에 났을 가능성도 좀 적습니다. 25쯤 낳았다고, 30살에 났다고 하면 75세입니다. 그런데 95세 사는 건 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치매가 걸렸다고 해서 사람이 갑자기 수명에 그 치매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내가 묻고 싶습니다. 20년을 잘 사시면 오늘 질문한 이 자매 분은 65세가 되고 어머니는 95세가 됩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다음에 어머니만 감당하면 끝납니까? 남편에게는 그래도 있어서 괴롭지 않은 아내가 되어야 하고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SKY캐슬에 나오는 대사를 이용한다면 “어머니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게 나는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다, 그리고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게 마음이 자유롭다 그러면 하십시오. 그리고 그거는 얼마나 효성스러운 겁니까? 맞죠? 잘 판단하십시오.
두 번째, 풀타임으로 간병인을 구하면은 한 명의 월급이 들어가는데 얼마나 많은 수입을 자매님이 올리시는지 모르지마는, 웬만하면 이제 한 명 올 것까지도 아마 안 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 누가 풀타임으로 누가 붙어 있습니까? 그리고 주 5일 근무인데 그게 가능합니까? 아마 쉽지 않을 겁니다. 이제 요양원 가셔야 되는데 가족들하고 의논하십시오. 그리고 어머니를 설득하십시오. 그리고 좀 이렇게 보호시설 같은 데에, 보호시설과 그다음에 이 자매님의 돌봄과 형제들의 돌봄을 함께 잘 융합할 수 있는 방안을 한 번 찾아보십시오.
뭐 그래서 우리 노인 주간보호소 같은 시설이 있어서, 그래서 거기 치매에 걸린 분이 가실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건 어떨까 그리고 또 치매 걸리신 분들은 또 아는 사람이 옆에 있는 것도 또 치매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까 의사하고 잘 상의를 하셔서, 그래서 어쨌든지 간에 가족들만의 힘으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나눠서 짐을 지시고.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종합적인, 모든 사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적합하다고 판단이 되면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합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형제들이 있으면 요양원들하고 급수가 다르잖습니까? 좀 환경이 좋은 곳으로 옮기시는 그런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16번.
16. 드라마나 소설 등을 어떻게 하면 중독되지 않게 볼 수 있을까요? 넷플릭스나 영화 소설 등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접해야 할까요? 절제해야 할까요? 아니면 재미로 봐도 될까요? 아무리 재미로 봐도, 미드 등을 시리즈로 보게 되면 온통 머릿속에 드라마 내용만 생각이 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목사님도 설교 중에 드라마를 본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드라마를 보는 거는 나쁜 거라고 말할 수도 없는데, 저는 즐기기 위해서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는 것은 조금 절제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시간을 뺏어가니까 그래서 이제 제가 즐겨 시청하는 거는 문제작들, 문제작. 뭐 이렇게 뭐 하긴 뭐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 사람이 뭐 <사랑의 불시착>이 무슨 문제작이겠습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 <사랑의 불시착>을 봤는데, 아니 두 사람이 결혼했으니까 문제지.
이렇게 하지만 이제 그런 경우 대부분의 경우는 문제의식이 있는 문제의식을 제공해 주는 그런 것들을 뭔가 이렇게 나 자신이 좀 더 좀 더 내가 보지 못했던 어떤 면들을 인생사에서 어떤 면들을 보기 위한 목적으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인데 영화를 뭐 꼭 그렇게만 고르는 건 아닌데 영화는 그래도 갔다 오면, 매일 영화를 간다든지 아침에 가서 저녁때까지 본다든지 그러지 않잖습니까? 뭐 아내하고 둘이 대개 가는데 그 기운 전환으로 가서 이렇게 휘 보고 오고 하는데 그렇게 자주는 아닌 거 같습니다.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간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 문제작인 것 같은 거 그럴 경우에는 꼭 봅니다.
근데 이번에 사실 파칭코가 너무 잘 됐더랍니다. 근데 사실 애플 TV를 안 써서 내가 다 보지 못했는데 요약본으로 7화까지 봤는데 요약본이 그래도 16분에서 이십 분 정도씩이니까 꽤 많은 분량을 해석까지 했는데 제가 본 한 4-5년 동안의 영화 중에서는 최고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요약본으로 봤는데 그게 1,000억이 들어가고 거기에 나오는 역사적 고증만 하는데 약 오십 명의 학자들이 보면 됐다고 하니까 엄청난 대작입니다. 그니까 마치 <토지>의 현대판을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고 그 작가하고 작가가 하버드에 가서 특강하는 것도 제가 듣고 했는데 그런 것들을 제가 좋아합니다. 보고 나서는 뭔가 이렇게 울림이 있고 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 그런 것.
그래서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면 어떤 것들은 그냥 정신줄 놓고 봐도 되지만 어떤 것들은 비판적인 시각에서 저 속에 숨겨져 있는 문화 코드가 무엇인가, 감동을 주면 저 속에서 어떤 것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감동을 주는가, <사랑의 불시착> 같은 것들은 어쩌면 저렇게 그 북한 문화를 완벽하게 녹여내서 저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서 할 수 있을까, 근데 거기에 얘기 들으면 수십 명의 그 고증들이 따라붙었다고 합니다. 그 말투부터 기차역 재현하고 막 이러는 것까지. 그런 거를 보면서 무엇인가 그 남북을 초월해서 뭔가 사람을 뭉클하게 하는 어떤 그런 것들, 재벌이라는 설정은 우리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그런 코드들을 읽어내는 그런 노력이 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무슨 정신줄을 놓지 말고 이렇게 어떤 것들을 보면서 이렇게 끊임없이 그 속에서 어떤 코드들을 읽어내려고 하는 거 이번에 나온 그 파칭코 안에서도 기본적인 배경이 이제 성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잖습니까? 그런 기독교의 코드들을 읽어내려고 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흥미를 끄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런 경우 보면 정신줄을 놓고 보시는데 어떻게 생각을 해야 되냐면 가상은 현실에 영감을 줍니다. 가상. 그래서 가상의 세계를 생각하고 가상의 소설, 가상의 세계를 접하는 것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주고 어떤 의미에서 활기를 주고 창조력을 줍니다. 근데 이게 가상이 현실보다 더 크게 나를 지배하게 되면 그게 뭐냐면 내가 현실과 가상을 혼돈하면서 현실의 부적응자가 되는 겁니다. 그럴 정도면은 그게 이제 중독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질문하신 분도 도저히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중독의 상태로 들어갔다고 하면 정신과에서 치료받으십시오. 질병입니다. 그거 질병입니다. 그래서 저는 웬만한 사람들은 토할 때까지 영화 못 봅니다. 그러시면 미드를 막 토할 때까지 그렇게 보고 일상생활이 안 될 정도로 그 미드의 줄거리들이 막 여기가 머리를 떠갈 정도로 상상력을 지배한다고 하면 정상 생활에서 많이 멀어져 있는 겁니다. 더군다나 그런 속에서 신실한 기도 생활이라든지 말씀 생활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끝내십시오. 절제가 안 되면 절제할 수 있도록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으시고 그다음에 그걸 볼 수 있는 기기들로부터 좀 멀어지십시오. 멀어지고 혼자서 그거를 보는 시간에 자기를 노출하지 않도록 노력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소설 같은 것도 마찬가지인데 빠져들면 미친 듯이 특히 만화 같은 거 미친 듯이 보는 사람들 있는데 폐인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지 말고 항상 어떤 생각을 가지냐면, 나에게 있어서 너무 소중한 것은 이 현실이다, 내가 드라마 속에서 아무리 손예진이하고 현빈이하고 만나서 뜨거운 사랑을 나눠도 그거는 그들의 현실이고 나에게는 나의 현실이 있잖습니까? 그것이 낯설어질 때까지 가상에 빠져서 사는 것은 삶의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태도입니다. 그런 거 안 됩니다. 중독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내가 이런 성향의 친구들에게 권하고 싶은 게 정신적인 그런 에너지들을 좀 털어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근데 그게 정신이 육체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털어내냐면 운동을 하십시오. 운동을. 그래서 활동적인 운동을 하십시오. 이건 전부 다 정적으로 앉아서 보는 거잖습니까? 활동적인 운동을 하십시오. 그래서 등산이나 사이클링이나 아니면 뭐 검도거나 수영이나 활동을 많이 요구하는 거 아니면 가볍게 탁구나, 이렇게 하면서 거기서 배드민턴이나 그런데서 뭔가 재미를 느끼십시오. 재미를 느끼는 게 하나쯤은 나올 겁니다. 그거를 파고드십시오. 그래서 결국은 정신적인 몰입과 육체의 이렇게 에너지를 털어내는 것 사이에 균형을 이루십시오. 그러면서 이렇게 영적으로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다음에.
17. 아직 신앙이 깊지 않아서 그런지, 사회의 전문가나 학자들이 하는 얘기에 귀가 팔랑거립니다. 신앙의 세계에서도 신학자마다 교파마다 목사님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다른 의견을 내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이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 얘기를 들으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수많은 전문가와 또 다양한 의견을 가진 신학자, 목사님들의 사상이나 책을 보면서 자신만의 주체성을 찾기가 어렵고 어떨 때는 혼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인문학이나 고전 그리고 신앙 서적을 어떻게 골라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신앙이 단단해지기까지는 성경과 설교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이러한 혼란의 과정을 거치면서 주체성이 있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인가요?
이분은 이제 신앙이 있으신 분인데 이게 정리가 안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 열린교회 교리반부터 하십시오. 교리반을 만약에 하셨다면, 하셨다면은 성심으로 안 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교리반부터 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가 무엇이냐 하면, 이 기독교 신앙으로 뼈대가 딱 잡힌 가운데 그다음에 인문학과 역사와 철학에 대한 이런 것들이 서게 되면은 현실에 대한 판단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금방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선 영적으로 주님을 깊이 만나시고 그다음에 교리반을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우선 기독교의 그 표준서들 있잖습니까? 성경이 중심에 있지만 고전들, 아우구스티누스의 그 책이라든지 그다음에 칼빈이라든지 존 오웬이라든지 그런 필수적인 책들을 읽으십시오.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이라든지 이렇게 열린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가르침들에 집중을 하시고 테이프를 한 천 개 정도만 들으면 정리가 될 겁니다. 천 개 그렇게 어려운 거 아닙니다. 그 이상을 들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책들을 열린교회에서 여태까지 공부했던 책들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책들이잖습니까?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 내 인생의 목적이신 하나님, 마음지킴, 그다음에 교회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인문학 쪽으로 가면 인간과 잘 사는 것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설교의 은혜를 받고 교리 공부를 하고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뼈대를 탄탄하게 잡으면서 혹은 잡은 후에 그다음에 책들을 펼치면서 읽으면 그 책들이 이렇게. 지금은 이제 자기가 정리가 안 돼 있기 때문에 이게 들어오면은 이게 그때마다 느낌이 다른 겁니다. 그러지 않고 주체적인 판단의 능력이 생겨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리반이 이번에도 열린다고 하니까 작심을 하고 들어와서 한번 기독교는 뭘 믿는 것인가 한번 도전을 하고 공부를 해 보자! 그러십시오. 그까짓 거 뭐 한 12주 하면 되는데 공부 못 하겠습니까? 운전면허도 볼 때도 며칠씩 공부하고 가서 시험을 보는데 기독교 신앙을 갖는데 그 정도 공부 안 해서 되겠습니까? 공부를 할 때,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이런 상태면 공부하지 않으면 주님 만나고 공부하지 않으면 똑같은 질문이 계속됩니다. 그다음에 18번.
18. 목사님, 열린교회에 와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방으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운전하여 2시간가량 걸리고, 기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곳인데, 교회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지역교회를 섬기고 은혜를 받는 것이 좋을지,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은 열린교회를 떠나고 싶지 않은데, 현실적으로 온 가족이 매주 가족이 매주 올라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지도 걱정됩니다. 목사님 목회 경험에서 지방에서 다니는 교인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분들이 열린교회에 계속 정착하고 신앙생활을 잘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변을 드리자면 교회는 물리적인 거리와 그다음에 마음의 거리 두 개를 함께 계산하셔야 됩니다. 애인을 만나러 부산을 내려가는 거리는 멉니까? 안 멉니까? 일찍 보고 싶어서 주말에 토요일 아침에 ktx를 탔습니다. 부산 가는 길이 멉니까? 안 멉니까? 확신이 없습니다. 당연히 가깝습니다. 근데 만나기 싫은 빚쟁이입니다. 그런데 5분을 걸어가야 합니다. 가깝습니까? 멉니까? 멉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린 게 뭐냐면 근처에 교회를 먼저 찾으십시오. 그래서 인터넷이고 뭐고 다 들어가서 설교를 열린교회에서 은혜를 많이 받았다니까 내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찾아보면은 딱 필이 올 겁니다. 이게 정말 은혜롭다. 그래도 그 정확하게 그 교회가 교리적으로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신앙적으로 건전한 교회인지 혹시 이단은 아닌지 그리고 교회가 커다란 문제에 휩싸인 교회는 아닌지 영혼을 따뜻하게 돌보는 교회인지 이런 거를 종합적으로 보십시오. 그리고 실험을 해보십시오. 좀 들어보십시오. 부채질하지 마시고. 며칠 들어보십시오. 몇 번 들어보시면 이 교회에 가서 은혜받을 수 있게 그리고 여기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영적인 가족이 될 수 있겠다. 그렇게 확신이 오면은 교회를 옮기십시오.
근데 도저히 없다. 그러면 차 타고 오셔서 구할 수 있는 데까지 여기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셔야 합니다. 차 타고 몇 시간입니까? 두 시간입니까? 게임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창원에서 올라오셔서 5년 이상 교회에 매주 출석하시고 지금도 다니고 계시고, 검사님까지 되신 분이 있고, 부산에서 오신 분도 있고 또 대전 아래 유성에서 오신 분도 있고 평택 이천 같은 건 그 거리도 아니고, 한때는 제주도에서 매주 올라오던 교인도 있었습니다. 그 또 제주도에 올라오신 분들이 열린교회에서 신앙생활까지 했는데 문제는 멀다고 생각되면 10분 떨어져 있어도 한없이 먼 겁니다. 그리고 가깝다고 생각되면 그 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교통비하고 기름값이 좀 들어가겠지만. 창원에서 올라오셨던 그 한 달에 교통비가 100만 원이 들어갔을 겁니다. 토요일 올라오셔서 교회 근처 호텔에서 주무시고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십니다. 근데 그렇게 다니시는 분도 있는데 뭐 우리의 인생보다 소중한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 대신 내가 말하고 싶은 거는 덜컥 그만두지 말고 좋은 교회를 찾을 때까지는 이 교회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작심을 하고 나오십시오. 그 정도 두 시간 걸리는 것 가지고는, 두 시간 오면서 가족들하고 대화하고 또 설교 한편 듣고 내려갈 때 가족들하고 서로 대화하고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게 할 수도 있는 거지, 창원에서 오신 분도 있는데 뭘 그럽니까? 봉사도 하실 수 있고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좋은 교회 그러다 구해지면 가시면 됩니다. 그 대신 태도를 확실히 하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겨우 교회나 나오려면 그건 별로 안 좋은 거고 그런 거리와 상관없이 나는 열린교회 교인으로 살겠다, 그러다 보면 또 직장을 서울로 옮길 수 있는 날도 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기도 많이 하시면서 결정해서 하십시오. 그다음 마지막 19번.
19. 목사님께서 4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하고 싶으신 것과 후회되는 것 그리고 여기에 함께하고 있는 40대를 지나는 저희들에게 꼭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실까요?
4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후회되는 것 별로 없습니다. 그리고 40대로 돌아가면 꼭 하고 싶은 거 별로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 족합니다. 다만 한 가지 40대를 생각할 때 좀 아쉬운 건 있습니다. 하나님 믿고 기도하고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후회할 게 별로 없는데, 너무 바빠서 뭐 내가 돈 벌려고 바쁘고 그런 건 아니지만 교회, 여러분들은 아마 심경을 모를 겁니다. 사십 대 때에, 사십 대 때가 교회가 막 눈부시게 성장을 했기 때문에 항상 허덕허덕하면서 교회 일을 해야 됐습니다. 결국은 빚내서 땅을 사야 됐고 그다음에 빚내서 교육관을 사야 됐고 그다음에 헌금은 없는데 어쨌든 교회는 끌어가야 되겠고 그 돈에 대한 걱정, 염려였고, 교인들을 돌보는 일이었고, 그러면서 40대 때 공부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많이 했고 50대에 더 많이 했습니다. 50대에 더 열심히 했고 40대에는 집회를 많이 다녔고.
아쉬운 것은 가족들한테 좀 더 따뜻하게 많은 시간을 내어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후회 없이 살았지만 바깥에서 쓰는 시간을 조금 더 경제적으로 혹은 효율성 있게 혹은 좀 절제하면서 쓰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좀 더 가졌더라면 참 좋았겠다는 후회가 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이 밝고 명랑하게 잘 커 줬고 또 저의 많은 약점과 부족한 점들을 사랑으로 잘 이해해 주고 했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근데 그때 아이들이 한창 아직 어렸을 때, 초등학교 다니고 그랬을 때 많이 놀아주고 그러지 못했던 게 제 후회로 남습니다. 지금 돌아가면 안 그럴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덜 살겠다는 게 아니라 좀 더 지혜롭게 했으면 그래도 가족들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을 더 마련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아쉬움 정도로 있습니다. 나머지는 별로 크게 후회되는 일이 없습니다. 너무 대답이 시시했습니까?
자, 이렇게 해서 우리 마흔통, 마지막으로 혹시 엑스트라 질문이 있으면 한두 개 받아주겠습니다.
(남자) 아 목사님 잘 들었습니다. 제가 이직을 준비하고 있는데 안정된 직장에서 소위, 벤처회사로 가게 되면 이런 게 조건들이 다 안 좋아질 거고 복지도 안 좋아질 거고 이렇게 해서, 목사님도 소명이 있긴 하지만 우체국장에서 목사님이 되신 거잖아요. 이때 가족분들은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분명히 소명은 받으셨겠지만 그런 과정들도 필요하셨을 텐데 어떻게 하셨는지 좀 궁금하고. 요즘 지난 시간에 피부 관리와 운동과 독서 되게 중요하니까 잘 챙겨서 하라고 하셨는데 제가 독서에 요즘 관심을 가지고 좀 보려고 하고 퓨리탄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데 그렇게 바쁘신 와중에 어떻게 책을 읽으셨는지, 어떤 책 읽으시는 시간을 확보하는 노하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안정된 직장에서 있다가 벤처로 가게 됐다, 공동 창업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굉장히 모험입니다. 잘 되면 대박인데 그렇지 않은 쪽박이 되기 쉬우니까 그 결정을 어쩌면 후회할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잖습니까? 근데 일단 배 떠난 다음에 항구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그리고 인간이 한 번 태어난 건데 자기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게 인생의 보람입니다. 그러니까? 끝내라고? 아, 본관으로 가야 돼? 인기가 많아서.
사람이 한 번 태어났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는 거지, 뭐. 그거 그리고 뜻을 딱 세웠잖습니까? 그냥 저기 뭐야 불태워버리십시오. 나는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이미 이제 부두를 떠났다, 나에게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일절 뒤돌아보지 말고 다 쏟아붓고 그걸 가는 겁니다. 가족들이 설득하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근데 우리의 꿈은 가족들에게 쉽게 설득이 안 됩니다. 가족은 안정을 원하고 그러잖습니까? 그러니까 나를 믿어달라 그리고 반드시 성공한다, 그게 나를 위해서 오히려 자꾸 이미 떠난 배를 붙들고 자꾸 부두를 돌아보게 하지 말고 나를 위해 차라리 기도해라, 가겠다 하고 가십시오. 그리고 안 가면 나중에 그 안 간 걸 기억을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두 번째, 이제 뒤돌아보지 말고 가시라.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가는 겁니다. 월급 받아서 언제 부자가 되겠습니까? 그냥 한번 던져보는 거지 뭐 사람으로 태어나서 아니 나는 뭐 평생 월급으로 살았고 내 사업을 안 했어도 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젊은이들에게 항상 “이 사업을 해라, 월급쟁이 가지고 큰일을 못 한다, 사업을 해라” 하는데, 용기들을 못 냅니다. 용기를 냈으니까 바로. 그래서 그냥 앞만 보고 가십시오. 그 대신 하나님 전심으로 의지하고 가십시오. 기도하는 기업가가 되십시오.
두 번째, 책을 언제 읽냐 그러는데 시간을 내는 게 문제가 아니라 뭘 좋아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시간이 없어서 술 못 마시는 거 봤습니까? 연애 좋아하는 사람이 바쁘다고 왜 연애 안 합디까? 노름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바쁘다고 노름 안 하는 거 봤습니까? 똑같은 겁니다. 자기 좋아하는 건 다 하기 마련입니다. 책을 읽는 걸 좋아하면 오바마가 전 세계를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었는데 이게 시간은 어떻게 나겠습니까? 근데 백악관에서 그 고통스럽고 힘든 나날들을 견디게 해주는 나의 유일한 힘이 밤중에 있는 한 시간의 독서 시간이었다고 그랬잖습니까? 그 사람들이 극찬했습니다. 그렇게 햄버거를 좋아한 거 아십니까? 햄버거의 유혹에 시달리는. 햄버거 하나 먹으면서 책을 보는 데서 그 대통령이 위로를 받으면서 사는 겁니다.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하게 됩니다.
안 하게 되는 건 시간이 없으면 못 하는 게 아니라 의지가 모자라고 욕망이 모자라기 때문에 못 하는 겁니다. 그 시간이 없어서 그걸 못 했는데 그러면 딴 거 다 하고 있잖습니까? 그냥 한 겁니다. 새로운 세계를 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기분이 좋습니까? 제가 한 6개월째 니체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 신세계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칸트도 읽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고리타분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말랑말랑한 신세계입니다. 옛날에 다 읽었던 책이지만. 지금 이 나이에 보니까 젊었을 때 도저히 눈에 안 들어오더니만 확 들어오는 겁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래서 그러면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 그게 진정한 행복이잖습니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야지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따라해보십시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 아멘.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