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목회자 세미나 특강
녹취자: 김경애
이 문제를 우리들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우선 제일 먼저 우리들이 이 개혁파 정통주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것부터 먼저 설명하고 그 다음에 그것의 중요성이 부각되게 된 역사적인 배경이 무엇이고 그것에 대한 논지들이 정확하게 무엇이고 그리고 오늘날은 그것들이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지 크게 4개의 주제를 가지고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개혁파 정통주의라는 것은 결국 두 개의 용어가 만난 것입니다. ‘Reformed orthodox’ 인데 Reformed라는 것은 역사적으로 ‘개혁된’ 그런 뜻이잖아요. 우리는 거기다가 개혁주의를 붙였는데 어쨌든 중세의 가톨릭으로부터 개혁된 그런 신학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함유하고 있고 오도독시는 신학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부 ‘오르도’에서 나온 것인데 오도독시 라고 그러면 정통적이라고 그러는데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정통을 이야기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우선 첫 번째 기준이 무엇이냐 하면 성서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신학적인 논이 있고 그 논을 종교개혁에서 구현했다고 보고 물론 종교개혁도 여러 가지 층차들이 있습니다만 그렇게 하고 그 다음에 그것이 더 뒤로 가면 중세의 보편교회의 교부들을 지나서 그래서 초대교회 교부들로 넘어갑니다. 그러면 아우구스티누스 뒤로 가면 테르툴리아누스, 이레니우스로 넘어가고 더 뒤로 넘어가면 속사도 교부들로 넘어가고 더 넘어가면 사도들로 가고 그 사도들에 대한 흔적인 신학성경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편교회가 올바른 신앙의 노선이라고 고백해왔던 것에 대한 그 자리매김이 오도독시입니다. 그것이 중세에 많이 가려져 있다가 종교개혁에 의해서 드러난 것이라고 우리들은 봅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개혁주의라는 것은 로마 가톨릭에 반대에서 일어난 모든 개신교적 운동을 통칭합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저기 아나벡티스 부터 시작해서 알미니우스는 물론 포괄하고 심지어는 소키누스주의 까지도 모두 포괄해서 신비주의 운동까지 모두 포괄해서 다 ‘Reformed’ 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대부분은 그런 광의로 부르지 않고 협의로 부르게 됩니다. 협의로 부르게 되면 그것은 훨씬 더 네로한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개혁파 정통주의라고 할 때 이것은 훨씬 더 좁은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그 정통주의는 취리히 쪽에서 일어났던 운동, 그 다음에 스위스에서 일어났던 운동, 그리고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루터파 운동, 후에 화란으로 넘어가서 일어났던 화란 개혁파운동, 등등으로 어우러지면서 이제 ‘Reformed 오도독시’ 라는 정의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혁파 정통주의라고 보고 개혁파 정통주의의 특징은 여러 가지로 많이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서에 대한 것인데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대한 전적인 고백, 그것 대개 ‘화이브솔라’ 로 요약되는 그러한 기본적인 교리의 체계들을 우리들이 정통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개혁파 정통주의가 오늘날 왜 갑자기 이렇게 관심을 끌고 대두되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배경이 있는데 그 배경이 신학 안에서부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역사학 쪽에서부터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역사학 쪽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1914년에 에띠엔느 질송이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한편의 논문을 유럽에서 발표하는데 그것이 충격적인 논문이 됩니다. 이 에띠엔느 질송이라는 사람은 프랑스 태생의 가톨릭 신자로서 대학에서 데카르트를 전공해서 박사논문으로 박사가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데카르트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나서 의문을 갖게 된 것이 데카르트의 이 천재적인 철학적인 태제들의 소스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면 더 길어집니다만 데카르트의 기본적인 태제는 무엇이냐 하면 여태까지 있었던 존재론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의 사유체계, 그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나나 너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하나의 쭉 돌아가는 하나의 패러다임입니다. 그래서 이게 이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나라는 인간이 생각해도 나는 중심이 아니고 나, 너, 우리, 많은 상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속에 하나의 팩터로서 그렇게 내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참된 것이고 진실한 것이냐는 그 모든 것이 다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듯이 다 돌아가도 움직이지 않는 존재가 있는데 그 존재가 모든 가치의 기준이고 그 존재가 판단한 것이 가장 정확한 사실이라는 아이디어가 이제껏 까지 있었던 철학의 중심 원리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존재의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그 존재자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서 데카르트가 완전히 뒤집힌 생각을 내놓으면서 유명한 태제 ‘꼬깃도 에루구숨’ 이라는 명제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데카르트의 순수한 명제냐 하면 그렇지 않다고 학자들은 봅니다. 이미 벌써 데카르트가 나타나기 1300년 전에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런 명제를 이야기합니다. ‘씨 폴리오르 에루구숨’ 라틴어로 말하자면 ‘내가 오류에 빠진다면 나는 존재한다.’ ‘내가 오류에 빠진다면 고로 나는 존재한다.’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꼬깃도 에루구숨이라는 것은 ‘꼬깃따르’에서 온 것인데 ‘사유하다’입니다. 사실은 사유하다가 아니라 ‘의심하다’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래서 결국은 모든 것을 다 부정할 수 있어도 마지막에 절대로 부정이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의심하고 있는 나는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유명한 ‘꼬깃도 에루구숨’ 이라는 명제가 성립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제 이 신이 있었던 그 자리에 나라고 하는 존재가 들어가고 신도 상대적인 것이 되어서 너, 우리, 그 사람, 이런 모든 돌아가는 패러다임 속에 하나가 들어가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면 더 굉장히 복잡해지지만 그냥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데카르트는 신앙의 영역이라는 것은 중세시대부터 결국은 믿어야할 신앙의 영역이 이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중세의 가장 커다란 과제였고 그것을 위해서 최소한 적어도 천 몇 백 년 동안 그렇게 신학자들이 헌신한 것입니다 그것을 단칼에 날려버리면서 결국 신앙의 세계는 입증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존재한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이성의 추측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하면서 결국은 줄을 긋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결국은 실제로 신앙의 세계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그것들을 평가하고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써는 이성밖에 없다는 주장을 내세웁니다. 그러면서 명석하고 판명한 법칙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끝까지 회의하고 의심하라. 그런데 마지막에 끝까지 가도 의심이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진리이니까 그것은 받아들여라.’ ‘그 진리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면 신이 만들어놓은 법칙이다.’ 그래서 데카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은 그런 것을 선과 악을 초월하시는 분인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선과 악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진리라고 하는 것이 신은 곧 진리라는 것이 여태까지의 명제였는데 그렇게 안보고 신이 그냥 영원 전에 진리를 창조해서 그래서 인간에게 그것을 부여한 것이다. 그것이 사실은 법칙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데카르트가 자기의 주장을 펼쳐서 근대정신을 만들게 되고 그리고 과학의 폭발적인 발전과 학문의 놀라운 발전들이 모두 데카르트의 사유에 기초해서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에띠엔느 질송의 궁금증은 도대체 이 사람이 그러면 소스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러면서 파 들어가서 결국은 어디로 만나게 되느냐하면 13세기의 중세 말기의 철학자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캄이라든지 이런 사람들, 우리들이 유명론 논쟁에 나온 것처럼 그런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어땠느냐하면 철학계에서 중세에는 철학이 없었던 시대라는 것이 보편적인 학설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로 끝나고 그리고 중세에는 철학이 유실되어버리고 신학이 지배하던 시대가 되어버리고 데카르트가 새로운 신학으로부터 독립된 철학의 시대를 열었다고 해서 철학의 시작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니라 그리스 로마에서 끝나고 그것이 점프해서 데카르트로 넘어왔다고 보는 것이 예전의 학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논문에서 무엇을 표현하느냐하면 중세를 연구하면서 특별히 토마스 아퀴나스를 연구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연구하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오히려 중세야말로 참다운 신학이 꽃피던 시대라는 당시로써는 아주 생뚱맞은 가설을 발표합니다. 그때에 모두 반대를 했는데 소수의 학자들이 그 에띠엔느 질송의 논문에 대해서 아주 강력한 지지를 표명하고 그 이단자처럼 취급받던 그 사람이 40년 후에는 이제까지 있었던 중세에는 철학이 없었다는 가설을 완전히 휴지조각을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어떤 연구들이 있게 되었느냐하면 중세철학과 근대철학의 연관관계의 문제, 그 다음에 14세기에 문예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은 중세 사상과는 완전히 반대의 사상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두 운동이 르네상스운동은 휴머니즘 운동으로써 중세에 있었던 매드발리즘에 대한 전적인 안티태제로 일어난 운동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학자들이 연구를 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놀랍게도 이 인문주의는 중세에 반대를 해서 일어난 운동인데 잠시 시간이 흐르면서 휴머니즘에서 일어난 많은 운동들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인문주의의 개념들이 중세철학의 도움을 받아서 단단하게 체계화되면서 오히려 인문주의의 내용들을 보존하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부터 이제 어떤 연구들이 일어나게 되느냐하면 스콜라주의와 인문주의 즉 중세스콜라주의와 인문주의입니다. 여러분 스콜라주의를 다 아시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를 이용해서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연과 교회와 하나님과 세계에 대해서 체계적인 설명을 시도했던 신학의 체계들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스콜라주의라고 부릅니다. 그 스콜라주의와 르네상스가 이제껏 까지는 상극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아 여기에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공존하는구나!’ 하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연구들이 활발해지기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어떻게 넘어가느냐하면 중세의 철학과 근대의 철학에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중세의 신학과 종교개혁 사이에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중세주의와 그 다음에 르네상스처럼 그렇게 상극되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연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스타인메츠나 하이메고반이나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제 그런 연구들이 상당한 진척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 이제 40년대 50년대 60년대에 와서는 거의 합의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다음에 이제 무슨 문제가 생기느냐하면 ‘자, 그렇다면 중세의 신학과 그 다음에 종교개혁의 신학이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면 (지금 우리가 시간이 없어서 그것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런 똑같은 논리로 종교개혁과 종교개혁 이후에 있었던 신학이 우리들이 이제껏 까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 대치되는 그런 구도를 가지고 있을까?’ 여기에 대해서 회의를 품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교육을 받으실 때에는 어떻게 받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이 교육을 받을 때는 이렇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동의하면 동의를 표해보시기 바랍니다. 중세에는 잘못되었기 때문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반동으로 말입니다. 그러니까 연속성 같은 것은 이야기할 수 없고 반동으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너무 신앙을 근본으로 하는 주관주의 쪽으로 가고 신학의 혁신 자체가 자기의 체험 때문에 인간론 중심으로 흘러갔기 때문에 왜냐하면 구원론 중심이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치우친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칼빈이 나타났고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다음에 인간의 구원에 대해서 종교개혁에 있어서 가장 균형 잡힌 설명을 주면서 신학의 체계를 완성했다고 보고 그러므로 칼빈 이전에 있었던 종교개혁 이전에 있었던 중세는 연속성이 없으니까 끊어지고 그 다음에 루터 같은 사람들은 너무 한쪽으로 나갔기 때문에 끊어지고 그 다음에 그러다가 신학이 칼빈이 가장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완전한 신학을 만들었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독교강요인데 그런데 이후에 배자라는 제자가 나타나고 루터파쪽에서는 멜란히톤이라는 제자가 나타나면서 비텐베르크 신학교 그 다음에 이쪽에서는 제노바 아카데미가 생겨나면서 그러면서 종교 개혁가들의 신학적인 유산들을 물려나가는 과정에서 종교개혁자들이 생각했던 단순한 솔라스크리트아의 신학을 저버리고 이성주의에 빠지게 되면서 그러면서 개신교에 스콜라주의가 들어오게 되는데 이러면서 결국은 신앙은 약화되고 신학은 종교개혁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이성주의에 오염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루터파는 이신칭의라는 중심교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제노바 아카데미를 중심으로는 하나님의 예정론이라는 것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본보기가 바로 데오도로 배자의 예정론도표라는 것이다. (예정론을 도표로 만들었습니다.) 그런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그러므로 칼빈 이후의 신학은 이제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멜란히톤 이후의 신학도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대충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 태제가 슐라이어마허가 만들어놓은 태제입니다. 그런데 그 태제가 사실은 종교개혁의 연구에 있어서 최악의 태제가 되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집니다.
그러면서 그러는 와중에 70년대에 아주 똑똑한 학생 하나가 이 스승들의 연구 즉 중세와 종교개혁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해서 종교개혁자들과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배척적인 위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훨씬 더 연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오히려 그들을 통해서 진정한 개신교 Reformed의 유산들이 17세기에 형성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제 연구를 하는 똑똑한 학생 하나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 사람이 바로 듀크 대학의 스타메츠 교수의 제자인데 그분이 지금 칼빈 신학교에 계신 리처드 먼로교수입니다. 그분이 쓴 First 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라고 하는 4권으로 된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깁니다.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여러분들이 가서 들춰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마어마합니다. 저는 그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유산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결국은 무엇을 의미하느냐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사실은 신학을 완성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칼빈만 해도 삼위일체가 안 나옵니다. 삼위일체론이 안 나옵니다. 그것은 무슨 이야기냐 하면 중세에 있는 신학에 대해서 종교개혁신학자들이 전부 다 가톨릭과 의견을 달리했던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의견을 달리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쭉 거슬러 올라가보면 인간창조론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창조론 중에서 형상에 관한 부분이라든지 그 다음에 기독론의 부분에서 그리스도인의 XX성 부분이라든지 교회론의 문제라든지 이런 것은 현저하게 달랐지만 그러나 삼위일체나 하나님의 섭리,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가톨릭의 신학을 별로 수정해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실은 쟁점이 되는 것들로 먼저 굵은 선을 그립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미 칼빈이 살아있을 때 그리고 루터가 살아있을 때 이미 루터나 칼빈이 세워놓은 신학의 체계들이 충분하기 않았다는 것이 입증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무엇을 보면 여러분이 알 수 있느냐 하면 칼빈이 처음으로 1536년에 초판의 기독교 강요를 내놓고 1559년에 마지막판 기독교강요를 내놓습니다. 두 권을 비교해보시면 부피가 세배로 늘어납니다. 그러면 그 이야기는 무엇을 보여주느냐 하면 자기가 그것을 처음 쓴 이후로 자기의견에 토를 다는 수많은 이단과 자유사상가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더 상세하게 논의해서 사실 내 이야기는 더 상세하게 펼치면 이런 것이고 그래서 너희 의견과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논쟁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칼빈이 말년쯤 되었을 때는 이미 벌써 훨씬 더 칼빈의 사상에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루터파 같은 경우는 소키누스주의입니다. 소키누스주의는 뭐냐 하면 이성으로 용납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전부 다 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소키누스주의를 비롯해서 아나베티스트 재세례파를 비롯해서 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그 다음에 또 뭐가 있느냐하면 로마 가톨릭 안에서 안티카운티불 리포메이션이 생겨납니다. 그 전에는 교권을 가지고 박해를 했는데 그 다음에서 세련되어서 이제는 거기에 학자들이 어마어마합니다. 그 학자들이 전열을 정비해서 종교개혁자들 하나하나를 논리적으로 비판해오는 것입니다. 그중에 유명한 것이 샤돌 리트의 서신서입니다. 그래서 칼빈이 제네바에서 쫓겨납니다. 쫓겨나서 결국은 스타스부르그로 가서 거기에서 마틴부처 밑에서 부목사 비슷하게 있으면서 거기서 장가도 들고 그렇게 되는데 가톨릭 측에서 샤돌 리트라는 대주교가 정식으로 공식 질의서를 칼빈이 목회하던 피에르 교회로 보냅니다. 그런데 당회에서 모여서 이야기하면서 이게 지금 정식으로 신학적인 도전장이 날아왔는데 우리가 이것의 답장을 써서 보내야하는데 답장을 누가 쓸 것이냐? 로 고민하다가 마지막 결론이 칼빈선생 이외에는 이것을 책임 있게 답변할 자가 없다는 결론이 납니다. 그래서 스타스부르그에 가서 읍소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칼빈은 안갑니다. 여러분들이면 쫓겨난 교회로 가겠습니까? 안 가는데 마틴 부처가 야단을 칩니다. ‘당신이 여기에 있으면 무엇을 하려느냐? 빨리 가라.’ 그러니까 칼빈은 못가면 안가는 거니까 요구조건을 다 대는 것입니다. ‘내가 가서 개혁을 펼 것인데 너희가 무조건 복종하겠느냐?’ 시의회 모두 도장을 받아오라고 그런 것입니다. 그때는 이미 칼빈도 환난을 거치면서 영악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 사람들이 전부다 개혁에 복종하겠다는 사인을 받아온 것입니다. 그것을 딱 틀어쥐고 가서 가톨릭 측에 답장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가제탄을 비롯해서 이런 사람들에 의해서 아주 예리한 질문을 펼칩니다. 이쪽에서는 잘못하다가는 진짜 이단들이 결국은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그것 가지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나중에 시간이 나시면 역사를 한번 읽어보십시오.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피터마터 베르리글리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태리 출신의 신학자인데 피터마터 베르리글리 이 사람의 책을 제가 몇 권을 읽었는데 엄청난 철학자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쓴 대표적인 책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필라소티칼 라이팅 이라는 책과 카멘터리 투 니코마코스 에틱스 윤리학에 대한 주석서였습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윤리학 책인 것을 아시죠? 그것에 대해서 굉장히 사변적인 사람입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저서 몇 권을 읽었는데 굉장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공정하게 칼빈을 아는 사람에게 공정하게 시도해서 피터마터 베르리글리의 작품을 읽어보라고 그러고 그 다음에 네가 생각하고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칼빈이 이 사람에게 자기 후임으로 와달라고 편지를 했겠느냐 안했겠느냐 그러면 절대로 그랬을 리가 없다는 것이죠. 그런데 자기 후임이 되어달라고 6번이나 초청을 합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분이 못 옵니다. 못 오는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칼빈이 살아있고 루터가 살아있을 때에 양쪽 신학교에서 시행되던 커리큘럼을 조사한 목록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신학교 과목의 ⅔가 인문학이었습니다. 인문학과 철학입니다. 특히 멜란히톤은 거기서 아예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쳤습니다. 형이상학부터 시작해서 가르쳤습니다. 범주론, 윤리학 이런 책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제 주장은 뭐냐 하면 내가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먼로교수님도 충분히 동의했습니다. 뭐냐 하면 이미 칼빈과 루터가 살았을 때에 자기 시대는 이제 끝났고 자기 시대에는 이것으로 종교개혁을 했는데 이후의 시대에는 자기들이 그려놓은 이 신학보다 훨씬 상세화된 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필요성을 깊이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것을 묵인하면서 신학교를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개혁파 정통주의가 꽃피게 됩니다. 두 가지 요인이 있는데 하나는 개신교 내부적인 요인이 있고 외부적인 요인이 있는데 외부적인 요인은 뭐냐 하면 이단들이 속출하니까 그럼 우리 개신교는 무엇을 믿는가? 라는 것을 명백히 하여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개신교 안에서도 우리만의 체계적인 신학을 갖자는 것이었습니다. 신학자들도 ‘삼위일체는 가톨릭과 똑같으니까 거기를 봐라.’ 좀 그렇잖아요! 우리 것이 있어야 되는 것을 우리 나름대로 신학을 정리하자는 운동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의 주 인력들이 누구냐 하면 가톨릭에서 회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수도사 같은 것으로 전문적인 스콜라주의의 훈련에 닳고 닳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회심한 것입니다. 이들이 로마가톨릭이 짱구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화려하게 말입니다. 거의 다 떼었으니까 그 사람들 속에는 지금 터널티사에서 나오는 아우구스티누스라고 되어있는 빨간책은 한질에 일억입니다. 한질이 500권정도 됩니다. 그것을 사야하는데 돈이 없어서 아직 못 샀는데 간간이 필요한 것만 모아서 한 30, 40권 가지고 있는데 한질에 일 억 원입니다. 그런데 일억을 주어도 다 못 구합니다. 벌써 절판된 것들이 있습니다. 그 500권 정도가 여기에 거의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지’ 그러면 저 끝의 초대교부부터 시작해서 이게 어떻게 흘러왔는지 머릿속에 굴러가는 것입니다. 불교신자들이 금강경 같은 것을 외우고 있는 것과 유사한 것이죠. 그런 사람들이 이제 가톨릭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어학이 펄펄 납니다. 그 다음에 주님을 확실하게 만나서 성경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가톨릭에 대한 모든 약점을 압니다. 철학훈련을 철저히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공격하면서 체계를 세워나갑니다. 굉장합니다. 제가 존오웬의 신학을 하면서 한번 들려 드렸습니다. 거기서 스콜라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식으로 진술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법들을 인용해서 체계를 쭉 세웁니다. 그것이 어마어마합니다. 지금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시간이 나면 제 방의 마루에 철퍼덕 앉아서 몇 권의 책만 꺼내서 목차만 읽어보아도 이것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이게 놀라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개혁파정통주의 역사에 영국이 자기 몫을 해냅니다. 그래서 영국이 참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교부시대에도 그 일들을 해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안셀무스 같은 유명한 사람이 영국 사람입니다. 자기의 몫을 해냅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들 에오리제나를 아십니까? 그는 스코트랜드에서 난 중세시대의 유명한 신학자입니다. 최근에는 아일랜드에서도 상당히 많은 기여를 했다고 하는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제 개혁파 정통주의 역사에도 기여합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청교도를 공부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 지체들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제가 팁을 주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전에는 개신교 역사에서 아주 뛰어난 영성과 학문을 겸한 영국의 독특한 청교도들을 연구했습니다. 지금은 그러한 하이코데시스가 이제는 더 이상 안 먹혀 들어갑니다. 그게 뭐냐 하면 개혁파 정통주의라는 거대한 큰 물결이 종교개혁 이후 루터 이후에 멜란히톤이나 배자이후로부터 쭉 이어지게 되고 거기에서 철학과 신학의 관계를 균형을 잡으면서 말하자면 완벽하게 체계화하려고 했던 방대한 신학적인 지적작업들이 있게 되고 그래서 그 시대를 우리들이 개신교교부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특징은 뭐냐 하면 확고한 그리스도와의 만남, 그 다음에 깊은 영성, 그 다음에 개혁신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 화이브솔라에 대한 가치, 이러면서 개신교신학을 탁월한 지성으로 정리해간 사람들입니다. 실천적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줄기가 대륙에서 이어지고 있을 때 옆으로 뻗어 나온 산맥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영국 청교도입니다. 작은 산맥입니다. 그런데 영국의 청교도가 책을 약100,000권정도가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20,000권 정도가 지금 남았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 청교도들이 모두 산맥의 줄기는 아닙니다. 그 산맥에 올라타려면 무식한 청교도들은 안 됩니다. 거기의 산맥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영국에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로버트 리즐리, 리처드 백스터, 존 오웬,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잘 아는 윌리엄 퍼킨서, 토마스 구딘, 찰스 스윈록, 이런 정도의 사람들은 그 산맥을 탄 사람들입니다. 제가 화란에 가서 충격을 받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화란에 오웬 전공자들이 있습니다. 상당히 나이가 드신 분들이 오웬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화란의 서고를 뒤져보니까 엄청나게 많은 양의 오웬의 화란어 번역들이 즐비합니다. 청교도 아네스를 기억하십니까? 에임즈라고 그럽니다. 윌리엄 에임즈입니다. 그 사람의 라틴어 필명이 아네시우스입니다. 그분이 화란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영향을 끼치는데 화란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화란 개혁파 정통주의 개혁주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윌리엄 에임즈입니다. 존오웬이 윌리엄 에임즈를 스승으로 여겼습니다. 족보가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학문들이 전해 내려오는데 마지막으로 특징만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특징이 뭐냐 하면 개신교 스콜라주의 체계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스콜라주의라는 말은 스콜라에서 왔는데 희랍어 스콜레에서 왔습니다. 한가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school이 거기에서 옵니다. 그래서 시간이 많으니까 사람들이 모여앉아서 밥 먹고 서로 이야기하고 가정교사 하나 불러다가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이 살롱에서 있었던 이야기이고 그게 발전해서 school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서 결국은 상세하게 스콜라주의라는 것은 결국은 논쟁주의적이고 그래서 그것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이런 것들이 분류와 종합으로 이어지는데 그 스콜라주의가 예전까지는 신학의 학문의 철학의 내용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용이 아니라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콜라주의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훈련받은 논리적인 훈련으로써의 스콜라적 방식을 신약의 개신교 교의 체계를 완성하는데 동원한 것이며 그래서 이단을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정치한 개신교 신학들을 만들 수 있었고 이런 것들이 결국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느냐하면 18세기 초반 이후로부터는 아까 말씀드린 이후로 이런 개혁파 정통주의 역사가 다 결딴이 나고 끝나고 유실됩니다. 그러다가 이제 어떤 일들이 있게 되느냐하면 미국으로 사람들이 1776년에 건너갑니다. 이 사람들이 영국에서 보수신앙을 가지고 건너갔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어떻게 되느냐하면 보수신학을 확고하게 붙드는 방법으로써 개혁파 정통주의를 붙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찰스 하찌라는 인물이 바로 그렇게 19세기말의 인물입니다. 이 사람 찰스하찌의 조직신학을 기억하십니까? 나중에 찰스 하찌의 조직신학이 있고, 후에 그 사람의 아들인가, 손자인가 에브라함 하찌가 세권의 책으로 다시 책을 냅니다. 그 찰스 하찌의 조직신학 책이 그것이 바로 제네바 정통주의시대 16세기 신학자인 프란시스 튜레틴의 책을 정리한 것입니다. 아까 4권으로 되어있다고 보여드린 그 책을 정리한 것입니다. 그것이 영어책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교수들을 만났는데 더럽게 어렵다고 그럽니다. 우리는 그냥 영어가 운명이려니 하고 원래 어려운줄 알고 읽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영어가 어려워서 잘 못 읽는 것인지 내용을 몰라서 못 읽는 것인지 모르니까 우리는 그냥 운명이려니 그러면서 계속 꾸역꾸역 읽는데 미국 교수들은 어려워서 못 읽겠다고 그럽니다. 그 사람들의 영향이 한국으로 미치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보수적인 박현명 신학이든지 이런 신학들이 내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보게 되면 지금은 파편주의 시대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제가 글로벌 사에 대해서 숙제를 내주었거나 강의를 한 것 같은데 Globalization에 대해서 안 들어보았습니까? 그러면 그것도 한번 보십시오. 그것하고 논문하고 보십시오. 지금은 파편화된 시대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학교에서 ‘선이란 무엇인가? 악이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시험이란 무엇인가? 영혼이란 무엇인가?’ 이런 것을 가르쳐야지만 신학이 그 위에 설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 가르칩니다. 그게 20세기 철학의 문제입니다. 그것도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깁니다. 아무튼 그런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떻게 되느냐하면 사람들이 다 파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사상 같은 것들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나오니까 사상이 없으니까 예수를 잘 믿으면 복을 받는다. 마음의 평안이 온다. 마음의 상처받은 사람들은 교회에 나오면 예수님이 싸매주신다. 이런 식으로 배우는데 이게 허기가 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왜 예수를 믿어야하는가? 그러면 도대체 이 세상은 왜 창조되었고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런 것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사실은 기독교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답을 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갈증이 있을 때에 이런 신학을 공부해서 커다란 틀을 가지고 가르칠 때에 그때에 사람들은 눈이 확 열리는 신학적인 개안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아마 많은 성도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듣고 또 은혜를 많이 받은 시리즈 가운데 하나가 ‘천지창조의 목적’이라는 시리즈입니다. 그게 조나단 에드워즈의 천지창조의 목적과도 많이 닮은 것인데 그런 어떤 철학적인 기반들을 성도들에게 깨우쳐줄 때 그때에 자신이 왜 은혜가운데 살아야하는가? 하는 많은 비닝들을 터득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신학적인 임팩트가 꽝 하고 주어지면 정말 놀랍습니다. 사람이 완전히 변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어제도 우리 부목사 한사람하고 강원도에 갔는데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제대로 공부하고 신학훈련을 받아서 목회를 하면 블루오션입니다.’ 그래서 내가 마케팅교회하고 제자훈련하고 은사주의 운동은 서로 레드오션입니다. 서로 사람을 빼앗아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슷하게 하는 교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가는 것입니다. 따라할 수 없습니다. 오늘 연구해서 내일 따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평소에 계속 공부를 하면서 목회를 그 방향으로 쭉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파 정통주의에 관한 책들이 전문적으로 보려면 아까 이야기하는 코스타리포메이션, 리폼드 도그마틱스, 4권으로 된 베이커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읽으시면 되겠지만 만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번역된 것 1권을 신학생들 그것도 영어시험까지 보고 들어온 학생들에게 가르치는데 8개월을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전부다 중세 철학부터 설명을 다 해야 합니다. 유명론, 관념론 논쟁이라든지 그 다음에 중세의 사상들 전부다 하나씩 하나씩 설명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개론적으로 읽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이 없습니다. 그게 좀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런 책들을 수집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여러분들이 아마 지금 칼빈 세미나나 웨스트 세미나 쪽으로 들어가서 나오는 논문들을 특별히 먼로태제라고 그러는데 ‘컨티니우티 앤드 디스컨티니우티 비트윈 리폼메이션 앤드 리폼드 오도독시’ 이런 정도의 주제를 치면 상당히 많은 논문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것들을 읽으면서 여러분들이 감을 잡으시면 됩니다.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은 가장 최근에 80년대 이후로 지금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부분들인데 유럽 쪽은 훨씬 더 깊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화란 쪽으로 가면 연구진들도 굉장히 두텁게 형성되어 있고 그런 연결선상을 거의 모두 다 인정하는 그런 분위기입니다. 아직도 인정을 안 한 사람들은 대개 그쪽을 아예 공부 안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미몽에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몰라서 그렇지 지금은 그런 것들은 이미 학교에서 거의 받아들이고 모든 복음주의적인 신학교에서 17세기를 전공한 조직 신학자나 역사신학자들이 셔큐티 속에 들어가야지만 개신교 신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는 Consensus가 형성됩니다. 이정도로 마치겠습니다.
Q)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조금 전에 파편적인 이야기를 하셨는데 지금 총신에서도 파편적으로 가르친다는 말씀이십니까?
A) 파편적으로 가르친 다기보다도 시스템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번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평신도가 로마서 9장을 읽다가 아무래도 모르겠어서 목사님에게 물어보았더니 목회자는 이런 것을 모르고 신학자에게 물어보라고 그러는데 신학자에게 가서 물어보니까 미안하다고 나는 성서신학 전공이 아니라 역사신학전공이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성서 신학자를 찾아갔더니 그냥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구약전공이라 신약은 모른다고 그러더랍니다. 신약학박사를 찾아가라고 그래서 찾아갔더니 정말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나는 복음서전공이라서 서신서는 모른다고 그러더랍니다. 서신서전공자를 찾아갔더니 미안하지만 나는 공동서신서전공이라서 바울서신을 모른다고 그러더랍니다. 바울신학을 전공한 사람을 찾아갔더니 그 사람이야기가 자기는 신학전공이지 서신전공이 아니라고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서신전공자를 찾아갔더니 미안하다고 나는 데살로니가전서 전공이지 로마서전공이 아니어서 모른다고 그래서 로마서를 전공한 사람을 찾아갔더니 정말 미안하다고 자기는 8장을 전공한 사람이라고 그러더랍니다. 이런 식으로 다 파편으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목을 이 과목 저 과목을 배워도 성서신학 하나만 공부하고 온 사람이 성서신학만 가르치는 것입니다. 조직신학을 하고 온 사람이 조직 신학 전부가 아니라 찰스 하찌의 기독론 하나만을 연구해서 그냥 독서량이나 연구량들이 폭넓어서 그것을 전공했어도 조직신학만이라도 그 주위에 있는 것을 거의 다 알아야하는데 땅만 건너가도 잘 모르는 것이에요. 완전히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잘 모릅니다. 그러면서 과목이 다 이렇게 되니까 과목이 이것을 하나하나는 가르쳐주는데 이것을 어떻게 꿰어야하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편화된 데에다가 사회가 전체적인 체계를 갖춘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명성훈 목사님이라고 교회 상담소 소장님이셨습니다. 우리교회에 와서 새가족 교재를 보니까 그때는 더 두꺼워서 바인더로 이만큼이었습니다. 교회에 등록을 하고 새신자반에 들어오려면 46,000원어치를 사야했습니다. 교회에서 10원도 안 보태주었습니다. 46,000원이 듭니다. 이 양반이 이것을 세 번이나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진짜 삽니까?’ ‘사니까 가르칩니다.’ 조금 있다가 ‘진짜 자기 돈으로 삽니까?’ 아니 자기 돈으로 산다니까 왜 못 믿느냐고 그러니까 또 물어봅니다. ‘진짜 사람들이 삽니까?’ 진짜 삽니다. 지금은 테이프가 CD로 바뀌어서 26,000원정도면 삽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안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지만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믿는 신앙이 무엇이라는 것을 전체적으로 가르쳐줄 때 그것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는 아닙니다. 모두였다면 지금 교회가 몇 만 명이 되었겠지요. 모두는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모두는 아니었습니다. 모두는 아닌데 가슴에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부지런히 설교를 들으면서 공부하고 싶어 하고 더 알고 싶어 합니다. 최근에 우리교회 자매 하나가 퓨리턴도서관에서 칼빈의 설교집을 읽다가 회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파편화된 것을 이속에서……. 목사님들이 문제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왜 은혜를 받아야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이 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아무것도 모자라신분이 아니신데 세상은 왜 그분에게 필요했습니까?’ 이런 질문들을 할 때 그런 질문들을 교회에서 시원하게 답변을 안 해주고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핑계를 대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그런 것에 대한 갈증을 오히려 기독교에서 답을 얻지 못하고 세상의 학문에서 답을 얻는다고 그럴 때 이것은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상이 혼선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에 잘 빠지게 되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사실은 종교개혁이나 개혁파정통주의시대 때에 교부시대 때에 그것은 기독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자료를 보니까 터튤리안 시대 때에 새가족으로 오면 제일먼저 가르치는 것이 코스모스였습니다. 우주론부터 가르칩니다. 그래서 ‘이 우주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이런 것들을 철학적인 고민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오셔야 될 필연성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심이 딱 잡힌 가운데 그리스도의 복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Q) 말씀을 들으면서 쭉 올라가보니까 루터나 칼빈 이후에 최근의 먼로교수에 의하면 구체적으로 개신교의 교리가 사실 가톨릭에서 나온 회심한 가톨릭 신학자들에 의해서 세워졌고 가톨릭에서 나와서 가톨릭화해서 오늘날 정통 개혁주의 신학의 기초를 만들어냈는데 그 인물들이 어떤 인물들인지 알고 싶습니다.
A) 이름은 댈 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많습니다. 대부분 그 사람들이 논쟁에 참여해서 논쟁적인 글들을 많이 썼고요. 지금 로마가톨릭을 가장 잘 아는 개신교신학자라고 했던 보에티우스 같은 경우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출신의 수도사였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보면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가르쳐준 것과는 다르게 가르쳐준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면 마르틴 루터나 칼빈이 성경으로 돌아갔지만 그냥 성경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의 재발견을 통해서 성경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16세기의 신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교단도 아주 다양합니다. 도미니크파 수도사회, 프란시스코 수도회, 등등 특히 수도회 쪽에서 많이 나오게 됩니다. 예를 들면 루터의 제자들도 거의 대부분 수도사출신입니다. 루터 자신이 수도사출신이니까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런 정도의 사람이 아닌 평민으로 농사나 짓고 물건이나 팔다가 갑자기 신학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중세에 신학이 영양가 있게 보존된 것이 대학보다도 수도원에서 훨씬 수준 높은 신학이 보존되었습니다. 케임브리지도 마찬가지로 수도원들이 먼저 들어갔고 학교를 세웁니다. 그런 식으로 되어왔습니다.
Q) 중세와 Reformation의 연관성에 대해서 프로테스탄스 플라티우스 책에 피터 버미글리를 소개하면서 칼빈니스트라고 그러는데 그 이야기는 토마스 아퀴나스하고 칼빈하고의 연관성과 알리 맥글라스는 칼빈은 완성된 신학체계가 아니라고 그러면서 어떤 면에서 신학체계가 그래도 신학체계로 볼 수 있는 것은 중세에 아퀴나스로 보잖아요? 그렇게 볼 때에 아까 말씀하실 때도 종교개혁이 중세를 완전히 주장한 것이 아니고 필요한 부분만 우리가 보통 말할 때에는 중세의 신학체계에서 잘못된 부분들 그런 부분들을 종교개혁자들이 잘못된 부분들을 수정을 한 것이지 그래서 종교개혁이지 다른 종교를 만들려고 나온 것은 아니라고 그러셨는데 그래서 그렇게 볼 때에 아퀴나스의 신학세계를 종교개혁의 관점에서 칼빈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연관성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A) 우선 질문하신 내용 중에 조금 수정할 내용은 종교개혁자들이 중세신학의 일부를 수정했다고 하는 것은 조금 수정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정도는 아니고 개신교와 의견이 별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이 보기에는 로마 가톨릭 신학은 인간의 자유성에 대한 과다한 인정, 성서에 대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써의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 등등으로 이성주의에 의해서 깊이 오염되어 있는 신학이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아퀴나스라는 인물은 무엇이냐 하는 것인데 그러면 개혁파 정통주의자의 입장에서는 토마스 아퀴나스나 아우구스티누스, 안셀무스 등은 가톨릭의 교부라고 보지 않습니다. 보편교회의 교부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가톨릭주의자입니까? 개신교주의자입니까? 그것은 신학적으로 아나크로니즘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생겨난 사상을 가지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마치 김삿갓이 이조시대 때에 따발총을 쏘면서 대관령을 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그것이 아나크로니즘입니다. 보편교회의 교부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개신교적이었는가? 우리 개혁파 주의적이었는가?’ 라고 물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형성되어 나오는 과정이니까 그들은 인문학을 할 때는 항상 자기의 Context에 의해서 해석을 해야지 어떤 사람이 무식하게 목회와 신학의 잡지에 글을 써서 칼빈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뭐냐 하면 노예제도를 공격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것은 인문학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노예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자기도 나중에 역사를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 자기도 그 시대에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노예를 부리고 다녔지 그것은 자기 조상들보고 왜 이조시대 때에 단종 때에 태어나서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았느냐고 자기의 수십 대 할아버지께 삿대질하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 것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일을 거꾸로 보면서 역사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개신교신학을 가지고 잣대를 들이대면서 재면 개혁파는 아닙니다. 그러면 아무도 개혁파는 없습니다. 저기 꼭대기에 올라갈 때까지 말입니다. 사도 바울도 아마 그 잣대를 갖다 대면 그렇고 그렇지 않습니까? 알미니우스주의자들도 바울에게서 인용을 하고 아까 목사님도 이야기했듯이 성 자유주의자들도 바울을 인용하면서 로마서 1장을 인용하면서 성의 자유를 이야기한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석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보면 안 되는 것이고 일단 우리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하면 당대의 맥락에서 평가를 해야 하고 그리고 역사의 발전, 신학의 발전이라는 연장선상에서 각자 자기시대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고 오히려 이쪽에서 아우구스티누스를 보면 안 되고 아우구스티누스 속에서 로마가톨릭과 개신교를 이렇게 바라보아야합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보면 우리들이 보편교회의 교부들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개혁파정통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슨 이야기냐 하면 아우구스티누스나 아퀴나스를 잘못 인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오류의 뿌리들을 극단적으로 발전시켜서 자신들의 나름대로의 신학의 체계를 만드는 시도들이었다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Q) 왜 이 말씀을 드리느냐하면 처음에 슐라이어마허의 태제를 말씀하셨는데 비슷한 이야기로 새로운 운동이 나오기 전에 종교개혁자들이 중세를 건너뛰어서 어거스틴으로 돌아갔다면 중세 천년을 건너뛴 것인데 그렇게 되면 우리 개신교에서 중세를 건너뛰니까 상당히 XXXX 그것 때문에 상당히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목사님께서 이렇게 정리해주시니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고 그러면 어거스틴에서 천년을 뛸 필요 없이 아퀴나스를 보면 그 안에 엄청난 것이 있는데
A)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면 누구 하나를 중세에서 딱 잘라서 통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분적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영국 청교도들이 다 어디서 나왔습니까? 성공회에서 나왔습니다. 똑같이 그 개신교 정통주의에 속했던 그런 신학자들이 물론 순수하게 인문학을 연구하다가 회심을 해서 신학을 연구한 에라스무스 같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전부다 로마가톨릭에 소속되어 있다가 그러다가 이 복음의 빛이 들어오면서 ‘아 이것은 잘못된 신학이구나!’ 그러면서 돌아선 사람들입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돌아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인문주의자들이 기독교 인문주의를 만듭니다. 루터는 개신교를 창립하기 전에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습니까? 칼빈은 누구였습니까? 다 가톨릭의 신자였습니다. 어쨌든 맛보기이고 여러분들이 많이 연구하십시오. 마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