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04. 외부강의
신학의 길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눅 1:80)
오늘 우리 사회자가 읽어주신 본문을 가지고 ‘신학의 길’ 이라는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제가 레위기 오늘 24장 2절과 3절을 보려고 원고를 준비해 가지고 왔는데 와보니까 분위기가 레위기하고 잘 안 어울리고 누가복음하고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는 것 같고 편안하게 말씀 전하도록 하고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책을 한권씩 드릴 테니까 제가 간 다음에 한권씩 받으셔서 그래서 ‘여러분들이 읽으시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 뒤에 출입문을 닫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실까요?
저는 옛날부터 성경을 읽어도 그렇게 꼭 본 받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교만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고, 좋은 사람이 없으니까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는데 우리 집사람이 자기는 다윗 팬이라고 합니다. 저도 아내를 따라서 다윗을 좋아해봤는데 한참 다윗을 좋아하다보니까 요나단이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또 바울을 좋아했는데 한참 좋아하다보니까 바나바가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조 없이 왔다 갔다 하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한 23년 전에 성경에서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세레요한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사람에 깊이 심취해서 누가복음 1장 80절 한 절로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라는 약 250-3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쓰게 되었고 이제껏 많이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온 사람』 이라는 책을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판했습니다.
두 번째 것이 먼저 나왔고 첫 번째 책이 나중에 쓰여 지게 됐는데, 세례요한을 보면서 제가 깊이 감명을 받았던 것은 ‘어쩜 이렇게 짧은 생애가 하나님께만 완전히 바쳐진 그런 사람이었을 수가 있을까?’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생애는 사실 무명으로 계속 있다가 예수님이 공생애 등장하실 때 쯤 되어서 조금 먼저 등장을 해서 예수님이 오시는 앞길을 예비하고 죽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설교 몇 편 남기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요한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오시는 앞길을 예비한 사람이었고, 구약의 계시의 종결인 말라기 성경이 이 사람에 대한 예언으로 끝나는 것을 보더라도 얼마나 이 사람이 중요한 인물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한 몇 년 동안을 이 사람에 깊이 심취해서 사실 신학교 졸업하고 나서 몇 년 동안을 순교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제 관심사가 세례요한에서 다른 곳으로 많이 옮겨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의 정신이 나의 신학 함에 있어서 준 영향은 지대한 것이었다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이 1장 80절을 한 3박4일쯤 시간을 가지고 해야지 모두 할 수 있겠지만 제가 오늘은 모든 내용들 중에서 엑기스로 인격적인 준비와 그리고 지성적인 준비 두 가지만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세례요한이 광야에 있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아마 어린 시절에 광야로 보내져서 거기에서 누군가에 손에 의해 의탁되며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때가 되자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고고히 외치게 되었고, 그 음성을 들은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에 주님오신 길이 내 놓아지고, 이것은 회개라고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준 정말 오래간만에 이스라엘 속에 나타난 선지자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는데 목회사역으로 들어섰고, 아마 오늘 신학의 도상에 있는 여러분들의 꿈은 어떻게 하든지 ‘내가 좋은 목회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다면 참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들은 같은 시대에 사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목회자들에게서 배우고 싶지, 여러분들이 봐도 답답하기 짝이 없는 목회를 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 사람들의 마음속에 순수하든 순수하지 않든지 간에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이런 마음을 우리들이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업적을 이루고 어떤 결과가 나타날 때 그 결과의 영광에 주목한 나머지 그 영광스러운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하나님이 한사람을 어떻게 혹독하리만치 오랜 세월을 깎고 다듬으시며 훈련시키시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귀담아 듣고 싶지 않은 분위기입니다.
언젠가 저의 책을 읽었던 어느 독자가 저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제가 책을 쓰고 있지만 사실 지금은 그렇게 책 쓰는 것보다는 제가 연구하는 일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연구하는 일에 보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또 사명감을 가지고 일 년에 여섯 권까지 책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제법 지금도 많지만 독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편지도 보내고 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기억이 나는데 어느 독자기 책을 읽고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제가 목사님의 책을 읽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국화 옆에서’ 라고 하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서양 사람들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시이지만, 우리는 동양 사람들이고 한국 사람의 정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봄부터 우는 소쩍새가 가을에 함초롬히 핀 국화와 무슨 관계를 갖는지, 그리고 봄부터 울려 퍼진 여름날까지 계속된 그 천둥소리와 우레 소리가 국화의 만개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우리는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국화꽃이 활짝 피었으니 사람들이 그 국화꽃을 보면서 감탄을 하고 “누가 키웠대?, 이렇게 예쁘게 키우는 매뉴얼이 뭐래?, 그리고 이 종자는 뭐래?, 어떻게 하면 이 씨를 좀 받아갈 수 있대?” 라고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만 그렇게 모든 사람들 눈에 아름답게 핀 국화꽃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놀라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늦겨울부터 국화꽃에 싹이 나오기 시작했고 국화 줄기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소쩍새는 올빼밋과에 속하는 새인데, 밤에는 나와서 울고 낮에는 숲속에서 잠을 자는 그런 야행성 조류입니다. 밤이 되면 소쩍새가 나와서 그렇게 간절히 울었고, 울고 울면서 세월이 지났고 뜨거운 여름을 지나서 그리고 가을, 드디어 무서리가 내릴 정도로 깊은 가을이 되었을 때에 이 소쩍새는 어느 날 울다 울다가 국화 옆에서 피를 토하고 죽었고, 그렇게 피를 토하고 죽은 그날 국화꽃이 활짝 만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국화꽃의 사연은 모든 사람들에게 영광이지만 그것을 있게 만들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상기하는 것은 우리에게 별로 기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열매는 좋아하지만 열매에 이르기까지 지불해야하는 피나는 고생과 몸부림과 고독을 좋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몇 편의 설교를 하고 목이 떨어져 어린여아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불우한 최후를 마쳤지만, 그는 그 몇 편의 설교를 남기기위해서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 동안을 몸부림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자신이 준비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비록 우리가 10년 20년 동안 신학과 목회를 준비해서 한순간 몇 편의 설교를 남기고, 잠시 사역하다가 우리가 이 세상을 하직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그런 섬김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무한히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준비가 너무 가혹하다고는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사역을 이제 쭉 해오고 교회를 개척한지 18년이 되었습니다. 7명의 성도들과 함께 지하실에서 교회를 개척했는데 쉬지 않고 18년 동안을 설교했고 제가 4000편이 좀 넘게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설교사역을 해오면서 제가 느낀 것은 뭐냐 하면 이 목회사역,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사역은 우리에게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동안을 무한한 준비를 필요로 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만큼 4000편이 넘게 설교를 하고, 60권쯤 되는 책을 쓰고 수없는 교인들은 만나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20년 가까운 세월을 담임목회를 해왔으면, 지금쯤은 목회가 나의 본업 같고 설교가 나의 적성에 맞는 것처럼 느껴져야 될 텐데 전혀 그렇지 않고, 아직도 목회는 내가 원하지 않는 가슴앓이이고 설교는 영원히 이국의 언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부족을 한없이 느끼고, 우리의 후배들을 이렇게 바라볼 때마다 정말 저들이 앞으로 자신들 앞에 펼쳐질 이 목회사역과 설교사역을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가혹한 준비를 요구하시는지를 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힘을 다해서 알리지만 후배인 여러분들은 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안타까운 이 호소를 다만 늙어가는 한 설교자의 기우 혹은 노파심이라고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준비를 이 목회사역은 우리에게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설교자 혹은 목회자로서의 이 준비를 저는 기본적으로 크게 육체적인 준비, 인격적인 준비, 지성적인 준비, 정서적인 준비, 그리고 영적인 준비로 나눕니다. 그것은 목회자로 설교자로 살기위한 기본적인 준비이고, 그 이외에도 목회사역을 훌륭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이것은 매우 전문적인 기술에 속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훈련과 탐구 그리고 ‘온 더 잡 트레이닝을 요구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만약에 목회를 잘하고 싶으면 목회를 잘하고 계신 목사님 밑으로 가서 사역자로 안 써주면 마당이라도 쓰십시오. 그것이 목회의 사역을 배우는 가장 훌륭한 비결입니다.
나는 수많은 신학생들을 만났고 지금도 만나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항상 그 사람에게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의 스승이 누구입니까? 만약에 그가 더듬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나는 그를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없는 목회자는 유통기간이 표시되어 있지 않는 슈퍼에서 파는 식품과 같습니다.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그에게 존경하고 흠모할 만한 스승이 없다면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워낙 탁월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자기의 스승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새 지평을 열어가는 인물이든지 아니면 워낙 개념이 없기 때문에 스승의 대한 개념조차도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산 사람 중에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으면 죽은 사람 중에서 찾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고 저의 스승의 대부분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준비들을 잘 갖춤으로서 우리들이 기껏해야 20년 정도 내지 길어야 30년 정도 불꽃처럼 사역하다가 우리의 생애를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이 많은 준비들 가운데 두 가지 준비만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림으로서 이 수련회의 목적에 이바지 하려고 합니다.
첫째는 인격적인 준비이고 두 번째는 지성적인 준비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목회를 여기서 배워서 그다음에 여기다 쓰려고 하고, 지식도 여기서 습득을 해서 그 다음에 여기로 사용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역은 생명을 가진 사역이 아닌 것입니다. 목회에 필요한 모든 기본적인 준비는 목회자가 되려는 사람은 심령 깊은 곳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몇 종류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진실한 예배자였던 적이 없는 예배인도자, 진실한 찬양자가 아니었던 찬양인도자, 아주 성실한 설교 청취자였던 적이 없는 설교자, 당회의 치리에 복종해 본적이 없는 당회장, 그리고 열렬한 기도자였던 적이 없는 뜨거운 기도 인도자, 이런 사람들은 내가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진실한 신자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으면서 훌륭한 목회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목회사역에 대의는 한사람의 신앙 속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메리디트 크롸인’ 이라고 하는 학자는 자기의 ‘킹덤 프로로그’ 라는 책속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참된 본분을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향한 경배자입니다. 이것은 예배와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성별함으로서 성취됩니다. 두 번째 인간창조의 목적은 성소지킴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거룩하게 하고 그리고 성전인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함으로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이 세상을 섬기는 이입니다. 이 소명은 바로 노동명령과 그리고 전도명령을 통해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고, 창조한 사람들이 죄 때문에 본래의 목적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왜 굳이 목회를 해야 됩니까? 아직도 이 세상에 교회가 많은데 이제 교회를 해도 안 됩니다. 정말 자신 있게 얘기 할 수 있습니다. 안됩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들이 이 신학을 마치고 다시 또 그렇게 많은 교회중의 하나의 교회를 보태고 교회를 개척해봐야 되지도 않는다고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20명이 개척하면 생존해 남는 교회가 두 교회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그렇게 척박한 현실 속에서 우리들이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꼭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나는 여러분들에게 묻는 것입니다. 얼마나 교회가 안 되는지는 여러분들이 다음 주에라도 누구하고 의논할 필요 없이 거기 횃불트리니티있는 신학교에서 있는 성경찬송가를 들고 그다음에 전도지 몇 장 들고 빌라와 아파트를 세 시간만 누벼보시면 이게 교회가 개척이 안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올 것입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복음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복음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해서. 그렇게 변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복음사역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무엇 때문인지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한 사람을 예수 믿기 위해서 구원한다고요? 물론 지옥 갈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훌륭한 목회의 이유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라면 뭐러 젊은이들은 전도할 필요가 있습니까? 죽기 직전까지 살게 내버려뒀다가 예수 믿게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창조하신 목적을 따라 살게 하기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지으신 것이고 그래서 이 세계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서 마지막 성취하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잘 믿는 사람이 되라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가르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는 누구도 하나님이 사람을 본래의 창조하신 목적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지 이 세상에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한 다음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담아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목양하고 돌보고 그리고 책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길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자신이 먼저 구원받은 한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정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끊임없이 성화되고 거룩해져가는 가운데 우리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가는, 이미 되었으나 그러나 또한 그 새로운 피조물이 보다 흠 없고 완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형상을 우리들이 닮아가는 그 행복과 기쁨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성화의 삶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고 또 우리를 목회자로 부르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돌아온 죄인들을 끊임없이 성령의 거룩한 작용을 통하여서 신실한 성도 그리고 정결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게 해서 이 세상 어디를 가든지 그 사람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사람이 된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우리가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자신이 먼저 그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 자신이 그것을 체득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게 구도의 길이고 애지자로서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중국에 의학사에 신농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이 사람은 중국의학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임상을 통해서 중국의 의학의 체계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에 올라가서 자기 무릎팍을 돌멩이로 쳐서 피가 흐르게 한 다음 이 약초 저 약초를 발라보면서 어느 약초가 도움이 되는 지를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임상을 자기 몸을 통해서 거치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거기에서 이론을 세우고 그것으로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를 잘 믿으십시오.” 그렇게만 말하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고 사도바울이 말했던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 라고 말할 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이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속에 나타나는 것이 인격입니다. 인격. 그래서 나는 먼저 이 보편적인 특별한 가치는 항상 보편적인 가치위에 세워질 때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목회자로 부름을 받고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의 일생을 드리기로 결심을 했다고 하면 우리가 제일 먼저 갖추어야 될 것은 목회자가 되기 이전에 우리는 젠틀한 신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주 정숙한 숙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거칠고 이 세상에 속하고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는 수많은 사람과도 접촉합니다. 이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때에 교양 있고 잘 준비된 예의바른 사람들이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특별한 성령의 역사가 없이도 우리가 일반적인 교육을 받고 교양을 갖춤으로서 충분히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의 인격적인 특성은 역사를 가르고 지도자의 인격적인 특성은 교회를 결정합니다. 사람이 야비하고 그리고 예절 바르지 못하면 교회도 꼭 그렇습니다. 한사람이 점잖고 열정적이면 교회도 그렇고 교인도 그렇습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잘 들어오지 않고 목회자의 삶은 사람들에게 잘 들어옵니다. 진리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그것은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화) 사실 저희 집안에 제일 먼저 복음이 들어온 것은 제가 거의 갓난아기였던 시절에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집안이 예수를 믿게 된 것은 제가 30대가 넘어서야 예수를 모두 믿게 되었습니다. 30대가 뭡니까? 40대가 거의 되었을 때에야 모든 가족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결혼할 때는 저와 우리 집사람, 제 동생이외에는 아무도 예수 믿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가운데 하나가 있었습니다. 저희의 가족들 중 일부가 어느 교회에 출석했고 그리고 그 교회에서 나름대로 조금씩 은혜를 받았고 마음이 많이 열렸고 기독교에 대한 인상이 좋아져서 온가족이 이제 예수를 믿을 준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그 때에 그 교회 목사님이 심방을 오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심방을 오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온가족이 처음 맞이하는 목회자의 심방이기 때문에 이제 이분을 잘 대접해야 된다고 며칠 전서부터 장을 보고, 없는 살림에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은혜롭게 설교를 하시고 온가족들에게 이제는 모두 “교회에 나오십시오.” 라고 한 마디만 따뜻하게 권면했으면 온 식구가 교회에 나갈 그런 정도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오셔서 이제 예배를 드렸고 제법 은혜로운 예배였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식탁이 차려졌습니다. 우리는 정성껏 차려진 식탁을 목사님께 대접했고, 모두들 둘러앉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식탁에서 점심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집안에 구속사를 가르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음식을 모두 드시고 그리고 피곤하시겠죠? 심방도 하고 그러더니 등을 이렇게 기대고 다리를 쭉 뻣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직까지도 남은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물을 마시고 양치질을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젓가락을 드시고는 그다음에 열심히 윗 이빨 아랫 이빨을 쑤시기 시작했습니다. 두 다리는 쫙 벌리시고 말입니다. 저희 집안에서는 그런 예절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존경하는 목사님의 그런 모습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그것 때문에 우리가족 복음화가 20년 지연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개념 없는 사람들이 목회자들이 많습니다. 어느 목회자와 함께 호텔에 갔는데 갑자기 커피를 마시다가 휴지에다가 프림을 쏟기 시작합니다. 왜 그러십니까? 이걸로 구두를 한번 닦으면 광이 잘난답니다. 호텔 카펫 위에서. 이게 한국의 목사의 수준입니다. 여러분들은 제발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 어디에 가서도 정말 존경스럽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그러한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신학교 다닐 때에, 교수생활을 할 때에 겪었던 일입니다. 교수에게는 학생얼굴을 기억을 못해도 이름은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출석부를 하도 봤기 때문에 기억에 남고 한번 본 리포트는 이상하게 세월이 많이 지나도 기억에 남습니다. 더욱이 제가 34살에 교수를 시작했고 그 열심이 하늘을 찔렀으니 이제 학생들이 낸 리포트를 쭉 펼쳐놓고 정말 그 채점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이 학생들의 리포트가 믿을 수 없는 리포트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 다음서부터는 조교와 함께 바닥에다가 수백 장의 리포트를 펼쳐놓고 사본비평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중에 어떤 리포트는 자기가 쓴 것 같은데 다 따져보니까 앞부분은 저 사람 것, 가운데 부분은 저 사람 것, 마지막 부분은 이사람 것을 편집사학파입니다. 편집을 해서 만들었습니다. 이것을 밤새도록 조사를 해서 광고를 붙였습니다. ‘1번 리포트는 4번 리포트와 같고, 59번 리포트는 71번 리포트와 같고, A반에 2번의 리포트는 B반의 3번의 리포트와 유사하고, 7번 리포트는 C반에 1번의 상단부는 A반에 3번과 같고, 하단부는 C반에 2번과 같은데 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면 모두 과락처리 하겠다.’ 그러고 광고를 붙였습니다. 더 악질적인 리포트도 봤는데 이상하게 리포트내용을 어디에서 읽은 것입니다. 그래서 다 찾아보니까 하나의 리포트를 써서 한사람은 명조체, 한사람은 샘물체, 한사람은 필기체, 이것이 신학교에 만연한 부정직 아닙니까?
여러분들은 시험을 아나시스템으로 실시하고 있는지요? 나는 신학교에서 이런 부정직을 참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항상 저의 마음에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언젠가는 어느 학생을 강력하게 규탄했습니다. 졸업고사에서 커닝을 했습니다. 그래서 “너는 졸업시킬 수 없다” 이제 그러고 그 학생을 빵점처리를 했습니다. 삼일 동안을 매일 아침마다 교수실에 와서 떠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그래서 “아무리 사정해도 내 마음은 이미 정해졌다. 너희는 졸업하지 말고 1년 동안 반성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 하고 새 길을 찾아라.” 그랬습니다. 3일 동안을 조르다 조르다 지친 나머지 어느 순간에 그중 한 학생이 눈을 똑바로 뜨고 나한테 물었습니다. “교수님 마지막으로 제가 이 방을 떠나기 전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그래, 뭐를 그렇게 물어보고 싶냐?” “교수님도 신학교를 다녔고 공부를 했을 턴데”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로 커닝하신 적이 없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없다. 가슴에 손이 아니라 발을 얹어도 없다.” 여러분도 어느 자리에서 어떤 질문을 받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화) 1975년도에 돌아가신 걸로 기억을 하는데 고신에 총회장을 지냈고, 고신대학에 총장을 지내시던 한상동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신학교 다닐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하 뭐 그분이 공부가 깊지 않았던 분이였는지 아마 학교를 예과를 나왔다고 그럽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신학교 청강생 반입니다. 그리고 신학교 다니면서 교회를 개척을 했으니 그 당시에 가난한 전도사가 교회를 개척하고 피나게 목회를 하면서 또 낮에는 학교 와서 공부를 해야 했으니 그게 얼마나 힘든 것이었겠습니까? 조직신학이든지 성서신학은 하다가 시험 모르면 설교를 쓰고 가도 교수님들이 설마 그렇게 그 빵점이야 안주었는데 영어시험은 이건 성령 충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아이 엠 어 보이가 입력이 안 되었는데 유 아러 걸이 나올 리가 있나? 그래서 한 전도사가 시험지를 놓고 주님을 계속 부르며 주여 주여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옆에 친구가 삐뜨름하게 앉아서 답안지를 이쪽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순진한 한전도사는 ‘이 친구가 게를 삶아먹고 왔나? 왜 이렇게 삐딱하게 앉아서 시험을 보나?’ 그랬더니 계속 보니까 자기 쪽으로 답안지를 계속 미는 것입니다. 그때에 한 전도사가 그 자리에서 시험지를 덮고 일어나서 산에 올라가서 회개를 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내가 평소에 어떤 인격을 가지고 살았으면 나를 가장 잘 아는 내 학우가 시험시간에 보여주면 그것을 받아쓸 사람이라고 그렇게 나를 인정했으니 이런 인격을 가지고 내가 어떻게 목회를 하겠습니까? 그러고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했는데 영어를 잘해서 답안지를 보여준 학생의 이름은 아무도 기억을 못하는데 그날 올라가서 회개한 영어시험 빵점 맞은 그 학생은 후일 그 학교에 학장이 되었습니다.
이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쓰시는 원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정직하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제도를 도입하고 계실 거라고 보는데 저는 최근에 지난해에 미국에 있는 유수한 신학교에서 이미 박사학위를 수여했는데 일 년 만에 단 한 장의 한절의 문장이 다른 문헌과 완벽하게 똑같다는 이유 때문에 박사학위가 취소되는 것을 저는 봤습니다. 논문을 쓰면 컴퓨터에 프로그램에다 놓고 돌리면 이것이 어디에서 베낀 것인지 한꺼번에 프로그램에 응답이 나온다고 하니 좋은 세상입니다. 그 논문도 그것을 통과했는데 나중에 박사학위가 취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직이 그렇게 대단한 덕목이 아닙니다만 성경으로 볼 때에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진리를 증거 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러분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직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특히 신학교에 와서 나이 많아서 신학 하는 것 때문에 교수들에게 동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비겁한 신학생활입니다. 그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더 많이 분투하고 노력을 해서 어떠한 어드밴티지도 포기하고 동등하게 경쟁을 해서 영광스럽게 설교할 자격을 얻는 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여기저기에서 터지고 있는 교회의 문제점들을 한번 여러분들도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는 항상 어느 교회나 예외 없이 돈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이 돈도 결국은 알고 보면 부정직이 깊이 개입이 되면서 그러면서 거기에서 이렇게 덕스럽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그렇게 굳이 살아야 될 이유도 없는데 그렇게 피나도록 가난하게 살아야 될 이유는 저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모든 일들을 해나감에 있어서 우리는 바로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고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삶을 전파하기 위해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우리들이 누린다고 하는 은혜의 측면도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절제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성숙한 측면도 우리가 갖추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존 칼빈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리이고 그리고 기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누림에 있어서는 항상 절제가 뒤따라야 한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칼빈의 생애에서 잊혀 지지 않는 놀라운 일화가 있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칼빈은 일차 제네바개혁에서 교인들의 반대를 받아서 결국은 제네바를 떠났고 스트라스부르로 가서 거기에서 마틴 부쳐에게 목회를 배우고 그 목회를 거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도 프랑스난민들을 돌보고 꼴라주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두 번째 제네바교회의 청빙을 받았고 이제 카제탄을 비롯한 샤돌레트로부터 온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도저히 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제네바는 이제 이 칼빈선생을 다시 청빙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때에 칼빈 선생이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마틴 부쳐에 책망을 받으면서 그는 결국 이제 제네바로 돌아가게 되었고 돌아간다고 하면서 쓴 한 편지에 인장을 찍었는데 그 인장이 바로 ‘룩스퍼스트떼네브라스’ 라는 유명한 문장입니다. 그것은 바로 ‘어두움에 빛’이라고 하는 그 문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네바로 돌아갔고 돌아간 후에 아주 유능하게 샤돌로트의 질문에 답하였고 그리고 우리가 아는 두 번째의 제네바 종교개혁의 시동을 걸었습니다.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그의 사역이 너무 혁혁했기 때문에 카돌릭은 위기를 느꼈고 그리고 한번 도대체 이 칼빈이 어떤 사람인지를 한번 알아보자 그리고 캐톨릭측에서 파송한 심부름꾼들, 성직자들이 그 제네바에 있는 칼빈의 집을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문을 두드리면서 “계십니까?” 그랬더니 웬 시종같이 생긴 사람 하나가 배짝 마르고 키도 작은 사람이 걸어 나오더랍니다. “얘야, 우리가 칼빈선생을 만나러 왔다. 칼빈선생에게로 우리를 안내하거라.” 그랬더니 이 종처럼 생긴 사람이 “제가 칼빈인데요.” 그 때에 이 사람들은 칼빈과 만나지도 않고 돌아가면서 생각하였답니다. ‘아 저 겸손하고 검소한 저 모습, 저기에서 제네바개혁 도덕성이 묻어나오는 구나’ 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목회자이기 때문에 지질이 가난하게 살고 그리고 마치 금욕이 우리의 덕목인 것처럼 살라는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서도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 많은 곳에서 우리에게 절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점에 있어서 자신을 잘 준비하고, 지나친 물욕에 흐르지 않는 사람들이 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교회가 무슨 돈이 있는데 담임목사가 돈을 주물렀는데 몇 십억이 사라졌고 이런 이야기들은 믿고 싶지가 않는 끔찍한 이야기이고, 지금도 그 돈이 어느 담임목사에 의해서 착복되었다고 믿고 싶지 않지만 이런 모든 형식들은 지나치게 이 물욕에서 떠나지 못하는 오늘날의 목회자들의 어두운 단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명품도 좋아하고 호사스러운 환경에 거하기를 좋아하고 이러는 것은 목회자로서 적절한 자질을 갖춘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이 세상에 목회자처럼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언젠가 이미 돌아가신 온누리 교회를 목회하던 목사님이 하용조 목사님이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님, 이 세상에 가장 나쁜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목회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책읽기를 말씀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랬더니 가장 책값 잘 안내고 어떻게 하든지 할인을 받으려고 하고 무슨 이유만 있으면 공짜로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목회자입니다. 우리교회도 그렇게 해서 목회자들에게 우리교회 서점도 꽤 많은 돈을 떼어 먹혔습니다. 우리교회 서점이 꽤 장사를 잘합니다. 한 일 년이면 4억 정도씩 구내서점에서 책을 팝니다. 지금이야 외상거래가 없으니까 그렇지만 옛날에는 외상거래하면서 그러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정말 목회자에게 있어서 버려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에 부교역자들에 하는 이야기가 뭐냐? “구원 이외에는 공짜를 좋아하지 말라” 실제로 저는 제자신이 그런 삶을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 언제의 일이었습니다. 수업을 들어가려고 하는데 어느 책장사가 와서 사전을 보여 주었습니다.제가 보기에 좋은 책이었습니다. “목사님, 수업 끝나자마자 제가 가서 3분만 학생들에게 가서 이 책을 선전해도 좋겠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나는 강의를 끝내고 왔고 그리고 그 분이 올라와서 책을 선전하고 꽤 팔았습니다. 그리고는 내 방을 찾아왔습니다. 그러고는 그 책 커다란 사전한질을 놓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싫습니다.” 이분이 단순한 사양 인줄 알고 “목사님 때문에 이렇게 많은 책을 팔았으니” “나 때문에 판 것이 아니라 이 책이 좋아서 팔린 거니까 나한테 부담 느끼지 말고 가져가십시오.” 이분도 끈질겼습니다. 하여튼 무조건 놓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됩니다. 만약에 당신이 이것을 놓고 가면 나는 복도에다가 내놓고 문을 잠그겠습니다.
(예화) 어느 날 여러분들이 이런 전화를 받으면 느낌이 어떨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따르르릉 전화가 왔습니다. “거기 김 아무개 목사님 교회 맞습니까?” 네, 여러분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제가 김 아무개 목사입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낭랑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입니다. 그래서 “누구십니까?” “예, 목사님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서울에 있는 무슨 교회에 다니고 있는 아무교회의 여 집사입니다.” 그럽니다. “아 그래요? 그런데 왜 나한테 전화했습니까?” “목사님, 월요일 아침마다 극동방송국에 설교 내보내고 계시죠?” “예,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 설교가 제 인생을 건졌습니다.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요? 어쩌면 그렇게 주옥같은 말씀으로 저의 마음을 어루만졌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기분이 짜증이 나겠습니까? 좋겠습니까? 네? 그리고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저는 사실은 여행사를 하고 있는 집사입니다.” 80년대의 일입니다. 그 때만 해도 외국여행가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이 많은 복을 주셔서 우리 회사가 커졌습니다.” “그런데요?”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네가 이렇게 큰 복을 받았으니 이제 주의 종들을 섬기거라.” 그러셨습니다. “그래서요?” “40명 목사님을 모아서 존경하는 분들을 성지순례를 시켜드리기로 했는데 목사님이 1번으로 제 마음에 추천이 됐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좋겠습니까? 은혜를 받았다는데, 훌륭 하시다는데, 그렇게 해서 결국은 때가 되어서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었고 최고급 최고급 최고급 그런 여행을 태어나서 해 본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종일관 이 사장이 얼마나 바쁠 턴데 그 13박 14일 일정을 다 따라다니면서 커피타주고 다 챙겨주고 최고급 호텔에서. 그래서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나빴겠습니까? 그리고 내일은 이제 서울로 돌아가는 날인데 저는 그래왔습니다. 목사님들은 모두 상황실에 잠깐 회의실에 모이시라고. 모였습니다. 그리고 갔는데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여기에 당시 한국교회하고 열렬하게 투쟁하던 모 이단의 깃발이 딱 걸려있는 것입니다. 이제껏 목사님들은 이 교주님이 대주는 뒷돈으로 여행을 하셨습니다. 충분히 사진도 찍혔고 녹음도 되었습니다. 이제 둘 중에 하나를 하십시오. 가서 교계에 여러분들의 이 모든 것들이 알려져서 면직을 당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우리 이단에 협조를 하시겠습니까? 협조를 하시면 비밀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게 바로 공짜의 마지막 결과였습니다.
저는 18년 정도 목회하면서 명분이 없는 선물이나 이유가 없는 식사를 대접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교인들 중에는 감히 나한테 와서 “목사님 밥 먹으러 가십시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왜 너와 함께 밥을 먹으러가야 되느냐? 그 이유를 설명해보라 응? 그리고 그렇게 밥을 먹어야 될 이유면 교구교역자를 통해서 나한테 부탁이 들어올 것이지 도대체 무엇이냐?” 그런데도 가게 되면 내가 밥값을 냅니다. 하지 말아야 됩니다. 절대 하지 말아야 됩니다.
봉투 가지고 오는 것 할 수 있으면 하지 마십시오. 어떤 때는 봉투정도가 아니라 거액의 돈을 가지고 오거나 아니면 말도 안 되는 분에 넘치는 선물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혹시 좋은 사람이라면 그 좋은 마음을 잘못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완전히 본받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저는 그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생각합니다. 그분은 워낙 너무 사람들이 존경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도 자기를 위대한 사람인 것처럼 존경하니까 ‘나는 정말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라고 책이 고백을 했습니다. 46세 때에 그런데 그 책을 읽고 사람들이 더 존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막 엄청나게 호사스러운 주교의 모자, 신발 이런 것들을 가지고 옵니다. 그러면 항상 모두 모아둡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꺼내어서 매각합니다. 그래서 그 돈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나누어 줍니다. 위대한 인물을 다르죠? 우리는 그런 점에 있어서 정말 황금을 보기를 돌처럼 하는 초연한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제가 아는 몇몇 교회들이 지난 한 2, 3년 사이에 큰 풍랑을 만나고 교회의 돈 문제 때문에 교회가 쪼개지고 소송을 하고 예배당에서 멱살을 잡고 끌어내고 코피가 나고 그 이 세상에 장바닥에서도 있을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는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의지를 가지고 근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누구도 이런 점에 있어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우리들이 분에 넘치는 삶을 살지 않기로 항상 다짐하고, 비정상적인 금욕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이러한 걷잡을 수없이 불어나는 이 물질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절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는가 하는 것은 목회자에게 많이 달려있습니다. 왜냐하면 못나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하시고 잘나도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깨끗하게 목회를 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에 돈 꾸고 갚지 않고 셈이 흐리고 이런 사람들은 목회할 때 똑 같이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훈련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부담을 갖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화) 언젠가 어느 신학생이 개척교회를 하는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만날 일이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이냐?” 그랬더니 등록금하게 30만원만 보태달라고 합니다. 30만원이 굉장히 큰돈이었습니다. 거의 한 18년 전의 일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똑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 그건 좋은데 내가 왜 너를 도와줘야 되냐?” 그랬더니 이 친구가 하는 얘기가 그것입니다. “목사님, 저는 언제나 신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항상 하나님이 등록할 때마다 까마귀를 보내주셔서 그래서 기적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교 3년을 다녔습니다.” 그래서 내가 얘기 했습니다. 나는 그 학생을 이렇게 볼 때에 아는 학생입니다. 치열하게 공부하느라고 자기시간을 모두 쏟기 때문에 노동할 시간이 없다면 충분히 동의가 됩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게으릅니다. 방학 내내 치열한 기도, 열렬한 탐구, 그리고 불같은 복음전도가 아니라 텔레비전보고 누워서 놀고 그러다가 등록금내기 일주일 전에 기도원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래서 30만원을 도와주면서 얘기 했습니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삼고 다음부터는 기적을 이용해서 신학교를 다니지 말거라. 많은 겨울 방학에 날 동안 열심히 아르바이트하고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그 자세를 통해서 하나님은 너를 목회자로서 합당한 인격으로서 빚어 가실 것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걸어 가야하는 말하자면 신앙의 길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배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전도사 할 때에 어느 교회 하나는 목사님 안경테 하나 때문에 교회가 박살이 난적이 있습니다. 왜? 목사님이 심방만 가면 안경테 벗으면서 항상 “아이, 안경이 이렇게 부러졌는데 아이고, 이거 고쳐야 되는데” 항상 돈 많은 그 집에 갈 때 마다 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주인이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아이고, 목사님. 그러면 제가 목사님 안경을 해드리죠.” 그리고 목사님을 모시고 청량리를 나왔습니다. 그 때에 저의 한 달 사례비가 7만원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이것저것 써보시더니 “이게 좋겠네.” 탁 집었는데 25만 원짜리 안경테였습니다. 그때에 전도사 사례비가 7만원이었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이게 시험에 들어가지고 교회가 발칵 뒤집힌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는 그런 점에 있어서 정말 반듯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티끌만한 것도 누군가의, 그러니까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이 사람으로부터 덕을 입을까를 생각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을 이 사람에게 흘려보내서 나를 못 만났더라면 이 사람이 충분하지 않았을 어떤 것들을 도와주어서 이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들을 누리게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자기 자신이 이용당하고 빼앗기고 섬기고 도와주고 하는 그런 삶이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배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삶입니다.
(예화) 어느 교회에서 발칵 뒤집혔습니다. 큰 교회도 아니고 100여명 모이는 교회인데 교회 나오는 자매가 아이를 가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매도 참 이상한 자매입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져서 배가 이렇게 계속 나오는데 교회에 계속 주일마다 출석해서 앞자리에 앉아서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큰 교회라면 그래도 묻혔을 수 있을 턴데 이게 조그만 교회니까 교회에 온갖 이야기가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미친 짓이냐? 그래서 급기야는 이제 교회의 제직회에서 자매를 불러다가 “야, 너는 도대체 어디서 온 자매이냐? 너 그렇게 배가 불렀는데 창피하지도 않냐? 우리가 지금 너에게 공식적으로 묻는데 도대체 그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그런데 이 자매의 대답이 충격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일찍이 상처를 하시고 교회사택에 혼자 사셔서 하나님과 목사님의 아이입니다.” 이 자매는 또 공교롭게 봉사심도 뛰어나서 목사님 댁에, 사택에 자주 드나들면서 빨래도 해드리고 김치도 해놓고 이런 봉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이거는 물어볼 필요가 없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확고하게 믿어진 것입니다. 어쩐지 사택을 뻔질나게 드나든다 하더니 저 목회자의 탈을 쓴 저 악마, 그리고는 목사님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목사님의 이야기는 듣지도 않고 목사님에게 공격을 퍼 부었고, 결국은 오랫동안 교회를 봉직했지만 퇴직금 한 푼 주지 않고 목사님을 쫓아냈고 이 자매가 난 아이까지 품에 안겨서 교회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리고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실화입니다.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자매도 참 연구대상이지 5년 후까지 그 교회를 꾸준히 출석했습니다. 그러다가 5년이 되던 해에 교회에서 새로운 목사님이 부흥강사를 초청해서 부흥집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자매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집회하던 어느 날 충격적인 이야기를 울면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게 목사님 애가 아니라 목사님하고 맞서서 목사님을 쫓아내려고 그렇게 온갖 공작을 했던 그 어느 유부남 집사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그걸 뒤집어 씌워서 목사님을 쫓아낸 것입니다. 이제 교회가 발칵 뒤집힌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직회는 도대체 뭘 한 거냐? 당회는 없었던 모양입니다. 당회가 있었나? 나는 그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교회의 중직자들이 모여서 이걸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서 이제 이 목사님을 산지사방으로 수소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북에 탄광에 광부로 가있는 것입니다. 5년 동안을 거기에서 광부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며 거기서 탄광에서 날품을 팔아서 이 아이를 5년 동안 양육을 한 것입니다.
우리 같았으면 거기서 5년 했을까요? 전도사님 한번 해보실래요? 사북에 가서. 아마 요즘처럼 목사들이 고소하기 좋아하는 시대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당장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유전자 검사하자고 난리를 쳤겠지요?
(찬양)
우리 죄와 강퍅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 허락 하시네
거기에 가서 제직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를 했고, 또 놀랍게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새로 오신 목사님이 더 좋은 교회 청빙 받아 가시고 그 교회가 비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을 다시 모셔오고 그 목사님은 거기서 돌아가실 때까지 거의 성자와 같은 대접을 받으시면서 목회를 했다고 합니다.
정말 오늘 날은 이런 이야기들을 전설 속에서나 들을 수 있는 대화들이었습니다. 성격이 과격하고, 참지 못하고, 분노하고, 마치 교회를 경영하는 것을 자기회사 경영하는 것처럼 하고 교역자들이나 일하는 일꾼들을 마치 자기 고양이처럼 부리는 그런 인격으로는 우리들이 큰 나무와 같은 목회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18세기에 스트라디바리우스라는 사람이, 장인이 바이올린을 만들었습니다.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 현재 전 세계에 남은 게 200개정도 남아있답니다. 우리교회 바이올리니스트 하나가 그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가지고 와서 우리교회에서 연주를 했는데 바이올린 하나가 45억이랍니다. 별로 그렇게 놀래시지도 않으십니다. 늘 만지는 돈이니까. 그런 것들은 나무자체가 다르답니다. 그래서 벼랑 끝 같은데서 나무가 자라는데 정말 놀랍습니다. 캐나다에 아이스필드 같은데 가보면 어른 키보다 조금 높은데 수령이 300년입니다. 날이 추우니까 안으로 옹지고 옹져가지고 잘 안자라는 것입니다. 바위틈에서 모진 바람을 맞으면서 꺾어지듯이 자라는 그런 나무들을, 그 나무들을 채집하다가 그것을 찌고 소금에 절이고 하면서 가공을 해서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변형이 됩니다. 아주 탁월한 악기들이 바로 그 나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지도자도 똑 같습니다. 지도자도 이 속에서 향기가 나와야 합니다. 향기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평탄한 과정과 그리고 평탄한 모든 길을 통해서는 하나님도 이러한 지도자는 만들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그래서 거쳐야 하는 것이 뭐냐 하면 고난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치열한 고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꽉 찬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이 말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당한 후에는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고통의 문제를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돈이 없으니까 ‘돈만 구하면 되겠구나.’ 아닙니다. 이런 괴로움이 오면 ‘아, 이렇게 피하면 되겠구나.’ 그게 아닙니다. 나를 바로 그 자리에 거기에 세우신 하나님의 커다란 섭리가 있고, 그 속에서 우리들이 몸부림치면서 하나님 앞에 이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학교 다니는 동안에 흘리는 눈물은 30년이 간답니다. 신학교 다니는 시절에 흘리는 눈물은 30년이 갑니다.
제가 신대원을 졸업한지가 벌써 30년이 되어옵니다. 많은 친구들 아직도 연락을 합니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까 어떤 친구는 교수도 되고 총장도 되고 학장도 되고 뭐 노회장한 친구들은 벌써 많고, 그렇죠? 그런데 놀랍게도 30년 전에 신학교 입학할 때에 첫 시간에 한사람씩 나와서 자기 소개하는 순서가 있잖습니까? 그 때에 받은 인상이 30년이 지났는데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때에 교만한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때 별로 기도안하고 좀 뺀질대는듯한 분위기는 지금도 목회하면서 그래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공부는 별로 못했지만 그래도 진실하고 늘 눈물이 있던 사람들은 요새도 만나면 한참 이야기하면 눈가가 촉촉이 젖습니다. 그때에 자기는 교수용이라 그러면서 맨 날 기도도 안하고 교회에 봉사도 안하고 그러던 사람들은 지금도 출판사 2층에 앉아서 뭐하고 있습니다. 똑 같습니다. 공부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학교에서 뭐 회장이나 하고 뭐 하나하겠다고 다니던, 아니 이건 부정적으로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정치운동하고 이러던 사람들은 지금도 총회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똑 같습니다.
그래서 30년 전에 추천할 수 없는 사람은 놀랍게도 35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추천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아있습니다. 수백 명의 동급생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목사가 된 다음에 새사람이 된 사람은 나는 두 사람 밖에 못 만났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신학교 다닐 때에 고난을 잘 이기고 안 으로 안 으로 숙성해서 그래서 하나님 앞에 다듬어지는 사람들이 되셔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아주 많이 하셔야 합니다. 기도 안하는 신학생들은 나쁜 사람이 됩니다. 반드시 나쁜 사람이 됩니다. 음식을 썩지 않게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냉장고에 넣는다, 기름에 튀긴다, 소금에 절인다, 뭐 말린다 방법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썩게 하기위해서 특별히 노력할 것은 없습니다. 내버려두면 그냥 썩습니다. 우리의 심령도 음식물과 꼭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셔야 됩니다.
저는 지금도 ‘그 신학교 다니면서 기도하던 것들 때문에 내가 사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라는 책을 한번 꼭 읽어보시기를 저는 권합니다. 저는 그 책을 6권을 샀고 6번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던 어느 해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THM에 다닐 때에 일이었습니다. 그걸 이렇게 들어다 보니까 나의 기도생활은 기도생활이 아닙니다. 일기에 보니까 “오늘은 내생일이다. 별을 보고 기도하러 숲속에 들어갔다. 생각나는 모든 사람을 위해 하루 종일 기도했다. 기도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 별이 총총하였다.” 결국은 24살에 선교사로 소명 받고 29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습니다. 그 눈 덮인 언덕에서 그 사람이 그렇게 처절하게 기도하고 나면 기도하고 일어난 자리에는 붉은 선혈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 구절을 읽으면서 나의 안일한 삶이 너무 싫고, 새벽기도 나오고 교회에 나가가지고 뜨뜻한데 앉아서 쭈그리고 앉아서 기도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학교에 11월이었습니다. 11월. 학교에 뒷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러고 한번 무릎을 꿇어보니까 이건 장난이 아닙니다. 무릎을 꿇어서 엎드렸는데 막 밑에서 얼음 기운이 확 치고 올라오는데 15분을 기도했는데 다리가 마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판자대기를 가지고 한 15일을 다니다가 ‘이건 내 분량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돌아갔습니다. 추위에 집중되는 바람에 기도가 안 됩니다.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조그만 더해도 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지성적 준비인데 그냥 간략하게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만약에 신학을 전공하는 교수라면 여러분들에 공부하라고 말하면 자기가 선생이니까 그 말밖에 할 말이 있으랴 그렇게 말하겠죠? 저는 지금도 총신대학교 석좌교수로 강의를 나가지만 나는 전문적인 학자가 아닙니다. 나의 아이덴티티는 시골교회 목사입니다. 평촌이잖습니까? 시골이잖습니까? 평평한 시골. 서울도 아닌, 서울에서도 축출된 시골에 목회자입니다. 그 목회자가 이야기 하니까 훨씬 권위 있겠죠? 공평하겠죠? 4000편의 설교를 하면서 요즘도 느끼는 일은 그것입니다. ‘아, 우리의 설교사역은 얼마나 많은 지성적인 준비를 필요로 하는가?’
신학교 다닐 때에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4년 신학대학은 야간을 했고, 3년은 총신대 신대원에서 했고, 이후에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했지만 7년간만 딱 끊어놓고 얘기한다면, 나는 신대원 3년을 다시 한 번 살아보라고 기회를 주셔도 그 이상은 살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끄럽지만 나 자신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안 자고 안 먹고 안 쉬고 공부하고 기도하고 교회 봉사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17시간을 히브리어성경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요강을 밑에 놓고 빵 한 덩어리 물 한통을 놓고 말입니다. 22시간을 신론에세이를 쓴 적이 있습니다. 요강 놓고 빵 한 덩어리 놓고 물 놓고 모두 다 쓰고 나니까 정확하게 22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가끔 책꽂이를 보면서 눈물이 납니다. 신학교 다닐 때는 책은 읽을 수 있는데 돈이 없습니다. 책을 살수가 없습니다. 며칠씩 점심값을 아껴서 종로 나가서 ‘생명의 말씀사’에서 원서 한권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지금 책 살 돈 있습니다. 몇 년 전서부터는 교회에서 책을 사게 해주어서 원 없이 책을 사고 있습니다. 얼마나 1년에 책을 샀기에 원 없이 샀느냐고 묻고 싶지요? 최소 1억 최대 2억. 그리고 나를 돕는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원하는 책이라면 아무리 비싸도 이 세상 어느 구석에 박혀있어도 찾아다 줍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 왜? 이른 새벽 새벽기도부터 시작을 해서 오늘도 집에 들어가면 밤 12시 다 되겠지요? 정확하게 내일 새벽 5시 반에는 교회에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일들이 우리의 섬김을 기다립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의 일생 중에서 항상 공부하는 자세를 갖는다고 할지라도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구별된 시간은 이 신학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신학교시절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 치열하게 공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별로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누구냐 하면 평일 날 기타통매고 교회에 와서 괜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왜 거기서들 노래를 부르고 있냐?” 자기는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그러지만 공부하는 것보다 그게 재미있어서 그걸 하는 겁니다. 신학생이 베짱이처럼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그 봉사 치열하게 하고 끝나면 빨리 돌아가서 책상 앞에 앉아서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지,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지 그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그렇게 긴 세월동안 설교를 하면서도 하느라고 공부를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여러분, 저 공부하는 이야기가 ‘목회와 신학’ 에서도 실렸습니다. 나의 아이덴티티는 고3입니다. 고3. 내가 여러분, 오늘은 저 가방을 들고 왔는데 항상 이거 매고 다니는 룩색입니다. 그것을 양복에다가 대학생 룩색을 메고 설교하러 강단에 올라갑니다. 몇몇 교인들이 “목사님, 그건 안 어울립니다.” 안 어울리는 거하고 어울리는 거하고 상관이 없습니다. 이걸 매고 올라가면서 놓고 설교할 때에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때도 있겠습니다. 내려오면서 그 가방을 다시 매면서 ‘나는 제법 설교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나는 학생일 뿐이다.’ 고 3은 모든 것을 대학 입학한 다음으로 미룹니다. 미팅, 놀러가는 것, 캠핑, 다하고 싶지. 그런데 그것은 대학 들어간 다음 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목사님, 대학은 언제 들어가요?” “죽으면.” 죽으면 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그러면 그렇게 공부 하면서 뭘 느끼나하면 한사람이 잘 들어보십시오. 한사람이 여기로 올려놓으면 누군들 설교를 못하겠습니까? 한 시간 떠들다 내려가면 되지, 누구는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설교하고 간 내용이 글로 옮겼을 때에 150년이나 300년 후에도 읽힐 정도의 가치가 있는 신학이 담긴 설교를 한다는 것은 내경험에 의하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공부를 요구하느냐?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까지 공부를 해서 7년은 해야 합니다. 미니멈으로. 생명의 위협이라는 것은 무슨 얘기냐 하면 공부하느라고 몸이 상해서 이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 까지 넘나들어야 된다는 겁니다. 왜 웃으십니까? 성철스님 이라고 하는 그 양반이 8년 동안을 장좌불와를 해서 8년 동안을 책상다리로 앉아서 한 번도 기대거나 쓰러지지를 않은 것입니다. 그게 8년입니다. 8년. 하나님을 모르는 이교도들도 그런 탁월한 의지를 가지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가는 길을 가는데, 하나님밖에 없다는 사람이 이 길 밖에는 우리에게 진리의 길이 없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약해서야 되겠느냐 이겁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됩니다. 그 공부도 장난이 아닙니다.
난 주위에 개혁신학을 했기 때문에 개혁신학을 한다는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그럼 답답합니다. 왜? 개혁신학 하나를 공부해서 정말 제대로 된 개혁신학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날은 이제 모든 공부가 역사신학에 대한 공부의 검증을 거치지 않으면 독단에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보십시오. 치열하게 공부해서 저쪽 교부부터 시작해서 개혁신학을 이해하려면 현대의 개혁신학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19세기의 신학을 이해해야 되겠죠? 그러면 18세기의 계몽주의를 이해해야 되겠죠? 그러고 나면 계몽주의가 일어나기 전까지 있었던 개혁파 정통주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해야 되겠죠? 거의 기라성같이 천재들이 쏟아놓은 그 어마어마한 이 개신교신학의 고전들을 공부해야 되겠죠? 제가 알고 있는 리차드멀러 교수님이 저에게 이야기해 주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만 개혁파 정통주의 문헌이 9만 5천 타이틀이랍니다. 저도 대부분 그 타이틀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합니다. 그걸 이해하려면 어떻게 됩니까? 종교개혁 공부해야죠? 종교개혁공부를 하면 르네상스 이해 없이 종교개혁을 이해하겠습니까? 그러면 여러분, 종교개혁을 제대로 이해하고 르네상스를 이해하려면 여러분 중세철학 안하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13세기 중세철학을 공부하지 않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기라성같이 거쳐 갔던 중요한 인물들,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그 다음에 앙셀 무스, 아우구스티누스, 이런 사람들을 공부하지 않고 되겠습니까? 그걸 하기 위해서는 텝테르트이앙스나 이레니우스같은 오리갠 같은 초대교회를 공부안하고 되겠습니까? 그 공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철학을 반드시 거쳐야 되겠죠? 얼마나 많은 공부를, 그것을 결국은 철학과 신학을 이해하는 것 뿐 입니다. 이슬람과의 교류 속에서 펼쳐졌던 새로운 철학의 출현 같은 것들, 아베루에스나 아베체네같은 사람들, 방대한 양의 공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종종 이젠 서가를 지나다니다가 요즘 좀 덜합니다. 그런데 몇 년 전 만해도 서가를 걸어가다가 주저앉아서 운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이 많은 책들 중 대부분은 내가 사기만 했지 읽지 못한 책인데, 시간은 없고 어떻게 할 거냐?’ 조금 덜 놀고 덜 자고 덜 먹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모든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자기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 밖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목회를 안 하고 살수는 없잖습니까? 목회하고 자기할일 다하면서 그 일을 해내야 되는 것입니다. 공부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디 그것뿐입니까? 내가 항상 신학교가서 얘기 합니다. “3학년은 너무 늦었다.” 이제는 졸업하고 가야지 너무 늦었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냥 어쩔 수 없고 이제 졸업하고 나서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고 2학년은 조금 늦었고, 1학년은 그래도 부지런히 지금하면 되겠죠? 가장 급한 건 뭐죠? 언어를 공부해야 합니다. 언어를.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 이 삼,세 가지 언어를 반드시 이 원전을 읽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펼쳐놓고 한글성경 집어 쳐 버리고 희랍어 성경과 히브리어성경, 아람어 성경을 놓고 묵상을 하고 설교를 하고 설교시간에 펼쳐놓고 직독직해를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교수가 아닌 다음에 그렇게 까지 하려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조를 해놓고 이 두 가지를 비교를 하면서 오역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까지는 공부해야 된다.’ 이것입니다. 치열하게 공부해야 됩니다.
어느 학교에서 강의를 하려갔는데 데모를 하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데모라는 게 대개 그런 거 아닙니까? 무능교수 물러가라 아니면 비리재단 물러가라 그런 것이잖습니까? 그런데 구호가 신선합니다. 학점 안주는 헬라어교수 물러가라,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선택과목으로, 깃발을 들고 데모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그랬습니다. “도둑놈들이다 이것 해군이 되어가지고 바지에 물 안 묻히겠다는 거고, 육군이 되어가지고 전쟁할 때 군복에 흙 안 묻히겠다는 거지. 벤츠타고 전쟁하는 겁니까?”
의대생이 의대 들어가면 여기도 의대출신 있겠습니다. 요즘 좀 나아졌습니다. 한 10년 15년 전만해도 일주일 수업시간이 45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얘네 들을 여기 다 허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하는 일이 뭐냐 하면 온몸의 부위를 라틴어로 외우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것도 안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요즘은 그냥 영어로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라틴어로 한다고 그럽니다. 의학 하는 사람들이 라틴어를 잘합니다. 사람의 몸을 고치는 사람도 예과 4년, 본과 2년, 그다음에 인턴, 레지던트, 그다음에 의사시험, 전문의 시험, 다 해가지고 그렇게 해가지고 겨우 해서 달달 떨면서 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병원에서 수술실에서 소리가 들리더랍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2센티만 쪼개면 돼요. 그리고 잠간이면 수술이 끝나요. 너무 떨지 마시라니까요.” 이 간호원의 목소리가 환자보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의사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영혼을 고치는 의사입니다. 그래 얼마나 공부를 해야 되겠느냐고? 의사되는 사람은 전국에서 수능1%안에 들지 않으면 아예 원서 낼 자격을 안 줍니다. 그런데 신학교는 밑에서 1% 들어도 원서 받아주지 않습니까? 그럼 출발선이 다르지 않습니까? 벌써. 그러면 더 치열하게 공부를 해서 그 한계를 극복해야 되지 않습니까?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제가 하다가하다가 포기한 언어가 있었습니다. 그게 히브리어였습니다. 이거는 물어보면 교수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집어치웠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도 참 이상하시다. 당신의 계시가 널리 알려지는 게 당신이 원하신 뜻일 텐데. 공부해도 해도 안 되는 언어에다기 이계시를 담으셨다면 이 하나님의 속성에 어긋난다.’ 그리고 사실은 이성적으로는 안 되는데 믿음으로 다시 시작을 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내가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가르치는 분들을 잘못 만났다는 사실을 딱 두 시간 강의를 듣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독습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전권을 신학교 다니면서 삼분의 이를 읽고 그리고 히브리어의 원어를 파악하기위해서는 필로소피칼 콤푸레티브 필로로지가 필요한데 가장 근접성이 있는 언어가 당시에는 우가리더로 알려졌습니다. 사이러스보든의 우가리더를 600페이지 텍스트로 갖다놓고 3학년 때 다 모두 떼고 마지막에 2학기 때 토팔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희열이란 말할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주님을 깊이 만나고 토팔이고 뭐고 다 갖다버리고 이제는 기독교 사상적으로 돌아섰지만 지금도 그 당시에 짧은 시간 뭐 짧진 않았습니다. 한 2년 정도 깊이 쏟아서 아람어 히브리어 공부한 게 목회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 줄 모릅니다. 지금도 강대위에 히브리어성경, 아람어성경이 있어서 새벽기도도 설교하다가 궁금하면 탁 펼쳐서 쭉 보면 그렇게 도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 안하십니까? 여러분 이미 포기한 분 굉장히 많죠? 추억 속에 아련하게 떠오르는 히브리어가 왼쪽으로 가던가? 오른쪽으로 가던가? 그렇게 하지 마시고 지금부터 치열하게 공부하십시오. 영어는 여러분들이 워낙 잘 하시는 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영어를 읽는 것으로 만족하시면 안 됩니다. 현대영어를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은 진짜 기독교의 보물들은 18세기 17세기 16세기 저작들 속에 나오니까 옛날에 중세영어를 읽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특히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18세기의 저작들을 읽어낼 수 있도록 18세기 문법들을 열심히 공부하셔서 현대의 영어만이 아니라 이렇게 중세부터 현대사회를 오가면서 영어로 된 텍스트들은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헌신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안 믿으시겠지요? 제가 50살이 넘어서 라틴어를 독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다들 충격을 받는데 저는 영어도 조금 합니다. 말도 좀 할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고 그리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읽는 것은 자신이 있습니다. 17세기든 16세기 이든 간에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나에게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영어지식을 다 내놓으면 그 만큼의 라틴어 지식을 주겠다고 하면 “좀 생각 좀 해보고요.”라고 말할 정도라면 라틴어의 중요성이 여러분들에게 호소력이 있게 되겠습니까? 누가 그런 질문을 하면 난 정말 망설일 것 같습니다. ‘이거 영어를 버리고 라틴어로 돌아가?’ 그 이유는 뭐냐 하면 헤아릴 수 없이 어마어마한 대작들이 서방교회의 전통, 그리고 적어도 17세기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기록된 어마어마한 이 기독교사상의 유산들이 라틴어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만족할만한 성과를 못 거두었지만 그러나 난 여러분들은 나보다 훨씬 젊으니까 지금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열하게 공부를 해야 됩니다.
4년 전에 총신에 개강수련회를 가서 이 이야기를 했더니 라틴어 클래스가 폐강위기에 있었는데 70명이 몰려서 라틴어 교수가 그 반에 갔다가 문을 열어보고 문을 쾅 닫고 딴 데로 갔습니다. “왜 가세요?” 그랬더니 “여기는 내 반이 아닙니다. 우리교실이 이렇게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이리오세요. 이리. 우리 모두가 모였습니다.” 치열하게 공부하셔야 됩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개혁신학의 훌륭한 유산들이 화란에 보존되어 있으니 여력이 닿는다면 화란어를 공부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후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디 그 뿐이겠습니까?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연구는 불란서 학자들이 꽉 잡고 있습니다. 불어를 공부하셔야 됩니다. 한없이 해야 할 공부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신학만이 아니라 인접의 학문들을 공부하십시오.
저는 50대 중반되기 전에 일 년 동안을 천문학을 과외선생을 불러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신학에서 풀리지 않는 많은 의문들이 풀리면서 몇 달 동안을 밤마다 하늘에 별을 보면서 감격하며 기도하던 때가 생각이 나고 지금도 그 영향이 남아있어서 지금도 그 쪽에 공부를 틈나는 대로 합니다. 공부는 무엇이냐? 읽어야 될 책을 읽어야 합니다. 휴식은 무엇이냐? 평소에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휴식입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 철저하게 준비 되었다가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데 이 모든 공부는 주변에 있는 것이고 항상 이 공부의 중심에는 구심력이 있어야 되는데 이 구심력이 한권의 책이어야 합니다. 그게 성경입니다. 성경. 그래서 매일매일 성경을 대면하고 이성을 초월하는 성령의 은혜 속에서 계시의 말씀을 대면하고 그 속에서 진리를 체득하고 자기가 깨뜨려지는 이 진실한 신앙의 경험을 통해서 신학이라는 것들이 형성될 수 있는 기반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치열하게 공부하십시오.
제가 젊은 시절에 교수가 할 때 어느 학생이 3학년 때에 와서 얘기를 합니다. “교수님 강의를 2년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소개해 준책을 모두 적고 읽으려고 했는데 항상 한 학기에 한 키 분량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정확하게 한 학기에 한 키씩 책을 읽은 것입니다. 이렇게 세워놓고 한 키가 아니라 눕혀 놓고 한 키입니다.
저는 취미도 없습니다. 그리고 뭐 특별한 재능도 없습니다. 저는 일 년에 인터넷을 하는 시간이 10시간이 안됩니다. 저는 아이폰을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그나마 그래도 즐거움이 있다면 뭐냐? 책을 보고 공부하고 설교하고 그러는 거고 목회하는 거고 그래도 휴식처럼 달콤한 시간이 뭐냐 그러면 동료 혹은 사랑하는 후학들과 함께 둘러앉아서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우리교회 방문해서 대화하고 싶다면 미리만 말씀하시면 내가 기회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서재도 보여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앉아서 진리에 대해서, 네가 아는 진리에 대해서, 내가 깨달은 진리에 대해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위대한 캘빈에 대해서, 마틴 루터에 대해서,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서, 오늘도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서 공부 가르치다가 왔는데 너무 행복합니다. 그게 저의 생애에 위로입니다. 위로.
여러분 한번 탁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열하게 공부하셔서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사역하시다가 불꽃처럼 주님께 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만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