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집회 2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잠언25:13)
녹취자: 장형주
저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신 것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면서 유치원도 다니고 그러다가 초등학교 때 서울로 올라와서 공부를 했습니다. 농사는 지어본 적은 없지만 늘 가까이에서 농사짓는 그림을 보다가 직장을 들어갔더니 직장에서 일 년에 한 번 씩 봄에는 모내기를 가을에는 벼 베기 지원을 나갔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갇혀서 일하는 것 보다는 그저 시원한 바람을 쐬고 하는 것이 좋아서 선택을 하기도 했고 또 그 일이 제 담당이라서 어쩔 수 없이 가기도 했습니다. 벼를 베는 추수철에 가면 참 밖에서 멀리서 보는 그 풍경은 참 낭만적인데 막상 가서 해보니까 보통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모 심을 때는 모 줄을 양쪽에서 잡고 이동하면 구간을 나눠서 사람들이 모를 꼽는데 이거는 혼자서 하는 일 같으면 좀 요령도 피우고 나중에 좀 하고 그래도 되겠는데 이것은 줄 맞춰서 가는 거니까 다른 사람 다 꽂았는데 내가 안 꽂으면 이 모 줄이 이동을 못합니다. 그래서 ‘아 모내기가 멀리서 볼 때는 낭만적인데 가서 해보니까 보통 힘든 게 아니구나. 추수는 좀 낫겠지.’ 그러고 추수하러 가봤습니다. 한 두 해가 아니라 여러 해를 다녔습니다. 추수 하러 가니까 이번에는 한 번 허리를 숙이면 펼 수가 없습니다. 일렬로 쭉 세워놓고 낫을 주고 이렇게 벼를 베면서 가는데 이게 사람이 이것도 일렬로 서서 나가니까 조금만 꾀를 부리고 늦게 가면은 나 담당구역만 다른 사람들은 저 앞으로 가고 내 담당구역만 누렇게 익은 벼가 이렇게 남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자 살자 따라갑니다. 일시키는 사람들은 우리야 품삯을 받고 일한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이 5시만 되면 다 낫 놓고 집에 갈 사람들이니까 5시 까지 한 평이라도 더 추수를 하려고 쥐어짜는 것입니다. 그러니 갔다 오고 나면 손이 다 부르트고 또 낫질도 잘 못하니까 낫잡은 손도 부르트고 허리는 끊어지는 것 같고 그래서 몸살이 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가을에는 뙤약볕도 엄청 내리 쬐고 또 흐리거나 비오는 날에는 추수를 안 하지 않습니까? 맑은 날 구름 한 점 없이 땡볕이 내리 쬐는데 그까지 것 머리에다가 밀짚모자하나 썼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등이고 뭐고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 쬡니다. 죽어라 씩씩 거리며 그것을 합니다. 근데 정말 즐거운 시간이 휴식시간입니다. 휴식시간에 참이 나올 때 잠시 내려놓고 우리야 예수 믿으니까 술 안 먹지만 사람들이 막걸리 한잔 먹고 추수 밥을 먹을 때 그렇게 흥겨울 수가 없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벼를 베다가 그야말로 정말 시원한 주전자에다 얼음을 띄워가지고 냉수를 가지고 옵니다. 그것을 한 사발을 들이키고 나면 이 세상에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오늘 성경이 꼭 그것을 말합니다. 농경 사회였으니까 농사짓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추수라는 것 여러분 농어촌에 계시니까 너무 잘 아시겠지만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되는 날이 있고 무슨 작물이든지 바로 그 때 추수를 하지 않으면 손실은 입습니다. 그래서 온 힘과 정신을 다해서 그렇게 힘을 쏟으면서 곡식을 추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추수를 하는데 그렇게 곡식을 거둬들이고 나면 땀이 비 오듯 할 때 얼음냉수는 이 세상의 어떤 즐거운 놀이와도 비교할 수 없고 산해진미가 차려진 것 같은 그런 것도 소용없고 음료수도 필요 없습니다. 시원한 냉수 그것 하나가 대체할 수 없는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을 보면 사람도 하나님 앞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충성된 심부름꾼이다. 충성된 사자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충성된 사자는 마치 그 주인에게 추수한 날에 온통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견딜 수 없는 갈증 때문에 쓰러질 것 같은데 그 한 모금의 냉수를 마시고 힘을 얻는 것처럼 그렇게 시원하게 해 주는 사람이 바로 충성된 사자라고 그랬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유능한 사자라거나 혹은 큰 일하는 사자라거나 공부를 많이 한 사자라거나 말하지 않고 충성된 사자라고 말합니다. 어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하나님이 각각 이 세상의 모든 만물들을 다양하게 만드셨고 또 우리도 각각 다른 모양으로 창조하셨으니 하나님이 각각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어떤 사람은 큰 일에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 어떤 사람은 지적인 일에 어떤 사람은 기능적인 일에 다양하게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예화) 여러분 손목시계 뒤를 뜯어보면 전면에는 바늘 세 개 돌아갈 뿐인데 그 뒤에는 뭐가 그렇게 복잡합니까. 수많은 톱니바퀴와 왔다 갔다 하는 시계부속품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면서 마지막 시계바늘 세 개를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각각 사명 받아서 각자 동 떨어진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그건 우리 생각이고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우리 한 사람이 톱니바퀴같이 다 연결이 되어서 이 시대에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시는 궁극적인 일들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이끌고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약에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라고 한다면 이 충성된 사람들은 비록 그가 큰 톱니바퀴는 작은 톱니바퀴든지 간에 하나님의 그 일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사람입니다.
(예화) 미국에서 언젠가 3200억원을 들여서 인공위성을 만들었답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주로 탐사를 하도록 쏘았는데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서 영영 실종되어서 320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날려버렸답니다. 나중에 사고가 난 다음에 도대체 뭐가 잘못됐나하고 조사를 했더니 수천 명의 사람이 그 일을 위해서 5년 동안 매달렸는데 연구원 한 사람이 파이 값 하나를 잘못 대입했습니다. 그래서 3200억짜리 위성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서 우주의 미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누구하나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없어도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이 관심도 많으시고 적게 쓰시는 사람은 관심도 적으신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마 여러분 목사님들은 목회하면서 비록 작은 교회를 목회해도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생생한 간증들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그게 바로 무엇이냐 하면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 크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든 적게 쓰시는 사람이든지 간에 어떤 경우에도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역의 가치는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종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스러운 종들이 되는 것, 충성스러운 사자로서 살아가는 것 이것은 너무 너무 중요한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 우리가 도달하게 될 때에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시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결을 이루면서 살아갑니다. 시계를 보십시오. 바늘 세 개 그리고 어제 신문을 보니까 시계 박람회에 역사상 최고로 비싼 시계가 나왔는데 56억 짜리 손목시계가 나왔답니다. 9일 만에 팔렸답니다. 1200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아주 정교하게 가공한 시계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시계를 볼 때 1200개의 박힌 다이아를 보며 즐거워하고 그래봐야 바늘 2개 혹은 3개 돌아가는 것 보면서 일평생 시계 을 뜯어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늘 두 개를 보면서 시간을 알고 예쁜 디자인을 보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그 뚜껑 뒤에는 일평생 한 번도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톱니바퀴와 부속품들이 좌우운동 그리고 원형운동을 하면서 이 모든 힘들이 결합을 해서 앞의 시계바늘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눈길 한번 못 받아도 그것이 없으면 시계는 빈 껍데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목회를 하면서 시골에서 여러분들이 잘 기른 젊은이들이 도시에 와서 신앙 생활하는 것을 봅니다. 아마 사람들이 보기에는 여러분들의 사역은 부흥도 안 되고 재미도 없고 누구 말마따나 젊은이도 없고 설교준비 해가나 안 해가나 어짜피 교인들 와서 쭈그리고 앉아서 조는 것은 마찬가지고 그렇게 낙심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판단하는 생각이지 뿌렸기 때문에 도시에서 거둬들이고 그렇게 해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나라가 돌아가는데 거둬들인 도시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게 아닌 줄을 아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주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충성스럽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큰 영광과 크신 은혜와 능력이 나타날 줄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에게 충성된 사람들은 큰 사람이 아니어도 매우 기뻐하십니다. 달란트 맡은 종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 달란트 맡은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았지만 두 달란트 맡은 종은 다섯 달란트 맡은 종과 꼭 같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일의 크기를 보지 않고 당신을 향해 어떠한 마음으로 충성하는지를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우리 같이 사람인 목회자들도 교회를 사랑하고 은혜를 받아서 충성스럽게 섬기려는 사람들은 비록 공부가 모자라고 조금 일하는 것이 다른 사람처럼 훌륭하지 못해도 그 충성하는 마음을 보면서 한없는 감사의 심정을 우리들이 느끼지 않습니까? 우리같이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인간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완전하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당신을 사랑하고 보이지 않는 당신께 충성하는 당신의 사자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보시겠는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비록 우리들이 작은 교회를 목회하고 또 나는 이 세상에서 알아주는 사람 많고 크게 쓰임 받는 우리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충성스럽게 하나님 앞에 살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매우 귀하게 보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추수철에 얼음냉수 같은 사람으로 여겨주셔서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다른 사람 눈에는 우리의 사역이 조금해보이고 그렇게 큰 영광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당신을 위해서 섬기며 살아가는 목회자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신문에 내 놓을 만큼 방송에 나올 만큼 크고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의 목회의 현장에서 끊임없는 은혜로운 간증들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면서 당신의 귀한 일들을 성취해가고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구약시대와 똑같고 신약시대와 똑같이 사면을 두루 살피며 당신을 위해 충성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오래 사역을 했다고 주님을 잘 섬기는 것 아니고 짧은 기간 사역했다고 하나님 잘 못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 때 마음을 다하여 치열하게 섬기고 봉사하면 하나님은 그 고통스러운 인내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주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부교역자 때 충성하던 사람들이 담임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잘 하는 것이지 부교역자 때 꾀나 피우고 게으르고 사람 눈이나 가리려고 그렇게 하면서 목회를 배운 사람들은 절대로 그 목회에 하나님의 복이 없습니다. 주님은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사람을 쓰시는 동일한 원리를 견지하십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 당신이 맡기신 일에 헌신하는 사람, 일이나 그 일 때문에 받는 영광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행복해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소중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예화) 에이든 윌슨 토저라는 목사님이 자기의 설교집 속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하늘에서 세 천사라 보냄을 받았습니다. 한 천사는 하나님이 큰 나라로 내려가서 왕을 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손에는 온 만조백관과 ?나라를 다스릴 금으로 만든 지휘봉이 들려있었습니다. 두 번째 천사는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데 커다란 금 주판이 들려있었습니다. 주신 사명이 돈을 많이 벌어서 사업을 하라고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군인철모에다 막대기 긴 것을 끼워서 똥을 푸라고 사명을 주어서 각기 구름 세 개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그 때에 토저 목사님이 이것입니다. ‘이 세 천사가 내려올 때 과연 같은 마음이었을까? 다른 마음이었을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에이시 누구는 왕 하라고 그러고 나보고는 똥이나 푸라고 그러고 그 하나님 정말 맘에 안드네. 대충 푸고 말꺼야’ 이러고 내려왔겠습니까? 영광은 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천사들은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 충성된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큰 교회를 해도 기쁨이 없는 목회자가 있고 작은 교회를 해도 행복한 목회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루만지시고 매일 매일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시는 간증을 주십니다.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날 위대한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매일매일 간증을 주십니다. 은혜를 주십니다.
(찬양)
이 벌레 같은 날 위해 큰 해 받으셨나
자기 같은 죄인에게 큰 사명을 맡겨주시고 주님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만 그렇게 대우해주십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주님이 우리를 어디에 세우셨던지 간에 그 자리에서 주님이 우리를 인정해주실 때 까지 충성스럽게 섬기는 종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지금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목회하느라고 마음고생하고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물질에 고통을 받으며 때로는 좋지 않은 교인들에게 목회의 방해를 받으며 그렇게 고난의 길을 가도 당신 앞에 충성된 삶을 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언제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예화) 저는 20년 전에 들을 이야기인데 어느 목회자가 선교사의 소명을 받고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제 선교를 하고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오는데 돌아오게 된 이유는 선교를 실패했기 때문에 돌아온 것입니다. 열심히 했는데 핍박은 많고 교인들은 생기지 않고 그러다가 고생고생 했는데 큰 아들이 풍토병으로 죽었습니다. 일 년인가 이 년 뒤에 둘째 아들이 풍토병으로 죽었습니다.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갈 때는 세 식구가 갔는데 이제는 더 이상 선교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접고 홀로 세 가족을 아프리카 땅에 묻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데 비행장에 내렸는데 바로 그 앞 비행기는 대통령이 아프리카로 휴가를 가서 사냥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붉은 주단이 깔리고 그 위에 대통령이 내리고 사람들은 막 환영하고 그랬습니다. 쓸쓸히 저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내려오던 선교사가 울음을 터트렸답니다. ‘하나님은 저 사람은 아프리카 가서 사냥이나 하고 오는데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중을 나오고 영광을 받는데 나는 선교에도 실패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 나의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리고 저는 혼자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 때 하늘이 찬란하게 빛나면서 우렁차게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더랍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한 것을 내가 안다. 너를 위해 하늘에서는 더 커다란 면류관이 예비 되어 있다. 네가 오는 날에는 내가 너를 위해 붉은 주단을 깔고 내가 보좌위에서 일어나 너를 맞으러 가겠노라. 사랑하는 아들아 죽도록 충성하거라.’ 이 선교사가 일생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하나님의 큰 영광을 경험하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다시 선교지로 돌아와서 은퇴할 때까지 거기서 충성을 다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도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사람과 세상 때문에 이 목회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영광과 사람의 인정도 받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충성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세상은 기억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이 땅에서 보상을 받지 못했다면 하늘나라에서 더 큰 상급과 위로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입니다. 눈물 흘림을 더 몇 일 당하고 행할 길을 가노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목회의 짐을 벗겨주시는 날이 올 것이고 그날에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이 사람에게 영광을 받고 대접을 받았는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섬겼는지에 의해서 우리의 상급이 결정될 것이니 이 땅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는 사람들은 그 날에는 오히려 자신의 삶이 자랑스러울 것이고 자기를 그렇게 충성되게 살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그 날에 우리 주님께 ‘잘 하였구나 너는 착하고 충성된 사자였도다. 네가 그곳에서 목회하는 동안 나의 마음은 추수철에 얼음냉수를 마시는 것 같았구나. 잘 하였다 나의 종아’ 칭찬을 받는 목회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