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목회자 저녁집회
참 목사라는 직업만큼 다양한 재능을 요구하는 직업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말씀은 기본이고 상담하는 일, 교회행정을 하는일, 재정을 계획을 세우고 관리 하는일, 교회을 짓게 되면은 금융업무를 잘 알아서 돈을 변통하는 일부터 설계를 하고 건축을 하고 법적인 분쟁이 있으면 법률까지 해결하고, 교회에 사고에 대비해서 보험업무도 잘 알고 있어야하고, 교회가 어느 정도 커지면 출판, 디자인, 기획 미래에 대한 전망.
저희 교회 보다시피 저렇게 커피숖이 있습니다. 일년에 2억5천만원 정도가 매상이 오릅니다. 이러면 이제 이것은 식음료나 이 모든 것들도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게 됩니다.
헤아릴 수 없이 수 많은 일들이 있고요, 그리고 이제 아침부터 밤까지 퇴근시간도 없이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 중에서 목사가 안해도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 중에 하나를 빼 놓으면 나머지는 모두 본질적인 일은 아닙니다.
가장 본질적인 일이 무엇인지를 오늘 세례 요한의 출연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나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자기로 인하여 모든 사람을 믿게 하려 함이라'는 것이죠.
나머지는 모두 목사의 부차적인 임무이고, 오직 두 가지만이 목사의 고유한 직무예요.
그리고 그 직무는 사도들이 했던 일이고, 더 뒤로 넘어가면은 선지자들이 했던 고유한 직무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말씀을 전하는것과 기도하는 것 이 두가지가 목사의 고유한 직무인것입니다. 오늘날은 목회라고 하는 이 일자체가 하도 현대화되어서 수 많은 일들과 뒤엉켰기 때문에 목회자의 본무가 무었입니까?라고 물으면 목사인 우리 자신들도 뭐가 본무인지 좀 헷갈립니다.
그러나 청교도시대에 모든 목회자들은 목사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서 일치한 대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사는 '구약에서 하나님에 영광을 위하여 피뿌리며 죽어간 선지자들과 신약에서 그리스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땅끝까지 전파하고 순교한 사도들의 후예'라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로 인해서 혼란에 빠졌던 6장 사도행전에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때에 일에 결말이 어떻게 났습니까?
사도들이 직접 그 일을 하려고 총대를 맺더니 온갖 불평과 원망이 쏟아나와서 그래서 집사를 세우고 자신들은 하나님에 말씀을 전하는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여야 하리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에 말씀이 다시 흥왕하여 허다한 무리들을 그리스도의 도에 굴복시키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낮에 개강예배에 말씀했듯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세우신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긴 것처럼 작은 포도원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맡긴 것처럼 큰 포도원을 주십니다. 큰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이 영광이 아니요, 작은 포도원에서 일해야 하는것이 부끄러운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것으로써 영예와 부끄러움을 삼는다면 그것은 산업시대에 자본주의적인 정신이죠. 미국을 기준을 19세기 중반까지는 교회에 크기가 목회자에 평판을 좌우한다는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그러던것이 물량주의가 들어오고, 산업화사회가 되면서부터 그렇게 목회자에 영광과 관련되게 된거죠.
우리는 세상에 평가에 현혹되지 말고 주님이 내리시는 그 평가에 맞춰서 살아야될 사람들이고 성도들에게 그렇게 살도록 가르쳐야할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목사의 영광이라고 하는것은 무엇일까요? 두가지를 잘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다른 일도 잘 하면 더 빛나고 훌륭하겠지만 다른 일을 탁월하게 잘하고, 이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목사로써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 그랬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목사로 불러주신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신 분은 사람이나 교회나 교인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직접 부르셔서 천사도 부러워하는 하나님의 복음진리를 전파하도록 우리를 부르시기를 세례요한을 부르신것처럼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 전경 선지자가 400년전에 끝나고 캄캄한 계시가 없는 암흑시대같은 400년이 흐르고 곧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이 역사의 한 밤중에 세례요한을 하나님이 왜 보내셨을까요?
여러분들은 이미 이사야서를 통해서 말라기서 마지막장을 통해서 세례요한이 온것은 '예수그리스도에 오실 앞길을 내기 위해서 왔다'고하는 증거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예수 오시는 앞길을 내는 방법이 무엇이었죠?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온 힘을 다해서,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세지는 놀랍게도 바로 뒤에 오시는 예수님에 메세지와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세지는 다름이 아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목사님들 마다 만나면은 온통 관심사는 교회에 정치하는일 그리고 또 웬만큼 목회가 되면 뭘 해달라는게 그렇게 많습니까?
이런 저런 감투, 교회 정치 그리고 이런 저런 사회적인 일들을 비롯해서 많은 요청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이 일들이 나쁜것이라는 뜻도 아니고 누군가가 그 일을 충성스럽게 해야지만 하나님에 나라 한 구석이 서게 되리라고 하는 것을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게 다른 걸 아무리 잘해도 본무가 하나님에 진리를 외치는 것인데 이것을 잘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천한 목회의 경험이지만 목사와 교회의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하고 비슷합니다.
남편이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아무리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재능때문에 박수갈채를 받고, 돈을 많이 번다고 하더라도 아내에게 만족스러운 남편이 되지 못하면 아내는 이 남편이 세상에 나가서 받는 영광과 박수갈채, 수 많은 사람이 남편에게 찬사를 보내고 그 남편하고 사는 자기같은 여자를 세상에 복된여자라고 부러워해도 아내의 마음에는 서리가 맺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똑같습니다.
목사가 나가서 정치계에서 발을 디밀고 교회정치에서 사람들이 굽신거리는 이들이 찾아오고 재능을 인정받고,능력이 있어서 여기저기 부흥회를 다니고 가는 교회마다 깨뜨려도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그 목사를 통해서 말씀에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아끼지 않습니다. 아끼지 않습니다.
오죽했으면 어느 교회의 목사님 보고 그러더래요. 목사님이 바깥에서 설교도 잘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을 따르니까 어느 집사가 대담하게 와서 "목사님 인기좋으실때 떠나시지요?"
"당신이 밖에서는 만족을 줄지 몰라도 우리 교회에서는 만족을 못주고 계십니다." 그게 제가 17년을 지내면서 깨달은 겁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말씀으로 성도들에게 충분한 만족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목사님들이 설교에 생명을 걸어야 되요. 시골에 내려갔을때 어느 후배가 저한테 "여기는 선배님 설교 준비 하나 안하나 마찬가집니다." 그 얘기 했다가 나한테 혼났습니다.
뭐 어차피 다 와서 구부적거리고 조는 노인네들인데 하나 안하나 마찬가집니다. 그러니까 젊으면은 대충 준비해서 찰떡 같이 알아 듣겠지만 노인네들 귀멀고 정신없어서 못알아들으니까 더 많은 시간에 매달려서 거기에 맞춰서 더 잘 준비해가지고 가야지만 영향을 끼칠 수 있는것 아니겠어요?
늙은이가 회개하고 예수 믿었다는 얘기 들어본적 있습니까? 그겁니다. 나이가 들면 심령까직도 굽어지게 되는거죠. 그래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목사인 우리에 본무가 진리에 말씀을 전하는거다라는 것이 분명히 서야되는 것이예요. 서야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우선 첫째는 뭐냐하면은 설교를 잘 준비해야하는 것이예요.
설교를 잘 준비해야된다 하는 이야기는 무슨뜻이냐면은 이렇게 준비를 해도 못알아들을꺼야, 이렇게 꼼꼼하게 하면 교인들이 지루해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벌써 패배적인 생각이죠.
제가 갓 교수가 되고 얼마 안있어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여기 저기 설교하러 많이 다녔습니다. 아직 교회를 개척하기 전이었어요.
근데 어느 교회에서 고등학생들을 모두 모아놓을테니까 부흥회를 해달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교회에 8시부터 부흥회인데 7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아무도 없고 교회가 캄캄해요.
그래서 사찰한테 물어서 내가 여기 강사로 온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그 방을 안내해 줘요. 그래 캄캄한 그 예배당에 들어가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는데, 20분이 됐는데도 개미새끼 한마리 안나타나요. 25분 30분 되니까 하나씩 둘씩 그것도 기타치고 피아노치는 녀석들이 나타나요. 거기를 담당하고 있는 나를 초청한 강도사라는 친구는 40분이 되서야 가방들고 어슬렁어슬렁 나타나요.
그러더니 "저,교수님" 그때는 내가 안수를 안받어요. "교수님 오늘 설교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얼마나 해주면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많이 하셔도 괜찮은데 40분이 넘으면은 애들하고 선생님들하고 지루해 할것 같아서요." 내가 이러고 쳐다봤어요.
아니 그렇게 지루할것으로 예상되는 강사를 왜 불러? 어? 좀 재밌는 사람을 불르지? 그래서 벌써 내 마음이 구겨졌거든요. 아니 어떻게 부흥회를 하겠다는 교역자가 20분 남겨놓고 터덜터덜 오느냐 이거예요? 한 마디도 기도 안 했다고 나는 확신해요. 그 집회를 위해서.
그래 내 이랬어요. "강도사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강도사님은 저 뒤에서 가만히 앉아계세요." "예, 알았습니다" 2시간 반을 설교를 했어요. 마지막 시간에 하나님앞에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하나님 은혜를 부어주세요. 내가 비장한 마음이 생겼죠. 오기가 생겨서라도 여기에 은혜가 부어져야 된다 그러면서 막 기도 할때 어떤 젊은이 한 사람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내려와서 통로 한 가운데서 엎드려서 통곡하며 기도하고 있었어요. 그 강도사였어요. 그런 생각을 갖는것 자체가 설교자로써는 낙제의 생각이예요. 올라갈때는 적어도 비록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어도 '오늘을 어쩌면 하늘이 갈라지고 불이 떨어질걸'하는 마음을 가지고 올라가야지,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올라가야지.
교회의 역사를 보면은 위대한 부흥의 역사들이 도시에서도 일어났지만은 시골에서 일어났어요. 조나단 에드워드에 1차 대각성인 엔필드의 부흥도 시골이었고, 아일랜드에 올드스톤 이 부흥도 얼스터에 부흥도 모두 시골이었어요. 허긴 그 시대에 시골이 아닌곳도 별루 없었지만. 그래서 제일 먼저 철저히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예요. 준비해야 되는 것. 이를 악물고 설교를 준비해야 되는거죠.
저는 전도사때 그때 제가 교수생활하면서 전도사를 했는데, 5년 동안을 완전 원고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일 주일에 한번 설교하는데, 1년을 하고 나니까 그 원고지가 약 2500매에서 3000매 분량이 됐어요. 그 5년을 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 고등학생들한테 설교 한거 나중에 다 모아서 책으로 냈어요. 잘 팔렸습니다. 지금도 팔리고 있어요.
24시간 걸렸었는데. 오죽 했으면 복사집에서 제 설교 원고를 복사해 주면서 "교수님 이렇게 매주 설교를 하세요?" "그럼요." 그랬더니 복사하는 그 아가씨가 "목사도 고달프네요. 아무나 못하겠네요." 컴퓨터도 지금은 컴퓨터나 있지 타이프 쳐서 틀린 글자는 스티커를 붙여가지고 그렇게 해서 A3용지에다가 해서 8장씩 원고지 80매정도씩 찍어서 그래서 그것을 기도원에 가서 작성을 해가지고 토요일날 와서는 그거를 하루종일 타이프 치고 교정해서 그렇게 해서 설교를 했어요. 준비하셔야 됩니다. 아예 자기와 약속을 하십시요. 내가 못하는 설교라도 3시간을 준비하지 않고는 내가 강대에 안서리라. 각오를 하십시요. 그리고 들러붙어 앉아서 꼼꼼하게 성경을 읽고 주석도 보고, 그리고 자기가 먼저 은혜를 받은 다음에 원고를 써요. 너무 너무 실력이 없으면 다른 사람 원고를 보고, 다시 말을 고쳐서 원고를 만들어도 상관 없어요.
왜냐하면 설교의 목적은 독창성을 보여주는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으로 회개하고 믿게하는 것이 설교의 목적이기 때문이기 때문이예요. 꼼꼼히 그래서 시골에서 목회를 해도 한 5년 목회하고 나면 원고가 이렇게 쌓여있어야 됩니다. 그게 어느 정도 학문에 가치가 있느냐? 그거는 그렇게 중요한게 아녜요. 왜냐면 그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왔던 삶이잖아요. 삶이잖아요. 그래서 철저하게 연구해서 그래서 하는 거예요. 그럼 또 문제가 남죠. 아니 그러면 도데체 그 말귀도 못알아듣는 할머니 이런 사람들은 어떻합니까? 그러니까 뼈대를 탄탄하게 하고 그거를 쉽게 설명하고 필요하면 예화도 찾고 해서 노인들이면 노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는거죠.
생각을 해보세요. 좋은 쌀이 있어요. 건강한 남편한테 밥줄때에는 그냥 보통밥 눌러 단추 눌러서 밥해서 먹이면 되요. 병들면 미음을 써서 줘야지. 어린 아이면 암죽을 만들어 줘야 돼잖아요? 노인네가 기력이 없어 소화를 시킬 수 없어요. 그러면 흰죽을 쒀서 주죠? 그래서 쌀 똑같은 쌀 하나 가지고 물만 많이 붓고 적게 부으면 수 십가지의 형태의 죽이고 미음이고 암죽이고 무슨 밥이고 나오는 거예요.
그럼 그렇게 해가지고 가르쳐야죠. 왜? 그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거든요. 기도원에 기도를 하러 갔어요. 그랬더니 아주 쬐끔한 기도원이예요. 불편하기 이를데 없는 기도원인데 그래도 제가 그 기도원을 좋아해서 자주 다녔어요.
근데 웬 나이 많이 드신 권사님 한분하고 여자 집사님 한분하고 그 중년 빼짝 마른 남자분 한분이 밭에 모종을 내고 있어요. 그러더니 인제 두런두런하고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것도 좀 황당하더라구요. 목사님이 "아이 목회 힘들어서 못하겠어" 그러시는거에요. "뭐가 그렇게 힘들어요?" 그러고 인제 밭을 메면서 모종을 내면서 "아니 설교준비, 댁실댁실해서 하나 하면 달랑 써먹고, 또 준비할라면 또 힘든데 또 써먹고 그러면 또 준비하고..“ 그러니까 옆에 있는 여자 집사님이 그래요.
"아니 그게 목사님 일인데 그게 힘들고 귀찮다고 그러면 그 뭐가 목사님이 잘못된거죠."
그러고 두런두런 둘이서 얘기를 하는거예요. 천재가 노력하는 사람을 못이기고 노력하는 사람이 즐거워서 하는 사람을 못 이긴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말씀을 읽고 탐구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서 은혜를 받고, 감사하고 하는 이것이 목사에 마음에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말씀속에서 하나님에 진리를 계속 찾아낸 기쁨이 있어서, 아 이거를 빨리 가르쳐 줘야지, 이건 언제 가르쳐줄까 이렇게 마음이 되있어야지 아니 그거를 쥐어짜듯이 하나 만들어 달랑 먹고 아이 씨 그거 벌써 써먹었네 난 또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들면은 안되죠? 그렇지 않습니까? 지가 애미면은 밥을 먹기 싫어도 새끼 생각해서 꾸역꾸역 먹고 젖이 퉁퉁 불어서, 그래서 애가 물리면은 충분히 아이가 배 부를 수 있게끔 젖을 만드는 것이 그게 애미지 그렇지 않습니까? 준비해야 합니다. 정말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건전하고 좋은 설교집을 보고, 그걸 그대로 하면 안돼요. 그건 옳지 않아요. 먼저 자기가 읽고 충분히 은혜를 받으세요. 그 담에 그걸 덮고 한 번 자기 말로 풀어보는거예요. 그건 상관없어요.
예화도 다른 데서 찾아요. 신문 같은거 보다 좋은 예화 있으면 오리세요. 모아놓고. 텔레비같은거 보다 좋은 얘기 나오면은 적어놓으세요. 라디오 듣다가 재밌고 설교에 도움이 되고 노인네들 잠 깨게 해 줄 수 있는게 있으면 적어놓으세요. 그렇게 모아두고 그것도 안돼면 아예 예화집을 한 권 사셔도 괜찮아요. 그래서 어떻하든지 설교가 사람들의 수준에 맞게 되도록 정성껏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설교를 만들어 놓고 그리고 그것을 주일날 가지고 가서 펼쳐서 기도해야죠. 그럼 보십시요. 주일 낮예배 드리죠? 주일 오후예배 드리죠? 수요 예배 드리잖아요. 금요 기도회는 하는 교회도 있고 안 하는 교회도 있지만 어쨌든 공식적인 예배만 세 번이고 새벽예배 설교까지 있어요. 새벽예배 설교는 간단하게 메모한다고 치고 정식으로 준비해야될 설교가 세편이예요.
그러면 한 편에 3시간씩 어림도 없죠. 사실은 3시간 가지고. 그러나 그래도 짦게 잡아서 4시간 정도씩만 하루에 한다 그러면 12시간을 설교를 준비를해야 되는거에요.
4일동안 하루에 3시간씩은 써야된다 이거예요. 서재에 걸어놓고 나오면 안됩니다. 서재 없으시면 강대에 엎드려서 일어나지 말고 책상 펼쳐놓고 준비해야 됩니다. 그렇게 안하는건 직무유기입니다.
해놓지도 않고 어느날 나와 가지고 아무거나 휙 열어서 된소리 안된소리 그렇게 하고, 그거 안됩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나중에 마지막에 하나님앞에 전부다 계산해야 될 일입니다.
그래서 설교준비를 꼼꼼하게 하시라 그 얘깁니다. 두번째는 체험하라는 것이예요. 무슨 뜻이냐면 오늘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저가 뭘하러 왔다고요? 기독교선전하러 왔다 이야기 하지 않고 저가 증거하러 왔다 그랬습니다. 증거는 누가 하는 겁니까? 법정의 용어입니다. 이거는 법정에서 증인이 되려면 등거를 하려면 증인이 되야됩니다. 증인에 자격은 뭡니까? 대학을 나와야 됩니까? 증인의 자격이 뭡니까 대학을 나와야 됩니까? 아니죠? 박사학위 있어야 됩니까? 아니죠. 사람이 고상해야 됩니까? 아니죠. 그럼 뭐예요? 사건 현장에 있었던 사람, 그 사람이 증인이예요.
그 사람이 증인이예요. 어느날 사람들이 모여서 호랑이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자 호랑이 이야기 하실 분 한번 손들어 보십시요. 그랬더니 한 사람이 나와서 호랑이에 대해서 섬세하게 묘사를 하는 거예요. 호랑이는 보름달이 환하게 뜬 밤에 산 언덕에 자주 나타납니다. 옆에는 대나무가 세 그루 정도 서있고 그리고 앞발은 앞으로 두 개를 내밀고, 엉덩이는 뒤로 제낀체 고개는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눈은 등잔만하고 눈썹은 하얗고, 양쪽에 네개씩 수염이 펴져있습니다. 입을 쫙 벌린 혓바닥은 시뻘건 핏빛이고, 길이가 7센티쯤 되어보이는 송곳니가 달빛에 반짝거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감동을 안받아요. 이발소에 걸린 그림 얘기하는.. 근데 그 다음 사람이 나오더니 때는 1953년 8월이었습니다. 상급부대로 가는 다급한 전통을 가지고 저는 혼자 달밤에 태백산을 넘고 있었습니다. 산모퉁이를 막 돌아오는 그때,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기 시작하는 거예요.
호랑이에 '호' 자도 아직 안나왔는데 그 무슨 차이예요?
아까 그 사람은 이발소에 걸린 그 그림얘기하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진짜 태백산에서 호랑이를 만나서 죽다가 살아난 사람이예요.
그게 바로 증인과 증인이 아닌 사람에 차이예요. 그 여러분 잘아시는 박윤선 목사님이 저 아래서 50이 훨씬 넘으셔서 교수를 하시면서, 교회를 개척을 하셨습니다. 전 박윤선 목사님에 설교를 직접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만은 지금도 그 분이 설교를 하셨더라면 뭐 교회가 사랑의 교회나 온누리 교회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을거라는 그런 생각은 잘 안들어요. 그런데 그래도 성경을 설교하는 학자적 설교자 아니었습니까? 근데 그 교회에 문선명파 교수, 여교수 한 사람이 그것도 주일 낮에는 아니고 수요예배마다 아니 주일 저녁마다 출석을 했답니다. 그래서 주일에 밤마다 그 분과 예배를 드리며 교회에서 말씀을 들었는데 한 6개월쯤 지난 다음에 그 교회 부목사가 그 이화여대 교수였대요. 그래 지성인이니까 슬쩍 물어본거예요. 교수님 한 6개월 가까이 우리 박목사님 설교를 들어셨는데 뭐 좀 깨달아 지시는게 있습니까? 그랬더니 이 여교수 하는 말이 전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문선생 말씀이 맞는건지 우리 박목사님 말씀이 맞는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그게 뭡니까? 그렇게 연세드신 분이 저렇게 처절하게 설교시간에 목에 핏줄이 서도록 저렇게 외치시는데 저게 진리가 아니라면 저렇게 온 힘을 다해서 외칠 수 없을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바로 증인입니다. 설교할 본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닫고 가책을 받고 변화되고 그리고 심령이 새로워지고 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을때, 그때에 우리가 하나님에 말씀을 들고 딱 설때에, 원고 별로 필요없습니다. 배추장수보고 핸드폰 얘기하라고 하면 원고가 필요하지만 배추장수보고 배추 얘기하라고하면 무슨 원고가 필요합니까?
늘 보고 늘 느끼면서 사는건데요? 그게 증인입니다. 같은 목사로써 제가 여러분들에게 물어보는 겁니다. 우리 목사님들 많이 있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울어본적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에 말씀이 이거로구나, 나는 정말 무지하기가 짐승과 같구나 하나님이 이 천한 인간을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성질이 못되고 목회를 하면서도 마음이 강팍했는데 하나님에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깨뜨려지는 거예요.
주 여호와 능력에 주
내 영혼에 치료자
말씀으로 고치시네
주는 나에 치료자
인간은 영혼을 가진 동물이예요.
기도 많이 하는 목사님이 "기도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 많이 설명 안해도 가책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안하는 목사가 "기도 많이 해야됩니다. 못된 교인들 기도도 안하고"하면 말은 안하지만 저 깊은 속에서 '지는' 하는 반문이 생깁니다. 그게 권위예요. 그게 권위. 내가 주님을 만났는데 주님이 우리 보고 이렇게 살라고 그러시더라. 응? 그래서 나도 회개했다. 누가 온전한 사람이 있겠어요?
그게 진실한 기운으로 설교를 듣는 성도들에게 깊이 다가가는 거예요. 장시간에 설교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예요. 그렇게 증인이 되어서 그 본문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자기가 깊이 깨뜨려지고 혹은 큰 은혜를 받고 확신을 갖게 되었을때, 나와서 담대하게 도데체 누구 눈치볼 일이 있습니까? 쫓겨나 굶으면 주님을 위한 고난인데 말입니다.
그게 바로 증인으로써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근데 그 증언의 중심이 빛이어야 한다는 거죠. 누굴까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는 빛이 아니요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온 사람이라.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되는 것이죠. 저희 노회에 이번에 은퇴하신 목사님이 계세요.
은퇴하시기 한 6개월 전쯤 꿈을 꾸셨답니다.
밤중에 곤하게 자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대요.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가 범벅이 되어서 흐르는데 못 박히신 모습으로 나타나셨더래요.
깜짝 놀라가지고 새벽에 벌떡 일어나요. 어머니는 주무시는데 혼자 앉아서 섬찟하면서 아, 내가 내가 평생 무엇을 전했나? 새벽에 옷을 입고 예배당에 가셔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대요.
머리에 가시 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채찍에 피 흘리심은
누구에 죄 값인가?
마지막 피 한방울
날 위해 흘리셨네
깊은 밤에 예배당에 나가서 한 없이 울면서 당신에 목회를 회개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일들이 은퇴하기전 열심히 사역하는 우리와 같은 때에 그런 일들이 매일 일어났더라면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일은 다 부업입니다.
다른 일은 잘못하면 사람에게 욕먹을 뿐이지만은 이 진리를 전하는 일을 올바로 하지 못하면 사람에게 칭찬을 받아도 주님이 벌주실 것입니다.
목사면은 적어도 일주일 한 번쯤은 성경을 읽다가 거기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 수 있어야죠.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모르는 거는 주석을 찾아보고 꼼꼼히 정리해서 하나님에 말씀에 건져올려서 가루로 만들어서, 기도에 눈물로 반죽을 해서, 성령에 아궁이에다 구워서 그래서 주일이면 가지고 와서 하나씩 성도들에게 넣어주고, 그렇게 일생을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많이 모이든지 적게 모이든지, 노인네만 있든지 젊은이들이 구름떼같이 오든지, 그렇게 하나님에 말씀을 충성스럽게 섬길려고 한 그 사람이면은 하나님이 작다고 안하실겁니다.
사랑하는 목사님들.
우리 이거 하나 만큼은 주님 앞에 인정받는 목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