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신학 (신나5장)
녹취자: 김경애
목회를 하고 사역을 하다보면 머리가 굳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극을 받아야합니다. 마침 어제 비행기를 타고 오는데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퍼즐을 맞추기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왜 하겠습니까? 재미있어서 할 수도 있겠지만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재미가 없어도 복잡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학적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해보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아까 나온 이야기보다는 훨씬 쉬운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양과 신학에 대해서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나누어드린 책의 Chapter 5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정리를 했으니까 강의를 들으시고 집에 가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열어보시면 되겠습니다. 우선 보겠습니다.
‘신앙과 신학’ 원래 이 책은 신학공부를 하는 신학대학원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썼고 이미 공부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목회자들 말고 그래도 뭔가 공부를 하면서 신학적인 고민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썼습니다. 그래서 이 Chapter 4에서는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신학에 대해서 다루고 Chapter 5에서 신앙과 신학 다시 말해서 신학을 함에 있어서 신앙은 얼마나 중요하고 신앙생활을 해나감에 있어서 신학이 얼마나 소중한지의 조화를 한번 설명해보고자 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없어서 빨리 빨리 나가겠습니다. 순서는 들어가는 말, 신앙의 중심, 이성과 신앙, 지식 획득의 두 수단, 신앙과 이성의 관계 해석사, 지성과 의지, 좋은 신학 함, 성경의 사람, 진리에 부합하는 사람,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람, 맺는말 이런 순서입니다.
이 신학은 신학과 신앙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하면 많은 신앙을 경험한 것이 질료라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질료에 형상을 부여해서 구체적인 지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신학의 효용성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주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비유하자면 신앙을 풍부하게 경험하는 것이 커다란 밀가루 반죽이라면 신학은 무슨 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가지고 반죽을 떼어내어서 구체적으로 빵을 만들고 그것을 구워내는 것이 사물에 대한 지식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신앙의 풍부한 체험이 없으면 신학이 있어도 소용이 없고, 그 다음 신학이 있어도 신앙의 체험이 없으면 빵을 빚을 수 있는 기술은 있는데 반죽이 없는 것과 같고, 신학이 없고 신앙의 체험만 있으면 반죽은 큰데 어떻게 해먹어야할지를 모르는 상태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료가 있고 형상을 마음속에 가지고 기술을 가지고 손으로 이것을 만들 때 구체적인 빵으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신학이 너무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고 그 사람이 신학을 공부해서 목회자가 되는 것과 함께 자기 자신이 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사람이 되어서 인생을 살아가야 되는데 그것들이 모두 신앙을 토대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중심’ 여기서 신앙과 이성의 문제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지식을 획득하게 하셨습니다. 그 지식을 획득하게 하실 때 두 가지 수단을 주셨는데 감각으로 알 수 있는 사물과 사실들에 대해서는 이성으로 그것을 알도록 하셨고, 그 이성은 보고 듣고 맛보고 감각하는 것들을 통해서 정보를 받아들여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없는 초월적인 사실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라든지,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이라든지, 이런 인간의 감각을 초월하는 사실들에 대해서는 신앙을 통해서 지식을 받아들이도록 만드셨는데 타락한 후에 이 신앙이 다 붕괴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타락했어도 인간은 여전히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에녹도 성을 쌓고 하는 아주 발달된 기술을 보여주고 오늘날 기술은 자고나면 폭발적으로 기술이 개발되어서 인류 역사 전체에서 생성된 모든 지식을 CD로 구우면 지구에서 달까지 가는데 그 어마어마한 지식이 최근100년에 형성된 것이 100전부터 인류역사 모든 것을 합친 양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지식은 지식을 토대로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식을 어떻게 쓸 것인지 그것은 이성 자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참된 것을 상실합니다. 위기입니다.
이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는 인간이 지식을 얻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뮈토스와 로고스입니다. 뮈토스는 신화를 의미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나오는 로고스는 이성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로고스는 우리가 이론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정보를 주지만 ‘죽음 이후에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이 어디로부터 나왔나?’ ‘인간의 영혼은 무엇인가?’ 이런 것들은 이성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뮈토스를 통해서 제공을 받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뮈토스의 지식을 로고스의 지식보다 우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인간이 이성으로 답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 신화를 통해서 그 근거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이성과 신학에 관한 견해는 합리주의의 견해와 신앙주의의 견해로 나뉩니다. 합리주의는 이성의 법칙성을 따르는 것이라면 신앙주의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그래서 성경 자체 때문에 성경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신뢰, 그것을 통해서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 신앙주의입니다.
루크레티우스(Lucretius)라는 인물이 있는데 여기에 보면 우리말로 번역된 책이기는 하지만 대우고전총서에서 나온 ‘사물의 본성에 관해서’(De rerum natura) 라는 책입니다. 이 책이 발견된 것이 1417년입니다. 책 사냥꾼 포조 브라촐리니(Poggio Bracciolini)라는 사람에 의해 이태리에 있는 어느 깊은 수도원에서 발견됩니다. 그런데 이 책의 발견이 르네상스의 결정적인 시점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을 제가 읽어보니까 주전 50년경의 사람인데 그런데 다 읽고 나서 마지막 감상이 무엇이냐 하면 유물론적 기계주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가진 유물론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당시에 사람들이 종교적인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하던 자연현상이 엄격한 질서와 규칙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밝히고 예측할 수 있는 인과관계 속에서 모든 사물들이 생성되고 현존하고 소멸하는 것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런 종교적인 경외의 대상으로 여겼던 모든 자연현상에 대한 것들을 기계론적인 세계관으로 모두 설명을 해버립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읽어도 충격적인데 지금으로부터 이 천 년 전에 이런 책이 읽혀졌다고 할 때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런 책은 금서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다가 1417년에 어느 수도원에서 발견되고 이 책들이 다시 리프린트 되었을 때 그때에 사람들은 열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가 아주 단순한 기계적 법칙이 작용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신들이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영역에서 사실은 신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자연의 엄격한 질서와 이런 것들이 구축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위에도 신이 없다고 주장하든가, 신을 그 위로 추방하든가 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것입니다.
합리주의는 최종 진리 판단의 근거가 이성의 합리성인데, 합리성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런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나왔고 이 결과는 또 어떤 것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하나의 Causality 인과관계의 연속을 이야기합니다. 이성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얻은 지식은 거절하거나 낮은 가치를 부여하고 이것이 기독교적으로 적용될 때에는 성경 계시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이해를 신앙보다 훨씬 우선시하는 것이 합리주의입니다. 그렇게 필터링을 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주의는 신앙이 아니라 계시에 대한 믿음으로 파악한다고 보고 초월적인 사실에 대한 파악은 신앙에 의해서 알려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근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 믿음으로 그 계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는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주의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160년경부터 220년까지 살았던 사람이고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비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195년에 이 사람이 35살이었는데 순교자의 영혼의 영향으로 기독교인이 됩니다. 교회사 최초로 라틴어를 사용한 사람이었고, 라틴어와 희랍어를 자유롭게 사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위일체(trinity)라는 용어, 곧 트리니타스(trinitas)를 비롯해서 페르소나(persona), 수브스텐시아(Substantia)를 비롯한 굉장히 많은 양의 신학용어를 만들어냄으로써 이후의 기독교신학의 주도권을 서방신학이 갖게 하는 중요한 지적인 토대를 놓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굉장히 역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사람은 순교하기 위해서 안달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거짓말하는 것도 안 된다.’ 심지어는 ‘핍박하는 사람들을 피하는 것도 죄다.’ 라고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남긴 유명한 이야기가 ‘예루살렘과 아테나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입니다. 철학과 신학의 무관계성을 강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책『그리스도의 성육신』(De Carne Christi)이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태어나셨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아들이 죽으셨다는 사실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믿을만합니다. 무덤에 묻히신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확실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신앙 때문입니다.
올바른 관점은 이성을 통해서는 신앙의 필요를 알게 되고 이성의 목표는 이성의 한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교만해지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신앙을 통해서는 명제로 받아들인 계시는 ‘너희는 이렇게 믿어라’ 할 때 ‘왜요?’ 라고 하지 않고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신앙을 통해서 명제로 받아들이는 계시들을 신앙을 통해서 질서를 잡고, 이성을 통해서 그것들을 수납하면서 믿음의 규칙과 생활의 교훈에 대한 신적인 명제들이 견고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신학의 필요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이성은 오만한 것이고 이성의 필요를 인식하지 못하는 신앙은 게으름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신앙으로 어떤 명제를 받아들이게 되면 -안셀무스가 주장하는 것이기도 한데- 우리 인간의 마음이 부패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새롭게 느낄 수 있어야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구나! 아멘.’ 하면서 은혜를 받는 첫 회심 때에는 그런 것들이 마음에 엄청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항상 똑같이 있는 게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구원받은 것은 기본이라고 치고 ‘나는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이래서 힘들고, 저래서 괴롭고, 나는 왜 고난의 길을 가고 있는걸까?’라고 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이미 믿은 진리들이 우리 안에서 친숙하게 느껴져야 하는데 그 비결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미쁘다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다 함이로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로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에게는 순교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깊은 은혜의 감격이 있을 때 그 지식은 새롭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미 받은 진리가 친숙하게 되는 두 번째 비결은 신앙에 의해서 받아들인 명제와 명제가 어떻게 필연적으로 연결되는지를 이성을 통해서 깨닫게 될 때 그 명제가 주는 감격은 놀랍게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은혜를 받으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에 다시 감격하게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왜 죄인들을 위해서 죽으셨을까?’를 대속의 교리를 통해서 이해하게 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고 ‘정말 그분이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하나님의 지혜구나!’ 하는 감동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혜와 지식, 신앙과 이성, 탐구와 하나님의 사랑, 이것은 항상 병행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신학을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우리 교회의 공과 책입니다.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교인들에게 해당하는 것인데, 신앙생활 전체는 신학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 신학을 신앙과 이성, 사랑과 참 지식으로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신앙과 이성의 관계 해석사인데 이것은 100% 신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그린 것입니다. 이 도표를 보는 사람에 따라서 ‘꼭 저렇게까지 봐야하나 나는 저렇게까지 올라가지는 않는다. 나는 오히려 내려가고 싶다.’ 등등의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보는 한 견해를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신약성경의 성령강림사건 이후에 초대교회는 신앙과 이성 사이에 균형을 잡습니다. 그러다가 초대교부 시대에 와서는 신앙 우위의 상황으로 넘어옵니다. 이때 아주 극단적인 위치에 처해있는 것이 몬타누스주의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가 정통 가톨릭에서는 시성이 안 되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이단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사람의 신학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어떤 내용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교부는 몬타누스주의자로서 일생을 마칩니다. 반면 극단적으로 이성에 치우쳤던 사람, 이성을 중시했던 사람들은 누구냐 하면 영지주의와 마르키온주의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몬타누스주의와 정 반대에 서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우위로 가는 듯 하다가 약간 조화를 이루는데, 그때의 중요한 인물들이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모든 목회자와 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아우구스티누스를 한 3년 정도 공부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청교도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제가 좋아하기 힘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스개로 나는 청교도를 좋아하지만 청교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은 좀 다릅니다. 어거스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많지는 않지만 그분들을 만나면 다릅니다. 특히 외국 사람들도 어거스틴에 깊이 심취한 사람들은 인격과 삶이 다릅니다. 한번 도전해보십시오. 이 사람은 책을 250권정도 썼는데 다는 읽지 못한다고 해도 중요한 작품만이라도 읽어보십시오. 저는 말할 수 없는 감화를 받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글을 쓴 사람이 천재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냥 뛰어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 같은 사람하고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책 두 권을 읽으면서 ‘이 사람은 천재입니다.’ 라고 제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거스틴은 대단한 인물이고 이후의 모든 신학자들이 어거스틴의 품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신학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철학자들까지 그렇습니다. 전에도 있었지만 근대에 들어서 특히 현대에 들어서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일부 견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이 나오지만 아우구스티누스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모두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배운 것으로 비판합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 이후로 약 160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선과 악, 존재와 허무, 시간과 영원, 의지와 자유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어거스틴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사색할 수 없는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수도원주의가 전개됩니다. 교부들의 신학과 철학을 종료하고 깊이 있는 신학을 전개하는데 신앙 중심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그러다가 스콜라주의가 전성기에 도달하면서 이슬람철학이 나옵니다. 아비첸나, 아베로에즈와 같은 이슬람 철학자들이 등장합니다. 이슬람 철학이 꽃피우게 되고 그것의 영향으로 중세 스콜라주의가 등장하게 된 데에는 긴 사연이 있습니다. 짧게 이야기하자면 네스토리우스파들이 축출되고 이 사람들이 스페인을 비롯해서 각지로 피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설교자들이 탈바꿈을 하게 되고, 7세기경에 아랍이 쳐들어오면서 스페인을 점령하게 되는데 이 아랍 사람들은 굉장히 똑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여기서 박멸해서는 나라를 경영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기독교문화를 일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보았더니 놀랍게 기독교가 로마에 의해서 국교가 되면서 금서로 지정되어서 축출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의 서적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이 발견됩니다. 거기에 있는 엄청난 지식의 보고들을 발견하고 그 가치들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알고 싶어 하는데 문제는 그것이 그리스어입니다. 아랍권에는 그것을 번역을 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꽉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네스토리우스파의 신앙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어도 할 줄 알고 아랍어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어로 된 문헌들을 번역해냄으로써 거기에 나오는 학문, 철학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슬람의 지성적인 결과물들을 구축해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보게 되면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식에 관해서, 그리고 그 지식을 다루게 되는 것에 대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도구를 내놓았다는 것입니다. 형이상학, 신학, 기하학, 자연학, 시학, 분석론 등등. 모든 지식들을 분류하고 체계화할 수 있는 도구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사람들은 그 유산들을 폐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플라톤이 훨씬 더 기독교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책들을 모두 불사릅니다. 그러다가 스페인을 침략한 이슬람들이 이를 발견하였고 네스토리우스파의 신학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존중하고 대우를 해줍니다. 그리고 기독교신앙을 갖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 자신들의 통치를 받으면서 이 문물들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일들을 시킵니다. 속설에 의하면 아랍인들이 얼마나 그 사람들을 우대했는지 그리스문헌을 양피지에 번역해오면 그 양피지무게 만큼 금을 달아서 주었다고 합니다. 당시 지혜의 집이라는 곳에 도서관을 세웠다는데 그 당시에 장서가 약 400,000권이었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약 800,000권이었는데 그 당시에 그 정도의 책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양입니다. 그 당시에 어마어마한 도서관이라고 해야 1,000권내지 2,000권정도 밖에 없는 것을 생각해봐도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그런 작업들을 이후 다시 재건한 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메디치가입니다.
어쨌든 이 사상들을 받아들이면서 이슬람을 체계화하는 일들이 시작되는데, 대표적인 두 인물이 아비첸나(Avicenna), 아베로에즈(Averroes)라는 인물입니다. 그 사람들 특히 아비첸나는 10세기의 모든 학문을 통달했다고 여겨지는 사람입니다. 철학, 역사, 과학, 심지어는 의학까지 모든 학문을 통달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모든 지식들을 빨아들여서 자기의 것으로 재해석해서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학적으로 엄청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리스의 철학,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지는 순서대로 대학이 세워집니다. 이슬람에는 10세기중반에 대학이 서기 시작합니다.
10세기 경 십자군전쟁이 일어나는데 그때의 서방 사람들의 생각은 저 이슬람은 무지의 어둠속에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여겼고 그들을 침략했습니다. 1차 십자군전쟁에서는 이깁니다. 그때에 이슬람 사회를 들여다보니까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엄청난 과학 수준을 가지고 있었고, 깜짝 놀랄 정도로 사회가 질서정연하고 도덕교육에서부터 시작해서 과학적 기술까지 아주 잘 체계가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학이 있었습니다. 서방의 사람들은 이 이슬람 사회를 이렇게 만드는 원천이 무엇인지 캐들어 갔고, 그 해답은 그리스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랍어로 된 아비첸나, 아비로네스의 저작을 통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론을 가지고 와서 기독교 신학을 재구축하니까 놀라운 체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이해 없이는 학문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지성주의로 굉장히 치우치게 되고 그런 영향을 받아서 금자탑을 이룬 사람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입니다. 그가 쓴 책이 바로『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이라는 책입니다.
그러다가 지각변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소위 이야기하는 실재론이 공격을 받고 유명론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캄이나 니콜라스 쿠사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신앙 쪽으로 가게 되고 종교개혁시대에 와서 지식과 경건이 결합되고 정통주의 때 이성주의로 치우치다가 여기에 대한 반발로 루터교내의 운동, 네덜란드의 제2종교운동, 얀세니우스운동, 라바디주의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18세기 영국의 부흥운동은 신앙 쪽으로 치우친 것을 보여줍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한쪽에서는 극단적인 신사도운동, 한쪽에서는 엄정한 이성주의, 이런 것들이 혼재하고 있는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신약성경 시대에는 이성과 신앙이 균형을 이룹니다. 물론 그 안에 그렇지 않은 교파들도 많이 있어서 사도 바울이 이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둘이 균형을 이루게 되면 지식과 사랑이 결합되고 그것이 경건을 형성하고 그 경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부시대 때에는 신앙우위론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꾀하는 것이 교부시대의 분위기였습니다. 플라톤 철학을 사용해서 신학의 틀을 세웠고 이단들의 출현과 정통신앙에 대한 공격이 시작됨으로써 기독교신학의 구체화, 정교화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을 포함해서 많은 교부들은 기독교신앙을 그리스처럼 특히 플라톤철학의 궁극적인 완성의 상태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플라톤철학을 너무 과도하게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실제로 플라톤을 읽어보면 그 당시 기독교인들이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오리게네스의 ‘원리에 관하여’ 라는 책을 보면 이것이 과연 신학자가 쓴 책일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플라톤주의에 온전히 물들어있는 심미주의적 철학책입니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플라톤의 제자 가운데 플로티누스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쓴 책 가운데 ‘엔네아데스’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읽어보면 마치 조직신학책 같습니다. 이런 것들에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의 제자가 오리겐입니다. 사실 (철학을 도구삼아) 신학이 기독교신앙을 구체적으로 체계화하는 조직신학적인 진술들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 그 사상을 받아들이느냐 입니다. 방법론적으로 사용하느냐? 기독교신앙이 잠식될 정도로 그 내용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들이 남아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클레멘스입니다. 150년경의 사람이고 초대교회의 교부이고 알렉산드리아학파의 기독교신앙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학을 세우는데 있어서 플라톤의 철학을 과도하게 의존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기독교 자체에 별로 토대가 없으니까 당시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철학들이 플라톤의 철학에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해서 기독교를 말해야지만 소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선교적인 의도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은 오리겐(Origenes)입니다. 기독교 초대교회의 교부이고 신학의 조직적 체계를 세운 초기인물입니다. 이단에 맞서서 기독교 사상을 변증했고 굉장히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와 철학의 접목을 시도하는 가운데 플라톤의 사상을 지나치게 의지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신앙과 이성인데 몬타누스주의가 신앙 쪽에 가있던 영지주의, 마르키온주의는 이성주의에 있는 것입니다.
서양사상의 바다로 나아가는 수문의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앙과 이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하면 신앙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주시는 지식획득의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신앙으로 지식을 받아들인 후에는 이성으로 탐구해가며 왜 그 신앙이 참 합리적인 것인가에 대한 고백을 하게하는 것이 말하자면 하나님이 신앙을 통해서 진리를 알게 하시는 이유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이 쓴 책 가운데 유명한 책이 있는데 비교적 초창기 작품입니다.『참된 종교』(De Vera Religione)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참된 철학에 관해서’인데 그러면서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권위(auctoritas)와 이성(ratio)의 관계로 설명합니다. 권위로써 주어지는 진리에 대한 결론을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계시를 주신 목적입니다. 그 권위는 무엇이냐 하면 ‘네가 이 내용은 이성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너를 위해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사랑하는 나를 너는 신뢰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때에 마치 부모가 도덕적인 판단력이 없는 자식들에게 도덕원칙을 교육하듯이 그런 권위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식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계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에 대해서 신뢰를 가지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니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에 대한 치료는 권위와 이성으로 나뉘어져있기 때문이다. 권위는 신앙을 요구하고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성을 향하여 준비되게 한다. 이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해하고 인식하도록 이끈다. 이성은 전적으로 권위를 배제하지 않으며 특히 믿어야할 대상과 관련해 생각하자면 권위는 더욱더 배제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성에게 이미 명백하게 알려진 진리 그 자체는 최고의 권위를 지닌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신앙은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 지식을 얻는 수단이 되고 이성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진 지식을 올바른 체계를 세우는데 도움을 줍니다. 시간이 흘러서 어거스틴 후에 수도원주의가 등장하게 되는데 신앙 우위로 많이 흐르게 됩니다. 물론 수도원에서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인물들이 나와서 후에 이성 쪽으로 가게 됩니다.
중세로 가서 안셀무스와 아벨라르두스의 이야기를 좀 더 보겠습니다. 먼저 안셀무스 같은 경우는 어거스틴이 이야기했던 그런 원칙들을 생각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쓴 3부작『모놀로기온』(Monologion),『프로슬로기온』(Proslogion),『하나님은 왜 인간이 되셨는가?』(Cur Homo Deus)와 같은 책들 속에서 시도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이런 것입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믿지 않으려고 내가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잘 믿기 위해서 나는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고 싶습니다.’ 이성이 활동함으로써 하나님을 무엇을 믿어야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참된 믿음은 지해(知解)를 추구하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깁니다. 그리고 ‘믿기 위해서 나는 탐구하고 또 탐구하기 위해서 믿는다.’ 그러면서 신앙의 조화를 이야기합니다.
다음으로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Bernard of Clerevaux))를 보겠습니다. 이 사람은 신비가로 알려져 있는데 신비가일뿐만 아니라 아주 엄청난 신학자였습니다. 그의 전집을 보면 얼마나 신학적이고 철학적으로 깊이가 있는 인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고 특히 칼빈의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교리’(unio cum Christo)에 있어서 이 사람의 영향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할 때 특별히 신랑과 신부로 묘사하는 가르침이 이 끌레르보의 베르나르도에게서 어떤 신학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교부들은 신학적인 유산을 종합적하고 분석해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습니다. 수도원은 교류와 사상의 탐구보다 예배와 금욕적 실천을 강조하는 신비주의의 본거지가 되게 됩니다. 이것이 나중에 수도원이 잘못되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중세시대의 페트루스 롬바르두스(Petrus Lombardus) 이 사람은『명제집』(Sententiarum)이라는 것을 씁니다. 그것이 기독교역사에서 초창기의 조직신학 책입니다. 물론 어거스틴에게서도 발견되지만 그것은 너무나 얇고 분량이 적은데 이 페트루스 롬바르두스가 쓴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명제집은 표준서로 받아들여지고 이후의 모든 신학자들은 그 명제집을 해설함으로써 자기의 신학적 역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신학자로 데뷔하게 됩니다.
또 헤일즈의 알렉산더(Alexander of Hales), 아퀴나스의 스승인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신학자들도 등장합니다. 이들은 이성주의로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이후 보나 벤추라(Bonaventure)를 거쳐서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에 와서는 이런 실재론이 지배하는 신학적인 중세의 흐름에 대해서 반기를 들게 됩니다. 스코투스는 나름대로 신앙과 신학의 어떤 중심을 잡으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도덕과 의지의 결정론에 있어서도 그때까지 유행하던 아퀴나스주의적인 해석에 도전하면서 유명론(nominalism)이라는 것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때는 신앙과 이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목표였고 스콜라주의적인 신학 방법론은 초월적인 진리들이 이성에 의해서 파악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신앙의 내용을 이성의 이해를 통해 학문적인 내용으로 만들어서 사상의 체계 안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성경보다 오히려 철학서들이 더 중요하게 교과서로 다루어지게 됩니다. 그때에 엄청난 역할을 했던 거대한 산과 같은 인물이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기독교에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전에 있는 많은 것들을 수렴해서 결국은 자기화 시켜서 새로운 사상들을 전수했듯이 아퀴나스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책『이교도대전』(Summa contra gentiles) 같은 책을 보면 그가 기독교뿐만 아니라 이교에 대해서도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이 사람은 굉장히 뚱뚱한 사람이었습니다. 뚱뚱했는데 성격이 그렇게 온화했다고 합니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의 젊은 날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아퀴나스의 아버지는 굉장히 돈이 많은 귀족이었습니다. 아들이 세상일에 너무 관심이 없고 공부하고 기도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너무 실망스러워서 아주 예쁜 여자아이를 구하여 ‘너의 사명은 우리 아들을 유혹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아들의 방에 들여보내는데 젊은 청년 아퀴나스는 다가오지 말라며 난로에서 불타는 나무를 하나 꺼내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며 내쫓고 숯으로 벽에다 십자가를 그리고 기도를 하고나서 읽던 책을 계속 읽었다고 합니다. 평생 그렇게 살았는데 이 사람이 단 하나의 결점이 있었는데 먹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뚱뚱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뚱보 박사였습니다. 의자에 한번 앉으면 일어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정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일화도 읽었습니다. 아퀴나스가 어느 날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종 아퀴나스야 너는 무엇을 원하기에 그렇게 금식하고 고행을 하며 기도를 하느냐?’ 아퀴나스가 대답했답니다.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나에게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느냐? 너에게 무엇을 줄까?’ ‘하나님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주님 자신을 제게 주옵소서. 주님은 나의 것이고 나는 주님의 것이옵니다. 아멘.’ 그런 일화를 많이 남긴 인물이었습니다.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어마어마한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내려다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성과 신앙은 모순될 수 없습니다. 이성만으로는 초월적인 진리를 파악해서 구원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신앙이 필요합니다. 은혜는 창조 시에 주어진 자연본성을 완성하는 것이지 배척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슬람철학이 유입되면서 기독교신학과 철학은 더욱 상세화되고 체계화됩니다. 지성주의를 따르는 경향이 더욱 심화되었고 성경계시에 대한 신앙보다 이성의 출원된 철학적 논증이 높은 가치를 가지면서 신앙과 이성 사이의 균형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둔스 스코투스에 와서 실재론과 중세 스콜라주의의 비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지나친 지성주의의 한계를 제시하며 신학에서 신앙의 위치와 필요성을 재정립합니다. 그래서 중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종합하며 유명론을 도입하게 됩니다.
중세 후기 13세기에서 15세기경으로 오게 되면 중세의 실재론은 완전히 붕괴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에 윌리엄 오캄(William of Ockham) 같은 사람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로 인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오캄의 면도날’(Ockham's Razor)입니다. ‘실체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니콜라스 쿠자(Nicolas of Cusa)와 같은 사람도 나타납니다. 이 사람은 에큐메니칼주의자이고 벌써 그 시대에 종교다원주의자였습니다. 어쨌든 이 사람들은 다 파문을 당합니다. 윌리엄 오캄이 과격한 유명론을 따르면서 보편자의 실재 자체를 부인합니다. 보편자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를 들자면 이것은 소위 이데아입니다. 인간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어떤 한 인간이 좋다 나쁘다라는 생각을 이상적인 인간의 상을 놓고 개별적인 그 인간을 비교하게 되어 있는데 과연 그런 보편자인 것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유명론자들은 던집니다. 예를 들자면 개가 있다 치고 개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개의 원형인 이데아가 있고 그 속에서 개가 새끼를 낳으면서 여러 개별적인 개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그것은 실재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상상 속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관 자체가 그렇게 변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실재가 저 먼 세계에 있고 여기에 있는 것들은 그림자에 불과한 것인데, 실재로부터 와서 그림자처럼 날뛰고 살다가 쓰러지면서 그 원래의 실재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모든 삼라만상의 생성과 회귀의 한 원리라고 보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성과 계시를 뚜렷이 구분하고 이성과 신앙은 조화를 이루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이성은 신앙으로 극복되어야할 문제이고 못박혀야할 것들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성의 폭압에 의해서 억눌린 신앙의 지위를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참된 기독교신앙으로 돌아가는 관건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세기 정도 후에 쿠자의 니콜라우스 같은 경우에는 유명론사상을 신플라톤주의와 결합시켜서 엄격한 절대주의적인 중세신학에 유연한 상대주의를 도입하면서 에큐메니즘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의 다원주의적인 생각을 가지면서 접근하게 됩니다. 오늘날의 가톨릭이 타종교에 대해서 굉장한 에큐메니칼한 종교가 됩니다. 이런 것들이 어느 한순간에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이런 전통 가운데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시대로 옵니다. 루터(M. Luther), 츠빙글리(Zwingli), 피터 마터 버미글리(Peter Matyr Vermigli), 이런 사람들의 시대에 오면서 이성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이후 멜란히톤(Melanchton), 칼빈(J. Calvin) 같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 프란시스 튜레틴(F. Turretin) 같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종교개혁시대에는 계시로서의 성경의 가치를 발견하고 교부들을 통해서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스콜라주의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신학의 사변을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이성을 신앙 아래 복종하게 하여 신학탐구를 보조해야할 도구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다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윌리엄 오캄이나 쿠자누스 같은 사람의 사상에 열광했던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16세기 17세기의 전통주의 시대에는 이렇게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적 입장이 상세화되고 체계화되며, 철학과 학문에 대해서, 일반학문에 대해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제가 실제로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무엇을 가르쳤을까 하고 궁금해서 커리큘럼을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고등과정(Schola Publica)와 초등과정(Schola Privata)라는 것이 있었는데, 후자는 7살부터 시작해서 17살까지 다니는 학교입니다. 초, 중, 고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우리나라의 신학교 학부부터 시작해서 대학원까지의 6년 정도의 과정입니다. 깜짝 놀란 것이 신학교 과정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2/3가 인문학입니다. 심지어 칼빈 아카데미에서 법률학과 의학까지 가르쳤습니다. 그 커리큘럼이 칼빈 생전에 짜인 것입니다. 그 시대의 어느 역사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중세교회에서 이탈해 나와서 제네바 아카데미 정도의 그런 높은 학문성을 제공받을 수 있는 개신교의 대학이 거기가 유일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왔고, 후원자나 기증자들도 많아서 유럽의 최고의 학자들을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도 화려한 교수진이었고,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 로마의 문헌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후 그 위에서 신학을 했는데 신학과목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프란시스 튜레틴은 신앙과 이성은 진리를 깨닫는 수단이긴 하지만 그 지위가 다르다고 보았습니다.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의 세 범주를 이야기했는데 이 사람은 아마 이런 것을 가장 잘 구분해내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감각적인 사물들은 ‘감각’(sensum)으로 하고, 지성적인 사물들은 ‘이성’(rationem) 으로 인식하며, 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들은 ‘신앙’(fidem)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면서, 이 세 가지 감각이 제대로 살아서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인간이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7-18세기의 경건주의가 루터교 내의 새로운 운동, 네덜란드의 제2 종교개혁 운동, 안세니우스 운동, 영국의 부흥운동으로 나타나고, 반대 급부로 이성에 치우친 소키누스주의(Socinianism)가 등장하게 됩니다. 얀세니우스(Jansenius)라는 인물은 신학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주의를 표방하는 사람이었고 인간의 원죄, 하나님의 은총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강조했고 엄격한 금욕을 강조하며 하나님과의 연합에 대한 갈망과 끊임없는 자아 죽임의 실천을 중시했습니다.
라바디(Jean de Labadie)는 네덜란드 개혁파 경건주의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개혁주의적인 요소를 지녔고 실제로 이 사람이 제네바에서 칼빈의 아카데미에서 잠깐 공부를 했고 개혁주의적인 요소를 지니게 되었고 포르루아얄의 기독교와 개혁파 경건주의를 조합시킨 인물이었습니다. 포르루아얄(Port Royal)이라는 것은 파리 근교에 위치한 시토수도회 소속의 대수녀원입니다. 개혁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얀센니우스주의의 본산이었습니다. 루이14세의 박해로 1710년에 폐쇄되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어거스틴적인 신앙과 신학의 조화 그리고 통합적인 세계관들, 경건 이런 것들을 추구했습니다. 이성과 신앙의 관계에서 균형추를 이성 쪽으로 옮기게 되었고 17세기 중반까지는 핵심적인 가치들을 공유하는데 발전했지만 이후에는 훨씬 말하자면 반신학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데카르트와 로크가 등장하는데 이런 사람들도 신앙의 강조를 그냥 비합리적인 요소로 간주하면서 이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계몽주의가 반대한 것은 종교의 초월적인 근거와 정당성이었고, 그래서 계몽주의자들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그들이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이루려고 했던 것인데 그것은 전통적인 기독교가 아닙니다.
칸트에 와서는 종교적인 이상을 신학이 아닌 순수 이성으로 도달하는 도덕적 가치에 찾아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비신화화, 재신화화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비신화화는 무엇이냐 하면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는 신화적인 모습들을 먼저 제거하고 도덕적인 교훈을 찾아내고, 우리가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영원한 판단기준이나 근거에 대해서는 다시 하나님이 있다고 상정하고 거기서 가치를 결정짓는 재신화 작업을 통해서 도덕성을 갖출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신앙과 지성은 이렇게 객관적인 지식과 주관적인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경건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헨리 스쿠걸(Henry Scougal)의『인간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이라는 책을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조지 휘트필드가 이 책을 읽고 회심을 하게 된 책입니다. 여기서 그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계속 넘어가겠습니다. 인격의 세 요소가 있는데 이성, 감정, 의지라고 했는데 넘어가겠습니다. 감정은 사실은 이미 의지 쪽에 들어가 있다고 보고 그래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인간의 영혼의 두 가지 기능을 보유할 수 있는데 인식할 수 있는 기능, 어떤 쪽으로 의지를 갖는 기능, 이 두 가지 기능을 가지고 사물들을 판단하고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마음이 끌리거나 배척하게 되는 것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책『신앙 감정론』(Religious Affections)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성과 의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토마스주의적 주지주의가 있는데 이것이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것이고 올바르게 알면 올바르게 행한다는 것입니다. 둔스 스코투스의 경우에는 주의주의입니다. 넘어가겠습니다. 스코투스적 주의주의입니다. 지성에 대한 의지를 독자적 우위성을 주장하고 진정한 자유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의지의 자유라고 보았습니다.
좀 복잡한 논쟁인데 프란시스코 수아레즈(Francisco Suarez) 같은 사람이 의지의 중도개념을 이야기합니다. 의지는 지성이나 다른 것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중도적인데, 이것이 여러 가지 이론들로 발전하게 되는데 오늘날의 소위 이야기하는 개방신론의 뿌리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중간지식이론으로 루이스 데 몰리나(Luis de Molina)도 있습니다. 인간이 무엇을 선택할지는 자유에 맡겨졌지만 무엇을 선택해도 하나님은 새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선택지와 선택의 결과를 하나님이 알고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론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의주의입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정통적인 지성과 의지에 대한 견해입니다. 선한 일을 했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의지를 움직이는 것이고, 악한 일을 했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에 우리들이 죄를 짓습니다. 따라서 선을 행했을 때에는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받으시지만 악을 저질렀을 때에는 하나님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인데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의주의의 전통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과의 의지의 일치에서 오는 전인의 자유이고 하나님의 의지의 완전한 일치는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지성과 의지에 대한 어거스틴의 견해입니다. 이렇게 해서 신앙의 자리는 지성과 감정, 의지 어느 하나가 아니라 마음에 있으며, 거기서 지성, 감정, 의지가 작용하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붙잡힐 때에 비로소 올바르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교회, 이웃, 자연과 관계를 갖게 하는데 여기에서 인간의 모든 덕스러운 삶이 나온다고 보는 것입니다.
좋은 신학 함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신학의 내용을 올바른 방식으로 습득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신학은 학문이고 그 학문의 동기는 신앙입니다. 신자의 삶 전체가 넓은 의미에서는 신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세속주의와도 싸우고 죽은 전통주의도 거부하고 불경건한 부흥주의도 경계하면서 참된 사상에 붙잡혀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화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그런 점에서 성경의 사람이어야 하고, 성경의 진리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며, 그것을 체험하고, 어떤 사상 속에서도 확신과 강인함을 가져야한다는 것입니다.
호레이셔스 보나(Horatius Bonar)는 알미니우스주의자지만 아주 전설적인 영국의 목회자였습니다. 그가 쓴 책 속에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청교도들을 회상하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적들이 시비를 걸며 반대하고 소심한 친구들은 주저할지라도 그들은 앞으로 돌진했으며 난관과 반대를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소심함이 유익한 많은 문을 닫아버리며 고귀한 기회를 잃어버리게 한다. 어떤 벗도 설득할 수 없으며 오히려 적을 강화시킨다. 담대함으로는 잃는 것이 전혀 없지만 두려움으로는 얻은 것이 전혀 없다. 심지어 본성적 용기와 결단도 많은 것을 이룰진대 하물며 믿음과 기도에 의해 생겨나고 유지되는 용기는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룰 것인가?’
‘Historical Collections of Account of Revival’ 이라는 책이 있는데 여기에서 첫 번째 존 길이라는 사람이 1700년대에 편집을 하고 호레이셔스 보나에 의해서 편집된 것인데 호레이셔스 보나가 편집을 하면서 그 후의 서문을 쓸 때 쓴 글입니다. ‘목회의 소명은 복음을 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고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경건한 모본을 보이고 성경을 가르쳐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입니다. 직분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흐르는 신앙이고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신앙에서 나오는 사랑이 목회의 생명, 목회의 소명을 현재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비결입니다.’
타락 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지만 신자들은 중생과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고 그런 점에서 목회자들이 그런 본보기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이 흔적은 육체의 흔적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 스티그마타 투 예수’ 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노예의 흔적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동문수련회에서 강의했습니다. 그래서 넘어가겠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종은 Servant입니다. 그런데 돌로스는 Slave입니다. Servant는 출퇴근하는 Servant도 있고 고용된 Servant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Slave입니다. 종속된 것입니다.
신뢰할 수 없는 신학자들이 있는데 목회의 소명은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체험에서 한 번에 주어지지만 성품을 한 번에 바꾸어놓지는 않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사역자는 예배자였던 적이 없는 예배 인도자, 청취자였던 적이 없던 설교자, 기도자였던 적이 없는 기도 인도자, 과업에 의무에서 태어난 사역자입니다. 사역자는 주님의 은혜의 요람에서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에게서 자기 깨어짐이 필요한데 이 목회자의 생생한 소명은 자기 깨어짐 속에서 현재적으로 유지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은 성령 안에서 온전하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맺는말입니다. 참된 신학 함은 이성에 국한된 활동이 아닙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바쳐서 신학의 내용을 탐구하고 믿음으로 삶에 적용하고 인격적으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일에 가장 중요한 자격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