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교구 지역별 심방예배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21:31)
녹취자: 박경은
우리들이 사연을 다 듣고 보면 부인 할 수 없이 마음에 다가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야, 참! 이 세상에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 힘들구나! 하는 것입니다. 제가 회심하기 전에는 매일 아침 눈 뜰 때마다 절망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내가 사람이라는 것, 내가 만약에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으로 사는 것이 참 이렇게 힘들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모든 것이 해결되었는가? 그렇지 않고 아침마다 눈을 뜨면 내가 신자라는 사실, 이것이 한 편으로는 구원의 놀라운 감격과 은혜이면서 또 한 편으로는 내 힘으로는 이 신자의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두 지역을 지난주에 했는데 정말 감사한 것은 남성들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참 많이 주신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열린 교회는 남성들이 변화가 많이 되기 때문에 여성들이 거기에서 확실한 증거를 얻어서 신앙이 떨어져도 교회를 못 떠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근데 확실한 사실 하나는 그것이 어떻게 변화되겠습니까? 여러분, 남성들이 변화되지 않는 가장 커다란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에게 답을 하라고 했더니 여자는 죄가 너무 많아서 은혜를 많이 받는 것이고, 남자는 적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여자보다 남자가 생활의 염려, 방탕함 등 이런 것들로 자기 마음이 훨씬 더 많이 세상에 빼앗겨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감수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들의 마음을 채우는 것들이 훨씬 거칠고 무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심성으로 돌아가기가 너무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남편이 깊이 변화를 받았으면 그 다음부터 사실 그 자매는 할 얘기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 받은 것입니다. 왜 아멘을 하지 않습니까?
오늘도 우리 고백을 보면 모두 죄에 대해서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근데 사실 오늘날에는 죄에 대한 이야기가 없고 또 그것을 강조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훨씬 우울해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하나님의 지혜는 정반대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다른 것은 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너 옷 꼴이 그게 뭐냐고 한다면 돈을 주고 사 입으면 됩니다. 또 너 얼굴이 못 생겼냐고 한다면 가서 공사하면 됩니다. 무엇이 어떠하다할 때 이 세상의 자원들로 다 바꾸면 되지만 너는 왜 죄가 많냐고 한다면 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이냐고 하면 하나님이 용서해주시는 것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그것을 이기고 살게 하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우느냐 하면 만일 우리의 문제가 돈으로 치료되는 것이라면 돈 많은 사람은 하나님을 덜 의지하게 될 것이 아닙니까? 있으니까요? 힘이 있는 사람은 힘으로 해결한다면 완력이 강한 사람은 하나님을 덜 의지할 것이 아닙니까? 근데 이것은 그런 것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죄를 발견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무엇을 하게 하시느냐하면 정말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그렇게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보면 사업의 위기를 만나고 시련을 만나고 할 때도 우리가 낙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경험해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되듯이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진 않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아주 불덩어리가 떨어져서 당장 감옥에 들어가고 자살할 지경이 된다고 하더라도 죄를 깊이 깨달은 다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만큼 그 정도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진 않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아침에 제가 눈을 뜨면서 아, 내가 신자구나! 하는 이것이 힘들다 라고 하는 것이 옛날에 인간으로 눈을 떴을 때 힘들다고 하는 것과는 틀립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 눈을 떴을 때 힘들 때는 아무 해결할 아무런 방법과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자로 눈을 떴을 때 아, 내가 신자구나! 아, 내안에 여전히 내안에 죄가 많구나! 하는 이것은 믿음이 없을 때는 절망이지만 신앙이 있을 때는 오히려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또한 아, 나는 조금의 희망도 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 있어서 그 삶은 목회자인 저의 삶이나 여러분 삶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양이 조금 다를지는 모르지만 각기 다 같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안 믿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듯이 나도 왕년에 안 믿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었고, 여러분에게 안 믿는 형제가 있듯이 저도 잘 안 믿는 형제가 있습니다. 시련과 고난이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애워싸입니다. 목회자가 되었으니까 이제는 우리가 너희 근심 안 시키마 하고 우리 일가친척 부모형제들이 모두 협조를 합니까? 그런 형제들 없습니다. 천국에나 가면 모를까? 그런 모든 사연들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다 그런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럼 이제 문제는 무엇입니까?
원래 나쁜 것은 부패하거나 악이 침투하지 않습니다. 독약이 쉬었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습니까? 치명적인 쥐약이 상해서 쥐가 먹어도 안 죽더라 그런 것 본 적이 있습니까? 청산가리가 녹이 쓸어서 이제 약효가 떨어졌다더라 그런 것 들어본 적 있습니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원래 악하고 나쁜 것, 독한 것 그 자체는 변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부패는 선한 것에 깃들고, 타락은 좋은 것에 기생해서 생명을 유지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에게로 부터 받은 우리의 몸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은혜에서 미끄러지는 것이 무엇을 증명하는 것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기존의 은혜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이었는가, 좋은 것이었는가 하는 것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그것은 늘 부패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왕년에 아무리 생애적인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도 그것이 방탕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미끄러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하냐하며 우리 자신이 스스로 삼가하고 우리 자신이 매일 매일 내가 내 편이 되어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해서 내가 지금 누구이고 어떤 상태에 있고 나의 영혼이 어떻게 위험한가 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존 오웬 목사님은 우리가 깨어있다고 하는 것을 두 가지로 정의했습니다. 하나는 내게 다가오는 환경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환경이 주는 의미 즉, 조금 전에 사업이 잘 된다 하는 것은 상황이지 않습니까? 신앙이 없을 때는 돈을 많이 벌겠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사업이 잘 된다 바쁘다 이것이 나의 영혼에 어떤 영향을 줄까 생각하는 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상황에 대해서 대응해야 하는 내가 어떤 상태이고, 어떤 기질을 갖고 있는가하는 것, 나 자신을 헤아리는 이 두 가지가 깨어있는 것이라고 정의를 하셨습니다.
그러면 결국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영원히 내 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습니다. 옳을 때도 내 편일뿐만 아니라 그를 때도 항상 내 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하면 우리를 객관적으로 보게 만드는 진리의 빛 이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가끔 가다가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말씀이 아니라 매일 매일 말씀의 빛 앞에서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때에 하나님을 발견하기만 하면 하나님을 간곡히 의지할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죄가 있는 곳에 은혜를 더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하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주에도 설교를 했지만 1년에 설교 테이프 1000개를 들은 사람도 만났습니다. 열린교회 모든 사람들에게 간증해보라고 하면 비슷한 간증을 합니다. 그래서 말씀에 기본적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설교 테이프를 계속 귀에 꽂고 살면서도 미끄러지는 사람은 받지만 눈물을 흘리며 매일 새벽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미끄러지는 경우는 본적이 없습니다. 물론 미끄러지기 전에 먼저 기도가 사라지는 일이 있기 때문에 미끄러지긴 합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내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에 나 자신을 비추어서 나를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나를 깨달았다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깨닫고 마음에 기쁨을 느꼈다할지라도 그것이 내 마음을 뒤흔들어서 열렬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를 쏟아 놓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언제나 내 머리에서 그리고 나의 생각에서 그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서 말씀을 엔조이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로 내가 깨어있다는 증거로 삼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모임을 마치면서 마지막으로 마음 깊이 결심해야하는 것은 이렇게 많은 사연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체들도, 교회도, 저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여러분들의 기도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간절히 쏟아놓으며 그런 기도의 삶으로 시련을 이기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