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교구 교역자 부부세미나
녹취자: 김경애
Ⅰ. 들어가는 말
우선 교구사역은 총체적인 섬김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어요. 그래서 주일학교 사역이나 여타의 사역은 부분적인 측면들이 많이 있고 특수사역은 그것 하나만 잘하면 되지만 이 교구사역은 특히 우리 열린 교회같이 교구사역자 부부에게 무한대의 권한을 주는 상황에서는 이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작은 교회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게 사실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제 예를 들자면 부부가 나가서 전도하고 전도만 한다고 안 끝나잖아요. 그러니까 전도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잘 양육해야지요. 양육을 받다가 또 미끄러지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또 가서 기도해서 데리고 오고 그렇게 해서 잘 자라면 그 다음에 그 사람 중에서 교회가 집사를 세우듯이 그 사람들을 세례주고 해서 구역장으로 세우고 또 그렇게 한 다음에 이제 그 사람들을 잘 길러내서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영혼을 맡기기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이제 교회 사역을 감당해 나가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그런 것 그렇게 해서 잘 자란 사람들을 또 파송하는 것처럼 주일학교로도 보내주고 중고등부로도 보내주고 이렇게 하니까 그야말로 정말 한 교회의 축소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사역을 할 때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느냐하면 이게 이제 목회자가 되기 전에 받는 마지막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잘 하면 그러면 여러분들이 나가서 맨바닥에서 교회를 개척해도 교회가 됩니다. 왜냐하면 한 가지나 두 가지를 잘할 줄 안다고 해서 교회가 절대로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교구사역은 총체적인 사역입니다. 그래서 이 교구사역은 총체적인 사역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사고를 가지고 접근해야지 여러분들이 일반적인 교회에서 청년부를 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을 나는 반대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한 부서가 아니라 교구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직접 이 교구에 대해서 작전권, 지휘권, 통솔권, 모든 것을 가지고 이것을 한 교회처럼 생각하면서 여러분들이 이끌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Ⅱ. 교구사역은 총체적인 사역이다.
A. 영적인 리더십
그래서 그 사역은 아주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역량을 요구해요.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영적인 리더십이죠. 그렇죠? 그래서 본인 자신들이 부부가 모두 마찬가지로 깊이 기도하고 기도에 있어서 골이 깊고 그리고 물이 깊어서 그 교구라는 그 산하에 들판을 두루 적시고도 남는 그런 영적인 기품들을 소지해야 한다는 것이죠.
B. 지도력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외에 또 있지요. 그게 뭐냐 하면 지도력이에요. 그래서 이것은 영적인 자질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영적인 지도력이 좀 떨어져도 영적인 능력이 좀 떨어져도 지도력이 뛰어나면 그 조직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능력이 좀 있다고 하더라도 지도력이 전혀 없으면 교회는 무너져버립니다. 변화 받은 영혼들은 있지만 잠시 후에는 그 영혼들이 그 모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뛰쳐나가 버리는 그러한 모임이나 조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두 번째는 지도력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절대로 필요해요. 그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렇게 지도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그 지도력을 꾸준히 함양하기 위해서 애써야하고 우선 여러분들이 책이나 혹은 글들을 통해서 좋은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면하고 그리고 흠이 없지는 않지만 가까이서 제가 어떻게 교회를 리드해나가는가 하는 것을 보면서 모든 것을 이렇게 그냥 가볍게 넘기지 말고 하나하나 여러분들이 관찰하면서 동의하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동의 되는 것, 그리고 올바르게 그다음에 어떤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그리고 저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저 문제를 다루었을까?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대입시키면서 그러면서 지도력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C. 사람들과의 친화력
그뿐만이 아니죠. 세 번째는 사람들과의 관계인데 여기에서 각자의 성품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아까 우리 사모님도 이야기했지만 혼자 사는 동안에는 자기가 무슨 단점이 있는지 몰라요. 그러나 다른 사람하고 부딪히면서 살면서 다른 사람의 단점도 보게 되지만 자기 자신의 모자라는 점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거기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람에 대한 사교, 말하자면 친화력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 것을 또 요구해요. 그래서 영적으로 능력이 뛰어나도 그런 친화력이 모자라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주위에 모이고 그 다음에 조직은 아주 뚜렷하게 편을 가르는 식의 조직이 되어서 안정성이 깨어진다는 것이죠.
D. 신학적인 역량
네 번째는 그뿐만이 아니라 신학적인 역량을 필요로 하지요. 그래서 다양한 교회의 상황, 그리고 또 자기교구의 상황, 또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지체들의 삶의 상황, 이런 것들을 만나면서 신학적인 안목을 가지고 그것을 해석하고 그리고 신앙적인 안목을 가지고 그것들을 풀어서 어떤 방향으로 교구가 가야되고 또 어떤 방향으로 자녀들의 삶을 지도해야하는 것들에 대한 안목들을 가져야 되는 것이에요. 그런 것들을 일관성 있고 확고부동하게 가져야된다는 점에서 이 교구사역은 정말 종합적입니다.
E. 조직력
그뿐만이 아닙니다. 다섯 번째는 이 교구사역은 들어가 보면 알지만 일이 장난이 아니게 일이 많아요. 그래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이것은 혼자서 몸이 부서지게 일을 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일이에요. 여러분 교회를 보면 알잖아요. 우리가 이제 장년, 청년 합해서 1,400명 모이는데 직원이 13명, 14명이 되고 그것도 생활비를 모두 주는 직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교역자가 22명이니까 모두 36명이에요. 그런데 쉬지 않고 일해요. 다른 교회 같으면 직원이 14명이 아니라 이정도 교회의 규모면 5명이 운영하는 교회에요. 그런데 우리는 14명인데도 모자라서 또 사람을 뽑아야할 상황이에요. 그러면 사람들이 보기에 왜 직원이 이렇게 많나? 하는데 인턴들이 와서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두 번 놀랬습니다. 교회의 어느 구석을 가도 직원이 있군요! 두 번째는 그 사람이 모두 일하는군요!’ 그렇게 많아요. 그러면 규모로 보면 140명이라고 그러면 교회일의 1/10 정도의 기능의 일을 할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헌신해야 되겠는지 알 수 있잖아요. 그중에는 많은 일이 필요해요. 전도사님을 혹은 강도사님을 기도로 도와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재능을 가지고 챙겨주는 사람, 디자인을 해주는 사람, 또 봉사를 잘하는 사람, 어떤 일이 있으면 그것을 계획하고 행정적으로 support 해주는 사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필요해요. 이 사람들을 잘 콜링해서 그들을 조직화해낼 수 있는 그런 조직력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이 교구사역은 특성 자체가 정말 종합적이라는 것이에요. 그것을 여러분들이 이해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기에서 내려지는 첫 번째 결론이 뭐냐 하면 절대로 지금 이야기한 것 가운데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한 부분에 있어서 특별하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부분은 소홀히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보면서 경솔하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창의성이 있고 그리고 지혜롭게 일을 처리한다고 해서 옆에서 보면서 ‘저 사람은 모두 인간적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그러는구나!’ 그런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런 모든 것들이 필요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잘할 수 있는 부분은 그 부분을 전문화해서 특화하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그 부분을 특화해서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연구해서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극대화해서 그것으로써 사역에 어드밴티지를 보려고 승부를 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설교에 달란트가 있다면 거기에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에 그치지 말고 더 전념해서 칼같이 예리하고 불같이 뜨거운 말씀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내가 특별히 남보다 기도를 많이 한다면 그러면 그 부분 때문에 다른 부분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분에 있어서 더 많이 기도해서 정말 기도의 사람이 되어서 다른 모든 사역자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그런 기도의 헌신 속에서 살면 되겠지요. 또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조직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 부분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서 그렇게 뛰어나게 조직하고 그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절대로 다른 사람과 맞추어서 하향적인 평균화가 되어서는 안 되고 자기 부부가 가지고 있는 그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배우고 싶어 하는 그 무엇을 꼭 하나 이상 가지고 거기에 특별한 승부를 걸려고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말이에요.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는 사역이 총체적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
Ⅲ. 교구사역은 부부가 함께하는 사역이다.
A. 인격적인 면에서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이제 부부가 함께 하는 사역이에요.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그러면 혼자 막 뛰어가면 그게 참 빠른 것 같은데 그런데 나중에 한쪽 바퀴가 빠져요. 한쪽 바퀴가 빠진다고요. 그런데 그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것이에요. 나는 우리 교회를 하면서도 이렇게 보고 다른 데서도 이렇게 보면 사모들이 말이에요. 나는 사모라는 말을 잘 안 좋아해요. 이 목회자의 아내들이 은혜에서 소외된 채 살아요. 그래서 뭐냐 하면 교인과 하나 되기에는 뭔가 하여튼 잘 안되지요. 그래서 교역자들 틈에 들어가기에는 또 뭔가 잘 안되지요. 그래서 사모구역을 이렇게 만드는 것이에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내가 택하는 방식들을 좋아하리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좋고 완전한 것은 없어요. 그러나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역을 해오면서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목회자의 아내에게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첫째는 뭐냐 하면 따뜻한 교제가 필요하고 두 번째는 영적인 성장의 환경이 필요하고 그 속에는 체계적인 지식과 앎도 포함되고 세 번째는 뭐냐 하면 싫으나 좋으나 자기는 교회에서 살아야 될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세 가지가 필요한데 그런 목적에 그래도 부합하는 것이 이런 제도가 아닌가하고 내 딴에는 돕는다는 마음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죠.
그런데 목회자의 아내들이 우선 교제가 없어요. 그리고 소외되어 있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은혜의 성장이 없어요. 세 번째는 뭐냐 하면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어떤 섬김의 장이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죽어라하고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데 남편이 만족을 줄 수 있나요? 아까 이야기했듯이 그래도 우리는 꼭두새벽에 나가지는 않잖아요. 물론 새벽기도 하러 나가기는 하지만 그래도 온전한 시간에 집에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다른 교회는 8시 출근이에요. 그러면 그렇다고 해서 목사나 교역자가 새벽기도 안 나가요? 새벽기도 나갔다가 집에 잠깐 들어갔다가 세수하고 교회에 출근해요. 8시나 8시 반에 출근해요. 그리고는 그 다음에 심방하고 10시나 11시에 퇴근하는 것이에요. 정말 만날 기회가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남편만 바라봐요. 여러분들도 다 경험했겠지만 사모들이 남편들에 대한 불만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니까 남편에 대한 원망이 목구멍까지 꽉 차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민수기를 우리들이 공부하면서 배웠지만 원망하면 마음이 어떻게 되요? 마음이 강퍅해지잖아요? 그 이유가 정당하냐? 정당하지 않느냐는 나중의 문제이고 마음이 강퍅해지게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마음이 강퍅해지는데 그나마도 영적인 생활이 고사 직전인데 그 위에 원망으로 말미암아 마음까지 강퍅해지니까 이것은 더 견디기 힘들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뭐냐 하면 구조적으로 남편만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게 되어있지만 의식적으로 남편만 바라보면서 살지 말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교회가 좀 그렇지만 나는 사모모임이 좀 더 커지면 일 년에 한 번씩 사모수련회를 열 용의도 있어요. 좀 좋은데 가서 남편 떼어놓고 아이들도 좀 떼어놓고 가서 푹 쉬고 좋은 분을 모셔다가 강의도 듣고 여행도 하고 그래서 뭐냐 하면 내가 말하는 것은 사모들의 모임 그 자체를 아주 말하자면 여러분 자신이 엔조이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항상 마음의 부담이 있지요. 우리 집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으면 웃긴다고 그럴지 모르지만 나는 항상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아요. 자기는 열심히 한다고 그러는데 저렇게 해서 사모들이 만족을 하나? 내가 너무 위험한 것을 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요. 그렇지만 그래서 내가 항상 이야기해요. 잘해라. 잘해라. 인격적으로 하고 더 겸손하고 잘 해서 어떤 목회자의 아내가 들어와도 이 속에서 억압된 분위기를 느끼지 않고 자원하고 그러면서도 강한 사람으로 훈련되는 그런 것을 느끼게 하라고 내가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그 사모모임 자체를 아주 엔조이하면서 인격적으로 서로 교제하고 우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가끔 보면 교회의 미묘한 일들이 있어서 내가 솔직히 털어놓고 이야기하자! 내가 정직하게 이야기하지요. 사람이 어떻게 다 똑같겠느냐? 열손가락 깨물어서 새끼손가락은 좀 더 아프고 엄지손가락은 좀 덜 아픈데 사람인데 어떻게 다 똑같겠느냐 그러니까 마음속에 더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더 유능하고 하나님께 더 많이 영광을 돌리고 더 쓰임을 받고 그러면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우선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그것은 인간적인 방법이라기보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신앙의 질서 아니에요? 사도바울이 모든 사람을 보고 내 아들이라고 불렀습니까? 특별히 디모데를 향해서 그랬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런 것을 인격적으로 내색은 안하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왜 그것을 모르겠어요. 그렇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하면 교회에서 더 많이 쓰임을 받은 목회자나 목회자의 아내들이 더 겸손하고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오히려 섬기고 비켜서서 자리를 비껴줄 수 있는 그런 아량과 폭을 가져야 되는 것이에요. 이제 여러분들이 담임목회를 해보면 알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옹졸하고 용렬한 리더십을 가지면 자기 똘마니들만 모이고 딴사람들은 마음에 칼을 품어요. 그것은 목회가 아니거든요. 그렇죠? 그래서 넉넉하게 말하자면 그늘을 드리운 나무가 되어서 그 나무에 구멍을 뚫고 쪼아 먹든 크낙새도 비를 피해서 날아오면 품어주는 그런 나무가 되어야지요.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까 항상 사모들 속에서도 그런 것을 가져야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먼저 들어오고 나중 들어오고 나이가 많고 교회 온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 교구사역을 안한다. 또 뭐 교구사역은 했지만 온지가 얼마 안 된다. 나이로 보면 위다. 학교는 네가 선배다. 얼마나 많은 요인이 많겠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을 떠나서 더 많이 사랑받고 하나님 앞에 중심에 섬기는 그런 목회자나 목회자의 아내들이 그들을 깊이 품고 그리고 아주 진심으로 사랑해줄 수 있는 진심으로 기도하는 그래서 우리 안에서 먼저 우리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가고 싶은 공동체의 모습들이 구현되게끔 해야 하는데 그 일에 있어서 목회자의 아내와 목회자들이 협력해야 되요.
여러분들은 내 이야기를 믿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사람이 거의 나한테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아요. 좋은 이야기만 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그 사람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속상해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지요. 그러면 내가 그러지요. ‘그만해라. 그만해라. 그것을 내가 들어서 좋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그리고 만약에 교회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하면 당신이 입 다물고 있어도 하나님이 나에게 알게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넘어갑니다. 그래서 거의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기회가 거의 없지요. 없어도 결국은 필요하면 하나님이 꽁꽁 숨겨놨는데도 그 문제를 보게 하시고 만천하에 다 드러났는데도 하나님이 필요 없는 것들은 안보고 넘어가게 하시거나 봐도 너그럽게 덮고 넘어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내가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절대 다른 사역자들의 결점이나 결함 그런 것들을 남편에게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남편에게 이야기할 때에는 이미 하나님께 오래도록 아뢰어서 그래서 남편에게 이것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하는 그런 정도의 신앙적인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말에 있어서 다른 동역자들의 장점, 좋은 점, 다른 사모님들의 탁월한 점 그런 것을 칭찬해야 해요. 그런데 나는 사실 그런 칭찬하는 것을 별로 못 보았어요. 동역자들을 만나도 그렇게 ‘목사님, 아무개 목사님 정말 훌륭하십니다. 제가 평소에 참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혹은 ‘목사님, 아무개 전도사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제가 이러 이러한 점에서는 참 도전을 많이 받습니다. 정말 그런 점에 있어서 훌륭합니다.’ 그런 것들을 참 듣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내가 한번 슬쩍 물었어요. ‘너는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목사님 그 사람은 이렇고 이렇습니다.’ 또 ‘아무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무개는 이렇고 이렇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네가 좋은 사람이 누가 있느냐?’ 고 야단을 치면서 ‘너 좋다는 사람도 없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게 결국은 뭐냐 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도자로서의 인격의 폭이에요. 절대 그런 용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교회가 커지지 않고 커지고 안 커지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고요. 하덕규씨 노래 맞다나 가슴에 하도 가시가 많아서 지친 새도 날아와서 쉴 수가 없어요. 가시에 찔려서 또 날아가요. 그런 용렬한 리더십을 가지면 안 돼요. 그런 일에 있어서 부부가 한 마음이 되어야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서로 칭찬을 해줘요. ‘여보, 아무개 전도사님은 이런 점에 있어서 참 훌륭해요. 나는 당신이 좀 배웠으면 좋겠어.’ 또 ‘아무개 봐라 기도도 많이 하고 인정도 많이 받는데 너는 어째 그 모양이냐?’ 그렇게 비인격적으로 하지 말고 그렇게 하면서 당신도 노력하면 그 사람 이상으로 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정말 귀한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나도 전도사들을 보고 배우는데 너는 어떻게 배우는 것이 없냐?’ 하나하나 보면 정말 배울 것이 많아요. 그런 것들을 항상 열린 마음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들에게서도 그것을 배울 수 있는 그런 깊이를 가진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부부가 그런데 있어서 한마음이 되어야 해요.
B. 사역적인 면에서
1. 깊이 개입하라.
인격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렇고 사역적인 면에 있어서는 목회자의 아내는 교구 일에 깊이 개입해야 됩니다. 내가 오늘은 아주 열린 교회가 세워지고 나서 최초로 내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리를 해줍니다. 교구 일에 깊이 개입해야 됩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하는데 절대 목회자인 여러분들은 아내를 자기 사역에서 소외시키지 말아요.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혼자 사역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원하지 않아요. 그리고 절대로 깊이 개입하고 그리고 이제 희선 자매가 이제 간사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조금 섭섭했나보지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은 있었어요. 아직 조금 어리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어려도 더 중요한 것 하나는 말씀에 있어서 아주 선명하게 정리되어야지만 사역이 가능한 것이에요. 그런데 이제 2년 5개월 동안 그동안에 많이 변했고 그리고 영적으로 많이 성장했다고 그래요. 내가 우리 집사람을 통해서나 듣지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을 불러다가 시험을 치를 수도 없고 그렇잖아요? 그래서 이제 내가 하는 이야기에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모두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고 충분히 여러분들은 해낼 수 있고 남편 이상으로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내가 다른 것은 몰라도 교구 사역자를 세울 때는 아내를 40%까지 본다면 거짓말이고 30%이상은 봅니다. 아내가 정리가 안 되어 있으면 그 남자가 아무리 뛰어나도 교구사역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남성교구를 포함해서 자매들은 아주 탁월한 자매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깊이 개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여러분들이 리더가 아니에요. 여러분들의 리더는 여러분들의 남편이에요. 구역장 모임이나 모든 모임에 여러분들이 참여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 말은 하지 말아요. 아무 말을 하지 말고 특히 회의석상에서 논쟁이 일어날 때 남편의 편을 들지 말아야합니다. 그냥 가만히 지켜보라는 것이에요. 오히려 남편이 바르지 않을 때 혹은 약간 지혜롭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지체들의 편을 들어서 아주 부딪힘이 없이 오히려 지체들의 편을 들어서 남편의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어주도록 그런 것은 허락되지만 절대 말하자면 남편의 팬인 것처럼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에요. 말을 아끼고 그냥 지켜보고 필요한 것들은 작은 노트에 적어놨다가 곱씹어보고 생각해보다가 집에 가서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목회자인 남편이 교구에서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집안에서 미리 상의해주기를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에요. 나는 절대 그렇게 안합니다. 더군다나 교회의 중요한 일일 경우에는 더더욱 알리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소외의식을 느끼거나 그러면 그것은 잘못하는 것이에요. 절대로 남편이 돕는 아내가 옆에 있다는 것 때문에 지도력에 제약을 느끼고 힘이 들게 만들어주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자유롭게 지도자로서 결단하고 그리고 결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우리교회의 체제는 어느 부목사님에게도 여러분은 지시받는 것이 아니에요. 언제가지 이 체제를 지속할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나한테 직접 찾아와서 결정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체제로 되어 있어요.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의 사역을 내가 책임질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가 고뇌하면서 지도력을 행사하도록 내버려두어야지 그것을 협의 체제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것이에요. 그것을 지체들이 알고 나면 절대 그 리더십에 복종하지 않고 더군다나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하고 다니거나 혹은 말하자면 지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알게 된 비밀이나 이런 것들을 공공연히 누설하고 다녀서 남편이 집에 가서 자기들 속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부인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깊이 개입하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에서 이야기했듯이 보이는 교회에서는 남편이 지도자이지만 보이지 않는 교회에서는 함께 지도자에요. 그래서 깊이 남편의 사역에 애착을 가지고 그 남편의 사역의 문제와 고민, 그리고 나아가야 되는 방향,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거의 남편수준의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그 남편과 사역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에요. 그리고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수시로 아내에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2. 주일의 섬김
그래서 내가 가장 바람직하게 원하는 바는 그것이에요. 뭐냐 하면 다른 날은 모르겠는데 주일에는 여러분들이 헌신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아이 때문에 문제가 좀 되기는 하는데 나는 사실 그것을 딱 잘라서 그냥 어디다가 갖다가 맡기든지 무조건 그냥 무 자르듯이 자르라고는 이야기하지 못하겠어요. 왜냐하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아니까 그래요. 그런데 내심으로는 여러분들이 다른 때는 괜찮은데 주일 날 예배가 끝나고 구역모임을 할 때부터 시작해서 구역장 모임이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나는 여러분들이 free해 지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어떻게 하느냐하면 그 모임에 주일만이라도 같이 참석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림같이 조용히 앉아있어요. 그리고 오히려 낮은 자리에서 섬겨주고 차도 타서 주고 신발도 정리해주고 인사도 하고 이렇게 해서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듯이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는 그런 존재로서 사는 것이에요. 우리 교회에서 사모가 누군지 아는데 딱 석 달 걸린다고 그래요. 얼마나 신비하고 좋아요. 누굴까?
그런데 그렇게 하면서 여러분들이 깊이 개입해요. 만약에 그것에 대해서 부당하게 남편이 자리를 박탈하거나 제재를 하면 신문고를 울려요. 내가 당장 쫒아가서 문제를 해결해주겠어요. 절대 안돼요. 그리고 여러분 전도사님이나 강도사님도 두고 보면 알지만 목회는 절대로 여러분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지금 사모들이 훈련받지 않으면 엉터리 같은 목사도 많지만 상식 이하의 사모가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말도 못하게 많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는 것이에요? 자기가 설자리가 분명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되요? 교제에 대한 욕구는 있고 그 다음에 마음에 쌓이는 것은 많으니까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일그러진 교제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 지체 한 두 사람하고 찰떡처럼 달라붙어서 남편의 사생활로부터 시작해서 자기의 마음의 억눌린 것들을 모두 쏟아 놓는 배설구로 삼는 것이에요. 그러면 반드시 시험에 들어요. 그 사람들이 목회자는 영원히 교인들과 같은 한 종류의 사람이 될 수 없어요. 항상 그 선이 있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내 이야기는 무엇이냐 하면 사모들, 목회자 부부들끼리 아주 이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라는 것이에요. 그 사람들이 아무리 잘 이해를 해도 뒤탈이 없어요. 문제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목회자의 아내가 깊이 개입해서 내가 마음에 원하기는 사실 솔직히 말해서 사람들이 넉넉하면 아이들이 너무 어릴 때까지는 사실 교구사역을 안하기를 바라요. 청년교구사역도 사실은 한 35세에서 38세에서 해도 괜찮거든요. 40세 될 때가지 하고 40세부터 몇 년간 또 장년사역을 하다가 나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최소한 주일만이라도 그렇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고 그리고 구역장들의 기도모임이 있으면 나와서 같이 간절히 기도하고 그런데 아이 때문에 힘들지요. 그러니까 아이를 끌어안고 혹은 업고 사실 우리 집사람은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요. 아이가 우는데 너무 영적으로 곤고하니까 아이를 업고 와서 본당에서 어두운데 아이를 덮어씌우고 걸어 다니면서 기도하는 것이에요. 그렇게라도 해야지 살지 어떻게 살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아주 교양과 그 다음에 품위와 그 다음에 친절함과 늘 웃는 낯으로 지체들을 대하고 그래서 깊이 개입하라는 것이에요. 그것을 말하고 싶어요.
3. 상담의 섬김-자매들의 상담
그리고 또 하나 작은 세 번째로 지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자매들이 특별히 교구 사역자가 목회자가 자매들 문제와 관련해서 어려움이 참 많아요. 여러분들 중에 그런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밤 11시 넘어서 전화하는 자매들은 없어요? 전화해서 통화하겠다고 그러고 만나자고 그러고 상식 이하의 사람들이 많아요. 그것을 또 단칼에 내쳐버리면 안되거든요. 그래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특별히 자매 구역장을 비롯해서 자매들을 거의 목회한다고 생각하고 여러분들이 깊이 그들의 영혼의 상태를 헤아리면서 접근하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필요하면 집에 불러다가 이야기도 해주고 아이 때문에 힘들기는 하겠지만 여유가 있으면 만나서 상담을 해주기도 하고 그래서 남편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어주고 상담해주고 그리고 바른 길을 알려주고 그럴 수 있는 그런 어머니와 같은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자매 같은 경우는 ‘어휴, 나는 나이가 아직 어린데.’ 상관없어요. 지금은 언니, 언니 그러던 자매들과는 그런 관계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그것도 인간적인 생각이에요. 말씀에 의해서 정리된 사람들은 결국은 자기가 누구와 이야기했을 때 진리의 빛을 받느냐에 좌우되지 결코 그 선입견에 의해서 그렇게 좌우되는 것이 아니에요. 임신택 전도사에게 나이가 어리다고 덤비는 사람이 있어요? 아니잖아요.
그리고 또 새로 지체들이 많이 들어오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이렇게 만나고 남편이 미처 다 찾아가고 상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고 항상 편지지 이것을 달고 살아야 해요. 편지지 목회를 하라는 것이에요. 편지지하고 편지는 달고 살아야 해요. 이메일은 기본이고요. 아이를 데리고 있어도 메일 하나 쓰는데 5분이면 쓰잖아요. 그렇죠? 그 정도는 쓸 수 있잖아요? 이게 구역장이 편지를 보낸 것과 목회자의 아내가 편지를 보낸 것은 달라요. 그러니까 우리 집사람이 고생하지요. 내가 지방에 상담은 안가잖아요. 세웠어요. 세우지 않으면 다른 사역이 안 돼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우리 집사람을 보내잖아요. 그러면 내 대리가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고마워하고 잊지 못하는 것이에요. 그럼 마찬가지에요. 그렇게 해서 편지를 해주기도하고 이렇게 하면서 특히 자매들에게 깊이 들어가라는 것이에요. 물론 아이도 없고 해서 같이 차타고 다니면서 날아다니고 심방도 하고 그러면 얼마나 신나겠어요. 그런데 그런 것은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있는 문명의 이기들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것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내가 그런 말을 할 가능성이 없겠다고 그러는데 내가 그랬어요. 내가 이것을 가지고 있는데 연습은 무지하게 많이 했어요. 문자를 굉장히 빨리 씁니다. 문자를 써도 내가 우리 어머니한테나 좀 쓰고 그러지 쓰는 사람 없어요. 그런데 내가 그랬어요. ‘전도사들도 나에게 보고할 사항이 있는데 연락이 안 되면 문자가 들어와도 내가 버릇없는 놈이라고 안 그럴 테니까 문자해라.’ 가끔 여기에 보면 지체들이 문자를 보내요. 청년들도 보내요. ‘목사님 얼마나 힘드세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보내요. 나는 답장을 안 합니다. 답장을 시작하면 얘가 돌아다니면서 ‘목사님한테 답장 받았다!’ 뻔 하잖아요? 그래서 안 해요. 항상 묵묵부답이지요. 그렇지만 받아요. 그래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에요. 이 기기들을 활용해요. 그래서 내 이야기는 사모들도 핸드폰 하나를 가지고 있어도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절대로 그것이 과용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내가 그 비용까지 대줄 수는 없지만 여유가 있으면 갖고 여유가 없으면 남편이 쉬는 동안이라도 해서 그렇게 해서 모든 것들을 동원해서 항상 그들과 공간적으로 가까이 있기가 힘들잖아요. 한번 심방을 가면 4시간이에요. 실제적으로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라고요. 작은 선물부터 시작해서 남편이 신경 쓰면서 할 수 없는 일들, 그런 문자부터 시작해서 이메일부터 시작해서 말이에요. 요즘 나는 그것을 어떻게 보내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는데 이메일을 열면 반짝반짝하면서 노래도 나오고 인형도 나와서 손을 흔드는 것도 있더라고요. 그런 것도 엊그제도 보니까 어느 교회의 지체가 보냈어요. 형제도 보내고 자매도 보냈는데 답장을 거의 못하지만 어느 자매가 누군지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얼굴도 몰라요. 그런데 사연 사연을 쭉 쓰면서 주일날 설교에 은혜 받는 이야기를 썼어요. 그런데 끝이 재미있어요. ‘목사님은 너무 바쁘신 분이시라 답장은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읽어 주신 것 만해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5줄을 써서 보냈어요. 그랬더니 그 자매가 답장이 왔는데 이메일을 켜는 순간에 비명을 지르고 말았대요. ‘목사님한테 편지를 받다니!’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가까이 다다가는 것이에요. 그래서 남편은 말씀으로 칼날같이 가르쳐도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납한다는 마음으로 목회자의 아내가 그런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도록 그렇게 깊이 들어가야 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영혼들의 형편을 잘 살펴야 되지 않겠어요? 새 가족이 들어왔을 때도 거기서 환영회하고 그러지요? 교구별로도 환영회하고 소개하고 그러지요? 그럴 때 눈여겨서 잘 봐두는 것이에요. 일부러 사진첩을 두고 얼굴까지 외워야 되요. 나는 그렇게 못해요. 왜냐하면 나는 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못하지만 여러분들은 해야 해요. 그래서 길거리를 스치면서 만나도 ‘아 저 자매는 우리교구, 저 형제는 아니고, 저 형제는 우리교구, 저 자매는 몇 구역.’ 내가 이게 청년교구가 300명, 400명이 되면 내가 요구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모이는 수가 겨우 100명이에요. 그러면 알아야 됩니다.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님 사모님이 그 교회 20년 이상 다닌 집사님 이야기를 하는데 25,000명이 모일 때까지 사모님이 교회 문 앞에서 ‘저 사람은 새로 온 사람이다, 저 사람은 우리 교인이다.’ 이것을 100% 알아맞혔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귀하게 쓰시는 사람들은 무엇인가가 달라요. 그러니까 100명 되는데 그것을 못 외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죠. ‘교구가 몇 교구에요? 그 교구의 구역이 몇 개에요? 구역장이 몇 명인데? 남자가 몇 명이고 여자가 몇 명이지? 그 교구의 평균 연령이 어느 정도 되나? 아무개 구역장이 무슨 학교를 나왔어?’ 이런 정도의 질문은 아주 기본적인 질문이라는 것이죠. 애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구역장 합해봐야 20명도 안되는데 그 정도는 기본이라는 것이죠. 기도하지 않으니까 안 외워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깊이 들어가서 옛말에 ‘친친애애’ 라고 그래요. 친할수록 사랑하게 되는 것이에요. 영어 속담에는 ‘Out of sight, out of mind.’ 눈에서 사라지면 마음에서도 사라져요. 가까이 다가가서 그 영혼의 상태를 보면서 한번만 같이 손잡고 눈물을 흘려주면 그 사람은 영원히 잊히지 않고 그 영혼에 대한 관심이 떠나지 않아요. ‘요즘은 어떻게 살까? 그때 그렇게 아파했는데 어떻게 살까?’ 그게 목회가 아니에요? 그렇지요? 그게 목회 아냐? 그래서 남편과의 긴밀한 협의 속에서 ‘여보 내일은 어느 자매 어느 자매와 연락을 해보려고 그래요? 요즘 특별한 변화가 없지요?’ 그렇게 연락하고 또 깨닫게 된 것은 남편한테 ‘내가 요번에 전화로 오랫동안 상담을 했는데 이런 문제가 있고 저런 문제가 있어요.’ 그런 것들을 다 정리해서 그렇게 해야 됩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은 다른 사람이 다 해줄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영혼이라는 것은 위임이 안 돼요. 위임은 무슨 위임이에요. 어떻게 위임이 되겠어요? 그렇지요? 교구를 맡은 사람이 구역장의 영혼을 위임할 수 있다. 구역장의 영혼을 위탁할 수 있다. 그것은 아니지요. 이다음에 여러분들이 담임목회를 하면서 교구를 만들어서는 어느 정도는 위탁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나를 대신해서 사역하게 하는 것이지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에요. 그런 점에서 보면 그동안에 우리의 사역은 그저 걸음마 수준이었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제가 여러분을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6개월 후에 겨울에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들이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준 이 내용을 기억하면서 얼마나 6개월 동안 살았는지 우리 한번 반성하는 시간을 또 갖겠습니다. 그때에 각 교구의 사역의 성취도도 지금처럼 이렇게 차 마시면서 하지 않고 각 교구의 성취도도 살펴보고 그리고 잘된 점들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기도 하고 잘 안 되는 점들을 가슴 아파하고 반성도 하고 그럴 것입니다. 그만큼 이제 이 교구사역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아내의 적극적인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주일 날 그 영혼들을 정말 깊이 파고들어가서 그렇게 하고 나는 할 수만 있으면 여러분들이 한 구역을 맡아서 돌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에요. 그래서 구역이 만약에 너무 부담스럽고 잘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하면 새가족반에 같이 참석하면서 남편이 어떻게 가르치는지를 보고 거기에 앉아있으면 새로 들어온 신자들의 동향은 훤히 파악될 것 아니에요. 그렇지요? 그리고 거기에 일단 들어오면 12주를 머물다가 가잖아요? 그러면 이렇게 들어오든 저렇게 들어오든 12번을 만나고 올라가는 것이에요. 그런 동안에 한두 번씩이라도 만나면서 특히 자매들을 중심으로 관계를 형성해서 올려 보내서 어려움이 있을 때에는 사모님에게 상담도 하고 그리고 편지도 보내고 싶은 그런 관계가 되게 하라는 것이에요. 새가족반에 들어가면 좋겠어요. 한 구역을 맡는 것도 좋겠지만 새가족반에 들어가고 그리고 구역장 모임에 들어가야지만 그 모임의 영적인 분위기가 그 교구의 현재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거든요. 그리고 거기서 남편이 어떻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교구를 이끌어 가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에요. 절대로 앞에서 인도하는 사람에게 어떠한 부담도 주지 말고 절대 나서지 말고 조용히 참석하면서 말없이 지체들을 섬기도록 그렇게 하란 말이에요. 하다못해 따뜻한 차라도 한통 가지고 오는 사람이 사모가 되게끔 그렇게 섬기라는 얘기에요. 그리고 깊이깊이 들어가서 그래서 무엇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해야하고 어떤 부분들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하는가 하는 것들을 파악해서 사모와 함께 항상 한 마음이 되어서 섬기도록 하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집에서 기도제목도 나누고 밤에 잘 때 함께 기도하기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서로 이 목회의 아픔이나 이런 것들을 다른 사람하고 나누면 안 돼요. 이게 목회자의 타락의 50%가 목회자 아내의 책임이에요. 이런 유대관계가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오히려 지체들 속에는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이에요. 그때 연대감을 느끼게 되면 그것은 최소한 마음의 범죄까지는 간단 말이에요. 왜 그렇게 사느냐는 것이에요. 절대로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교구의 담임교역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사랑으로 용납해주는 것과 예의범절에 선을 긋는 것은 분명해야 됩니다. 그렇지요?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애들이 있어요. 따끔하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해서 사역을 보호하고 그래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역을 하면서 여러분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그런 목회자의 타락이나 어려운 문제들이 여러분만은 예외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요. 그러니까 이미 다 알아요. ‘목회자의 아내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에서 썼어요. 그러니까 연대감을 갖는데 한 달에 한번 월차를 내서 바람이나 쐬러간다고 그래서 연대감을 갖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 평소에 사역을 통해서 남편의 아픔과 고충을 함께 하면서 그러면서 한마음이 되어서 기도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교구가 막 성장하면 함께 기뻐하고 어려움이 닥치면 함께 괴로워하며 기도하고 심지어는 교구가 잘 안되면 목회자의 아내들이 너무 괴로워하는 나머지 금식을 하고 영혼들을 보내주지 않으면 교역자들이 하나님 앞에 괴로워하면서 기도할 때 그런 고통이나 하나님 앞에서의 녹는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가운데 부부의 연합된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것을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항상 잊지 말고 내가 그런 점에 있어서 아내와 함께 가는 것이 늦어보여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결국은 빨리 가는 길이라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함께 부부가 같이 이 길을 걸어가라는 것을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10분만 쉬었다가 하겠습니다.
C. 기도생활
그 다음에 세 번째로 생각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기도생활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참 억지로 안 됩니다. 그래서 여건이 없다고 해서 여건을 만들어주면 그 여건 때문에 기도하게 되느냐하면 그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다 능력에 차이가 있고 개인의 차이가 있고 특성이 있는데 그런데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 사실은 그것이 사역보다도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도 내가 그런 설교를 했지만 제사자와 제물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실은 제물보다는 누가 제사를 드리느냐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기쁘지 않은데 좋은 선물을 가져왔을 때 받는 사람은 괴롭습니다. 굉장히 괴롭습니다. 사람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냐 하면 시편에 보면 ‘나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친구라.’ 그렇게 나옵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뭐냐 하면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열심히 찾아가려고 하는 사람, 능력은 좀 모자라고 그리고 모든 부분에서 좀 덜 갖춰졌어도 그 생생한 하나님을 향한 갈망 이것이 있는 사람이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뭐든지 주고 싶습니다. 뭐든지 주고 싶고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간에 뭐든지 그렇게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없이 사역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속에서 분노가 생깁니다. ‘왜 저렇게 할까?’ 분노 다음에 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깊은 염려입니다. ‘저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사역을 할까?’ 저런 갈망도 없고 사모함도 없는데 앞으로 어떻게 사역을 할까? 그런 염려와 두려움이 확 밀려옵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아내는 교회가 점점 커짐에 따라서 섬김을 다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내가 그래도 450명이 될 때까지 부목사를 안 썼고 1,100명 될 때까지 내가 심방을 했습니다. 등록심방을 했단 말입니다. 지금은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교구를 할 동안에는 이렇게 깊이 개입을 해서 하는데 교회가 아주 커버리면 그 지체들 하나하나를 사모도 기억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국은 섬기던 것을 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넘겨주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주게 되고 그러면서 자기일이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때 목회자의 아내들이 이제 불안해하기 시작하고 남편에게서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인데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교회가 커지게 되면서 그런 것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교회가 커져도 목회자의 아내가 누구에게도 대신 맡길 수 없는 일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기도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그 목회자의 아내가 되는 일입니다. 그 일은 교회가 아무리 커져도 다른 사람들에게 대신 넘겨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솔직히 한국교회에서 나름대로 쓰임을 받는 분들 가운데 목사님들을 이렇게 뵈면서 개인적으로 그 목사님은 동의가 안 되는 분들도 있었지만 사모님들이 동의가 안 되는 분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정말 그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냐 하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한번 직접 조사를 해보십시오.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라고 이름은 거명하지 않겠는데 한번 누가 하나님 앞에 괄목하게 쓰임을 받는다면 조사를 해보고 찾아서 그 사모님이 어떤 분들인지 한번 찾아서 물어보십시오. 영적인 거인들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래서 보면 사모님들이 내 책의 독자들이 참 많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되고 싶은가를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갈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공통점이 무엇이냐 하면 탁월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 한분은 이제 한 1,300명 정도의 교회를 목회하시는데 지금은 벌써 연세가 많이 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에 대해서는 사실 그렇게 선뜻 동의가 안 되는 부분도 있고 또 도덕적인 문제 때문에 신문지상에 오르내리신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사실 그렇게 썩 동의가 안 됩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대단합니다. 제가 알기로만 40일 금식기도를 두 번 하셨습니다. 40일 금식기도가 말입니다. 생명을 내놓고 하는 것입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8일이나 10을 했는데 모르고 주스를 한잔 마셨답니다.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다시 거기서부터 일일로 치고 금식을 했으니까 사실 50일 금식기도를 하신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매달리면서 기도하는 그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아내인 여러분들이 정말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평생을 두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할 제목입니다. 그래서 정말 처절하도록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그래서 응답받아야할 대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그 기도의 세계를 여러분들이 유지하면서 살아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환경적으로 너무 어렵습니다. 아이는 어립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잠드는 시간이 되면 기도하면 좋은데 그때는 애들하고 계속 시달렸기 때문에 그때라도 자매들이 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을 좀 붙여야지 그것을 안 하면 우리들도 아이들을 길러보았지만 아이들이 자는 시간이 황금시간 아닙니까? 발걸음을 잽싸게 움직이면서 아이가 매달리면 할 수 없는 집안일을 막 하느라고 정신없습니다. 그러니까 참 쉽지 않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내가 늘 잘 쓰는 표현으로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는 것이고 기도 안하는 것은 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냉혹하리만치 바로 자기 사역에 반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세 가지 지혜를 터득해야 합니다. 우선 첫째는 뭐냐 하면 생활을 최대한 분석을 해서 심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집안 살림까지 이야기해서 안됐지만 반찬 같은 것을 한 번에 할 때 많이 만들어서 쌓아놓고 그 반찬을 활용해서 주방에서 일해야 되는 시간을 줄이고 필요하면 사모 몇 명이 교회도 갈 겸 날을 잡아서 반찬을 만들어 share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한 사람이 한 가지씩 네 사람이 만들어서 네 사람 분을 만들어서 4등분씩 나누면 한 개 만들고 4가지 반찬을 share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해서 한두 달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시간이 몇 시간만 절약되어도 굉장히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심플하게 살도록 그리고 이렇게 여러분 가운데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아침마다 밥상을 해다 바치는 그런 버릇을 남편에게 기르게 하지 마십시오. 차려서 드십시오. 사모가 얼마나 바쁜데 그것을 시킵니까? 그림같이 앉아서 ‘밥상을 가져와라.’ 그럽니까? 나도 그렇게 안 합니다. 오늘 아침에 나도 우리 집사람 기도할 때 밥솥뚜껑 열고 그릇에다 무나물 해서 된장 넣고 비벼서 싱크대에 서서 떠먹고 내려왔습니다. 아침에 스터디 있어서 그렇게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미안해하지 말고 과도기니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렇게 하면 안 되고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들이 스스로 챙기고 옷도 벗어서 여러분들이 빨고 이렇게 해서 여러분 자신의 일로 인해서 아내에게 짐을 과도하게 지우지 말고 좀 스스로 그렇게 해결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내가 전도사 때이기는 했지만 우리 집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느냐하면 고구마 줄거리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먹으면 사실 소화가 하나도 안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나씩 까야 됩니다. 그것을 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간이 꽤 많이 걸립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여보, 깐 것 사와. 내가 돈을 좀 더 줄게. 한 시간 반이 걸리는데 그 시간에 무엇을 해도 그 250원 가치는 나오겠다.’ 도라지를 사오는데 깐 도라지는 비쌉니다. 통 도라지는 쌉니다. 통 도라지를 사온 것입니다. ‘여보, 그렇게 하지 마. 그렇게 시간을 버리는 것을 하나님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도라지를 조금 먹더라도 깐 도라지를 사와. 그것 붙들고 씨름하지 말고.’ 예를 들자면 그렇게 시간을 말하자면 무슨 일을 벌일 때 시간을 얼마나 잡아먹을까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시간을 관리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지혜가 참 없습니다. 아니 빨래 좀 쌓이면 어떻습니까? 그것은 흉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 번에 돌리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하든지 간에 아까 이야기한대로 그렇게 해서 아이 데리고 감자볶음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이것을 해올 테니까 우리 share하자.’ 그래서 화요일에 올 때 한통 들고 와서 그 자리에 비닐봉투를 가지고와서 share해서 나누십시오. 입맛도 다르고 그렇겠지만 매일 먹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시간 관리를 잘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남편의 도움을 좀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들이 굉장히 바쁘고 힘들기는 하지만 최소한 하루에 한 시간씩은 해방을 시켜주십시오. 뒷방이라도 가서 기도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아이를 데리고 놀든지 봐주라는 것입니다. 그게 안 되면 단 40분이라도 해주십시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기도생활은 홀로 있지 않으면 기도생활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도움을 조금 받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뭐냐 하면 그 여건을 다 짊어지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기저귀를 갈면서도 기도하는 방법, 그리고 길을 걸어가면서도 기도하는 방법, 새벽시간에 아이를 들쳐 업고 나와서 눈을 뜨고 교회를 서성거리고 걸어 다니면서도 기도하는 방법, 그러니까 충성이라는 것은 그런 사소한 것들이 모두 쌓여서 그래서 충성이 되는 것입니다. 환경 속에서 주저앉은 사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보십시오. 떡이 되어서 자기 자신도 거의 죽은 자처럼 살아갑니다. 생명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기도는 안하려고 하면 할 것이 없지만 이제 남편의 사역에 깊이 개입을 하면서 필기를 하기 시작하면 기도해야 할 제목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집사람이 450명 정도 모일 때까지 매일 그 사람들을 위해서 모두 기도했습니다. 나는 솔직히 그렇게까지는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또 깊이 기도할 것들이 더 많으니까 그렇게 못했지만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헌신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삶의 상황을 그대로 짊어지면서도 집중하는 법을 배워야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재우면서도 집중하는 법을 배워서 기도하고 아이를 끌어안고 기도하고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합니다. 매일 매일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하나님이 능력을 주십니다. 기쁨을 주시고 감당할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주십니다. 나는 솔직히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면 지체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지 않으면 ‘여보 오늘 한 자매가 회심했어요.’ 그래도 그것이 기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를 위해서 눈물로 간절히 기도해왔더라면 그 순간에 이길 수 없는 기쁨이 자신의 마음가운데 꽉 차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이 비천한 여종의 기도를 들어주시는구나!’ 그런 마음이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 기도하지 않는 아내는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남편의 날개에 매달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남편사역 자체에 짐이 되어서는 안 되고 날아오르려고 하는 사람을 떠 띄워줄 수 있는 부력을 공급해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어렵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길은 내가 늘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웬만하면 가지 말라고 내가 늘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 그 사랑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명심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런 기도생활을 하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생활을 남편과 협의해서 구체적으로 정하십시오. 여러분 청년사역은 장년사역보다는 그래도 덜 불규칙적입니다. 왜냐하면 아침심방이 없지 않습니까? 낮의 심방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오전 출근하기 전에 시간을 내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건강이 허락하고 집의 위치가 허락해서 무슨 소리냐 나는 새벽이라도 이 놈 업고 새벽기도를 나간다고 그러면 가장 훌륭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힘들면 남편 충분히 기도하고 돌아오면 씻고 밥 먹고 아이 잠자는 동안에 옆에서 지켜보아 달라고 그러고 가서 뛰어가서라도 한 시간 간절히 기도하고 돌아와서 그렇게 하고 또 은혜를 주시면 아이들이 날도 따뜻해지고 하면 유모차 끌고 살살 오면 그러면 어느 자매가 오면 옆의 아이를 데리고 와서 한손으로 교회 앞에서 유모차를 이렇게 흔들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이 아이가 새근새근 잡니다. 그러니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 길이 없습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길을 주십니다. 은혜를 주십니다. 그렇게 하면서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목회자가 세 시간은 기도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일이 있으면 못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침에 나와서 충분히 기도하고 가고 그리고 사역이 바쁘기는 하지만 내가 항상 주장하는 것은 최소한 12시전에는 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벽에 와서 이 피곤을 이기지 못해서 졸음과의 싸움이 되지 기도생활이 안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들에게 부탁하는데 사역을 하는데 밤 사역을 아주 콤팩트하게 지혜롭게 사용해서 늦어도 11시에는 자기 교구의 문을 딱 닫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늦어도 12시전에는 취침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푹 숙면을 하고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새록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도록 해야 됩니다. 그래도 우리는 5시 새벽기도가 아니니까 그렇게 살인적이지는 않습니다. 박헌준 목사이야기 들어보십시오. 3시 반에 일어나서 3년 동안을 버스운전을 했답니다. 그게 사역입니까? 그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정말 그렇게 기도하면서 살고 어떻게 하든지 자매들에게 단 한 시간이라도 기회를 주도록 하란 말입니다. 그래서 아내가 성령 충만하고 은혜가운데 살면 남편이 부담이 적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면 날이 따뜻해지면 한 11시 반쯤 아이를 데리고 와서 아이를 좀 봐주고 아내가 기도하게 해주고 출근시간이 되면 아이와 아내를 돌려보낸다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렇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세 번째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D. 말씀을 아는 지식에서 성장할 것
네 번째는 뭐냐 하면 아까 부부가 함께 사역하라고 그랬는데 그것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냥 밥 먹고 노는 것이면 간단한데 뭔가 사모에게 접근하고 목회자에게 접근할 때에는 뭔가 진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방황하는 신앙에 뭔가 종지부를 찍고 싶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뭔가 아는 것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참 걱정입니다. 왜냐하면 아는 것이 너무 적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주 묘한 영혼의 문제들을 지혜롭게 다루고 처방해서 그래서 영혼들을 돌보려면 말씀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지혜가 필요한데 그런 점에 있어서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기약이나 몸살 약, 그 다음에 목 아픈데 먹는 약 몇 개 처방하는 것 가지고 상상을 초월하는 범위의 많은 환자들을 다 돌봐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자기 자신이 말씀을 아는 지식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도록 분투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사모구역에서 잘하고 있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는데 특히 새가족반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은 거의 훤히 알고 있어서 그래서 필요하면 구역장을 대신해서 가르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테이프를 들어서 그래서 성경 전체에서 가르치는 사상의 토대들을 놓고 더 성숙하면 그 다음에 여러분들이 내 어깨를 짚고 더 올라가서 더 좋은 내용들을 섭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란 말입니다. 지금은 너무나 아는 것이 없으니까 이것저것 들어봐야 잘 안되니까 목회자 아내의 모임에서 추천해주는 책과 그 다음에 도서관에 테이프가 비치되어 있으니까 갖다가 빨래를 개키면서도 듣고 아이를 재우면서도 듣고 하면서 말씀을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그 속에서 뭐냐 하면 영혼들을 상담할 수 있는 수많은 섬김의 이해와 통찰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부지런히 말씀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 성장하도록 해야 하고 그리고 지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 여러분 자신들이 물론 공부를 하지만 그렇게 구역에서 공부하는 것 이외에도 경건서적을 꼭 읽어야 되는 것들이 한 100권정도 됩니다. 목록은 우리 집사람이 알고 있는데 부지런히 읽어나가면서 여러분 자신이 신학교는 안 나왔어도 목회와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는 안목들을 함께 넓혀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함께 넓혀가야 됩니다.
그래서 그 영혼들을 시험에 든 자를 위해서, 곤고한 자를 위해서, 죄지은 자를 위해서,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돌보면서 그 영혼들을 다루어가는 그런 신앙생활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점에 있어서 진보를 보이십시오. 그래서 6개월 후에 만날 때 한번 여러분들이 무슨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읽고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한번 이렇게 6개월 동안 목표를 세우고 해보십시오. 그러니 참 무겁습니다. 아이를 기르랴 힘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앞으로 그렇게 살도록 교인들을 가르칠 사람입니다. 우리가 목회하면서 ‘야야야 다 집어치워라. 애를 낳았는데 무엇을 하느냐 그냥 주저앉아버려라.’ 십년동안 침체에 빠집니다. 우리는 교인들을 그렇게 가르칠 순 없습니다. ‘이를 악물고 살아라. 나도 그랬었는데 나도 믿음으로 사니까 되더라.’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E. 동역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함
마지막 다섯 번째는 무엇이냐 하면 아주 동역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아까 잠깐 이야기했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하고 그리고 어디에 가든지 슬기로운 사람은 자기가 서야할 자리가 어디고 앉아야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목회자의 아내이고 한 교구를 맡아서 사역을 합니다. 누구의 지시 감독도 받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은 독립적인 사역자입니다. 그러나 목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목사님들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분들 보기에 눈에 덜 차는 사람이 있어도 여러분들은 깍듯이 대해드리고 나는 가끔 싫은 소리를 해도 여러분들은 그런 태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예의바르게 대하고 그리고 사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목사님들, 사모님들에게 깍듯하고 예의 바르고 그렇게 하면서 이제 교회가 질서롭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억압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고 자기 인격 속에서 흘러나오는 자유로운 생각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렇게 교육을 받으면서 내가 여러분 중의 한사람 보고 여기에 앉으라고 그러고 내가 거기에 내려가서 무릎을 꿇고 앉아있으면 여러분은 불편해서 교육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억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질서를 따라서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낮추면서 그러면서 자기 자리를 잘 찾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하면 윗사람들에게는 깍듯하게 대하고 아랫사람들에게는 너그럽게 대하고 그래서 윗사람들은 여러분들을 보면서 예의바름을 느끼고 아랫사람들은 여러분을 보면서 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래서 예의와 덕을 함께 갖추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양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목회자들보고 하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부잣집에 심방을 갔을 때는 절대로 두리번거리면서 집 구경을 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영혼을 만나러 온 것입니다. ‘무슨 진귀한 음식을 가져다주어도 부잣집에 가서는 다 먹어본 것처럼 하고 가난한 집에 가서는 빈대떡이 나와도 생전 처음 먹어본 것처럼 그렇게 해라.’ 그래서 어디를 가든지 꺾이지 않는 당당함으로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내가 생활비도 많이 못주는 주제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부탁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옷을 두벌 사 입을 것을 합쳐서 아껴서 입고 그리고 한 벌을 제대로 된 옷을 사 입습니다. 일 년에 한번 사 입을 것을 이년에 한번 사 입더라도 심지어 봄에 한 벌 여름에 한 벌 살 것을 봄에 한 벌 사서 여름까지 입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된 옷을 사 입어서 꺾이지 않는 품위로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도록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절대 교회에 나타날 때 그냥 쓰봉에다가 그냥 후줄근하게 하고 운동화나 꺾어 신고 그렇게 나타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기 관리에 실패한 것입니다. 사모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단정하게 해서 다른 사람에게 틈이 보이지 않게 그리고 어디를 가도 ‘아 진짜 지지리 고생하고 가난하게 사는구나!’ 그런 느낌이 느껴지지 않도록 그렇게 꺾이지 않는 당당함으로 여러분들이 생활해야 됩니다.
그리고 교양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어디 음식점이라도 가고 좋은 곳이라도 따라가게 되면 눈여겨서 잘 배워야합니다. 내가 교역자들을 가끔 식사하러 데려갈 때 좋은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정장하고 나오라고 합니다. 그것 이제 교회가 커졌으니까 목사님이 돈 좀 쓰는구나! 그러는데 아닙니다. 세 번 갈 것을 교역자들이 식사하는 횟수가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숫자도 많아졌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교양을 배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서든지 간에 우리를 보고 그저 몇 십만 원 받아서 근근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안 들도록 그렇게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가지런하고 그렇게 교양을 갖춘 그런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보든지 목회자의 아내와 목회자는 젠틀맨과 레이디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 보든지 간에 정말 신사다. 그리고 기품이 있다. 나이는 어리지만 참 함부로 하기 어려운 그런 교양이 있다. 그런 것을 용모부터 시작해서 모두 끼칠 수 있도록 그렇게 좀 불편하더라도 그렇게 생활하는 것을 몸에 익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 교양 있게 생활하고 그리고 항상 그런 것들이 남을 섬기는 것들이 몸에 배어서 그렇게 해서 여러분들이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오래 지난 일입니다만 어떤 일이 있었느냐하면 열린 공간에서 아이가 뛰어놀다가 떨어졌습니다. 사실 일차적으로는 부모의 책임이 아닙니까? 왜 아이가 신발을 신고 거기서 뛰어놀게 합니까? 나는 정말 교양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호텔에 가서 그렇게 하겠습니까? 아이가 마당에서 신고 다니던 신발을 신고 엄마 무릎을 밟는 것은 좋은데 그 신발을 신고 그 소파에서 겅중거리고 뛰어다니는 놈을 나는 진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도저히 자기 손으로 통제할 수 없으면 나는 그 공간에서 나가야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예의 아닙니까? 심지어는 그 신발을 신고 탁자까지 올라가서 겅중거리고 뛰어다니는데 나는 진짜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기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자녀들을 정말 예의바르게 길러야 됩니다. 어쨌든 떨어졌습니다. 일차적으로는 엄마 책임입니다. 그런데 교역자가 바로 그 앞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인이 실족한 것입니다. 아이가 꽝하고 마루에 거꾸로 떨어졌는데 다친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계속 차를 마시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뭐냐 하면 그 교역자의 마음에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뭐냐 하면 평소의 생활의 습관입니다. 항상 다른 사람이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 하다못해 문이라도 열어줄 줄 아는 그런 섬김의 정신이 배어있는 삶을 살지 않은데서 오는 것이지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실족합니다. 그러니까 섬김의 정신이 여기서부터 쭉 배어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질러 놓으면 치우고 싶어 하고 그러니까 항상 교회뿐만 아니라 생활을 하면서 목회자의 아내는 쭉 돌아보면서 그런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엊그제도 교회를 나오는데 어디서 물이 흘렀는지 화분 곁에 물이 쭉 흘렀습니다. 모두들 그냥 지나갑니다. 그래서 누구를 시키려는데 시킬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침 부목사 사모 한사람이 지나가더니 저 친구는 어떻게 하는가 보자 그랬더니 금방 걸레를 갖다가 통로 바닥에 엎드려서 그것을 다 씻어내고 짜내고 씻어내고 짜내고 해서 말끔하게 해놓고 가니 화장을 다 하고 왔는데 손을 다시 다 씻어야 합니다. 그래도 그것이 말하자면 섬김의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 하나 하나가 교양입니다. 교양의 근본은 내가 그 사람 옆에 존재하는 것 때문에 그 사람을 불편하게 해주지 않는 것 오히려 내가 옆에 있어서 그 사람이 편안하게 해주는 그것이 교양의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유아실에서 아이들과 예배를 드려도 항상 전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어느 방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어떤 아이들이 옵니다. 먹을 것이라도 준비해서 가져다주는 사람이 사모님입니다. 아이가 오줌이라도 싸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 맬 때 도움을 주는 분이 사모님이십니다. 그것이 그러면서도 교회와 다른 지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아주 지혜롭게 배려하는 그것들이 교양입니다.
그런 선상에서 지체들을, 동역자들을 깊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동역자들과 한 교회를 섬기게 된 것을 정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그렇게 섬기면서 살아가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 일을 하다가보면 자기 일에 코를 박습니다. 그러면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잠깐이라도 대화를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같이 공부하면서도 기도제목을 찾아내고 그래서 위해서 기도하고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그렇게 하면서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여러분도 이제 목회를 하다보면 싫은 사람을 꼭 만납니다. 많이 만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도 여러분들이 잘 섬기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따뜻하게 해주고 그래서 누군가에 의해서도 여러분들이 자기를 버렸다는 느낌이 안 들도록 그렇게 끌어안고 사랑하고 존경하고 높여주고 하면서 저 사람이 나만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내가 따라오기 어려운 탁월한 한, 두 가지를 배우고 그 점에 있어서 부분적으로 스승처럼 생각해야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자기보다 탁월한데 가서 ‘자매님 사실 나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너무 약한데 나 좀 어떻게 하면 되는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겸손하게 물어본 적 있습니까?
내가 지금은 그래도 나이가 어느 정도 들었지만 벌써 30대 때 나는 많이 불려 다녔습니다. 40되기 전에 수천 명씩 되는 교회에 가서 설교했습니다. 교회에 가면 어떤 때는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그러면 부목사님하고 장로님은 나를 너무 좋아해서 초청을 했는데 담임목사는 ‘누군가? 저게 또 따발총을 들고 올라가서 엉뚱한 소리를 해서 교인들을 다 쏘는 것은 아닌가?’ 그런 경계심을 가지고 이제 나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항상 그 할아버지 목사님들의 마음을 어떻게 푸는지를 압니까? ‘목사님 여기서 몇 년이나 목회를 하셨어요?’ ‘내가 25년.’ 어떤 분은 ‘40년’ 이라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할아버지들이 열심히 목회를 하셨지만 젊은 사람들처럼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교계에서 유명한 분도 아니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아주 진심으로 이야기합니다. 잘하던 못하던 나름 목회를 하도 전도사생활을 하면서 여러분도 그랬을 것입니다. 일 년도 가기 전에 ‘아이 이거 집어치워? 아이 왜 나는 청년사역을 하고 싶은데 중고등부만 맡겨주는 거야? 아이 나는 장년사역이 격에 맞는데 주일학교에서 뭐하는 거야?’ 이런 생각을 여러분들은 안 해보았습니까? 나는 참 많이 해봤습니다. 그런데 한 교회에서 30년 35년을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건강하고 안 건강하고는 나중의 문제고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럽니다. ‘목사님!’ ‘네.’ ‘말씀 낮추세요. 제가 굉장히 바쁜 사람인데 제가 이번에 설교하러 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무슨 소리를 하나 그럽니다. ‘제가 그래도 이렇게 설교로 섬기러 왔는데 목사님께서 그냥 보내실 것입니까?’ 그러면 눈을 껌벅껌벅 거리십니다. ‘목사님! 뭐 하나만 가르쳐주세요. 어떻게 그 어려운 동네에 와서 30년씩 목회를 하실 수 있으셨어요?’ 그러면 한결 같이 표정이 확 풀립니다. 경계심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아이 그런 것 없어요. 내가 무엇을 알겠어요? 교수님이 더 잘 아시죠! 내가 뭘 알겠어?’ ‘그래도 내가 이대로 갈수는 없습니다. 한 개만 알려주십시오.’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게 참 감동이 됩니다. ‘그냥 교인들을 빨리 변화되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그냥 사랑하십시오. 그게 목회입니다.’ 사실 그 이야기도 신학적으로 난도질하려면 단칼에 날릴 수 있습니다. 내가 칼을 빼어들고 성경 몇 구절을 들면 단칼에 날려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그것을 몰라서 그 할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정말 깊이 은혜가 됩니다.
옛날에 이 만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만신 목사님을 알잖아요? 나를 그 교회에서 강사로 불렀습니다. 기도원에다가 목회자들을 150명인가 300명을 모아놓고 강의를 해달라고 불렀는데 새벽에 오라는 것입니다. 아침 전에 오랍니다. 그래서 기도도 못하고 떠났는데 아침을 와서 먹으랍니다. 그래서 싫다고 그랬더니 그래도 그러지 말고 아침은 와서 드시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아침을 여기서 먹고 가면 차가 막힐 것 같아서. 그래서 그냥 간다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차가 막혀서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산골에다가 그 겨울에 생선회까지 떠다 놨습니다. 기도원에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먹었는데 그 목사님은 우리나라의 거목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목사님! 내가 이 깊은 산속까지 왔는데 그냥 돌려보내시면 아마 하나님도 안 기뻐하실 것입니다.’ 무슨 소리냐고 그럽니다. ‘뭐 하나만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이제 겨우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고 목사님은 수십 년을 하셔서 은퇴를 앞두고 계신데 왜 뭐가 없겠습니까?’ 그러니까 손을 내저으면서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아는 것도 없거니와 알아도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다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그러면서 경계심이 다 풀려지는 것입니다. 그때 두 번째 청을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하나 가르쳐주십시오.’ 그러니까 세 가지를 이야기 해주십니다. 세 가지를 이야기 하는데 사실 그것도 내가 신학적인 칼을 들고 날리면 다 날립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그분들은 그게 긴 세월동안 살아오면서 자기가 뼈저리게 체험한 것입니다. ‘성결해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결 때문에 말하자면 소극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그것입니다. 불멸의 교훈이 아닙니까? 수십 년 목회를 하고 그게 무슨 새로운 교훈입니까? 날마다 나도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듣는 것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그 모든 분들이 나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도 보면 때로는 도대체 나하고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자리도 함께 하기 힘들 정도의 교계의 거창한 분들이 우리 교회를 칭찬하고 심지어 그런 분들이 우리 교회를 가라고 그랬다고 해서 온 경우를 참 많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동역자들을 사랑하고 선배들을 사랑하고 그렇게 하면서 여러분 자신들이 항상 겸손한 위치에서 학생의 처지에 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비판은 나중에 해도 괜찮습니다. 우선 뭐냐 하면 성경적으로 올바르고 참 좋다는 것을 배우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그렇게 정말 아름답게 사역을 해서 그래서 동료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님이 축복하시는 그런 사역의 열매를 많이 맺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