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교구 교역자 부부세미나 2
녹취자 : 김세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참 많지만 오늘 다섯 가지로 오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첫째는 훈련의 삶입니다. 그런데 그 저희 친구 가운데 하나가 비무장 지대를 순찰하던, 군생활 때 비무장 지대를 순찰했는데 비무장 지대를 순찰하면서 괴뢰군을 만났다는 거예요. 무장한 괴뢰군을. 예고도 없이 딱 마주친 거예요. 이쪽에 3명, 저 쪽에 5명 정도가 딱 만났마주치는 거죠. 그 순간 딱 사격을 하는 자세로 이제 총에 손이 탁 갈 것 아니에요. 그런데 그 때 그 경험을 이야기 해 주는데 떨린다는 이야기 밖에는 할 것이 없다는 거죠. 거기 간 그 군인들이 얼마나 훈련을 많이 받고 그랬는데 딱 진짜로 그림에서만 보던 괴뢰군을 불과 15, 10미터 15미터 주고 숲속에 싹 나오면서 탁 갈대 숲에서 마주쳤는데 그 순간 전율이 느껴 지면서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쪽도 그랬을 거잖아요.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씩 웃더래요. 그 때 비로소 제 정신이 들어오고 그리고 잘 가라고 하고 흩어졌다고 하는 거죠. 우리 아버님이 참전 용사이신데, 그 분 말씀이 뭐냐 하면 지금은 연세가 너무 많이 늙으셨지만 50쯤 되셨을 때, 그 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한 40, 제 나이쯤 되었을 때 당신은 확신하건데 전쟁이 일어나면 지금 자기들이 전선에 투입되면 지금 젊은 군인들보다도 더 훨씬 잘 싸운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실제로 백병제를 하고 그러면 그 말이 안 통할지 모르지만 전쟁에 폭탄이 막 퍼붓는 현장에 있어서 전우들이 죽는 것을 본 그 현장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거기에서 훌륭한 총싸움을 해서 이기고 말고 말더라도 거기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말할 수 없는 자원이라는 거지. 그리고 확실히 살 것이라는 거죠. 그런 것은 전쟁을 안 해 본 저쪽도 마찬가지라 이거죠. 그래서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사람은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지지는 않아요. 훈련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야.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진짜 영혼으로 깊이 만나주시고 역사 해주시고 이렇게 함으로써 기본적인 설교자로서 골격들이 서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게 목회자의 삶이라는 것이 뭐냐 하면 아주 토탈해. 어느 한 부분을 뛰어나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 목회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말씀과 기도에 전념한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영원 불변의 진리이지만, 그 상황 자체가 말씀과 기도만 하면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상황이 목회의 상황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서 여러분들이 나를 보면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나를 보면 하는 일이 얼마나 다양한가 하는 것을 느낄 거예요. 물론 여러분 중에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저렇게 하지 말고 차라리 한두 가지 일에 전념하면서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러는데,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예를 들자면 교회가 여러분들이 아주 큰 교회, 그리고 교회가 잘 질서가 되어 있고 약간 안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교회에 들어간다 라고 한다면 그런 것이 어느 정도는 성립될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절대로 안 그런 것이 교회의 행정과 모든 사역이라는 것이 말씀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목회자의 생각에 대한 어플리케이션이에요. 그러니까 만약 그런 어플리케이션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고 할 능력이 없다고 그러면 팔 잘려진 사람이 생각만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다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그것을 말씀으로 바로 잡아야 되거든. 안 된다고 그러고 생명걸고 못하게, 이렇게 자기 목회 철학이 안 맞으면 그렇게 해야 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뭐냐 하면 모르고는 할 수 없어요. 사단장이 총을 쏴서 모든 병사들보다 표적을 잘 맞출 필요는 없지만, 총 쏘는게 뭔지 전쟁이 뭔지 알아야지 사단장을 하듯이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전체 방면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이에요. 교인들이 가장 불안해 할때가 어느 때인가 하면, 목회자도 지금의 목회 상황을 처음 만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때 교인들은 불안해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항상 그래서 저는 항상 생각하는게 그거예요. 뭐냐 하면 항상 교인들 앞에는 목회자가 동요하면 안 돼요. 큰 일 났다. 어떻게 하냐. 그런 말 하면 안 돼요. 그래서 생전 처음 보는 위기를 만나도 수없이 그런 위기를 거처 온 사람인 것처럼 살아갈 수 있어야 해요. 그런 것들은 훈련을 통하지 않고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죠.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요. 여러분들이 나한테 받는 훈련들이 좀 힘들다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아셔요. 뭐냐 하면 나로서는 최고의 애정의 표현이야. 내가 여러분들을 통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 무엇이 있겠어요. 물론 여러분들이 열심히 사역을 하고 정말 그 교인들의 존경을 받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요긴하게 쓰여지고 싶다고 그러면 뭐 아까운게 뭐가 있겠어요. 교회 하나씩 해 주면 되잖아. 뭐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야. 그런데 교회 하나 지어주고 거기에 생활비 몇 년 보내준다고 해서 교회가 서는가 말야. 그렇게 될 것 같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돈으로 오게. 헌금으로 오게.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여러분들이 이 다음에 개척을 하다가 보면 개척을 해야 되겠다 마음 먹으면 여러분들에게 은혜 받은 사람은 얘기치 않게 하나님이 도움을 받게 하셔요. 박순영 목사가 무슨 어느 교회에서 도와준 것도 아닌데, 개척하겠다고 깃발드니까 한번에 9천만원이 모이드래.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이 도와주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고 심지어는 한 사람이 교회를 지어서 줄 수도 있는 거라. 이런 것들은 하나님이 사람이 갖춰셔서 필요하면 하나님이 순간적으로 주실 수도 있는 거라 이거야. 그렇지만 지금 이야기 하는 목회자의 전체적인 삶이라고 하는 이것은 하루 아침에 잘 해 봐야지라고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죠.
제가 아는 형제 하나가 있는데 그 형제가 아주 똑똑합니다. 최고의 학벌을 나왔고, 독특하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어느 정도 있고, 목회지로 가서 불과 한 1년 채 못되었는데, 교인들이 싫다고 투표해서 내 보내 버렸어요. 그 교단은 그럴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있거든요. 그런데 주위에서 본 많은 사람들의 그 이야기가 뭐냐 하면 목사님 보다는 사모님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막이야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사모가 뭘 잘못하냐 이거예요. 그 목회자 아내도 그냥 해 봐서 뭐 좋은 집 살고, 좋은 자가용 타고 호강하려면 왜 목회자의 아내가 되었겠어. 그만큼 배우고 그만큼 난 사람들이 그래도 뭔가 영혼 섬기고 주님을 사랑하려고 들어선 것 아니야. 그런데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훈련을 받지 않으면 순결한 마음이 되고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도 안 나오는 것은 안 나온다 이거야. 아무리 자기가 순결해지고 아무리 헌신하려고 하더라도 훈련이 안 된 사람은 안 되는거라 이거야. 내가 꼭 해 보고 싶은 게 있어. 내가 여기보고 해 보라고 하니까 잘 하더라고. 이렇게 이렇게 넘는 것. 나 그거 세 번만 넘어보는 게 꿈이야. 이렇게 이렇게 넘는 것. 풀 밭에서, 잘 하더라고. 그런데 그 소원을 품은지 20년이 넘었어도 안 되지, 앞으로도 할 가능성이 점점 없죠. 내가 지금 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허리 50%쯤 맞춰 놨는데 내가 뭐 할 일 없다고 잔디밭에 구르다가 허리 부러뜨릴 일 있냐 이거지.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순수하고 사심이 없고 최선을 다하고 진짜 내 몸을 불사르게 한다고 할지라도 못하는 것은 못한다 이거야. 못하는 것은 못한다. 절대로 열정만 가지고 되겠냐. 한강을 건너보고 싶은 열정이 있다. 평소에 수영을 안 했는데 이게 어떻게 되냐. 그러니까 훈련을 받아야 해요. 그래서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이 훈련은 거의 생명과 목회 생명과 좌우된다 이래도 과언이 아니라 이거죠. 다시 말씀 드리자면 훈련만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위에서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something이 있어야 해.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훈련도 필요하다 이거예요. 쉽게 이야기 하면 총, 칼 최신형 갖추고 완전 무장해서 튼튼한 체력을 해놓고 군인을 세워놓았다고 해서 이 놈이 전쟁가서 이긴다고 하는 보장이 있느냐 이거예요. 애국심이 충만해야 할 것 아니에요. 애국심만 있으면 낫이나 도끼 들고 뛰어 나가도 되는가. 할 수는 있겠죠. 장렬하게 전사는 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죽으려고 목회하는 것 아니잖아. 살리려고 목회하는 거지. 그래서 나는 뭐냐 하면 내가 어느날 생각을 한 거예요. 뭐냐 하면 내가 신학교까지 떠나면서 이 조국교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난 맨 처음에는 여러곳에 집회를 다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한 7년 동안을 미친 듯이 집회를 다녔어요. 가정은 거의 뭐 진짜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여름이든 겨울이든 집회를 다녔어요. 그런데 가만히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 그것은 목회적인 상황이 허락을 안 해. 그러면 그 다음에 조국 교회를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인가. 글을 쓰는 것이다. 그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면 뭐가 필요한가. 느끼게 된 것이 뭐냐 하면 목회자들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신학교에서 기르면 되지 않냐. 안 되더라 이거예요. 그래서 느낀게 뭐냐 하면 그렇다면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부교역자들에게 참된 목회가 무엇이고 나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떻게 몸부림치고 어떻게 그 길을 걸어갈 것인가 하는 것들을 전해주자. 내가 말씀 드리는 것은 뭐냐 하면 내가 하는 것이 다 옳지는 않아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것을 답습할 필요도 없어요. 그러나 문제는 뭐냐 하면 여러분들은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목회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여러분들은 안다고 생각을 하겠지. 그러나 여러분들 속에는 그릇된 모본으로부터 전수받은 것도 있고 여러분 자신의 편견도 있고 그렇게 복잡한 것들이 뒤엉켜 있어요. 그래서 결국 필요한 것은 뭐냐 하면 여기에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으니까 여러분들이 나의 목회를 보면서 저것은 성경적으로 아니다라고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단 훈련을 받으면서 그것을 다 받아들여. 그리고 골격이 다 세워지고 난 다음에 여러분들이 혼자서 목회를 할 때, 여러분들이 깊이 공감하면서 받아들이고 싶은 것들은 현장에서 살면서 과연 그러한가 점검을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세워져 있는 골격 가운데 빼 버리는 거야. 빼 버리고 그 시대와 상황에 맞는 다른 것들을 갖다가 집어 넣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이야기는 목회를 배운답시고 천방지축으로 이 교회, 저 교회를 일년씩 이년씩 돌아다닌 사람치고 목회를 하는 사람 아무것도 없어. 다 남의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니야. 필요한 것은 뭐냐 하면 제자훈련의 기술이나 찬양인도의 기술이나 총동원 전도 주일의 방법론이나 이런 것들은 솔직히 이야기해서 목회자 자신이 몰라도 돼. 부목사 똑똑한 사람 갖다가 시키면 자동으로 굴러가는 것들이에요. 그런데 목회자 자신이 먼저 그런 면에서 하나님 앞에서 훈련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을 해봐.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고 배우는 학생이 있는데 학생들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말이지, 학생이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을 모두 이해하고 배우는 것은 훈련이 아니야. 훈련이 아니야. 군대 가서 제일 처음에 차려 자세를 배우는데 왜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눈도 깜빡 거리지 못하고 똑바로 그렇게 10분씩, 15분씩 서 있어야 되는가 하는 것을 누가 설명해서 동의를 구하고 훈련을 하냐 그거지. 그러니까 그것은 아직까지도 설명을 해서 이해를 못할 수도 있고 그리고 목회나 모든 삶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 그 말하자면 논리를 가지고 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직관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있다 이야기죠. 그런 것들을 논리를 세우는 것은 자기의 몫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이제 훈련을 받아 나가야 되는 거야. 결국은 말이지, 그 사람의 목회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받은 들어간 게 목회 와중에서 밖으로 나오는 거지. 안 들어간 것은 절대 안 나와. 그런데 쉽게 이야기 하면 들어간 게 별로 없는 거야. 자기 것이 뭐가 있냐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전 받아가지고 책 몇 권 뒤적뒤적 거리면서 막 도서관 다니고 왔다갔다 하다가 또 목회 크게 하는 사람 보면 교회 경영에 대해서 기웃거리면서 막 몇 달 배우고 오다가 또 내적 치유가 잘 된다고 하면 내적 치유 들여다보고 다 그게 자기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이라 이거지. 그런 것들은 나중에 자기 골격이 서 있으면 자기 골격 안에서 해석을 해서 이것을 머리 뛰고 꼬리 뛰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기가 쓸 수 있는데 자기 것이 형성이 안 되어 있으면 그런 것을 많이 줘도 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훈련이 꼭 필요하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이것을 훈련이라는 생각을 갖고 훈련을 받으면 훈련이 안 된다 그게. 그것을 훈련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것은 다시 리바이벌 될 수 없는 마지막 실전이다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받아야지만 그것이 된다 이야기죠. 나는 그 내가 이야기 하는게 그거야. 그런 정신이 아니야. 내가 지금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 만나서 훈련받고 싶다 라고 하는 사람이야. 전병욱 목사님도 깊이 동의하더라고. 자기는 미치겠대. 많은 사람들이 오는데 자기는 동역자가 필요한데 훈련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훈련의 욕구를 못 채워지면 떠나겠다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 자체가 이미 그 잘못된 생각이라는 거죠. 그게 무슨 훈련이 있어, 훈련이. 만약에 여러분들이 교구 사역을 하는데 만약에 목회를 위한 훈련이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이 싫어하시지. 영혼들이 무슨 훈련의 도구야, 아니면 실습 재료야. 훈련 아니에요. 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여기를 실전으로써 다 살고 가보니까 결과론적으로 뒤를 보고 해석을 해보니까 아, 이 큰 일을 맡기신 것은 훈련이었구나 그리고 영광적으로 돌아보는 것이지. 훈련이 어딨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 훈련을 받을 때 실전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뭐냐 하면 사소한 것에 대한 생각과 집착을 내려놓고 버려야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훈련이라는 것이 안 되나는 거다 이거예요. 그래서 뭐냐 하면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후세에 후일에 훈련으로 불리워질 수 있는 실전의 삶을 살면서 그 삶을 살아가는 그것이 전부다가 되어야지 이러한 과정에서 얻는 것도 있지만, 이런 것들은 또 잃어버리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그게 실전이 될 수가 없고 실전이 되지 않으면 후대에 그 살았던 삶이 훈련일 수가 없는 거라 이야기죠.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저께도 모여 앉아서 이야기 했는데 나는 진짜 모범적인 목회자 밑에서 훈련 받은 적이 없어요. 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은 몇 분 만났어요. 없어요. 그나마 우리 박희천 목사님 밑에 있는 동안이 인격적인 목회를 배울 수 있는 그런 훌륭한 기간이었죠. 나머지 목회자들은 많이 거치지도 않았고 회심하고 두 분을 거쳤지만 상당히 많이 부분은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역설적인 교훈을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 훈련을 받았는대도 나는 그 때는 왜 저분을 만나게 했을까. 아무것도 배울 게 없다.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그 분 돌아가실 때까지 화해를 못 했다고요. 심장병까지 생겼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나서 하나님의 섭리를 돌아보고 나니까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만 생각하면 보석처럼 너무 귀한 거예요. 그 분 다 용서할 수 있어요. 하늘나라 가셨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화해하는 마음으로 내가 가서 끌어안고 기도해 드리고 그랬어요. 장례식때도 가고 그런데 다 용서할 수 있고 그리고 그렇게라도 훈련받을 기회라도 주신 것을 하나님 앞에 참 감사하고 그리고 나서 가만히 보니까 그 분에게서 부정적으로 배운 것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긍정적으로 배운 것도 상당히 많다라는 것들을 깨닫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교회에서 또 제자들로서 그래서 여러분들이 훈련을 받는 이 기회가 얼마나 고귀하고 귀하냐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을 하면서 실전과 같이 훈련에 임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이런 거지. 목회자들은 훈련시키는 것에 대해서 깊이 동의가 되는데 목회자의 아내들은 그 훈련한다라고 할 때 남편인 여러분들의 마음에 여러 가지 생각도 있을 수 있을 거예요. 우선 첫째로 여러분들이야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자존심에 관한 생각도 있을 수 있잖아요. 똑같은 목사인데, 그 목회자 담임 목사 밑에서 훈련을 받고 야단을 받는 것만해도 버거운데 아내들까지도 이렇게 사모님에게 훈련을 받고 이래야 되는가. 어떤 때는 동의되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럴 거예요. 그죠. 그런데 이제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담임 목사가 부목사님 사모님들을 훈련시킨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많아. 공유할 수 있는 삶의 영역들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일년에 한두번 정도 해줄 수 있겠지, 그런데 힘들거든. 그런데 함께 모여서 살아가는 가운데 완전한 완전한 교회, 완전한 프로그램 그런 것은 없거든. 그래도 처음에는 시험적으로 시작을 했지만 사모님들이 그 안에서 많이 변화되고 앞에간 이혜옥 사모나 김기복 사모들 그렇게 많이 변화되고 그리고 가는 그런 것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분명히 이 모임을 사용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한 거지. 다만 조심스러운 것은 우리 부부가 부족해서 여러분들에게 바르게 잘 못할까. 그런 것들이 아쉽지, 하나님이 참 사용하시는구나. 그래서 내가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뭐냐 하면 앞으로 더 잘 되도록 그렇게 내가 목회자로서 후원을 하는 것이 좋고 그리고 물론 또 부당하고 잘못된 부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보다는 이렇게 해서라도 전체적인 골격을 세우고 그렇게 해서 사역하는 부분들을 훈련받게 하는 것이 여러분들은 어느 한순간 순간에는 나와 우리 집사람에 대해서 서운한 마음을 품을지 몰랄도, 내가 사랑하는 조국교회를 위해 나는 기여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오래토록 존경해주고 사랑해주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그러면 좋지만 과다한 기대같은 것 걸지 않아요. 이렇게 함께 머물게 있게 하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잘 훈련시키고 그렇게 보내라고 하셨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여러분들이 정말 이 그 그늘진 나무가 되어서 그래서 많은 영혼들을 깃들이게 하는 그러한 영성이 깊고 인격이 있는 목회자 부부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 생각하는 거예요. 어떤 면에서는 참 구슬프지, 왜냐하면 얼마나 우리시대에 목회자의 본이 없으면 이 사람들이 나를 보고 목회자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하는 것을 배워야 되는가 하는 구슬픈 생각도 있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 골격을 세우고 그 다음에는 사역하면서 갈아끼고, 넣고, 넣고, 빼고 빼고 이렇게 하면서 이제는 여러분들이 열린교회 목회가 아니라 자기네 교회 목회를 해 나가고 김남준 목사의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개인적으로 배풀어주신 그 사상을 가지고 목회를 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음을 많이 열고 그렇게 하면서 사역을 해나가는 거예요. 남편이 아내를 볼 때 안쓰러운 부분도 있고, 또 아내가 남편을 바라볼 때 그런 것은 얼마나 더 많겠어요. 자신의 남편이 사역을 잘 못해 나간다든지 때로는 사역을 하면서 잘 못하기 때문에 내가 꾸지람을 할 때도 있지. 그런 꾸지람을 들었다는 소식을 듣는다든지, 또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자기의 남편의 사역이 뭔가 뒤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그럴 때에 얼마나 어렵고 힘들겠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훈련의 과정 속에서 용해되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가 나의 가는 길을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과 같이 나아오리라.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이런 길들을 걸어가야 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첫 번째가 훈련의 삶이라면, 두 번째는 구도의 삶이에요. 구도의 삶. 그래서 나는 사실 사모라는 이름도 그렇게 썩 좋은 명칭은 아니다 생각합니다. 그저 나는 나의 아내라는 명칭이 가장 참 좋다. 그래서 나는 그저 왠만하면 사모님, 사모님. 그렇게 안 부르고 이름을 부르고 그러는데 그게 더 훨씬 친근하고 좋다고 생각을 해요. 여러분들끼리야 그러기 힘들겠지만 그런데 이제 뭐냐 하면 사모이기 이전에 목사이기 이전에 우리가 한 사람의 구도자의, 한 신자로서 구도의 정신을 가져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나는 뭐냐 하면 여러분들이 교회에 있는 동안에 신앙생활을 잘 했으면 좋겠어요. 목사는 신앙생활을 잘 하기가 힘들잖아요. 왜냐하면 그 의사가 자기 몸 진단하기 힘들 듯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신앙적인 이야기를 해주며 사니까 자신의 신앙을 뛰었다고 생각하기 쉽거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나는 내가 만약에 목회자의 아내라면 남편을 위해 기도할 제목 가운데 첫 번째 올라와야 할 제목이 남편에게 맡겨진 영혼이 돌아오는 것, 교구가 부흥하는 것, 남편이 유능해지는 것 그런 것 아니고 그 남편의 영혼 안에 자기 깨어짐이 그치지 말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무리 담임 목사가 훈련을 시키고 목회자인 아내가 내가 열심히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가장 훌륭하게 내 남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으시는 분은 담임 목사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목회적인 상황도 아니고 누구, 하나님 자신이 참 잘 빚으실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편의 어떤 결점 하나를 자기가 고치려고 하면 피 터지게 싸워도 안 고쳐져. 그런데 하나님한테 녹으면 30번 싸운 것보다도 더 빨리 변해. 30번을 싸워서 바꿔도 항상 마음속에는 내가 하기는 싫은데, 저거 바가지 보기 싫어서 할 수 없이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이러지만 하나님 앞에 꺾어진 사람은 항상 성심을 하나님 앞에 드려서 자기를 고치려고 한단 말이지. 그래서 자기 깨어짐이 있어야 돼. 그래서 여러분들이 먼저 사역자이기 이전에 형제, 자매로서 목사와 목사가 만나서 어깨를 두드리면서 야,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겠냐. 요즘 하나님이 너에게 어떤 말씀을 주시냐. 나는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다. 이렇게 형제로서 서로 나눌 수 있고 사모로서도 마찬가지도 사모 대 사모라 그러기 위전에 같은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자매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서로 나누어 가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매 순간 마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방향이나 정도, 깊이가 사람마다 다르잖아. 요즘 나에게 하나님이 물질에 대해서 깨닫게 해 주시면 다른 사람은 성결에 대해서 깨닫게 해 주실 수 있잖아. 그러면 서로가 서로를 서로에게 자기에게 베푸신 그 구도의 은혜를 그 사람에게 나누면서 항상 모인 다음에 흩어질 때에는 사역을 잘 해야지. 내가 유능하고 말테야. 저 놈을 꺾고 말테야. 내가 내가 정말 더 잘할꺼야. 이런 것 말고 아 정말 주님을 더 알고 싶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깨닫고 싶다. 정말 더 주님의 착한 자녀가 되고 싶다라고 하는 그러한 소원이 일어나는 그러한 삶이 바로 구도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러한 구도의 삶이 되기 위해서는 구도자의 삶을 그렇게 살지 아니하면 모든 것이 사람 의존적이야.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게 교회에서 내가 이만큼 사역하고 앞으로 내 길을 어떻게 열어줄까. 어느 장로한테 잘 보여야지만 이게 일이 될까. 담임 목사가 나를 많이 인정해 주는데 아마 나를 그냥 내보내지 않을꺼야. 내가 앞으로 사역을 하다가 보면 이 교회에서 뭔가 기댈 수 있겠지. 이런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사역하는 것이 제일 비겁하고 비열한 거야. 정말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왜 그러냐 하면 그게 하나님 앞에 구도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고 관심 자체가 구도에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동행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참된 신자, 그리고 참된 목사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면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고 자기를 반드시 쓰신다고 하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두려운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나는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려고 애를 써. 뭐냐 하면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웬만큼 커지니 교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려는 그런 마음은 없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번뜩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그렇다. 내가 주님의 사역을 할 때에는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내가 지금도 소원은 이 교회가 내 마지막 교회였으면 좋겠어. 그게 내 소원이야. 그렇지만 항상 어떤 생각을 하냐 하면 지금 하나님이 여기에서 떠나서 부산에라도 내려가서 개척을 하라고 하시면 나는 어떻게 할까. 얼마나 기대가 될까.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변화가 될까. 그러면서 정말 한번 해 보고 싶다. 그래서 정말 교회를 위해서 젊은 시절에 몸 바쳐놓고 기득권이나 메여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언제든지 물론 교회가 커지면 생활비도 조금 더 줄 것이고, 사택도 편할 것이고 그렇지만 언제든지 언제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면 훨훨 날아서 그래서 떠나면서 가슴이 벅찬 기대, 이번에는 어디에다 쓰시려고 그러실까, 이런 마음을 갖고 살지 않으면 누구도 비굴해 질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어떻게 안 비굴해질 수 있느냐고. 떠나고 나면 의지할 데가 없는데 어떻게 안 비굴해 질 수가 있느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구도의 삶을 살아야 된다 이거죠.
그래서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 구도의 삶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먼저 모든 구도의 길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깨닫도록 노력을 해야 돼. 그러면 봐. 목회자의 아내가 어느 남편이 데리고 와서 새가족반 새신자반을 가르치고 교리 가르쳐주고 나도 그렇게 못 했어. 바깥에서의 사역이 그냥 일이 밀려들 듯이 사역에 소진하기 때문에 집에 와서는 사역과 어느정도 단절되고 싶은 것이 목회자의 심리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집에 와서 가능하면 안 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심리에서 나오는 것이지. 그런데 그러니까 목회자의 아내는 어떻게 하냐 하면 구도자의 삶을, 아까 우리들이 이야기 했듯이 그저 남편 잘 신경 안쓰게 돕고 그것은 이제 내 표현에 의하면 남편의 종이지 그리스도인의 종이라는 거지. 왜냐하면 남편은 남편은 하나님이 먼저 데려가실 수도 있고 우리와 함께 다른 사역의 장으로 하나님이 옮기실 수도 있고 필요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잠시 떨어뜨려 놓으실 수도 있는데 안된다는 거예요. 내가 아는 한 자매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자기는 남편하고 상관없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니까 일생을 자기 아버지가 신앙생활을 바로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 짓눌려서 엄마가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을 봤기 때문에 자기는 딱 결혼하면서 생각하기를 남편의 의해서 흔들리는 신앙이 되어서는 나는 남편의 노예처럼 일평생 살 수 밖에 없다. 나는 나 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고 그렇다고해서 부부로서 분리되어서 독립선언한다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의지하고 부부의 결합을 누리면서 살지만 남편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거기에 무조건 쫓아가서 숙명처럼 남편의 영적 성세에 매달리는 그러한 노예적인 삶을 자기는 안 살겠다 이거죠. 나는 굉장히 훌륭한 독립선언이라고 생각해요. 그러한 생각을 목회자의 아내들이 목회자와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은혜를 받은 삶을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을 꾸준히 읽고 뿐만 아니라 이제 여러분들은 필연적으로 이제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게 됩니다. 그 때에 정말 엉뚱한 이야기 하는 사모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것도 입이나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모르는데 이사람 저사람 불러다가 상담한다고 그래서 엉터리가 얼마나 많은데, 심지어 어떠한 사모는 목사님 생각이고 그것은 잘못됐다. 내 이야기를 들어라 이렇게 까지 나간다 이거지. 그런데 이게 통일된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상담을 할 자격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틈 나는대로 책을 부지런히 읽고 그래서 기본적인 내 책들을 읽고 경건서적들을 읽고 그러면서 시간이 가면 몇 달에 하나 한 시리즈 씩이라도 설교를 계속 들으면서 자기 나름대로 정리해서 자기 자신에게 적용할 뿐만 아니라 지체들의 삶을 돌아봐 줄 수 있는 그러한 내용들을 가지고 있으라고 하는 것이죠.
그리고 두 번째가 뭐냐 하면 기도생활이에요. 정말 아까 김용수 목사도 이야기 했지만, 모든 방면에서 잘 해야 되는데 그게 사실은 능력이 되냐.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거죠. 모든 방면에서 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몇 개만 하고 나머지는 접는다. 그러면 몇 개 선택한 그것도 절대로 잘 될 수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해요.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을 때에는 기도 못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기도하면서는 또 아까 박 목사가 이야기 했듯이 지식이 너무 부족한 것에 대해서 아파하고 책을 읽으면서는 영혼이 변화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아파하고 전방위적으로 그 아픔을 느끼면서 어떤 효과를 가지고 오느냐 하면 첫째는 겸비한 마음이고 두 번째는 뭐냐 하면 하나님만 의지하는 마음이고 세 번째는 뭐냐 하면 그러므로 시간을 아껴서 써야 되겠다라고 하는 자각이 들어오게 되는 거예요. 그 사람에게. 그렇기 때문에 그 긴장이 생명에 이르는 거룩한 텐션이에요. 그것을 몰아 내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말리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기도생활을 열심히 품어야 된다라고 하는 거죠. 우리가 청년 사역자 세미나를 하면서, 아마 개척하고 처음이라고 느껴 지는데 좋은 데 가서 밥을 잘 먹이고 세미나를 2시간 반 가량 한 다음에 무슨 숙제를 줘서, 뭐 비인격적인 숙제는 아니고 이렇게 사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기도해라. 그러면서 이제 여러분들에게도 아마 줄 것이지만 이제 이렇게 그 각 교구의 지체들의 사진까지 복사된 것을 딱 줬어요. 기도표를 줘서 만들어서 쭉 줬어요. 남편이 그것 만들어 준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다시 한번 더 놀랬어. 그런데 그래서 이제 그것을 주면서 한 사람 앞에 150-200명 되는데 그렇게 되는데 그것을 아마 다는 못할 것이다. 다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줬단 말이야. 다는 못할 거다. 이렇게 기도표를 만들어 줬어요. 그래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거예요. 다는 못하겠지만 그러나 성심껏 우리가 기도해야 되지 않겠느냐. 구도자로서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냐. 그래서 내가 물어본 거예요. 그대들은 남편 교구의 명단들을 아직은 다 외우지 못하지만 기도를 하다보면 거의 다 외워지고 회심치 못한 사람 때문에 아파하던 사모가 남편이 그 사람 회심했어 그러면 눈물이 막 쏟아 지는 거예요. 내가 그 영혼을 위해 기도했었는데 그랬더니 진짜 그 남편이 짧은 설교에 변화되었구나.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변화되었구나. 기도학고나서 변화되었구나. 그 때에 그 때에 비로소 뭐가 생기냐 하면 그 영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생기는데 그게 사실은 목회의 시작이라고. 그렇게 자기가 나은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그가 어떠한 어려움에 처하든지 도와주고 싶고 그리고 그를 위해서 자기의 유익을 버릴 수도 있는 희생의 마음이 생겨나는 것 아니야. 그게 바로 뭐냐 하면 목회의 마인드가 목회적인 하트가 그 사람 속에 형성되는 거야. 그러니까 목회자의 아내 자신이 기도해야 된다는 거야. 그 보면 아이가 조금 크면 조금 낫지, 그래도. 아지기 어리잖아. 그래서 청년 교구에도 똑같이 이야기 하는데 남편들이 한시간 시간을 내줘야해. 아내를 혼자 있게 해줘야 한다 이거야. 한 시간 정도는. 그 왜 그러냐 하면 아내가 기도의 영을 유지하면서 사는 것이 자신의 생수야. 그것 만약에 바짝 말라가지고 성질이나 부리고 말이지 바가지나 긁고 그리고 진짜 북어같이 스캘로스된 상태에서 그렇게 강팍해져봐. 그러면 있지, 앞으로는 안 붙고 뒤로 붙이는 거야. 그러니까 교회에서 많이 먹고 집에 와가지고 다 말이지, 그런 일이 계속 오래 되면 부부의 결합들이 깨뜨려 지는 거라고. 자매들이 즐비하고 말이지, 목회에서 얼마나 위험한 계곡을 지나는데 말이지 왜 그렇게 바보같은 삶을 사냐고. 내가 그래서 청년 사역자들에게 그랬어. 다른 것은 못해줘도 네가 기도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최소한 한 시간을 시간을 내 줘라. 한 시간 시간 내주면 뒷방에 가서라도 기도할 수 있어요. 뒷방이 아니면 와서 10분에 걸어오고 10분에 걸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렇지않으면 날 따뜻해지면 구루마 끓고 와서 한시 넘어서는 그게 안 되지만, 오전에 구루마 끌고 와서 열한시쯤 한 시간 기도하라고 그러고 마당에서 열린공간 앞에서 왔다갔다 해도 나 옛날에 우리 목사님처럼 그것 야단치지 않는다고. 내가 영래를 안고 교회를 갔더니 나를 갔다가 막 들었다 놓은 거야. 전도사가 말이지 애기나 안고 다닌다고. 주의 종이 그래서 되겠냐고. 그러한 것 말이지. 그래서 기도생활 해야 된단 말이지.
그래서 세 번째가 뭐냐 하면 성령의 은혜를 구해야 된다 이거야. 아무리 정교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래도 남편의 사역속에 하나님의 성령의 부으심이 있어야지 그래되는 것 아니야. 엊그제 우리 집사람이, 나도 몇 번이야 읽은 책이지만 기도와 영혼 그 이야기야. 당신이 만약에 말할 수 있다. 저는 능력도 없고 부족하고 뭐 저는 뭐 그렇고 토레이 목사님이 그러는 거야.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만 둬라. 이야기야. 그렇게 사역할 것이면 그만 둬라. 그리고 기도하고 충만한 성령의 은혜를 부워 달라고 기도해서 능력있게 사역을 하지, 마치 능력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 다른 것에 비해서 굉장히 양심적이고 자기 성찰을 잘 하는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 하는데 하나님이 필요 한 것은 입에 발린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눈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는 그것이라 이거죠. 성령의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어야 해.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뭐냐 하면 정말 별 짓 다 해도 변화 안 될 영혼은 안 돼. 결국은 있지 사람이 변화시켜 봐야 조금 관계가 좋아지는 것 까지는 할 수 있는데 그 영혼 속에 주님이 심겨지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오죽 했으면 미국 사람들의 최악의 욕이 야 이 나쁜 자식야. 그렇게 나쁜 짓 할 바에야 성령 받지 말고 목회질이나 해 먹어라. 그게 미국 사람들의 제일 큰 욕이라고 하잖아. 얼마나 그 일이 힘들면. 성령의 은혜를 하나님 앞에 구해야 된다 이거지. 그러면 이제 무슨 이야기가 나오냐 하면 이제 그리고 남편의 사역 속에서 특별히 성령이 역사해야 될 때가 언제인가 우리 남편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그 정도 가지고 안 되고 특별히 어떤 사역할 때 성령의 강력한 부으심이 필요한가. 예를 들자면 언제야. 공적인 예배 시간에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 해주시길 필요하고, 남편의 사역에 내려가면 언제야. 새가족 공부. 새가족 공부 때에 사실은 거기에서 다 우리 경험 있잖아. 김경혜 전도사가 여자인데도 30명이 모여서 새가족반을 해도 펑펑 울었다고. 그랬기 때문에 그 말하자면 척박한 땅에서도 어느 정도 설 수 있었던 거라 이거지. 그 새가족 공부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을 해 보라고. 거기에서 그냥 녹아지면 우리 사역의 에너지를 세이브 해주는 거야. 심방 덜 가도 돼. 상담 덜 해도 되고. 밥 먹으러 들 가도 되고. 편지 안 해도 된다 이거야. 왜 은혜 받고 그냥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살테니까 모든 지 좋으니까 가르쳐만 달라는데 그렇잖아. 그 뿐만 아니지, 그런 사람이 없으면 하다못해 교구실 청소를 해도 남편이 해야 해. 게시판 하나 붙이는 것도 그런데 그렇게 하면 헌신하는 사람들이 생겨나. 대신 심방도 하고 대신 전도도 하고 그러는 것 말이지. 그 사람들이 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말이지. 숫자도 불 펴주잖아. 그러니까 성령의 도우심의 그러한 역사들이 필요한 거야. 그리고 또 하나가 뭐야. 금요 기도회 같은 것 말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나는 박상수 목사가 모든 사람보다도 사역을 잘 한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그러나 보라고. 다른 목사님 할 때 안 모인다 그러지. 못 모인다 그러더라고. 백 번을 물어봐도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안 됩니다. 되잖아. 열 댓 명씩 모여서 눈물로 기도하지 않냐 이거야. 그게 뭐야. 그게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라 이거지. 얼마나 기도해 봤냐 이거지. 금요 기도회에 두 세 명이 모이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했는데 많이 모이도록 도와주시고 두 세 명이 모여도 그 영혼이 눈물로 기도하고 돌아가서 다음 주에는 기도하지 않는 지체들을 데리고 가서 기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얼마나 뼈저리게 기도해 봤길래 상황적으로 남성교구는 금요기도가 안 되는 것입니다라고 그렇게 자신있기 이야기 하냐 이거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거지. 우리 아들이 금요 기도회. 그 누구야. 이성호 전도사 있을 때부터 기도회에 나가는데 그 우리 아들 이야기가 그거야.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고 나면 자기 친구들이 이 모임에 와서 기도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난다는 거예요. 그것보다도 확실한 것이 어디있냐고요. 그러면 그것 보고 기도하자 그러지 않겠냐는 거야. 목회자가 너 기도해, 이것과 너 기도해야 되지 않겠니. 가서 우리 같이 기도해서 우리 목사님을 돕자. 이것은 호소력이 다르다는 것이지. 그렇게 해서 이게 이게 기도로 기도, 성령의 은혜가 부어질 때 가능해 지는 것 아니야. 난 있지,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뭐냐 하면 대예배 인원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금요 기도회가 전체기도회도 살아야 되겠지만 교구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 정말 녹는 것처럼 그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어. 숫자가 문제가 아니야. 기도할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 20-30명 모였다가 과자나 먹고 흩어지면 그게 뭐야. 무슨 심야 친교회도 아니고, 둘이면 어때, 셋이면 어떻고 마음을 오로지 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부어주심과 하나님 앞에 사랑을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 상관 없어. 금요기도회 때 무슨 비밀스러운 기도제목 나누는 것 아니잖아. 목회자의 아내가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는 것 얼마나 좋아. 그래서 사모도 거기에서 한 지체가 되어서 우리 가정에 이러한 일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정말 여러분들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말하자면 내가 그 교구 안에서 여러분들이 작은 교회의 모형을 보게 하라 이거야. 그래서 같이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그리고 그러헥 하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달리는 가운데 모든 지체들이 여러분들이 말하자면 여성이 아니라 우리 목사님과 함께 우리를 목양하는 그러한 일꾼이다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지금 이 청년교구 사모들이 어떻게 하든지 어떻게 변했냐 그랬더니 세미나가 있은 이후 전에는 뭐, 할 일이 없다. 애들이 시끄럽다. 떠든다. 시간이 없다 그러는데 지금은 아랫목에서 남편이 애들 보고 있으면 윗목에서 엎드려서 기도한다는 거야. 그렇게 하면서라도 살아야 되잖아. 어떻게 하느냐고. 그리고 애기까지 업고 금요기도회 나와가지고 지체들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그러니까 그 지체들이 너무 사랑스러운 마음이 드는 거야. 기도제목도 같이 나누고 하면서 기도하고 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거야. 그러면 성령의 은혜가 부어지는 거라 이거지. 그것을 구하는 삶이 구도의 삶이라는 거지.
마지막 네 번째는 뭐냐 하면 순종하는 삶이야. 그래서 내가 안 변하면 하나님이 내가 안 변하는 것 보여주시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이 교인들 변화 안 시켜 주셔. 그러니까 내가 내가 변화해야 된다. 그래서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변화되고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변화되고 살고. 금요기도회는 모이면 남편이 설교할 것 아니야. 그때 변화되고, 같이 변화되고 그렇게 하면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 때에 하나님이 그 사역에 기름을 부으시고 은혜를 내려 주시는 거다 이거지. 그래서 서로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러한 본인이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문제들을 정말 서로 이렇게 가르쳐주고 그래서 순종하면서 그렇게 구도의 삶을 살아가야 된다는 이것입니다.
세 번째가 뭐냐 하면 동역의 삶이야. 그래서 우리가 많이 강조하고 싶은데 여러분 사역을 앞으로 해 보면 절대로 사역이 혼자 안 되는 거야. 사역이 혼자 되면 성공하면 말하자면 목회자의 아내 마음에 커다란 시험과 공허함과 상처를 안겨주고 목회가 되고 그리고 실패하면 결국은 가정이고 목회고 다 불가능해 지는 거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냐 하면 이렇게 되잖아. 목회자들이 유별날 정도로 가정을 사랑해. 그런데 그 이유가 뭐냐 하면 보상인식이 많이 작용을 하는 거야. 왜, 정신없이 화요일부터 주일까지 남편하고 애들 팽기쳐 놓고 자기 사역에 미친 듯이 바쁘고 돌아다니고 밥도 집에서 못 먹는거야. 그리고 보니까 어떻게 되냐 하면 월요일이나, 일년에 몇 차례 씩은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러니까 집에 가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해 주고 그렇게 곰살 굳게 해 주고 그리고 투정을 부려도 다 받아주고, 그리고 휴가라도 받으면 찰떡같이 붙어 다니면서 돌아다니고 그럴려고 하는 거다 그것이지. 내가 이야기 하는 것은 이거야. 뭐냐 하면 사역을 통해서 부부관계가 소원해 지기 때문에 그러한 시간을 통해서 보충한다라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든지 남편이 있는 곳에 아내가 있어서 그 속에서 괴로움과 슬픔을 나누면서 살면 그러한 식으로 보상을 해야할 부채의식 같은 것에서 해방이 된다 이거야. 여기에도 아내들이 있지만 아내가 원하는 것은 남편이 자기 호강시켜 주기를 원하고, 자기 시중 들어주고 걸레 빨라오고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거지. 뭐냐 하면 자기를 집에서 자기 사역을 위해서 그야말로 예속적으로 돕는 노예와 같은 사람, 사역에 있어서는 소외된 그런 사람이 아니라 보이는 교회에서 남편의 리더십을 인정하면서도 자기가 당당하게 하나님 앞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리가 있다고 그 자리에서 자기가 섬김으로써 남편의 사역이 온전해진다라고 하는 것을 자기가 경험해서 자기도 남편에게 딸려 다니는 부속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독자적인 사역이 있다라고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끔 해달라는 거예요. 그게 아내들이 진짜 내면의 욕구라고 하는 거예요. 선물이나 갔다 사주고, 그래서 잘하는 목회자들이 문제가 있어. 부인한테 너무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 진짜에요. 지나가면서 농담하는 소리가 아니라 캐들어가면 심리적으로 그런게 있다 이거야. 의식적으로 잘 해주려고 하는 그러한 애처가적 기질이 있는 사람이 깊이 내려가보면 이게 이분법적인 삶이 되어 있다 이거야. 그래서 항상 사역 그러면 남편이나 애들이 피해의식이 느껴진다 이거야. 우리 아빠를 빼앗아 가는 사역, 우리 남편을 잠시 빌려주지 않을 수 없는 사역. 이렇게 생각한다 이거지.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 없다고. 여러분들은 같이 좀 사역을 해 봤으니까 알 거예요. 아내와 남편 사이에 있는 소위 메디탈 프로볼름이라고 그러지. 메디탈 프로볼름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이 기도를 안 들어 주셔요. 베드로서에 나오잖아. 그러면 벌써 이게 막히면 사역의 축복이 현저히 떨어져. 그런데 이게 정말 이 아름다운 유대관계까 맺어지고 이렇게 될 경우에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있는 거라 이거지. 이렇게 연결되는 것을 맨날 여행이나 돌아다니고 밥이나 먹고 극장 구경이나 다니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연합이 되는 그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도 가끔 해야 되겠지만, 그것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가장 남편의 휴식시간에만 연합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가장 고뇌하는 그 광야와 같은 사역의 한 복판에서 마지막 있어주는 사람이 바로 아내이어야 하고 그런 자리를 허락을 해주라 이거야. 허락을 해주라. 누가 장담을 할 수 있겠어. 누가. 우리보다 훨씬 훌륭하고 경건하게 살던 사람들도 넘어지는데 누가 그것을 장담할 수 있겠느냐 이거야.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하든지 아내들이 소극적인 자세를 가지면 안 돼. 그것을 남편에게 요구를 해야 해. 나를 동참시켜 달라. 당회에서 의결된 이야기를 다 이야기 해달라고 하는 것은 못하지만 동참시켜 달라. 그것도 마찬가지로 당신도 혼자해, 그게 아니라 얼마나 훌륭해. 여보, 요새에는 회심치 않은 사람이 누구누구야. 지난 달에는 누가 회심을 했어?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의 장을 넘어가면서 부부의 연합을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될 게 뭐냐 하면 지체들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정도를 공유하는 거야. 그러니까 얼마나 많이 기도가 필요해. 사도바울이 그 문제가 많은 골로새 교회 그 문제가 많은 에베소 교회 편지하면서 뭐라 그랬어요. 잊지 않고 빼먹지 않고 한 이야기 뭐야.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 자기가 볼 때에는 망가진 교인들인데 교인들한테 부탁을 하는 거야. 그래도 망가진 교인들이라도 하나님 앞에 기도, 그들이 기도해주는 것이 낫다고 보는 거야. 이 세상에서 자기 사역을 위해서 가장 간절히 기도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 이야기에요. 그런데 그런 것을 기도의 참여자로도 안 내버려두고 내동댕이 쳐 버리고 그리고 장부책 하나 안 만들어주고 그리고 그냥 사냐 이거야. 그것은 잘못되었다 이거지. 그래서 내가 몸소 여러달 동안 고민을 하다가 몸소 내가 모본을 보여주려고 내가 만들어서 준 거야. 나는 너무 미안해 하더라고. 그 사역자들이 미안해 할 것 없다. 이제서부터 하면 된다. 이것을 줬잖아. 이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 하면 자동적으로 사모 것 이것은 어떻게 하겠어요. 현행으로 유지되겠지. 여보. 오늘 누가 그만 뒀어? 응. 그만 뒀어. 다른 교회 갔어? 그럼 대신 누가 왔는데? 누가 왔어. 그럼 복사해가지고 다시 끼우고 그렇게 하면서 사역을, 내가 그랬어. 6개월만 한번 해봐라. 그리고 내년 5월 21일날 1시 30분에 만나자. 딱 6개월 후다. 그 때 하나님이 너희들이 그렇게 간구하고 기도할 때 어떻게 영혼들을 복주셨는지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 해보자. 굉장히 많은 간증거리가 있을 것이다. 왜, 여태까지는 그렇게 하면서 산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묻는다. 한명이라도 위해서 중보기도하면서 살았느냐. 아마 어떤 때는 구역장 위해서도 기도 못했을 거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의 축복이 있기를 바랄 때 주님 앞에 갔을 때 너희들이 한 남편의 아내로 살았을 뿐이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 것은 아니다. 밥 해 주고 빨래 하고 어떻게 동역을 했냐고 물을 때, 뭐라고 하겠냐고. 밥해주고 빨래하는 것도 기쁜 마음으로 한 것도 아니고 나만 이렇게 쳐박아두고 말이지 씩씩 거리는 마음으로 했는데 하나님께 열납 될 수 있겠냐. 그러면 이제 꽝이다. 뭘 하고 산 게 있냐.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정보를 공유하고, 그래서 항상 같이 가주고 그래서 두 개의 파일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거야. 그래서 누가 등록하면 복사 두 개해서 하나 끼어놓고, 여보, 이 사람 이번에 새로 왔는데 면담 했거든. 그런데 뭐냐 하면 너무너무 마음밭이 좋아.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받아들이려고 하는데 이 지체는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지체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하면 기도해주는 거죠. 사진 붙여주고 기도하는 지체들을 교회에서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좋겠어요. 담임 목사 사모도 안 서는데 거기 서서 인사하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그렇지만 하루에 한번 교구실 가볼 것 아니에요. 그렇죠. 구역장 모임도 가고 전체 모임 같은 것 꼭 참석하라고. 전체 모임 같은데 가서 참석해. 그래서 누가 왔나 보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그렇게 회심을 위해 기도하던 사람을 볼 때에 얼마나 반갑겠어요.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목회가 아니냐 이거죠.
그리고 이제 두 번째 뭐냐 하면 함께 아파하는 거야. 그렇지. 함께 아파하는 거야. 그리고 솔직히 이야기해서 남편이 회심하지 못한 영혼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 그런 것들이 결국은 정말 공유해야 될 것들이에요. 그런 속에서 정신적인 말하자면 유대관계를 가지고 정신적인 연합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뭐냐 하면 함께 그래서 섬기는 거야. 함께 섬기는 거야. 그래서 내가 하는 이야기가 그거야. 사모의 자리가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있지, 자기가 찾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지. 교과서가 뭐가 있겠어요. 여기에 이렇게 가르쳐 주지만 어떻게 하든지 자기 자리를 찾아야지, 남편이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마련해 달라고 해야지, 마련해 주지 않으면 그것도 횡포지, 그런 것이 어디있어. 자기도 사명 받아서 섰는데 자기 자리, 네 자리는 없다. 그런게 어디있냐 이거지. 하나님이 불러주셨는데. 그렇게 해 가지고 사랑하고 섬기면서 그러면서 동역을 하라 이야기야. 항상. 이게 지금 훈련 안 받으면 여러분, 누가 여러분들을 훈련을 시키겠어요. 그래서 이게 서로 훈련되어지면서 그러면서 가는 거야. 우리 결혼하고 여보, 몇 년 만이었지? 13년쯤 되었나. 14년, 15년쯤 되었나. 그 때까지 여보라는 말을 못 했어. 얼버무리는 거야. 그러다가 어느날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그 다음서부터 이제 3일 부르니까 이제 돼. 그런데 그게 그게 그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십 몇 년 동안 안 된거야. 지금은 여러분들이 맨 처음에 만나서 아이고 이렇게 하라고 하니까 할 수 없이 해야지. 여보, 누가 등록했어? 그러면 우리 아내가 기도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누가 등록했어. 그러는데 이 다음에 목회하다가 여보 누가 등록했어? 누구 실족하지 않았어? 그런 것까지 당신이 알아서 뭐해? 한번만 딱 하면 그 다음서부터 내가 뭐 그런 것까지 챙겨서 뭐하나. 기도할 시간도 없는데. 그러면 그냥 몇 년이 될지 모르게 누구도 고쳐주는 사람이 없이 흘러가는 거라 이거지. 그러니까 그렇게 살면 안된다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항상 다리 두 개 묶고 뛰는 것 같은 곰돌이 경주같은 그런 것을 생각을 가져야 해. 그런 것이 늦게 가는 것 같아도 가장 안전하고 빠르고 그런 길이라 그런 생각을 하라 이거예요.
네 번째는 뭐냐 하면 사랑의 삶이에요. 사랑의 삶인데 첫째는 뭐냐 하면 교인들을 깊이 사랑해야 돼. 나는 언젠가 그런 말 했잖아요. 사랑은 모든 능력보다도 뛰어난 거예요. 언젠가 그런 이야기 한번 했잖아요. 내가 모시고 있던 목사님이 귀신이 들렸는데 자기는 능력을 꽤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집회에 갔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귀신이 안 나가는 거야. 그리고 길길이 뛰는 거라. 나중에 새벽이 되었는데 당신 자신이 너무나 불쌍한 생각이 들더라는 거지. 목사가 되어서 이 애 엄마는 서울에서 목사가 온다고 하니까 한번 기도하면 나을 줄 알고 데리고 왔는데 세 번을 기도해도 안 나으니까 새벽시간이 되어 데리고 왔길래 기도를 해주다가 끌어안고 펑펑 울었대요. 그 양반 좀처럼 우는 양반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자기가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 영혼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3일을 울었더니 통상적으로 귀신이 나갈 때는 소리를 지르고 생 난리를 치고 나가는데 당시 경험에 의하면 얘는 그렇게 눈물로 새벽마다 3일을 기도했더니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게 귀신이 조용히 나가드래요. 그래서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능력이 역사할 때는 귀신이 바락을 하는데 사랑이 역사할 때는 귀신도 순종하드라고. 그러한 이야기도 그러니까 능력보다도 우리가 모든 능력이 있으면 좋은데 능력보다도 더 중요한 게 뭐냐 하면 교인들을 향한 깊은 사랑이에요. 내가 늘 이야기하는데 야, 어떻게 자기 교구 지체들이 죽었는데 눈물도 안 나오냐. 자기 교구 지체가 저런 어려움을 당하는데 어떻게 눈물도 안 나오냐. 그것은 무슨 이야기이냐 하면 여러 이유로도 설명이 안 되고 오직 하나, 사랑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사랑이, 사랑이 부족하다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깊이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거예요. 절대 적대적인 감정을 품으면 안 돼. 저 자식은 내 설교도 안 듣는구나. 저 사람은 인간도 아니야. 마음 닫았어. 새가족 공부 시간에도 안 나오고 말이지. 나와서 다른 짓이나 하고 말이지. 엉뚱한 질문이나 해놓고 판이나 깨놓고 말이지,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절대 마음에 어떠한 대적자라도 그 마음에 품으면 그것은 결국 자기 영혼을 찔러 죽이는 거예요. 그를 깊이 끌어안고 그의 죄와 그의 반항을 말하자면 연약과 긍휼, 연약한 지체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내려다보는, 판단은 살아 있어야지 판단은 살아있지만, 대할 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죄를 지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그 인생의 그 비참하고 연약함을 보면서 그러면서 끌고 안을 수 있어야 해요.
누구라고 이야기는 안 하겠는데 우리 교회 지체 가운데 하나 있어요. 나한테 많이 잘못한 게 있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괴씸했죠. 괴씸했고, 난 한번 안 본다고 하면 정말 안 보는 사람입니다. 뭐, 그런 것 잘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님 만나고 변화된 다음서부터는 그게 너무 안 돼. 누가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너무, 그것을 풀어야지만 일이 돼. 그래서 우연한 계기에 만나서 내가 잘못했으면 자기가 나한테 와서 사과해야 하는데 또 안 와. 그래서 내가 오면 사과해 주려고, 용서해 주려고 딱 생각을 했거든. 아주 멋있게 용서해 주려고, 그런데 안 찾아 오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안 찾아와? 흥. 이게 진짜 참 네가 좋은 기회를 잃어버렸지. 내가 너 없어서 무슨 상관이 있겠냐.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하는데 주님 생각이 나요. 주님이 공중에 매달리셔서 죄인들 다 와라. 그러시지 않고 내려가셨죠. 그래서 같이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런 시간을 갖으면서 내가 그랬어요. 용서해 달래. 그래서 내가 내가 용서할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네가 정말 원하면 네가 이 순간 하나님이 보는 앞에서 고백을 하마. 하나님, 주님 앞에서 내가 이 사람이 나한테 잘못한 모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하고 일평생 내가 이 사람의 잘못한 것을 마음 안에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지금은 열심히 잘 사는지 몰라. 그리고 정말 나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러니까 목회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자기의 원수들을 녹이면서 해나가는 그것이지 편 딱 갈라가지고 아이, 저 자식 이건 아니지. 이 쪽 부류고 이쪽 부류고 칼로 치고 하면 이쪽 숫자가 자꾸 일어나.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교인들이 뭘 잘못하고 마음에 안들고 그래도 엄마가 자식에게 젖을 먹일 때 자신이 젖꼭지를 깨물었다고 해서 시멘트 바닥에 자식을 집어 던지는 엄마 없잖아. 아프지만 그렇게 참아야 해. 그러면서 깊이 사랑하고 항상 그 연약한 부분들과 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항상 하나님 앞에 눈물이 있는 목회를 해야 되는 거야. 목회자의 눈의 눈물은 쓴 뿌리들에게는 제초제가 되고 잘 심겨진 그러한 씨앗들에게는 잎 돋고 싹이 나게 만드는 훌륭한 비료가 되는 것이에요.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야 해요. 늘 영혼들에 대한 사랑. 영혼이 참 불쌍하구나. 우리가 다들 훌륭하지만 다들 훌륭하지만 내가 심방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거야. 다들 훌륭하지만 심방을 잘 하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거야. 월요일 날도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교회학교에서 그렇게 심방 안 하잖아. 그것은 이유가 하나야. 사랑이 없어서 그러는 거야. 사랑이 없어서. 그래서 심방을 많이 해야 돼. 이것도 지혜롭게 해야 돼. 뭐냐 하면 막 그 사방팔방 돌아다니는 식의 그런 식의 목회를 하면 비효율적이야. 그래서 찾아가지 않으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과 찾아가도 피하는 사람과 찾아가야지만 겨우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부르면 올 사람, 이것을 구분해서 시간 안배를 하면서 적절하게 섞어서 사역을 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들이 늘 경험하는 것이지만 항상 신앙적으로 이 사람을 가르쳐야 되겠다 생각할 때에는 음식점이나 공항이나 돌아다니면서 만나는 게 비효율적이야. 권위 있게 자기 방으로 불러서 나는 가르치는 목회자이고, 영혼의 목자이고 너는 배우는 사람이다. 그렇게 가르치면서 그러면서 사역을 해 나가야 하는 거야. 절대로 이 목회는 인간관계가 아니야. 그래서 맨날 밥이나 먹으러 다니고 그렇게 해서는 안 돼. 그것도 필요해. 필요한데 그것이 주종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거야. 열 번을 밥을 먹어도 그 사람의 영혼의 상태를 30분 심방하는 것만큼 알 수가 없어. 그렇게 해서 아주 직선적으로 그 영혼의 문제에 들어가야 해요. 직선적으로 그 영혼의 문제로 들어가서 그래서 그 영혼의 문제를 어루만져주고 다뤄 주는 거야. 도저히 도저히 그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았는데 그냥 와르르르 무너지면서 목회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사랑이에요. 사랑. 사랑이에요. 이게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냥 속 썩이고 교회를 몇 달동안 안 나오고 그래. 얼마나 많이 문제를 일으키고 그랬어요. 만나면 마당에서 안아줘. 그것으로 모든 할 말을 대신 하는 거야. 그러면서 그게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아파하는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은 목회 아니야? 우리가 죽어라고 목회한다고 모든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세울 수 있겠어? 예수님도 못하셨는데. 그러니까 그렇게 아파하고 가슴앓이를 하다가 결국은 그 영혼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님의 품으로 가는 것이 목회자의 삶이라 이거야. 사랑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작은 것에도 아파하고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말이지. 그러한 삶을 교인들과 함께 살아가는 그것이 필요하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동역자들에 대한 사랑이야. 동역자들에 대한 사랑.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하는게 뭐냐 하면 사역을 하면서 항상 겸비해져서 자기보다 낫게 사역하는 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우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발전을 하지, 절대로 그러한 자세를 잃어버리면 더군다나 훈련의 과정에서 그러한 자세를 잃어버리면 그러면 두 가지 문제가 되는데 자기 자신의 발전이 현저히 부족하고 두 번째는 뭐가 되느냐 하면 그 자기 자신의 발전이 현저하게 부족하게 되고 두 번째 또 한가지는 뭐냐 하면 이 그 함께 함께 공동으로 사역하는 것에 있어서 말할 수 없는 취약점을 갖게 되는 거예요. 물론 여러분이 몇 십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탁월한 설교자라고 한다면 다른 부분에 있어서 좀 덜 다듬어져도 수천명의 사람이 와서 한번에 거꾸러지고 가는데 그 문제가 안 돼. 그런데 우리 모두는 그러한 사람은 아니잖아. 항상 생각할 때 우리를 평균을 놓고 생각을 해야지. 몇 십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유별난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거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는 어떠한 자세가 필요하냐 하면 항상 함께 사역하는 자세가 필요한 거야. 그래서 내가 항상 이야기 하는데, 이제는 앞으로 목회는 네트워킹이 없으면 안 돼.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가 점점 커지면서 그러한 것들을 다루어갈 수가 없는 거야. 늘 협의하라는 거야. 그런 것을 그것을 좋아하는 그러한 사역이 되어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늘 함께 협의하면서 그러면서 함께 사역을 해 나가고 함께 좋아하고 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진심으로 동역자들을 아끼고 그리고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가끔 이기는 하지만, 나한테 여러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죠. 내가 하지 말라고 그럽니다. 왜냐하면 분위기가 안 좋은 이야기에요. 하지 마라. 그리고 어떤 때는 상황이 그렇게 되어서 이야기가 되죠. 그래서 어느 교역자가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때마다 내가 예외없이 하는 이야기가 뭐냐 하면 내가 다 아는 것이다. 그것 알고 계시냐고. 내가 그것도 모르고 그 사람을 썼겠느냐. 그렇게 해서 내 선에서 문질러 버리면 거기에서 꺼지는데, 그래? 그놈이? 정말? 사실이야? 이것을. 그러면 그 불길이 나를 넘어서 번져나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는 안 돼요. 그리고 목회자의 아내들도 남편은 아내들을, 아내는 남편들을 서로가 이렇게 융화하면서 살 수 있도록 잘못된 것들을 이렇게 선의로 해석을 해주고 하는 이러한 화해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지, 그렇게 해서는 안 돼. 남편 만나서 여보, 아무개 집사 나쁜 자식이야. 그 놈이 어쩌고, 그렇게 해서 목회적으로 무슨 유익을 누릴 수 있겠느냐 이거죠. 그래서 언젠가 한번 구역장들 영혼을 살펴서 보고를 해라 그랬더니 보고가 올라왔어요. 아무개 이름이 딱 올라왔어요. 내가 잘 아는 지체에요. 뭐라고 올라왔냐 하면, 요즘 아무아무개 이름 해 놓고 옆에 적은 거예요. 요즘 설교에 대해서 반감이 생기는 가운데 있음. 설교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함. 그게 다야. 그래서 그러한 생각이 드는 거야. 이 교역자가 정말 구역장을 아끼는 사람일까. 사실이 사실 그 사람이 그랬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설득하고 이야기해서 그 형제가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그런 것을 느꼈을 수 있지. 그러면 그것을 이렇게 해서 여러 가지 어려운 가운데 있고, 이것을 우회적으로 돌려서 담임 목사가 내가 볼 때 그를 위해서 기도해 줘야 겠다라고 생각해야지. 요즘 설교에 대해서 심한 반감을 느끼고 있음. 설교가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함. 세 줄이야. 그렇게 해서 마지막 얻을 수 있는 성과가 뭔가. 설교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 가서 너 요즘 교구 담임 교역자가 그러는데 설교에 반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사실이냐. 확인하라는 이야기야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러니까 항상 어떤 입장에서 서야 되느냐 하면 그 영혼들이 마지막에 목양관계가 깨뜨려지지 않도록 그렇게. 그러다가 결국에 깨지고 가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해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야 된다 이거지. 그렇게 해서 정말 그 영혼들을 그렇게 해서, 동역자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야 되는 거야. 여러분들이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면서 살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여러분들이 서로 용납하고 살지 못하고 막 이러는 것들을 보면 여러분들의 이유가 아무리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을 해. 이 세상에 자신도 완전하지 않고 아무도 완전한 사람이 없어. 목회 자체가 뭐냐 하면 그러한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나니. 그것을 덮고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그렇게 가는 거예요. 반대자에 서 있는,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도 설득을 해서 그의 마음을 녹이고 움직이는 것이 목회잖아. 그러면 그런 면에 있어서 탁월한 지혜를 가지고 지혜롭게 빗겨 갈 것은 빗겨가고 그리고 사랑으로 풀어야 할 것은 풀고 그러면서 가야지 성령이 역사 안 하셔. 내가 교사 리바이벌에서 내가 썼지만, 유능한 사람들과 사역하고 신앙적으로 뛰어난 사람들하고 사역할 때에 마지막이 사단이 마지막으로 쓰는 카드가 뭐냐 하면 분열이에요. 분열. 그러면 뭐 초토화 되거든. 분열시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거예요. 그래서 항상 목회자가 깊이 기도하면서 그러면서 성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그럴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해요. 내가 그래서 내가 뭐 그런 것까지 충고해 줄 처지에 있지는 않지만 시간 될 때마다 하도 힘들다고 청년부 사역자들이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니들 왜 이렇게 생각이 없냐.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렇게 하지 말고, 얼마나 힘드냐. 너희들 이렇게 넷이서 김치를 담궈서 너는 김치 담그고, 너는 깍두기 담그고, 너는 멸치 볶고, 너는 뭐해서 반찬만 쉐어해도 시간이 얼마나 세이브 되겠냐. 집집마다 입맛이 다르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서로 연대를 갖고 유대를 가져서 산모들이 모였을 때 함께있는 모임이 너무 좋고, 지체들이 모여서 함께 신앙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게 기쁘고 그러한 속에서 공동체적인 삶 자체를 자신들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나아가서 공동체적인 삶을 이끌어 가는 거죠. 여러분, 목회자도 성품을 가만히 보면 하여튼 불편한 사람이 있어. 그런가 하면 같이 있기만 하면 이상하게 그 사람들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면서 그 사람만 앉아 있으면 주위에 사람들이 편안해 지는 거야. 목회자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거지. 유별난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그래서 동역자들을 깊이 사랑하고 필요를 돌아보고 어려움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래서 한 가족처럼 느낄 수 있도록 살아야 된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가 뭐냐 하면 헌신의 삶이야. 그게 뭐냐 하면 우리들이 재미나게 사역하고 가족처럼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주님이 우리를 여기에 세우신 것은 목표가 있어서 우리를 세우신 거야. 그렇잖아. 그래서 가슴에 불타는 목표가 있어야 되는 거야. 그것이 반드시 세속주의가 아니야. 왜냐하면 왜 그것이 세속주의냐고. 하나님이 내 교구에 더 많은 영혼을 보내주셔서 그들이 주님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그게 왜 세속주의냐고. 세속주의라고 하는 것은 교인 많이 모아서 헌금 걷어서 호강하려고 하는 것이 세속주의지. 그들을 숫자로 보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정말 방황하고 유리하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영혼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는 게 그게 왜 세속주의냐고. 그리고 그 온 영혼들 때문에 기뻐하는 게 세속주의냐 이거야. 그게 세속주의냐 이거야. 옛날에 박희천 목사님 맨날 오늘은 밥알이 모래알 같아서 물을 먹고 한술 먹고 숟가락을 놓고 왔습니다. 그 날은 교인이 조금 온 날이야. 그러면 오늘은 점심을 안 먹어도 부르더군요. 교인들이 많이 온 날이야. 그러면 맨날 하시는 말씀이 누가 곤장 한 대 맞고 교인 하나 보내준다면 나는 매일 열대 씩 맞겠습니다. 그게 목회자의 마음이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서 영혼들을 보내주시기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변화되는 것은 나중이고 보내주시는 것이 계속있어야 해요. 이것도 목회자의 영혼의 상태와 밀접하게 관련있는 것 알지. 그렇지. 그러니까 목회자가 영혼이 충만하고 부부가 원만해서 간절히 토요일날이라도 내일이라도 영혼을 하나님이 보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면 이상하게도 자기네 등록카드 받는날 영혼들이 많이 오는 거예요. 등록의 감격에 빠지는 거예요. 계속해서. 이것도 하나님이 위로하셔요. 어떤 때는 내가 잊혀지지도 않아요. 몇 번을 그랬어요. 도저히 목회 못 하겠어. 너무 너무 힘들고, 내 자신이 준비 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아 나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몇 주째 설교도 계속 불발이고 너무 괴롭다. 그 때에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는게 두 가지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러는 거야. 눈을 들었는데 깜짝 놀라는 거야. 세상에 이런, 평소보다 한 백 명씩 더 나오는 때가 있는거야, 어떤 때는. 다들 이상하다 그러는 거야. 그리고 말씀이 터지는 거야. 그래서 푸근하게 젖어. 다음 주에 50명이 덜 나와도 일단 그 중에는 깊이 위로를 받고 새 삶을 또 살아보겠노라고 되는 거야. 그러면 하나님이 교구에 영혼을 보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야 왜 영혼들이 조금 왔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나오던 지체들이 미끄러져서 안 나오고 더 이상 새로운 영혼을 보내주시지 않을 때, 그 때에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거예요. 나는 여러분들에게 목표를 제시하지 않아요. 그러나 여러분들은 가지고 있어야 해요. 하는 대로 한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금년에 어느 정도의 영혼들을 붙여 주셨으면 참 좋겠다. 그 이상이면 더 좋고, 그러면 하나님 앞에 부부가 간절히 기도하는 거죠. 그래서 그 한 해가 지나간 다음에 다른 교구는 가만히 있는데 그 교구가 반으로 나뉘어 질 때 그게 얼마나 보람있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겠어요. 우리들이 뿌려놓은 씨로 새로운 교구가 태어나고 그리고 이제 일꾼들이 새로서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냐 이거지. 그리고 또 뭐지. 목표, 그런 것만이 목표가 아니잖아. 교구 사역을 하다보면 여러분들도 느끼겠지만 자기들을 도울 손발이 될 일꾼들이 너무나 필요한거야. 그러한 섬기는 자들이 진짜 헌신되어서 나의 분신처럼 나의 드림팀이 되어서 섬겨줄 사람이 한 10명 정도만 있어도 좋겠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면 구역장 모임에 맨날 빠지던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구역장이 되고 그리고 구역장이 아닌 사람들도 그 바쁜대도 와서 물질로 섬기고 영혼 마음을 바쳐서 섬기려고 그럴려고 하는 거야. 그러한 목표를 갖는 것이 얼마나 훌륭해.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위해서 헌신하는 거죠.
예수님도 그렇게 사역을 하셨잖아요. 예수님의 목표가 열두명의 제자들이 있고 또 내적으로는 당신을 대속죄물로 바치는 그러한 목표 하나를 바라보고 이 때를 위해서 그 때 한 때를 향해서 예수님은 달려가시잖아. 그런 목표부터 시작을 해서 얼마나 많겠느냐고요. 자기 자신의 신앙의 진보부터 시작을 해서 너무 많잖아. 그것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거야. 내가 자주 예를 들지만 렌즈가 말이지. 초점이 일어나면서 불이 일어나는 것처럼 그거야. 그래서 아까 박목사 이야기 했는데 내가 이야기 하잖아. 요즘도 책꽂이 붙들고 몇 달에 한번씩 통곡하면서 울어. 보라고. 나는 자네가 느끼는 것보다 더 심각해. 뭐냐 하면 엊그제도 총신 신대원에서 신문을 보니까 로이드 존스 목사님 해외 저자로, 국내 저자로 내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는데, 나는 원하지도 않는 사이에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로 내 책이 올라간거야. 그러면 무슨 이야기에요. 참되게 삽시다. 정직하게 삽시다. 이 정도 가지고는 이제는 지도자로서 무책임한거라 이거지. 그러면 신학이 있어야 된다 이거야.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러한 엄청난 사람들의 어떠한 그 논쟁의 와중에 걸출한 설교자들이 섰었던 것처럼 내가 설수 있을 만큼 준비된 사람인가 생각할 때에 너무 좌절스러운 거야. 그래서 어제 밤에도 눈물이 마음속에 가득 고이는 거야. 나는 아는 것이 없다.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그런데 그래도 나는 지나온 날에 대해서 후회가 많이 되는 거야. 더 많이 공부할걸. 더 많이 매달릴걸. 그래도 후회하지만 그래도 뭐냐 하면 그 후회스러운 날들이 많지만 여태까지 나를 인도해오신 하나님을 원망해본 적은 없어요. 왜냐하면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 애를 썼고 물론 더 많이 잘할 수 있었겠지.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걸어갔어요. 그 여러분들이 사역을 하라고 하나님께서 여기에 보내셨는데 하나님은 무엇에든지 마음이 갈리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셔요. 절대 원하시지 않으셔요. 오죽 했으면 내가 박사과정 과정 2년 휴학하고 고등부에 매달렸어. 고등부에서 2년 다 잡아 먹었어요. 한주일에 24시간씩 설교 준비하고. 그러니까 학문을 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미친 것이지. 물론 그 때 책도 읽었지만, 그 때는 필요 자체가 정말 영혼들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래서 보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쏟아 부으면서 산 날은 하나님이 단 하루도 헛되게 안 하신다 이거야.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마음에 중심을 쏟아 부으면서 살아가는 거야. 책을 읽고 안 읽고 공부를 하고 안 하고가 그것이 문제가 아니야. 마음은 정말 오로지 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거기에 쏟아 부으면서 사는 것. 나는 지금 여러분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깊은 부채의식을 느껴요. 지금 나는 생각을 하지. 지금도 시간이 허락을 안 해. 그러나 이제는 말하자면 내가 내 시간을 잡아 댕겨가지고 어느 정도 낼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일주일에 단 열시간이라도 공부를 하는데 조금씩 조금씩 더 늘릴려고 그래요. 교회를 효율화 하고 그러면서 그래서 여러분들도 지금은 여러분들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는 거야. 형성되는 과정에. 그래서 책을 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봐도 되고 탁구를 쳐도 되고 수영을 해도 되고 등산을 해도 되는데 이 초점이 흔들리면 안 된다 이야기야. 이 초점이 흔들리면 아무것도 안 돼. 초점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거야.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면 사는 거지.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서 정화시키시는 거예요.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이를 악 물고 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심한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새벽기도회 이야기도 하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는게 그것 있지. 전도사들 그까짓것 새벽기도 나오는 것 참견도 안 하는 교회 많아. 누가 교육전도사보고 교육전도사 임명하면서 너 근처로 이사와야지만 된다라고 조건을 내거는 교회가 어디 있어. 교육전도사가 한 두 명 있는 것도 아닌데. 교회를 위해서가 아니야. 그 사람들이 새벽 기도회 나와서 내가 좋은게 뭐가 있겠어. 중요한 것은 뭐냐 하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훈련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이를 악 물고 살아야 되는 거지. 그래서 내가 사모들도 이렇게 보면서 그냥 어떤 때는 물론 갈급하니까 그렇겠지만 아기를 유모차에다가 포대기에 싸 가지고 와서 그래서 애기를 한 손으로 유모차를 굴리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기도하는 자매, 엎고 예배당을 설렁설렁 왔다갔다 하며 기도하는 자매, 그것이 하루하루의 삶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나 목표를 가지고 거기에 자기를 불태우면서 살아가는 그 삶은 세월이 흘러가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만한 격차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살아야 해. 열렬하게 그래서 그 목표를 그러니까 목표가 없으니까 돌아보는 것이 없는 거야. 내가 영적으로 내가 어느 정도 성숙했으면 좋겠다. 가정에는 어느 정도 되었으면 좋겠다. 사역에는 어느 정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목표의 노예가 되지 말고 그렇지, 자기를 강화시키시는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어서 사랑하는 삶이 되어야지. 성취했다고 해서 자고 할 필요도 없고 미달했다고 해서 괴로워할 필요도 없지만 주님이 주시는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람 문제를 항상 되물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몸부림 치면서 사는 거야.
그러니까 어때. 내가 오죽했으면 그렇겠어. 그래요. 어떤 사람은 목사님 요새 그러고 어떻게 사시냐고. 대단하시다 그래요. 왜 그러냐. 책을 그렇게 쓰시죠. 집회도 다니시죠. 교회도 하시죠. 그러다가 교회 경영에 대해서 어디 가서 잠깐 강의를 했더니 그것을 막 자기는 너무 쇼킹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거예요. 목사님은 그냥 강단에 엎드려서 말씀이나 하고 기도나 하고 그 이상은 나머지에 대해서는 순진할 정도로 백치라고 머릿속에 그렸는데 정말 놀랐다는 것이죠. 그때마다 내가 마음속에 눈물이 가득 고여요. 진심으로 이야기해요.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게 없요. 그를 봐도 만족이 안 되고 설교는 더 말할 나위 없이 만족이 안 되고, 책을 보면 눈물이 핑 돌고 이제는 내가 그러면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딸, 누구지? 크리스토퍼인가? 아 그 생각하더라고. 뭘 읽다가 딱 몰랐는데 아버지 생각이 나더라는 거야. 아버지한테 찾아가면 다 말해 줄 수 있는데. 그러니까 아버지가 죽었다는 거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라는 거지. 아, 정말 내가 그렇게 지식이 부요해야 되는데. 책 꽂이 보면서 막 눈물이 나고 오늘도 스터디하면서, 아, 저 40권 교부 전집 다 읽어야 되는데, 읽어야 되는데. 그래서 어떻게 해. 허락이 안 되는 거지. 그래서 어떻게 해. 할 수 없이 틈나는 대로 계속 공부해 나가고 그리고 틈나는 대로 공부하고 그리고 지체들을 모아 가르치고 그러면서 이렇게 하면서 힘 닿는대까지 하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다. 지금 나는 그래요. 나는 지금 공부해도 목회에 절대로 마음이 갈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왜냐하면 그러한 치열한 연단을 10여년을 겪으면서 여태까지 살아온 거예요.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다 할 수 있어. 여가 생활도 하고 할 수 있으면 건강을 위해서 수영도 하고 탁구도 하고 다 해요. 그런데 단 하나. 이 초점이 흐틀어지지 말게 하라. 절대로. 그러면서 목표의식을 가지고 헌신해야 되는데 정말 죽는다는 생각으로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아. 정말. 나는 그 목회자로서의 모든 것을 평신도로서 주일학교 교사할 때 배웠고 그 다음에 설교자로서의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전도사 생활하면서 배웠어요. 그 때 소원은 오직 하나였어요. 내가 저 강대 뒤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도 내게 맡겨진 이 영혼들이 변화될 수 있다면 나는 교수도 필요없고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했어요. 학교가서 강의 끝나고 나면 그렇게 눈물이 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감사한 것은 뭐냐 하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더라고. 자신을 다 쏟아 부어서 생명을 걸고 주님을 섬긴 날중에 단 하루도 하나님이 보상하지 않은 날이 없고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다 쏟아 붓지 않고 살아온 날들 가운데 자신의 미래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날이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기술 정도를 습득한 것이지, 안 되는 거라 이거죠. 그래서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해. 정말 헌신 해야 해. 그래서 이번에 제주도 가서 친구 목사 만나러 가서 많은 도전을 받았는데 헌금을 엄청 하더라고. 150만원을 받아서 그 60만원을 헌금을 한 대요. 그래서 내가 도전을 받고 왔어요. 내가 요새 없다 없다 말만하지 옛날에 내가 진짜 많이 헌금을 하고 살았는데, 요즘은 진짜 그렇구나. 하느라고 하지만 야, 내가 그랬어요. 150만원을 받아서 60만원은 헌금하고 90만원 가지고 어떻게 사냐. 나는 지금 그 돈 받아서 나도 지금 못 사는데 어떻게 하냐. 그랬어요. 사모님이 그래. 그런데 목사님 이상해요. 십일조는 30만원씩 해요.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 채워주신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목사가 그런 이야기를 해요. 김 목사,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이 한 가지 인정해 주시는 것 같아. 그게 뭔데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얼마든지 많은 물질을 맡겨 주셔도 정직하게 관리해주는 구나. 하나님이 그러시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교회가 지어진 간증을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정말 헌신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 한계를 극복하고 정말 헌신하며 살아야 해요. 그래서 그 영혼을 위해서 자신을 허비하면서 살게 될 때 그 때 하나님이 그것은 단지 재물에 불과하고 거기에 하나님이 불을 내리셔서 그것을 사용하셔서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역사를 일으켜 주시는 거예요.
정말 나는 주일학교 선생하면서도 그렇고, 전도사 생활을 하면서도 그렇고 나는 이제 우리 목사님 보다 우리 교회를 더 많이 사랑했어요. 정말. 그리고 가슴에 정말 아픔도 돌 던질 것이 아니고 내가 아파하는 것이고 말이지. 그러면서 지금은 그 교회하고 아무 상관이 없죠. 앞으로도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없죠. 그런데 뭐는 남았냐 하면 그렇게 섬기는 과정에서 얻게 된 훈련의 결과들이 마음에 남아서 그래서 오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지금은 여러분들이 나의 제자이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들이 찾아가서 저의 스승이 되어 달라고 하는 날이 있을 거예요. 그 때에는 정말 갖춰진 사람이 되어야 해. 그래서 나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그러한 감화를 끼치면서 그들이 또한 여러분들을 통해 배우고 미래의 스승이 될 수 있는 삶이 되어야 하잖아. 그래서 남과 같은 삶을 살아서는 안 돼. 탁월하고 특별한 삶을 살아야지.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