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구역장 수련회 저녁 집회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여 유리함이라(마 9:35-36)
녹취자 : 김세나
벌써 몇 달 전 이야기에요. 이제 우리 교회에 일하는 우리 팀장들, 행정 직원들 팀장들이 있었어요. 지금이야 거의 다 없어졌지만 9명인가 10명쯤 있었어요. 하도 야단만 치고 일만 많이 시켜서 미안해서 내가 오늘 점심 한번 살 테니까 가자 그러는데 마침 누가 그러는데 사당동 어디가 좋다 그래서 사당동을 갔어요. 사당 사거리에 거기에 씨푸드 뷔페로 하는데 뭐 가격도 합리적이고 괜찮아요. 그래서 거기를 데려갔어요. 그래서 맛있게 밥을 먹고 창밖을 이렇게 쳐다보니까 우리 옛날 열린 교회 개척하던 골목 바로 옆이에요. 그 때는 그 빌딩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주 높은 빌딩이 있어요. 그래서 9명 중에서 열린 교회 지하실 교회를 아는 사람이 있나 그러고 봤더니 한 명인가 두 명 알고 나머지는 몰라요. 야, 우리 성지 순례 가자. 밥을 먹고 내려가서, 저도 처음 갔어요. 그 동안에. 한 번도 갈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쭉 갔어요. 그리고 제가 설명을 했어요. 여기가 이렇게 전도 대원들이 열심히 전도 다니고 구역장들이 여기에서 복음 전하던 곳이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고 보니까 나야 열린 교회가 세워진 사연을 다 알고 있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전혀 새로운 느낌, 왜냐하면 이들이 왔을 때는 방배 4동에 큰 예배당이 있을 때였기 때문에 그 역사는 나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쭉 이야기를 해주면서 골목길을 걸어갔어요. 그랬는데 그 옆에 광서 교회가 서 있어요. 그 교회, 2층 짜리 지금 보면 요만한 교회죠. 그 때 그 교회가 그 교회를 짓고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 집사람이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저 교회는 얼마나 좋을까. 예배당도 한 300명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이고, 차도 7대쯤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고 그리고 뭐 거기에 뭐 카페도 있고 뭐도 있고 그래서 나야 뭐 지나가다가만 봤지. 나야 뭐 우리 교회하고 뭐 다른 곳과 비교해보거나 그런 적은 없어요. 그러면서 이제 그 길을 갔어요. 그런데 마침 교회가 있어요. 전에도 거기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좀 이상한 목사님이 계셨어요. 결국 우리 교회 5백 만원 강제로 헌금하고 말았는데, 돈을 안 줘서. 그 교회는 이제 가고 그리고 이제 새로운 교회가 왔어요. 오늘 제가 편안하게 우리 열린 교회가 어떻게 개척되었는지를 여러분들에게 해 주려고 해요. 갔더니 기장측 교회가 있는데 아주 깨끗하게 해 놓고 그렇게 해서 우리 쓰던 공간 그대로를 해 놓고 다만 조금 구조만 바꿔서 해 놨어요. 그래서 이제 내려가서 교회에 누가 계신가 봐서 원래 이 교회에서 개척한 그 목사하고 교인 저기 청년들이 왔는데, 직원들이 왔는데 잠깐 들어가서 기도하고 가도 되는지 여쭤 보거라. 그래서 갔는데 싫다고 그러겠어요. 사모님이 혼자 앉아서 사무를 보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내려가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제 10만원을 감사헌금 하고 거기 둘러앉아서 그 때 이야기를 해 준 거예요. 가만히 보니까 이제는 직원들도 중심적으로 일하는 직원들도 그 역사를 몰라요. 그래서 아 세월이 그렇게 흘렀구나. 거기 가서 내가 그 이야기를 다 하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이 여기에서 교회를 하게 해 주신 그 때를 기억하면서 우리가 그런 마음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그렇게 간절하게 눈물로 기도가 나왔어요. 그래서 나는 요새는 다시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를 포함해서 우리 교회의 그 장로님들이나 집사님들이나 이런 분들이 뭐 그 뭐 어디 기도원으로 기도하러 가지 말고 그 교회좀 사람 없는 날에 가서 그 바닥에 엎드려서 한번 기도를 해 보면 그러면 아마 훨씬 의미 깊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오면서 저 성지를 구입을 해서 그래서 두고두고 신앙이 떨어질 만하면 성지순례를 시키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1993년도 11월이었어요. 그 때는 저는 신학대학원에 교수로 있었고, 그리고 개척할 상황이 전혀 안 되었어요. 그런 것을 꿈도 별로 안 꾸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는 아주 좋은 대우를 해 주고 있었고 가르치는 게 제 은사였고,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그렇게 힘이 났어요. 그래서 어쨌든 무슨 과목을 가르치든지 마지막에는 통성기도 하고 끝났으니까요. 어쨌든 무슨 과목을 하든지 간에 마지막에는 울고 끝나야지만 직성이 풀렸어요. 그래서 부흥회인지 뭐 그랬지요. 어쨌든 그렇게 하면서 했는데 그러면서도 저는 저기 시내에 있는 600-700명 되는 교회에서 교육전도자로 섬기고 있었어요. 거기에서 열심히 청년부 했어요. 그 전에 있었던 교회에서 제가 이제 청년 사역을 하고 싶은데 누가 오라고 그러는데 청년들 여기 있으니까 사역을 해달라고 하는데 얼마나 모이냐 하였더니 한 30명 모인다 그래요. 그래서 그러냐 그러고 기도를 하고 인도해 주셔서 갔어요. 그랬더니 30명이 모인다는 것이 집에 있다는 뜻이었어요. 첫날 부임해서 갔는데 3명이 모였어요. 3명. 주산학원 같이 생긴 지저분한 방에 셋이 모여서 있더라고요. 그것도 무슨 내가 들어갔는데 힐끔 쳐다보고 관심도 없이. 그래서 어쨌든 기도하면서 열심히 해서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일년 6개월 정도 하고 나올 때 한 60명 정도 청년들이 모였어요. 그래서 나는 거기에서 조금, 교회야 뭐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제 거기에서 청년 사역 잘 하고 싶다 생각을 했는데 11월 달인데 누워서 자는데 아 잠이 안 와요. 그렇게 피곤하고 밤 중에 강의하고 들어왔으니까 그래서 잠 안 오는데 엎드려 있으면 뭐해요. 누워 있으면 뭐해요. 침대 밑에 내려가서 우리 집사람은 자고, 우리 집사람 발 밑에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안 되겠지만 기도하다 졸리면 자야지 그리고 엎드렸는데 뜨겁게 기도를 시키시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영혼들에 대한 연민이나 그런 것들이 목회자니까 늘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 이렇게 불특정 다수에 많은 영혼에 대해 한 없는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개척을 해라. 저의 모든 것을 볼 때 개척할 체질입니까. 솔직히 이야기 해서. 아니 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200명 정도 모이는 큰 교회도 싫고 오라 그럴 일도 없지만 200명 정도 모이는 교회 있으면 가서 교수 안 하고 목회를 해볼 용이도 있다, 이런 정도 생각해 봤었고 학교에서는 같이 열심히 일하면서 학교를 키워가자고 이런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에이 아니겠지 그러면서 잤어요. 그 다음날 또 잠이 안 와요. 그 전날 잠을 안 잤는데도 그래서 할 수 없이 또 내려와서 엎드려 무릎을 꿇고 기도했어요. 뭐 갑자기 개척할 수 있게 능력을 달라고 기도가 나오는 거예요. 뭔 소리를 네가 하고 있냐. 주제를 파악을 해야지. 아니다. 그런데도 또 기도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그러더니 우리 집사람은 보더니 이 양반이 이틀 밤째 이상하거든. 밤마다 내려가가지고 우는 것처럼 기도하고 그러니까 도대체 뭐야 그러는 거예요. 여보, 이것은 아니겠지만 하나님이 나보고 개척하라고 하시는 것 같아. 그래? 내가 교회 이름 지어 놨는데. 뭔 소리야. 그러니까 자기는 9월달에 교회 이름을 지어 놨대. 뭔데 그러니까 교회를 개척하게 되면 이런 이름을 해야지, 그게 뭐냐 하면 열린 교회 래요. 그래서 그게 뭔데 그러니까 계시록에 보면 하늘이 쫙 열리고 그 빌라델피아 교회 이야기가 나와요. 웃긴다. 그랬습니다. 3일째 되는 날 기도를 했는데 똑같이 기도를 막 하는데 이 성경 구절이 떠오르는 거예요.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니라. 그 때 제가 이것을 이미 몇 년 전에 이것을 가지고 논물을 썼어요. 희랍어 텍스트까지 쭉 연구를 했었거든요. 그게 확 떠오르면서 찬송이 하나 가슴에 울려 퍼지는 거예요.
(찬양) 외치는 자 많건만은 생명수는 말랐어라
쭉 들리는 거예요. 길을 잃고 헤매이며 당황하는 많은 양떼들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눈물을 밤에 펑펑 흘리면서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그게 11월 15일 쯤 되었을 때에요. 그리고 우리 집사람도,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여보, 이것은 아주 명백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우리는 이렇게 걸어가는 길 속에서 삶의 방향 전환이 있을 때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아주 분명한 싸인이 있었거든요. 그것 없이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하다 못해 전도사 생활을 하더라도 상황으로 볼 때 박차고 떠나가야 할 입장이었지만 싸인 없으면 절대로 안 움직였어요. 그런데 이것은 싸인이다. 우리 집사람이 기도해 보더니 틀림 없대. 그러더니 나는 한편으로는 한 숨이 나오는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하나. 내가 개척하는 것을 본 적도 없고, 그런데 우리 집사람은 신이 났어. 할렐루야 그러더니 그 때 내가 학교 가느라고 바쁘니까. 그런데 걱정하지 말래. 그러고나서 그리고 12월 12일 날 열린 교회가 오픈을 한 거예요. 얼마나 속전속결로 한 거예요. 그래서 적금통장 깨뜨리고 이제 1500만원에 60만원 월세를 얻었고 그 때 이제 제가 학교에서 93년도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91년도에 그 학교를 갔어요. 안양대학에 있다가 그 대학교에 갔어요. 지금은 백석대학이죠. 가서 강의를 하기 시작했어요. 나는 이제 일반대학화 되어가는 그런 대학에 너무 지쳐서 싫증을 느끼던 차였는데 그 학교에서 나를 불렀어요. 가서 강의를 하니까 학생들이 뭐 내 클래스에 400명이 모이는 거예요. 선택과목인데 새카맣게 모여서 강의 끝나고 나오면 완전히 부흥회 하는 분위기 였어요. 400명이니까 뭐 그렇게, 그래서 그리고 났는데 그 때 만난 사람들이 김경혜 전도사, 김준성 목사, 구영주 사모, 또 누구야. 뭐 그 이외에도 여럿 있어요. 같이 모여가지고 이제 제자들 몇이서 교수님 말씀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양재동에다가 교회를 하나 빌려서 신앙 강좌를 열었어요. 아침, 저녁으로 한 100명 씩 모였어요. 아침에 한 100명이 덜 모였지만 그렇게 모여서 목요일 날에 말씀을 들으면서 그랬어요. 그러다가 교회를 개척한 거예요. 그러니까 생각하면 당연히 그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겠다 그러죠. 전혀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나까지 포함해서 8명이 교회를 개척한 거예요. 교회를 개척한 거예요. 그래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이제 처음에 교회를 개척을 했어요. 교회를 개척을 하고 볼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 때 이미 저는 전국을 많이 돌아다니면서 설교 사역을 하고 있었거든요. 말씀의, 설교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틀이 잡혀 가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가서롭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두려울 게 뭐가 있으랴. 주님이 가라 그러셔서 가는데 걸어가보면 길이 있겠지. 그것도 사람 가는 길인데 설마 죽으랴. 그리고 일단 뭐 나는 신학교에 있으니까 밥이야 굶겠나 그리고 들어왔어요.
그리고 나서 첫 날서부터 맨 첫날 주일 오후에 창립 예배를 드렸을 때, 토요일인가 창립 예배를 드렸는데 그 때에 이제 주일날 창립 예배를 드렸네요. 그 때에 갈라디아서 6장 14절 그러나 내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니, 그것이 이제 첫 설교였어요. 열심히 설교 했어요. 그리고 나서 생각을 했어요. 12월 12일에 개척을 했는데 1월 중순에 30명이 넘게 모였어요, 40명 가까이. 대단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탁 자신이 생기는 거예요. 얼마나 못하면 1년에 한 300명 안 모일까.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너 뭐라 그랬니? 맛 좀 한번 봐라. 코에서 단 내가 나오도록 고생을 하는 거예요. 그것만, 개척교회만 해도 힘든데 그것을 신학교까지 하고 외부 집회까지 하고 책까지 쓰면서 그렇게 하니 얼마나, 아침에 구두를 신다가 헛구역질이 나가지고 몇 번을 토할 번 하고 그러면서 교회를 꾸려 나간 거예요. 그러더니 300명 왠 걸, 1년 동안 정말 인간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예배 시간에 펑펑 울어. 어떤 때는 막 설교 시간에 사람들이 울어서 설교를 잠시 정돈 해야 할 사람인데도 등록은 안해.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뭐냐 하면 헌금도 안해. 휴지만 쓰고 가는 거야. 그런데 나는 당연히 그러면 등록할 줄 알았어요. 아이, 일절 없어요. 그러니 너무 이상 한 거예요. 그 땐 또 전국을 다니면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탔기 때문에 저녁 오후예배 하면, 벌써 바깥에서 시동 켜 놓고 나 데려갈 교회에서 기다리는 거예요. 부흥회할 교회에서. 그러면 오후예배 때 말씀을 전하면 막 은혜를 받아요. 다같이 열심히 기도하다가 기도하겠습니다. 불 붙여 놓고 난 그냥 가방 들고 갔거든. 각자 주기도문 하고 그냥 가라고. 어떤 때에는 5시에 설교가 끝났는데 한 7시, 8시까지 기도하는 성도들도 있었어요. 그러면 당연히 등록을 해서 진짜 철저하게 헌신해서 집도 팔 것 같잖아요. 절대 등록을 안 해요. 그리고 헌금도 안 하고, 그러다가 은혜가 떨어지면 가는 거예요. 안 나오는 거죠. 오질 않았으니까 갈 수도 없지. 그러는 거예요.
그 과정을 쭉 지나다가 제가 고백 하는게 그거예요. 뭐냐 하면 그렇게 하면서 놀랍게도 93년도에 시작해서 94, 95, 95년도에 결국엔 학교를 그만 뒀어요. 96년도부터는 목회에 전념한다고 했는데 사실은 집회를 많이 다녔어요. 그러다가 97년도 되었을 때에 딱 선언을 했어요. 그 때 하나님이 나에게 목회에 대해서 깊이 깨닫게 하시면서 내가 이제는 수요예배도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집회를 일체 안 나갔어요. 동남아 갔다가도 월요일에 갔다가 수요일 오후에 돌아왔어요. 그럴 정도로 철저하게 금요예배는 물론이고, 그렇게 하면서 하니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은혜를 받으면서.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 깊이 깨달은 게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영혼을 섬기는 이 사역은 하나님이 은혜를 돌아가게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군대와 같아서 영혼을 돌보는 그 사람을 밟고 임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가 임하지 위해서는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수치스럽게 엎드리는 일이 있어야 해요. 그것을 밟고 지나가는 거예요. 밟고 지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바로 이 말씀을 주셨거든요.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는 양 떼를 너에게 보내 주겠다. 그랬더니 진짜 보내 주시는 거예요. 보내 주는데 어쩜 그렇게 교인으로서 별 이바지를 못할 사람들만 보내주시는 거예요. 부자도 오는데 옛날에 부자였던 사람, 지금은 끼니가 간 데 없는 사람, 그 다음에 또 교회 열심히 섬기던 사람도 오는데 옛날에 섬기다 지금은 방학한 사람, 이런 사람들이 오고 그것은 그래도 참을 수 있겠는데 어느 교회, 이렇게 이야기 하면 그 때 오셨던 분들 상처가 될지 모르는데 그 분은 제외하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제가 볼 땐 어느 교회 가서도 정착할 수 없는 진짜 마음에 가시가 수없이 많은 그런 사람들이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 앞에 은혜를 받고 확 꺾어 지면서 그때 보면 거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 것이 생사를 거는 거예요. 정말 이에요. 지금은 너무 성에 안 차요. 그 때 1997년, 1994년도 5년도 인데요. 설교 테이프가 1200원이었어요. 굉장히 비싼 거였죠. 그런데 집집마다 찾아가보면 가장 적게 가지고 있는 집이 라면 박스 하나 였어요. 보통은 두 박스 내지 세 박스. 그래서 돈 벌어다가 문서선교부에 계속 가져다 주는 거예요. 교회 예산은 8천만원인데 문서선교부 테이프 파는 예산은 1억원이었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조금씩 교회에 도와줬어요. 그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데 뭐냐 하면 그 까칠한 성격은 안 변하는 거예요. 만만하게 변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 속에서 자기 성질대로 하다가는 말씀의 은혜가 임하면 막 산산히 부숴 지는 거예요. 그러다가 항상 새벽기도도 나가면 막 거의 필사적으로 울면서 기도하는 거죠. 한 사람이 울고 기도하기 시작하면 옆에 있는 사람은 더 울어야 해. 왜, 시끄러워가지고 누가 크게 우나 내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그 때에 나는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는 양 떼라고 하는 의미를 깨달았어요. 그냥 이렇게 한없이 약해서 상처만 받은 순결한 어린양이 아니라 그렇게 심하게 고생하고 유리하면서 살게 했던 그 무엇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뭐냐 하면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확 변화되면 신앙의 생사를 거는 거예요. 뜻뜻 미지근하지 않아요. 하면하고, 말면 말고. 그 다음에 미끄러져도 아주 강팍해 지든가 아주 꺾어지든가 둘 중에 하나에요. 그래서 목회 초기에 지금은 뭐 아무리 이상한 교인이 들어와도 별로 놀랍지가 않아요. 그때에 모든 종류를 다 경험했어요. 충분히. 그리고 어쩜 그렇게 가난해. 그 때 유명한 말이 있었어요. 목사님이 부자잖아요. 그게 그 때 제일 유명하던 말이었어요. 명세기 대학교수고 하니까 목사님이 부자잖아요. 그래서 밥 먹으러 가면 목사님이 내세요. 목사님이 부자잖아요. 그게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붙어 있어요. 그랬어요.
그런데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 알게 되는 것은 뭐냐 하면 정말 영혼을 돌보는 사람은 그 영혼들의 변화는 자기를 넘어서서 그렇게 임하지 않아요. 그래서 여러분 영혼을 잘 돌보고 헌신하잖아요.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거예요. 정말로요. 그래서 끊임없는 자기 깨어짐 속으로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거예요. 데려가시는 거예요. 그 때 지금도 기억을 하면 그 때 교역자들 몇 명 안 되었지만 열심히 복음 전하고 우리 영혼에 대한 눈물이 항상 가슴속에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 때를 기억해야 해요. 항상. 맨 처음 구역장으로 부름을 받고 영혼들을 위해서 가슴 벅찬 눈물을 간직하던 그때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계속 보내 주셨어요. 그래서 결국은 뭐 한 100여명 들어갈 수 있었던 예배당인데 꽉 차가지고 최대한 270명까지 예배를 드렸어요. 들어올 때는 자기 맘대로 들어와서 앉는데, 나갈 때는 자기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못 나오는 거예요. 통로에 전부다 사람들이 꽉 채워 가지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하나 하나 건물을 빌려가지고 써서 거기 전체가 열린 교회가 되었어요. 그래서 앞에 있는 만두집의 아주머니가 와서 그러더래요. 댁의 교회는 손님이 많네. 지하실에서 계속 나오는 거예요. 계속. 그런데 그 때에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 여러분들보다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었는가. 아니에요. 여러분들보다도 더 못된 사람들도 많았고 그리고 여러분보다 훨씬 훈련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확실한 것 하나는 있어요. 그것은 뭐냐 하면 이 거친 야성, 왜, 교회에서 아무것도 도와주는 것이 없으니까 자기가 작접 알아서 하는 거죠. 그 거친 야성. 그것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러면서 영혼을 돌보는 거예요. 구역장에게 영혼들을 맡겨 주면 열심히 돌보고, 교회 안 나오겠다고 하면 거기에서 펑펑 울고 그래서 돌이키고 이러는 그 뜨거운 마음이 있었던 거죠. 결국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목회사역의 비결이 뭐냐고 묻는데 두 개도 아니고, 세 개도 아니고 네 개도 아니에요. 오직 하나야. 하나. 그게 뭐냐 하면, 그게 뭐냐 하면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 거예요. 그게 핵심이에요.
오늘 여기에 보면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는 양 떼를 보시니까 예수님이 민망히 여기셨다 그랬거든요.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백성들이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기 때문이다. 이 민망히 여기시다는 이 말이 희랍어로 에스프랑크니드데 라는 단어에요. 이가 뭐냐 하면 창자까지 흔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영혼이 여기 창자에 있다고 본 거예요. 이게. 우리 말로 말하자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는 표현이에요. 민망하다는 뜻이, 그러니까 번역이 잘못 된 거예요. 그러니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픈 그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 이것이 바로 영혼을 돌보는 사역에 있어서 최고의 관건이에요. 최고의 관건이에요. 나머지는요. 그렇게 치명적으로 중요하지 않아요. 영혼을 정말 뜨겁게 사랑하면 하나님이 정말 지혜가 필요하면 놀라운 지혜를 주시고 그리고 잘 몰라서 잘못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환경을 막으면서라도 실수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보호해 주셔요. 그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영혼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끊임없이 되물어야 할 것이 뭐냐 하면 그것은 이 안에 있는 영혼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영혼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 그것이 내 안에 살아 있느냐. 왜냐하면 맨 처음에 영혼을 돌보겠다고 우리들이 손을 들었을 때 그 동기 자체가 거기에서 출발 한 거예요. 거기에서 출발 했어야지 되는 거예요. 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정신없이 바빴겠어요. 5시간 잔 적이 거의 없어요. 4시간. 그 때는 새벽기도가 5시인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뭐 4시 40분이면 일어나야죠. 마지막 수업이 10시 반인가 해서 끝나고 학교에서 이것저것 치다꺼리하다가 들어오면 밤 12시인가, 12시가 되면 꼭 저녁을 먹어야 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1시인데 그러고 4시 40분에 일어난다고 생각을 해 보세요. 뭐 워낙 체력이 건강했으니까 그랬지만 지금 같았으면 감당도 못하죠. 그런데 그러한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힘들겠어요. 그런데도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목자로 세우셔서 내가 조금 고생하면 그것이 한 그늘이 되어서 깃드는 그 상처받은 새들과 같은 영혼이 있다고 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감사해요. 얼마나 감사해요. 그래서, 그래서 영혼들 하나씩 하나씩 보내주셔요. 오면 그 교인들은 이렇게 지금은 교회가 커지니까 이게 슬쩍 와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 때는 뜻을 세우지 않고서는 교회를 찾지도 못해요. 골목 구속에 쳐박혀 있어서. 와 가지고 은혜를 받고 그래요. 그렇게 사모하면서 왔으니까 은혜를 안 받을 수가 있겠어요. 펑펑 울면서 예배 시작하면 항상 기절할 것처럼 엎드려 쓰러져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꼭 있었어요. 그러면서 아무 소망도 없이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꽉 차면 그 사람의 인생의 어려운 문제들의 해결이 결국은 하나님을 등지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면 사실은 고민도 안 되는 것 가지고 인생의 문제라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진짜 문제라면 하나님이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든지 능력을 주시든지 셋 중의 하나거든요. 그 속에서 정말 뜨겁게 주님을 영혼들이 만나니까 거기에서 힘을 얻으면서 살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살아요. 하나님은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 영혼을 위해서 제한된 헌신으로 아주 재주가 많은 사람이 섬길 때 보다는 재주가 없어도 내가 돌보는 영혼을 위해서 무제한의 헌신이 각오 되어 있을 때 무제한의 헌신이 각오 되어 있을 때 하나님이 큰 은혜를 부어 주셔요. 거기에서 그 영혼, 우리는 돌볼 수 없는 그 영혼을 우리는 차라리 주님의 손에 도구가 되고 주님이 직접 그 영혼을 어루만지시는 놀라운 역사를 하나님이 보여 주십니다. 보여 주십니다. 보여 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때요. 그렇게 주님을 깊이, 그러니까 교회의 모든 원동력이 말이죠. 잘 들어보세요. 교회의 모든 원동력이 예배에 달려 있는 거예요. 예배에 와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부서지면 그래서 주님의 사명을 깨달으면 목숨을 걸고 영혼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구역장이란 사람이 그렇게 세워진 게 아니라 교회 오래 나와서 아니면 그렇게 교회 오래 다녔는데 뭐라도 하나 섬겨야지 이러고 구역장이 되면 구역장인데 이것도 교회에서 안 해 주나. 이것도 지원을 안 해 주나. 그리고 이것도 이만큼 하다보면 내 일이 힘들어 지는데 이런 등등의 계산들이 생겨나면서 목양사역은 아주 힘을 잃게 되는 거죠. 뜨거운 사람,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 목자의 심정을 헤아리는 그 마음에 참여할 때에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면 하셨을 그 일들의 뒤를 이어서 걸어갈 수 있는 거예요.
걸어갈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보세요.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다고 그러는데 언제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셨어요. 다시 말하면 무리를 보실 때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픈 마음이 들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늘에서 쉬실 때 그런 마음이 든 게 아니에요.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면서 병자를 고치고 그리고 무지한 자를 가르치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그 때에 영혼들이 그렇게 불쌍하게 예수님의 마음속에 다가왔던 거예요. 그래서 정말 영혼을 위해서 정말 무제한의 헌신을 해야 해요.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이 사역이 우리에게 너무나 값진 사역이 뭐냐 하면 여러분이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심지어는 어떤 죄를 지었든지 간에 여러분들의 마음 안에 여러분들이 돌보는 영혼을 향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는 한 여러분들의 영혼은 안전해요. 여러분들의 영혼은 안전합니다. 그런데 그 눈물이 식기 시작할 때에 그 때에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사랑의 질서는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오늘 이제 이 열린 교회의 이 시점에서 우리들이 본래의 어떤 정신을 우리들이 회복해야 할 것인가. 이것을 몇 가지만 말씀드리려 해요. 뭘 회복해야 할 것인가. 열린 교회의 정신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회복해야 할 것인가. 첫째가 뭐냐 하면, 첫째가 뭐냐 하면 예배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예배에. 여기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희망이 없어요.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되는 거예요.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되요. 여러분 모두는 아닐지 모르지만, 아마 여러분들은 대부분 거의 90% 이상이 예배를 통해서 열린 교회에서 주님을 아주 강력하게 만났기 때문에 이 교회에 정착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영혼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그리고 나처럼 이전에 방황하고 고통 하는 영혼들에 대한 눈물이 생겼을 거예요. 그리고 정말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거예요. 그렇죠. 그러니까 그것, 그 지점을 생각을 해야 해요. 그 지점을 생각을 해야 해요. 그래서 내가 3년, 혹은 5년, 6년 이렇게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이제는 아마 예배를 드려도 결국은 그 예배가 그 예배인것처럼 이렇게 나도 지식이 많이 쌓여 가기 때문에 이제는 식상할 때도 되지 않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고 모욕이에요. 지금도 10년이 넘게 열린 교회에 다니면서도 계속 은혜를 간직하며 새로운 은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실제로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일인데 어떤 그 청년 지체가 예배 시간에 졸았어요. 습관적으로 졸아요. 그러니까 나이 많이 든 그 분이 그러는 거예요. 나는 예배 시간에 졸리면 내 허벅지를 꼬집으면서 예배를 드린다. 너희들은 아직까지도 젊고 건강하고 집중력이 있는 그 나이에 예배드리는 태도가 그게 뭐냐. 한 침 놨죠. 그러니까 말씀의 세계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정말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않으면 자신의 영혼을 살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 정신이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에요.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훨씬 희박해져 있는 것이 저를 한없이 슬프게 해요. 그래서 저는 교회가 커지는 것이 반갑지 않아요. 영혼들이 새롭게 돌아와서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아주 기쁘고 반가운 것이고, 그 일을 위해서 헌신해야 하지만 그러는 속에서 예배의 수준이 정말 낮아지는 거예요.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어요. 여러분들이 예배를 위해서 일주일 내내 예배와 목회자를 위해서 일주일 내내 기도해야 해요. 그리고 아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되요. 오늘도 은혜를 주시겠지. 그것은 설교자의 재주를 믿는 거지 하나님을 믿는 것 아니에요. 오늘도 나를 거저 돌려보내지 마시옵소서.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와서 예배 속에서 아주 확실하게 하나님을 만나야 되요. 확실하게. 조금도 과장이 아니라 예배시간마다 자신의 악함에 대한 깊은 참회와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찬 가운데 예배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야 된단 그 말이에요. 이게 모든 교회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이에요. 그렇게 주님을 만난 사람이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을 것 아니에요. 영혼을 돌보면 목숨을 버리는 돌봄을 할 수 있겠죠. 그렇죠. 그렇게 하나님을 분명하게 만난 사람일 때에 구역장이나 순종을 할 때 가르칠 내용이 있는 거예요. 가르칠 내용이 있는 거죠. 왜냐하면 내가 진리의 말씀에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영혼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마음이 있는 거죠. 그렇지 못한 지체들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고 그런 지체들을 보면서 통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 지체를 사랑하고 뜨겁게 하나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죠. 그게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과 간증이나 듣다가 하나님을 만난 사람, 혼자서 책 뒤적거리다가 하나님 만난 사람, 다 달라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가장 안전해요. 사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가장 변실해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변화되는 거예요.
열린 교회가 다른 교회와 다른 역사가 있었다고 한다면 예배 시간마다 하나님이 주셨던 회심의 역사에요. 그래서 정말 희망이 없는 인간들이 회심하고 하나님 앞에 변화된 그 가운데에 영혼을 향한 사랑을 간직한 사람들이 영혼을 위해서 돌보면서 살아온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가장 회복해야 할 것이 뭐냐 하면 예배에서 뜨겁게 주님을 만나는 그 은혜의 감격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지난 주일에 들은 말씀을 가지고 지체들과 함께 나눌 때 이 속에서 말씀이 나를 움직인 감격들이 이 속에서 메아리 치고 있어야 한단 그 말이에요. 그렇게 해야 된단 말이에요. 정말 절실하게, 정말 절실하게 그렇게 하나님 앞에. 설교하기가 점점 힘들어요. 지하실에 그냥 화장실을 지나서 그냥 꼴아 박듯이 내려와 올 때에는 뜻을 정하지 않고서는 그런 교회에 오지 않거든요. 냄새나는 쾌쾌한 지하실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어떤 사람은 예배드리다가 기절 했잖아요. 지하실에서 숨이 막혀서. 그러한 곳에 올 때의 교인들은 아주 사모하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 가난하고 병들었어도 이게 정말 주님을 만나야 되겠다고 하는 절박함이 있는 거예요. 그 것이 여러분들의 속에서 열린 교회의 기본적인 정신이었어요. 이것들이 현저하게 사라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서 어떻게 구역장을 해야지 잘 해야 될까. 다 생각하지 말고 생생하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냐 되겠다는 그것, 그러니까 구역장의 가장 중요한 기도가 뭐냐 하면 자기 구역식구들이 예배에 잘 참석하는 것과 예배에서 하나님 만나는 거예요. 예배에서 하나님을 많이 만나면 구역장이 가르칠 게 없어요. 구역예배 모여 가지고 은혜 받았냐 그러면 은혜 못 받았을 때 문제 하나 풀어보라고 하면 그렇게 뜸을 들이고 대답도 안 하다가 주님 만난 이야기 하라고 하면 거침없이 그냥 나오며 울다가 간증하다가 웃다가 간증하다가 웃다가 그러잖아요. 그러면서 하나님을 만나는 그 지체들이 있을 때에 구역이 살아나는 거예요. 구역의 목회가 너무너무 쉬운 거죠. 너무너무 쉬운 거예요. 적어도 이제까지는 사경회를 하면 교구 교역자들이 기대하는 바가 있었어요. 그래서 열심히 교구 식구들을 챙겨서 사경회에 참석하게 해. 이유가 뭐냐 하면 사경회 많이 참석해서 은혜를 받으면 교구 목회가 쉬워 지는 거야. 말을 잘 들으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니까, 그러니까 돌보는 게 너무 쉬운 거죠. 예배가 반드시 여러분의 개개인의 삶 속에서 회복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정말 회복이 되야 해요.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말이죠. 지하실에 있을 때 그렇게 사모하는 교인들에게 설교를 하는 것 보다는 지금 설교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기도를 필요로 해요. 훨씬 더 많은 능력과 기도를 필요로 해요. 그 때는 신경도 안 쓰면서 설교 했잖아요. 1997년 9월 30일날, 9월 마지막주 예배였는데 11시에 시작해서 2시 20분에 끝났어요. 설교 시간이 144분이었어요. 왜 그랬냐 하면 설교자가 1시간을 잘못 봤어요. 그래가지고 죄 죽임의 교리 5번이었어요. 하나님께서 말씀을 부어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예배의 놀라운 감격, 항상 예배를 드리고 나올 때마다 아 우리를 이 이상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이 이상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간절한 사모함으로 예배의 은혜를 받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정신이 뭐냐 하면 기도의 정신이에요. 그래서 예배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난 다음에는 기도에 철저한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해요. 기도에 헌신된 삶을 살아야 해요. 그러니까 새벽에 기도 안 하면 거의 기도 안 하게 됩니다. 특별히 뜻을 세우고 밤에 기도하시는 분도 있어요. 아무래도 좋아요. 어쨌든지 간에 시간을 정하고 거기에 헌신해야 해요. 나는 열린 교회 교인들이나 구역장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그 순간 새벽기도를 운명으로 받아 들였으면 좋겠어요. 새벽기도를. 일단 거기에서 물러나면 우리의 생활의 구조가 옛날 농촌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환하게 사는 나라가 없어요. 어마어마하게 전기를 씁니다. 그런데 그 밝은 전기불빛 아래에서 10시도 좋고, 11시도 좋고 한없이 활동시간이 늘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되죠? 잠잠히 침대앞에서 하나님 앞에 매달릴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요, 새벽기도를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나와야 해요. 그러면 뭐라 그러는가 하면 내가 취침 하는 시간이 상관없이 나는 새벽기도에 나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단 말이에요. 아니면 집에서 새벽기도를 하던지, 매우 어려운 결심이기는 하지만, 한때는 몇 년 그런 적 있었어요. 1-2년 그런 적 있었어요. 새벽기도를 나와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야 해요. 기도해야 해요. 교회를 개척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제가 그 탁월한 체력이었거든요. 그 때 30대 후반서부터 40대 후반까지 너무 돌보지 않고 건강이라고 하는 자원이 한 없이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인줄 알았어요. 제가 제일 답답해하는 사람이 비실비실한 사람이었어요. 허리 아프다 하는 사람들, 허리가 왜 아프냐. 허리 아프다 하고 기운이 없고 너무 무리하는 것 같고 무슨 놈의 무리냐. 하는 것이 뭐 있다고 곳곳이 탁 앉아서 22시간을 페이퍼를 쓴 적이 있어요. 에세이로만. 오강 밑에다 갔다놓고. 전도사 때는 철야기도를 하든지 철야공부를 하든지 둘중에 하나였어요. 왜냐하면 교인들이 지금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전도사가 어떻게 퍼질러 자나, 그래 그러면 내가 밤새도록 매일 기도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나는 금요일 날 철야 공부를 하겠다. 한 2년 동안 금요일은 철야 공부하는 날이었어요. 한 2시까지 기도하고 와서 2시서부터 새벽까지 공부하고 전도사 때니까 담임 목사님 뭐 일절 없죠. 새벽까지 기도하고 새벽기도 5시에 정확하게 나가야 해요. 가서 불 때고 가서 새벽기도 하고 돌아오는 거죠. 1-2시간 자고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 학교 강의, 끝나고 와서는 책 쓰고, 새벽기도, 그러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너무 토할 것 같으니까 아 내가 전도사 한 사람을 쓰면 새벽기도 좀 맡기고 해야 겠다. 실제로 목회에 딱 들어가 보니까 그렇게 시도도 안 해 봤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를 악 물었어요. 죽기 아니면 까물어 치기다. 그러면서 위로가 되었던 것이 뭐냐 하면 주님의 생애를 묵상하는 거예요. 주님의 생애를.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그러면서 토할 것 같은데도 새벽기도 나오면 하나님이 힘을 주셔요. 그래서 엎드려서 하나님 난 너무 힘이 없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옵소서. 교수들이 먹고 하는 일이 원래 비판하는 일이잖아요. 말은 좀 잘해요. 학교에 있을 때에 목회를 그 따위로 하니까 안 되지. 맨 날 비판을 해요. 그런데 해보니까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정말 그 때 부터는 교회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요. 2층이 있는 교회만 봐도 가슴이 막 저린 거예요. 지금도 그래요. 교회가. 아 저기에서 어떤 한 사람이 죽는구나. 그가 안 죽으면 교인이 죽는구나. 둘 중에 한 사람 누군가가 죽겠지.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안 돼요. 구두끈을 매다가 헛구역질을 하면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 집사람 붙들죠. 여보, 쉬어. 쉬어. 그런데 그렇게 해 보니까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걸어 나가는 거예요. 주님 위해 죽는다며. 반문을 하는 거죠. 멸시 천대 십자가는 네가 지겠다며. 그래서 말씀의 은혜를 확 받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를 해요. 지금도 잊혀 지지 않아요.
개척한 그 다음날 월요일이었어요. 그러니 그 명세기 개척인데 그것 하고 손님치루고 얼마나 고달팠겠어요. 새벽에 도저히 못 일어나겠어요. 순간적으로 아이고 어제 교회를 개척했는데 누가 기도하러 나왔을까. 쉴까, 그래도 개시인데 그리고 예배당에 왔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8명이 새벽기도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정말 그 내가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은 어디든지 희망이 사라진 것 같아도 주님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 두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영혼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기도하지 않고 목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놀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절대로 그 목양이 잘 되게 절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셔요. 하나님이 무시 당하는 거예요.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직무,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 영혼들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기도하지 않는다면 나쁜 구역장이에요. 나쁜 구역자. 그리고 그 속에서 영혼을 향한 사랑이 깃들 수 없어요. 영혼을 향한 뜨거운 사랑은 기도라고 하는 아궁이 속에서 그것이 그 불길이 유지가 되는 것이에요. 유지가 되어요.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이 놀랍도록 그 기도를 기다리셨다는 듯이 여러분들의 구역을 인도해 주셔요. 정말 놀라워요. 그것 하라고 하나님이 세워 주신 거예요. 그거 하라고 하나님이 세워 주신 거예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영혼을 위해 기도해요. 나는 그저 생각나는 대로 이 사람, 저 사람 교역자들부터 생각나는 대로 기도했지만 우리 집사람은 그 후에까지 나는 생각이 안 나요. 350명 400모일 때까지 너덜너덜 하게 A4 용지에다가 출력을 해가지고 다니면서 그것을 새벽마다 한 사람 한 사람씩을 모두 기도했어요. 하루에 400명 가까이. 그러니까 뭐가 나오냐 하면 영혼의 가치, 내가 기도한 영혼이 주일날 계단에서 만났을 때 그 기쁨,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를 위해 간절히 빌었을 때 그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을 때 그 행복, 하나님이 나의 목양과 함께 해주신다는 그 기쁨, 그 은혜, 그런 것들이 생생하게 밀려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혼을 돌보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나 같은 사람이 기도할 때에 이렇게 들어주신다는 사실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가슴속에서 경험되는 거예요. 그 기도를 회복해야 돼요.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구역장들은 새벽기도 나와야 해요.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옛날에 보면 교회가 사찰 있는 교회가 거의 없었어요. 그 담임 목사도 생활비, 월급을 제대로 못 주는데 어떻게 사찰을 월급을 줍니까. 다 후대에 생겨난 거예요. 그리고 큰 교회에서 생겨난 거죠. 저도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에 뭐 300명 가까이 모여도 사찰 없어요. 그러면 아침에 교회 와서 문 따는, 문 따는 장로님, 아침에 와서 새벽에 땡그랑 종치는 집사, 그 다음에 새벽에 와서 난로 피는 권사, 당번이 다 있었어요. 평신도가 다 했어요. 지금은 새벽기도 나오면 간사들이 나와서 불까지 다 펴 놓고 따뜻한 가운데 기다리잖아요. 그거 아니거든요. 장로님이 오셔서 새벽기도 문 열고, 한번 해 볼까요. 집사님이 오셔서 불 키고 청년이 와서 새벽기도 녹음하고, 옛날에 그랬거든요. 그렇게 했거든요. 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래서 맡겨진 영혼을 위해서 교회의 지도자로서 간절히 기도해야 해요. 그것이 우리의 힘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열린 교회의 정신이었어요. 개척 초기의 정신이었어요. 제가 외국에 집회 다니고 교회를 비워도 새벽기도 철저하게 나왔어요. 먼데 사는 교인들까지 나왔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매달리고 그러면서 주님의 교회를 섬겨 왔던 거예요.
예수님의 생애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생애는 끊임없이 고난 받던 생애였는데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평생을 영혼을 위한 기도로 사셨어요. 그렇죠. 그래서 목양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까. 사실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구에 불과 합니다.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생명과 사랑을 양 떼들에게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양 떼를 바라보고 해도 안 되는 거예요. 그게 왜냐하면 양 떼가 나한테 뭘 주는게 아니라 양 떼는 받는 사람이에요. 하나님께로부터 생명과 부어져서 흘러 내려가야 해요. 내게 그것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거예요. 내게 그것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거예요. 그것이 없으면 소용이 없어요. 그것이 없으면 소용이 없어요. 너무 하나님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열린 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뭐냐 하면 하나님이 제게 늘 부워 주시는 것이 있었어요. 어떤 때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너무너무 괴롭고 고통스러운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것을 들으면서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쨌든 말씀이 살아서 살아나니까 참 좋다. 그런 일이 있기 위해서는 말씀을 전하는 목양하는 그 사람 자신 속을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휘젓고 지나가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찌나가면서 지나가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그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가장 우리의 영혼이 순수할 때가 언제냐 하면, 자신의 죄를 참회할 때인데, 그 때 보다도 더 순수할 때가 언제냐 하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릴 때에요. 그 때가 가장 순수한 영혼의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그래서 정말, 이번에도 장로님들에게 이야기 하면서 말씀 듣는 게 뭐냐 하면, 한 두분, 두 세분 너무 교회 사역이 바쁘니까 영혼을 안 돌보셔요. 그러면 안 된다 이거예요. 내년서부터는 장로님들은 의무적으로 모두 목자여야 한다. 그래서 영혼을 위한 눈물이 흐를 때 그 때에 그 눈물에 씻겨서 교회 일도 똑바로 보이게 되는 거예요. 똑바로 보게 되는 거죠. 영혼 사랑의 맥락에서 볼 때에 그 때에 모든 이치들이 똑바로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어야 해요. 정말 우리가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해요. 저는 전도사 생활을 하면서 이제까지 목회를 하면서 그게 뭐냐 하면 교회학교를 해봐도 다른 것 없어요. 교사들이 모였을 때, 교사회의 시간에 영혼에 대한 뜨거운 눈물이 있는 기도를 드릴 수 있으면 그 부서는 살아나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해 주셔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한해를 접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마음에 깊이 각오를 하고 이 영혼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 영혼을 위해서 대신 기도해 주는 사람, 그것을 가슴에 품고 그 영혼들의 이름이 여러분들 속에 아픔이 되기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해요.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야 해요. 이것이 회복해야 할 두 번째 정신이에요. 회복해야 할 두 번째 정신이에요.
세 번째가 뭐냐 하면 희생이에요. 희생. 희생이에요. 세 번째가 희생이에요. 희생이에요. 정말 희생이에요.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세워졌을 때, 그 영혼들을 돌보고 교회가 개척해서 해 오는 모든 과정 속에서 항상 희생하도록 우리 자신들을 독려했어요. 그 한 예가 뭐냐 하면 방배 4동 예배당에 있을 때에는 월요일 휴일도 없었어요. 월요일 날 왜 쉬냐. 성도들은 직장 가는데. 나중에 조금 현실적인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리고 교역자들에게 일주일씩 휴가를 드렸어요. 아무도 일주일씩 휴가 가는 교역자가 없었어요. 밤낮 없이 일하는 거예요. 우리 중 아무도 사례비를 가지고 마음이 상한 적이 없었어요. 은혜를 많이 받은 성도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희생하며 그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희생하면서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성도들은 몰라요. 주님의 희생을 보고는 직접 배우기가 너무 가까이 하기에는 멀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주님의 사람들을 보면서 그것을 배우게 되는 거예요. 배우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구역을 맡아서 구역이 잘 되고 하나님이 계속 영혼을 붙여 주셔서 구역이 계속 늘어나는 이러한 구역은 뭐냐 하면 공통점이 뭐냐 하면 구역장이 무제한의 헌신이 되어있어요. 무세한의 헌신이 준비 되어 있어요, 마음속에. 그래서 영혼을 위해서 자기의 시간, 물질, 아무것도 아까운 것이 없이 희생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하면 영혼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에요. 그 영혼에 대한 가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영혼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그 영혼이잖아요. 그리고 주님이 대신 그들을 위해서 죽어 주셨지만 그들은 아직 주님을 몰라서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아 그런데 그들에게 직접 그들이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이 바로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에요. 영혼을 돌보는 사람이에요. 그 사랑이 마음속에 가득 찰 때 그 때 영혼의 참다운 변화, 그리고 그 영혼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 그래서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 그 이상의 행복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교인들이 많이 모여서 은혜를 많이 받은 날은 밤에 잠이 안 오는 거예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아요. 주일날 우리는 기도원에 가끔 다녔는데 온 교인이 기도원에 가서 은혜를 받고 흠뻑 은혜에 취하게 되면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우리들이 나의 기쁨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예수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남의 기쁨, 예수님의 기쁨을 위해서 사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희생하세요. 희생하세요. 지체들을 위해서 희생하십시오. 가장 그 지체들을 위해서 여러분들이 희생하고 그 지체들을 섬기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손해를 보고 그렇게 희생을 해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닫혔던 마음의 문도 열고 변화될 수 있는 길들을 하나님께서 열어 주시는 거죠. 열어 주시는 거예요. 그거예요.
마지막에, 많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회복되어야 할 것이 뭐냐 하면 전도에 대한 열심이에요. 전도에 대한 열심이에요. 보다시피 우리 처음 개척한 거기는 아파트도 없어요. 주위에. 있어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그 지하실 교회 나오겠어요. 그런데 뭐냐 하면 열심히 전도했어요. 열심히 전도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지역에 나와서 전도하는 것이 쓸데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게 아니고요. 전도를 하면 하나님이 다른 곳에서 영혼을 보내 주셔요. 신기하게 그래서 온 교인들이 은혜를 흠뻑 받으면 일가친척 동네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편지를 보내고, 테이프를 사서 보내고 책을 붙이고 전화를 하고 막 어떤 조직적인 전도 체계는 없었는데도 그렇게, 그렇게 항상 교회에 데리고 오는 교인들이 있었어요. 그것이 우리에게 회복이 되어야 해요. 정말.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 그리고 내 동기간, 내 부모, 내 자식, 그리고 내 친구, 그렇게 해서 간절히 그 영혼이 주님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그 처지를 기억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그들이 교회에 나아올 수 있도록 그들의 길을 열어 주셨어요. 우리 교인들 가운데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이끌려 나왔다가 오는 그날 회심해서 교회 직분자가 된 사람이 많아요. 그것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배당이 미여 터질 정도로 사람들이 교회에 와요. 그러니까 이제는 옛날처럼 정말 영혼 하나가 예배당 문을 열고 교회에 들어왔을 때, 그렇게 눈물이 확 쏟아지는 것 같은 감격, 그런 것들이 우리 속에서 메말라가는 거예요. 메말라가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돼요. 교역자들이 전도한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깊이 은혜를 받고 제일 먼저는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자신의 삶에 대해서 너무 서러워서 울고, 두 번째는 나는 하나님을 만났는데 아직까지 하나님 못 만난 사람들이 생각이 나서 울었어요. 그리고 나면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거예요. 편지를 쓰고 테이프를 보내고 책을 보내고 전화를 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간에 영혼을 데리고 교회에 왔어요. 그리고 변화를 받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요. 휘몰아서 그물 치듯이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데리고 온 거예요. 그리고 그를 위해서 그의 영혼의 변화를 위해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면서 데리고 왔으니까,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는 영혼들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 긴 예배드리면서도 주님을 만나고 펑펑 울고 은혜를 받고 그러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주님을 만나면 그 사람이 또 데리고 오고. 조직적인 전도 그런 것 없었어요. 그렇게, 그렇게 한 거예요. 그러면서 영혼들이 모이고, 자신들은 모르지만 누군가가 그들을 위해서 오랫동안 기도해 주었던 것. 오늘 우리들이 회복되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정말 이거예요. 정말 이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교회 교인들이 많으니까 이 이야기는 뭐냐 하면 여태까지 영혼들이 오기를 바랬던 것이 뭐냐 하면 교회 커지기 위하고, 교회 운영하기 위한 것 밖에 더 되요? 그것은 우리의 처음 마음이 아니잖아요. 영혼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연민, 지금도 여러분 주위에 가만히 눈을 감고 보면 이웃이나 친구, 친척, 동료, 이런 많은 사람들 가운데 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고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리고 그들을 그들을 보면서 여러분들을 말할 수 없는 많은 고통을 느끼는 거예요. 그게 하나님 앞에 그래서 그렇게 전도하던 그것을 우리들이 깊이 간직해야 되는 거예요. 그 마음이 열린 교회 처음 세웠을 때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금요일마다 교회 의자를 치우고 바닥에 앉아서 한없이 울면서 우리에게 이번 주일에도 영혼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했어요. 우리가 얼마나 살다가 죽을지 몰라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하나님이 지금은 우리를 열린 교회에 보내 주셔서 그래서 그 한 그늘 아래에서 한 형제자매로 살아가게 하셨어요.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를 받아서 이 교회에 서게 되었다면 이제 우리가 우리의 모든 관심사는 우리의 남은 생애를 어떻게 주님 마음으로 살 것인가. 그래서 어린 아이처럼 끊임없이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마음으로 기도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희생하고 주님의 마음으로 아직까지도 변화 받지 못한 그래서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면서 살 것인가 하는 거예요. 그 사모함이 우리에게 가득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호소하고 싶어요. 그 처음으로 우리 서로서로 돌아가자. 그리고 교회가 커져도 교회가 커져도 교만하거나 아니면 넉넉한 마음 갖지 말고 여전히 자신의 죄를 위해서 흘리는 눈물, 예배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흘리는 눈물, 영혼에 대한 사랑 때문에 흐르는 눈물, 주님을 더 많이 섬기지 못해 안타까워서 우는 그런 눈물이 우리 안에 사라지지 말게 하자. 그래서 주님 앞에 갔을 때 구름 같이 잡히는 것 없이 일생을 살아온 것 같았는데 그래도 그래도 감사한 일이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한 교회에서 이렇게 만나게 하셔서 때로는 넘어지고 쓰러졌지만 결국은 우리 모두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영혼들을 섬겼던 기억, 그것이 우리가 이 바람 같은 세상을 사는 동안에 가장 기쁜 일이었습니다. 보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가서도 그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그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회심하고 주님 만나고 변화되고 그래서 우리보다도 더 훌륭하게 그 크신 능력의 복음을 믿으면서 그래서 그 은혜의 복음을 전파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이 원천이 되는 교회를 섬기면서 살아간다는 그 소식을 우리들이 들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 앞에 갔을 때, 우리에게 무엇이 희망이겠습니까. 정말 무엇이 희망이겠습니까. 온 마음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영혼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