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하반기 교역자수련회 3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3:22)
녹취자: 백지영
30이 되시기 전까지 예수님의 개인적인 생애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많은 기록이 안 나오고 그렇게 되어 있는데 오늘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공적인 생애가 시작이 되는데 이제까지는 예수님이 하나님 앞에 헌신하도록 바쳐지는 모든 준비를 갖추셨습니다. 그리고 30세쯤 되어서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시는 것이지요. 30년을 준비하시고, 3년을 사역하시고, 그리고 3일 동안 고난을 당하시고, 그렇게 예수님의 생애가 요약이 되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섬김이 어떤 핵심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첫째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둘째는 ‘이는 내 기뻐하는 자라’ 이렇게 둘로 요약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가 소위 청교도들이 이야기하는 이중의 인침이라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사실은 목회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놀랍게도 예수님이 공생애에 취임을 하실 때 우리로 말하자면 목사로서 혹은 목회자로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하고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사역을 시작하는 순간이라고 비유할 수 있잖아요? 그때에 제일 먼저 하늘에서 들리는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것은 관계에 대한 인침입니다. 그래서 목회 사역의 기초는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 그것이 목회에서의 인침입니다. 그것도 둘로 나누어서 우리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처음 목회 사역을 시작할 때의 인침이 있어요. 그래서 아무리 죽어 있는 것 같은 목회자도 왜 이 길을 들어서게 되셨느냐고 더듬어 가보면 초창기에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매우 특별한 인침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을 그 목양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보기에 아주 허접하게 사역을 하는 사람처럼 보여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거기에는 아주 가슴 시린 주님과의 만남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없으면 사실은 목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갔을 때 일인데 북경에 가면 강화시 교회라고 있습니다. 북경에서 제일 큰 대 여섯 개 교회 가운데 하나인데 부시대통령도 거기서 예배를 드렸고, 제임스 파커 목사님도 거기서 설교를 했고, 빌리 그레이엄도 설교를 했습니다. 그 교회에 가서 제가 설교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삼자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담임목사로 와 있는, 연세 많으세요. 지금은 충분히 은퇴하셨을 것이에요, 개인적으로 만나서 같이 식사도 하고 교제를 했는데 대화를 해 보고 그러면 문화의 차이도 있겠지만 그렇게 가슴에 다가오지 않고 더구나 삼자교회의 목회자로 오래 있었으니까 사실은 예배순서 같은 것도 다 공산당의 허락을 맡아야 하거든요 사실은 정상적인 목회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국인 예배를 담당하는 목사가, 부목사이지요, 그 분에 대해서 그렇게 썩 존경하고 그러는 눈치가 아니에요,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목사가 되시게 되었느냐 등등의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 담임목사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정말 아주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문혁이전이지요. 60년대쯤 되겠는가? 60년대 이전의 50년대쯤 되겠네요. 그래서 어쨌든 은혜를 많이 받고 그리고 늦게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물론 결혼하고. 은혜를 많이 받고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교를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주님 사랑하고 목회 준비를 하는데 문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문화혁명이 일어나면서 결국은 대대적인 핍박이 이어졌고, 이 사람도 단지 신학교에 다닌다는 이유 때문에만 체포가 되어 가지고 20년을 감옥 속에 있다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만기로 석방이 되어서 그래서 한 번도 그동안에 와 본 적이 없는, 그러니까 서신 연락도 못하게 했데요. 이 사람들이 얼마나 지독한 사람들인지, 집으로 물어물어 찾아서 갔다고 합니다. 갔는데 아들 하나는 아편 중독자가 되었고, 큰 놈은 공산당이 되었고, 그리고 아내는 도망을 갔어요. 그러면서 자기 집 마당에서 20년 동안 핍박을 받고 그렇게 고난을 받고 돌아왔는데 자기 집이 완전히 가문이 몰락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마당에 주저앉아서 울고 있는데 주님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이래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거기서 “내가 주님을 믿는 다는 것 때문에 이렇게 되었을지라도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 이야기를 지금 나보다 훨씬 실감나게 하는데 눈물이 나서 참 혼났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애를 쓰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복을 내리실 것처럼 말씀하지만 항상 그런 것 아닙니다. 그래서 목회를 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에 주님이 그 관계를 깊이 인쳐 주신 그러한 관계의 인침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 없이는 누구도 목회자가 될 수 없고 또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도 그 길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실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해 놓고 그것은 있다 이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역을 해 나가는 가운데 끊임없는 주님의 자녀로서의 관계에 대한 인치심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그것들이 깊어져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역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밖에서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렇게 정말 남이 보기에는 정신없이 바쁘게 사역을 하는 데 사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따뜻한 인침,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먼 내적 세계를 가진 그런 목회자들을 많이 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목회사역을 하는데도 왜 이렇게 주님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인침 거기에서 오는 관계의 커다란 행복이 없는가? 이 문제는 다시 둘로 나뉘어서 생각이 되는데 우선 첫째는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자기의 일기, 비망록 속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여러 번 하는데 그 분은 생각보다 자기 체험을 감추지 않고 솔직히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합니다. “그때 이후로부터 하나님이라는 단어, 우리 주님의 성품에 관한 한 두 개의 낱말만 들어도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고백을 합니다. 2004년도인가에 미국의 맥퀴트 대학이라는 곳에서 박사논문 하나가 나오는데 스테티나라는 여성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적인 체험과 그것이 그 사람의 신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아주 포괄적인 논문을 썼습니다. 그 논문에서도 똑같이 그 부분을 인용을 하면서 그것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개인적으로 깊이 부흥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라는 쪽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역을 하면서 주님과의 관계에서 깊이 인치면서 그렇게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을 경험하면서 사역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깊은 만남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사실을 개인적인 부흥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가르쳐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늘 더 깊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깊이가 설교와 기도와 예배와 찬양과 경건과 모든 것에 대한 깊이를 결국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요소가 있는데, 매일 매일 성령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난 깊은 경험이 있어도 사실은 상태가 나쁘기 때문에 이런 인침 같은 것들이 우리 안에서 재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 예를 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많이 나타내지만 두 번째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면서 나아가는 기도생활로 대변이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첫 번째 인침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인침입니다. 그것을 사역을 해 나가면서 ‘아,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구나.’ 그것이 제일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는 것, 내가 이 세상에 숨 쉬고 살아있는 이것이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것. 포괄적인 의미에서 보면 이 땅에 남아 있는 모든 것은 주님이 기쁘셔서 남겨놓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포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개별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구나. 나와 주님은 매우 특별하고 현실적인 경험 속에서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화) 미국에 텔레벤젤리스트(televangelist)라고 있습니다. 텔레비젼 이벤젤리스트(television evangelist)들이에요. 미국사람 중에서 불면증 환자가 2400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불면증환자들이 많이 있는데 밤중에 텔레비전을 켜면 복음 방송이 나오고 그 텔레벤젤리스트들이 나와서 수없이 설교를 합니다. 우리같이 이런 근엄한 설교가 아니라 별 쇼를 다 합니다. 그런데 어쨌든 거기에서 여성 설교자가 있었는데 굉장히 영향력 있는 설교자였고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사람이 설교하고 나면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은혜를 받아서 파자마바람으로 뛰어가서 포켓에서 가게수표를 꺼내서 긁고 나서 잠자리에 들 정도로 그렇게 영향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그 사람이 죽었는데 약물중독으로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의사의 소견이 나왔는데 수면제 장기 과다복용으로 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평안히 잠들게 하고 자기는 잠들 수가 없어서 긴 세월동안 수면제를 복용해 오다가 결국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때 ‘by means of’의 방법으로 사용하시는 경우가 있고 ‘through’의 방법으로 사용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해서 일하시기는 하는데 내가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는 그 진리와는 거의 상관이 없이 나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배구의 패스 이야기 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좋은 것들이 나를 통해서 저 사람에게 가는데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이 사용을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항상 성령 충만해야지만 목회가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신학적으로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회심하지 못한 사람의 설교를 듣고, 듣는 사람이 심오한 회심할 수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입니다. 있습니다. 그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한 사역은 그 사람에게 절대 이점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진짜 하나님이 좀 과장을 하자면 악인을 사용하셔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에 버금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사역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그 자체가 자신에 대한 모든 평가라고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별개다 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주님과의 관계의 인침이 목회 사역 내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것이 모든 목회사역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도 이기도 슬픔도 극복하고 그러면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그 소리가 하늘로부터 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면서 들린 것입니다. 그것은 일을 한다고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오늘도 이런 인침이 기도 속에서 나타났잖아요? 그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친밀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 기도생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부교역자로 생활화는 동안에 기도의 깊은 세계를 맛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이것은 사역에 대한 인침입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내가 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요8:29) 또 요한복음 12장 26절(“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에는 하나님께서 섬기는 사람과 항상 함께 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섬김에 대한 인침입니다. 이 섬김은 아까 이야기한 하나님 앞에 그 사람이 인정받는 그것과 뗄 수 없게 아주 밀접하게 연관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미 하신 일,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시는 이 일, 그것이 무엇이지요? 메시아이면서도 모든 백성들과 함께 죄인 중에 한 사람인 것처럼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 장면 그리고 앞으로 공생애에 들어서서 당신 자신을 바치며 마지막에는 하나님 아버지가 구원하시려고 하는 백성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려는 그 하고 싶어 하시는 일, 그 모든 것에 대한 인침입니다. 선한 사람은 자신의 쌓은 선에서 선을 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그 관계 속에서 인침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마음 속에 계획을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 일들을 계획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습니다. 일의 크기로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무한히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그분의 마음을 반영하는 목회를 하고 그분의 마음을 반영하는 그 사역과 섬김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보면 주위에서 그런 사람 볼 것입니다. 누구도 싫다고 하는 사람이 없고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모두 다 좋아하는데 그 사람이 목회를 하는 것을 보면 한 분은 별로 안 좋아 하시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다른 사람하고 잘 어울려 지내고 원만하고 이기심도 없고 그런데 하나님은 별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직원들도 써보면 그저 저는 사람이 아주 좀 결단과 용기와 분투 이런 몸부림이 있어야 된다고 저는 봅니다. 하다못해 마당에서 쓰레질을 해도. 그런데 그런 것 있는 직원을 뽑아놓으면 자꾸 다른 직원들하고 부딪칩니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좋다고 칭찬을 해서 뽑아보면 그 말이 맞기는 맞는데 그냥 사람만 좋아요. 그래서 일을 시키면 안 되는 것도 없지만 되는 것도 별로 없고 그래서 계속 있어주어도 할 수 없고 가도 별로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되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주님께 인침을 받은 또 한 가지는 사역에 있어서의 인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크고 규모에 있어서 엄청난 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침을 받았다기 보다는 섬기시려는 동기, 의도, 그것의 목표, 그리고 그것에 자기를 합치시키는 충심으로부터의 헌신과 아버지를 향한 애정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과 그리스도의 삶 이 모든 것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인침을 얻으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도 사역을 돌아보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내가 그렇게 잘 못하지만 그때는 하나님이 이러이러한 것을 참 예쁘게 보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회상의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일의 크기나 결과를 보아서뿐만 아니라 동기 그 다음에 마음 그 모든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인정해 주십니다. 그때에 그 사람은 하나님과 늘 동행을 합니다.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더 잘 들어주십니다. 아주 현저하게 기도 속에서 하나님이 차별하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 일생 섬기면서 날이 가면 갈수록 주님과의 관계에서 인치심의 감동이 더 깊어지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삶 속에서 정말 나타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하나님께서 길을 여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이런 이중의 인침이 있는 목회를 하게 되기를 바라고 마지막 죽을 때까지 이렇게 여러분들이 목회를 할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섬길수록 주님과 나 사이의 어떤 간격도 없고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 되는 그런 사역들을 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