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목회자 세미나 개강예배
저는 21살에 회심을 했고, 저희 집안은예수를, 부모님이 예수를 믿으시는 집안은 아니었습니다.방황하다가 회심을 하고 그리고 잠시 은혜를 받았지만 미끄러졌다가는 일어서고 미끄러졌다가 일어서고 하면서 그저 서울 변두리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26살 되던 해에 그 주일학교를 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총각집사땐데 내가 25살, 25살 되던해 같애요.
여름에. 아 아이들을 위해서 1주일을 금식기도를 하다가 목회자가 되라는 아주 분명한 소명을 받고 그리고 이제 신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을 했었습니다.직장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때에는 머리가 하얗고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내가 목회자가 되기로 뜻을 세웠으니까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인생에 무슨 또 낙이 있으랴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저 아무것도 안 바라고 주님에 사랑에 감사해서 영혼을 섬기겠다고 하나님이 불러주시는 일에 응답했으니, 서로 와서 목회하려는 서울은 그저 다른 사람들보고 하라고하고 시골에 내려가서 처음엔 그저 결혼도 하지말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 내려가서 그저 농사일 도우면서 틈나는대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그저 죽으면은 그것으로써 주님이 내게 불러주신것에 대해서 감사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나님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갔어도 과거는 우리 눈에 보이지만 미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시지 않지 않습니까?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소설을 쓰는 것처럼 걸어오다가 보니까 저는 여기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어린양을 먹이라 이렇게 불러주셨을때 저는 이런 목회의 환경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좋은 의미에서도 그렇고 나쁜 의미에서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왜 드리냐하면요?
종이 셋이 있었는데 어떤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또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또 다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여기에 보면은 종들이 똑똑한 순서대로 그렇게 줬다는 이야기도 안나오고 누가 뭐 압력을 주인에게 그렇게 주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안나와요.
그러니까 주인 마음대로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이렇게 준겁니다.
제가 이 본문 읽을때마다 한 달란트는 주님께 올바로 평가를 못받았으니까 그 사람은 제외하고 다섯 달란트본문보다 두 달란트 본문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난 다섯 달란트 같진 않으니까.
근데 그건 주님에 주권입니다.주권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우리들이 생각해야 할것은 주님이 나를 세워주신 그 자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기쁨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일곱명이 지하실에서 물이 나와서 일주일에 네 번까지 물을 퍼냈습니다.
예배드리러 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차는 거예요.
근데 그러면서도 수 없이 집회를 다녔어도 교인들을 보던지, 장로님들을 보던지, 예배당 건물을 보던지 뭘 보든지 '아이 이 교회에 참 내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뉘게나 있는 십자가 내게도 있도다
전체적인 하나님에 나라라는 국면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도 우리에게는 관심에 대상이고 할 수 만있으면 그들을 위해 우리들이 마음을 다해 기도해 주고 도와주어야하죠.그러나 그것은 내 십자가는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각자 우리에게 매어주신 십자가가 있어요.
가끔 저희 집사람이 제 사기를 좀 꺽어놔요.
"여보"
"왜"
"그 젊은 아무개 목사 있잖아?"
"있지"
"그 교회는 벌써 만명이 넘었대. 한 주에 50명 100명씩 등록을 한대.몇년전에 우리교회하고 똑같았잖아?지금은 2만명을 육박한대."
거 되게 속상해요. 그래서 나에게는 그런 은사가 없는데 왜 나한테 자꾸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것을 어떻게 썼는지 물으시는거지, 우리에게 주시지 않은것을 내놓으라고 그러시는 분이 아닙니다.
놀라운거는 두 달란트하고 다섯 달란트 남긴것에 차이는 어마어마한 차이예요.
그런데 주인은 똑같이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한 달란트 맡은 종이 한 달란트만 남겼더라면 아마 똑같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인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은 우리에 열매를 보고 우리에 이루어놓은 일을 보고 우리를 평가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그 일을 이루어가는 과정, 그 일을 함에 있어서 주님을 대하는 우리에 마음에 태도를 보고 주님이 우리를 인정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윌리엄 포사이스라고 하는 설교학자가 말하기를 '설교자는 설교에 결과 때문에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것이 아니라 그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다' 그랬습니다.
덜렁덜렁 어디서 하나 남에 설교집 찢어와서 설교를 했는데, 온 교인이 은혜 받았으면 하나님이 상 받으셔야지 지가 한겁니까?
그러나 한편에 진실한 설교를 토해놓기 위해서 실로 긴 세월동안 소쩍새가 봄 부터 울어서 가을에 국화꽃이 피듯이 그렇게 몸부림 치면서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고 해서 그 설교를 눈물로 전달했더니 인간들에 마음이 강팍해서 그 말씀을 다 토해냈다 칩시다.그걸로만도 그는 하나님앞에 인정받기에 충분한 사랑이 되는 것이죠.
그리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제일 먼저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모든 자리, 목회지, 직분 모든 것들은 주님에 주권속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왜 하나님이 저 사람은 저 일에 쓰시고 나는 이 일에 쓰는지 설명할 수 없고, 주님 나라 갈때까지 아마 모를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그것은 주님에 소관사항이고 우리는 맡겨주신 그 달란트를 가지고 이제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되는 거죠.
그런데 오늘 이 주인에게 칭찬받은 종은 세 가지에 칭찬을 주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첫째는 잘하였습니다. 잘하였습니다.
히랍어 성경에 보면은 '완벽하게 이루어졌구나' 이렇게 되요.그러니까 무슨 뜻입니까?
'완전하게 잘했다' 그런 뜻입니다.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누구는 교회를 맡겨놓고 성경 찬송 들려주어서 목사로 세워주면, 누구든지 다 목회하지 거기서 오락하는 사람이 누가 어디있습니까?
누구든지 다 목회하지 거기서 오락하는 사람이 어디있고 야유회가는 가는 사람이 어딨습니까?다 목회입니다.
온 나라가 김연아 얘기 뿐이었는데, 보십시요.
그 선수들이 다 스케이트 타더구만 누가 거기서 스케이트 벗어 버리고 미끄럼 타는 사람이 있습디까?다 하더구만.그리고 잘 모르는 우리 눈에 보니까 다 비슷비슷해 보이데 뭐.
그런데 완전하게 잘한 사람은 여왕이라고 불리우고 그거 못한 사람들은 시상대에 오르지도 못하잖아요?그 간발에 차이가 그렇게 등수를 갈라요.
그러면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가 하는 이 목회라고 하는 일이 그저 교회를 맡겨놨는데 주일날 목회안하고 텔레비보는 목사가 어디있으며 금요기도회 맡겨놨는데 가서 장구치고 노는 목사가 어디있겠습니까?예?
누가 그렇게 합니까?
겉으로 보기엔 다 고생하고 다 목회하고 다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잘 하고 어떤 사람은 잘 못합니다.그게 문제입니다.
그래서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잘 하는 것은 일이 이루어진 결과만이 아니라 이루어져가는 과정까지도 주인이 보기에 동의할만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런 뜻입니다.
그 남에 목회하는 곳을 가끔 가볼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교회는 정말 답답합니다.
그래서 왜 저렇게 할까? 왜 저렇게 할까?
저렇게 하면 잘하는게 아닌데, 왜 잘할려고 노력을 하지 않을까?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무도 그런 분들이 없으시겠지만, 시골 목회, 뭐 설교준비 하나 안하나 비슷하대메요?할머니들이 와서 졸고가기 때문에 설교 준비 하나 안하나 마찬가지라고 내가 시골교회 내려갔는데 누가 나한테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할머니 보라고 설교준비 합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종이 아니라 할머니에 종이지.
거 할머니한테 잘보일라고 설교 준비 합니까?
목자의 사명이기 때문에자신을 말씀에, 물에 깊이 담그고 절여서 그래서 그 마음으로 하나님에 말씀을 전해서 5년이고 10년이고 그곳에서 목회하고 난 다음에 비록 열매는 많지 않아도 하나님앞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음을 매 순간 다잡고 주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섬길려고 그렇게 했었습니다' 고백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산다면 비록 교회는 큰 교회가 되지못해도 영혼은 마지막 날에 목회자로써 순결해지지 않겠나요?
잘해야 합니다.
가끔 나이도 아직 젊은 목회자가 시골에 있으면서 계속 한숨 쉬고, 에고 목사님 여기는 희망이 없습니다.노인네들 밖에 없습니다.주님 앞에 노인네, 말귀 못알아 듣는 곧 죽을 양반들도 주님 앞에서는 사랑받는 주님에 양떼예요. 응?
요한에 아들 시몬아
네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주님이 물으셨네
내게 오는 많은 양떼
너에게 맡겨 줄터이니 사랑하는 내 친구야
나에 양떼를 부탁한다
그렇게, 우리가 언제 이 길 들어설때 영광을 받기위해서 들어섰습니까?
호위호식하고 신문에 나기 위해서 이 길에 자원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위해 지신 십자가 그 사랑이 너무 커서, 가슴이 터질것 같에서 이 사랑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서, 그 불쌍한 것을 생각하면 다른 직업을 가지고는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이 길로 들어선 것이죠.
주님의 주권속에서 어떤 사람은 도시에, 어떤 사람은 해외에, 어떤 사람은 서울에 저같은 사람은 이 평촌에 주님이 심어놓으셨습니다.
잘 합시다.잘 하는 종들이 되기 바랍니다.
두번째는 충성된 사람이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충성되다고 하는 뜻이 무슨 뜻입니까?
충성된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주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그 일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때문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것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살아가는것 그것이 충성입니다.
저는 직접 가보지는 못했는데요.
몇해전에 여기 세종문화회관에서 로마시대 폼페이 유물전을 했습니다.그 화집에서만 저는 봤는데 거기에 보니까 화석이 발견됐습니다.
아시다시피 베스비오 화산은 폼페이라고 하는 도시로부터 약 8K 정도 떨어져 있는 도시였습니다.거기에서 어마어마한 화산에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주전 한 5세기 경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서 확하고 화산이 쏟아지면서 그 재가 얼마나 많이 날라왔는지 그 재에 도시하나가 완전히 묻혀 버려서 그게 있는줄도 몰랐어요.
전설속에서만 내려왔는데 발굴을 해서 찾아낸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보면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두 장면이 나와요.
엄마가 아이를 젖을 물리고 끌어안고 그대로 화석이 된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는 뭐냐하면 궁을 지키는 병사가 이렇게 그 사진을 보니까 창을 딱 든 부동자세로 죽었어요.화석이 됐어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쾅 하고 8K 바깥에서 폭풍이 치는 것같은 천둥이 치는 것같은 소리와 함께 불길이 솟아나고 우박처럼 그 화산 재들이 돌멩이들이 쏟아져내리고 용암이 흘러내려서 사람들이 아비규환으로 죽어가고 도망가는데 그 재가 모두 쏟아질때까지 거기에 불덩어리가 쏟아질때까지 거기에 지키고 있었던 거예요.그 뜨거운게 내려와가지고 덮어버려서 이 사람은 녹아버린거예요. 그 속에서.
그러니까 그 구멍이 뚫린거야.거기다 다시 석고를 집어넣니까 그 사람 모양이 그대로 나와요.
근데 그대로 죽은 거예요.
그게 충성이예요.그게 충성이예요.
일에 노예가 되어서 사랑하는 동역자들을 경쟁상대 삼으면서 내가 너 보다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줄까?이런 동기가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주님에 음성앞에 제가 사랑하는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교회를 사랑하는것도 교회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을 사랑해도 영혼때문에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 하늘에 영광을 버리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래서 그 피로 나를 구원해 주신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내가 이렇게 영혼도 사랑하고 교회도 사랑합니다.
그거죠.
지난주에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어느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같이 말씀을 나누면서 이제 마음이 따뜻해졌는데 은퇴를 얼마 앞두신 목사님인데 그래요.
"김 목사님"
"예"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제가 참 은혜를 받았거든요. 근데요.목사님, 하나님이 왜 저를 목사만드신지 아십니까?"
"내가 목사님을 왜 목사 만들었는지 어떻게 어떻게 압니까?"
"집사될까봐 목사 만드신거 같애요." 그래.
"그게 무슨뜻입니까?"
자긴 집사됐더라면 아마 목사 굉장히 갈궜을거라는거야.
그래서 자기네 교회 집사들 이렇게 보면서 나는 집사였다면 저렇게 안했을거다.
집사 못되게 하실려고 하나님이 목사 만드셔서 교회에 그 험하고 아픈일들을 다 겪으면서......
얼마나 아프실까
하나님에 마음은
인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재물되실때
그러니까 주님에 마음과 아픔을 알아서 그렇게 교회에 막하지 않을 수 있는 목사가 되게 하실려고, 하나님이 집사안되게 하실려고, 그 소명에 최신동기예요.그런 소명에 동기는 못들어봤어요.
아 충성해야 합니다.충성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교인들을 이렇게 보면서 어떤땐 참 눈물이 나요, 은혜를 받아요.그 목사님하고 동감이예요. 내가 집사를 하면 저렇게 안했을텐데,장로도 아니고.
우리 예수님에 별명이 뭔지 아십니까?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기를 '아멘이요 충성된 증인이시요'
누가?예수님이. 그 분에 별명은 아멘이었어요.
아멘하지 않는 충성은 그건 충성도 아닙니다.충성도 아닙니다.
그 분은 아멘이셨습니다.아멘이셨습니다.
제가 아는 어느 시골교회 목사님이 너무나 목회하다 힘드니까 떠날려고 여기 저기 이력서를 내놓고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잘 안되더래요.그러더니 이제 하도 답답하니까 어느 목사님을 강사비도 못드리고 어째튼 봉사해달라고 모셔다가 부흥회를 하는데 교인이 있어야지?그래서 넷이 모여서 부흥회를 했답니다.
교인 둘은 인제 목사님하고 사모님 둘이고, 나머지 교역자 반, 평신도 반 이렇게 됐죠.
설교도 별로 못하는데 본문을 택했는데 창세기를 택해서 '하나님이 거기에 두사'이게 본문이예요. 그리고 그 한 본문 갖고 그 다음날 아침에도 '하나님이 거기에 두사' '하나님이 거기에 두사'.
설교에는 은혜를 못받았는데 본문에 은혜를 받고, 마지막날 이 목사님이 펑펑 울고 하나님앞에 생각을 바꾸고 목회에 전념을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에 별명은 충성된, 충성이셨습니다.아멘이요.. 충성이셨습니다.
충성이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충성된 목회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에 착한 사람입니다.착한 사람이죠.
참 그게 어려운것 같습니다.목회를 하고, 도시에 목회는 여유가 없습니다.
거의 살인적인 스케줄입니다.오정연목사님이 언젠가 한 번 만나서 그래요.미국에서 근로자를 이렇게 노동을 시키면은 노동자 학대혐의로 업주가 구속될거래요.
그 뭐 누가 구속이 되겠어요?
참 그러니까 사람이 거칠어집니다.그래서 필요한 것이 뭐냐하면요?
하나님에 은혜입니다. 은혜입니다.
마지막에 우리에 사역을 다 마쳤을때에 아주 패괴하고 성격이 거칠고 막되먹은 고장난 인격하나 덜렁 남고 병든 교회 남는다면 우리에 인생은 너무 비참하지 않습니까?그래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착한 사람.
날마다 주님에 은혜를 받으면서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때 어떻게 자기를 위해 살지않고 우리를 위해 자신를 다 내어주셨는지를 생각하고 그 주님에 지상생애와 십자가에 고난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주님에 그 큰 십자가 희생에 감사하는 사람들은 악할 수 없죠.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을 하게 되죠.
주님은 우리가 일을 가지고는 주님을 감동시켜드릴 수 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이죠.
주님은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는 착한 인격을 가진 목회자가 주님에 마음을 품고 자신에게 맡겨진 영혼이 얼마이던지 간에 그것을 천직으로 알고, 그 자리에서 세워주신 자신에게,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정말 고맙게 생각하며 하나님앞에 영광을 돌리는것.그것이 하나님에 사람들의 생각이어야 하죠.
에이든 토져라고 하는 목사님이 자기에 설교속에서 인상깊은 예화를 남겼어요.교회에서 몇번 써먹었는데.
그 예화를 듣는 순간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어요.
어느날 하나님이 천사 셋을 불러서 각각 임무를 주셨답니다.
한 천사에게는 지휘봉을 주면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이 되라고 그러시고, 두번째 천사에겐 주판을 주시면서 큰 기업을 하는 회장이 되라고 그러셨답니다.
세 번째 천사에게는 육군 철모에다가 막대기를 끼워 주시면서 똥퍼라 그러고 임무를 주셨답니다.세 천사가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 내려올때 마음이 달랐겠느냐? 같았겠느냐?하고 토져 목사님이 우리에게 물었어요.
주님은 지금도 사면을 두루 살피며 당신에 마음을 가슴 가득히 담고, 주님이 그 교회에 계셨더라면 양떼들을 돌보았을 그 마음으로 돌보는 목회자들을 찾으십니다.
우리 모두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큰 교회가 아니어도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앞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인정을 받으면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되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