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수련회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잠언 8: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잠언 8:13)
녹취자: 문선미
여기에서 나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8장 전체가 지혜를 의인화해서 지혜가 우리와 대화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그 지혜는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를 만드시고 창조하실 뿐 아니라 당신 뜻대로 통치하게 하시고자 하는 그 계획으로서의 지혜를 뜻합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이것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하나님이 지혜로 오실 것을 내다본 잠언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가 무엇이냐’입니다. 이 지혜는 우선 신령한 지혜로 말하자면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을 경외하는 것’ 이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이 이 세계를 향해 당신의 뜻을 가지고 계시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놀라운 인생의 길이 생기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지혜와 길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것은 신령한 지혜이고 자연적인 지혜로 보자면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떤 것들을 어떻게 행하면 이웃에게 존중을 받고 사랑을 받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신령한 지혜라기보다는 자연적인 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적인 영역에서 우리의 삶 전체를 다스리는 그런 것이 신령한 지혜라면 어떤 일을 잘 하고 못하고 하는 그것은 자연적인 지혜에 속합니다. 그래서 자연적인 지혜가 뛰어난 사람들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속에서는 그렇게 환영을 받고 존중을 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연봉 천만원을 주기를 아까워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연봉을 몇 십억씩 몇 백억씩 받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차이는 결국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혜입니다. 그래서 가장 바람직한 인생은 이 두 가지 지혜를 모두 갖는 것입니다. 신령한 지혜를 가져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하면서 살아가고 자연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또 자연적으로 자기가 하는 일들도 훌륭하게 감당해 나갈 수 있을 때 그 사람이 하나님과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귀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은 이야기하기를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 -이것은 신령한 지혜에 있어서도 사실이고 자연적인 지혜에 있어서도 사실입니다. 자연적인 지혜를 가지고 먼저 말하자면 지혜가 부족한 사람들은 항상 대충합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일을 해도 결코 발전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어떤 일들을 훌륭하게 행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부러워하는 마음이나 아니면 ‘나는 왜 저렇게 못할까’ 하는 그런 마음이 없습니다. 쓸모없는 일에 대해서는 시기와 질투가 많은데, 선하고 올바른 일에 대해서는 시기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사람이 경쟁심을 갖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근본적으로 그 마음 안에 건전한 작용이 멈춰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좋은 의미에서 같은 비용으로 같은 시간이 허락이 되면 ‘저 사람이 나보다 공부를 잘 한다’, ‘똑같이 입사했는데 일을 나보다 잘한다’, ‘똑같은 돈을 썼는데 저 사람이 나보다 참 훌륭하게 일을 해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그럴 때에는 나쁜 의미에서가 아니라 적절한 의미에서 경쟁심이 생겨야 됩니다. 그런데 그게 안 생긴다는 것은 뭐냐하면 인생 자체를 살아갈 수 있는 의욕이 결핍된 상태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런데 다른 사사로운 일에는 그런 욕심이 많아서 남이 가지고 있는 장신구, 남이 가지고 있는 지위, 옷, 그 사람의 명예, 이런 것들에 대한 시기심은 있는데 정정당당하게 그 사람하고 겨루어서 이겨야 되겠다는 경쟁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무엇인가 결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절대로 발전할 수 없고 호기심도 없습니다. 항상 무엇을 더 알고 싶어하는 마음은 적절한 경쟁심이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 있을 때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 경쟁심은 다른 사람을 향해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 자신을 향해서 예전에는 내가 이 일을 이렇게 이렇게 잘 해낼 수 있었는데 왜 오늘날은 내가 이것을 못할까? 하는 과거에 잘했던 나 자신에 대한 경쟁심 그런것이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보십시다. 사람들이 운동경기에서 끊임없이 기록을 경신하는 것- 그것은 결국은 과거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특별히 1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경쟁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2등이 열 발자국 나가는 것 보다는 1등이 한 발자국 나가는 것이 훨씬 더 힘이 듭니다.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하여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부지런히 자신의 부족을 보고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일반의 차원에서도 그렇게 간절히 찾는 사람들이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국밥하나에 30년을 걸고 어떤 사람들은 두부하나 잘 만들기 위해 평생을 몸부림치면서 살고... 제가 가끔 얘기하는 얘기이지만 옛날 우리 면도기는 돌리면 이렇게 벌어져가지고 거기다가 면도날 집어넣어서 사용하는 도루코 면도기-항상 비었습니다. 남자들은 늘 여기에 항상 상처가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질레트 면도기가 나오면서 모든 것을 평정했습니다. 면도날 하나를 만드는데 연구비가 2600억이 들었답니다. 우리나라 최신형 탱크를 만드는데 연구비가 1000억이었는데 2600억이 들었답니다. 그렇게 온전해지고자 몸부림을 칠 때 지혜를 얻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결혼을 해서 가정주부가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정주부를 하면서도 책도 읽고 교양도 쌓고 집안도 깨끗이 하고 모든 것을 해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폭탄맞은 집처럼 하고 살아서 스스로 정신이나 이런 것들이 구겨져서 도태되어 가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은 빨리 늙고 빨리 죽습니다. 우리의 몸은 아주 신기하게 우리의 정신을 파악해서 의욕과 활기를 가지면 우리의 몸도 활발하게 움직이지만, 이것들이 식어 버리면 우리의 육체의 엔진도 꺼져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간절히 지혜를 찾고 발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과 비교되지 않게 더 중요한 것은 신령한 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간절히 몸부림 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분이고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해주는 정확한 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로 하여금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신앙생활이고 믿음 생활입니다. 그래서 더 온전해지려고 애를 쓸수록 하나님 필요하게 되고 그럴수록 주님을 간절히 찾게 되어서 결국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을 깊이 만났던 모든 사람들은 간절히 주님을 찾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미적거리면서 주님을 찾지 못하게 한 그 자체가 결국은 사사로운 인간의 정욕의 뿌리에서 오는 그 하나님의 어두움입니다. 그래서 그 어두움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주님을 찾고, 은혜를 구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그 은혜를 간절히 찾고 바라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고, 또 사랑을 주시고, 하나님 만나게 해 주셔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이 두 가지- 하나는 하나님이 신령한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도록, 또 하나는 자연적인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도록.
신령한 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창조의 목적에 복종하도록 만들고, 자연적인 지혜는 그 목적을 잘 이룰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