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의 영적 생활
녹취자 : 오희열
‘제직의 영적 생활’이라고 하는 것을 누가 해달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제가 신임 제직 교육할 때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하는 것입니다. 사실 담임목사가 제직들 교육을 한다고 하면 할 얘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십일조를 잘 해라, 교역자나 교구 교역자를 잘 모셔야 복을 받는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20년 동안 열린 교회를 해오면서 느낀 것은 하나님의 손에 여러분이 붙잡히지 않으면 아무리 사람이 꽉 잡고 있어도 여러분에게는 별로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목자와 양’에서 다 배우셨겠지만, 우리들은 인간적인 관계로 만난 게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목자들의 출입문이 되시는, 양의 문이 되신다고 했는데,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양을 칠 때, 돌멩이로 돌담을 쌓고 양들을 집어넣고, 입구를 작게 만들어 놓은 후에 거기에 목동이 기역자로 앉아서 지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양의 문인 목자를 통과하지 않고는 그 우리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인 저도, 교인도, 다양한 사람들도 서로 만날 계획으로 만나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래서 교회 속에 들어왔더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온 사람들이 만나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다양합니다. 생각과 견해가 다르고 다양합니다. 제가 교회에서 선거운동 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생각에는 제가 좌파 같습니까? 우파 같습니까? 아마 감도 못 잡으실 것입니다. 제가 어떤 면에서는 아주 급진적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보수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교회에 인사시켜달라고 하지만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을 밝히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좌파의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고, 우파의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고, 호남사람도 있고 영남 사람도 있습니다. 다행히 저는 경기도 입니다. 얼마나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양쪽을 신랄하게 공격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한창 지방색으로 난리칠 때, 우리교회처럼 지방색을 얘기하지 않는 교회는 드물었습니다.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아무 동네 사람들은 장로로 세우지 마라.”고 했답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그 반대로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유언거리가 되겠습니까? 한 번밖에 못하는 유언을 그런 쓸데없는 데에 합니까? 차라리 팔도를 지금처럼 나누지 말고 아래부터 케이크를 자르듯이 잘라서 1도, 2도, 3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중앙에 중심도시 수도를 세우고 말입니다. 정말 다 쓸데없는 일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저는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목회뿐만 아니라 살면서, 저는 지방색에 물든 적이 없고 그 지방색을 가지고 사람을 써보거나, 생각을 하거나 티끌만큼이라도 편견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제가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여성에 대해서,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는 제가 사쿠라 같이 보이고 아직도 멀었다고 볼지 모르지만 저는 항상 ‘성서적 양성평등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런 모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일치가 지방색이나 혈연이나 재산의 유무나 직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 이것을 통해서 그 다양성이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실 다름, difference는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200분 정도 모인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이 앞에 한 여자분의 얼굴이 조각을 깎아 놓은 것처럼 예쁘다고 합시다. 물론 지금 여러분 중에는 그런 분이 안 계십니다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쪽에 있는 모든 분이 다 그렇게 생겼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무섭지 않겠습니까?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래서 강남에 가면 무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길을 쭉 가는데 똑같은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성형수술 한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래서 이런 획일적인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것, 오케스트라에서 악기마다 사람마다 소프라노, 알토, 베이스, 제 1바이올린부터 콘트라베이스까지 쭈욱 있습니다. 각 악기마다 메이커도 다르고 사람도 다릅니다. 이렇게 수십 명이 모여 앉았는데 지휘자의 손끝 하나에 따라서 움직이니까 아름다운 연주가 나오는 것입니다. 만일 모두 똑같은 악기가 200개가 모여서 똑같은 연주를 한다면 그게 군가가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그게 아름다운 교향곡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모니를 이루게 만드는 것이 결국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 안에 충만할 때 ,서로 다른 것들은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어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게 됩니다. 이런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게 만드는 데에는 ‘다름’이라는 재료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다름’들을 가지고 사랑으로 일치를 이룰 때, 그 일치가 말하자면 ‘하모니’입니다. ‘획일’이 아니라 ‘하모니’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이 이제 집사가 되었습니다. 집사는 ‘집을 산다’고 복덕방하는 사람을 집사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집사는 희랍어로 ‘디아코노이아’, ‘디아코노스’, 여성명사로는 ‘디아코나’입니다. ‘디아코니아’는 ‘섬김’입니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집사를 'deacon'이라고 합니다. 이 'deacon'은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식탁을 공궤하다’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디아코 네인 트라페 자이스’, 영어로 번역하면 ‘to serve eating table’ 정도의 뜻이 됩니다. 식탁을 잘 차려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밥을 편하게 먹게 해주는 것, 이것이 ‘디아코니아’입니다. 여기에서 ‘집사’라는 이름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데, ‘그까짓 것 집사야 뭐, 사람들 호칭 부르기도 힘드니까 받아둬야지.’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굳이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우리 권사님들을 “자매님”이라고 한 번 불렀더니 1년 동안 다니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자매님이라고 불렀다고 말입니다. 누가 여러분을 자매님이라고 불러주겠습니까? 동네에 가면 모두 아줌마, 애기엄마라고 하고 직분을 안 받으면 자매님이라고 부르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무슨 뜻으로 말씀드리는가 하면, 섬길 의향이 없으면 굳이 집사가 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도 하지 않는 집사는 해서 뭐하겠습니까? 열린 교회는 그런 점에 있어서 허례와 허식을 버리고 실제적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 지침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집사가 안 되셨고 제직을 해 본적이 없으니까 이해가 잘 안 가시겠지만, 우리 교회는 장로님이 사인만 한 번 하면 3천만 원까지 지출이 됩니다. 회의하지 않아도 예산 안에 있다면 말입니다. 예산을 짤 때, 아주 엄정하게 심사를 하고 확인을 하고 토론을 해서 사업을 잡아 놓고, 계획에 짜여 있는 것이라면 장로님 분과장이 사인을 하면 그 사람의 사인으로 3천만 원이 지출됩니다. 저한테는 보고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상관없습니다. 위원장이 사인하면 1천만 원까지 지출이 됩니다. 위원장들은 안수집사나 서리집사 중에서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맡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 없습니다. 당회가 소위원회로 구성되어있는데, 세 명이 모여서 사인하면 3천만 원에서 5천만 원미만, 즉 49,999,999원까지 지출이 됩니다. 5천만 원이 되면 그때는 당회의 의결을 거쳐야 합니다. 나머지 경우는 그냥 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정도로 실제적인 권한이 주어지는 교회는 제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없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주방의 냉장고를 사는데 2도어를 사느냐 3도어를 사느냐를 두고 두 시간을 회의했는데 다음에 만나서 다시 결정하자고 했답니다. 이런 비효율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막 돌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교회의 집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당회의 면접을 하다보면 예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여쭤볼 것입니다. 그래서 호칭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집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을 하기 위해서 집사가 되는 것입니다.
‘디아콘’이라고 하는 것은 ‘종들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법 상으로 제직의 권한은 ‘봉사권’만 있습니다. 그것도 권리라고 하느냐고 하겠지만 하나님의 복을 받기 때문에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권리가 없고 봉사할 수 있는 권리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deacon', ‘교회의 집사’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님의 교회에서 충성스럽게 일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한 5년 정도 일을 하고 나면, 당회가 수없이 다양하게 일을 시켜보면서 그중에서 일꾼들을 추려내고 그 중에서 심사를 해서 안수집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안수집사가 된 사람들은 일을 시킬 때 중심에 놓고 일을 시켜봅니다. 1년, 2년 시켜보고 아닌 것 같으면 될 수 있으면 교구에 가서 봉사하게 하고 교회가 돌아가는 중심의 커다란 일에는 잘 할 수 있는 능력과 충성도가 있는 사람들이 일을 하고, 그 사람들 중에서 덕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3년에서 5년 지나가면 장로의 후보가 될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집사가 된 후에 10년이 지나야지만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꾼을 검증하고 검증해서 교회의 일꾼들을 세워가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정하게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이 보다시피 담임목사가 마음속으로 어떤 사람이 장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 사람을 후원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 선거하는 것과 똑같은 투표의 과정을 지켜보았을 것이고, 만일 아직 보지 못했다면 내년에 보시기 바랍니다. 20년 동안 이렇게 투표를 해서 한 번도 잡음이 난 적이 없었습니다. 완벽한 민주주의 방식으로 투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봉사하지 않을 사람들은 지금 굳이 집사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호칭하나 해결하기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고 레포트를 내고 마지막에는 당회 면접까지는 하고 나중에는 교리반을 반드시 이수하겠다는 각서까지 써야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것을 뭐하러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왕에 집사가 되었으면 내가 이 그리스도의 교회의 종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은혜 받은 성도로서 교회의 다른 지체들에게 종노릇한다는 마음으로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을 요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우리가 봉사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일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평일에 교회에 와 보시면, 교회 한 구석 어딘가에서는 먼지를 뒤집어 쓰며 일하는 사람들이 항상 있습니다. 매일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요일이든 언제든 교회에 와서 보시고, ‘여기기 왜 이렇게 지저분하지? 여기가 사람 사는 동네인가?’ 한 적이 있습니까? 없으실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봉사와 우리 교회의 일꾼들의 희생에 힘입어서, 소수의 사람들이 희생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편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입니다.
지금 제가 잠간 강의하는 내용도 여러분이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지 않는다면 사실 이런 강의 자체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어차피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힘이 필요하겠습니까? 휴식이라는 것은 노동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고, 위로라는 것은 고통 받았던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 직분을 생각 없이 받지 마시고, 비록 직분이 1년짜리 서리 집사라고 해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직분을 받고, 이 직분을 받아들이는 자체가 “충성스럽게 교회에서 일하겠습니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임명이 되어 놓고 나서 뭔가를 하라고 하면 못하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항상 하는 얘기가, 못할 사람이 왜 한다고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의 무슨 일을 시켜주시든지 제가 기쁨으로 이 일들을 감당을 하겠습니다.”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에서 수종 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자기 혼자서 하는 일이면 지치는데 여러분이 교회를 섬긴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 자기와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섬겨가야 합니다. 이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생각이 각각 다르고 지도자가 자기의 마음에 맞을 정도의 역량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고, 교회와 섬김에 대한 생각이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들도 모여서 함께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사랑은 다른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적인 생활을 잘 해 나가는데서, 거기로부터 이 모든 은혜의 자원들이 살아남아서, 우리가 섬기고 봉사하는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은혜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직의 영적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영적 생활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누어서 얘기할 수 있는데 우선 첫 번째로 제일 강조되어야 할 것은 예배생활입니다. 예배생활은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하자면 주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실개천이 마를 수 있고, 물 공급이 잘 되지 않아서 공장이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앙에 도시를 가로지는 큰 강이, 한국의 한강이나 영국의 템즈 강처럼 중앙을 흘러가고 있으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물길을 놓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물이 공급됩니다. 당장은 어려워도 물길을 놓으면 물이 나옵니다. 그러나 만약 중심을 관통하며 흘러가는 강이 마르게 되면 다른 방법으로는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태를 해결하기는 매우 어려워집니다.
2년 전에 성도들과 함께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갔습니다. 2년 전인지, 3년 전인지, 4년 전인지, 갔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너무 바빠서 가지를 못했습니다만, 이스라엘에 가서 제가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이 있습니다. 일본은 독일을 좀 본받아야 합니다. 독일을 깨끗하게 사죄하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전쟁 배상금을 이스라엘에게 지불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받은 그 전쟁 배상금을 십 원도 개인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그 돈을 모두 투자해서 전국에 수로를 바둑판처럼 깔아서 완벽한 수로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저렇게 부강한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은 몇 가지 작물을 빼놓고는 그렇게 농사가 잘 되는 지역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스라엘의 전국 어디를 가든지 기가 막히게 물길이 되어 있어서 아주 풍부한 고급 농작물들을 재배해서 하이테크와 함께 투톱으로 국가의 부를 이루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든 물건이 아주 깨끗합니다.
그 메인이 바로 예배생활입니다. 예배생활이 어느 정도로 중요한가 하면, 만약 우리가 항상 똑바로 잘 살 수는 없습니다. 잘못 살았어도 예배에 와서 주님을 깊이 만나는 이 영적인 생활이 살아있으면 예배 속에서 가르침을 받고 회개하고 깨닫고 고쳐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경험해 보셨지만 예배시간에 은혜를 많이 받으면 집에 돌아가서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순종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 기본적인 것들이 계속 공급되는 가운데 체계적으로 교리를 공부하고 성경을 읽고 봉사하면서 신앙이 함께 자라가고 신앙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생활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예배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분이 성장반 시간에 책 한 권을 배우다시피 하셨으니까 반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 하나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깊이는 교회 생활의 길이와는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에 전혀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예배 생활이 좋은 사람들은, 교회에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 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래도 이만큼 성장하고 헌신적으로 교인들이 봉사하게 된 요인은, 교회를 10년 이상 다닌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고, 15년 이상 다닌 사람들도 많은데 그분들이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겸손하게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봉사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청년 때 왔던 자매들이 이제는 고참 집사가 되었고 중년에 온 사람들이 권사가 되었고, 권사 때 온 사람들은 돌아가실 때가 다 되었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예배 속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는 사람들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예배시간에 은혜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는 집중된 지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주일간 어떤 삶을 살았느냐, 예배 속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느냐는 것도 너무너무 중요하지만, 실제로 예배에 나와서 앞자리에 앉아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깊이 깨달아야 하겠다는, 집요한 지성의 집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지성의 집중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태한 마음이나 졸음에 꽉 찬 정신으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다가 옆을 쳐다보면 동의할 수 없는 태도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배생활에 대해서 확고하게 정리된 가운데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선배들을 본받으면서 그것을 따라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예배시간에 작은 노트를 가지고, 간단간단하게, 설교전부를 베끼려고 하는 것은 나쁜 습관이고, 교리나 잊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사항들을 메모하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예배시간에 자꾸 졸릴 때, 그 졸음을 해결하는 방법을 특별히 여러분에게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예배시간에 졸음이 오면 첫 번째로 시도하는 것은 심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산소의 부족 때문에 졸음이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순환시스템이 되어있고, 때로는 산소도 내려옵니다. 그래서 깊이 심호흡을 합니다. 한 번 해 보십시오. 더 이상 못 들이마실 때까지 심호흡을 합니다. 대신 자세는 움직이지 말고 똑바로 앉아서, 남들이 보면 안 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심호흡으로 해결이 안 될 때, 여기 팔 가운데 중간의 알통 옆의 부분을 꾹꾹 몇 번씩 눌러줍니다. 2, 3초씩 몇 번을 눌러주면 신기하게 머리가 아주 맑아집니다. 한 쪽을 하고 나면 반대쪽도 그렇게 해줍니다. 이렇게 했는데도 계속 졸음이 오면 마지막 방법이 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10초를 감지 말아보십시오. 그러면 눈이 아프면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졸음이 달아나서 옆 사람이 보면 회개하는 줄 압니다. 눈물이 확 쏟아집니다. 눈을 크게 떠서 공기와 안구가 접촉하는 면이 많아지도록 해야 효과적입니다. 크게 떠서 한참 있으면 쓰리기 시작하고, 더 버티면 양쪽 눈 끝이 따끔거리기 시작하면서 눈물이 확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예배시간에 이 졸음을 이기고, 무엇보다도 예배시간에 태만하게 존다거나 딴 생각을 한다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합니다. 죄 입니다. 나이 드신 어떤 분이 계속 졸았는데 제가 그 얘기를 했더니 굉장히 충격을 받았답니다. 자기는 예배당에 와서 조는 것을 죄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답니다. 그렇게 생각을 안 한 것 자체가 죄라고 얘기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황제가, 왕이 여러분을 불렀는데, 왕이 앉아서 “너 앞으로 잘 해야 한다.”하며 한참을 얘기하는데 계속 자고 있으면 왕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좀 까칠한 왕이라면 목을 치라고 할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명백한 무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또 그것은 영혼의 아주 깊은 태만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공적인 예배시간에 집중하지 않은 사람이, 평소에 주님께 집중하며 산다는 것을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배시간이 구별된 시간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집사들이 예배시간에 늦게 나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물론 사람이 너무 어려우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도 일 년에 한두 번이지, 매주 그런다고 하면 몸은 예배당에 나오지만 마음은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야하겠다는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예배의 감격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기도생활입니다. 이 기도생활은 사실, 성경과 교리는 어느 정도 터득하면 수준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수준이 떨어지기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익혀놓은 지식을 자기가 웬만하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는 어제까지 열렬히 기도하다가 오늘 기도가 전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기도에 있어서는 누구도 장담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근처에 사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교회 근처라고 하면 버스로 다섯 정거장 내에 사는 분 손 들어 보십시오. 높이 들어보십시오. 좋은 일 있으니 높이 들어보십시오. 일곱 정거장 내에 사시는 분들까지 모두 손들어 보십시오. 꽤 많습니다. 이 분들은 새벽기도를 나올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 웃으십니까? 그 웃는 것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을 닮았는지 사라를 닮았는지, 왜 웃습니까? 자 보십시오. 다섯 정거장은 걸어온다면 시간이 걸리지만 차에 시동을 걸고 타고 오면 7분이면 교회 마당까지, 10분이면 오고도 남는 거리입니다. 새벽에는 더더욱 말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거처를 가졌다고 하는 것은 최고의 복입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의지가 없어서 그렇지, 동네에 남의 교회에 가서 새벽기도를 해 보십시오. 기도를 하려고 하면 뒤에서 담임 목사님이 “에헴, 콜록콜록.”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제 목사님은 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 잠그고 빨리 가게 나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주 지나고 나면 교회 등록하실 거냐고 물어봅니다. 이렇게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교회 가까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좋습니까?
예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얼마나 놀라운지, 우리가 방배4동에 있었습니다. 방배역 사거리에 우리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로 오기로 결정이 되었고 교인들이 여기 와서 노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교인들이 와서 보더니, “목사님, 저 이사 갈래요.”, “왜?”, “교회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야지요.” 그래서 방배동의 전세 살던 것 다 빼서 이 시골로 온 것입니다. 그때 여기는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와보면 있고 싶지 않은 동네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가장 최고의 문화건물이었습니다. 쓰레기 더미였습니다. 그때 24평형의 아파트를 6,500만 원 달라고 했습니다. 32평을 9,000만 원 달라고 할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개념 아무것도 없이, 저쪽에서 6,000만 원짜리 방 빼서 여기 와서 덜컥 산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오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1년을 늦게 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으로 빨리 왔더니, 저 방배동으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렇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올 수가 없었습니다. 저보고 거짓말했다고 자꾸 그러는데, 제가 거짓말 안 하게 하려면 본인들이 헌금을 많이 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1년을 늦게 왔으니 고생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교회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6개월 안에 55가정이 이사를 왔습니다. 복덕방에서 우리 교역자들에게 배, 사과를 매일 들고 왔습니다. 교인 소개해줬다고 말입니다. 소개한 게 아니라 자기들이 온 것인데 말입니다. 복덕방에서는 “왜 당신들은 여기에 한꺼번에 집을 사겠다고 난리냐?”, “우리 교회가 이사 옵니다.”, “아니, 교회가 이사 오는데 당신들이 왜 이사를 오느냐?”, “교회가 오는데 우리가 왜 안 옵니까? 교회 근처로 이사를 와야 새벽기도도 나가지 않겠어요?” 하면서 이사를 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교회는 오지를 않더라는 겁니다. 복덕방을 수십 년 했는데 이런 사람들은 처음 봤다는 것입니다. 55가정이 와서 아파트 하나씩을 다 샀습니다. 지금 그 아파트들이 요새 조금 떨어졌지만 2억5천, 3억까지 올랐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번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언젠가 그 오른 것을 십일조 내라고 설교했습니다. 아니 왜 웃습니까? 당연히 십일조를 해야지, 언제 결산하려고 안 합니까? 그 설교를 했더니 어느 성도가 그 다음날 7천만 원을 교회통장으로 보냈습니다. 아마 그 아파트 오른 것을 계산해서 보냈나 봅니다. 아무튼 이렇게 많은 성도들이 왔고, 오지 않고 미적거린 성도들은 부러운 것입니다. 이사 온 성도들이 새벽기도를 다녀와서 “목사님이 오늘 설교를 했는데 우리가 열렬히 기도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오지 못한, 멀리 사는 성도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갈래.” 했지만 그때는 이미 가격이 왕창 오른 후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쪽에서 여기로 와서 32평을 살 돈이었는데, 2년, 3년 뒤에 오니까 전세값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래도 많이 희생을 하고 왔습니다. 그러더니 얼마나 감격을 합니까? 새벽기도도 나오고 기도하고 그러더니 몇 달 그러고 안 나옵니다. 그래서 제가 심방 가서 “방 빼!”했습니다. “여기 오고 싶어 하는 사람 많으니까 방 빼라. 당신은 어차피 새벽기도 안 나올 사람이니까 다시 남태령 고개 너머로 가라. 새벽기도 열렬히 나오는 사람이 이 방을 차지하게 너는 가라.” 결국 환경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입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을 쌓고 나라가 다섯 번을 망했습니다. 그런데 만리장성을 넘어온 나라에게 망한 적은 한 번도 없고, 만리장성 안에서 망했습니다. 결국 이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열렬히 기도할 때는 “어려우니까 기도해야죠.”, “평안하니까 기도하기에 너무 좋아요.” 하던 사람들이, 은혜가 떨어지고 나면 “어려워서 기도할 수 없어요.”, “평안하니까 기도제목이 없어요.” 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죽을 때까지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다해서 싸워야 할 부분인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에는, 어제 금요기도회에 때도 , 피곤할 때는 사우나를 가서 땀 빼면 좋다고 하니까, 미련하게 거기서 30분 동안 죽어라고 참습니다. 나중에는 땀이 쏟아져서 탈수현상이 생깁니다. 그렇게 해서 쏟아내는 땀이 440ml 내지 480ml라고 합니다. 콜라병 하나보다 더 많습니다. 그러고 나서 체중을 재면 400g에서 500g이 빠집니다. 그 땀의 성분이 물과 같아서 마셔도 될 정도랍니다. 그런데 노동을 하거나 운동을 해서 땀을 쏟으면 그 땀은 중금속 덩어리랍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죄와 신앙생활에 방해되는 것들을 쏟아내기 위해서는 그냥 사우나형의 기도를 하면 안 됩니다. 생각은 딴 데 가있고, 머릿속에서 주기도문 외우듯이 계속 지나가는 기도는, 시간은 많이 가도 맹물 쏟고 있는 기도입니다. ‘마음을 짠다’는 말을 아십니까? 마음을 오그라뜨리면서 간절히, 소리 내느냐 안 내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펌프질하면서 마음을 짜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가운데, 이 속에서 더러운 것들이 나가면서, 하나님 앞에 순결하고 정결한 신앙을 갖게 되고, 뜨거운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서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이렇게 사글세 살듯이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정했으면 평생 교회라고 생각을 하고 온 마음을 다해서 다녀야합니다.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데, 여러분 나이쯤 되는데도 아직까지 정해진 교회가 없고 사랑하는 교회가 없다면 그것은 매우 불행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일생동안에 주님을 섬기며 살아갈 아름다운 비전을 교회 속에서 발견하고 그 속에서 참되고 정직하고 아름다운 신자로 자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절한 기도생활이 절대적으로 필수적입니다. 돌아가신 하용조 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부부가 손잡고 제자훈련 나오는 사람 중에서는 이혼하는 사람들이 가끔 나오는데, 새벽에 둘이 손잡고 기도하러 나오는 사람 중에서는 헤어지는 사람이 없다.” 기도가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쏟아 놓게 하고 정결하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웃었지만 웃을 일이 아닙니다. 일평생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을 일로 봉사하면 살면서도 새벽기도 빠지지 않고 추우나 더우나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벽에 따뜻한 이불속에 누워 잠자는 게 좋지, 새벽에 그 추운데 목도리 두르고 미끄러운 길 걸어서 새벽기도 나오는 게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육체는 다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과 육체는 계속 싸움을 하고 대화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영혼이 먼저 말합니다. “새벽기도 가자”, 혹은 “기도 시간인데 기도하러 가자.” 하면 육체가, “아휴, 나 피곤해.”, 그러면 영혼이, “많이 아파?”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이 “뭐라고?”, “나 어저께부터 너무 힘들어.”, “맞고 일어날래, 그냥 일어날래? 예수님은 더 힘들어도 기도하셨는데, 일어나 이 자식아!”하면서 발길로 뻥 차고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이고, “많이 아파? 괜찮겠어?”하면 둘이 함께 자는 것입니다. 육체는 게으름, 영혼은 싫증에 떨어져서 둘이 떡이 되어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매일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한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간사한지, 여러분이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만약에 여러분이 죽을 운명에 처했다고 합시다. 암에 걸리든지 아니면 절대적인 위기를 만나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기회를 주는데, 평생 새벽기도를 할지 아니면 지금 죽을지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택하겠습니까? 두 말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새벽에 기도 나가고 살아야지 무슨 소립니까? 아마 당장 그럴 것입니다. 여러분 메뚜기도 한 철입니다. 정말 여러분이 지금 이렇게 좋아해도,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신앙생활 해보려고 하면 그놈의 공부 때문에 기를 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너 신앙생활 제대로 해라.”하시니까 “하나님, 입시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일생일대의 정말 큰 숙제잖아요. 하나님은 이런 거 안 해보셔서 모르지만 정말 힘들어요.”하면 하나님이 기다려주십니다. 그리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게 해 주셨습니다. 괜찮아졌습니다. “이제는 네가 나에게 인격적으로 승복하고 열렬히 신앙생활하고 기도도 하겠구나.”하시는데, “하나님, 모르시는 말씀 마세요. 제가 놀 수 있는 때는 지금밖에 없잖아요. 이때, 대학교 1학년 때 얼마나 놀기 좋아요” 이렇게 1, 2학년 때에는 노느라고 못합니다. 3,4학년이 되면 취직 준비하느라고 못 합니다. 그리고 직장에 들어가면 적응하느라고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러다가 적응할 때쯤 되면 승진을 합니다. 그러니까 너무 바빠서 못합니다. 회사의 너무나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회사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본인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시집을 갑니다. 시집을 가기 전에는 연애에 빠집니다. 노처녀가 사랑에 빠지니까 정신이 있겠습니까? 아침, 점심, 저녁 정신없이 황홀한 날들을 보내서 하나님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행복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합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살림하랴 뭐 하랴 몸이 너무 피곤해서 섬길 수가 없고 예배시간에 와서 매일 졸기만 합니다. 그 다음에 적응이 되어서 어느 정도 마음이 갖춰지면 애가 툭 하고 나옵니다. 그러면 눈물로 아이를 양육합니다. 거기에 적응하느라 힘들다가 겨우 아이가 걸어 다니면 적응이 되나 싶었는데 두 번째 애가 또 나옵니다. 쌍둥이로 나옵니다. 그러니 정신을 못 차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정리가 되고 직장도 그만 둬서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아이들의 교육비를 생각하니 잠이 오질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남편이 언제 짤릴지 모르는데 나도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하면서 나가서 밖으로 돌아다닙니다. 벌기는 뭘 법니까? 그렇게 한 번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직장생활도 갖추어져서 어느 정도 돈은 버는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세월 다 보내는 것입니다. 교회엣 수없이 교육의 기회를 주어도 다 흘려보냅니다. 그러가다 결국 이제는 남편도 지위가 올라가고 돈도 충분하고 직장도 여유가 있는데, 아이들이 사춘기에 들어가서 속을 썩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아이들 챙기느라 정신을 못 차리다가 아이들이 고3되기 시작하면 엄마도 고3이니까 보따리 싸들고 과외 선생, 논술지도교사 등으로 돌아다니면서 애들 입시 뒤치다꺼리 하며 다닙니다.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괜찮아졌는데 이제는 쉬고 싶어집니다. 모든 걸 봉사하고 싶은데 쉬고 싶어집니다. 너무 피곤하게 인생을 살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쉽니다. 조금 쉬고 나서 교회 봉사를 해보려고 했더니 아이들이 시집가서 애를 낳아 맡기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을 돌보다보니 세월이 다 갑니다. 이제는 애들까지 초등학교까지 보내고 나니 할머니도 찾지 않습니다. 많이 늙을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교육 프로그램에 부르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그 할머니를 가르쳐서 경로당 할 일 있습니까? 그 할머니 가르쳐봐야 다른 사람을 가르칠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유도 있고 주님을 위해서 살고 싶은데 관절 때문에 교회를 걸어 갈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다가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그러다가 죽는 것입니다. 그럼 그 사람의 영적인 이력서를 보면 뭘 한 게 있습니까? 그냥 힘들게 인생을 허덕이면서 한 사람의 중생으로서 살아갔을 뿐이지, 무슨 그리스도의 군사니, 하늘나라를 위해서 일한 경력이 뭐가 있겠습니까? 어느 교회 갔더니 탈영하고, 다른 교회 갔더니 탈영하고, 구역장 시켰더니 탈영하고, 교사 시켰더니 탈영하고, 계속해서 탈영보고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종치고 끝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가 주님을 위해 한 번 죽어보겠다고 해도 죽을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게 죽겠다고 산 사람에게 죽을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지, 죽을 쑤면서 산 사람에게 죽을 기회가 주어지겠습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은사인데 말입니다. 잘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고 어디로 달려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에 여러분이 그 영상을 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교회에 제가 칭찬하는 자매가 있습니다. “자네는 우리 열린 교회의 표준 구역장이다.”하고 칭찬을 합니다. 그런 영상을 보여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 자매는 잘 나가는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고액을 연봉을 받으며 일했습니다. 물론 결혼해서 아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바쁘게 다니니까 구역장이 전화해서 구역예배에 나오라고 하니까, 구역예배에 갈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전화를 받으니까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이 교회에 안 나오려고 하는데 남편은 계속 이 교회에 다니고 싶다고 합니다. 그나마도 그만두면 남편이 교회를 안 나올까봐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나오고 있는데, 어느 날 직장을 그만두고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직장으로 갈 계획으로 잠시 쉬면서 이사를 계획 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회를 옮길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자존심이 상하더랍니다. 자기가 커리어 우먼으로 경력도 쌓고 사회에서 살았는데, 구역예배 나오라고 구역장이 2년이나 전화를 했으니까 분명히 자기를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볼 거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갈 때는 가더라도 두 번쯤 참석해서 자기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만 보니까 이 교회가 맨날 개혁주의, 칼빈 이런 얘기들만 하더랍니다.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에 구역예배에 참석할 준비를 하기 위해서 퓨리탄 도서관을 방문했답니다. ‘칼빈, 칼빈 하니까, 내가 칼빈을 공부해서 구역예배에 가서 칼빈으로 찍 소리도 못 하게 눌러 주리라!’하면서 칼빈의 책을 탁 꺼냈는데, 예레미야, 이사야 강해 설교집을 꺼낸 것이었습니다. 그걸 펼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이 자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는 얘기가, “나는 이 교회가 정말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교회 가기만하면 목사님이라는 사람이 올라와서, 여러분은 죄인입니다! 여러분 회개해야합니다! 어떻게 신앙생활을 그 따위로 합니까? 하면서 우리를 죄인이라고 공격하고, 어떤 때는 소리소리 지르고, 제가 헌금까지 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야단을 치고 잡아먹을 듯이 해서 우리 목사님은 너무 자비심이 없고 좋지 않다고 생각을 했는데, 칼빈의 설교집을 다 읽고 회개하면서 우리 목사님은 칼빈에 비하면 너무 자비로우십니다.” 하면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액연봉을 포기하고 가정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을 전도하고 구역 이끄는 일에 풀타임으로 섬겼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은혜 많이 받은 30대 후반 자매들의 로망이 있습니다. 풀타임 열린 교회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스개 소리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풀타임 열린 교회 교인이 되면 얼마나 좋은지 보십시오. 주일에 열린 교회에서 봉사하고 월요일은 가정일 보고, 화요일은 여리고 전도에 전도하러 오고, 수요일은 병원심방가고, 목요일은 구역예배 드리고, 금요일은 금요기도회 드리고, 유치장 봉사가고, 토요일은 뭐하고, 뭐하고, 그분들이 교역자보다 더 바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월급 주냐고 묻기도 한답니다. 물론 하늘나라로부터 월급을 계속 쌓아놓고 있을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 생할을 하면 할수록 이 신앙의 길이 끝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충만한 생활이 어디에서 옵니까? 열렬한 기도생활에서 옵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좋은 고액연봉을 포기하고 한 사람씩 그 사람들의 영혼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면서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이 천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혼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 사람을 하찮게 볼지 모르지만, 그 사람들도 그렇게 보는 사람들을 하찮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이렇게 5천명 가까이 되도록 목회자는 한정되어있는데, 그 사람들이 손발처럼 움직여주면서 그들을 붙들어 주며 교회가 이만큼이나 든든히 서서 말씀 안에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 가운데 머지않아 이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전업교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할 사람들이 나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30년을 살고가고 60년을 살고가도 굵고 분명하게 선을 남기고 살다 가야지,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그렇게 살다가 가면 우리의 인생을 구원해주신 하나님 앞에 얼마나 죄송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까? 그래서 간절하게 부탁드리는 것이 열렬하고 간절한 기도의 생활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명심하고 새벽기도 열심히 나오고, 새벽기도 안 되면 낮 시간이라도 좋으니까 직장 다니는 사람이라서 안 되면 40분이라도 일찍 가서, 저 같은 경우는 새벽기도 끝나고도 직장에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씩 일찍 출근해서 회의실에 문 걸어 잠그고 거기서 기도생활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 주님을 만날 시간과 장소를 구체화하고 거기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해야 할 두 번째 영적 생활입니다.
세 번째는 성경읽기입니다. 빨리빨리 나가겠습니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합니다. 그래서 성경 읽기표를 사용해도 좋고, 여러분 독자적으로 계획을 세워도 좋은데 매일 매일 몇 장씩이라도 성경을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그 성경의 자신의 삶을 비추어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독서생활입니다. 여러분은 여기 와서 독서생활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여러분이 책을 읽어가야 합니다. 우선 가장 급한 것은 교리반부터 빨리 들어와야 합니다. 이번에는 끝났습니다. 그러니 다음해에 시작되는 교리반에 반드시 들어오도록 각서를 쓸 것입니다. 원래 집사는 교리반을 마쳐야 되는데 현실적으로 교리반을 마치기 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등록을 하기 때문에 먼저 집사직분을 주고 교리반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게 교리반을 마치고 책을 계속 읽어가야 합니다. 무슨 책을 읽어야하냐고 묻는데, 담임 목사의 책부터 먼저 읽으십시오. 여러분이 읽으려면 굉장히 노력을 해도 2년은 따라와야 합니다. 지금 현재까지 쓴 책이 50권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일주일에 한 권씩 읽는다고 해도 1년을 읽어도 다 못 읽는 분량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어떤 책은 400페이지, 500페이지짜리 책도 있고 신학 책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부지런히 노력을 해도 2년 이상 읽어야 따라잡을 수 있고 여러분이 읽는 동안에도 저는 많은 책들을 쓰면서 앞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3년을 읽어야 따라온다고 봅니다. 그렇게 읽습니다. 신학적인 책 한 권 읽고, 경건적인 책을 읽습니다. 이렇게 돌아가면서 반복해서 읽습니다. 아주 쉬운 책부터 아주 어려운 책까지 골고루 읽어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유익은, 여러분이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설교가 굉장히 쉽고 명료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설교 속에 들어있는 내용들이 책을 읽으면서 소화가 되고 이해가 됩니다. 조금 전에 여러분이 영혼과 육체의 대화를 들으면서 깔깔대고 웃었지만 그것은 싫증에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렇게 웃는다는 것은 안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성장해가고, 구역에서 여러분이 신학적인 책으로 공부할 때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배우면서 계속해서 실력을 길러가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이 해 나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 마지막으로 설교 테잎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 현재 서점에 가면 말씀 안내 책을 달라고 하면 줄 것입니다. 거기에 보면 14년간 들어야할 설교 테잎의 목록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놓고 계획성 있게 하나하나 차례차례 듣는 것입니다. 굉장히 좋은 것이, 옛날에는 그것을 다 사서 들어야 했습니다. 테잎 하나에 천오백 원씩 주고 사서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1월 사경회가 끝나고 나면 넓은 교회당에 뷔페처럼 테잎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테잎에 대해 해설을 한 후에, 빵 하나씩 먹고 장바구니에 테잎을 주워 담아서 저 끝에 가서 계산을 해서 한 박스씩 사 갔습니다. 많이 사가는 사람은 한 사람이 100만원에서 150만원어치를 사갔고, 적게 사 가는 사람도 20만원 어치 사갔습니다. 그걸 들으면서 영혼의 해갈을 얻고 신앙적으로 북돋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노력들이 계속 있었고, 통계를 한 7년 전에 조사했는데, 응답한 교인의 65%가 예배 말고 이미 지나간 설교를 한 편 이상씩 듣고 있다고 했습니다. 책은 한 달에 한 권 정도 읽고 말입니다. 그렇게 계속 읽어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신앙이 돈독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설거지 할 때 설교를 틀어놓고 설거지하고, 저희 집사람도 다림질 할 때 다 모아 놓고 설교를 틀어놓고 다림질을 합니다. 그렇게 다림질 하다가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하고 울고 싶으면 울면서 성도들이 은혜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7년부터 14년 까지 있으니까 인터넷에 들어가면 공짜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받아서 mp3에 넣고 하나씩 들으면서 여러분 자신의 신앙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7년 들은 후에는 14년, 21년, 28년, 35년 계속 나올 것입니다. 그렇게 쭉 들으면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 번 계산을 했는데, 여태까지 한 설교를 쉬지 않고 들으려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8년 6개월을 들어야한다고 통계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많은 설교들이 있으니까 상화에 맞는 것, 신앙의 기초를 잡아 주는 책을 읽으며 설교를 들으며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열렬하게 봉사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쨌든 새내기 제직 여러분, 여러분은 파릇파릇한 열린 교회의 희망이요, 새싹입니다. 부디 아름답게 자라나서 이 교회의 착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