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을 위해서 죽다 2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요 10:17)
녹취자: 박효준
III. 죽는 자를 다시 살리심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목숨을 버림으로서 목숨을 다시 얻는다고 말씀 하십니다. 이곳은 아주 명백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그 이후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버리고 죽으심으로 다시 목숨을 얻게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당신의 능력으로 부활하게 하신 것은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죽으심을 기뻐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양의 두 번째 원리는 무엇이냐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 목양의 원리입니다. 그러면 이게 무슨 뜻이냐면 우리가 목회를 하면서 양 떼들을 돌보면서 끊임없는 자기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렇게 목양을 위해서 죽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아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의 날에 영광스럽게 다시 살 약속을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가깝게는 그렇게 목양을 위해서 매일 매일 죽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 다시 소생케 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A. 구원위해 죽은 예수를 살리심
먼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위해서 죽으셨을 때 다시 살리신 것을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게 하셨는데 만약에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일이 아닌 다른 일들을 위해서 죽으셨더라도 과연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셨을까. 사도는 예수님이 부활해주신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그분이 행하신 일들이 하나님 마음에 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하나님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희생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B. 목양 위해 죽는 일꾼들을 살리심
그러면 오늘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서 목양을 위해서 죽는 일꾼들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양은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신령한 은혜가 그 안에 깃들지 않으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면 신령한 것이 깃들지 않으면 껍데기에 불과한 건데 그러한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죄인들의 돌 같은 가슴을 녹여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에 부패되지 않고 아름다운 신앙을 유지하게 만드는 그런 놀라운 은혜와 그런 비밀들도 결국은 하늘의 신령한 은혜 때문에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신령한 은혜는 없습니다. 신령한 은혜가 우리 안에 있어도 우리의 주인은 우리가 아닙니다. 주님이 한 번에 걷어 가시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이고 아무 것도 없어서 만약에 하나님이 그렇게 해주셔서 만약에 걷어가게 하신다면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남겨주신 것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가 아니면 남겨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방법이 있다더라, 이런 저런 요령이 있다더라 혹은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은 성과를 얻는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것은 하나님의 이런 신령한 은혜를 목양의 현장에 복을 부어 주실 때에 그런 도구들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 도구들이 하늘을 열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이 신령한 은혜를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슬퍼하는 목회의 현장이 하나님 의지 하지 않는 목회의 현장입니다. 그래서 우리에 목회라는 것은 결국은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의 눈물방울 위에 떠 있는 섬김입니다. 영혼을 돌보는 자의 눈물방울 위에 있는 섬김이 이것이 진정으로 살아있는 섬김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이 눈물이 아니라 이 눈물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 때문에 목회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므로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들의 눈물을 보시고 그 목회에 은혜를 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흘리는 그 눈물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 목회에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목양을 위한 비참한 죽음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하게 하고 그리고 그러한 목회자의 끝임 없는 비참함과 진흙 바닥을 구르는 것과 같은 그 비참한 죽음과 같은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소생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서 한 교회 안에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가 깃들고 또 한 목회지 안에 영혼들이 그곳에 왔을 때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평안함을 느끼게 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목회에 깃드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단은 어떻게 하든지 간에 목회자와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을 영적으로 침체 빠지게 하고 미끄러지게 하는 그 일에 목숨을 겁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이 땅에 있는 많은 영혼들에게 당신의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데 그 생명줄에 젖 물고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를 먹고 나면, 진리를 머금고 나면 사탄의 나라에 강력하게 항거하면서 사는 용사와 같은 사람들로 변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왕국을 훌륭하게 보존하는 길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하든지 목회자를 넘어뜨리고 또 그 목양을 하는 사람들을 실족시키려고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보면 어떤 때는 훌륭한 목회자들이 모였는데 그렇게 싸웁니다. 구역장의 교사들이 너무나 훌륭합니다. 개개인들로서는 너무나 훌륭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싸웁니다. 그건 아주 훌륭하게 사단의 계략이 성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 사랑한다고도 하고 기도도 하고 열심을 품고 교회를 섬기는데 다투고 싸웁니다. 그래서 마음이 늘 갈라지고 찢어집니다. 하나가 안 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당신의 신령한 은혜를 서서히, 서서히 거두십니다. 이것은 아주 놀랍습니다. 맨 처음에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이 강림하실 그 때에 그냥 하나님이 어차피 보내시기로 한 성령이시니까 아무 때나 오시면 되십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의 많은 성도들을 떠나갈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게 하셨고 그 속에서 그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의 마음. 사람의 마음이 다 여럿인데 그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한 하나님을 목표로 그들의 마음의 초점이 모아졌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그들의 마음에 있는 사랑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연합 위에 하나님의 성령이 강림 하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목회자들 가운데 다툼이 일어나거나 구역장들 간에 서로를 미워하고 갈등이 생기거나 그러면 마귀의 역사라고 간단하게 정리하면 됩니다. 근본적으로 그 밑에 깔린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찢어 놓는 것입니다. 마음을! 그러면 거기에 절대로 신령한 하나님의 은혜가 깃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양지가 피폐해 집니다. 한번 목양지가 피폐해지면 그 목양지가 다시 자라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화) 전도사 한지 얼마 안 됐을 때 아이들을 데리고 겨울에 수련회를 갔습니다. 캠프파이어를 하면 좋겠답니다. 그러면 하자. 장작을 사다가 수양관 저쪽 약간 아래 넓은 뜰이 있기에 거기에다가 건물 가까이 있으면 불 날까봐 펴 놓고 불이 잘 안 붙었습니다. 석유를 한 반통을 다 부었습니다. 그리고 불을 붙였습니다. 신나게 캠프파이어를 했습니다. 아이들도 너무 즐거워하는데 얼마쯤 끝날 때 쯤 됐는데 어떤 아저씨 둘이 올라왔습니다. “왜 우리 논에다가 캠프파이어를 합니까?” 그래서 “아니. 좀 하면 어떻습니까? 논인 줄도 모르고 빈들이길래 했습니다.” 그리고 면밀히 조사하더니 “어! 기름을 부었네? 석유를 부었어요?” 그래서 “불이 안 붙으니까 석유를 부었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둘이서 큰일 났다는 겁니다. 농사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를 보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겁니다. 뭡니까 그랬더니. 이걸 기름 부은 땅을 넓게 잡아서 흙을 다 퍼내야 한답니다. 그리고 다른 흙을 갔다가 부어야 한답니다. ‘그 공사비를 내놓을 것인지 아니면 그냥 우리가 농사를 지을 테니까 가을에 와서 봐라. 그리고 손실이 된 그 만큼을 보상을 할 것이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겁니다. 무슨 그런걸 알았습니까? 그런데 그 손실을 보상하라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건 해석의 나름이었습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뭐 “기름이 다 퍼져서 저 봐라. 저 곡식이 잘 안됐다. 다 물어내라.” 아무래도 교회에서 잘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공사비를 대겠습니다.” 그랬더니 25년 전인데 15만원을 달라고 했습니다. 굉장히 큰돈이었습니다. 15만원이면 그때 교회에서 사례금으로 17만원을 받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물었습니다. 교회에서 장로님에게 크게 혼났습니다. 그래서 생각하길 저 사람들이 행패 부려서 돈이나 받아가나 보다 생각 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진짜 일꾼을 사서 고갱이와 삽으로 크고 동그랗게 기름이 묻은 거기 흙을 파냈습니다. 굉장히 미안했습니다. 그 추운 겨울에. 그리고는 저 쪽에 가서 일꾼들을 사서 손수레에 다가 흙을 산에서 캐갖고 와서 갖다 부었습니다. 그때에 나는 비로소 땅의 의미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황패해지면 그 황패한 것이 다시 복구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의 임무는 자신의 목회지, 자신의 목양의 터전이 이렇게 하나님의 아름다운 은혜로 가득 차게 만드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잖아요? 이 구역에 있을 때 전혀 변화되지 않던 사람이 저 구역에 가서 변화 됩니다. 이쪽 교구에 있을 때에는 은혜 못 받던 사람들이 교구가 바뀌어서 저 교구에 가서 주님을 만나고 변화 되요. 절대적으로 어디가 어디보다 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목회에 있어 토양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목회는 터전으로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만약에 올바른 정신으로 목양의 원리에 따라서 영혼을 섬긴다면 영혼이 침체에 들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영혼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경험을 하고 거기서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영혼이 다시 사는 기쁨을 체험 할 때 어떻게 그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침체가 될 때가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정말 영혼의 침체가 없는가? 침체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의 침체는 더 많은 감염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손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중요하고 손만 깨끗이 씻고 손으로 얼굴을 만지지만 않아도 질병의 90%는 예방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손을 깨끗이 하는 것은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다 중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더렵혀졌어도 별로 안 좋습니다만 수술 하는 의사의 손이 더럽다면 이건 큰 재앙입니다. 그건 감염이 되어서 말하잔 면 패혈증에 걸릴 수 있고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사람이 죽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독에 마음을 많이 씁니다. 똑같이 우리 영혼을 섬기는 사람들의 영적인 침체는 영혼들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더 위험해서 그래서 영혼을 돌보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성령으로 충만한 가운데 은혜 생활을 할 것들은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우리에게 맡겨진 양 떼들을 잘 못 돌보면 우리의 신앙도 함께 망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잘 돌보면 그것과 함께 우리의 영혼들도 함께 하나님 앞에 잘 되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들이 본질에 충실한 목양자로서 그렇게 매일 매일 살아가야 합니다.
IV. 하나님께 사랑을 받음
A. 목회의 꽃, 하나님께 사랑받음
마지막 세 번째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내가 목숨을 버림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 하시느니라” 그래서 하나님이 영혼을 섬기는 사람들을 기뻐하실 때에 하나님이 그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그 표징이 뭐냐 하면 하나님께 사랑을 받을 때 목회의 표징이 뭐냐 하면 받는 표징 그 목양에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 에게는 가끔 그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우리는 괴로운 일 있을 때 목사님을 찾아가는데 목사님은 어떻게 하시나요?” 정말 어떨 때는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냥 청교도 같은 시절, 훌륭한 목사님들 많았던 시절에 그저 평신도로 태어나서 그분들 아래에서 목양을 받으면서 열렬하게 신앙생활 하다가 죽었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라는 생각 합니다. 그렇지만 일단 목회를 하게 되면 그 목회자가 아닌 사람들은 모르는 또 다른 은혜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걸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런 것들을 일부분 여러분이 목회를 하면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보면 정말 우리 교회에 와서 생에 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공부도 잘해서 책도 많이 보고 교리적으로 잘 정리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두 견고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고 그 구역장을 열렬하게 그 구역장으로 순장으로 정말 열렬하게 섬긴 사람들 중에는 뒤로 물러선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설교를 듣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은혜를 받지만 그 영혼을 섬기면서 끝임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다가 보니까 그 속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영혼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는 은혜의 세계가 있습니다. 한 영혼이 자신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고 회심 했을 때 그 놀라운 기쁨은 조용히 앉아서 설교를 들으면서 받는 그 은혜와는 또 다른 은혜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 했는데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셔서 우리의 구역 식구들에게 변화를 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들을 보게 될 때에 그 때 내 마음에 밀려오는 기쁨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깨닫고 기뻐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기쁨과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은 지나고 나면 왜 그렇게 열렬하게 예수를 믿고 영혼들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되었냐고 물을 때 그저 우리는 빙긋이 웃으면서
(찬양)
예수 예수 믿은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목양을 위해서 끝임 없이 죽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목회에 꽃을 주시는데 그게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양을 위해서 잘 수고 하면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그럼 “하나님이 차별 대우 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차별 대우 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1만 번의 기도 보다는 당신의 마음에 합한 사람의 한 번의 기도에 당신의 귀를 더 기울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화) 지금은 은퇴 하셨는데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 개인적으로 한번 만났는데 교회는 몇 만 명이 모이는 교회를 하시는데 그분이 제 책을 참 좋아하셨습니다. 언젠가 한번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김 목사, 나는 요새 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해.” “그게 뭡니까?” “하나님이 내가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니까 하나님은 내가 기도 하지 않았는데도 내게 있는 소원을 당신의 것으로 생각하셔서 응답해 주시는 것 같아.” 그래서 난 속으로 ‘저렇게 말하면 교리 적으로 건전하지 않은데. 저런 걸 설교를 하면 성도들이 기도에 대해서 소홀해지기 쉬운데.’ 속으로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슨 일인데요?” 어느 날 이렇게 강대를 바라보면서 ‘저건 너무 낡았다. 이런 강대였으면 참 좋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이제 예배를 들인 다음에 걸어나고 있는데 어느 성도가 통로에서 길을 막아서더니 “목사님.” “왜?” “정말 죄송한데요. 저 강대 좀 바꾸면 안돼요?”그러더란 겁니다. “왜?” 그러니까 “그 강대 말고 좀 새로운 강대를 좀 바꿔 보세요.” 그러더니 강대 살 돈을 주더란 겁니다. 그래서 저보고 그러셨습니다. “아니 어떻게 하나님 앞에 기도도 안하고 마음으로 품고 이제 기도를 할까? 했는데 하나님이 들어주시더라.”하고 또 이제 머릿속으로는 ‘그런 일이 있다고 해서 그걸 교리화 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 하는 것은 뜻이 무슨 뜻이냐 하면 히브리어에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뒤따라오는 자’ 혹은 ’닮은 자’ 영어로 ‘be after hart of God’ 그러니까 ‘하나님에 마음 뒤에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앞서가지 않고 뒤 따라가는 사람’, ‘닮은 사람’ 그 뜻입니다. 그건 너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기도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위해서 그렇게 해 달라고 목 놓아 울며 기도 하는 사람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기도 하지 않아도 ‘그 뜻이 이뤄졌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는 사람의 기도가 더 능력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목양을 잘 하면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뒤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목회자 그리고 영혼을 돌보는 구역장들의 상태는 영혼들에게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장로님들에게도. 여전히 다들 잘 하십니다. 옛 날에 “목회자의 마음을 너무 많이 상하게 하지 마십시오. 왜냐면 그 마음이 샘물이 되어서 목회에 필요한 섬김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너무 괴롭게 하면 결국은 거기서 쓴 물이 나오면 교회가 이롭지 않습니다.” 제가 가끔 그렇게 교구 목사님들 잘 섬기라고 얘기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구역장이나 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목양에 우리 자신을 받쳤을 때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아니라 목양을 위해 쓰실 하나님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요새 정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있는데 최근에 든 생각이 무엇이냐면 예전에는 정욕에 대한 생각을 그래도 ‘욕심이다.’ 뭐 아니면 ‘좁은 의미의 정욕은 성적인 욕망이지만 넓은 의미의 정욕은 자신을 주인 삼는 마음이다.’ 그냥 그렇게 정의를 내려 왔는데 요즘에 와서는 좀 새로운 국명들을 보게 됩니다. 그게 뭐냐면 정욕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모든 생각을 품는 마음이 정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세상에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듯이 받을만 하든이 아니든지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생각을 품는 모든 것이 정욕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더럽혀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이 세상의 마음과는 구별 되어야 합니다. ‘적어도 내 마음은 예수님의 양떼들을 먹이는 마음이고 적어도 나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목양의 소명의 길을 가야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주님께 받쳐진 마음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우리들이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B. 하나님 사랑을 목회 동기로 삼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사랑을 우리의 목회의 동기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무엇인가 우리의 자랑, 우리의 명예, 우리의 성공을 위해서 애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잖습니까? 그러니까 우리의 이름을 내고 우리가 유명해 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면 부러워하고 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눈에 띄게 나타나는 그 자체를 혐오해야 합니다. 그것을 구역질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는 오직 우리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고 알아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 주님이 그것을 알아주신다면 그것으로서 우리는 넉넉합니다.’라는 마음을 갖고 매일 매일 주님 의지하고 믿음으로 섬길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이 우리 목회의 동기가 되기 때문에 내가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고 내가 열렬한 기도 속에서 은혜를 받고 내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 아버지 앞에 간구하면서 받는 이 모든 은혜와 모든 사랑 이 모든 능력 이것이 결국은 목회라는 발전소를 돌리는 에너지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을 하면 은혜 받는 것도 이제는 나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양떼들을 위해 받는 것입니다.
(예화) 아이를 낳고 산모가 너무 힘들고 그래서 밥을 못 먹습니다. 그러면 젖이 안 나오죠. 뭘 먹으면 젖이 잘 나오는 줄 아십니까? 형제들이야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소 족발도 아니고 돼지 족발. 긴 것 말고 짧은 족발을 사다가 푹 과서 그러면 거기서 치즈를 녹인 것 같은 물이 나옵니다. 그것을 매 끼니 마다 먹습니다. 어떤 사람은 돼지고기를 못 먹는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자식을 생각해서 코를 막고 그것을 먹습니다. 왜? 그 몸에서 젖이 나와 자녀들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예배 시간이 예배를 드릴 때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은 더 예배자가 돼야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 예배시간에 은혜를 받아야지만 이 젖이 가득 차서 그래서 1주일 동안 양떼들을 먹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은혜가 모두 사라져서 말라깽이가 된 그 구역장이나 순장, 교사의 손에 붙어있는 그 영혼들은 얼마나 가엽습니까?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잖습니까? 그래서 구역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면 그냥 구역장 얼굴이 떠오르고 순장 얼굴이 떠올라서 그래서 ‘아! 내가 저렇게 살 수 있다면.’
(찬양)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 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이런 고백이 마음속에서 흘러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영혼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V. 결론
그래서 우리들이 내년 한해에 정말 목양을 위해서 온 마음을 쏟아 붓기로 다짐을 해야 합니다. 제가 1월 달에 인도차이나 한 바퀴 돌면서 선교사 집회하기로 한 것 계획 세웠는데 접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집회 오라고 1주일 쯤 집회 와서 이집트인 목회자들에게 좀 강의를 해달라고 해서 가서 도와줄까 하다가 접었습니다. 내년에 ‘안식 휴가 간다, 안식년 간다.’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어쨌든 최대한 바깥에 일들을 접고 그리고 이미 있는 일들을 우리가 안 하거나 하면 안 되겠죠. 그렇지만 접고 새로운 일을 만드는 대신 마음을 다해서 기도하고 영혼을 돌보고 이 영혼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하는 이 일에 온 마음을 쏟기로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들이 게으르진 않았고 애쓰면서 뭐 목회자들 중에 누가 게을렀겠습니까? 이렇게 왔지만 그러나 ‘마음의 초점이 더 많이 목양에 모아져야 되겠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영혼을 잘 돌보는 사람들이 가장 교회에서 높이 인정을 받고 그리고 지도자가 되고 그리고 그 영혼들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 구역장들이 존경을 받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바깥으로 많이 벌리는 대신 안으로, 안으로 모아서 그래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이 부르심을 감당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내년 한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회지에 큰 은혜를 부어주시도록 그리고 새로운 영혼들을 하나님이 많이 보내주시도록. 재작년도에는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많은 영혼들을 보내주셨는데 작년에는 조금 덜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올해 하나님이 12월, 1월. 특별히 1월, 2월 이때에 1년 성도들 가운데 80%가 그때 모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하늘을 열고 많은 영혼들을 보내주시도록 그 영혼들이 진정으로 주님 만나서 깊이 변화 되고 은혜를 받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회에 복을 주시도록 주님이 당신의 복을 주실만한 그릇이 되도록 우리의 마음을 깨 끗게 해 달라고 우리 한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매달려야 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