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과연합 새벽기도회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빌 2:29-30)
녹취자 : 장주은
사도바울 주위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함께 섬기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나 이때나 사람들이 여러 종류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을 대적하던 사람부터 시작해서 아주 충성스럽게 섬기던 사람들 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서 로마서 16장 마지막을 기록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따뜻하게 기록을 하면서 그들이 남겨준 동역자로서의 인상들을 말하였습니다.
오늘 여기에 나오는 편지에 등장하는 사람은 에바브라디도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빌립보 교회와 사도바울 사이에서 사도바울의 선교사역을 섬기는 메신저 역할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그저 평신도와 교역자의 중간정도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쨌든 사도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에도 그 소문을 듣고 에바브라디도가 바울에게 왔고 그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을 대신해서 섬겼습니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와서 큰 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 소식을 빌립보 교회가 듣고 마음아파하면서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그 사람이 건강해졌고 그렇게 건강해지자마자 사도바울은 이 에바브라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었습니다. 그 성에 있는 사랑이 참 눈물겹습니다. 어떤 사람은 에바브라디도를 전도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에바브라디도가 빌립보에 와서 큰 병에 들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근심했습니다. 또 에바브라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자기가 병에 들어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빌립보 교인들이 걱정하고 근심한다는 이유 때문에 마음아파하고 근심합니다. 이것이 결국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교회에서 사랑보다 더 뛰어나고 높은 가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절대 분쟁하고 싸우면 안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 심각하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살인을 하고 간음을 하고 남의 돈을 갈취한다고 해서 그런 것만이 죄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인간들이 짓는 죄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이 교회를 찢고 그 속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 앞에 거대한 죄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심각한 하나님의 심판을 동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 교회 속에서 흘러야 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런 사랑입니다. 그래서 에바브라디도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꾼이 병에 걸려 고생한다고 하니까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마음 아파하고 또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마음 아파하니까 그 소식을 듣고 에바브라디도가 또 근심합니다. 아마 자책도 했을 것입니다. 왜 내가 부주의해서 질병에 걸려서 우리 성도들을 마음 아프게 하고 근심하게 할까. 그 소식을 서로 근심하고 염려한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사도바울이 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아마 자신 옆에 두어서 시켜야 할 일들이 틀림없이 있었을 텐데 병에서 낫자마자 급히 에바브라디도를 빌립보 교회에 보냅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 에바브라디도를 보낸 것입니다. 이게 바로 교회의 모습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사도바울이 에바브라디도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 합니다. 첫째로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다 각기 10인 10색입니다. 생각이 다 다르고 견해가 차이가 있습니다. 한 이불 덮고 자는 아내도 내 마음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어떻게 모든 사람이 완전히 일치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만장일치는 유대인들에게 무효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그런데 공통점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산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이다, 라는 것입니다. 에바브라디도나 빌립보 교회의 교인이나 옥 속에 갇혀있는 사도바울이나 서로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일치했습니다. 주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섬기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라디도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냄을 받은 것도 그리스도 때문이요, 그 보냄에 순종해서 사도바울에게 와서 충성스럽게 섬긴 것도 그리스도 때문이요, 또 사도바울이 옥 속에 갇혀있는 것도 그리스도 때문이었고, 에바브라디도가 자기가 병에 든 것을 인해서 빌립보 교회 교인들이 근심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 아파 한 것도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에바브라디도는 그리스도를 위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또한 그리스도의 일을 위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지 항상 그 중심 속에 그리스도가 최고의 사랑의 대상이 되셔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좀 더 교회답게 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서 성결을 도모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서 지혜롭게 행하고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에바브라디도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신앙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 사람은 죽기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였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섬기는 사람들이 희생에 있어서 헌신에 있어서 모본을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말 뿐이 아니라 희생함으로서 모본을 보여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그리스도 때문에. 성도들이 보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목회자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그렇게 헌신할 수 있는 사람,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니까 죽기에 이르러도 섬기는 상황이 얼마나 어려웠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였다, 그랬습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원래 한경직 목사님이 신의주 제 2교회를 담임하던 목회자였습니다. 해방이 되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남북이 분단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공산당들이 점점 세력을 얻고 기독교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여기서, 교인들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월남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남북한이 막히기 직전이었습니다. 어느 날 장로님이, 몇 분의 장로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중에 유력한 장로님이 목사님 빨리 내려가십시오, 곧 막힙니다, 내가 이 교회를 두고 어디를 가냐 나는 여기서 성도들과 함께 죽으면 죽었지 내려갈 수 없다, 그랬더니 이북사람들 고집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장로님이 하는 이야기가 무수한 교인들이 지금 남한에 내려가서 남대문 쪽에 모여서 그렇게 고생을 방황을 합니다. 목사님이 내려가셔서 그들을 돌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간곡히 설득해서 목사님은 내려왔고 장로님은 거기서 순교했습니다. 그 분이 내려와서 남대문에서 장사하는 교인들을 다시 규합을 했고 그때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수였겠습니까. 그분은 1920년대에 후반, 1930년대 그 사이에 유학을 하시다가 폐병에 걸리셔서 돌아오셨습니다. 미군부대를 연결하면서 이 사람들 가난하니까 좀 도와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교회가 영락교회였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실 때 까지 자기를 남한에 내려 보낸 그 장로님에 대한 그 마음의 부담을 늘 갖고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제 저녁에도 오늘 아침에 눈을 떠도 나는 요즘에 내 마음속에 드는 생각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평화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다투고 분쟁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이 에바브라디도를 통해서 보여주시지 않습니까. 자신은 죽어도 그리스도의 일은 이루어져야 하리라, 하는 철저한 자기희생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의견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다른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큰 것은 여기가 그리스도의 교회이고 이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든 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든 서로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면서까지 이루어야 할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일은 없습니다. 견딜 수 없이 마음이 괴롭고 슬픕니다. 목회자인 나의 마음이 이러니 그리스도의 마음이 어떠시겠습니까. 나는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해나가든지 관심 없습니다. 내 관심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상하지 않는 것. 정말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나의 죽음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죽을 수 있습니다.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바브라디도를 평가하면서 그는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사람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주님이 보실 때에 여러분들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생각은 각기 달라도 아 그래 너는 나의 교회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런 인정을 주님께 받는 사람들이 될 때 그 때에 모든 성도들이 본받을 만한 일꾼들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은 담임목사로서 직무를 태만히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를 짓든지 말든지 교회 제도를 이렇게 고치든지 저렇게 고치든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원하면 내가 모든 권한을 포기하고 설교만 하는 고용 설교자가 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심각한 상처입니다. 절대적으로 거기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뚜렷하게 나누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선한 사람도 악과 싸우다가 정말 불결한 사람이 되고 그것이 바로 분쟁하는 교회가 마귀의 꾐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럴 때일수록 정말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의 교회의 하나 됨을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타협이나 그런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교회에 하나님 안에 있는 말씀의 샘물을 퍼 나르는 바가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을 누리는 것이야 말로 교회가 평화로워지는 비결입니다. 내가 평강을 잃어버리고 설교단에 올라서 내 마음에 요동치는 감정들을 쏟아놓으면 교회가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가 그렇게 헌신하던 이유는 나를 섬기던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빌립보 교회의 교인들이 사도바울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항상 고린도 교회와 대비됩니다. 고린도 교회는 생각하면 늘 근심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랑스러운 교회였습니다. 옥에 갇혀도 사도바울은 기뻤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는 성도들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사람입니다. 그게 그리스도의 교회의 한 본보기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교회를 바라보시면서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님의 사랑으로 넘치고 처음 교회를 찾아서 하나님 앞에 회심하던 때의 그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말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끌어 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