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
녹취자: 김혜진
오늘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제자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병 고침을 받고 예수님을 따랐던 많은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팔복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님들, 목사님들 교회를 섬기면서 애를 많이 쓰시지요. 아마 장로님들 가운데 자신의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하지 않는 장로님들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교회가 부흥하기를 더 열렬히 갈망할 것입니다. 심지어는 교회가 성장하지 않으며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누가 특별히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도 교회가 왜 이렇게 성장하지 않고 가만히 있느냐고 당회원들과 목회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저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예화) 가까운 동네에 두 교회가 있었는데 양쪽 교회가 모두 200명씩 모이던 교회였습니다. 한 교회는 목회자가 새로 오면서 계속 성장을 해서 2000명이 되었습니다. 옆에 있는 교회도 같이 성장을 해 가다가 700명에서 멈췄습니다. 그랬더니 당 회원들과 교인들이 700명에서 멈춘 목사님이 자꾸 2000명이 된 교회 목사님과 자꾸 비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쁘게 생각하면 잘못된 것이지만, 긍정적인 면에서 생각하면 얼마나 장로님과 교인들이 자신들의 교회가 부흥하기를 바랐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간절한 마음이 우리에게 있지만,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는 아무리 우리가 초등학생 밖에 안 되는 사람을 놓고 물어본다 하더라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라고 하신 이 예수님의 말씀은 어둡던 세상에 해가 뜨는 것 같은 그런 것을 가지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이미 어두움에 꽉 차 있고, 그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교회 하나 둘 세워 지는 것이, 마치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하나씩 둘씩 떠오르는 것처럼 그렇게 빛이 비추이는 것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라고 할 때에 빛이 비춰서 사람들이 그 빛 자체를 보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두운 밤중에 너무 어두워서 불을 켜들고 길을 걸어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등불을 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등불이 비춰주는 길이나 사물들을 보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사명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크고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목회자든 장로이든 교회이든지 간에 예수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남다른 삶을 살아갈 이유를 심령 속에 가지고 있어서, 그 길을 걸어가지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면서, 왜 저 사람들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우리와는 다를까? 그 이유를 캐 보니까 왜냐하면 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오늘날 한국교회가 욕을 많이 먹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연일 신문지상에 정말 개신교 교인이 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신문에 도배질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개신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매우 특별하게 타락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종교나 모든 시대나 마찬가지 인데, 다만 개신교는 뭔가 통일되게끔 교회를 통제하고, 그리고 세상 속에 교회를 올바로 알리고, 또 스스로 자정하려는 노력을 하고 하는 통일성이 너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샅샅이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감안을 한다고 하더라도 정말 교회는 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미안할 정도로, 세상에 있는 어두움이 교회를 채우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깊이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 목사와 장로들이 깊이 회개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이시대의 교회를 이렇게 밖에 못 만든 것에 대해서 깊이 석고대죄하고, 그리고 지금이라도 은퇴하지 않았다면, 은퇴했어도 마찬가지지만 정신 차리고 남은 기간만이라도 칼 위를 걷는 마음으로, 교회를 올바르게 해야 되겠다라고 하는 강한 정신과, 그리고 처음 신앙의 자세로 되돌아가야 됩니다. 목회라고 하는 직분과 동등하게 치리하도록 부름 받은 장로라고 하는 이 직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직분이고, 특별이 이 두 직분에 있는 사람들은 두 가지 일을 위해서 특별하게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교회의 영적인 번영과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데 있어서 이바지하여야 할 중차대한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교회에서는 절대로 목회의 소명이 없는 사람들에게 신학교 가도록 추천서 써 주면 안 되고, 노회는 절대 이러한 소명이 없는 사람들을 돈이 있고, 교인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이유, 목회자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장로를 세우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부터 우리가 깊이 회개하고 교회가 올바르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 세상의 빛이라’ 고 할 때에, 빛은 어두움에 비하면 아주 작은 크기에 지나지 않지만, 그러나 그 빛을 통해서 사람들은 어두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기 때문에, 빛이 어두움 보다 작고 크기는 아주 작은 크기이지만 그 빛을 통해서, 어두움이 잘못되었고 빛이 옳은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은 빛에게 있기 때문에, 빛을 어두움이 이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빛있는 곳에 어두움이 몰려 올 수 없지만, 빛이 있는 곳이 어두움을 비추면 빛은 힘없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해 가지고 있는 빛 되게 하는 강력한 힘이 무엇이냐? 그 힘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무엇이냐 하면 사상의 힘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기독교의 위대한 힘은 사상의 힘입니다. 성경에서 올바른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교리를 통하여 장로교가 믿는 올바른 신조와 신앙고백을 이해하고, 교리를 확고히 터득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믿고 이렇게 살아갑니다라고 하는 장로교인으로써 확고한 사상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는데, 교회의 양 무리를 치도록 부름 받은 장로가 되었는데, 거의 기독교에 대한 아는 것이 없어서 그래서 공허한 설교를 남발하고, 장로를 일평생해도 교인 몇 사람이라도 놓고 올바르게 가르쳐서 오류 속에 있는 사람들을 진리로 돌리고, 신앙이 식어져서 미끄러진 사람들을 이끌지 않는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세우신 목적에 현저하게 어긋나는 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장로 하면 일본말로 교회에서 기마이나 쓰는 사람들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18년 동안 열린 교회를 해오면서, 장로를 세울 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산 상태를 고려해 넣은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진리를 올바르게 터득하고, 갈 길을 잃은 영혼들에게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지 올바르게 믿는 것인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진리의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담임 목사 옆에 가까이 있어서 밥이나 사주고 돈이나 챙겨서 교회에 내 놓으면, 그것이 장로의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열심히 성경의 말씀을 탐구하고, 그리고 교리를 배우고 그리고 부지런히 경건서적을 읽고, 5년전 보다는 지금 훨씬 더 기독교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이끌 수 있는, 그러한 힘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 해에 얼마나 성경을 탐구 하셨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책을 읽으셨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났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목회자들도 문제가 많이 있지만, 보필을 잘못하고 있는 장로님들도 문제가 많습니다. 성직을 돈으로 더럽히고, 그 돈으로 목사님들 뒷돈이나 대가지고 잘못된 정치나 하게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장로와 목사의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무장해서 한편으로는 거짓된 교훈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고, 또 한편으로 올바른 진리의 말씀으로 잘 가르쳐서 성도들을 진리의 기반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헌신해야 됩니다. 손에서 책을 놓으면 안 됩니다. 주옥같이 훌륭한 책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것을 계속 탐독하면서 그러면서 주님의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가고 있는가? 되묻고 그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교회 교인들을 말씀을 듣고 말씀의 기반위에 든든히 세워서 점점 더 깊은 지식의 말씀으로 무장되도록, 기독교 사상으로 똘똘 뭉쳐진 교인들로 길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빛이 되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 하면 윤리의 힘입니다. 윤리의 힘! 이것은 생활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목회자와 장로는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살아가는 삶의 현실이 교인들에게 표준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번 오늘날 조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한 번 보기 바랍니다. 연일 신문에 도배질을 하는 것이 교회의 재정에 대해서 사고가 나가지고, 심지어는 장로가 구속이 되고, 담임 목사가 구속에 되고 법정에서 소송이 벌어지고, 몇 십억의 교회 돈이 없어졌느니, 잃어버렸느니 하면서 수치스러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무슨 구멍가게 운영하는 것보다 안 되어서 그래서 그렇게 수백억의 돈이 오고가면서도 교회의 장부가 구멍가게 장부보다 못하다고 비난을 받습니다. 이런 것들은 잘못을 넘어서서 죄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그런 식으로 운영해 나가는 것은 죄악입니다. 목회자와 장로는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 그들의 정직성이 표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하나님 말씀 앞에 완전한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온전해 질려고 노력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해 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말씀 앞에 매를 맞으면서 새 사람이 되어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새 사람이 되어 가야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지도자들이 오늘날 어떻게 행실을 하고 있는지를 한 번 깊이 반성해 보자는 것입니다. 정말 나 같은 교인들로 꽉 차면 할렐루야 하겠는가? 아니면 큰 일이 나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최근에 주변에서 이 교회 저 교회에서 정말 원하지 않는데도 소식들이 들립니다. 정말 가관입니다. 이러한 것은 이 세상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인데, 교회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될까요? 남한테 전해들은 이야기니까 뭐 얼마나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교회에서 재정적으로 가장 커다란 사고가 나는 일에 가장 커다란 책임이 목회자들에게 있습니다. 왜 교회를 마치 자기 회사처럼 생각하고 교회에 있는 돈을 자기 개인의 통장에 있는 돈처럼 그렇게 함부로 사용을 해서 물론 개인적으로 착복하고 유용하지는 않았겠지요. 그런데 왜 그렇게 사용을 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실존 법에 위반이 되어서 구속이 되고 하는 그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 이 이야기입니다. 쓸 일이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공개하고 쓸 일이요, 공개할 수 없는 일이면 자기 사례금에서 쓸 일이고, 왜 교회 안에 눈먼 돈이 있어서 이 사람도 손을 대고 저 사람도 손을 대고 해서 결국은 오르내립니까? 제가 아는 교회가 몇 년 전에 큰 환란을 입고 교회가 두 쪼가리가 났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몇 천 만원이 작은 교회에서 없어진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이 선교지에 가서 나눠줬다는 것입니다. 누가 받았느냐? 뭐 모르겠다는 것이죠! 얼마를 줬느냐?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영수증은 어디 있느냐?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롭고 좋을 때는 문제가 안됐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결국 목사님은 사임을 하고 교회는 반 토막이 나고 수많은 성도들은 다시 교회를 안 믿겠다고 교회를 떠났고, 양 쪽 어느 교회로도 안 들어가고 그냥 떠나 버렸습니다. 그런 씻을 수 없는 일들이 왜 일어나게 하는 겁니까? 누구를 줘야 되겠으면 왜 그걸 자기 손으로 주느냐? 누구를 구제 하는 것도 아닌데, 교회에서 보내주고 교회에서 정확하게 기록해 놓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상식적으로만 해도 들지 않을 시험을 교회에 무성하게 들게 하고, 실제로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교회에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돈이 1년에 3억이라고 자랑하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영수증 없이 쓰는 돈이 무엇입니까? 그런 돈이 왜 필요합니까? 이런 것들은 잘못된 것입니다. 정정당당하게 밝히고 어느 교회가 불쌍해서 내가 천만 원을 도와 줬다. 노회가 어려워서 내가 이천 만원을 내놓았다. 아니 그렇게 하고 당연히 정정당당하게 서류로 남기고 돈을 쓸 일이지, 이게 무슨 이 세상의 기업이 관가에 로비라고, 정치계에 로비를 해가지고 사업을 키우는 회사도 아니고, 그것이 무엇에 필요 하느냐? 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유난히 거져 받는 것을 좋아하는 목회자들이 이 모든 문제의 온상이 되고 있습니다. 왜 거져 받습니까? 오죽했으면 제가 교역자들과 동역자 들에게 맨날 하는 얘기가 구원 이외의 공짜는 전부 다 독이다. 아무것도 받지 말라. 왜 받습니까? 여러분 대부분 보면은 교회에서 열심히 돈 싸다 주던 사람들이 결국 목사님 뒤에다 칼 꽂고 헤어집니다. 틀림없습니다. 그거 왜 그렇게 합니까? 하나님께 소명을 받아서 사업을 하라는 게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교인들에게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가르쳐주라고 목회자를 세웠습니다. 그러면 일체의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만 그럼 문제입니까? 장로님들도 얼마나 많이 반성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화) 실지로 제가 아는 교회는 교회 인근지역이 전부 다 재개발이 되면서, 교회 자체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허허벌판이던 농지들이 정리되면서, 그 교회 교인들이 전부 다 최소한 1억 2억에서 심지어는 300억 400억까지 보상금을 받아가지고, 나가게 됐습니다. 십일조를 냈냐구요? 안 내는 일에 장로님들이 모본이 됐습니다. 400억을 받았으면 40억을 내 놔야 됩니다. 만약에 그것이 옳지 않으면 당회원으로 있을 때에 교인들에게도 십일조 내지 말라고 그랬어야합니다. 그 십일조 받아가지고 장로님들이 수련회도 하고 교회도 운영하고 봉고도 굴리고 담임 목사 사례비도 주고 신학교에 후원도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은 안 하는 것을 왜 교인들에게는 하라고 합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런 식으로 치부를 하는 교회 돈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시겠느냐구 나는 묻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우리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인들이 맨 처음에는 하나님께 24평 아파트 만이라도 주세요. 얻어요 그리고 열심히 돈을 모아요. 그리고 은행 대출을 얻어서 32평으로 늘려 갑니다. 그럼 그것도 또 좁게 느껴져요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며요? 그리고 또 열심히 눈을 부릅뜨고 모아요. 그래서 45평으로 가요. 그리고 가끔 감사 예배를 드리고 갑니다. 그래서 내가 언젠가 설교시간에 그랬습니다. 도대체 그 중간 정산은 언제 하는 겁니까? 그러면 24평 아파트 6000만원 주고 사 가지고 갔는데, 최근에 보니까 그 아파트가 지금 현재 여기에서 2억 5천만 원까지 올라갔어요. 아니 2억 8천만원까지 올라갔어요. 3억 가까이 되죠! 그리고 거기서 있다가 다시 또 4억 5천을 주고 32평으로 가고, 5억 8천, 6억을 주고 45평으로 갑니다. 그럼 도대체 당신은 중간 정산은 언제 할 겁니까? 그럼 마지막에 죽을 때 얘들아, 이 아파트가 10억이 가는데 사실 여태까지 한 번도 십일조를 안냈으니 내가 죽거든 십일조를 내거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진 않겠죠! 절대로. 그럴 리 없겠죠! 그럼 그건 뭡니까? 작으면 토해놓고 크면 삼키고, 그럼 정정당당하게 십일조 제도는 비성경적입니다 하고 도전을 하라 이 얘깁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그 날 오후에 제가 아주 열변을 토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 교인이 8000만원을 십일조로 보냈습니다. 그 중 또 그래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윤리의 힘줄이 약하니까 교인들에게 어허! 그렇게 살면 안 되지! 이럴 수 있는 어른이 없는 겁니다. 왜? 다 뭔가가 불확실 한 겁니다. 나쁘다고는 말 할 수 없는데 이렇게 애매모호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그것을 듣던지 안 듣던지 간에 ‘이놈’ 하고 야단을 칠 수 있는 어른이 없는 겁니다.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어떻게 그렇게 해서 교인들에게 이렇게 살면 안 되고 이렇게 살아야 되느니라고 나무라고 타이를 수 있겠습니까? 한국교회가 잘못되었다고 욕을 할 때에는 모두 입에 침을 튀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가 그렇게 욕먹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살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해서 안 됐습니다 마는,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한국에서 교역자는 근로자가 아닙니다. 목회자도, 세금을 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난 이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여기서 명확히 말씀 드릴 수 는 없습니다마는 저희 교회는 목사님들에게 사례를 하느라고 애를 쓰면서 합니다. 우리 교회보다 몇 배 큰 교회만큼 드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관공서에 목사가 무직자로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세금을 안 내니까! 그리고 아이들은 영세민 집안의 아이들로 모든 혜택을 받는 겁니다. 옳지 않습니다. 연봉을 그만큼 받는데.. 그래서 내가 얘기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어굿난다. 너희 자녀들이 어떻게 영세민 자녀이냐? 너희 자녀가 그렇게 공짜로 들어가므로 진짜 어려운 아이 하나가 못 들어간다. 이것이 어떻게 옳은 것이냐? 그래서 다 세금을 내라 그랬더니, 그 때 교역자가 25명이었는데, 세무서에 가서 물어보았더니 세금이 7000만원 이예요. 지금 현재 8000만원을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8000만원을 교역자들이 모아서 낼려니 힘들지요. 그래서 그 다음해에 세금만큼 만 올려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혜택이 다 끊어지는 겁니다. 거져 다니던 유치원은 돈을 내야 되고 임대 아파트는 못 들어가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그게 바로 이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가야 되는 대가이다. 그렇게 살기 싫으면 처음부터 그리스도인이 되지를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안 되었으면 누가 우리보고 땅 보상금을 받았다고 십일조를 내라고 그러겠습니까? 그리고 또 내라고 그러는 녀석이 있다고 한들 누가 그 말을 듣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잖습니까? 그리고 이제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살다가 하나님 앞으로 간다며!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은혜가 정말 놀랍다며요! 그러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이 무슨 장난입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교회의 지도자들로서 이렇게 분명한 선을 긋지 않고 살아가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이 깝죽거리고 교회를 우습게 보는 겁니다. 그리고 교인들도 지도자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런 앞뒤가 다른 이중성들을 보게 될 때에 교인들은 이 교회의 체제 전체에 대해서 진실성에 대해서 의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합니까? 특히 교회의 재정은을몇 사람들이 큰 교회는 몇 천억씩 주무르는데 몇 사람 외에는 알 수 없도록 주물럭주물럭 하면서 구멍가게 같은 장부를 가지고 움직이고, 아무도 통제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교회에서 목회자나 장로 몇 사람이 일꾼들을 주물럭주물럭 뽑아서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줄 세우고 교인들의 대의를 무시하는 것, 이런 식으로 교회를 이끌어 가면 교회는 이 세상에서 결코 빛이 될 수 없습니다. 8년 전서부터 저희 교회가... 아니 6년 전 부터이구나. 저희 교회가 여러 사람이 반대 하는데도 제가 전격적으로 우겨서 교회 재정에 대해서 외부 공인 회계사의 감사를 받게 하였습니다. 내가 내세운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공인 회계사는 우리 교인이 아는 사람이어서는 안 되고, 우리 교회 교인이면 더더욱 안 되고 가능하면 불신자이어야 된다. 그래서 계약을 체결하고 샅샅이 조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알고 보니까 개인으로서는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부인은 교회를 다니시고, 5년 동안 저희 교회를 감사를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분이 최근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하는 이야기가 ‘목사님, 저는 교회가 이렇게 깨끗한데 인줄은 몰랐습니다. 코스닥에 상장된 주식회사 중 우량기업보다 이 교회는 더 잘돼있습니다. 여러분 교회 물건사고 세금 안 내시죠? 다 탈세입니다. 방송장비 일 억짜리 들여오지요. 영수증 달라는 소리 안하면 1억입니다. 우리 교회는 진짜 영수증이 필요 합니다. 그러면 1억 1500만원 달라고 합니다. 부과세 1000만원 소득세 300-500만원. 1500만원을 주고 영수증 한 장을 받는 겁니다.
이 세상에 그 일이 좋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세금 내는 돈 모두 모으면 우리 선교사 30가정 파송합니다. 그러나 나는 교회를 이 세상의 빛 되게 하는 아주 중요한 원리가 윤리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업자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공사를 하고 직원들에게 리베이트를 건냈습니다. ‘이런 게 뭡니까?’ 모 교회 모 교회 모 교회 모신학대학교 모 신학대학교 다 리베이트 주는데 너희도 받아라. 심지어는 경상도에 있는 어느 교회를 갔는데 건축위원회에서 교회를 건축하자고 올리기만 하면 당회에서 장로 한 사람이 집요하게 반대하면서 무산시키는 겁니다. 하도 교회가 고통을 받으니까 교회가 그 장로님을 건축위원장을 시키고 당신이 그럼 한 번 해보라고 공사를 줬어요.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교회가 이 세상에서 빛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1000명 2000명 3000명이 모이면 뭐하겠으며, 교회 건물이 10층 20층 올라간들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그렇게 해서 목사님을 유학 보내서 박사학위를 몇 개를 받고 검은 가운을 입혀 놓은들, 그것이 이 세상에서 빛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예화) 무당이 있었습니다. 작두 타는 무당이었습니다. 진짜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작두를 타는 것입니다. 다 끝난 다음에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서슬이 시퍼런 작두를 타노라면 당신 발 다치지 않느냐? 뭐 특별한 신의 기운이 있느냐?” 그랬더니 이 무당이 하는 말이 나도 사람인데 신이 돕기는 하지만 아니, 버선 발로 작두를 타는데 서슬이 시퍼런 숯돌로 간 작두를 타는데 어떤 때는 춤을 추고 나오면 버선이 질퍽질퍽한다는 겁니다. 뭐에 피에 피에 살이 찢어져서, 그런데 힘들지 않느냐고 하였더니, 신이 시키시는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느냐? 귀신한테 사로잡힌 사람도 그렇게 삽니다. 그 더러운 무당 짓을 하면서도 작두를 타면서 버선이 시뻘겋게 젖어 피가 낭자한 그걸 타면서 이게 나의 길이고 걸어갈 수밖에 없는 소명의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의 피로 부음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다 죽어요. 여러분들 제가 꽃다운 39살의 나이에 열린 교회를 세운지 엊그제 같습니다. 그런데 1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개척할 때에 품에 안고 다니던 갖난 아이는 지금 대학교 3학년이 되었고, 아빠가 교회한다고 철없이 떠들고 까불던 아들은 올해 장가를 갑니다. 갑니다. 그때 우리가 교회를 정말 거지같이 섬겼다면, 그 때 우리 주님을 어떻게 뵙겠습니까? 차라리 목사가 안 되었더라면, 차라리 장로가 안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깊이 회개하고 자신있게 교인들에게 나를 따르라 !내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를 따라라 그렇게 얘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굳이 그렇게 걸어가는 길이 나에게 너무 버겁고 내가 아무리 그렇게까지는 살 수가 없다 그러면 지도자가 되기를 그만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사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겁니다. 이 윤리의 힘이 기독교의 중요한 힘입니다. 그래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이런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교회지도자가 되어서 교회나 소송하고 목회자와 싸우기나 하고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이 교회를 얼마나 손가락질 하겠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정말 회개해야 할 일입니다. 짧은 기간 나이 60이면 10년이 남았고 55세 젊은 나이라면도15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 제한된 시간 밖에는 우리에게 섬길 기간이 없습니다. 그러면 딱 한 번 살고 어둠속에 사라져 가는 것인데, 그러면 온 마음을 다해서 그래서 한 번 살다가 죽는 것,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구원을 얻고 그 은혜로 그래도 한 때에는 교회당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떨구며,
(찬양) 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목회자들이 몇 십억 짜리의 집에서 살고, 그래서 교회에 분란이 일어나고 그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 세상 사람들이 와서 교회를 들여다봐도 야! 여기는 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 내어다 놔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깨끗한 공동체이고 집단이구나. 그리고 지도층들의 윤리성들이 확고하구나. 그렇게 하다가 죽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신도시가 개발되고 어마어마한 돈들을 착복하고 정말 하늘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정말 우리들이 십자가가 살아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세 번째 힘은 은혜의 힘입니다. 은혜의 힘! 사상이 있고 옳다고 해서 모두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 세상이 다 틀렸다고 이야기를 해도 주일학생이 봐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자기에게 이익이 되니까 지도자들이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불법을 행합니다. 그것을 교인들이 따라 합니다. 지도자들이 그렇게 되면 교인들은 십일조를 들고 방황하기 시작합니다. 교회에 안 냅니다. 그리고 구제 기관을 찾고 가난한 사람을 찾습니다. 교회에 주는 것 보다 자기가 나눠주는 것이 훨씬 더 잘 쓸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이 정도 되면 이 세상 사람들에게가 아니라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데 교회가 교회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은혜의 힘입니다. 은혜의 힘! 교회의 건물은 돈 모으면 살 수 있고요, 지식은 열심히 가르치면 습득이 됩니다. 은혜는 사람들이 갖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죄인들을 변화시켜 새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은혜를 부어 달라고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온 교인들이 주님을 만나고 눈물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까? 누가 가서 설교를 해도 절대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목회자와 장로와 목회자의 아내와 장로의 부인들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하면은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희생과 고통이 필요합니다. 따라요. 말로 진리를 외치는 것은 침만 튕기면 됩니다. 그러나 몸으로 진리를 따라 살려면 피를 흘려야 됩니다. 그래서 어떤 청교도가 이런 이야기하기를 일생을 진리를 따라 산 성도의 얼굴에는 악마의 손톱자국이 가득할 겁니다. 수없이 할켜서 그걸 이기면서 그 길을 걸어가지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가 하면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그래서 막 돼먹은 인간들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시는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물어 보십시다. 여러분이 인생을 살면서 회개하는 목회자를 자주 만나셨습니까? 새 사람 된 장로님들을 자주 만나십니까? 이 직분 저 직분 맡으면서 교계에서 신분이 상승되는지는 몰라도 새 사람 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왜? 은혜의 힘이 모자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초등학교 다닐 때에 장로와 목사의 그림은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를 짓든지 핍박이 오든지 어떤 일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정말 다시 회복되어야 할 정신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질 것이기 때문에, 교회가 빛이 되기만 하면 이 세상이 악하고 어두워지는 것은 오히려 기회입니다. 대낮에 불꽃놀이 하는 사람 없고, 그 불꽃놀이의 진수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하늘에 대포를 쏘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이 악하고 나쁘다라고 탓하지 말고, 그러니까 교회라도 올바르게 할려고 애를 쓰고, 그 길을 걸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이 다음에 우리의 후손들이 우리가 왜 이런 식으로 교회를 섬겼느냐고 물을 때에 이렇게 밖에 교회를 섬길 수 없었다는 아주 분명한 이유를 후손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너절한 지도자로 살아왔던 사람들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지도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깊이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래서 우리 주님이 다시 한 번 교회를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살게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