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된 일꾼은 약입니다.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는니라.(잠13:17)
녹취자: 나미연
1. 본문해설
‘악한 사자는 재앙에 빠져도’ 라고 했는데 이 13장은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를 계속 대조하면서 그가 누구이고 어떻게 생활하며 살아가는지를 대조하며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 말로 ‘ ’인데, ‘악’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번역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재앙’이라고도 번역이 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악한 자가 악에 스스로 빠진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조법으로 쓰였는데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라고 했는데 모든 관계 속에서, 혹은 공동체 속에서 나타나는데 충성스러운 자의 효과를 가르친다고 보면 악한 사자도 역시 ‘악’이라고 번역을 해서 공동체와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런 것이다 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악한사람은 근본적으로 미련한 사람과 통합니다. 그 이유는 악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잠언 전체는 가방끈이 길고 짧음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여기서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가방끈을 메고 어디로 가느냐에 관한 관심인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공부를 못해도 있을 수 있고 공부를 많이 해도 지혜가 없을 수 있으며 심지어 보에티우스는 많은 공부가 오히려 우리를 지혜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조롱을 받을 때에 너의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는구나 하고 조롱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것과 정반대의 경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지혜는 결국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예화) 홍콩 집회를 갔을 때 그 곳에 가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는데 우리 교회를 잘 섬기던 집사님이 남편이 그 곳으로 발령을 받아서 가셨는데 한번 홍콩에 갔을 때 연락을 한다고 했는데 잊어 버려서 다음에 가면 꼭 한번 가겠다고 약속을 하고 가게 되었는데 가보니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가 굉장히 어렵고 장로님 몇 분이 목사님을 힘들게 하니까 목사님이 당신들이 물러나면 내가 물러나마 하며 결국 목사님과 장로님 몇 분이 떠나고 어려운 가운데 있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주셔서 그곳을 가게 하신 뜻이 이런 거구나라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공부를 못하고 학식이 낮아도 지혜가 뛰어날 수 있고 공부를 많이 하고 학식이 높아도 지혜가 없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가 무엇이냐 하면 결국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믿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고 우리에게는 이것이 안 이어져 있지만 성경에는 통합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화) 홍콩의 교회에 갔을 때 저를 매일 숙소에 와서 안내해 주던 집사님이 제게 질문을 건넸는데 자기가 아는 교인이 굉장히 긴 세월동안 함께 교제를 했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웠다고 합니다. 믿음도 좋고 해서 처음에는 잘 버티고 견뎠는데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이 되니까 너무 힘들어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믿음도 좋고 신앙도 좋은데 왜 하나님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계속적으로 주실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경솔히 판단할 수 없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똑같은 상황이 오래 계속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삶의 태도가 문제가 있다 신앙이 좋아도 삶의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같은 상황이 계속 되풀이 될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주님이 해결해 주실 때도 있지만 태도가 바뀌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 주시고 또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 주셔도 근본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바뀐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결과가 세월이 흐르면 계속 반복 되어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올바른 교리를 알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의 태도에 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종종 말씀드리지만 어떤 사람들은 참 인복이 많아 자기는 별로 돕는 사람이 없는데 늘 호의적인 사람들이 나타나서 도와주고 해서 어떤 때는 시기심도 나기도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원래 태도 자체가 대접을 받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대한다는 것입니다. 그 뿌려 놓은 것들이 열매로 거둬들이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섬김을 받는 것만 화려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삶의 태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화) 이런 생각 많이 해봤을 텐데 나는 저 사람에게 해준 것이 없는데 이상하게 나에게 호의를 가지고 다가올 때 들려오는 소리가 저 사람이 당신을 참 좋게 봤다 의외이다 생각할 때가 있는데 반대로 악한 감정을 품어 본 적이 없는데 들려오는 이야기가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나에 대해서 욕을 한다고 한다면 전자는 원래 선한 사람이고 후자는 원래 악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태도라고 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나오는 것입니다. 어느 경영학 책에 ‘웃음은 헤프게 말은 인색하게’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는 그 반대입니다. 그런 태도가 사람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삶의 태도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악한 자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모든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근본적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악에 빠지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본문에 대조적인 사람이 나오는데 충성된 사신은 양약이 되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충성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좋다? 라고 말하지 않고 양약이라고 얘기합니다. 한자에 ‘약’이라고 하는 글자는 참 재미있는데 즐거운 ‘락’자 위에 풀 ‘초’를 얹어 풀을 복용하면 즐거움을 다시 회복하게 되는 것이 약의 기능입니다. 약을 복용할 때도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약을 복용했을 때 순간적으로는 자기 몸과 약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고 괴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충성된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늘 좋은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편에 서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화) 흐린 날이 계속되다 장마철에 개이면서 가을하늘처럼 파아란 하늘이 활짝 펼쳐지고 찬란한 햇빛이 쏟아질 때 풀밭에 떨어진 물방울들이 떨어지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아침, 얼마나 찬란한 햇살이 아름답습니까. 안질에 걸린 사람에게는 고역입니다. 흐린 날이 훨씬 편한 것입니다. 그러면 빛이 나쁜 것입니까? 빛은 좋은 것인데 빛을 받는 사람의 눈이 안질에 걸렸기 때문에 빛이 눈을 시겹게 만들고 쓰라리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충성스러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충성스러운 것일까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도록, 창조의 목적으로 사람들을 돌아가게 하도록, 교회라는 이름은 가졌고 예수 믿는 사람의 이름은 가졌지만 악을 향해 가던 그 가족과 공동체 관계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돌아가게 하는데 이바지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가치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이 모든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악을 행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선을 행하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악을 행하면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더 고통이 됩니다.
(예화)리비아에 카다피는 빠른 시간 내에 살해를 당하던지 도망을 가든지 해야 합니다. 미사일을 날렸다고 하는데 그렇게 폭압적으로 해서 백성들을 영원히 제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곤욕스러워 하는 것이 카다피가 천안문을 예로 들면서 천안문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중국 사람들이 어떻게 다뤘나 봐라 한 번에 쓸어버리지 않았느냐 중국은 위대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은 천안문 사태를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2천명이 죽었습니다. 중국에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의 민족의 이야기지만 눈물이 나왔습니다. 천안문사태 이전까지 공산군을 믿는 중국 사람들은 확고했다고 합니다. 정치를 잘 못하고 썩어도 공산당이 백성들을 궁극적으로는 위한다는 사상, 이것은 불변이었다는 것입니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에 끼여 있는 패러다임으로서의 어떤 인물이지 당 자체의 기본은 인민을 무한히 사랑하는 정신을 지닌 공동체라고 하는 것의 믿음이 확고했다고 합니다. 절대 공산당은 민중을 사랑하기 때문에 천안문에 모인 우리들과 대화를 하지 절대 쓸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 번에 날려버린 것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반체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미사일을 날리니 사람들이 전투기를 동원해서 쏘고 하는데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작렬하게 죽을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선한 사람이 선을 향해 꾸준히 가려고 해도 악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악한 사람이 악을 끊임없이 행하면 남아있는 소수의 선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교회에서 사역을 하니까 우리 교회 공동체는 비교적 도덕적이고 영적이고 건전하다고 할지라도 악이 없겠습니까? 악하다고 생각하는 공동체에도 선이 없겠습니까? 결국은 어느 식으로 걸어가든지 간에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충성된 사신은 그 공동체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고칠 수 있도록 아픔을 주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충성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충성된 사람들을 통해서 자기의 사람들을 고치시고 교회의 병든 부분들을 온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내 가정과 교회, 직장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어떤 병든 부분들이 치료되어 가고 있는가, 어떤 의미에서 양약이 되고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셔서 내가 여기 없는 것보다는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고치시고 치료해 가시는 구나하는 것을 우리들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과를 올리고 일을 잘하는 것은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하나의 국면만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하나의 국면은 소극적으로 병든 부분들을 계속 치료해 가는 것입니다. 홍콩에 가서 집사님이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하며 교회의 많은 아픈 부분들이 느껴져 그것들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는 생활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생활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낼 뿐만 아니라 망가진 부분들을 자기가 있음으로 고쳐 나가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부분을 바로잡고 지혜가 없어서 망가진 부분들을 다시 올바로 고치고 해서 더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온전한 교회가 되어가는 기능들을 충성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말 많고 충성되지 않고 요령이나 피우고 게으르고 꾀부리고 눈치나 보는 사람들은 절대로 공동체를 고쳐갈 수 없습니다. 충성된 사람들은 고쳐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