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심방 할 때
“또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요 10:16)
녹취자: 허혜숙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무슨 메시지를 줄까 하다가 오래 전부터 여러분에게 하고 싶었던 그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방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거의 심방을 못 해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솔직하게 ‘저는 한 번도 심방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라는 분은 손들어 보십시오. ‘나는 누구의 도움 없이 나 혼자 영혼들의 집을 약속을 했건 하지 않았건 방문해서 심방을 해 본 적이 있다.’ 손들어 보십시오. 그러니까 목사님이 시켰든지 아니든지 나 홀로 그 집을 찾아가서 그 아이를 심방하거나 부모와 함께 심방했거나, 교역자 따라가서 옆에 앉아서 과일 먹고 온 것 말고 독자적으로 가 본 사람 손들어 보세요. 보십시오. 10%도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 제가 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심방 갈 때 따라간 적은 있지요? 그리고 가만히 있었잖아요? 그리고 마지막 올 때 머리 쓰다듬고 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심방을 간 것이 아니라 교역자가 심방을 간 것이고 여러분은 심방 동행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심방을 할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서, 두 번째 어떻게 하는지를 조금 안다고 하더라도 용기가 없어서 심방을 못 한 것입니다.
그것이 전도랑 똑 같은 것입니다. 전도는 실제로 부딪혀서 전도를 해 봄으로써 전도를 하게 되는 것이지 솔직히 말해서 처음부터 그것이 저절로 된 사람이 있기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직 세일즈맨이라든지 가가호호 방문해서 물건을 팔던 외판원 같은 분들은 확실히 잘합니다. 고객의 심정을 확실히 잘 꿰뚫기 때문에 아주 잘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실천을 해 보고나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천을 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에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여러 루트를 통해서 이야기를 해 달라는 간청을 받았습니다. 이것 이외에도 심방 말고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이 있지만 이제 오늘 여러 가지를 하면 입력이 잘 안되니까 심방 하나만 딱 여러분에게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숙제가 뭐냐 하면 ‘아, 심방을 저렇게 하는 것이구나.’ 듣기만 하지 말고 그래도 한 번 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장담하건데 한 세 명 정도만 해 보고 나면 ‘아, 심방이 이런 것이구나.’ 세 명 정도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실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열 명 정도를 심방을 하려고 시도를 해보아야지 세 명 정도 성공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열 번의 심방 계획 중 세 번을 성공했다라고 하는 것은 심방의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고 나면, 말하자면 전도에 은혜 받은 사람이 버스를 타고 가도 모든 사람이 전도대상으로 보이듯이, 그래서 자신의 반 아이들이 심방해야 할 양 떼들로 보이고, 또 출석하지 않은 아이들을 심방할 필요를 느낀다면 그래서 실제로 시도를 해서 아무리 기도를 해도 교회에 안 나오던 애들이 심방을 통해서 교회를 나와서 은혜를 받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러면 여러분은 교사로서 아주 중요한 소양 하나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 열린 교회는 최소한 교리 반을 수료하지 않으면 교사로 임명을 안 합니다. 교리 반을 수료하려면 여러분은 최소한 열린 교회를 2~3년 이상 다녔고 말씀에 은혜를 받고 교사를 고를 때에 염두에 두는 레벨이 최소한 구역장들을 선정한 그 level을 가지고 여러분을 교사로서 임명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심방을 여러분이 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은 목양이 안 된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목양이 목양답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제가 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청년, 장년 합해서 3300에서 3400명 정도 모입니다. 제가 교인이 1100명 모일 때까지 모든 등록하는 교인들을 심방을 했습니다. 1100명쯤 되어서 일주일 내내 돌아다녀도 등록한 사람을 따라잡지 못할 때 ‘이것은 사역의 비효율이다’ 라며 내려놓은 것이 1100명 까지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100명 이전과 1100명 이후에 온 교인이 이렇게 말하면 그 사람들이 삐칠 지도 모르지만 느낌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특히 장년들의 경우에는 다 한 번씩 찾아가서 만나고 청년들은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1100명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어도 만난 기억이 있는 사람, 저는 잊어버려도 그 사람들은 잊어버리지를 않는 것입니다. 담임목사가 지하실 자기네 집에 들어와서 자기를 심방하고 어떻게 사는지를 묻고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고 때로는 은혜를 받고 또 삶의 어떤 중요한 결단을 내리고 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이 잊혀 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되시죠? 그런 점에서 심방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방의 타당성을 이야기 할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게는 양떼들이 있다 나는 양을 알고 양떼들은 나를 안다.’ 그래서 당신과 함께 있는 양들을 당신의 양떼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나에게는 우리 안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그 때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내게 있다.’ 지금 우리 안에 들지 않아서 밖을 길을 잃고 돌아다니지만 그래서 그 양떼들은 그 목자를 자기의 목자라고 생각을 안 하고 자기의 목자인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은 그 잃어버린 영혼들을 자기의 양떼라고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목자의 심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학교 선생으로서 75년도에 교사가 되고 그 다음에 81년도에 교역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주일학교를 계속 했습니다. 여기 임두순 장로님 계시는데 잠깐 일어나 보십시오. 이 장로님이 제가 주일학교 교역자 생활 첫 번 시작한 교회에서 부장집사님이셨습니다. 그 때 장로님 나이 30대 초반 쯤 되셨고 제가 신성교회에서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가 스물아홉 살에 교역자 생활을 했으니까... 장로님은 열아홉 살에 결혼을 하셨습니다. 사모님은 그 때 나이 열일곱이셨구요. 그때는 결혼을 다들 빨리들 했는데 그래도 빠른 편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때 제가 전도사 시절에 기어 다니던 아이가 지금 사십대가 훨씬 넘었으니까 정말 옛날이야기입니다. 우리 장로님이 그 당시 집사님으로서 증인이시지만 우리는 심방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심방을 누가 체계적으로 가르쳐주었느냐? 아닙니다. 물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지금보다 심방하기가 수월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을 바깥에 놓아서 기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애들이 집에 안 있고 골목에 와서 딱지치기 하고 구슬치기하고 줄넘기하고 말 타기하고 노는 시대였으니까 그냥 동네에 가면 주일학교 나오는 애들 나오다가 안 나오는 애들을 한꺼번에 다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호떡도 사주고 떡볶이도 사주면서 이야기도 건네고, 그 때는 애들이 착했습니다. 그 다음에 ‘너 그렇게 교회 안 나오고 그러면 하나님이 기쁘시겠니?’ 그러면 진짜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그랬습니다. 거짓말 아니고 정말입니다. 그러니까 굳이 심방을 가려고 아파트 관리실에 방문기록을 적고 그런 집이 없었습니다. 그냥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봉사하던 지역은 서울 변두리였습니다. 저기 공릉동 서울 맨 끝자락이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가는 곳, 서울여대보다 조금 서울 쪽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환경이 달랐습니다. 지금은 길거리에 가서 전도하고 너희 집 어디니? 하고 학교 앞에 가서 전도를 하고 전화번호를 적잖습니까? 90%가 가짜입니다. 애들이 벌써 알고 거짓말로 대답 합니다. 그러니까 시대가 달랐다는 것은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이들은 강력한 심방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우리들이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항상 심방을 안 하는 때가 없었지만 제 생애에서 가장 열렬하게 심방을 하던 것이 오우진 목사님이 전에 계셨었던 내수동 교회, 제가 거기에 중등부 그리고 고등부 교역자로서 만 5년 정도 있었습니다. 그 때에 특히 고등부에 있었을 때 특별히 학생들을 많이 심방했습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약 80명 정도 나왔는데 그 때는 제가 전도사로서 교수생활을 했었는데 도저히 심방할 시간이 안 났습니다. 왜냐하면 아침부터 강의를 시작해서 밤 야간까지 강의를 해야 했고 그 때 나는 또 박사과정 다니고 그렇게 하니까 시간이 안 났습니다. 시간이 날 수 있는 때가 언제였느냐면 토요일하고 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토요일은 설교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 때는 제가 목숨을 걸고 설교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토요일은 학교 연구실에 가서 그 학생들에게 설교할 것을 아침부터 오후까지 꼬박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원고를 작성을 하고 그것을 그 당시에 있었던 타자기로 타자를 해서 틀린 글자를 모두 교정을 해서 A3용지에 복사를 해서 그러면 대개 원고지로 약 100매 정도 되고 그렇지 않으면 A4용지로 9매 내지 10매 정도 됐습니다. A4용지 1매가 원고지 10매 분량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서 그 원고를 완전히 숙달하고 외운 다음에 그날 밤 철야 가서 철야하고 주일날 설교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요일 날은 시간이 안 납니다. 그래서 만만한 시간이 토요일 밤이든가 아니면 주일날입니다. 주일날 두시 정도면 주일학교가 다 끝나고 네 시에 교역자 회의가 있는데 목사님께 양해를 구하고, 제가 지금 목사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나는 당연히 내가 돌보고 있는 양떼인데 너무 불쌍해서 심방을 하는데 목사님은 눈물이 글썽일 정도로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역자 회의 빠지는 것은 상관도 안 하시는 것입니다. 갔다오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고 ‘전도사님, 기름 값은 교회에서 드리겠습니다.’ 제가 그 때 차가 있었습니다. ‘아니 목사님 괜찮습니다. 제가 교수 월급 받는 것으로 기름은 넣을 수 있습니다’그러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하면 두시부터 시작을 해서 밤 열한시까지 심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힘들고 피곤할까 생각하지요? 아닙니다. 은혜가 넘치는 시간입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아이들하고 접촉이 안 되는 시간입니다. 얘네들이 ‘심방 와주십시오’사실 교역자하고 심방 따라가는 것은 카페트 위에 걸어가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전화해서 ‘집사님, 심방 갈게요.’ 그러면 ‘그러세요.’ 하고 딸기 씻어놓고 무릎 꿇고 방석 깔아놓고 기다리는데 거기 따라갔다 왔는데 무슨 심방입니까? 가만히 앉아서 할 일도 없고 하니까 계속 그것만 먹고 그리고 왔잖아요? 그리고 올 때 뿌듯하죠. 집에 왔는데 ‘너 왜 그렇게 늦었니?’ ‘저 어제 심방하고 왔어요.’ ‘그래?’ 따라간 것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합니다. 오늘 예배드리고 간 애들이 심방할 필요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비교적 적습니다. 안 온 아이들을 죽 체크하면서 도는 것입니다. 두시부터 차를 몰고 교사들을 시켜서 토요일부터 심방계획을 짭니다. 주일날 안 나오면 어디 있는 지부터 찾아내야 됩니다. 왜냐하면 서울 시내를 무턱대고 누빌 수 는 없습니다. 집에 가면 있을까요? 없을까요? 백퍼센트 없습니다. 교회 간다고 하고 아침에 나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원은 주일날 휴강인데 학원 간다고 나오거나 아니면 도서관 간다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이 어디를 갔는지 수소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꾸 심방을 다니다보면 손오공 손바닥입니다. 가는 곳이 뻔합니다. 그래서 가장 가능성 있는 곳을 찾아내고 그 다음에 심방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보통이 들어옵니다. 아 이 아이는 지금 학원가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그러더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다고 그러더라, 그러면 어디 어디 교사들은 미리 가서 거기에서 대기하고 있고 여교사하고 둘이 다니는 것이 좀 그러니까 총무 남자 선생님 하나 세워서 그 녀석이 어디 있다고 하면 찾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만나서 심방하고 그 다음에 너네 반은 끝났으니까 집에 가라, 그 다음에 가서 또 만나고, 또 만나고해서 많이 할 때는 두 시부터 열한시까지 해서 진짜 하나님 은혜로 도우실 때는 열 명 가까이 심방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방학을 하게 되면 학교를 안 가니까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면 매일 갈 수는 없으니까 토요일 일요일 시간을 내서 온 종일 심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떨 때는 출석인원이 열다섯 명 정도씩 출렁거리는 것입니다. 심방한 애들이 거의 교회에 나온 것입니다. 그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기도를 했는데 기도가 응답이 안 되는데 심방을 하니까 기도가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심방을 할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부딪쳐야 된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목사님, 아이들이 나를 싫어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이들에게 환영 받으려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싫어도 계속 아이를 만나면 결국은 좋아하게 됩니다.
파리에 가면 에펠탑이 서 있습니다. 그것을 옛날에 세워놓고 파리 시민들이 얼마나 예술 감각이 높은 사람들입니까?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마지막 선진국이 어디냐 할 때 유일한 선진국이 독일도 아니고 이태리도 아닙니다. 프랑스입니다. 프랑스는 화장실부터가 다릅니다. 아, 이곳이 프랑스구나 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디자인이나 모든 면에서, 그런 사람들이 에펠탑을 보았을 때 얼마나 짜증이 났겠습니까? 그래서 헐어버리라고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런데 파리 시장이 지혜롭게 20년 후에 투표를 해서 20년 후에도 여러분이 헐어버리라고 하면 그 때 허물어버리겠다고 했는데 20년이 지나고 나서 사실은 에펠탑 때문에 파리가 알려지고 그 에펠탑이 파리의 명물이 되고 파리의 랜드마크가 된 것입니다. 지금은 그 쇳덩어리라고 욕하던 것이 그렇게 사랑을 받으면서 밑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6만원인가 8만원을 받습니다. 거기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이 어마어마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쨌든 찾아가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갈 것인가? 심방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뭐냐 하면 가장 최상의 준비는 만나는 스케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심방 갈 때 교사들에게 훈련시키는 것이 뭐냐 하면 ‘절대 잡담 금지’그러니까 이야기를 해도 되는데 심방 가는 사람을 비롯한 영혼들에 대한 대화, 어느 날 심방을 갔는데 그 때 차가 없었는지 선생님들과 버스를 타고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자기 구두사고 핸드백 산 이야기를 탈 때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내릴 때까지 계속 하는 것입니다. 돌아와서 제가 막 야단을 쳤습니다. 도대체 심방을 가는데 이 마음속에 지금 찾아가는 영혼들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사랑 없이 가는 것이 무슨 심방입니까? 마음속에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최고의 심방이고, 찾아가지 않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사랑의 게이지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궁금하지가 않은 것입니다. 걱정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아신다고 그러는데 그것은 자기가 안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십시오. 아이들을 놓고 생각을 먼저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보다 많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기도를 시작하면서 겨우 생각나는 것 말고 생각을 훨씬 더 많이 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항상 시간을 정해놓고 긴 시간을 기도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토막토막 나는 짧은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평신도 때 한참 열렬하게 교사생활을 하기 시작하던 때에 장로님 만나던 직전이었는데 그 때는 교역자가 아니라 평신도 때 열심히 섬겼습니다, 그 때는 애인도 없었고, 출근할 때 아이들 모아서 기도해 주고 모두 데리고 학교에 데려다 주고 저는 전철 타고 직장에 가고 직장 끝나고 빨리 교회로 돌아오면 아이들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기도하고, 성경 읽어주고, 헤어지고, 토요일 날 일찍 끝나서 오면 아이들하고 짜장 면 먹고, 돈도 많이 못 벌었지만 애인도 없고 갈 곳도 없고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러던 시절이었는데 카드에 빨간 종이, 파란 종이, 노란 종이를 만들어놓고 파란 종이에는 상태가 좋은 아이들 이름을 적고, 노란 종이에는 맛이 가려고 하는 애들을 적고, 빨간 종이에는 아예 교회에서 떨어져 나갔던지 시험에 든 아이들 이름을 적고, 포켓에 꽂고 넘기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노란 종이에 적힌 아이들이 파란종이로 올라가고 빨간 종이에 적힌 아이들이 노란 종이로 올라가고 이렇게 응답해 주시는 것을 보면서 감격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은 심방을 안 하는 이유는 평소에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심방할 의욕을 충분히 느끼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도를 많이 하기 전까지는 심방을 못 하겠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용기를 내어서 심방을 하고 오면 그 아이를 위해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Just do it.' 일단 하고 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깊이 품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심방을 하는 것입니다. 자, 심방을 할 때 심방을 받을 아이가 한 주나 두 주 잠깐 결석한 아이일 수도 있고, 혹은 교회는 나오기 싫지만 선생님에게 무언가를 털어놓고나 선생님으로부터 무언가를 듣고 싶을 정도로 심리학적인 ‘라포’ 공감대가 깊이 형성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은 언제든지 예고 없이 심방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미 마음의 문을 상당 부분 닫고 있고 피하려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먼저 편지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 때는 문자 같은 소통 수단이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 때는 항상 편지를 쓸 준비를 하고 다녔습니다. 언젠가 제가 간증을 했는데 항상 제 속에는 관제엽서(우표를 안 붙이고 보내는 것)가 있습니다. 그런 관제엽서랑 편지지를 몇 장씩은 항상 넣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일삼아서 쓰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딘가를 출장을 갔는데 거기에서 기차를 타려고 한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았다 그러면 대합실이나 커피숍에 앉아서 한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편지를 쓸 때 제일 별 볼 일 없는 것이 한 페이지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의례적으로 쓴 편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냐 하면 두 페이지 아니면 두 페이지 반 정도도 좋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요만한 엽서를 꺼내서 거의 돋보기로 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아주 작은 글씨로 관제엽서 하나에 원고지 약 50매 정도 들어가게 앞뒤로 빽빽하게 씁니다. 마치 김대중 씨 옥중서신에서 나온 것처럼 씁니다. 팬을 아주 뾰족한 플러스펜을 사용합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읽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무관심할 수가 있습니다. 한 번 더 보냅니다. 그러면 기도를 하게 됩니다. 마음이 열립니다. 그런 편지를 받으면 부채의식을 느낍니다. 문자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부채의식을 느낄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편함을 뒤져보면 대부분이 인쇄물들이지 누군가가 손 글씨로 써 보낸 것은 없습니다. 편지를 써서 보내고 그 다음에 연락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방을 합니다. 그리고 대화가 되면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이 충분히 열리고 심방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무시에 심방을 간 경우에는 별 쌩 쇼를 다합니다. 한 번은 여교사랑 셋이서 달동네로 심방을 갔습니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문을 탕탕탕 두드리니까 ‘누구세요?’라고 소리가 났는데 그 녀석 소리였습니다. ‘저 교회에서 왔는데요.’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불 끄고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단했습니다. 저는 전도사인데도 몇 번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까 낙심이 되어 우리 여기에서 기도하고 가자고 하니까 여선생이 청바지를 입고 왔는데 담장을 넘었습니다. 담장을 넘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미닫이 문이었는데 똑똑 두드리니까 문이 안 움직였습니다. 문고리가 없어가지고 애가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선생이 확 밀치니까 거기에서 툭 쓰러지면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교사들을 보고 싶습니다. 그 정도의 배포는 있어야 됩니다. 물론 그 때의 담은 철조망으로 된 담이 아니라 야트막하니 블록으로 된 담이었지만 그래도 대단했습니다. 자기 좀 받쳐달라고 하더니 휙 넘어갔습니다. 선생님만 갔으면 애를 못 끌어냈을 텐데 ‘전도사님 오셨어’ 하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슬리퍼를 끌고 츄리닝 바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최악의 대화가 ‘너 오늘 왜 교회에 안 왔니?’ 그것입니다. 이유가 없습니다. 물어봐야 답이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애를 거짓말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묻지 말고 인정해 주고 공감해 주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가 있겠습니까? 츄리닝 바람으로 집에 있는데? 그냥 집에서 까불고 놀았지 그러니까 왜 안 나왔냐고 묻지 말고 안 나오는 것을 기정사실로 인정을 하고 ‘요즘 어떻게 지내니?’ 그리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안 되는데 그것도 주고받는 이야기도 패턴이 다 있습니다. 몇 개 안 됩니다. 그것을 몇 번만 해 보면 익숙해지고 이야기를 건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 신기한 것이 성령이 역사하시면 이 아이가 교회를 안 갔는데 이 아이가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그래도 애가 예수 믿는 애인데, 곤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추운 겨울에 선생님이 담까지 넘었습니다. 그리고 전도사님은 바깥에서 떨면서 기다립니다. 이미 미안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너 왜 교회 안 나왔어?’ 야단 칠 줄 알았는데 따뜻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이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니?’ 그러면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은 어머니가 아프셔서’ 어머니가 아프신데 그 아이가 뭘 했겠습니까? 핑계입니다. 그런데 그냥 봐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공감해 주고 이해를 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니?’ 그런 아이들 중에는 신앙을 추억으로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수련회 때 은혜를 많이 받았다던 지, 그런 것을 상기시키면서 격려해 줍니다. 사람들은 가서 일장연설을 토하고 많이 이야기를 하고 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좋은 심방이 아닙니다. 좋은 심방은 교회에 못 나오는 그 사람 편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감이 되게끔, 그래서 자기를 반성하게끔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계속 안 나와도 괜찮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따뜻하게 잘 이야기를 해 주고 거기에서 같이 손을 잡고 기도를 하면 제 경험으로 봐서는 열 명 중 여덟 명은 다 웁니다. 왜냐하면 자기도 너무 곤고한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찾아와서 기도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우는 사람은 선생님입니다. 왜? 너무 안타까우니까 훌쩍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얘는 그렇게 외롭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곤고한데 그렇게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도사님이 눈물로 기도를 해 주면 열 명이라면 여덟 명은 웁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도 다르지 않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그 때보다도 더 외로운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한 때 청년들에게 다른 직업 갖지 말고 학교 선생이 되어라 그 대신 학교선생이 되어서 돈 벌어서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선교사가 되려는 마음으로 가라, 그리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면 아이들은 거의 맹목적으로 선생님을 추종하고 따릅니다. 그러면 그 통로를 통해서 인생에 대한 가르침이 흘러 들어갑니다.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진짜 사랑하면 공간을 떨어져있어도 사랑이 전해오고 먼저 죽었는데도 사랑의 기억이 지금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여러분이 청소년 시절에 누구한테 그런 사랑을 받아봤습니까? 물론 여러분 가운데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엄마 아빠한테 그런 사랑을 받았다고 하겠지요. 그런데 엄마 아빠가 그런 사랑도 안 해줬거니와 사랑을 해 줘도 그 때는 그것이 사랑인 줄 모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신의 곤고한 것을 생각하며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걔네들한테는 충격인 것입니다. 찾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 말을 못 해도 그냥 ‘너 잘 되길 바란다, 그리고 너 많이 힘들지?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좋다, 선생님은 널 위해 기도할게’하고 그냥 기도만 해 주고 와도 이 아이한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충격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한 번이 아니라, 조르듯이 매주 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잊지 않고 편지가 오고 자기를 찾아가 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감동입니다.
그래서 심방 갈 때 더 감동이 되려면 그 아이에게 그런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작은 책을 한 권 사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아니면 더 정성을 들이려면 좋은 스토리가 담겨있는 깨끗이 적든지 예쁜 채로 프린트를 해서 읽을거리를 가지고 가서 건네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은, 그 아이도 굉장히 방황하는 고등학교 학생이었는데 뺀질거리고 교회에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고 선생님과 함께 갔습니다. 당연히 없었습니다. 그럴 때는 9시쯤 가서 그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밤이 되면 외박을 하지 않는 한 반드시 집에 들어오지 어디로 가겠습니까? 아파트로 들어오는 입구에 공터에서 한 없이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과 함께 교회 이야기하고, 아이 이야기 하고 맘이 맞으면 함께 기도하면서 기다립니다. 저기에서 9시 반쯤 되어서 터덜터덜 걸어옵니다. 분명히 집에서는 교회 간다고 하거나, 학원 간다고 하거나, 독서실 간다고 하고 나갔다가 돌아옵니다. 만납니다. 그러면 아무개야 부르면 깜짝 놀랍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기다린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면 거기 벤치에 앉아서, 아니면 추운 겨울이면 근처 제과점에 앉아서 잠깐 말을 건넵니다. 그러면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냥 찾아가 주기만 하는 것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야기 하는 것은 주님께 맡깁니다. 엉뚱한 이야기만 안 하면 됩니다. ‘너보다 못 생긴 애가 오늘 새로 등록했다’ 그런 이야기만 안 하면 됩니다. 엉뚱한 이야기만 안 하면 됩니다. 가만히 있어주는 것 자체가 메시지입니다.
그 때도 우리가 하나씩 선물을 준비해 갔습니다. 작은 책, 그 때는 귤이 지금처럼 흔하지가 않았습니다. 큰 귤을 하나 사가지고 가서 간절히 기도해 주면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자, 전도사님이 너 주려고 사왔다. 내가 손으로 따뜻하게 데워놨으니까 먹어라.’ 그리고 쥐어줍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즉시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그 때 감동이 살아있을 때 편지를 써서 부칩니다. 그러면 그 다음 주에는 90% 교회에 나옵니다. 안 나오면 사람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 편지를 받았고 주일날 만났고 그리고 한참 미안해하고 있는데 편지가 온 것입니다. 그러면 답장이 오던지 아니면 교회에 옵니다. 교회에서 만나면 따뜻하게 인사하고 엄청난 일처럼 떠벌리지 않고 올 집에 왔다는 것처럼 인사하고 그리고 또 편지를 보내고, 맡은 반 학생이 20명 30명 되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120명씩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봤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퇴근하고 나서 하루 종일 아니 일주일 내내 심방이었습니다. 그래서 120명 되는 아이들을 물론 그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니까 2주 내지 3주 만에 한 번씩 모두 심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교회에 오는데 토큰이 있는지 없는 지까지 모두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이 그 선생님의 품 안에서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래서 방황할 아이들이 거기에서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편지를 쓰십시오. 그리고 제일 나쁜 것은 토요일 밤에 교회에 나오라고 전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화 심방이라고 하는데 최악의 심방입니다. 심방도 아닙니다. 그리고 주일 날 저녁때에 전화해서 왜 안 나왔느냐고 묻는 것, 그것은 벌써 출석부를 놓고 체크하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한 인격체나 사람으로서 체크당하는 것이 아니라 출석자로서 체크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숫자로서, 그것은 아이들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편지를 쓰던지, 문자를 보내든지, 이메일을 보내든지, 더 많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아이에게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그 꽃이 바로 심방입니다. 장소도 문제가 안 됩니다. 오히려 공식적으로 심방을 해서 ‘선생님, 우리 집에 오셔서 심방 하세요.’ 그래서 교회도 잘 안 나오는 애를 놓고 안방에서 옆에 부모가 앉아 있는데 상을 펴 놓고, 여러분 거기에서 20분 30분 연설을 이어나갈 내공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사랑해서 찾아가는 것, 그 자체를 하나님이 보시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심방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그렇게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편지, 엽서. 저는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보면 비서실 이메일로 들어옵니다. 제 개인 이메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르쳐 주지도 않지만 가르쳐 주어도 보내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보내더라도 제가 별로 열어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열 때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오류라고 계속 나옵니다. 그렇게 감동이 안 됩니다. 그런데 가끔 교인들이나 청년들이 편지를 보내는 적이 있습니다. 한 통도 안 버렸습니다. 쌓아 놓은 것이 한 박스 정도 됩니다. ‘목사님 생신 축하드려요’ 이렇게 한 줄 쓴 것도 손으로 쓴 것은 한 개도 안 버렸습니다. 편지지까지 봉투까지 안 버리고 그대로 놔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느낀다면 아이들도 그렇게 똑같이 느낍니다. 한 번 여러분이 사랑하는 마음을 기울여서 두 페이지 이상의 편지를 써본 사람 있다면 손 들어보십시오.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애인에게도 요즘은 그렇게 안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그런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겠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글은 그렇게 쓰면 여러분도 작가가 될 수 있는 재능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 능력을 모든 사람이 인정을 하느냐 아니면 혼자 인정을 하느냐 하는 차이는 있지만 써 가는 것입니다. 정말 양떼를 사랑하는 마음이 뭐냐 하면, 지금은 옛날보다 block이 많이 쳐져 있습니다. 아파트 웬만한 곳은 출입 자체가 봉쇄가 됩니다. 그래도 아파트 앞은 막지 않습니다. 기다리고 있으면 만납니다. 기도하면서 가면 신기하게 만나게 해 주십니다. 심방하고 실패해서 너무 목이 말라서 빙수라도 하나 먹고 가려고 제과점에 들어서는데 그 녀석이 거기 앉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 만납니다.
그러니까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것을 못 한다고 하지 말고 일단 심방을 해 보십시오. 우선 심방을 하기 쉬운 사람부터 시작을 해서 심방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더 많이 기도하고 준비하면서 그 아이와 커뮤니케이션을 시작을 하고 자기가 한 번 편지를 보낸 다음에 즉각적으로 답장이 올 것이라고 그렇게 기대를 하면 너무 낙심합니다. 그러나 이미 저쪽에서 답신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진실하게 쓴 편지나 혹은 메시지들은 그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 그 다음 하면서 그 아이의 마음이 흔들리면서 만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어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고, 어려운 것은 실행입니다. 그 실행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역자들하고 같이 심방을 간 사람들은 교역자들한테서 힌트를 얻은 다음에 여러분은 홀로 그 양떼들을 심방하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서 아이들이 두 주, 세 주, 다섯 주, 안 나왔는데 여러분이 연락도 안 하고 전화만 부재중, 부재중 하고 몇 번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더 이상 찾아가 주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스스로 생각이 바뀌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여러분을 목자로 생각을 하겠습니까? 물어보는 것입니다. 솔직히 대답을 해 보십시오. 그 아이들이 2주, 4주, 5주, 6주, 8주 그렇게 두 달을 교회에 안 나오는데 애들 스스로 마음이 바뀌어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교회에 오니까 여러분이 있습니다. ‘오, 너 왔구나. 반갑다.’ 하며 여러분이 제스처를 보이고 반갑게 생각을 해도 이 아이들은 여러분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상실의 공허를 깊이 느끼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헤어졌는데도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원래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헤어졌으면 미치도록 그립고 그 다음에 그 사람과 만났던 장소 그 모든 추억들이 자기를 눈물 나게 해야지 진짜로 사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석 달 여섯 달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립지 않습니다. 그것을 양 떼가 확인을 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대부분 교회에 안 나오지만, 어떤 다른 요인으로 교회에 다시 나오게 되었을 때 과연 여러분과 그 아이와의 사이에 목자와 양의 관계가 성립을 하겠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물론 그 아이가 그것을 느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자기가 여러 달 동안 교회를 결석을 했는데 편지 한 장 받은 적이 없고 문자 메시지만 ‘너 오늘 안 나왔더라, 왜 못 나왔니? 다음 주에는 보자’ 영혼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리고 지리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문자 메시지나 전화를 같은 내용으로 여러 번 하는 것은 빚 독촉이지 심방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뭐냐 하면 진실로 그 영혼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목자의 심정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해 보는 것입니다. 어떤 선생님이 편지로 사역을 못 하겠으니까 제 녹음기를 틀어놓고 영상이 아니라 음성편지를 길게 쓴 것입니다. 보냈더니 그 아이가 왜 교회에 자기가 안 나오는지를 음성편지로 다시 녹음을 해서 다시 보내왔습니다. 지금도 아마 영상편지로 보내면 아마 똑같은 답장이 올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아이들이 교회에 나옵니다. 회심한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전도사 때 설교를 하면 그 때는 장치도 별로 없었습니다. 들고 다니는 테이프에 녹음 장치를 한 개 끼운 다음에 집에 오디오에다가 수없이 녹음을 해가지고 선생님들이 하나씩 가지고 거기에다가 편지를 정성껏 써서 심방을 가서 주거나 아니면 우편으로 보내주고 그 다음에 전화해서 설교 들었니? 하고 어떻게 하든지 접촉점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으로 아이들을 심방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놀랍게 여러분이 그 아이들을 찾아가서 아주 능수능란한 말로 그 설득을 했기 때문에 ‘아, 이제 이 성에 퇴로가 없구나. 복종해야지.’ 그것이 아니라 그냥 거기 가서 ‘힘들었지’ 이야기 해 주고 오는 자체로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시대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만남에 목말라 있는 시대이고 또 그런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진심을 가지고 그렇게 접근한다면 틀림없이 그 아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제 출석부에 이름을 죽 놓고 몇 달째 안 나오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언제 지울까?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지우기 전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이 아이가 교회를 떠나도 좋으니까 한 번만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하고 만나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여러분도 모르는 아이들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전혀 다른 모습을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한 아이는 아주 뺀질거리면서 교회에 안 나왔습니다. 심방을 가도 심방을 안 받습니다. 어느 날 연락이 와서 선생님 만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시력을 잃어버릴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발로 교회에 나가서 ‘하나님 고쳐주십시오.’ 할 용기가 안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그 아이를 만나지 않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지, 그 아이의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 지는 하나님만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심방을 가는 자체가 이 아이를 건져 낸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이 아이를 감동시켜서 다시 신앙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을 하고 성심을 다해서 심방을 하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영혼 섬김의 지경을 보게 됩니다. 제가 이런 내용들을 『교사 리바이벌』에서 ‘교사가 심방할 때’라는 란에다가 체험적으로 쓴 것입니다. 집에 가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없으면 “전도사님, 목사님, 나 한번만 심방을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해 보십시오. 그 대신 목사님은 앞장서라고 하지 말고 목사님은 뒤에서 감독만 하고 여러분이 실제로 심방을 주도해 보십시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여러분이 출석부에 적힌 모든 사람들을 한 번씩 심방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