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며 흘러가야 할 교회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6)
녹취자: 이효민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경험하게 될 하나님의 은총이 회복되는 축복을 가리키는 동시에 우주적으로는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신체에 장애가 있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다시 눈이 밝아지고 귀가 열리고 사슴같이 뛰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일들이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모든 병자들을 고치시는 기적 속에서 나타났었습니다.
신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부활할 때에 모습이 어떤 모습이겠느냐’ 했더니, 교수님이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 그 손에 못 자국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신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장애가 있는 채로 부활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지만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당신의 못 자국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것은 믿음을 갖게 하시기 위한 하나의 특별한 섭리였다고 봐야지, 신체에 장애가 있는 상태에서 살던 사람들이 부활할 때 꼭 같은 상태로 부활하게 된다면 그게 어떻게 천국일 수 있겠습니까. 원래 사지와 모든 것을 온전하게 지으신 하나님이 그들을 부활시킬 때에도 역시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겪음을 통해서 이루어졌던 몸의 결함들을 완전히 치유하신 상태에서 회복되는 것이 부활이 창조의 원리의 회복이라고 하는 것에 비추어 본다면 이것이 더 맞는 해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일으키셔서 구원하셨지만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의 맛보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은 사람도 결국은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에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성입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사람들이 이렇게 사슴같이 뛰고 기뻐하고 노래하게 될 때에, 그 노래와 기쁨의 이유이기도 한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버려진 땅, ‘황무지’라는 개념은 사람이 가꾸지 않아서 황무지가 된 것도 있지만, 아예 처음부터 식물이 자랄 수 없도록 황폐하게 되어진 땅이 원래는 없었다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쓸모없이 버려진 땅이 없이 어디서든지 경작을 하면 아름답게 열매를 맺고 자연이 만발할 수 있는 그런 조건들로 만드셨는데, 땅의 저주를 받으면서 심어도 나지 않고 가시와 엉겅퀴만 가득한 땅이 황무지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이것은 이제 1차적으로는 땅의 회복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을 또 영적으로 해석하면 황무지와 같이 척박하고 사막과 같이 메마른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진리의 말씀과 사랑이 흘러들어가니까 그 땅이 소생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히브리말로 땅과 사람이라는 단어 ‘다코멘’이라는 단어는 같은 단어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속에 정확히 신토불이의 사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땅과 인간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먹거리에 이 말이 적용되는 것은 단순히 땅과 사람이 분리될 수 없다고 하는 그 사상의 한 적용일 뿐입니다. 이러한 사상들이 성경에 나타나있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사역에 적용해봅시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의 사역은 끊임없이 밖으로 흘러가는 사역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모든 움직이는 사물들이 원심력과 구심력의 조화 속에서 존재하듯이 우리도 역시 사역을 안으로 온전하게 하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교회로 하여금 교회답게 하는 그 일과 함께 또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가지고 이 세상으로 흘러 들어가서 황무지와 같은 세상에 물이 솟게 하고 사막과 같은 교회에 물이 흐르게 하는 일들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어제 홍보국과 모임이 있어서 모였다가 매우 슬픈 문자를 받았습니다. 다름이 아닌 덕치중앙교회에 계시던 이재실 목사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돌아가시면서 유언처럼 열린교회에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그래서 사실 제가 오늘 일이 없으면 꼭 장례식에 가야하는데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1993년도에 (열린)교회를 개척했고, 1997년도에 덕치중앙교회에 우리들이 아웃리치를 보냈습니다. 다른 곳에도 보냈을 텐데 그 고을에 12명의 청년들과 장년들이 보냄을 받았고 또 제가 처음부터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그 곳에 전도집회 할 때 함께 참석했습니다. 그 교회는 불과 14명 정도 모이는 교회였고 목사님은 그 곳에 부임하신지 6년이 되었을 때입니다. 그러고 보니 벌써 약 16년 전입니다. 그 때 목사님은 50,60세 갓 넘은 나이였습니다. 제가 봤을 때 거의 목회의 포기상태였습니다. 아무리 시골 교회이지만 교인이 14명인데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 때 가서 김점순 전도사님을 비롯해 열렬하게 전도했습니다. 6개 마을에 470가정 정도가 있었는데 4박 5일 동안 전도를 했고, 마지막 날 모두 전도를 한 후에 만났던 각 사람과 가정의 신앙의 상태와 복음에 대한 반응을 책으로 엮어서 목사님께 드렸습니다. 이 분이 목회를 잘 모르시다가 우리 전도 대원들이 가서 치열하게 전도하는 모습을 보며 깊이 은혜를 받고 회개하신 후 겸손하게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에 저한테 말씀하시길, 이렇게 3박4일, 4박5일이면 돌 수 있는 이 마을을 자신은 6년 동안 모두 돌지를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그 때부터 열린교회에서 책과 설교를 들으면서 목사님 자신이 완전히 새사람, 새로운 목자가 되셨습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교회가 전도를 해서 사람들을 데려왔는데 제가 갔을 때 그 초청의 날 정확히 75명이 참석했습니다.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습니다. 마을에 그런 분들밖에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굉장히 감동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오고 나서 예배당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온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설교를 하고, 노인들을 대접하고 하나하나 전도대원들의 소개로 인계를 받으셨습니다. 여러분이 해봐서 알겠지만 그렇게 해주고 가면 그 인원을 유지합니까. 대부분 교회가 그 다음 주나 한 달이 되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얼마나 놀라운지 아십니까.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유지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교회가 다녀온 후 100명의 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분이 암에 걸려 교회를 떠나실 때까지도 70여명의 교인이 모였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역사입니까. 목회자가 변하면 교회가 바뀝니다. 목사님이 그 다음부터 새벽에 봉고차를 가지고 교인들을 실으러 다녔고, 사모님이 은혜를 많이 받고 그 어려운 교회 살림에 봉고차 2대를 마련하여 새벽 3시에 부부가 온 교인을 실으러 다녔습니다. 매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어느 날 교인들이 모두 올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봉고차 운행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너무 걱정이 되어 나가보니 할머니 한 분이 언덕을 올라오다가는 고무신을 신었으니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니 신발에 새꼬락지를 감고 올라오고 계셨습니다. 그러다 목사님을 만나니 그 눈길 위에서 부둥켜안고 우셨습니다. ‘제가 마지막에 하나님 만나 그 사랑이 고마워 교회를 가려니 길이 이렇게 미끄럽고 힘이 없어서 못가겠습니다.’하며 그렇게 우셨습니다. 우리가 처음 전도 갔을 때 강퍅하기가 이를 때가 없었습니다. 고무신 들고 때리기도 하고 전도를 하면 삽으로 흙을 파서 던졌습니다. 쓸데없는 얘기를 한다고 말입니다. 그 때 우리 별명이 찰거머리였습니다. 나중에는 동네 사람들, 할머니들이 도망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가서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전도를 하면 시원하니까 듣지는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만두라 소리는 안하셨습니다. 그러다 어느 할머니가 복음을 전해 듣고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너희들은 참 나쁘다 하셨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그 좋은 예수님을 왜 이제야 우리에게 와서 전해주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어서 우리가 그 동네에 간 것이 아니라 김준성 목사의 고향이라 우리를 그 곳에 데려갔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곳에서 큰 역사를 받고 우리가 떠나오는 날 시골에서 어려운 형편에도 10만원을 모아 봉투에 담아 주시는데, 그 돈은 우리에게 1000만원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제발 이 돈을 가지고 가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뭐라도 사먹으라고 하시는데 아무리 거절해도 절대 만류해 하는 수 없이 몰래 헌금 통에 집어넣고 나왔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목사님 저의 평생에 목사님과 열린교회를 만난 것이 큰 축복이었습니다. 농어촌 전도의 첫 출발을 여기 임실 덕치교회에서 시작하셨고, 그 때가 1997년 8월 15일이 낀 주간이었습니다. 12명의 전도대원을 목사님이 보내주셔서 교회 전도에 큰 힘이 되어 95명 정도가 교회에 나오고 1년간 전도를 했는데 100여명의 영혼이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천사도 흠모할 일을 열린교회와 목사님의 기도와 협력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저 천국으로 먼저 갑니다. 목사님 사역 위에 주님의 은총으로 충만하시기를 빕니다. 우리 주님 기다리시는 저 하늘나라에서 주님을 뵙게 될 영광을 어떻게 감당할지 떨립니다. 목사님과 교회 위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빕니다.”
이 편지를 식사 중에 받고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암에 걸렸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사시리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건강하던 분을 하나님께서 불러 가십니다. 그 동네는 참 복 받은 동네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어쩌면 그 교회가 문을 닫았을 수도 있고 목사님이 그 교회를 떠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전도하신 것입니다. 시골교회 목사님들 설교가 우리가 보기에 어설픈 것 같지만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노인 분들의 마음을 녹이셔서 그렇게 굿하고 우상 섬기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도시의 젊은이들도 못할 텐데, 예수님 믿으면 새벽기도에 나오는 겁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잠도 안 오고 무릎에 바람만 나오니 교회에라도 걸어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게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그 교회를 생각하면 참 눈물이 납니다. 우리가 아웃리치 한 모든 교회에서 이런 일들이 동일하게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참 많은 교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알기로 아웃리치를 하면 어느 교회는 그것을 끈으로 무엇을 좀 얻을까 하고 교역자들에게 매달리고 심지어는 김남근 장로가 어느 교회에 갔을 때 빔 프로젝트 작은 것을 하나 전도할 때 사용하려고 가져갔더니 그것을 그 교회 목사님이 보고는 ‘장로님 우리도 이런 게 있어야 교회가 될 텐데. 우리도 이런 것 하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이런 것 하나 어디서 삽니까?’하며 세 번 네 번을 물어보니 김남근 장로가 불쾌한 마음이 들어 ‘목사님 교회에 필요한 것은 이 비싼 빔 프로젝트가 아니라 교인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교회는 4명이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덕치교회의 목사님은 제가 알기로는 16년 전에 관계를 맺고 한 번도 우리 교회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도와드렸었습니다.
우리가 흘러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생각하게 됩니다.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아, 우리도 언젠가 하나님이 불러 가시는데 있는 동안에 충성스럽게 살고, 충성스럽게 산다고 하는 것은 그저 우리 교회만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라, 병들고 가난하고 고통 받고 영적으로 그 은혜의 물이 없는 교회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무엇이라도 나누어 주려고 할 때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당신의 교회들을 샘솟게 하시고 물 흘러가게 하셔서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골 교회에 젊은 사람들이 가서 보면 한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 목사 한 분이 시골에서 목회하는데 자기 처지를 한탄하시며 여기는 비전이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고 물으니 젊은이들이 없고 노인들 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비전은 무슨 비전이냐, 젊은이들이 그리우면 연대 앞 신촌에 개척을 하지 왜 그 시골에 내려갔냐. 당신의 비전은 노인들을 전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수 믿게 하다가 죽으면 염하여 천국 보내드리는 것이 비전이다’라고 하니 목사님은 그 얘기에 은혜를 못 받았는데 사모님이 그 얘기에 은혜를 받아 그 후에도 몇 번이나 그 얘기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식들도 와서 돌아보지 않는 노인들을 목사님 부부가 돌아보고 한 결 같이 목회하다가 마지막에 50세가 넘어 정말 하나님의 부흥을 경험하고 그 가난하고 병든 노인들을 한 16년 어간동안 충성스럽게 섬기다 하나님 앞에 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이렇게 주님이 주신 은혜와 자원들을 흘려보내어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