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가르치는 사람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마 5:2)
녹취자: 김경애
오늘 성경본문은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이것이 오늘 설교자하는 본문입니다. 짧아 보이지만 이 속에는 매우 깊은 진리들이 담겨있고 특히 교사인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마음에 새겨야할 내용들이 숨어있습니다. 이제 5장은 그 유명한 산상수훈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4장에서 각색 병든 자를 고치고 그 소문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왔습니다.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의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들이 모였고 예수님께서는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사람, 귀신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제 그 유명한 팔복산을 오르십니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아마 예수님이 팔복산에 올라가실 때에 따라왔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산 위에 앉으시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나와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4장에서는 각색 병든 사람들이 낫고 귀신들린 자들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고 중풍 들린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나지만 5장에서는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6장 7장까지 아무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조용히 손을 모으고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신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5장, 6장, 7장은 예수님의 설교하신 내용의 골자만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데에 대체적인 합의를 봅니다.
그렇다면 이 산상수훈 5장, 6장, 7장은 굉장히 긴 길이의 설교였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른 아침에 시작해서 깊은 저녁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던 아주 길고 긴 설교일 수 있습니다. 이 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인격이 어떤 것이고 그리고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이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나라이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하나님의 나라라는 관점에 맞추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어떻게 가르치셨습니까? 굉장히 많은 설교노트를 가져와서 1장씩 넘기면서 읽어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 당시의 성경은 모두 양피지로 된 두루마리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때에는 아직 신약이 없었으니까 구약성경 39권을 가지려면 커다란 구루마로 한 가득이었기 때문에 그것은 휴대하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회당 같은 곳에나 성경이 있었고 그때에 그 성경을 펼쳐서 설교했을 뿐입니다. 팔복산에 올라앉으신 예수님의 손에는 설교노트도 없었고 그리고 양피지로 된 성경도 들려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모인 사랑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셨을 뿐입니다. 그러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이 입을 여시자 하나님의 말씀이 한없이 쏟아져 나왔고 5장 2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7장이 될 때까지 쉼 없이 흘러나왔습니다. 마치 댐의 수문이 열리자 막 쏟아지고 그 물이 계속 물보라를 일으키며 계곡을 가득 채우며 강물이 되어 흘러갔던 것처럼 예수님이 입을 여시자 이렇게 진리의 말씀이 쏟아져 나와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들려주었고 그 설교를 들으면서 그들은 자신이 누구이고, 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하고,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하고, 어떤 사람과 지식으로 어떻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 앞에서 살아가야하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당신을 통해 이루이진 이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남김없이 가르쳐주셨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에 있어서 삶의 헌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교사가 하는 일은 참 많습니다. 주일 아침부터 나와서 저녁까지 하는 일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심방도 가야합니다. 요즘은 심방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중고등부 사역할 때 애들이 워낙 공부를 못하면 선생님이 교회에 데려다가 공부도 가르쳐주고 숙제지도도 해주었습니다. 가출한 애들은 선생님이 찾으러 다닙니다. 배고픈 애들은 불러다가 빵도 사주고 그리고 아픈 애들은 데려다가 병원도 같이 가주고 그랬습니다. 정말 교사들이 하는 일은 많습니다. 또 오후에 특별활동이라도 있는 날이면 많은 것들을 준비해서 행사를 꾸밉니다. 그렇지만 지금 열거한 모든 것들은 교사가 실질적으로 하는 일들이지만 그것은 교사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임무는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를 지키는 군인입니다. 그래서 나라에서 월급도 많이 주고, 자동차도 주고, 집도 주고, 그리고 면세점에서 물건도 싸게 사게 해주고, 자녀들도 학비도 대주고, 모든 후원을 다합니다. 그런데 군인입니다. 사람이 너무 좋습니다. 모든 사람과 친절하게 잘 지냅니다. 그리고 가정에서 아내에게도 너무 잘합니다. 밥 먹으면 설거지는 자기가 다합니다. 방도 치우고, 아이들을 학교도 보내고, 동네 어른들에게도 잘하고,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서 동네 마당을 다 쓸고, 유머러스해서 사람들을 만나면 웃기기도 잘하고, 교회에 가서 봉사도 잘합니다. 그런데 전쟁은 못합니다. 싸움이 무섭습니다. 전투가 겁납니다. 그러면 군인입니까? 아닙니까? 군인이 아닙니다. 집에서 조금 못해도, 조금 까칠해도, 이웃사람하고 친하게 지내지 못해도 전쟁이 일어나면 용감하게 싸워서 반드시 승리해야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많은 돈을 들여서 밥을 주고, 월급을 주고, 모든 후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면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운동선수는 운동을 잘해서 팀을 승리하게 하는 일이 임무입니다. 그러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무엇입니까? 어떤 것입니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그것을 하지 않으면 결코 교사라도 부를 수 없는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진리를 가르치는 일입니다. 진리인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것 이것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직무입니다.
제가 전도사 때 있던 교회가 고등부 학생들이 80명 정도 모이던 교회였습니다. 처음 부임했을 때 40분정도 예배를 드리고 2시간 내지 2시간 20분이 공과공부시간이었습니다. ‘아 여기는 정말 엄청나게 성경을 가리키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전혀 아닙니다. 분반공부 할 때는 제가 쭉 돌아다닙니다. 그중에 한반을 보니까 선생님이 예배시간에 조금 늦어서 헐레벌떡 왔습니다. 아이들이 6명, 7명쯤 모였습니다. ‘애들아 우리 공과 공부해야지’ 하니까 아이들이 전부 모였습니다. ‘애들아 너희 아침 못 먹었지?’ 주일날 아침을 먹고 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내 너희들을 위해서 아침 새벽에 일어나서 이 샌드위치를 싸느라고 늦었다는 것 아니냐?’ 가방을 여니까 진짜 쿠킹호일에 싼 샌드위치가 쏟아져 나옵니다. 애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었습니다. 그중의 한 아이가 ‘선생님 우유가 없네요. 우리가 우유 사올게요.’ 한 아이가 나가니까 ‘나도 갈래.’ 그러면서 두 명이 따라가서 전 교인의 50%가 우유 사러 갔습니다. 근처에 가게가 없어서 15분이 걸려서 저 멀리서 터덜터덜하면서 아이들이 우유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다가 우유를 쏟았습니다. 그러니까 ‘걸레 가지러 가야지’ 그러니까 ‘나도 갈래.’ 따라가니까 교인의 30%가 걸레를 가지러 갔습니다. 그리고 다 치웠습니다. 그리고 먹고 나니까 벌써 30분 40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제 공과 공부를 하려나보다 했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애들아 우리 공과공부 하기 전에 일주일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삶을 먼저 나누면서 마음을 열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아이씩 일주일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하는데 30분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거기에서 최수종 펜클럽에 따라갔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열 받은 이야기까지 다했습니다. 이제는 공과공부를 시작하려나? 했는데 ‘애들아 이제는 내 이야기를 할 게’ 그리고는 선생님이 자기가 일주일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한참을 돌다왔는데 겨우 수요일까지 밖에 못했습니다. 이제 이야기가 끝나고 나니까 거의 한 시간 20분 이상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공과공부 할 때쯤 되니까 저쪽에 있는 클래스는 벌써 공과공부를 끝내기 시작했습니다. 다 먹고 나서 이제는 공과공부를 하려나보다 했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애들아 정말 오늘은 은혜로운 분반공부였지 우리 모두 손잡고 같이 기도하자.’ 그랬더니 옆에 있는 아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공과공부 안 해요?’ 그러니까 옆에 있는 아이가 옆구리를 찌르면서 ‘가만히 있어 이 자식아! 빨리 끝내준다잖아!’ 저쪽에 있는 반에서는 아이들이 갑자기 공과공부를 시작할 시간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와!’ ‘왜 그러니?’ ‘전도사님 우리 오늘 공과 공부하러 다른 데로 가요.’ ‘어디로 가니?’ ‘우리 웬디스로 가서 햄버거 먹으면서 공과공부하기로 했어요.’ ‘가자.’ 순진한 저는 정말 거기서 공과공부를 하는 줄 알고 한번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웬디스에 들어서자 옆에 있는 사람과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났습니다. 결국은 애들을 데리고 거기로 가서는 치킨 하나씩 사주고 햄버거 하나씩 사주고 그것으로 때운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교회는 좋은 목사님 밑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으니까 안 그럴 것입니다. 세미나에 가서 400-500명 모였을 때 앞줄을 모두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첫째는 지난주에 공과공부 아이들에게 가르쳐준 성경이 어디였는지를 물어보면 10명중 2명 내지 3명만 남고 나머지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10명 가운데 5명은 지난주에 공과공부를 안 가르쳐준 사람들입니다.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이유도 다양합니다. ‘행사가 있어서요.’ ‘교회에 빠졌어요.’ 아니면 ‘교회에 늦게 갔습니다.’ ‘애들이 예습을 해오지 않아서 공부를 못했습니다.’ 아니면 ‘아이들과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세월은 흘러갑니다.
어느 교회에서 목사님이 자기네 교회 주일학교가 잘되어 가는지 너무 궁금해서 오래간만에 주일학교에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만났습니다. ‘얘야 너는 몇 학년이냐?’ ‘목사님 저는 초등학교 2학년이에요.’ ‘그래? 너 우리교회에 얼마나 다녔니?’ ‘6살 때부터 다녀서 4년 다녔습니다.’ ‘그래? 그러면 목사님이 뭐하나 물어볼까? 여리고를 누가 무너뜨렸니?’ 그랬더니 얘가 갑자기 울기 시작합니다. ‘목사님 내가 안 그랬습니다.’ 목사님은 하도 황당해서 얘를 가르친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선생님이 왔습니다. ‘선생님이세요?’ ‘네 목사님! 제가 얘 담임선생님입니다.’ ‘아니 내가 얘한테 여리고를 누가 무너뜨렸느냐고 물어보니까 얘가 자기가 안 그랬다고 우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목사님 얘가 안 그랬다고 그러면 정말 안 그런 것이에요. 얘는 정말 정직한 아이에요.’ 너무 황당했습니다. 부장 장로님을 불렀습니다. 장로님께 ‘여기 부장님이시죠?’ ‘네 목사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제가 너무 황당해서요. 여리고성을 누가 무너뜨렸느냐고 물어보니까 얘는 울고 선생님은 얘 말이 맞는다고 하는데 장로님은 어떠십니까?’ 장로님 대답이 더 재미있습니다. ‘목사님 이미 무너진 것을 가지고 자꾸 따지면 무엇 합니까? 교회에서 물어줍시다. 절반은 내가 내겠습니다.’ 누가 웃자고 만들어낸 이야기겠지만 그렇지만 거기에는 영어로 말하자면 조크가 아니라 가십이에요. 웃고 넘길 일이 아니라 그 안에는 무엇인가 우리 교회교육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무엇인가가 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교회학교의 교육이 구심을 잃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사를 하고, 아이들하고 찬양하고, 아이들하고 활동을 하고, 놀아주고 이러는 것이 구심점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 하면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까지는 엄마 따라서 교회에 잘 갑니다. 중학교 때부터는 버티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는 컨트롤이 됩니다. 왜? ‘너 교회에 안 나오면 용돈 없다.’ 그러면 아이들이 꼼짝 못합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안 통합니다. 엄마가 용돈을 가지고 그렇게 협박을 하면 아이들이 차라리 방학 때 알바를 가버리고 맙니다. 결국은 중학교 올라올 때 아이들이 떨어지고, 고등학교 올라갈 때 더 떨어지고, 고등학교까지 교회에 붙어있는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면 제철을 만났습니다.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안 나옵니다. 이런 심각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완벽하게 사라져가고 있는 메시지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중생과 회심입니다. 즉 우리가 믿는 개신교 신앙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영혼이 죽은 가운데 태어나고 그가 하나님 앞에 살기위해서는 죽은 영혼이 다시 하나님에 의해 다시 살려지는 중생이 필요하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한 사람이 자기의 죄의 심오함을 깨닫고 자기의 죄에 대해서 회개하고 자기를 죄에서 구원해주실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믿음을 갖는 것 그것이 신학적으로 회심입니다. 자기의 죄에 대해서 깊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구원이 없다고 고백하면서 신앙을 갖게 되는 것 그것이 구원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신앙의 출발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아이들이 이제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감으로써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여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일주일에 두세 시간 교회에 잠깐 나왔다가 가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이 세상의 문화에 의해서 오염되고 하나님이 없는 학교교육에 의해서 세뇌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초등학교까지 교회에 나오던 아이들이 드디어 진화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성경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뉴턴의 과학을 배우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연의 현상들은 결국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어디에서 하나님이 간섭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사상에 의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분을 믿으면서 사는 이런 것들이 모두 어리석은 종교의 속임수라는 가르침의 암시에 모두 설복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이 시대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물들어서 자기중심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하나님 없이 성장한 후 그리고 교회를 서서히 떠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출산율의 저하 때문에 교회마다 교회학교 숫자가 적습니다. 우리는 장년교인의 절반정도가 주일학교 학생인데 항상 내 마음속에 걱정입니다. 다른 교회에 이야기해보면 그보다 더 심각합니다. 중소도시로 내려가서 보면 주일학교가 없어지는 교회가 아주 많습니다. 주일학교 자체가 아주 없어져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두 가지 원인인데 아이를 낳지 않기 때문이고 아이들을 많이 낳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하나나 둘씩 낳은 애들이 모두 교회에 나오면 주일학교가 없어질 수 없는데 아이들이 엄마 따라서 교회에 나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부모가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교회학교가 소멸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어중간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하는 것을 따라서 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끌어보고 너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면 승부하기보다는 아이들도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살짝 하나님의 말씀을 넣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등등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인간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여러분이 전심을 다하여야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어린아이들의 진정한 회심을 위해서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임무만이 아니라 그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는 부모가 하여야할 일이고 나아가서는 온 교회가 그 아이들이 자기 집의 자식인 것처럼 그렇게 애통하며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를 듣고 있는 여러분 중에도 아이들이 주일학교도 안 나오려고 하고 중학생, 고등학생인데 절대로 엄마 말 아빠 말을 듣지 않고 교회에 안 나오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고 장성해서 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더 많을 것입니다. 청년으로서 사회활동을 하면서 이제 교회주일학교를 다니다가 발을 끊고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인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그런 여러분의 자녀를 향해서 회심하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 그 자녀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혹시 여러분은 어려운 말이지만 참척이라는 단어를 알고계십니까? 비참할 慘에다가 끔찍할 慽자입니다. 끔찍할 정도로 비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참척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부모와 자식이 있는데 부모가 아직 살아있는데 젊은 자식이 먼저 죽어버린 것을 참척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참척이 그렇게 끔찍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도 싫어하는 단어입니다만 이것을 영적으로 생각해보면 자기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어도 자식들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 바로 영적인 참척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가 먼저 죽었다면 여러분의 인생의 날에 기쁨이 있겠습니까? 저는 한겨레신문을 보면서 매일 매일 아침에 눈물이 나옵니다. 한겨레신문 오른쪽 면에 단원고학생들이 죽어간 학생들이 한명씩, 한명씩 소개됩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보내는 사연, 살아있는 동생이 죽은 오빠에게 보내는 사연, 아빠가 바다에 빠져 죽은 딸에게 보내는 사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침마다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납니다. 읽지 말자고 해도 자꾸 눈길이 갑니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나라가 이럴까? 우리는 도대체 왜 이 아이들이 그렇게 끔찍하게 죽어갈 때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을까? 제 마음에 그 기사에 나오는 아이들을 한 번도 본적도 없고 만난 적도 없고 우리교회에 다니는 아이들 중에는 아무도 단원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없었습니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던 아이들인데 사진도 아니고 그림으로 그린 그 캐리커처를 보면서 눈물이 납니다. 그러면 그 아이를 진짜 낳아서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까지 밥을 먹이고 기른 부모의 마음에는 어떤 눈물이 흐르겠습니까? 나는 어떤 때는 죽은 아이들보다도 살아서 눈물을 흘리는 부모를 보면서 눈물이 납니다. 그것이 바로 참척을 당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엄마, 아빠로 태어나고 자식으로 태어났는데 이것은 길어봐야 70년밖에 안됩니다. 엄마 아빠가 아무리 오래 살아봐야 90년입니다. 그러면 자식 70세가 되면 헤어집니다. 우리의 자연의 수명이 우리를 갈라놓습니다.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알아보고 있겠지만 천국에서 가족들이 모여서 집을 짓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 인연은 70년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했다면 영원히 한사람은 지옥에서 그리고 한사람은 천국에 있는데 그 자식들이 지옥에서 불붙고 있는데 어떻게 천국에 있는 부모의 마음이 천국일 수 있겠습니까?
17세기의 키더 민스터에서 목회하던 리처드 백스터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비록 알미니우스주의자였지만 그가 목회하던 키더 민스터에 가보면 지금도 그 사람에 대한 연면한 그리움이 400년이 넘도록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회심이라는 책속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누군가가 대신 울어주어야 할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키더 민스터의 자기 교인들을 향해 실제로 설교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중의 어떤 사람은 끝까지 예수를 믿지 않고 구원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천국으로 들려 올려 질 것이고 그때 예수님은 나에게 여러분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말할 것입니다. 나는 마음을 다하여 그들에게 힘껏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했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만 결국은 끝까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진실을 예수 그리스도께 고백할 때 내 눈에는 눈물이 시냇물처럼 흐를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여러분 부모님들에게 물어보겠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녀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 아이의 신음하는 영혼을 위해서 여러분이 예배드리는 그 자리가 눈물로 얼룩져본 적이 언제입니까? ‘하나님 내 생명을 취하시더라도 우리 사랑하는 딸, 내 아들을 예수 믿게 만들어주십시오.’ 라고 울부짖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나는 동일한 질문을 교사들에게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가르치는 아이들이 몇 명입니까? 그들 중에 몇 명이 정말 구원받은 자녀입니까?
여러 해 전 지방으로 설교하러 내려갔습니다. 담임목사님은 잠시 외부에 출타 중이었고 저는 거기서 청년들을 위해서 사경회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느 젊은 부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천 명이 모이는 교회였고 자신들의 교회가 이 도시에서 한참 뜨고 있는 촉망받는 교회라는 것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본래 별로 교회의 크기에 대해서 시샘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각광을 받는다니 이 교회는 어떤 점에 있어서 특별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본론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신학을 총신에서 하셨죠?’ ‘그렇습니다.’ ‘그러면 개혁신학을 알고계시겠네요?’ ‘네.’ ‘성인이 된 사람이 회심 없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목사님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장년교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맡고 있는 영혼들이 얼마나 됩니까?’ ‘오백 명쯤 됩니다.’ ‘그중에 목회자의 양심에 손을 얹고 오늘 죽으면 천국에 갈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라고 물었더니 그분이 말했습니다. ‘150명이 약간 안 될걸요.’ 제가 또 선생 기질이 발동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까? 목사님이 목자가 되어서 돌보고 있는 500여명의 영혼 중 350명이 사실상 교회는 출석하지만 예수님을 믿어본 적이 없는 사실상 불신자라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데 목사님은 어떤 점에서 당신네 교회가 매우 탁월하고 촉망받는 교회라고 내게 자랑하는 것입니까?’ 한숨이 나왔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구나. 오늘부터 예수를 믿어주겠어.’ 그렇게 시작합니까? 아닙니다. 예전에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줄 알았고 내 마음대로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국과 지옥도 몰랐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지도 몰랐고 왜 나를 사람으로 만드셨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들려주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죄 때문이고 그 죄가 가져온 비참이라는 결과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죄와 비참에서 우리를 건져내고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들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보이셨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의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셨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내 마음속에 일어났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이 움직이며 내가 누구인지를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서 나의 죄를 회개하게된 것입니다.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Was blind but now I see
그게 기독교 신앙의 시작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죄인인지, 하나님이 어떻게 거룩하신 분인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깊이 회개하는 것 없이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좋은 학습기자재로 일어납니까? 예쁜 선생님이 이런 것들을 만듭니까? 아이들에게 힘없이 건네주는 선물이 이런 변화를 가져옵니까? 화려한 예배당과 잘 꾸며진 공과공부 실이 이런 변화를 가져옵니까?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 고등학생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폭력적입니다. 술 먹고 욕설하고 엄마를 너무 때려서 병원에 실려 가고 그럽니다. 이 아이 속에 증오심이 솟아납니다. 아버지를 살해할 결심을 품었습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제거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독기를 품었습니다. 그게 하루아침에 쌓인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 아이가 복음을 듣고 회심을 했습니다. 그러자 고백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너무 불쌍합니다.
(찬양)
이 벌레 같은 나 위해 큰 해 받으셨나
내가 여러분에게 확신 할 수 있는 것 하나를 가르쳐주겠습니다. 이 모인 예배당이 교회의 구원받지 못한 자녀를 위해서 울부짖는 기도의 함성이 가득차면 이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저는 전도사 때부터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간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날짜까지 기억나는 것 하나만 해보겠습니다. 1991년 9월 5일이었습니다. 어느 교회의 청년부를 지도했고 60여명의 청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갈 때에 3 명 모이던 교회였는데 1년 반 만에 60여명의 청년이 되었습니다. 화장을 예쁘게 한 자매가 이 앞에 앉았습니다. 그때 제가 설교본문도 기억합니다. 주기도문의 첫 절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것을 설교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똑바로 나를 쳐다보는 예배태도가 너무 단정해서 신앙심이 아주 돈독한 자매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데 불교신자입니다. 친구 손에 이끌려서 억지로 나온 것입니다. 그래도 절에서 숙달이 되었는지 교회에 나왔는데 원래 교회 다니던 사람들보다 예배의 태도가 좋았습니다. 똑바로 앉아서 설교를 들었습니다. 설교를 했을 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두주에 걸쳐서 설교했습니다. 9월 5일이었습니다. 화장을 예쁘게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화장이 다 지워지도록 손도 올리지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오래도록 다닌 신앙이 돈독한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불교신자인데 그날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성령은 홀로 역사하시지 않고 가르치는 사람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개혁신학이 가지고 있는 확신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65일 내내 교회가 구원받지 못한 교회의 자녀들을 위해 눈물바다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그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일 년에 몇 번씩은 해야 하지 않습니까? 구원받지 못한 자녀를 위해서 금식해보셨습니까? 감당도 되지 않는 아파트를 사놓고는 금식기도를 하면서 자녀가 대학에 합격하게 해달라고 아침부터 쫄쫄 굶으면서 금식을 하면서 자녀의 구원을 위해서는 기도해보셨습니까? 선생님들이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 중에서 여러분은 정확하게 ‘이 아이는 구원을 받았을 것이다. 구원받지 못했을 것이다. 구원받았는데 영적인 침체에 빠진 아이다.’ 여러분은 정확한 판단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실제로 전도하러 나가보면 안 믿어져서 안 믿으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진실이든 나발이든 안 믿기로 결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안 믿기로 결심한 사람들은 누구냐 하면 옛날에 교회를 다니다가 미끄러지거나 혹은 교회에서 매우 안 좋은 일을 겪어서 교회에 안다니기로 뜻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회개할 기회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기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무엇이 필요 하느냐 하면 그런 사람들이나 아이들에게 회개시켜 믿음을 주는 것은 성령님이 하실 일이고 여러분 선생님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주려고 생각해야합니다. 왜 아침에 일어나서 샌드위치를 싸고 있습니까? 성경을 펼쳐놓고 한마디 말씀이라도 아이들에게 들려줄 마음을 가져야지 왜 공과공부를 하지 않았습니까? 예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만 아이들에게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게 뭐냐 하면 첫째로 기회가 있는 대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회교육을 올바로 시키고 이러는 이유는 그를 예배자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그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의 모습은 이 모든 백성들이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나라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쳐서 그 아이들을 예배자로 만들어야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누구든지 마음에 많이 움직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쉽지만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지어내어야합니다. 성경말씀에 늘 젖어서 성경말씀을 사랑하는 교사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성경을 읽고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이렇게 해서 성경사랑이 인격이 되어서 선생님에게서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처럼 달콤하게 느껴지도록 그렇게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교회학교를 마치 이벤트회사처럼 그렇게 운영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재미있게 해도 이 세상에서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재미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 중독이 아주 심각합니다. 엊그제도 청소년사역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는 별로 사용을 하지 않는 편인데 지금도 10년 전에 쓰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닙니다. 아이들이 핸드폰을 살 때에는 엄마에게 인터넷강의를 들어야한다고 사달라는 것입니다. 엄마 아빠는 무엇인지도 모르니까 사줍니다. 이 아이들이 이것을 가지고 게임부터 시작해서 온갖 쾌락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음란사이트에 들어가서 특히 안드로이드폰은 아주 거의 무방비상태로 열립니다. 심지어 한국에서 차단을 하면 외국에 있는 서버로 우회해서 들어가는 방법까지 다 아는 것입니다. 제집을 드나들 듯이 드나들면서 그런 음란한 문화에 물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여러분이 어떤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어떤 행사를 하면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 줄 수 있겠습니까? 나는 포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아이들에게 이 세상에서는 절대로 줄 수 없는 그것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 그것을 아이들에게 줄 수있어야합니다.
저는 21살에 회심을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교회를 다니다가 교회의 불미스러운 것을 보면서 결국은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회심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지독한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를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다녔지만 수많은 선생님들이 저를 거쳐 갔지만 단 한사람도 내게 가까이 다가와서 ‘네가 정말 구원받았니?’ 라고 물어주는 선생님은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나의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윈의 진화론을 보면서 결국은 하나님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지독한 말하자면 질풍과 노도의 시기를 지냈습니다.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때 문학소설은 물론이고 사상, 철학서를 넘나들면서 학교공부는 뒷전이었습니다.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아무 대답도 내게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데서도 평화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방탕하지는 않았습니다. 말을 잘 듣는 모범생이었습니다만 정신적으로는 한없이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처음 평안을 느낀 것은 기독교적인 소설을 읽으면서 평안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평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전도하는 사람 없이 내 발로 걸어서 교회를 찾아가서 등록을 하고 기독교 신앙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21살 때의 일입니다. 누군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고 그 말씀을 성령님이 사용하셔서 죄를 회개하고 뉘우치는 그 회심의 행위가 없이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스토리와 이야기들,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 놀이나 게임이나 이런 문화를 가지고는 절대로 회심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들려져야하고 이해되어져야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이 모든 교사로서의 사역의 중심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입니다. 그것이 중심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는 선생님은 선한 목자가 아닙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그 말씀의 젖을 어떻게 하든지 아이들에게 먹여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친근히 하고 성경을 잘 읽고,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배우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교리를 가르쳐야합니다. 교리는 여러분이 세례문답을 받을 때 배운 내용입니다. 어쩌면 교회에서 교리학교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교리는 66권이나 되는 이 방대한 성경을 어떤 관점 없이는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는 장로교개혁신앙에 입각해서 이 성경이 통시적으로 어떤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요약된 안내서로 기록해놓은 것이 교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뼈대입니다. 그래서 그런 뼈대에 대한 이해 없이 성경을 읽으면 많은 것을 읽어도 그 성경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리의 뼈대가 분명하게 서있으면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는 많은 진리들이 그 교리의 뼈대에 붙어서 살이 되고 피가 되어서 그래서 실질적으로 살아 역사하는 믿음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교리를 잘 가르치는 가장 훌륭한 비결은 아주 어린아이였을 때 교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엄마 이것 뭐야? 이것은 뭐야?’ 물으면서 아이들이 전설이나 혹은 우화 같은 데에 깊이 빠질 때 그때 의심하지 않을 때 아이의 마음속에 이 교리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학교에서 제일 중요한 교육이 영아부, 유아부, 유치부 사역입니다. 미취학아동들에 대한 사역입니다. 이때 아이들을 탄탄하게 교리로 기초를 다져놓으면 아이들이 의심 없이 이후에 배우는 기독교의 진리들을 받아들이는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위해서는 엄마 아빠가 교리를 잘 배우고 틈이 날 때마다 이 아이를 놓고 기독교의 교리를 가르쳐야하는 것입니다. 리처드 백스터가 쓴 교리문답가운데 마더즈캐터키즘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엄마의 교리문답이라는 책입니다. 60페이지정도 되는 책인데 아주 유명한 캐터키스무스입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엄마가 말하고 아기가 묻고, 엄마가 말하고 아기가 묻고 해서 성경 66권을 다 도는 것입니다. 그런데 맨 처음의 시작이 재미있습니다. 엄마가 먼저 말합니다. ‘애아 이리 오너라 교리문답을 배우자.’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그게 뭐에요?’ 엄마가 다시 말합니다. ‘이 교리문답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도리란다.’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그런 것을 왜 배워요?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 안 배우는데요.’ 엄마가 대답합니다. ‘애들아 그것은 신경 쓰지 마라. 그 사람들은 짐승이란다.’ 하나님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어도 하나님이 누구시고, 우리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배워서 그것대로 실천하려고 하지 않으면 사실상 인간이 아니고 짐승입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저 인간은 사람 같지 않으니 상대하지 말아.’ 그게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개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지는 그 자체가 악입니다. 무지는 그 자체가 악입니다. 모르는 것 그 자체가 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나쁜 것은 무지의 그늘에 가려진 채 지혜 없이 자녀들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아이를 낳아준 부모로서 매우 잘못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 앞에 살아갈 희망이 있는 것은 오직 두 번의 기회입니다. 좋은 부모 밑에 태어나서 그 부모님으로부터 경건한 가르침을 받든지 아니면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영혼을 사랑해주는 선생님으로부터 진리의 성경말씀을 배우고 기독교의 도리를 배우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교리를 친숙하게 이해하고 그것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를 터득해서 아이들에게 그 교리를 가르쳐주어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재미있어할지 모르지만 이야기 하나를 하겠습니다. 우리교회에 있는 동네에 유치원이 하나 있습니다. 유치원이 얼마나 잘 운영하는지 그 동네에 있는 유치원 다닐 아이들을 가진 자모들에게는 그 유치원 들어가는 것이 꿈입니다. 그런데 경쟁력이 너무 셉니다. 돈을 많이 받아서가 아니라 워낙 잘 가르친다고 소문이 나니까 원서가 수없이 들어와서 반은 입학을 하고 반은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선생님이 결국은 우리교회의 교인이 되었는데 그 선생님은 대놓고 기독교교육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밥 먹을 때 기도하고 예배드립니다. 그것이 싫으면 오지 말고 다른데 가라는 것입니다. 안와도 올 사람은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양해를 한번 딱 구하고 그 다음에는 그냥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방면에서 워낙 정직하고 잘 가르치니까 그래도 불교를 믿는 사람도 그 유치원을 보내지 못해서 안달이고 천주교 다니는 사람들도 보내는 것입니다. 6살짜리 애들이 6세반에서 그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뭐냐 하면 ‘천국에 가고 싶어요.’ 가 그날의 교육이었습니다. 일반유치원에서 천국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가르치고 나니까 선생님은 저 옆에 물러앉아있고 자기네들끼리 모여 앉았습니다. 아이들끼리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천국이 그렇게 좋은 데 인줄 몰랐어. 나 너무 가고 싶어.’ 한 아이가 말하니까 옆에 있는 아이가 말합니다. ‘나도 갈 거야 집에 가서 엄마한테 보내달라고 해야지.’ 얘는 불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아이가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아직 어려서 천국에 못간데’ 얘는 구원파 집안의 아이입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아이가 또 말했습니다. ‘그래 얘들아 우리 모두 천국가자 우리 내일부터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천국가자.’ 얘는 감리교에 다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알미니우스주의자입니다. 그중의 한 아이가 마지막으로 토론을 정리해주었습니다. ‘애들아 너희들은 천국에 대해서 모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너 천국은 네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엄마 아빠가 돈 주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야. 그리고 너는 어려서 못 간다고 하는데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내 나이 비록 어려도 갈 수 있어. 그리고 너 천국은 우리의 행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가는 거야.’ 얘는 개혁파 교인입니다. 우리교회 유치부 아이였습니다. 얘는 신학용어는 몰라도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교리를 가르치면 전도가 잘되고 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생깁니다. 유치부 아이가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입학한 첫날 옆에 앉아있는 아이한테 전도를 했습니다. ‘야, 열린 교회 가자.’ 얘가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얘는 평생 8년 동안 교회를 안 가본 아이입니다. ‘내가 왜 너를 따라 교회를 가야 되냐?’ 얘가 대답했습니다. ‘너와 나는 이 세상을 창조하고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야 해 그러니까 너는 교회를 가야해.’ 엄마가 그 이야기를 이 아이에게 듣고 너무 황당해서 ‘너는 천지창조의 목적이 알아?’ 천지청조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 제8권에 나오는 논문이름입니다. 물론 부모님들은 알고 있습니다. 8번이나 설교를 들었으니까 말입니다. 물어보았습니다. 완벽하게 천지창조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말하면 ‘저것은 뻥 아니야?’ 그러면서 자꾸 믿지를 못합니다. 아이들은 가르쳐주는 대로 다 빨아들이면서 믿는 것입니다. 언제? 미취학아동일 때입니다. 미취학에서 올라갈수록 회심할 확률이 점점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기울여서 그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하는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서너 개를 더해야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하나만 하고 끝내려고 합니다.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은 말은 하지 않지만 선생님들이 시련 속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고난 속에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선생님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배웁니다. 교회를 안 나오고 뺀질대는 아이들은 밤늦게 심방해보셨습니까? 저는 열심히 심방했습니다. 학교교수를 하면서도 밤늦게 11까지 심방을 합니다. 집에 가면 안 나옵니다. ‘누구세요?’ 목소리가 들렸는데 ‘교회에서 왔는데요.’ 그다음부터 소리가 안 납니다. 그러면 이제 선생님이 담을 넘어갑니다. 문을 열면 문고리를 꽉 잡고 있습니다. 확 열면 거기서 쭈그리고 교회도 나오지 않고 앉아있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오셨다.’ 골목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잘 권면하고 마지막에 아이를 붙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해주면 그때에 그 아이의 마음속에 선생님과 전도사님이 저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사실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은 가르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여부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진실한 실천이 뒤따라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적으로 마음을 깊이 기울여서 한번 일체 조사를 해보십시오. 각 아이들이 정말 구원을 받은 영혼인지,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세례를 받았는지, 입교를 했는지, 이 아이들이 정말 구원을 받은 영혼인지 다 조사해서 한번 터놓고 결과를 가지고 그리고 여러분이 온 마음을 다해서 부서와 상관없이 일치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책임을 묻고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하도록 요구하고 그렇게 하면서 한 아이 한 아이가 거듭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로 변화할 때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예수를 잘 믿어라. 예수 잘 믿어라.’ 그 말에 이 아이들은 영향을 잘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함께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을 했는데 두 친구가 예수를 믿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은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가보다.’ 아이들이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깊이 헌신해서 정말 오늘날 시대에 구원의 복음을 가르치지 않는 이런 시대에 많은 아이들이 여러분의 교회에서 다시 태어나서 주님을 믿는 복된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