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교사 훈련학교 개강예배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1~13)
녹취자: 허혜숙
아이를 길러 본 사람들은 한 사람이 사람이 될 때까지 부모의 많은 노고가 뒤따르는지를 압니다. 아이를 잉태해서 9개월 반 동안 뱃속에 가지고 있는 일도 정말 힘든 일일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엄마의 살과 피를 빨아 먹으면서 그 양분으로 그 아이가 또 한 사람에 대해서 살과 뼈와 피를 이루며 한 생명체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푸줏간에 가면 고기는 암소고기를 좋아하지만 사골로는 수소가 최고입니다. 왜냐하면 암소는 송아지를 낳는다고 하도 진을 빼서 고기는 맛있을지 모르지만 뼈는 먹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를 잉태해서 자라게 하는 것도 힘들고 결국 아이가 태어납니다. 태어나고 나면 아무것도 분간할 줄 모르는 핏덩이에게 젖을 먹이고 그 아이가 아무 말도 못하고 우는 소리 하나를 듣고 무엇을 먹이고 입히고 벗기고 씻기고 하는 그런 모든 과정이 지금과 같이 의사나 산후조리원의 도움이 없이 집에서 그 일을 스스로 한다고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의 할머니가 살아생전에 당신은 아이를 낳으면 3일 후에 부엌에 나가서 수십 명의 밥을 해야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걸어 다닐 만하면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여자의 일생은 평생 그 아이들을 돌보고 그 아이들을 치다꺼리하는 것에 자기의 일생을 모두 소진합니다. 이제 와서 그 나이가 되면 아까운 인생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를 믿고 영적으로 태어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죄인이었다가 구원을 얻었고 자기를 사랑하다가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성경에 어린아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 몇 가지를 썼는데 믿음이 어린 것, 그 다음에 지식이 어린 것, 그래서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미약한 것, 그 다음에 삶에 있어서 연약한 것, 이렇게 크게 네 가지를 꼽습니다. 그것이 신자입니다. 구원 받았는데도 여전히 어리다, 아이를 낳았지만 낳은 아이를 휙 던져놓으면 절대로 그 아이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아마 목숨도 부지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모님의 그런 돌봄을 받으면서 성장해 왔고 누군가가 희생해 가면서 우리를 돌보아 왔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와 똑같이 신앙적으로도 어떤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 때에 사도바울의 표현에 의하면 자신을 허비하는 수고가 필요한 것입니다. ‘허비하다’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작은 가치밖에 없는 것 같은데 너무 많은 비용을 쓰는 것, 그것이 ‘허비’입니다. 물 한잔을 마시는데 25년 마실 수 있는 것을 2천만 원을 주고 사 마셨다고 하면 그것은 허비입니다. 마찬가지로 영혼이 하늘을 향해서 많이 수고할 때 허비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이 허비처럼 생각하지만 사랑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 한 영혼이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나 소중한가? 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위해서 희생을 할 때 그 때 진짜 영혼 섬김의 진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들이 모두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받은 사람들의 믿음이 쑥쑥 자라고 믿음이 자란 사람들이 지식이 쑥쑥 자라고 그런 사람들이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 시절에는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돌보고 닦아주고 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이제 처음 신앙생활을 해서 신앙이 자라려고 하는 사람들을 잘 돌보고 가꾸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돌보고 내일 성과를 얻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에 종사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큰 그물을 바다에 치고 한꺼번에 몇 톤씩 고기를 잡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중국에 가면 북쪽에 추운 겨울이 되면 물고기를 잡습니다. 수천 년 동안 내려오는 방법입니다. 얼음 위에 구명을 뚫고 뚫은 구멍 사이로 막대기를 집어넣어서 그 속으로 그물을 내려 보냅니다. 그래서 그 작업을 할 때 약 400명이 함께 작업을 합니다. 큰 호수 둘레를 새벽부터 하루 종일 그물을 칩니다. 그러면 반대편에서 그 그물을 모아서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한 다음에 끌어 모아서 그물이 너무 무거우니까 소를 여러 마리를 엮어서 얼음판 위에서 발에 미끄러지지 않은 신발을 신겨서 잡아당기게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얼음을 깨고 고기가 올라오는데 한 번 잡을 때에 4천 킬로룰 건져 올린다고 하니까 영하 30도에 고기들이 올라오자마자 냉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비록 제가 실제로 본 것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로 보면서 눈이 둥그레졌습니다.
그런데 이 양육학교는 그렇게 그물을 쳐서 수십 명씩 낚아내는 곳이 아닙니다. 옆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주님의 마음으로 돌보고 눈물을 흘리고 하면서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모든 영혼들이 그렇게 해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퇴원을 하고 몸이 좀 안 좋은데 어쩔 수 없어서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다음 주쯤 뉴스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CRTS를 갔다 왔는데 학교를 이사를 했습니다. 전에 있던 학교가 늘 위험이 있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뜻밖에 기가 막힌 장소를 주셨습니다. 60층짜리 고층 빌딩에 12층에 공간을 마련해서 갔고 학교를 졸업한 은혜를 많이 받은 자매가 건물의 일부를 구입해서 절반 이하의 가격으로 우리에게 6년 동안 빌려주기로 하고 자기가 기도하기를 6년 후에는 학교에서 세를 안 받을 수 있도록 자기가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고 하면서 훌륭한 학교를 이루었습니다. 8년 동안은 모두 고아들이었습니다. 처음에 14명 뽑은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이게 되었고 소식을 들으니까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교회를 개척한 학생들이 200~300명씩 모이는 교회들이 많아져서 그 교회에서 이번에도 이사를 갈 때 중국 돈으로 5만, 6만 위안을 헌금을 해서 학교를 돕고 심지어는 그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해서 이국에다가 고아원을 세우고 영혼들을 돌보는 그런 것을 보면서 이 나라에 와서 많이 배워서 그런 개념들이 생겨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8년 정도의 세월이 지나서 이제 열매가 나타나는데 앞으로 8년이 지나면 열린 교회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교회들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어야지만, 눈물로 씨를 뿌려도 못 거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둬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오늘 성경 말씀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교회의 영광은 성도를 세우는 것입니다. ‘세운다’라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세운다는 것은 양육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영양이 부족하고 판단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육체적으로 영양을, 정신적으로 지식을. 신앙을, 은혜를 불어넣어서 그 아이가 어른처럼 행동할 수 있게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양육사역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기에서 학교를 수료하고 여기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 한 영혼이라도 꼭 붙들고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고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고 하면서 그 아이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세워갈 때 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그런 사역을 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을 고백했듯이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칭찬 받을 수 있는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땅에서 많은 재물을 가졌다 하나님 앞에 면류관 받을 일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조금 더 편안하겠지요. 좋은 것 먹고, 좋은 옷 입고, 좋은 환경에서 사니까 어쩌면 그 돈 때문에 조금 더 살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늘에서 면류관은 될 수 없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칩시다. 그것이 무슨 면류관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이 ‘죽음 앞에 설 때 내 면류관이 너희가 아니냐?’라고 반문 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 주는 나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해서 한 영혼 한 영혼을 눈물로 섬겼고 제대로 섬기지 못한 영혼들도 있었지만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이 영혼들이 세워져서 이렇게 주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보십시오. 오늘날 방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아마 여러분 주위에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은 사람이나 눈을 돌려보면 너무 불행하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가장 비참하냐? 그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생명력이 없습니다.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시련과 역경에 넘어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니까 그렇게 산다고 치지만 예수를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인생의 어려운 시기 누군가의 따뜻한 돌봄이 있었다면, 그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에 누군가가 조금만 가르쳐 주었더라면, 누군가가 그를 위해 기도해 주고 자기 일처럼 생각하면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 사람들이 너무 사랑스러운 양떼이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여러분이 이렇게 양육 훈련을 받고 잘 감당해서 우리 주님께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