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 교회가 힘쓴 일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29-31)
녹취자: 조은경
성전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던 앉은뱅이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그 때 병자가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이제 커다란 말하자면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도대체 너희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였느냐?’ 하고 사도들을 종교지도자들이 책망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인 핍박의 위협이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이제 교회에 돌아와서 모든 제자들이 있는 가운데 이 모든 일들을 증거 하였습니다. 그때에 모여 있던 하나님의 종들이 구약의 말씀들을 생각하면서 결국 이 핍박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결국 하나님의 종 예수를 거슬러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이제 이들이 이렇게 악하게 해서 결국은 우리를 핍박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우리를 굽어보시고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서 표적과 기사가 계속 일어나기를 하나님 앞에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언제나 핍박과 고난이 있다는 것. 최소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들을 충실히 뒤잇고 그 일을 위해 헌신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고난이 있다. 핍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 믿음의 길에 정진하려고 할 때에 당하는 어려움이나 시련이나 환란 같은 것들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올바로 믿고자하는 사람들에게는 핍박이 있고 뜻을 세우고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고난이 있습니다.
(예화) 그래서 진짜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꿈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습니다. 그것도 아직 모더니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왜? 꿈을 가지고 있으면 그 꿈을 가지고 그것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뭔가를 희생하고 고통을 받아야 되는 건데 그런데 솔직히 그 꿈을 10명이 가지면 이루는 사람이 10명 모두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 생각은 아니고 그 사람들 생각에는 이제 이루어진 사람들에게는 고생한 보람이 있지만 열심히 노력을 했는데 안됐다 그런 사람들이 보기에는 헛고생 한 것이고 인생을 시간을 낭비한 겁니다. 왜? 이루지도 못할 일들을 위해 안 먹고 안 자고 공부하고 살을 빼고 별 짓을 다했으니까 그런 겁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산거지 내 인생을 산 게 아니다.
우리는 신앙은 이런 세상의 사조와는 달라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바라고 하나님 안에서 은혜를 받고 우리가 뜻을 세우고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를 잘 하려고 하면은 반드시 거기에는 우리의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하고 그러면 온전하게 하길 원하는 갈망이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거기는 언제나 고난이 있다. 그것이 진리와 관련될 때에는 그 진리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모순입니다.
오죽했으면 마틴 루터 같은 사람은 종교개혁 당시에 참 하나님의 종과 거짓 하나님의 종이 누구냐 할 때 아주 간단하게 얘기했습니다. 고난이 있으면 참 종 고난이 없으면 가짜 종. 간단하게.. 왜? 그 당시에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가 복음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예수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참된 복음을 말하면 반드시 사람들은 싫어하고 거기에서 수많은 박해를 받게 됐다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너무나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끊임없는 핍박과 고난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때에는 이런 모습으로 어떤 때는 저런 모습으로 고난을 받는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런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여러 해 동안 혹은 10년, 20년씩 교회가 뒤흔들릴 것 같은 커다란 시련과 괴로운 일이 안 일어납니다. 그것은 왜 그럴까요?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그냥 특별한 생각 없이 인생을 살고 하나님 앞에 특별히 매달리는 것 없이 내 상식대로, 심지어는 내 욕망에 붙잡혀서 인생을 살면 깨달음이 오는데 온몸으로 깨닫는 겁니다. 이것은 좋은 얘기가 아닙니다. 온몸으로 주를 섬긴다. 온몸으로 사랑한다는 건 좋지만 온몸으로 깨닫는 건 뭐냐면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겁니다. 온몸으로 깨닫는 것은 뭐냐면 깨닫는 것은 손이나 발이나 온 몸으로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 것은 항상 이 머리로 깨달아서 깨달은 것들을 가지고 손발을 지도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건데 온몸으로 깨닫는다는 얘기는 머리는 모자란다는 겁니다. 부딪혀보고 찢어지고 나서야 겨우 깨닫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은혜 안에 있다고 쳐보십시오.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매일 하나님 앞에 자신을 살피며 말씀 앞에 깨지고 기도시간에 깨집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매일 깨지면서 하나님 내가 더 온전하게 살고 싶습니다. 더 바르게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진실하게 섬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지 주님을 더 잘 섬길 수 있을까요.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온몸으로 깨닫게 하셔야 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무슨 얘기냐 하면 평안하게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복속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은 온몸으로 깨닫지 않아도 말씀 속에서 깨닫고 자기를 하나님이 후려치지 않아도 자신을 꺾을 줄 알고 낮출 줄 알고 하는 그런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다루실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는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욥과 같이 흠이 없고 순전한 사람이 고난을 당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언제나 시련과 박해가 있다고 생각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은 누구냐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가슴을 찢으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아파하는 사람들, 그런 성도들 때문에 그런 목회자들, 그런 장로들이나 권사들 때문에 교회가 올바르게, 올바르게, 올바르게 가는 겁니다. 그 나머지 많은 사람들은 그 덕을 보며 사는 겁니다. 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위정자들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면 백성들이 그렇게 고생 안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에는 언제나 핍박과 주님을 위한 고난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그때에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렇게 큰 핍박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정식으로 사도들을 통해서 직접 듣게 되었을 때에 교회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이제 종교지도자들과 협상할 팀들을 꾸몄습니까? 로마 조정에 로비를 해서 그래서 새로 생기는 기독교에 좀 관대해질 수 있도록 입법 로비를 하기 위해서 정치에 줄 닿는 사람들의 연줄을 모으기 시작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그들이 박해를 하면 우리도 공격하기 위해서 특공대를 조직하고 무장하기 시작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이 싸움이기 때문에 그렇게 싸워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뭘 했습니까? 간절히 온 교회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이 어려움들을 극복해가는 방법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모든 주의 자녀들이 가난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처음에는 유대교 그늘아래 이렇게 있으면서 사람들로부터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자식들은 우리 자식들이 아니구나 하고 확 노출을 시키면서 핍박을 시작하고 그러니 얼마나 무서운 순간이었겠습니까? 이 현실을 보면서 이제 이 그리스도인들은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므로 핍박이 오던지 교회에 어려움이 오게 되면 간절히 기도해야합니다. 그 기도가 우리의 상황을 바꾸고 교회의 일어나는 핍박과 시련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기회로 변화시키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세 번째 이들이 빈 것은 계속 하나님을 섬기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뭐라고 말합니까?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은 그 큰 핍박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 함부로 복음을 전하지 말자 그리고 당분간 우리는 침묵하자 형편이 나아지면 복음을 전하기로 하자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핍박이 강해지니까 이들은 하나님 앞에 담대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 앞에 빌었습니다. 담대해 지도록, 핍박을 누그려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저들이 우리를 핍박하는 힘보다 강한 담대함을 달라고 빌었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옵소서. 지금 전했기 때문에 핍박이 시작이 되었는데 전했기 때문에 지금 다시는 그런 것 전하지 말라고 전한다면 가만두지 않겠노라는 위협을 받았는데도 그들은 굽히지 않았습니다. 담대히 복음을 전하자라고 하는 소위 불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어려움이 있지만 저의 기본적 생각은 그렇습니다. 할일은 다 하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해 간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 중에 어떤 일들도 이 일로 인해서 지장을 받거나 하나님의 일에 손해가 나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되지 않도록 공사한다. 물론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겠지만 이게 시련이 오고 고난이 올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빌어야할 간절한 기도의 제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도들을 본받아서 우리가 하던 그 모든 복음을 전파하는 일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변함없이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비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그랬더니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이들을 크게 축복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31절에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했습니다. 처음에 모였을 때 사도들로부터 큰 핍박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들의 마음은 두려웠고 떨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합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과정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은 다시 뜨거워졌고 복음의 가치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면서 기도가 끝났을 때 모인 곳이 진동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거기 모였던 무리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미 성령 충만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성령으로 충만하게 해주셨고 그리고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그런 치열한 말씀 전파의 종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핍박이 오고 큰 시련이 왔을 때 그들이 모여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나면 불같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라는 그런 기대로 모인 것이 아니라 두려워서 기도하기 시작했고 무서워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 큰 능력으로 여기에 모인 백성들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주셨는데 다시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시고 죽음의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신앙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핍박과 시련이 없었더라면 결코 없었을 성령의 충만함과 담대함을 그들에게 다시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런 은혜를 깊이 받고 그래서 결국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목이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주님 앞에 매달리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