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이 된다는 의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아무리 현대에는 예전과 같은 순교의 위협 같은 것이 별로 없는 선교지로 선교를 나간다고 하더라도 고난은 고난입니다. 일단 문화가 같고 언어가 같은 일생을 태어나서 자란 내 나라 내 동포를 떠난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죽을 위험은 없다하더라도 어떻게 보면 사는 정신으로 죽는 것보다는 죽는 정신으로 사는 것이 훨씬 힘든 것이라는 점에서 볼 때에도 역시 선교를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나는 오늘 이제 이 형제, 자매가 선교에 소명을 가지고 나아갈 때에 오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겼으면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고 또 예수의 소문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올 때였습니다. 그런 인기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당신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뜻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셨어요.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거니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씨를 어떻게 뿌리고 그것들이 자라서 소출을 거두게 되는지 알고계실 것입니다. 모든 낟알을 가진 곡식들은 거기에 반드시 씨눈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이 밀알도 똑같이 밀알 한 부분에 씨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 알의 밀알이 모두 죽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밀의 눈을 살리기 위해서 나머지 모든 밀이 통째로 죽는 것입니다. 습기와 온도가 제대로 맞을 그때에 그 밀알은 통째로 썩기 시작하고 썩는 과정에서 나오는 그 모든 양분들이 씨눈에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게 하고 싹이 나오게 만들어서 스스로 뿌리로 양분을 취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양분을 제공해서 그 씨눈 하나를 틔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씨알 하나 전체가 동일한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전체가 함께 죽는 것이죠.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한 알의 밀알이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이 죽는 것은 밀알 전부가 죽는 것이 아니고 밀알의 눈을 틔우기 위해서 밀알의 나머지 부분이 죽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이치가 죽는 것과 함께 생명이 공존한다는 것이에요.
우주의 수많은 별들은 사실은 근처에서 폭발을 일으키고 죽은 별들이 일으키는 에너지 때문에 또 다른 별들이 만들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는 것은 사라지는 별들의 기운 때문에 태어나는 것이고 폭발과 함께 사라지는 그 별들의 강력한 힘이 결코 죽는 별이 없다면 별이 태어날 수 없었을 그곳에서 그 별들의 먼지들을 한군데 집약하여 폭발을 일으키면서 별들이 생겨나는 것이죠. 그래서 별은 폭발을 일으키면서 사라지고 폭발을 일으키면서 생겨나게 됩니다. 오늘은 이별이 사라져 저별을 뜨게 하고 내일은 저별이 사라져 그 별을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우리의 몸은 6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져있어요. 그리고 그 세포들은 끊임없이 죽음으로 또 다른 세포들을 만들어내요. 세포가 죽는 것은 타살이 있는데 상처를 입거나 도려내지면 그 세포는 죽는 것이죠. 그러나 자살하는 세포도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무슨 이유때문인지 어느 순간에 옆에 있는 한 세포가 죽고 죽으면서 발생하는 화학에너지는 옆에 있는 세포의 전원이 되어서 세포를 분열하게하고 양분을 실어 나르게 만들어서 세포의 수를 늘리는 것이니 한 세포의 죽음은 또 다른 세포의 탄생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은 마치 60조개의 작은 전구들이 깜박이면서 존재하게 되는데 어느 한순간에 더 이상 죽는 세포가 없을 때 그것은 곧 모든 세포가 죽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사망한 사람의 몸에는 세포의 죽음이라는 것이 없는 것이에요. 간혹 의학적으로 우리의 몸에 이상한 세포들이 덩어리로 모여서 서로 절대로 안 죽겠다고 악을 쓰고 몸의 수많은 양분을 빨아들여서 그 세포를 각기 아무도 안 죽으면서 서로 키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암 덩어리라고 합니다. 아무도 죽기를 거절하고 함께 모인 세포들은 점점 같은 세포들을 많이 생산해서 어느 놈도 죽으려고 하지 않을 때 결국은 자기들을 살게 만든 임자의 몸에 생명 그 자체를 앗아가 버려 인간을 죽음으로 데려가게 되는 것이에요.
선교의 원리는 너무나 간단해요. 도성인신의 원리에요. 하나님이 당신을 잘 믿고 똑바로 살라고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싶으셨으면 창조 때에 만물을 명하신 것처럼 그렇게 인간에게 목소리로 발하실 수 있었을 텐데 창조는 하나님의 음성 하나로 이루어졌지만 구속은 하나님의 목소리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이신 그분이 천한 세상의 사람의 몸을 입고 친히 내려오셔서 멸시와 욕을 다 당하시면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사랑과 그들을 다시 창조의 목적으로 돌려놓으시려고 하는 지혜를 모두 발하시는 가운데 그 방법을 통해서만 우리 인간을 구원하셨던 것이에요. 만약에 우리들이 해야 하는 그 일이 단지 복음의 사실을 알리는 것에 그친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나라에 삐라를 날릴 수도 있고 거액의 돈을 주고 방송을 사서 나팔을 불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하나님이 이 땅에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보조적인 방법이고 진실한 방법은 누군가 그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이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그 영혼들을 사랑하는 뜨거운 사랑을 품고 평안한 삶을 버리고 낮고 천하게 그들 가운데로 내려가서 그래서 그들과 하나 된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그것이 바로 다름이 아닌 선교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1호 선교사는 우리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지 않으실 때에는 장소에 매이는 분이 아니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었기 때문에 장소에 매이셨고 그리고 이 세상을 살면서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피곤함, 그리운 사람과 작별하는 아픔과 그 모든 고통에 스스로 자기를 복종시키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선교사가 되는 가장 중요한 원리는 선교 자체에 대한 위대한 vision을 가지고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것은 사업가들이나 그렇게 하는 것이에요. 선교사를 선교사 되게 하는 것은 십자가 사랑의 감화에요.
(찬양)그 형상 볼 때 내 맘에 큰 찔림 받아서 그 사랑 감당 못하여 눈물만 흘리네.
그것이에요. 비전을 가지고 선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나는 선교사들에게 ‘비전이 뭡니까?’ 라고 물어보기보다는 선교 나가려는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어떻게 주님의 사랑에 사무치셨습니까?’ 그것을 묻습니다. 그것이 있으면 주님이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자기의 꿈을 따라 살던 사람들은 좌절할 때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지만 예수의 사랑에 사무쳐 살던 사람들은 난관이 오고 어려워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나 죽으나 우리를 주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비전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이기 때문이에요.
김 병순 형제가 한 십년동안 열린 교회에서 목양을 받고 살았는데 걱정되는 것이 많이 있지만 우리 자매와 함께 한 가지 마음이 놓이는 것은 이것이에요. 이 두 사람은 그리스도 십자가의 사랑에 깊이 사무친 마음을 가진 영혼들이라는 것이에요. 그것을 믿고 우리는 파송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여러분들은 항상 이 중심축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해요. 방황하다가 열린 교회에 와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에 눈물을 흘리던 그 사랑, 그것이 언제나 그대들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제 바쁜 선교 사역에 자기를 소진해보면 이 단순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하늘 높이 나르는 연은 크고 높이 오를수록 연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그 연을 붙잡을 때에 그 높은 고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헌신적인 사역이 펼쳐질수록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앞에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그리고 그 큰 사랑 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고백이 있어야하는 것이죠. 그래야합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하는 것이에요.
오늘 성경엔 보면 예수님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지만 죽지 않으면 그대로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뒤집어서 ‘죽지 않으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땅에 씨를 뿌려서 밀이 썩지 않고 죽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의도적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에요. 즉 자연에서 취한 비유 자체를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 아니라 그 비유를 통해 지시하고 싶었던 우리 인간들이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말해주고 싶으셨다는 것이에요. 그게 뭐죠? 자신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위해서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거부하고 안 썩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은혜의 도움 없이도 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가 사로잡아야지만 그래야지만 주님의 사역을 위해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오래전에 개척교회를 했던 어느 동료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경험도 많이 쌓으시고 훌륭하게 사역을 하시던 분이었습니다. 2년 동안 개척교회를 하고나서 많은 고생을 하셨어요. 그래서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분이 하는 이야기가 저의 심금을 울렸어요. 김 목사님, 내가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는 교회가 안 되는 것이 무슨 이유가 있어서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부목사 때 생각하기를 ‘아이고 저 목사는 설교를 저렇게 하니 교회가 될 리가 있나, 아이고 저 목사는 행정이 저러니 교회가 될 리가 있나, 아이고 저 목사는 인격이 저리니 교회가 될 리가 있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교회는 원래 안 되는 겁디다. 그리고 되는 교회만 이유가 있습디다.
우리에게 이변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냥 가만 내버려두면 우리를 안 죽습니다. 죽는 게 얼마나 괴로운데 죽겠어요. 살아있는 생명 자체가 죽지 않으려는 몸부림인데 왜 죽겠어요? 그러니 안 죽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고 죽는 것이 아주 예외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지 아니하면’을 먼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아니면, 그 십자가의 사랑에 치열하게 끌리는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제물처럼 그렇게 각을 떠서 주님을 위해 바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두 사람은 죽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안 죽어도 다른 선교사는 안 죽어도 그대들은 꼭 죽어야 해요. 왜냐하면 그대들이 받은 은혜가 다른 사람들이 받은 은혜보다 너무나 크기 때문이에요. 주님이 이제까지 인도하신 그 큰 사랑과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잘 죽어야 해요. 충분히 죽어야 해요. 그래서 삶의 보람을 자신이 사는데 두지 않고 자신이 한 알의 밀알처럼 썩어서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선교사의 삶이에요. 그래서 선교사는 목회자도 마찬가지지만 주님이 가장 소중하고 양떼들이 두 번째로 소중하고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에요. I am nothing.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썩는 한 알의 밀알이고 그 밀알은 사라져도 씨눈이 싹이 틔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그게 바로 나입니다. 그런 고백이 있어야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죽는 것이 한 알의 밀이고 그것이 우리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사는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이중의 지평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에요. 먼저 첫 번째 지평으로 우리의 인격과 관련해서 본다면 나의 옛 성품이 썩어져야할 하나의 밀알 전체이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형상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뻗어 우리 전체가 되어야할 한 알의 씨눈이에요. 처음 선교를 갈 때에는 겸손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눈물이 있고 십자가를 질줄 알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줄 알던 사람이 후일에 교만하고 폭압적이고 독선적이고 낭비가 심하고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에요. 그분들도 한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펑펑 울고 선교의 소명 앞에서 순교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그 이후의 삶을 철저하게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지 못하면 처음 소명과는 상관없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 인격적인 지평에서는 그대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은 살아나고 그대들의 옛 성품은 충분히 죽어서 그래서 선교 파송할 때보다 선교할 때, 선교할 때보다 선교사로 은퇴할 때 여러분들이 더 많이 예수를 닮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두 번째 사역의 지평에서는 그대들의 뜻, 그대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 하나님 없이 그대들이 이루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이 밀알이고 주님이 주신 소명이 밀알의 눈이에요.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를 버리고 포기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만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렇게 여러분들이 섬긴다면 비록 지금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작은 밀알처럼 그 넓은 선교지에 어디에 갖다 놓아도 표가 나지 않는 하찮은 사람들로 그 선교지에 가지만 여러분을 기뻐하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꿈꾸지 못한 위대하고 큰일을 이루어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꼭 그런 삶을 살고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 두 선교사가 그렇게 충분히 주님 앞에 죽을 수 있도록 존귀, 영광 모든 권세는 주님 홀로 돌려드리고 멸시천대 십자가를 지고 이 한 알의 밀알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랑하는 형제, 자매가 이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큰 사랑가운데서 이 귀한 소명을 받아 주님 앞에 선교의 길을 떠나나이다. 주님이 강한 손으로 붙드시고 이 파송의 말씀을 저희들의 심령에 칼로 아로새겨주시고 주의 성령의 불로 지지셔서 마치 사도바울 마음 안에 있던 예수의 흔적과 같이 남아 어떠한 경우에라도 이 말씀에 붙들리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