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집에 심긴 자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시92:13-15)
녹취자 : 허 혜숙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시도 다윗의 시일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 시는 안식일에 성전에서 올리는 찬송 시였습니다. 안식일에 성전에서 올리는 찬송 시였다는 사실을 깊이 염두에 두면서 이 시를 읽으면 그렇지 않게 시를 읽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 나게 됩니다.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라고 말합니다. ‘그는 흥왕 하리로다’ 라고 말하지요? ‘심겼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전체가 나무를 염두에 두면서 지은 시입니다. ‘심겼다’는 것은 나무 같은 것들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뻗어나가는 생명적 성장으로 말미암는 견고함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시잖아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목회 못지않게 중요한 교회에서의 목회를 잘 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그런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이 교회에 심긴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며칠 전에 발명해 낸 말이 있는데 ‘걸친 사역’과 ‘심긴 사역’입니다. 걸친 사역은 그야말로 걸친 사역입니다. 그냥 거기에 붙어 있고 매달려 있다는 것이지 그 자체가 심긴 사역은 아닙니다. 걸친 사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흠건 하는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목회지에 가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떠날 궁리를 하고 좀 더 좋은 자리를 찾아보고 기웃거리면서 적게 고난 받고 더 많이 대접을 받는 길은 모색하려고 하는 목회는 걸친 목회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뜻이 계셔서 우리가 이 일을 하다가 저 일을 할 수도 있고 저 일을 하다가 이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셔서 있는 동안에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대치할 수 없는 기업이다 생각을 하고 거기에 심겨진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어제 부목사님들과 함께 노회에 갔다 와서 밤 10시 20분까지 에드워즈 park에 앉아서 같이 저녁도 먹고 뜻밖의 대화의 시간을 나눴는데 거기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옛날에 제가 내수동 교회에 있을 때 박기천 목사님이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기가 일평생 교회를 섬겼지만 하나 지워지지 않는 확신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결코 빈손으로 돌려보내시지 않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 부러운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에 매이지 않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교회가 크고 사람이 많으니까, 목사들이 많으니까 전도사가 수요예배에 나오든 말든, 금요예배에 나오든 말든 주일날 일찍 들어가든 말든 교회에서 신경을 안 쓰더랍니다. 그러니까 그 때 수요일이면 그 유명한 이동원 목사님 설교 들으러 간다고, 가서 설교에 대해서 많이 배운다고, 어느 교회에서 뭘 하는데 금요일날은 교회 안가고 거기 가서 배운다고, 처음에는 참 부러웠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회에도 내가 안 나가면 불을 못 켤 정도였으니까 그런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도 내가 안 나가면 불을 못 켤 정도였으니까. 그래서 늘 1, 2년 동안에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내가 뒤처지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고, 학교에 삼삼오오 모이면 ‘어제 내수동 교회 갔었는데 박기천 목사님이 구약성경을 이렇게 이렇게 풀어 주셨는데 정말 새로운 발견이었어, 뭐 그제는 이동원 목사님 설교를 들었는데 이런 예화를 들었는데 정말 은혜로웠어.’얼마나 열등감이 느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지 어울리기가 싫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약 2, 3년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무슨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래 어디간들 좋은 곳이 없겠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이 교회를 섬기라고 말하셨고 우리 목사님 설교가 이동원 설교만 못하고 박희천 목사님보다 성경에 해박하지 못해서 어떤 때는 뒤에 앉아서 설교를 들으며 신학적으로 고통을 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렇게 참는 것도 나에게 유익이 되리라’그러면서 세 교회를 도합해서 햇수로 20년 세월동안에 전도사로 두 교회 평신도까지 세 교회를 섬긴 것입니다. 지금 와서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런 모든 과정들이 나로 하여금 이동원 목사님의 유장한 설교나 박기천 목사님의 탁원한 구약해석을 배우지는 못하게 했지만 그것을 배워서 얻은 이익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은 은혜가 나에게는 훨씬 컸다. 그래서 어느 교회에 가든지 어떤 때는 죄송하지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정말 담임목사님이 나만큼 이 교회를 사랑할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적어도 내 마음에는 그것이 내 영혼의 분깃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햇수로 8년을 섬긴 교회를 사임했을 때 학교에서 채플실에서 강의를 듣고 매점에서 이렇게 앉았다가 우리교회에도 한 번 오셨던 아프리카 김철수 선교사에게 ‘나 사실은 이번에 사임했어’ 그랬더니 그러냐고 매점에서 8년 동안 다니던 교회를 사임한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황당해 가지고 나중에 내 손을 붙들고 그 교회에 정말 정이 많이 드셨나보다고 그랬습니다. 나는 사실 그 때 출교라고 하는 것을 처음 경험해 봤습니다. 내가 출교 받아서 그 교회를 떠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그 교회를 떠났을 때 그 때에 나는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 왜냐하면 그 교회가 전부 다였으니까, 사실 저는 그런 것이 이야기하면 걸쳤다가 떠난 사람은 가슴 아플 일도 없습니다. 심긴 적도 없었으니까 부러질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심겼기 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성경을 보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걸친 사역이 아니라 심긴 사역을 할 때 하나님은 목회에 복을 주시고 우리의 사역에도 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를 흥왕하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그림이 뭐냐하면 큰 나무, 커다란 나무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면 모두 나이가 먹게 마련이고 늙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동물의 늙음과 식물의 늙음은 아주 놀라운 대비를 이룹니다. 동물의 늙음은 한 마디로 비참합니다. 동물이 젊었을 때는 사자들을 보면 위엄에 넘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늙게 되면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인간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외국의 영화배우들이 계속 좋은 프로가 있어서 끝까지 longrun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 젊은 시절에 세계적인 스타였던 사람들이 은막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 다시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젊었을 때의 그 기억을 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의 늙음은 죽음이 계속 스며들면서 비참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식물의 늙음은 다릅니다. 몇 해 전에 미국에, LA에 집회에 갔을 때 세콰이어 파크에 나를 데리고 갔는데 메타세콰이어가 자이언트 포레스트라 그래가지고 자이언트 세콰이어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나무가 큰지 톱으로 나무에 베지도 못하고 쓰러집니다. 쓰러진 나무에 사람이 서있으면 뒤에서 안 보입니다. 직경이 5m, 6m 그렇게 되고 내가 본 가장 큰 나무는 3200년 된 나무였는데 높이가 120m쯤 되고 둘레가 12명의 어른이 손을 맞잡아야지만 간신히 감쌀 수 있는 크기인데 한 번 나무를 잘랐다고 치고 그 나무가 얼마나 높을까 계산을 해 봤더니 약 35명이 수건돌리기를 할 수 있는 정도의 나무 크기였습니다. 어마어마한 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있는 것입니다. 어린 것들이 5~6백년 된 것들이고 그런 나무들은 보통 천 년된 것입니다. 어마 어마 합니다. 그런 나무들은 귀를 기울이면 물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충북 어딘가에 있는 느티나무는 하루에 물을 열 두 트럭을 빨아올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수없이 가지를 뻗어나가면 아주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무의 늙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집에 심겨진 사람들도 세월이 흘러가면 늙겠지요. 그래서 이제 아리따운 처녀들로 사역을 했던 사람들은 시집가고, 아기 낳고, 아줌마가 되고, 늙고, 권사님이 되고 그러겠지요.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늙어가게 될 것입니다. 엊그제도 여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길래 사탕을 줬더니 한 아이가 두 손을 모으고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면서 하는 말이‘할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러라고 사탕 준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아이들이 정직합니다. 그래서 아줌마라고 불릴 사람은 절대 언니라고 안 불리고, 언니라고 불릴 사람은 절대 아줌마라고 안 불리고 할머니라고 불릴 사람은 아줌마라고 불러주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정확하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늙어가는 것입니다. 동물적으로 늙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렇게 풍부하게 준 것을 늙어도 결실을 하게 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열매를 맺고 그 뿐만 아니라 진액이 아주 풍족해서 빛이 청청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설교를 했습니다. 가물어도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포도나무가 250년인가 되었다고 합니다. 포도나무가 줄기를 뻗는 것이 얼마나 긴지 온실에데가 놓고 포도가 열매를 맺습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그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는데 템즈강 옆에 있는데 정확히 재보니까 75m가량 뻗어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아, 이게 바로 마르지 않은 삶, 그리고 정말 심긴 삶이구나.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 앞에서 사는 그것이 분리가 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결실하고 지내기 풍족하여 빛이 청청한 것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런 나무의 푸르름과 소중한 열매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정직하심이란 당신께 심겨진 사람들을 주님이 자라게 하시고 마음으로 정신으로 당신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이 뛰어나고 마음을 하나님 앞에 바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재능이 모자라도 자신의 심령을 주님께 다 드리는 사람들의 섬김에 하나님의 더 큰 복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을 하든지 그렇게 심긴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고 걸친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말 심긴 사람들이 되어서 불편함 없이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