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심방
“너희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찿도록 찿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 (눅15:4)
사람이라는 것은 과거에 자기가 잘 했던 일은 나중에도 쉽게 잘 할 수 있고, 과거에 잘 하지 못했거나 해본적이 없는 일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현재 하기가 힘들고 잘 할 가능성이 매우 적습니다. 가끔 어떤분야에 천재적인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게 처음하는데도 수많은 세월동안 연습한 사람보다 뛰어나게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매우 희귀한 예이니 우리는 자신이 그런 희귀한 예에 속한다고 교만하지 말고 부지런히 연습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심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 심방이라고 하면 여러분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목사님이 정장을 하고 심방대원을 너댓명 거느리고 그리고 오셔서 큰 상을 놓고 가족과 심방대원들이 빙 둘러 앉아서 공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그 광경이 생각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물론 심방이지만 오늘 교사들이 혹은 구역장이 해야 할 심방은 그런 종류의 공식적인 심방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든지 영혼들을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는데 심방을 통해서 기여할 수 있으면 그것이 참 좋은 것이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잘하니 못하니 해도 제가 30년 정도 교사를 하거나 교사들을 돌보고 함께 사역하는 전도사를 하거나 혹은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 보면 정말 교역자인 제가 생각해도 정말 탁월할 정도로 평신도로서 심방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다른사람 보다도 많이 섬기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맡겨주신 영혼들을 불특정 다수를 놓고 이렇게 설교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돌아오는 영혼들도 많이 있지만 그러나 그들을 찿아 나서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 영혼들도 있기 때문에 심방을 잘하는 교사와 구역장은 다른사람이 돌아오게 할 수 없는 영혼을 돌아오게 한다는 점에서 남달리 귀한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사실 심방에서 어떤 진수를 깊이 맛본것은 교육전도사때 였습니다. 그 이전에 제가 교역자 되기전에도 교사생활을 하면서 심방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심방을 할때에 보람도 있었고, 기쁨도 있고 또 저 나름대로 평신도로서 심방을 하는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제가 전도사가 되고 주님을 깊이 만나고 난 후에 진짜 심방의 진수가 무엇인지 특별히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도 혼자 터득하면서 심방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심방을 하다보면 심방을 받은 영혼이 유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심방을 하는 자기자신이 큰 유익을 얻게 됩니다.
(예화) 아마 요즘 그런 목회학 교과서를 쓴다면 빵점짜리 일것입니다. 영국의 키드 미스터의 리챠드 백스터 목사님은 토요일마다 꼭 심방을 하셨다고 합니다. 사실 토요일은 설교를 잘 준비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주일을 준비하여야 할 시간인데 토요일날 심방을 한다고 하는것은 오늘날 목회학에서는 빵점입니다. 그런데 백스터 목사님이 토요일이 심방하는 날로 정한 것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심방을 하면서 그 가정 하나하나를 돌아보는 가운데 내일 설교할 자신안에 그 설교를 듣는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불을 지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심방을 다 마치고 나면 목사님의 마음이 교인들을 향한 사랑으로 뜨거워지고 그래서 그 불을 토요일 밤에 간직했다가 주일날 그 불에다가 준비한 말씀의 빵을 구워서 성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방은 그런 큰 유익이 있습니다.
(예화) 이렇게 겨울이 오면 저도 그때 심방하던 기억이 납니다. 교회가 있는데 교회 근처에 큰 고개가 하나 있는데 그 고개를 기준으로 교회가 있는 이쪽에는 잘 사는 아이들이고 교회 고개 저쪽에는 아주 닥지닥지 붙은 정말 약도 가지고도 찿을 수 없는 그 오묘한 골목길이 엉클어진 그러한 달동네 였습니다. 그 달동네에 심방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때는 학교에 교수로 있었으니까 평일날은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고 주일날 4시쯤 모든 사역을 마치면 그때부터 밤 늦게까지 심방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심방이라는 것이 아이들이 무슨 심방을 기다립니까? 그러면 또 부모가 심방을 기다립니까?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이 심방 온다고 하면 시장을 간다, 제과점을 간다 그러지만 그 선생 나부랭이들이 전도사하고 심방을 오는데 뭘 기다립니까? 괜히 공부하는 아이 쑤시고 다니면서 교회 나오라해서 공부나 방해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기가 십상이고 사실 교인들중에도 노골적으로 그렇게 티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렇게 심방을 갈라치면 그 아이들이 그렇게 호락호락 집에 없습니다. 집에는 도서관 간다고 이야기 해놓고 가는데 도서관에서 착실히 공부할 애들이 왜 교회를 안 나오겠습니까? 어디 오만군데 다 돌아다니다 옵니다. 그래도 하여튼 어떻게 하다가 만나면 지금도 기억에 남는데 그 골목에서 아이들을 참 많이 기다렸습니다. 그러면 뜻을 세우고 기다리면 결국은 지가 들어 옵니다. 골목길에서 저쪽에서 주일도 안 지키고 돌아 다니다 왔으니 활기찰 리가 없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터덜터덜 옵니다. 골목에서 딱 만나면 깜짝 놀랍니다. 집에 들어 갈 수 가 있나요? 부모들이 허락도 안하고 추운 골목에 붙들고 앉아서 이야기 하거나 다행히 근처에 구멍가게나 빵집이라도 있으면 들어가서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이 하나님이 역사 하십니다. 참 놀랍습니다. 그래서 가서 몇마디 전하면 순간에 성령님이 역사 하셔서 아이의 마음을 녹입니다. 무슨 그런 청산유수 같은 이야기가 있겠습니까? 따뜻하게 몇마디 하면 녹입니다. 그리고 그 골목에서 손을 붙들고 함께간 선생님 하고 아이하고 같이 기도를 합니다. 골목에 바람이 쇙하고 불면 지금은 아마 그런것이 없겠지만 옛날에는 보안등이 냄비뚜껑 같은것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면 덜렁덜렁... 그래서 간절히 기도하면 거기서 아이도 울고 나도 울고 같이 울고 그렇게 했습니다. 심방의 비결이 뭐냐고 교역자들이 가끔 물어 보는데 비결이 무슨 얼어죽을 비결이 있겠습니까? 그냥 하면 되는 것이지... 많이 하면 됩니다.
그래도 몇가지 지침을 이야기 하라고 하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제일 먼저 중요한 것은 심방하러 갈때는 마음속에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이야 다 선수가 되었지만 개척교회 처음하고 나서 심방을 하러 갔는데 그때는 내가 담임목사도 아니죠 아직 안수 못 받았으니까... 제가 담임교역자인 동시에 운전기사 였습니다. 제가 여전도사님도 태우고 구역장도 태우고 이렇게 하면서 갔습니다. 담임목사는 아니지만 하여튼 운전을 하고 가는데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차 탈때부터 끝날때까지 어쩜 그렇게 도란도란 아기자기 이야기꺼리도 많고 웃고 또 감동도 받고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때는 심방가는 집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아 벌써 다 왔나?” 가서 영혼을 만났는데 이것이 마음속에서 다른 생각으로 꽉 차있다 만났는데 이것이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그때는 교역자들도 다 초보이니까... 그래서 심방을 가기 전에는 전체 구역장 또 전도사, 사모 우리집사람이죠 이렇게 모아 놓고 심방요령을 일러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갈 때에는 제일 먼저 그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과 관심 그것이 심방을 계획하는 순간부터해서 마지막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계속 되어야 됩니다. 심방에는 사교적 심방과 목양적 심방이 있습니다. 사교적 심방은 뭐냐면 만나서 교제를 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교제적 우의를 다지는 것입니다. 목양적 심방은 에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가서 어떻게 하든지 그 심방이 영혼을 일으켜 세우고 치료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고 기획되는 심방입니다. 그것이 목양적 심방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심방 교사나 구역장이 해야 할 심방은 교제적 심방도 필요할 때가 없지 않지만 주로 연약한 자들을 심방할 때는 이러한 목양적 심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심방을 가기 전에는 먼저 그 영혼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품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 심방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가장 큰 힘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뭐냐면 심방을 하기전에 그 영혼을 위한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 간절한 기도가 있으면 심방할 때에 근원을 알 수 없는 권위가 나타나는데 그 권위가 무슨 권위냐 하면 사랑의 권위입니다. 사랑을 하면 권위가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빛깔의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 가장 심방을 잘 할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사랑을 품고 그 다음에 기도를 하는데 기도를 할 때에는 제일 먼저 사실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대하는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심방이라고 하는 것은 잃은 양 한 마리를 찿아 나서는 그 목자의 마음을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여기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 하셨습니다. 백마리 양을 가지고 있는데 들판에 와보니 아흔아홉마리 밖에 없고 한 마리가 없더라. 그러면 너희는 아흔아홉마리를 들판에 놔두고 한 마리 양을 찿아 나서지 않겠느냐 할때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그 요점이 돈이 아닙니다. 양 한 마리를 찿아 나서지 않겠느냐? 가로열고 한 마리에 돈이 얼만데... 이렇게 예수님이 가로 친것이 아닌데... 그것이 아니라 이 양을 돌보는 목자의 마음은 나중에야 이 양을 어디에 쓰던지 간에 기르는 동안에는 이 양의 애뜻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양이 고통을 받고 아파하면 그 양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양입니다.
(에화) 언젠가 한번 텔레비전에서 흑염소를 기르는 사람인데 한 마리가 태어 났는데 이것이 기형으로 태어 났습니다. 발이 두개 밖에 없습니다. 발이 캥거루 같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나서부터 네발로 걷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발로 혼자 걷는 연습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물의 세계를 보면서 어쩜 인간들하고 그렇게 똑같을까? 말하자면 장애 염소로 태어난 것인데 그렇게 염소들이 구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좀 먹으려 하면 와서 뿔로 한방씩 받고 갑니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여서 저기 먹을것이 있으면 어떻게 어떻게 해서 두발로 뛰고 조그만 발로 비비적 거리면서 가서 한번 먹어보려 하면 다른 염소들이 와서 한번씩 발로 차거나 받아 버립니다. 그러면 또 맞으면 아프니까 저 구석에 가서 피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가슴이 아팠던 것은 엄마도 이 아이를 버리는 것입니다. 엄마 염소도... 아기때는 안 버렸는데 다른 염소들이 자꾸 왕따를 시키니까 자기가 이 염소를 끝까지 품다가는 자기까지 왕따를 당하겠으니까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주인이 그 염소를 돈 들여서 수술을 해서라도 정상적인 염소로 만들려고 수의과 병원을 찿아 갔습니다. 그런데 x-ray를 다 찍어봐도 너무 기형이 심해서 목발을 하고 보호장구를 해도 도저히 기능을 못한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제 동물 심리하는 사람들에게 이것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했더니 심리적인 치료법을 이야기 하는데 혼자 놔두면 너무 외로우니까 그리고 큰것 하고 놓으면 너무 치이니까 갓 태어난 흑염소하고 놀게 해라 그러면 태어나서 그 장애인 흑염소만을 보니까 이런 놈도 있구나 하고 같이 어울릴 것이라 했는데 그것이 적중 했습니다. 그리고 먹을것을 계속해서 주는데 이 주인이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료를 만드는데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그냥 대충 주고 이 장애 흑염소는 아주 맛있게 주인이 직접 만들어서 항상 주인이 주고 주인이 안고 다니면서 주사 맞히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말에 가슴이 찡 했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그래 이 흑염소를 어떻게 하시렵니까?” 거기에 있는 흑염소들의 운명이 뭘까요? 봄되면 다 팔려 나가서 한대씩 맞아 죽고 그 다음에 곰탕집 같은데 가서 흑염소 육골즙을 내서 봉지에 넣어서 냉장고에 넣고 이제 여자들이 하나씩 마시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일생이 끝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흑염소 불고기 집으로 가서 그래서 거기서 가죽 벗기고 포뜨고 양념해서 석쇠위에 지글지글 하면서 일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그 장애 흑염소를 왕따 시켰던 모든 염소들, 적당한 크기가 될 때까지 한 마리도 예외없이 그렇게 팔려 나감니다. 그런데 그 주인이 장애 흑염소를 끌어 안고 “얘는 어떻게 하겠어요, 제가 평생 데리고 있어야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얘가 언제까지 살든지 집도 따로 지었습니다. 다른 염소들이 방해를 못하게... 얘는 언제가 되든지 특별한 것을 먹이고 그렇게 사랑이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가 마지막 죽을때까지 돌보다가 죽으면 양지 바른곳에 묻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가슴이 찡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사랑부가 있습니다. 또 긍휼 사역 하는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것이 정말 주님의 마음이겠구나. 교회의 유익이 되는 교인들이야 잘 나와서 은혜 많이 받고 헌금 잘 하고 일사불란하게 봉사하는 교인이 교회에 제일 귀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마음은 그런 교인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찬송) 어디선가 들리는 주님의 음성 너는 내것이라 내것이라
그렇게 주님이 마음을 쓰시고 사랑하십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눈물이 나서 혼났습니다. “야! 저런것이구나!”. 그런 사랑의 마음을 품고 심방을 떠나야지 이 인간 또 어디 놀러 갔을까 이렇게 까불다가 한번 혼나지 그런 마음 가지고 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꼭 만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옛날에 제가 전도사 할 때 담임목사 하시던 목사님이 구역장들을 심방시켜 보면 우편 배달부식 심방이 있다고 그러셨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갔더니 없데요” 그것이 우편 배달부 심방입니다. “심방 좀 해보라고,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아무개 왜 안나오는 거야?” 그 다음주에 “어떻게 돌아 봤어?” “예 심방 했습니다. 그런데 갔더니 없데요” 물론 그 말이 사실입니다. “갔더니 없데요” 그런데 그것은 좀 났습니다. “가려고 전화 했더니 안 받아요” 이것은 더 수준이 낮은 것입니다. 가보지도 않고 가려고 전화 했더니 전화를 안 받더라. 이것이 우편 배달부식 심방이고 여기에서 그 사람의 영혼을 향한 집착이 나타납니다.
(예화) 옛날에 전도사 할 때 교사들을 데리고 심방을 다녀 보는데 저는 항상 교사들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네 반 애들이니까 자기가 가야 하는데 내가 따라 가는 것이니까 항상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분명이 띵똥 하고 누르니까 저기서 “누구세요?” 하고 소리가 들렸는데 “저 여기 아무개 집이죠. 교회에서 심방 왔거든요” 했더니 그 다음부터 아무 소리도 안 나는 것입니다. 몇 번을 벨을 누르고 열어 달라고 하고 안되서 공중전화에 가서 전화를 하고 하는데도 안 됩니다. 대단 합니다. 여 선생 하나가 있었는데 담을 넘었습니다. 대단 합니다. 그것도 바지를 입고 담을 넘은 것이 아니라 치마을 입고 담을 넘었습니다. 결국은 만났습니다. 툇마루에 붙잡아 놓고 그리고 심방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것이 바로 뭐냐면 영혼에 대한 반듯한 마음입니다.
사랑은 수많은 한계를 극복하게 만듭니다. 사랑만큼 우리를 창의적이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것이 그렇게 창의적인지 생각해 볼까요? 나는 아이들이 고등학교 3학년쯤 되고 2학년쯤 되고 하면 얼마나 코에서 단내가 나도록 공부를 시킵니까? 이른 아침에 도시락 두개 싸가지고 학교가면 학교 끝나고 학원으로 직행 학원 갔다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10시, 쌋고나서 학교 숙제하고 학원 숙제 그리고 한시에 잠이 들고 아침이면 엄마가 안쓰러워서 깨워서 부스스하고 아침을 먹고 가방을 메고 나가는데 부모의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얘가 털끝 만큼도 시간이 없는데 보고싶은 영화는 다 봤고, 하고 싶은 게임 다 했고, 가고 싶은데 친구들하고 다 다녔습니다. 그것이 뭐냐면 하고 싶으니까 창의적인 정신이 끊임없이 생겨 나는 것입니다.
(예화) 어느 집안에 자매가 있었는데 부모가 불신자인데 도저히 동의해 줄 수 없는 남자애 하고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과격 합니다. 이 여자의 머리를 가위로 다 짤라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 났는데 머리에 수건쓰고 담 넘어가서 만나더랍니다. 어떻게 그런 창의적인 방법이 떠 오르겠습니까? 머리에 수건을 쓸 생각을 하냐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렇게 창의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꼭 만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선생님들을 데리고 심방을 해보면 아무리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도 못 만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간절히 기도하고 가면 기가 막히게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십니다. 어떤때는 언제 돌아올지 아무 기약이 없는데 금방 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골목에서 잠깐 앉아서 기다리면 기가 막히게 나타날 시간이 아닌데 나타납니다. 그 정도는 예가 아닙니다. 이제 정말 못 만나겠다 포기를 하고 버스 타고 오다가 버스 안에서 만남니다. 기가 막힙니다. 그래서 뜻이 있으면 하나님이 꼭 만나게 해주시고 어떤때는 오기가 생겨서 12시까지라도 내가 기다려서 만나고, 그렇게 진을 치면 만남니다. 그렇게 해서 만남니다. 그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 해야 합니다. 만나야지만 심방이 가능해 지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결국은 못 만나는때가 있습니다. 못 만나는 때가 있는데 대부분의 선생님들이나 구역장은 못 만나면 그냥 돌아 옵니다. 그리고 몇일후에 갔더니 없데 그럽니다. 그런데 지혜롭고 사랑이 충만한 교사나 구역장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화) 어느 노인 목사님 한분이 교인이 몇 명 되지도 않는데 하도 교회를 안 나오니까 어느집에 심방을 왔습니다. 심방대원도 없이 할아버지가 혼자 가방을 들고 왔는데 없습니다. 그래서 옆집에 물어 보니까 아침 일찍 단장하고 외출을 했는데 언제 들어 올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다음날이 되었는데 앞집에 있는 불신자가 교회에 출석을 안 했기 때문에 출석을 받게된 그 자매에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새댁! 교회에 빠지지 말어” “왜요?” 그러니까 “나는 교회 안다녀서 모르겠는데 할아버지 목사님이 오셔서 당신 어디 갔냐고 묻길래 새단장하고 나갔는데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고 했더니 그 노인이 당신 집 대문에서 얼굴을 묻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다가 돌아 가시는데 그 쓸쓸한 뒷모습에 내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나는 예수를 안 믿어서 모르지만 당신 그렇게 하면 복 받기는 틀린것 같네 그 좋은 목사님을 그렇게 마음 아프게 하고 복 받겠어? 빨리 교회에 나가” 그렇게 타일러 주었는데 그 말이 이 자매의 마음에 쾅하고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있습니다. 심방이 끝나도 기도는 거기에 남아서 계속 맴 돕니다.
그러니까 교사나 구역장이 되었으면 심방을 가서 못 만나면 거기에 깨끗하게 한 장 메모라도 해놓고 사랑을 전하고 돌아오면 차선책도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쨎든 심방을 가면 꼭 만나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고 믿음으로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아주 놀랍게 그렇게 만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뭐냐면 첫대면에서 ‘마음을 잘 열어야’ 합니다. 사실 심방을 받는 교인들이나 어린 아이들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일단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고 자기를 찿아와 주거나 전화를 하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 처음에는 거부 하는것 같지만 일단은 마음속에서 어느정도 감동과 찔림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선생님이 자기에게 심방을 오거나 전화를 하는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인지 숫자를 위한 것인지 아는 탁월한 감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전도사때 토요일은 절대로 심방 전화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토요일날 저녁때 “야! 너 내일 꼭 교회 나와야해” 그 아이들 마음속에 뭐가 박히냐면 “우리가 별로 안나가면 공과 공부할 신이 안나서 그렇지” 아이들에게 이것이 심겨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심방을 하고 전화도 하고 그리고 토요일은 조용히 기도하면서 뒤를 기다려라 토요일날 밤에 전화해서 이렇게 저렇게 떠드는데 요점은 내일 교회 나오라는... 그렇게 심방하지 말고 마음속에는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숫자에 연연해 하는 마음이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구역을 인도하기 위해서 갔는데 구역 식구가 한명밖에 안 나왔다하면 쑥스러워서 어떻게 공과를 하겠습니까? 구역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사람 밖에 없는데... 교사가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데 갔더니 평소에 한 대여섯명 나오던 아이들이 여덟명, 아홉명 꽉 찼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에 격려가 됩니다. 그런데 가 보니까 아이들 한명, 두명 나왔습니다. 다른반은 꽉 차서 공부를 하고 그러다가 어떤때는 아예 공과공부 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아무도 안나와서 혼자 저 구석에 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그때 되면 마음에 수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자칫 하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수를 섬기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에는 제일 먼저 “왜 교회에 안 나왔냐?” “어디 갔었냐?” 심지어는 “교회에 갔다고 하던데 어디로 도망 갔었냐?” 그렇게 하면 아이의 마음속에 반발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일단은 그 아이가 교회를 안 나올수 밖에 없었던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 입장에서 말을 건네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이 첫 대면에서 마음을 열때에는 항상 나의 관심사로 심방 받는 사람을 끌어 들이려고 하지 말고 심방 받는 사람의 관심사에 자신이 접근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심방을 할 때에는 상식이 풍부하면 심방하기가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비행기 조종사입니다. 그러면 비행기 이야기부터 하는 것입니다. “나도 비행기에 관심이 많은데 이야기를 하면서 요즘 미국 어떤 회사에서 개발한 새 비행기가 성능이 매우 좋다는데 우리나라에도 도입이 되었습니까?” 그러면 이사람이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이사람은 비행기만 하던 사람이니까... 이 사람이 아니면 대답하기 어려운 이야기, “왜 비행기가 그렇게 어떤 비행기는 뜰때에 별로 안 흔들리는데 어떤 비행기는 기체가 심하게 요동을 쳐서 불안 합니까? 낡은 비행기라서 그렇습니까? 기술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렇게 물어보기 시작하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마음속에서 요점은 그것이 아닙니다. 비행기 공부하러 간것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꺼내는 것입니다. 음악하는 사람들에게는 음악을 그리고 또 경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영을 그 사람의 관심사가 미용인 경우에는 화장품에 관한 이야기를 그 사람의 관심사가 정치인 경우에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디자인이면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 군사면 군사, 무기면 무기에 관한 이야기, 건강이면 건강에 관한 이야기, 깊이 아는 것은 목회자가 성경만 깊이 알면 됩니다. 그런데 조금씩은 다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와 이야기를 해도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얕잡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으면 굉장히 편합니다. 그래서 쭉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화) 제가 언젠가 한번 동남아의 어느나라에 집회를 갔습니다. 동남아로 말씀을 전하러 갔는데 거기에는 한국에서 나간 뭐라고 이야기는 안하겠는데 커다란 통신 업체에 지사장으로 나간 사람이 강사 접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좋은 곳에 가서 접대를 했습니다. 좋다고 해봐야 거기는 워낙 값이 싸니까... 그래서 하여튼 기분 좋게 접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통신계통에 종사를 하니까 그것도 일종의 심방 아니겠습니까? 밥을 이렇게 대접을 받으니까 그 사람에게 당신 혹시 존 오웬에 대해 들어 봤냐고 하면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습니까? 설교 시간에도 계속 들었는데... 청교도 알아 그러면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습니까? 그래서 나도 참 모르는게 많은데 당신이 그렇게 통신 계통에 있다고 하니까 나도 좀 이런 기회에 좀 배워 봅시다. 그랬더니 얼마나 튕기는지 말입니다. “목사님 그것 맨입에 가르쳐 드릴수 있습니까?” 그래서 속으로 “안 가르쳐 주면 말지 심방을 위해서 이야기 하는 건데” 그래도 좀 배워 보자고 그러면서 이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이 한 30분동안 통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거의 다 이사람은 끝난것 같습니다. “나는 우리나라의 IT산업의 미래를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나한테 뭔가 하사하는 것처럼 이런것을 내가 가르쳐 준다 하는것 같은데, 15분 내가 이야기 하니까 수첩을 꺼내서 적기 시작합니다. “다음에 한국 가면 목사님 한번만 더 해주십시요” “뭐 들을 이야기가 있습니까?” “내가 본사에 가서 한번 건의를 해 보겠습니다.” “한 번 해 보십시요” 그래서 이런 지식들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심방하기가 굉장히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용의 주도한 사람인 경우에는 자기가 심방해야될 사람이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미리 어느정도 정보를 가져가면 참 좋은 것입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예를들면 어떤 사람이 루게릭병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심방을 해야 합니다. 루게릭병이 뭔지 압니까? 그런데 인터넷에서 찿아서 출력해 가면 알 수 있습니다. 가족이 여러 가지 상황에 놓였을 때 자기가 그것을 알고 가면 대화가 풍부해 지면서 마음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이제 그 사람의 일상적인 관심사에서 서서히 서서히 심방하는 사람의 영적 관심사 쪽으려 옮겨 가는 것입니다. 자연 스럽게... 그러면 이 사람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 하면서 쭉 들어 가는 것입니다. 특히 불신자 남편이 있을 때 심방을 가면 그 남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거기에 대해 대화가 되기 시작하면 자기는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아도 나중에 목사님 가고 나서 그럼니다. “여보! 당신 교회 목사님 참 좋은 사람이야”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좋기는 뭐가 좋습니까? 자기하고 관심사가 통했다는 것 뿐인데... 그렇게 하면서 이렇게 쭉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양한 파일이 이 속에서 골고루 조금씩은 다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됩니다. 온갖 사람 다 만나고 다니고 여기저기서 주워 들으면 그것이 쌓여 가지고 별것이 다 됩니다. 그렇게해서 마음을 처음 심방가서 마음을 열어서 일상적인 관심사에서 영적인 관심사로 서서히 옮겨가는 그러면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뭐냐면 영혼에 대한 사랑과 심방을 온 목표입니다. 이것이 중요 합니다. 그래서 이제 무슨 여러 가지 잡다한 이야기를 해도 생각은 다른데 있어야 합니다. 이것으로 빨리 마음을 열고 달구어서 그리고 저 영혼에게로 옮아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서 맨 비행기 띄우는 이야기만 실컷 하다가 그 다음에 갑시다 시간 됐습니다. 다음에 또 비행기 이야기 합시다. 그리고 오면 이제 목양적 심방이 아니라 사교적 심방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심방할 때도 똑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지금 관심사로 가지고 있는것이 뭔가, 특별히 이 아이의 관심사가 뭔가, 이 아이가 잘하는 과목이 뭔가, 이 아이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정보를 가지고 가서 아이의 마음을 열면 아이와 많이 접근 하면서 마음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심방입니다. 시종일관 결국은 일상적인 관심사에서 영적인 관심사로 넘어 가도록 그때까지 영혼에 대한 진지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대화를 이끌어 가서 첫 대면에서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 부분이 심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말씀으로 그 사람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행하는 순서는 첫대면에서 일상적인 관심사로 마음을 충분히 연 다음에 영적인 관심사로 옮겨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일상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함께 대화를 했던 것처럼 그 기세를 잘 이용해서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들으면서 대화 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심방의 기술입니다. 그래서 심방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참 대화를 하다보면 이거 왜 내가 여기까지 와서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렇게 아주 부드럽게 일상적인 관심사에서 영혼의 관심사로 넘어 가 주어서 그러면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마지막에는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을 살립니다. 하나님이 영혼을 살리는 것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영혼들을 데리고 많이 교제하고 놀러 다니고 밥 먹이고 공부해주고 같이 뛰놀고 해도 그것으로 영혼들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을 열어서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도구는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고 해서 그 추억 때문에 그 사람의 영혼이 변화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심방에서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저는 주사를 놓는것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심방이라고 하는 정해진 상황속에서 잠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오는 것인데 물론 시간이나 모든 환경이 넉넉하고 심방을 받는 영혼이 심방을 잘 받아들일 마음이 있을 경우에는 장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논리적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실족하거나 미끄러지고 흔들리는 영혼들을 심방할 경우에는 그런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일상적인 관심사로 대화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심리학적으로 소위 이야기하는 일체감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영적인 관심사로 넘어가고 그 영적인 대화를 통해서 그의 문제를 스스로 드러나게 해주고 말씀으로 마지막에 치료해주는 짧은시간 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강해를 시작하면 죽도 밥도 안됩니다. 그러니까 짧은 시간에 그 상황에 가장 맞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 아이의 마음속에 주사 찌르듯이 넣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심방이 끝나도 그 하나님의 말씀이 이 아이의 마음속에 메아리 칠 것입니다. 또 그렇게 메아리 치게 그렇게 심방을 해야 합니다. 그런식으로 심방을 해야지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에 메아리 칠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준비하지 않고 갔는데 대화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서 탁 꺼내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 정도 되면 참 좋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심방하기 전에 성경 구절들을 각 가정별로 적어서 다 준비해서 가시는 분들도 있고 더 재미있는 목사님은 아예 주머니에 성경구절을 잔뜩 집어 넣고 가서 뽑기를 하는 분도 있습니다. 한번 뽑아 보라고... 그리고 뽑힌 그것을 가지고 설교를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금년에 너희 가정의 말씀이다 이렇게... 그런데 이렇게 뽑기 하는 것이 은혜로운것 같지는 않은데 어쨎든 그런 풍습이 몇백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예화) 그런데 저는 제가 모시고 있던 목사님한테 배웠는데 이 목사님은 절대 준비 하지 않고 가십니다. 그리고 심방을 가서 먼저 관심사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집 이야기를 충분히 들으십니다. 충분히 들으신 다음에 이제 찬송 한 장 합시다. 찬송을 부르면서 조용히 눈을 감고 창세기부터 뒤지시는 것입니다. 찬송이 끝났는데 한 장 더 부릅시다 그럴때는 아직까지도 안 떠오르는 것입니다. 저는 사실은 그 목사님같이 그렇게 성경을 많이 보고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불리한 위치에 있지만 어쨎든 그래도 저는 항상 그 모본을 따라서 심방을 했습니다. 그래서 가서 쭉 듣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찬송을 한 장 부르면서 그 집에 가장 적합한 말씀을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증거 합니다. 그러면 그 상황에 꼭 맞는 말씀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면 심방을 하고 사라져 가도 그 말씀이 자기 속에서 계속 울려 퍼집니다. 저희집을 그 목사님이 심방 오신것이 몇 년 전인가 하면 18년전입니다. 지금도 성경 본문과 그때의 어조를 그대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심방을 하신 후에는 항상 녹음을 해서 그 집에 두고 가십니다. 카셋트를 가지고...
그러니까 그렇게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으면 참 좋겠는데 선생님이나 구역장들이 그 정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평소에 준비를 하면 됩니다. 어떻게 준비를 하면 되냐면 상황이라고 하는 것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 아닙니다. 구역원을 심방하거나 아니면 학생들을 심방 할 때 보면 상황이 대게 정해져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열개 정도면 거의 커버가 됩니다. 지금 중국에 가면 예수 믿은지 6개월밖에 에 안된 아이들이 선교를 하러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 갑니다. 10대 아이들입니다. 개네들이 무슨 선교를 하나 그러니까 그 아이들을 은혜를 받은 아이들을 철저하게 선교의 사명을 집어 넣어서 이제 6개월 정도 밖에 안된 아이들에게 그렇게 해서 갈 차비 주어서 가도록하는 가운데 너는 어느 성이다하고 보냅니다. 보낼 때 어떻게 보내냐하면 설교 10편 정도을 아주 잘 외우게 만들고 마음에 감동도 있게 만들어서 보내는 것입니다. 녹음기처럼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황 상황을 열개 정도로 분류를 해서 가장 적합한 성경 구절과 그 다음에 그것을 기초로 이야기 할 것들을 준비해 가지고 있으면 대게 커버가 됩니다. 그래도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면 이렇게 모아놓고 하는 것이면 한번 하면 모두 들었지만 사람이 틀리니까 두 번 세 번 써먹어도 다 그 사람들 새로 만나는 사람이기 때문에 들킬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서 이야기하고 그래서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좋은 예화, 경험, 간증 그런것을 영혼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아서 그 아이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사라지고 구역장은 사라졌는데 그 성경구절 하나가 가슴에 뱅글뱅글 돌면서 나를 깨우는 그래서 심방이 끝났는데 말씀이 살아 있는 그런 심방이 될 때에 영혼을 변화 시키는 목양적인 심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심방이 마무리가 되는데 이때 이제 결정적인 순간이 오게 됩니다. 이게 뭐냐면 모든 심방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때 성령님이 역사해 주셔야 할 필요가 가장 많은 시간입니다. 너무나 불행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심방을 가도 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는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 조차도 기도는 큰 위로가 됩니다. 저는 병원에 심방을 다닐 때 그 교인을 심방하러 갔는데 옆에 있는 환자들이 우리도 기도해 주면 안되냐고 하는 경우를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이 설교 듣는 것은 싫어해도 자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주는 것은 종교를 막론하고 좋아 합니다. 그러니까 심방을 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지게 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그 영혼을 붙들고 기도해야 하는데 그때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괜히 영력도 별로 없으면서 안수기도 한다고 폼 잡지 마시고 또 기도해 준다고 하면서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방언을 해서 영적인 폼도 잡지 마시고 기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기도를 통해서 내가 무엇인가 이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야 되겠다 라고하는 것은 기도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기도의 시종일관된 정신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 기도를 통해서 기도를 듣는 이사람에게 감동을 주어야 되겠다라고 하는 생각은 기도의 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둘이 위해서 기도할때에도 하나님을 바라 보면서 하나님께 심방하는 자신과 심방을 받는 이 불쌍한 영혼을 위탁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헌신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에 이 심방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일체의 교만이 사라지고 그리고 심방을 갔지만 나는 심방하러 온 사람이니 심방을 받을 정도로 미끄러진 너보다는 내가 낮다 라고 하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절대 안수기도하고 방언을 하고 심지어는 사람을 가지고 뒤 흔들고 심지어는 때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러지 말고 일체의 겸비함, 겸손함으로 그 영혼을 위해서 간절히 빌어줄 때 그때 성령님이 역사 하십니다. 저는 심방을 하면서 참으로 많이 경험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심방을 할 때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차면 눈물이 나옵니다. 그러면 심방하는 사람도 눈물로 기도하고 심방을 받는 애도 눈물로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시간이 지난 다음에 물어 봤습니다. 내가 기도해 줄 때 왜 그렇게 울었느냐? 그랬더니 눈물이 안나와서 서러워서 울었답니다. 그런것도 하나의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아이들에게는 들릴 때 보다도 보일때가 가장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곤고하고 미끌어져서 외로울때에 누군가가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 눈물 흘려주는 사람이 있다라고 하는 것은 이 아이에게 있어서 커다란 잊을 수 없는 감동적인 경험입니다. 그것이 가식과 허위, 위선과 지어낸 것이 아니라 마음 밑바닥에서 그대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니 평소에 영혼을 사랑하고 살붙이 처럼 느끼던 사람들은 이 심방이 가슴에 다가오는 심방이 될 수 있을 것이고 평소에 그렇지 못하던 사람들은 이 심방을 통해서라도 그런 목양적인 정신을 다시 불러 일으켜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간절히 빌어주고 난 다음에 이제 마지막 마무리인데 다시 또 거기서 2부 설교를 시작하면 안됩니다. 기도와 함께 모든 것을 끝내고 가름침이 좀 부족했다고 하더라도 성령께 의지하고 그리고 헤어져야 합니다. 심방을 가는 선생님들은 손수건이나 티슈 정도는 기본입니다. 내 심방에 무슨 눈물이 있을까 하면 안됩니다. 언젠가 우리교회를 둘러 보러 왔던 어떤 목사님이 “목사님 교회를 돌아 보니까 두가지가 인상 적입니다.” 뭐냐고 하니까 “큰 기둥 일곱 개하고 그 밑에 놓인 화장지인데 그 화장지는 교회에 왜 갔다 놨습니까?”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면 모르시겠습니까?” “그것이 무슨 뜻 이십니까?” “에배 드릴 때 눈물나면 닦으라고 갖다 놨습니다.” “그렇게 교인들이 많이 뽑아 갑니까?” “잘 뽑아 갈때는 목회가 잘 되고, 안 뽑아 갈때는 목회가 안됩니다.” 이분이 아주 심오 하다는 듯이 기이한 표정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찬송) 우리 죄악과 강팍함 주님께 기도하니 우리 불쌍히 여기사 치료의 은혜어라 하시네
그래서 여기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그래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 그 수건으로 그래서 깨끗한 수건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그 때 말 할 수 없는 카리스마입니다. 누가 누구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 자기를 보듬으면서 눈물을 씻겨 주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그사람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통해서 그 사람을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지혜로운 선생님은 비싸지는 않지만 깨끗한 수건을 손수건을 항상 몇 개씩 포장해서 넣어서 가지고 다닙니다. 그래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 새 손수건으로 눈물을 다 닦아 준 다음에 그 다음에 봉투에 넣어 주면서 “이것이 심방 기념이다. 내가 심방와서 주님앞에 회개하며 흘린 눈물이 여기에 묻어 있으니까 교회에 나오기 싫을때마다 이것을 들여다 보거라.” 얼마나 기발한 착상 입니까? 사랑은 수많은 창의성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그렇게 선물을 하든지 아니면 비싸면 안됩니다. 비싸면 그것을 받으려고 애들이 안 나올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비싸면 안되고 싸면서도 예쁜 선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것들을 사연을 잘 적어서 종류별로 넣어서 가지고 다니다가 마지막에 이제 미안해서 어쩔줄 모르면서 헤어질 때 손에 쥐어주고 오는 것입니다. 더 감동적인 이야기 해 볼까요? 누가 그랬는지 밝힐수는 없지만 한 영혼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는데 그 영혼을 생각하면서 하루에 한 장씩 엽서를 썻습니다. 그것이 열댓장이 모인날 심방을 갔습니다. 심방을 다 한 다음에 그 봉투 하나를 건네 주었습니다. 보니까 날짜별로 자기한테 쓴 편지가 15장이나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교회에 안나오면 그것은 염통에 털 난 사람입니다. 사랑은 깊은 감동을 줍니다. 사람들이 인간에 너무 관심이 없는것 같고, 사랑을 안 받아 주는것 같아도 사실은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이메일로 편지 주고 받아서 우편 배달부 기달릴 일이 없는데 책이나 우편물 이외에... 여전히 연필로 깨알같이 쓴 그 사연의 편지는 정말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벌써 보는 사람의 마음을 틀리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제가 고등부 아이들 가르칠 때에 제가 아이들 마음 여는데 썻던 방법이 뭐냐면 편지면 좀 그런데 집안에 감추는 것이니까 그래서 한 장으로 된 엽서를 가져다 시간 날 때마다 펜으로 쓰는데 무슨 펜으로 쓰냐면 플러스펜 뾰족한 것으로 내가 일부러 깨알같은 글씨로 씁니다. 가득 집어 넣으면 원고지 20장 30장 들어 갑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검은 종이입니다. 들여다 보면 글자입니다. 아마 지금도 아이들 그 편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편지 받아 보았습니다. 심방을 끝낸후 마지막에는 이렇게 마음이 깊이 담긴 무슨 선물을 하나 남기고 오십시요. 두고두고 그것을 보면서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그런것을 남겨두고 오십시요. 가슴속에 그 심방을 깊이 세겨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늘 들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멀리 떠나 갔을 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돌이켜서 다시 교회에 나오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사람은 여러분들이 그 영혼을 직접 찿아가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 영혼들도 있습니다. 마치 정확하게 말하면 돌아 올 수 없는 영혼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길 잃은 양 한 마리가 다시 목자에게로 돌아 가고 싶고 양떼들에게 돌아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스스로 그렇게 돌아갈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은 그 목자가 찿아와 그 양을 엎고 갔듯이 그러한 영혼들도 여러분들이 돌보는 반에. 구역에 꼭 있게 마련입니다. 바로 그렇게 산넘고 물건너 양 한 마리를 찿아 나서던 그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돌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여러분 손에 붙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바로 그러한 희생과 사랑으로 영혼을 섬길 때 그때 여러분들이 주님을 아는 은혜와 지식에서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고 아는 지식에서 점점 더 자라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들을 잘 돌보면 반드시 자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영혼을 사랑과 눈물로 잘 돌보면 그 사람의 영혼이 건강해 집니다. 한 사람의 영혼은 자신의 영혼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릴때에는 반밖에는 안 고쳐질 수 있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의 영혼이 불쌍해서 눈물을 흘릴수 있을 정도가 되면 그 사람의 영혼은 건강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영혼을 위한 관심과 눈물로 심방하고 섬기고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그 교사의 마음에 구역장들의 마음에 은혜의 불을 지피십니다.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심방을 하고 난 후에 눈물을 닦으며 그 영혼의 불쌍함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며 나오는 성도의 마음속에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다는 소원 이외에 무슨 소원이 있을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우리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눈에서 다른 이유말고 내게 맡겨진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눈물 흘린적이 언제 입니까? 그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 그 영혼 때문에 운 적이 언제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요. 목자의 눈물은 목초지에 흘러 들어가서 그 꼴을 비옥하게 만들고 그 꼴위에 뛰노는 양떼들이 그 꼴을 먹고 배부르게 만들어 줍니다.
사랑하는 교사여러분! 심방 하십시요. 심방하시고 전도사님들은 그 심방하는 일을 탁월하게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심방해야 합니다. 어디선가 들리는 영혼의 울음소리에 귀를 가울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내 양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산넘고 물건너 그 양 한 마리를 찿아 나섯던 목자와 같은 교사를 그런 구역장을 세월은 많이 흐르고 시대는 바뀌었지만 주님이 여전히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