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앞에 큰 자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15).
세례요한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난 성경을 읽으면서 누구 그렇게 딱히 본받고 싶은 사람을 발견을 못했습니다. 바울을 참 좋아했는데 결혼을 했더니 우리 집사람이 자기는 다윗 팬이라고 그래서 또 다윗을 좋아했었어요. 그러다 가만히 보니까 요나단이 훨씬 훌륭한 거 같애. 그래서 또 요나단을 좋아하다가 그러고 보니까 바울보다는 바나바가 더 멋있는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바나바도 좋아하다가 그렇게 지조없이 신구약을 오락가락 하며 이 사람도 좋아해보고 저 사람도 좋아해보고 그랬습니다. 그러다 한 20년 전에 신학교 교수가 막 되었을 때에 그 때 이 누가복음을 읽으면서 이 세례요한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3절에서 6절 사이에서 세례요한을 만난 후에 얼마나 강력한 인상을 이 사람한테 받았는지 제가 오죽했으면 세례요한이라는 책을 한 권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이제 요한에게 강하게 마음이 끌렸던 이유는 이 사람의 생애가 정말 목사로서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선명한 그림을 보여주는 생애였기 때문입니다. 아다시피 이 사람은 구약 엘리야의 예언이 끝날 때에 예고된 사람이었고 신약은 이 사람의 출현과 함께 시작을 하니 이 사람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신약시대에 예수님의 오시는 앞길을 예비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져간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그는 불과 몇 편의 설교를 남기고 지극히 짧은 기간 동안 말씀 사역을 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그런 설교자였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앞길을 예비하여 사람들의 마음속에 참된 영적인 부흥을 가져오게 했던 하나님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세례 요한이 앞으로 하나님 앞에 와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특히 세 가지가 예언되고 있는데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을 입어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이러한 예언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저는 오늘 그 첫 번째 예언인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라는 구절만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여기에 보면은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라고 하였는데 희랍어 성경에는 ‘에스타이 메가스 에누 피온 디 퀴리우’라고 되있습니다. 직역을 하면 ‘하나님의 두 눈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다’ 그런 뜻입니다. 이 사람의 생애는 전혀 큰 자다운 생애가 아니었습니다. 한미한 제사장의 가문에서 출생했고 육신으로 생육할 수 있는 기력을 거의 잃어버린 노부와 노모에게서 기적적으로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들 부모는 곧 죽은 것 같고 그리고 이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이름 없이 메뚜기와 석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광야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말씀 사역을 시작을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그의 말로는 비참했습니다.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지고 그 목은 어린 여아에게 주는 선물이 되어서 쟁반에 담겨졌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이 세상 사람 눈으로 볼 때에는 전혀 위대한 삶을 산 사람이 아니었는데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한 표현으로 성경은 ‘그가 큰 자가 될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해설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누구의 눈빛 앞에서 살아야 될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 큰 것이 하나님 앞에 클 수도 있지만 사람 앞에 영광스러운 것이 하나님께는 수치가 될 수도 있고 사람 앞에 어마어마하게 보이는그런 큰 인물도 하나님 앞에서는 하잘 것 없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에 기름 부으러 갔을 때 기골이 장대하고 용모가 준수한 그의 아들들을 보고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기름 부을 때마다 기름 붓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또 나는 그를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 앞에 큰 것과 하나님 앞에 큰 것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신앙은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존재할 수 없는 시야를 가지고 사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사람의 눈앞이 아니라 보이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칼빈이 남긴 꼬람데오의 정신이에요 그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큰 교회를 목회하고 그리고 이런저런 벼슬과 감투를 쓴 사람들에게 신문의 지면을 할애하고 그리고 취재의 후레쉬를 터뜨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지위를 부러워 합니다만은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 앞에서 사는 사람들 시종일관 같은 마음으로 맨처음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된 그 날부터 주님의 눈앞에 살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기를 준비하고 언제든지 주님이 쓰실 그날을 위하여 자기가 연마되는 사람들을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에요. 그러면 도대체 그렇게 보잘 것 없이 태어난 들사람에 불과한 이 세례요한이 여호와의 눈 앞에 큰 사람이 될 수 있었다면 그리고 이 예언이 이루어졌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이 사람을 하나님의 눈 앞에 큰자가 되게 하였는가 하는 거죠 희랍어 성경에 보면은 ‘에스타이’라고 하는 미래형 동사가 사용되어요 태어날 때부터 큰 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면서 큰자가 될 것을 하나님이 예고해 주신 것이죠 그러면 무엇이 이 사람을 큰 자로 만들었는가 그것입니다. 성경 전체를 살펴볼 때에 우리는 두 가닥으로 이 문제를 추적할 수 있을 꺼 같애요 우선 첫째는 누가복음 1장 80절에 나타나 있는 기사에요 ‘아이가 자라매 심령이 강하여 지고 이스라엘에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즉 세례요한은 큰 자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작은 자였지만 광야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큰 사람으로 영적으로 성장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우리들이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물이 흐르고 꽃이 피고 숲이 우거지고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동산의 연속이 아니에요 모래바람이 이는 곳 낮에는 뜨거운 뙤약볕이 내려쬐지만 밤이면 모닥불을 피워 이슬을 피해야 하는 그런 곳 맹수의 위협이 있고 그리고 물조차 없어서 메마른 땅이 끝없이 이어지는 벌판이에요 그곳이 바로 ‘에레무스’ 광야에요 세례요은 비록 제도권에서는 학위를 받고 요즘말로 말하면은 정식코스를 밟아서 훌륭한 학자의 길을 간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오히려 광야에 보내져서 광야에서 철저하게 훈련된 사람이었어요 광야에서 그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가 광야에서 메뚜기나 잡으러 뛰어다니고 꿀이나 따먹으면서 돼지같이 살이 피둥피둥 찐 그런 아무 생각 없는 젊은이로서 성장했을 거라고 믿지 않아요 그곳이 광야에요 그런 곳이 광야입니다
그럼 그 광야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에요 의지할 것 없이 완전한 고독 속에서 하나님 한 분을 응시하여야 하는 영적 생활이 있는 곳이에요 그곳이 바로 광야에요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는 틀림없이 거기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공부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탐구하고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배워 갔을 꺼에요 헤롯이 그를 볼 때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아서 두려워 하였다고 하는데 이런 신앙의 거룩한 인격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죠 광야에서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동안 외로움과 싸우고 분투하며 거친 음식을 먹으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학문을 탐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능력있게 전하게 될 그 날을 하나님이 쓰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연마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의 지금 이 신학교 다니는 시기가 그런 광야의 시기에요 이런 광야의 시기에 힘써야 할 것은 오직 두가지에요 하나는 학문을 연마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하는 거에요 오늘 정직하게 여러분 말해보세요 이 학교에 들어와서 5개월 혹은 1년 2년 3년 4년 신대원 학생들은 더 되었을지도 몰라요 얼마나 학문을 탐구하는 일에 열심을 품었는지 돌아보세요 여러분들의 본분은 학문을 연구하는 거에요 더욱이 하나님의 학문을 철저히 탐구하고 공부하는 것이에요 제가 한 20년 전에 처음 교수로 갔을 때 몇 년 지나고 나서 어느 한 학생이 저를 찾아왔어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가르쳐 주셔서 교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책을 읽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학기 동안 당신이 우리에게 소개해준 책을 목록을 모두 적어보니까 그것이 제 키로 하나였습니다. 제가 그 책을 1년에 한 키씩 읽어서 3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얼만큼 독서를 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여태까지 여러분 읽은 것이 이렇게 세워놓은 거 말고 눕혀서 얼마나 읽었는지 생각해보세요 레포트 쓰기 위해서 군데군데 읽고 날림으로 보고서 쓴 거 빼놓고 시험시간에 범위만 줄치며 읽은 거 빼놓고 신학의 자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읽은거 그 쓰잘데도 없는 그 무슨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적은 그런책 말고 성경의 진수에 접근하게 만드는 신학적이고 학문적인 책들을 얼마나 읽었는지 한 번 생각해보라 이거에요 신학교가서 모든 학교에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만은 여러분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일반학문을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하고 출발선이 틀려요 그러면 더 치열하게 공부하여야 해요
그래서 저는 한 교회의 평범한 지역교회의 목사에요 그리고 교회를 세워서 17년 동안을 말씀사역을 해왔어요 건강하고 질병이 없는 사람이 여섯 시간이상 자는 것은 범죄라고 생각해요 뭘 웃어요 웃기는 그대들은 우스워도 난 하나도 우습지 않아요 오늘 여기 나온 여러분 가운데 오늘 새벽기도 가서 열렬히 기도한 사람이 스스로 한 번 점검해봐요 밤 늦게 까지 인터넷이다 무슨 TV다 하고 두드리고 앉았다가 아침이면 학교오기 바쁠 정도로 퍼질러 자고 절대로 그런 사람들 중에 영적인 인물이 나올 수가 없어요 여학생들도 예쁜 화장에나 신경을 쓰고 예쁜 장신구에나 마음을 빼앗기고 연애하는데나 정신을 빼앗기는 사람들 중에서 신령한 사역자가 나올 수가 없어요 그건 다 광야에서 하는 일들이 아니에요 도시에서 하는 일이지 온 마음을 다해서, 쏟아 부어서 공부해야 해요
신학교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전도사 소리 듣고 싶어서 사역을 나가는 사람들도 깊이 반성을 해야되요 그런 사람들이 이 담에 목회를 해놓으면 공부를 하러 간다고 가방을 들고 교회를 팽개쳐요 왜 이렇게 거꾸로 에요 공부하라 그럴 때 공부하고 사역을 나가라 그럴 때 사역을 나가면되지 열심히 그래서 두 가지 세 가지 누군가가 갑자기 나타나서 네가 지금 은혜 받고 있는 성경이 어디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답해야 하고 네가 생명을 주고도 바꿀 기도의 제목이 뭐냐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물으시면 이것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네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뭐냐 물어도 명백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되요.
저는 여러분보다도 더 불우하게 젊은 시절을 보냈어요 야간 신학 대학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어요 직장 다니면서 그러니까 공정한 입장에서 말할 수 있어요 수많은 사역자들을 국내외에서 만났어요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진실한 것도 아니고 학문이 없다고 해서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에요 그러나 통계적으로 보면 공부 안한 사람들이 엉뚱한 일을 훨씬 더 많이 해요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해야 되요 온 마음을 다해서. 신학교에서 공부하다 죽으면 순교에요. 하나도 나는 우습지 않아요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서 학문을 탐구하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되요. 읽어야 될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30대 후반이 되니까 신학이 어떻게 통합되는 것을 알겠고 40대 후반이 되니까 그 많은 다른 학문들이 어떻게 엮어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애요 지금도 한탄을 하면서 ‘아 내가 왜 20대를 그렇게 보냈을까’ ‘내가 왜 10대를 그렇게 살았을까’ 30대 부터는 열렬하게 살았으니까 별로 후회가 없어요 그러나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거에요. 열렬하게 공부해요 온마음을 다해서
그리고 또 하나는 치열하게 경건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에요 치열한 경건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열렬한 기도 생활 속에서 살아야 해요 지금 여러분 30년 정도 흐르고 나서 항상 여러분과 같은 상태일 꺼라고 생각을 하면 인생의 계획표 잘못 짜는 거에요 여러분 50대가 넘어서서 철야기도 한 번 하고 나면 일주일 동안 몸이 풀리질 않아요 지금은 아무 상관 없잖아요 여러분 만할 때는 최소한 하루에 세 시간은 기도하겠다고 칼을 가슴에 품어야 돼 그런 마음을 품어야 돼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그 사랑에 감격해서 혹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눈물로 적시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야 해요
(찬양)“주님의 뜻대로 나 평생 살리라”
온 마음을 다해 경건을 추구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이 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강한 진리의 체험 전 인격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는 그런 강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힘이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외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진리가 내 가슴 속에 있고 주님의 사랑이 있어서 그래서 죽어가는 영혼을 보며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나누어주지 않을 수 없는 불같은 마음이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타올라야 하는 거에요 이렇게 하나님께 잘 준비됐다가 한 순간에 불꽃처럼 타올라 죽음에 이르도록 주님을 위해 잠깐 살다가 가는 것이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들의 소명이에요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는 중요한 사람되지 않아도 좋으니 주님의 눈 앞에 큰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