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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 12 : 12)
녹취자 : 김용재
말씀을 전해보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인데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으로써의 권위는 객관적인 권위가 있고 주관적인 권위가 있습니다. 객관적인 권위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하나님이 나를 교회의 일꾼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관적인 권위는 말씀을 듣는 사람이 그 설교자를 주님이 나를 위해서 세워놓으신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 주관적인 권위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지만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항상 정도가 아닌 길은 가면 안 됩니다. 처음엔 쉬운 것 같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그것이 여러분들을 찌르는 칼이 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인데 지금은 은퇴하셨을 것입니다. 훌륭하신 분입니다. 제가 설교자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을 찌른다는 느낌을 받은 설교자가 많지 않은데 그분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한참 교회를 개척하고 교인이 200명쯤 되었을 때 그 좋은 목사님을 교인들이 나가라고 그랬습니다. 이유가 뭐냐면 정상적인 신학을 해서 목사안수를 받은 것이 아니라서 객관적인 권위가 흔들린 것입니다. 그런데 주관적인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말씀에 의해서 영혼들이 깊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그 권위를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바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뭐냐면 처음에는 바울을 통해서 은혜를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들의 신앙이 변질된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너무 엄격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고린도는 항구도시입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아주 번영한 곳이었고 당연히 물질주의적인 풍조가 나타납니다. 이기적인 것, 성적타락, 파당을 지어서 논쟁하는 것. 이런 것들이 고린도시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권위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 때 사도바울이 고린도 전서에서도 그렇고 후서에서도 그렇고 자신이 사도라는 사실을 변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부인한다고 해서 사실은 사도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강력하게 변호했던 이유는 뭐냐면 그것을 양보해 버리면 자기가 가르치는 모든 말씀이 사람의 말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이제 고린도후서에 와서는 처음의 상황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고 사이에 편지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분실되었지만 말입니다. 많이 개선이 되었고 그래서 이제 바울이 많이 누그러진 상황에서 다시 또 사도직 얘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성경을 한 15년 전에 읽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엇이냐면 내가 사도다. 내가 진짜 사도라는 징표가 있다. 그러면서 기적, 표적, 이적 이런 것들을 앞에 놓지 않고 뒤로 보내버리고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게 뭐냐면 오래 참음입니다. 너희들은 자꾸 나를 사도가 아니라고 하는데 나 진짜 사도다. 증거를 대볼까? 내가 사도가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그렇게 오래 참을 수 있었겠느냐. 주님이 나를 직접 불러주시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오래 참을 수 있었겠느냐 그건 불가능 한거다 그걸 너희는 모르냐. 그럼 궁금한 게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이 오래 참음이 바울이 주님께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은 것을 입증하는 걸까? 그렇지 않습니까? 오래 참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을 구성하는 한 속성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이 어떻게 시작합니까?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그렇게 시작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랑의 속성이기는 한데 사랑의 아주 중요한 속성입니다. 교리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비와 긍휼과 오래 참음입니다.
이 오래 참음은 사랑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속성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그렇게 중요한 속성입니다. 그러면 이 오래 참음이라고 하는 것은 도대체 뭐냐. 이 오래 참음은 사랑하는 대상의 경향성을 인내하면서 견뎌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대상의 경향성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경향성과 다를 때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부부가 같이 사는데 한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고 한쪽은 사려가 깊어서 말을 신중히 하고 말을 함부로 하고 이런 것들에 대해서 지극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둘이 같이 살면 한 쪽이 상처를 받을 것입니다. 신중한 쪽으로부터는 상처를 받을게 별로 없지만 상처를 계속 받다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견디지만 너무 아프면 그 관계를 단절해 버리는 것입니다. 성격상의 차이 때문에 이혼하는 게 아프기 때문에 이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뭐냐면 그게 싫은데, 그렇게 말하는 게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닌데 계속 참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 사람이 여태까지 살아온 경향성입니다. 이 경향성이라는 것은 본성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적으로 한번쯤은 안 그럴 수 있어도 성질자체가 그렇게 가는 것이기 때문에 마치 구슬이 내리막길을 굴러갈 때 뭔가를 받쳐놓으면 구슬이 안 굴러 갈 수 있지만 떼면 다시 굴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로버트 멕체인이 얘기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복은 그리스도를 많이 닮는 것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본성적으로 변화시키시려고 하는 이유는 뭐냐면 그 때에 우리의 인격이 항구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가끔 하나님께 충성하는 게 아니라 계속 충성자체가 인격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격이 바뀌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것을 참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죄의 경향성을 품고 있지 않습니까? 죄라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이것이 당신자신의 경향성하고 정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프십니다. 하지만 참으십니다.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죄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그 죄를 품고 있는 사람은 사랑스러우니까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루시는 것입니다. 그 오래 참는 사랑의 마지막에는 자기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주님을 만난 다음에 가장 감격했던 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입니다. 내가 전에는 핍박자요 포행 자였으나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일체의 오래 참으심으로.
여러분 이제 신학의 길을 걸어가고 사역의 길을 준비하면서 오래 참는 사람들이 돼야 됩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도 좀 한 번 옮기면 거기에 한참 있습니다. 주님이 아주 명백하게 부르실 때 까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교역자 생활 불과 몇 교회에서 안했지만 한 교회에서 8년 한 교회에서 7년 있었습니다. 햇수로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교회에서는 1년 반쯤 있었는데 그것은 개척을 해야 했기 때문에 떠났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면서 거기서 사실 기분이 좋고 사역하는 게 재밌으면 왜 1년에 한 번씩 옮기겠습니까? 근데 갈 때는 기도를 많이 하고 주님이 인도하시는지 확인하고 갔으면 거기를 꾸준히 다니면서 그러면서 괴로운 일 힘든 일 이런 것들을 다 견뎌야 합니다. 그런 속에서 그 사람이 주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깊은 오래 참음 속에서 깊은 고통을 맛보면서 그러면서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찾게 되고 주님을 우러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있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미국에서 나온 잡지를 봤는데 거기에 보니까 태양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 지지 않습니까? 빌딩하나 전체를 오목거울로 만들었습니다. 7,8층 이상 되는 큰 빌딩을 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거기에서 나온 빛을 집약해서 쏘니까 큰 쇠가 녹는 것입니다. 굉장합니다.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말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모든 것을 쭉 집중해서 하나의 지점에 깊이 몰입될 때 그 때 거기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공부하는 것 자체가 영적 초점을 흐트러트리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지식적으로는 자랄지 몰라도 성화생활에 진보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무슨 부서라도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맡았으면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여러분의 사욕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잘 참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온전한 인격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사람으로 빚어져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