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회 집회 2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마 26:6-13)
녹취자 : 김세나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본문은 죄인인 한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향유를 부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장소를 보니까 베다니였고 거기에 사는 문둥이 시몬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식사에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이 문둥이는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과 함께 섞여 살 수 없었죠. 그 때나 지금이나 이 병은 굉장히 무서운 병이고 전염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율법에서도 이 사람들을 이스라엘의 회중 가운데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살도록 규정했고, 혹시 병이 나은 경우에는 제사장이 꼼꼼히 검사해서 정말로 이 병이 떨어졌는지를 철저히 확인한 후에야 정결의식을 거쳐서 이스라엘 회중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추측컨대 이 사람은 현재 심각하게 문둥병을 앓고 있는 베다니 문둥이가 아니라 한 때 그런 병에 걸려서 몹쓸 고생을 했던 사람으로서 그 이유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병이 나아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살게 된 베다니에 사는 사람 시몬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어쩌면, 어쩌면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이 문둥병을 고침을 받고 그리고 신앙을 갖게 되어 이제 이 예수님을 자기의 집에 초대하고 예수님은 그 초대에 응하신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 접대를 받고 계셨고 그 때에 초대받은 것으로 보이지 않는 한 여자가 이 식사 장소에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죄인이라고 되어 있고, 이 죄인이라는 말이 다른 복음서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또 다른 사람의 말들을 인용하는 곳에서도 이 여자가 정체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자주 언급이 돼요. 그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주석가들은 이 여자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죄인이 아니라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대표적으로 규정되었던 특별한 죄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표적인 죄인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남성의 경우에는 세리였습니다. 왜냐하면 로마는 비교적 넓은 땅 덩어리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가지에 있어서 로마에게 도전하지만 않으면 폭넓은 자치권을 식민지 백성들에게 인정해 주었어요. 그 두 가지 중 첫째가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종교정치적인 것이었고, 두 번째 양보하지 않는 것이 세금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은 세계 전역을 지배해 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주 지혜롭게 제국을 다스렸어요. 세금을 걷는 것 같은 행위는 이것은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로마에서 관리를 파송해서 직접 세금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식민지 민족 가운데서 그런 일을 할만한 사람을 뽑아서 훈련을 시키고 얼굴은 유대인이지만, 로마에 기꺼이 복종하고 충성할 사람들을 선발했습니다. 그래서 교육을 시키고 훈련을 시켜서 세금을 거두게 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라고 하는 격언이 있듯이 엄청난 국가의 힘을 기울여서 도로를 만들었는데,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밀라노에서 외곽으로 뻗어있는 그 길을 보면요, 주님 오시는 날까지 절대로 무너질 염려가 없는 도로입니다.
조금 이야기 할까요. 싫으면 그만 두시고요. 땅을 파서 최소한 3미터 내지 4미터 땅을 파요. 맨 아래에다가 잡석을 넣고 그 위에다가 이제 돌맹이들을 집어 넣는데, 아주 커다란 돌맹이들을 집어 넣습니다. 사이사이에 작은 돌로 가득 채운 다음에 맨 위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돌의 평평한 면적이 위로 오게끔 놓는 거죠. 그렇게 놓고 그 다음에 그 위에다가 흙으로 덮는 거예요. 왜 그렇게 도로를 깊이 파냐 하면, 그 로마에 상당히 많은 지역이 질척질척한 진흙땅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탄탄하게 제가 보기에는 마차 정도가 아니라 탱크가 지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그렇게 길을 만들어 놓고 그리고 그 길을 무엇 하는데 이용하냐 하면, 일반 사람들의 여행도 있겠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반란이나 외적의 침입을 제압할 때 그 길로 엄청난 기병대와 그리고 마차를 그리고 고병들이 질풍과 노도처럼 달렸습니다. 그 목적 때문에만 길을 그렇게 정성껏 놓은 것이 아닙니다. 그게 뭐냐 하면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 그렇게 길을 닦은 거예요. 그래서 돈 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서 나오는 특산물들을 징수해서 그래서 이제 로마로 후송하고 그리고 병참기지에 그 군데군데에 있는 창고의 이런 것들을 수집하기 위해서 도로를 만들었던 거예요.
그래서 세리는 유대인 가운데 뽑혔고, 세금의 정책은 그 사람들을 완전히 로마의 공무원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옛날의 우리 조선시대의 말하자면, 조선시대에 있었던 관하제도처럼 그 자신이 알아서 벌어먹게끔 했습니다. 한 지역을 정하고 세금을 할당하면 적정한 범위 안에서 자기가 세금을 알아서 징수를 하고 그리고 의무금액을 로마에 보내고 나머지는 자신이 착복을 했으니 당연히 세리 가운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재산이 많습니다. 그리고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동족들에게는 동족의 고혈을 빨아서 로마에 바치는 아주 더러운 인간의 대명사로 찍혔습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게 소위 조나라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조나는 히브리말로 간음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이 자나라고 하는 동사는 일반적인 간통이 아니라 이방인들 남자와 더불어 간통하고 그리고 그 매춘행위로 돈을 받는 여성들을 가리켰어요. 그러니 율법에 의하면 간통을 하는 것도 이게 끔찍한 죄악인데 거기에다가 그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할례받지 않은 이방사람들과 몸을 섞으니까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더러운 짓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대때에 사마리아가 이 유대인들에게 철저히 버림을 당하고 심지어 갈릴리로 갈라지는 유대에서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면 빠른 길인데 요단강을 돌아서 갔던 이 일도 바로 그 땅이 앗수르에게 멸망당한 이후에 사면정책을 통해서 앗수르가 거기를 국적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수많은 이방인 남자들이 이스라엘과 피가 섞이고 함께 이방 결혼을 하게 되어서 그래서 이제 불결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주가 되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은 이 여자가 바로 그러한 창기였을 것이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동의하는 것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해석이다라고 봅니다.
아무튼 그러한 여자로 이해되는 한 여자가 식사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어쨌든 봉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이 여자가 나를 위해 행한 일은, 그 섬김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세상 끝날까지 기념이 되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이것이 세상 끝날까지 지속될 일이니, 이 여자의 행한 이 일도 세상 끝날까지 기념될 일이다. 이름도 성도 안 밝힌 이 여자가 이렇게 예수님께 극찬을 받게 되었다면 이 섬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섬김이 어떠한 종류의 섬김인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한번 부족하지만 이 섬김을 닮아서 이런 섬김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이 여자의 섬김은 말이 없는 섬김이었습니다. 꽤 긴 성경 구절에 예수님도 등장하고 제자들도 등장하고 베다니 문둥이 시몬도 등장합니다. 이 여인도 등장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기사의 주인공은 예수님과 이 죄인인 한 여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은 이 기사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여자의 하는 말이 한 마디도 이 기록 속에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여자가 한 주님께 봉사한 이 봉사는 말이 없는 섬김 이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 시험이 들 때, 그 시험의 대부분은 말 때문에 시험 듭니다. 어떤 사건 때문에 시험에 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사람들이 해석하고 말하고 하는 이 과정을 통해서 겉 잡을 수 없는 시험이 생기고, 거기에 사단의 역사들이 개입을 하고 인간의 부패하고 타락한 성품과 기질들이 섞이면서 교회는 겉잡을 수 없는 시험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이 바로 가장 중요한 것이죠. 여러분, 우리 신자가 만약에 물에 잠긴다고 칩시다. 그 물이 하나님의 은혜의 물이에요. 그 물에 들어가면 어쨌든 그 물속에서 변화되고 발이 들어가면 그 발목가지고 술집가고 나쁜 짓하던 사람들이 교회에 나온다고 칩시다. 그리고 무릎이 그 물속으로 들어가면 그 무릎가지고 온갖 쓸데없는 짓 하는 사람이 주님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칩시다. 그 물에 허리가 잠기면 그 허리를 가지고 주님께 굽혀 봉사한다고 칩시다. 가슴이 잠기면 그 가슴으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칩시다. 그렇게 온 몸이 은혜의 물에 잠길 때, 마지막까지도 은혜의 물 속에 잠기지 않겠다고 몸부림치는 우리의 몸에 마지막 남은 한 지체가 있어요. 그게 어디인지 아세요? 입이에요. 그래서 모두 잠겨도 입만 동동 떠서 그 입이 그래서 중요해요. 그래서 보면 말의 허물이 없고 말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아픔을 주는 대신 덕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진실한 신앙을 갖은 사람이 성화의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른 사람이에요.
론캘로우라고 하는 미국의 시인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자신의 시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어요. 하도 오래 돼서 이 시를 다 외우지는 못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옛날 아주 먼 옛날 나는 하늘을 향해 화살 하나 쏘았지. 먼 세월이 지난 후 나는 깨달았는데 그 화살이 어떤 고목나무에 깊이 박혀있는 것을. 먼 옛날 하늘을 향해 노래한 곡 불렀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나는 깨달았네. 그 때 부른 노래가 아직도 내 친구의 가슴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다는 것을. 그 무슨 뜻이냐 하면 거기에서 화살은 독하고 상처를 준 말을 비유합니다. 자기는 그 화살을 쏘고 잊어버렸는데, 그 화살에 꽂힌 사람의 마음은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르고 오래토록 가슴속에 상처로 남아요. 교회에서 이런저런 일로 하나님 앞에 봉사할 기회를 주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일 좋은 사람은 말 없이 충성스러운 사람이에요. 그만 못한 사람은 말도 많고 일은 하는 사람이에요. 최악의 사람은 일은 안 하면서 말이 많은 사람이에요.
이 침묵한다라고 하는 이것은 마음속에 깊은 인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을 섬길 때 말없이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없이 섬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없이 섬기게 하는 그것은 관심사가 섬김을 받으시는 우리 주님께 집중되어 있으면 침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심사가 분산되어서 행여나 이 섬김을 통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거나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을 때에는 말이 많아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때,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래서 말이 많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말이 없는 섬김으로 우리 주님을 섬긴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섬길 일은 많았는데 오늘은 이 교회가 현대 사회속에 있다고 보니까 무슨 회사를 경영하는 것처럼 비슷한 그런 흐름을 타고 있어요. 그것은 꼭 무슨 부정적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겠죠. 왜냐하면 주님이 충성스럽게 섬기는 사람들에게 충성과 똑같은 정도로 기대하시는 또 하나의 이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지혜에요. 지혜. 그러니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지혜를 가지고 이렇게 좀 올바르게 잘 해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겠죠.
(예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그래도 귀담아 들어보십시오. 어느 목사님이 젊은 목사로서 그 교회에서 목회하는 곳에서 교인들이 온 교인들이 커피를 먹겠다고 하는데, 여기저기서 물을 끓인다고 커피포트를 가지고 여기저기 흩어져 다니는 컵이 너무 지저분해서 그대신 거기에다가 커피 자판기를 하나 세워놓고 돈을 벌겠다는 것은 아니고 거기에다가 100원 동전 집어넣는 돈을 모두 모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테니까 여기저기서 커피 끓이지 말고 이제 교회에 갖다 놓은 커피 자판기에 빼 먹으라고 했대요. 그 일이 있는 주일날 그 교회 장로님이 대표기도하면서 뭐라 그러시느냐 하면, 갑자기 기도를 한참 하시더니 울먹거리면서 하세요. 하나님, 드디어 우리 교회에도 자판기가 들어왔습니다. 우리 신앙이 이렇게 타락해가고 있습니다. 결국 목사님이 그 자판기를 치웠어요. 또 똑같은 상황이죠. 옛날 이야기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기도하러 올라갔어요. 하나님, 드디어 우리 교회에도 기타가 들어왔습니다. 오, 주님 우리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런 것들은 모두 신앙이 아니라 편견이에요. 편견. 그러니까 올바른 지식이 없어도 쓸데없이 말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교리를 배워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정말 섬기는 모든 동기와 가치가 올바른 하나님을 아는 올바른 지식과 이게 떨어질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여자는 지금 베다니 문둥이 시몬에게 인정을 받거나 제자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향유를 들고 예수님께 온 게 아니에요. 우리는 이 성경 구절을 미루어 볼 때에 이 여자가 등장하는 것은 성경에서 처음이지만, 예수님을 처음 만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뭔가 예수님께로부터 신앙의 감화를 받아서 그래서 자기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온 것으로 보인단 말이죠. 이 여자의 생각이 예수님께 고정되었기 때문에 말 없이 섬길 수 있었던 것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주님 한분 만을 바라보면서 섬기려고 여기에 왔기 때문에 그 분이 자기를 싫어버리지 않는 한 하나님의, 그 분이 자기를 싫어버리지 않는 한 이 여자는 충분히 만족하며 주님을 섬길 수가 있었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참된의 도리인 것입니다. 더하고 싶은데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두 번째는 이 여자의 섬김은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이었습니다. 이 향유의 가치를 다른 복음서 뱅행기사에서, 제자들이 여기에서는 큰 돈이라고 이야기 했는데 거기에서는 300데나리온 정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평가를 합니다. 당시 1데나리온은 성인 남자가 해뜰 때 일하러 와서 해 질 때까지 노동으로 봉사하고 받는 품삯이었어요. 처음에 우리 교회에서 공사를 했는데, 큰 공사를 했는데 일꾼들을 써 보니까 재능이 있고 기술이 있는 사람은 20만원, 25만원도 줘야 했고 아무 재주가 없어서 쓰레기나 담고 치우고 걸레질 하는 사람들도 8만원을 주는 거예요. 경기가 좋을 때도 10만원을 줘야 해요. 그러면 하루에 10만원 정도 받는 사람들이 300일을 일해야지만 받을 수 있는 품삯이니까 요즘 우리 물가로 치면 3천만원 정도 되는 거액의 가치가 있는 향유였어요. 그 당시에는 그 향유가, 물론 향유이긴 했지만 금 부치나 은 부치처럼 유동성이 있는 재화로서 재산 축척의 수단이었어요. 그래서 돈을 벌면 조금씩 조금씩 그 돈을 모을 때에 향유를 모아서 재산을 불리고 원하면 그것을 가지고 시장에 가서 언제든지 현금과 바꿔서 쓸 수 있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 여자가 주님께 와서 섬긴 이것은 최선을 드린 섬김이었습니다.
여러분, 남에게 선물을 받으실 때 있으시죠. 그죠. 선물을 받으실 때 있어요, 없어요? 있죠. 작은 선물은 그냥 조금 여러분들 생각하며 주고 받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큰 선물을 정말 여러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누구도 주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도 큰 선물을 주는 경우가 있어요. 그것은 선물이라고 안 부르고 뇌물이라고 부릅니다. 그 먹으면 큰 일 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공짜를 싫어해요.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공짜에요. 별로 안 놀래시네요. 요즘 저는 많이 타락해서 옛날에는 주유소가서 사은품도 안 받았어요. 이것은 왜 줘요. 아니 기름 넣으러 갔는데 휴지를 왜 줘요. 기름 넣으러 갔는데 사탕을 주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하는 소리가 이런 돈 가지고 기름이나 좋은 것을 넣어라. 이상한 것 섞고 그러지 말고. 그런데 그런데 이제 교인들이 선물을 주는 것도 부담스럽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넥타이 선물을 받았는데, 이제 연말에 가서 그 동안에 받았던 선물들, 우리 교인들에게 누설하면 상처 받을텐데 다 모아요. 그래서 바자회를 해서 다 팔아요. 모아가지고 이제 구제헌금이나 장학금도 하고, 어쨌든지 간에 이 여자가 1-2백만원이 아니라 주석가들의 해석이 사실이라면 이방 남자들에게 술과 웃음을 팔면서 놓은 삼천만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들고와서 식사하는 예수께 와서 한번에 부어버렸어요. 그런데 이것은 예수님을 향한 특별한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것이죠. 할 수 없는 것이죠. 하나님을 섬기되 일을 하는 것은 누가 못합니까. 일을 하면 일을 하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되 그 섬기는 일 속에서 자신의 최선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면 신앙의 자세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죠.
(예화) 주후 107년에 안디옥이라고 하는 도시에 이그나티우스라고 하는 교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신앙이 투철하고 인격이 고매한 성직자였습니다. 로마 조정의 불의를 설교시간에 질타했다는 이유로 이제 로마 관리들의 고소를 당해서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사형이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에 이 안디옥에 있는 사람들이 이 거룩한 성직자를 너무 존경했기 때문에 신자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까지도 이 분을 제발 죽이지 말고 관용을 베풀어 달라고 로마에 탄원장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감옥에 찾아갑니다. 그러면서 선생님께 위로를 드렸습니다. 선생님,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우리가 구명운동을 하고 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을 용서해달라고 탄원을 하니까 로마 조정도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소문입니다. 당연히 매우 기뻐할 줄 알았는데 이그나티우스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지 말거라. 그만 두거라. 아니요, 왜 선생님? 나는 이제 부족한 것 없이 살았고, 이제 나는 우리 주님을 위해서 내가 가진 최선의 것을 드리고 싶다. 이 기회를 나한테 빼앗지 말아다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순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기되 우리의 섬김 속에는 항상 섬기는 우리의 희생과 우리의 비움을 생각하지 말고 섬김을 받으시는 그 분의 위엄과 영광, 그리고 그 분께로부터 이미 우리가 받은 그 큰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섬김을 아주 높은 수준으로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입니다.
(예화) 옛날에 제가 전도사 때 섬기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도 고신측에서 잘 아시는 목사님인데 저희 교단에 오셔서 존경받으면서 목회를 하신 분이시죠. 주일날 저녁이면 네시 반쯤 교역자들이 모두 모여서 교역자 보고회를 갖습니다. 워낙 인품이 훌륭하시고 야단을 잘 안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교역자 회의하다가 너무 화가 나면 입을 일자로 다무시고 얼굴이 벌게지시는 것이 그 분의 최고로 화난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에는 왜 그런지 대학부에서 양 떼를 돌보고 있는 교역자에게 심방을 어떻게 하는지 잘 물으셨어요. 우물쭈물하고 대답을 잘 못했어요. 다 가고 나면서 저하고 둘이 담임 목사님과 둘이만 남았어요. 목사님이 사택으로 들어가시는 길이었어요. 가방을 싸시면서 눈물이 글썽거리면서 말씀하셨어요. 혼자 말씀을 하셨어요. 아, 저렇게 양 떼들을 돌보다가 잠시 후에 우리 주님을 어떻게 만나려고 저럴까. 저렇게 목회를 하다가 저렇게 양 떼들을 돌보다가 잠시 후에 우리 주님을 어떻게 만나려고 할까.
우리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의 모든 것을 주셔서 우리를 섬기시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베푸신 것은 무엇 하나도 아껴서 감춰 먹은 것이 없는 최선의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왕이셨지만, 종처럼 섬기셨습니다. 병든 자의 헌 데를 만지시고, 우는 자의 눈물을 씻겨 주시고 외로운 자를 당신의 품에서 위로하시어 그렇게 병들고 가난하고 무지한 자들의 친한 친구요, 아버지요, 목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섬겨서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환호성을 지르며 예수님을 추종하였지만,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찬양)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시던 혼자 기도하시던 주님 생각해요
공중의 나는 새도 깃둘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러다가 십자가에서 하나밖에 없는 당신의 옥체를 옥합처럼 깨뜨려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마지막 남은 몸으로 화목제로 삼아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한 희생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최선의 것을 드리신 생애였습니다. 그냥 섬기는 것은 일이지 봉사가 아닙니다. 다시 말씀 드릴께요. 그냥 섬기는 것은 일이지 봉사가 아닙니다. 그게 진짜 봉사다운 섬김이 되기 위해서는 최선을 것을 드리는 섬김이어야 합니다. 최선의 것을 드리는 섬김이어야 합니다. 다른 일을 할 때에는 기울일 수 없는 정성, 사람을 위한 봉사라면 그렇게 할 수 없는 준비, 헌신, 그것이 자신의 마음 속에 깊이 베어서 그래서 주님이 자신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분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최선의 것을 통해서 우리의 주님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찬양)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섬기는 삶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섬기는 삶
주님을 섬기기 간절히 원하네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섬기는 삶
나는 교회 와서 봉사하지 않고 교회 두루 다니는 사람은 무위도식 성도라고 말합니다. 아무 하는 일이 없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이 무엇을 물어도 무엇이든지 예 하고 금방 대답할 말이 세 개가 있어야 해요. 그게 뭐냐 하면 너의 가슴 저린 가슴 저미는 기도 제목이 뭐냐. 내가 네 소원 하나만 들어줄게 할 때 더듬 거리면 안 돼요. 그게 매일 매일의 기도제목이라 이거에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성경을 어디를 읽고 있느냐 물으실 때 대답할 수 있어야 해요. 세 번째는 뭐냐 하면 너의 주된 섬김이 뭐냐 라고 물을 때, 나는 교회에서 성가대 밥하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에서 주차봉사하는 것입니다. 나는 설교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린영혼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나는 병든 노인들을 수발하는 봉사자입니다라고 또렷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사람들만이 최선으로서 섬기면서 하나님앞에 섬기며 살 수 있는 것이에요. 이 여자는 아마 이렇게 재산을 모으면서 많은 꿈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 말로 말하자면 매달 적금을 부으면서 이 통장 3천만 원이 꽉 차면 이 부끄럽고 더러운 창기의 생활 집어 치우고 고향에 가서 밭이라도 사고 거기에 씨라도 뿌리며 농사일을 하며 살아야 되겠다든지 아니면 개인택시라도 하나 사서 떳떳하게 밥을 벌어 먹어야 겠다는 희망이 있었겠죠. 그것이 이 여자의 수치를 꿈꾸며 살게 하는 인생의 꿈이었을 거예요. 그러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기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이 좋으신 예수님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죄인을 더럽게 여기지 않으며 찾아오시는 그리스도의 그 크고 무한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의 꿈은 이제 땅도 아니고 택시도 아니고 좋으신 주님께 당신의 최고의 사랑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왔던 것이에요.
(예화) 나는 참 충분히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제가 1975년도에 회심을 했는데 그 때 저는 재수를 하고 있을 때, 건강도 안 좋고 그랬습니다. 많이 좌절한 젊은이였습니다. 주님을 믿고 나니까 그렇게 기쁘고 감당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크고 놀라운 사랑을 주님께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는 거예요.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고 싶은데 정말 가진 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닭 한 마리를 주님께 바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하다가 닭 한 마리를 주님께 마쳤어요. 그것을 가지고 교회당에 가서 목사님을 만나서 목사님, 내가 이것을 바치고 싶은데 이것좀 받아 주십시오. 그래서 목사님이 그것을 가지고 병들어 누워있는 성도를 찾아가서 헌금 들어온 거라고 갖다가 삶아 주셨대요.
어쨌든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소중한 것을 끝없이 드리도록 만들어 주는 거예요. 여러분 이제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에도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분 많으신데 이제 인생의 날들이 다 지났습니다. 인생 70부터라는 말은 다 숱한 말입니다. 이제 여러분, 마지막 남은 영광이 있다면 주님 나라에 갔을 때, 네가 뭘 하다 왔느냐. 내가 한 교회를 섬기다가 왔습니다. 그렇게 주님 앞에 자랑스럽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해요. 머리가 하얗게 정해놓은 교회도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은 인생을 거의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인생을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마음을 다해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것으로 주님을 섬기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난관을 이긴 섬김입니다. 이 여자가 거금 3천만원이나 되는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고, 그 예수의 머리에 부어진 이 향유는 예수님의 머리를 타고 흘러내렸을 것입니다. 온 집안에 향유의 내음이 가득했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옥합을 깨뜨려야 했겠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김이 향기가 나는 섬김이어야 해요. 어떤 때는 봉사는 하는데, 그 사람하고 일하면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멀리서 봤더라면 참 좋았을걸, 그래서 여러분들도 그런 이야기를 하죠. 진짜 은혜 생활 잘 하려면 교회 중심에 가서 섬기지 말고 한발짝 멀리 있으라고 하는 말. 왜 열심히 봉사하고 일하는데 왜 그렇게 향기가 나지 않는 것일까요. 일은 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마음의 옥합을 깨뜨리지 않기 때문이에요. 섬기면서 자기의 부정을 깨닫고 자기가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지를 고백하면서 한계를 느끼고 그 말씀 앞에 끊임없는 자기 깨어짐을 발견하게 될 때 그 때에 거기에서 섬기면서도 그 속에서 향기가 나는 거예요. 향기. 그 향기는 나를 깨뜨리면 내 향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신기하게 내 향기가 나면 어떻게 똥 내 밖에 더 나겠어요? 그런데 신기하게 우리 자신을 깨뜨리면 거기에서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예수의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예수의 향기기 나는 거예요. 그것이죠. 그렇게 주님의 향기가 일하면서 그 향취가 나고 그 향취를 사람들이 맡으면서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일할 때에는 정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보람, 일을 하는 보람이 아니라 일을 하는 보람이 아니라 일을 하는 보람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향취를 일을 하면서 경험을 하는 거예요. 거기에서 정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종류의 자기 깨어짐이 있는 섬김이 섬김을 원하시기 때문에 종종 난관을 만나게 하십니다.
이 여자가 최고의 섬김으로 주님께 봉사했을 때,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가룟 유다가 거기에 포함되었겠죠. 야, 너 돌았냐. 그 향유가 보니까 3천만 원쯤 되겠다. 그것을 왜 한 번에 예수님 식사하시는데 부어서 낭비를 하냐. 그것을 팔아가지고 그 돈을 돈 궤에 집어넣으면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도와주겠니,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이 여자가 주님께 와서 향유를 깨뜨리는데 제자들이 뭘 보태줬어요? 아니 자기 향유를 자기가 벌어서 가지고 와가지고 깨뜨려서 자기가 사랑하는 예수님께 자기가 붓겠다는데 자신들이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왜 이 여자를 비난하는 것인가. 그게 바로 참된 섬김의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매일 매일 반복하는 시비 거리에요. 비판과 비난은 아주 잘하지만, 자신은 티끌만큼도 헌신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안 돼죠.
(예화) 제가 전도사로 있던 교회에서 연말이면 공동의회를 합니다. 그러면 꼭 거기에서 시비를 걸고 손을 들고 왜 교인들이 낸 헌금을 이렇게 씁니까. 여기는 왜 이렇게 조금 씁니까. 저기는 왜 저렇게 많이 씁니까. 따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회의가 끝나고 나면 목사님이 마음이 아주 상하셔서 우리보고 그래요. 정말 신기합디다. 왜요, 목사님? 그 공동회의 때 손들고 일어난 사람들은 전부다 십일조 안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는 핏대를 세우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왜 돕지 않습니까. 핀잔하는 거예요. 자신은 하나님 앞에 깨뜨려 드리는 것이 없으면서 사람들을 비난만 하는 거죠.
(예화) 전에 제가 있던 또 다른 교회인데 거기에서는 목사님이 아주 그냥 아주 권력이 강하셨습니다. 꼼짝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그 집 없이 부랑하고 있는 두 사람을 재워줬어요. 그러면서 교회가 발칵 뒤집혔어요. 목사님이, 교회 성도들이 성도들도 수시로 철야기도 하러 오고 그러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그 남자들을 재워주다가 만약에 무슨 사고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하려고 합니까. 이 집사님들이 목사님한테 항의를 하는 거죠. 나쁘게 이야기 하면 항의, 좋게 이야기 하면 반론을 제기한 거예요. 목사님이, 그 사람들 교회가 아니면 갈 곳이 없습니다. 너무너무 밖은 춥고, 그 사람들은 오갈 데가 없어가지고 덜덜 떨면서 돈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밥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 하룻밤 재워 잘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여관비 달라고 하는 거거든요. 그러는데 어떻게 사람이 없습니까. 그런데 옆에 듣고 있으니까 저렇게 이야기 하면 목사님이 할 말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역시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들이 불쌍했어? 그럼요, 목사님 그 사람들이 덜덜덜덜 떨면서 너무너무 불쌍했어요. 다음부터는 네 집에서 재우거라. 불쌍하니까 네 집에 재우고 너는 교회와서 자거라. 말 되잖아요. 참 이게 인생 밥 그릇 수도 무시 못 하더라고요. 거기에서 순발력이 탁 나와서 이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네가 교회 와서 자고 네 집 빌려주거라. 그러면 끝난 거예요. 아무 소리도 못하고 야,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한 번 써 먹어야지. 야, 정말. 그렇게 불쌍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에서 재우지 말고 자신들이 바깥에서 떨고 집을 빌려주면 되는 거예요. 그렇잖아요. 동의 안 하세요? 그런데 못 하잖아요. 말해봐야 마는 거죠.
이 제자들이 그렇게 여자를 구박을 한 거예요. 그러면 이 여자도 주석가들의 짐작이 맞다면 이방인들에게 몸을 팔고 창기로 살던 여자인데 왠만한 데 가지고 그런 일 하겠어요? 아마 한번 팔뚝 딱 걷으면 열 남자 아무 것도 아닐 거예요. 이 자식들이, 한번 막가보면 누가 당하겠어요. 유각에서 놀던 여자인데 그런데 아무 말이 없어요.
(찬양) 시시 때때로 날 사랑하사 시시 때때로 새 생명 주니
영광의 기약이 이르도록 시시 때때로 주만 봅니다
그렇게 섬길 때 얼마든지 비난을 받을 수가 있는 거예요. 이 시간에 한번 이야기 하기에는 그렇지만 목회를 하면서 이런 일들 많이 경험했어요. 어떤 때는 우리가 정말 잘못해서 욕을 먹는 경우도 있죠. 그러지 말아야 회개하고 그러지 말아야죠. 그리고 어떤 때는 의도는 없었는데 우리가 미처 생각을 못해서 욕을 먹는 적도 있어요. 그 때에는 미안하다고 해야죠. 즉각적으로 그래서 사과를 잘 해야 해요. 세 살 먹은 아이에게 잘못했으면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 그런데 때로는 우리가 너무나 주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수도 있는 거예요. 그 때에는 조용히 참아야 해요.
(예화) 저희 교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저는 뭐 말할 수 없이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좋은 교인들을 보내준 것 같아요. 마음을 뼈 아프게 한 사람이 18년 동안 별로 없었어요.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고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80억을 들여서 교회를 옮기고 불과 2년 밖에 안 되었는데 아이들을 하나님이 많이 보내 주시는 거예요. 거의 배가 늘었어요. 아이들이 들어갈 장소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이들을 위해서 새 집을 얻으러 나왔는데, 길 건너편 100미터나 될까. 한 40미터 도로 50미터 정도 되는 도로, 한 8차선 정도 되는 곳 건너서 아주 비싼 건물이 세가 나왔어요. 새로 지어서 건물도 이쁘고 좋긴 한데 그 세도 세지만, 얘네들이 거기를 300명 이상의 아이들이 매주일 건너가야 하는데 언제라도 사고가 한번은 날 것 같아요. 그래서 기도를 하면서 접었어요. 그리고 이제 해보니까 교회 맨 같은 블록인데 200미터 떨어진 곳에 건물 하나가 났는데, 우리가 쓰려고 하는 크기의 한 다섯배 쯤 되는 건물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기도하고 고민을 해봐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사지 않으면 애들이 어떻든 길을 건너서 교회당을 다니든가 아니면 땅을 다서 교육관을 지어야 되는데 그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었어요. 그래서 기도를 하다가 2년 만에 다시 80억자리 교육관을 사게 된 거예요. 그랬더니 교인들이 2년 전에 헌금을 다 했더니 힘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헌금이 많이 안 나왔어요. 그런데다가 노무현 대통령 살아있을 때, 그 건물을 사려고 할 때계약할 때 까지는 모든 게 좋았는데 이제 잔금을 치러야 하는데 갑자기 대통령보고 은행보고 돈 빌려주지 마, 벼락이 떨어진 거예요. 도저히 감당이 안 돼요. 태어나서 가장 고통을 받았어요. 그랬더니 이제 그렇게 순종 잘 하고 그러던 교인들이 여기저기서 궁시렁거리는 불평들이 들리기 시작한 거예요. 목사님은 부동산에 뭐 욕심이 많다. 대책도 없이 일만 저지른다. 그 다음에 이제 그 빚은 못 갚아서 교회 건물이 넘어갈 거다. 별의별 소리가 다 돌았어요. 듣다보면 얘기할 꺼리도 없어요. 그래서 매일 교회 3층 사택이 이렇게 건물 칸을 막아서 교회 사택을 만들고 살았는데 7년 살았는데, 그 마루에 문을 열고 매일 무릎을 꿇고 교육관이 보여요. 그래서 기도를 했어요. 제 생애에서 다시 생각하기 싫을 정도의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어요. 그것도 다른 목적이 아니라 돈 때문에, 너무너무 괴로웠어요. 그런데 별로 다른 사람들은 걱정 안 하는 것 같아요. 교회에 어느 교인 심방을 갔더니 자기네 집이 금방 이사를 가서 자기 집을 보라고 자랑을 하는데 한 40-50평 되는 집이었어요. 정말 예뻐요. 정말 예쁘게 다시 인테리어를 했어요. 목사님, 이것 이쁘죠. 이것 어떠세요? 이것 이쁘죠. 아무 대답도 안 해요. 이 집 잡히면 얼마나 줄까. 그러면서 너무너무 괴로워요. 진짜 저녁에 눈을 감으면 아침에 하늘나라에서나 눈을 뜨고 싶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버리지 않고 불쌍히 여겨 주셔서 세월이 지나니까 모든 문제가 잘 해결이 되었어요. 요즘은 거기에서 1200명이 예배를 드립니다. 요즘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목사님은 선견지명이 있어. 그 때 이것 안 샀으면 우리는 큰 일 났어. 그러면서 그래서 옛날 생각이 나다가도.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이 세상에 그릇된 것이 많으니 옳게 섬기려는 사람들이 그릇된 사람의 눈에 가시처럼 보이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이 악하니 선한 뜻을 품고 섬길 때 악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자기 잘난척 하게 보이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그것은 늘 있는 일이고 언제나 당연한 일이에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일어났을 때는 정말 주님 한분만을 앙망하면서, 어떤 사람은 일하다가 욕을 먹으면, 에이씨, 집어 치워라. 사람에게 그 사람이 나에게 그 소명을 주었으면 사람이 마음에 안 들면 집어 치우죠. 그런데 우리는 지들 보고 그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 같은 죄인 살려 주신 좋으신 주님, 십자가에서 자신을 다 버리시기까지 교회를 사랑하시고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 주셔서 충성되게 여겨서 주님의 교회를 일꾼으로 삼아주시는 주님의 은혜 때문에 봉사하게 되었으니까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난관이 오더라도 그것을 꾹 참으면서 가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인내에요. 인내.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도가 사랑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제일 먼저 거론했을 뿐만 아니라 세 번이나 반복해서 거론한 사람의 속성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면 사랑은 언제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고 또 참느니라. 세 번이나 반복을 하찮아요. 그래서 한 사람이 자기에게 고통스러운 일을 주님 때문에 참을 수 있을 때 그 때 그 영혼은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가진 영혼이에요. 사도바울이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인들이 은혜를 받았을 때에는 바울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이 보낸 천사처럼 여겼어요. 그러다가 신앙이 식고 교회가 은혜에서 미끄러졌더니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서 뿔난다고 그 중의 어떤 인간들이 이런 의문을 제기했어요. 아니 근데 사도바울이 편지를 보내서 이렇게까지 야단을 치는데 아니 그 사람 사도는 정말 맞아? 아니 본 사람도 없이 자기가 자기 입으로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이 자기를 사도 삼았다고 맨 날 그러는데 누가 증인이 있어? 사도바울이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었는데 그 사도직을 의심하는 것 만은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두 번째 편지, 역사적으로 세 번째 편지라고 알려진 고린도후서 12장에서 그것에 대해서 변증을 했어요. 요즘은 그거예요. 나의 사도된 표는 기사와 참용과 그랬어요. 참용과 기사와 그랬어요. 요약을 하자면 너희들이 나보고 정말 사도가 맞느냐고 묻고 있니, 나 사도 맞거든. 그런데 너희들은 지금 사도가 된 증거를 말해달라고 하고 있지? 내게 두 가지 증거가 있다. 첫째는 참는 것. 내가 사도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래토록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또 증거가 필요하다면 나와 함께 하나님이 동행하셔서 이렇게 다른 사도들 모두보다 못지 않는 기적들을 보거라. 이게 나의 사도된 표다 그랬습니다. 따르는 수많은 교인들의 숫자 때문에 자기가 사도가 된 표가 아니라 오래 참았지 않냐. 내가 사도가 아니라면 주님이 나를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종으로 불러주시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오래토록 참을 수 있었겠느냐. 그래서 이 참용. 이것이 사도의 표였던 거죠. 섬기다가 비난을 받고 욕을 먹고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하는데 사람들이 그 마음을 비난할 때가 있어요. 혹은 오해할 때도 있죠. 그 때에 잘 참아야 해요. 섬김의 마지막까지 사람을 보고 참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참아야 해요. 주님도 일생을 사시면서 오해를 받으시고 당신은 목숨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사람들이 예수님께 도전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했을 때 조차도 주님이 참으신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서 온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가장 아파요. 배가 고프고 사고를 당하고 하는 것이 아픈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을 섬기려 할 때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오해와 비난이 아프죠. 그 때마다 그것을 주님도 겪으셨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의 삶 속에 투사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이요.
칼빈 선생님이 기독교 강요에서 이런 말을 남겼어요. 신자의 일생에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만난 모든 어려움들은 우리를 거룩한 인격으로 성화시키기 위해서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인생의 모든 난관과 어려움들은 우리를 십자가로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간다는 말은 그 나무로 만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간다는 말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은 그것을 질 자격도 없고, 그리고 거기에 매달려서 다시 한 번 매달려서 백번 죽어도 그 피가 하나님 나라에 아무 도움도 안 돼요. 중요한 것은 그러한 희생의 정신으로 매일 매일 살아있는 거죠. 어떠한 어려움이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부르는 찬송이 있어요.
(찬양)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 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그렇게 하면서 살아가는 섬기는 가운데 외롭기 때문에, 혹은 고통을 당하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우리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면서 거기에서 예수의 향기가 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일을 하면 그냥 일하면 일하는 것이죠. 한 사람이 주님을 섬기면 그것은 반드시 그 사람을 변화시켜요. 그래서 주님을 닮은 인격으로 변화 되어가고, 변화 되어가고,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 주시는 거죠. 더 하고 싶은 데 이제 하나만 더 하고 마쳐야 되겠습니다.
이 여자의 섬김은 예수님께 인정을 받은 섬김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정말 이렇게 한 끼의 3천만 원짜리 식사하셨던 것을 기뻐하셨을 리가 없는 분이셔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에도 당신이 또 기적을 베푸시면 될 것을 남은 조각을 거두어라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이 제자들의 편에 들지 않고 오히려 제자들을 나무라시면서 이 여자의 역성을 들어 주셨어요.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이 여자가 오늘 내게 향유를 부은 것은 이 여자가 몰랐을지라도 결과적으로는 나의 장사를 예비한 것이다. 나의 죽음을 예비한 것이다. 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 어디서든지 이 여자의 행한 일도 전하고 기념하리라. 섬김 중에서 이런 정도로 섬김을 인정받은 것이 신약성경에 없어요. 얼마나 예수님이 이 여자 안에 있는 단순하고 순수한 경건과 사랑을 기뻐하셨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죠. 예수님의 마음에 정말 부어지는 섬김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자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교회 일을 해 보면 하나님이 편을 드신다는 게 느껴질 때가 있죠. 인간의 논리로 따지면 저 사람의 말이 맞는데 하나님은 이상하게 이 사람은 논리도 좀 부족한데 이 사람 편을 들어주셔요. 저 사람이 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긴 한데 이 사람의 마음속에는 주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동기가 있어요. 그러면 사랑 없이 논리적인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부끄럽게 하시고 논리가 모자라고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편을 하나님이 들어주셔요.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가 어떻게 모두 다 그렇게 똑똑하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일 수 있겠어요? 그러면 좋지만 안 그럴 수 있거든요. 그 때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섬김에 있어서 주님을 향한 사의가 없는, 거짓과 허탕한 것이 없는 적어도 자기 수준에서는 순수하고 깨끗한 동기와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그러면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거죠. 이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어요. 지금도 복음이 전해지면 갖은 것 없고 높은 지위도 없고 심지어는 건강도 없는 사람들이 이 복음이 그들을 감동시키기만 하면 마음이 타들어가요.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주님을 섬겨야 할 텐데, 주님을 위해 봉사해야 될 텐데 하는 마음이 생각이 그 마음을 찌르는 거예요. 강하게 찌르는 거예요. 그래서 은혜 받은 성도는 결코 무위도식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것은 불가능한 거예요. 무엇이든지 섬길 수밖에 없는 거죠. 온 마음을 다해서.
(예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었어요. 교회가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데 시골 마을에 사는 어느 집에 전도를 갔어요. 그 집안에는 열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병들어 누워 있었던 것입니다. 불치병에 걸리고 집안도 너무 가난해서 이제 치료를 포기하고 집에서 가요를 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 소녀였어요. 가서 교인들이 복음을 열심히 전했더니 놀랍게 그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어요. 그리고 병상에 누워서 시름과 절망 속에 시달리던 이 여자 아이의 마음속에는 희망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솟아나기 시작을 했대요. 그런데 온 몸이 굳어져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병이었어요. 그러니까 24시간을 누워있고 똥 오줌을 가지리 못하는 처지인데 이 아이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들어누워서 성경을 읽거나 찬송을 부르는 것, 힘없이 찬송을 부르는 것 그게 다였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했답니다. 목사님의 설교 시간에 누구든지 주님께 구원을 얻은 사람들은 열심히 주님께 봉사를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 때에 많은 교인들은 우리들은 이렇게 봉사할 수 있지만 이 설교가 우리 동네의 구원받고 그렇게 기뻐하는 저 아이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설교겠다, 그랬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어날 수도 없고 대소변도 받아야 되어서 몸이 굳어가는 중병자였던 것이죠. 그 결국은 그 소녀가 죽었어요. 그런데 그 소녀가 죽기전에 정말 교회에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더라고요. 오랜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지 않았는데 교인들이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뚜렷하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일들이 일어나고 주정뱅이, 놀음꾼들이 투전하던 습관을 버리고 예수께로 돌아와서 단정한 사람들이 되는 영적인 각성들이 일어나더랩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도대체 우리 동네 시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저 술주정뱅이가 교회를 다 나가고, 저 투전꾼 집에 오면 폭력이나 휘두르던 저 인간이 예수를 믿으라고 복음을 전하러 다니네. 무슨 일일까. 결국 그 소녀는 죽었고 교회에서 그 소녀를 장례 지내 주었어요. 그 소녀의 시신을 수습을 하면서 교인 중 하나가 벼게 속에서 메모지 한 장을 발견했어요. 아무 것도 없고 동네 사람들 명단이 거기 적혀 있더라는 거예요. 그 명단이 놀랍게도 최근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예수를 믿게 된 동네의 말썽쟁이 명단과 완벽하게 일치한 거예요. 그러니까 몸도 가누지 못하는 이 아이가 구원을 받고 주님을 섬기고자 해도 섬길 수 있는 처지가 되지 않았을 때 그가 택한 것은 기도의 섬김이었어요.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 쓸어서 그래서 그동안 동네에서 비난을 받고 동네를 어지럽히던 그런 불량한 주민들을 위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하던 사투 끝에 하나님이 그 사람들에게 놀랄만한 회심을 겪게 만드셨고 그 삶을 버리고 우리 주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던 것이에요.
이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아도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목숨이 붙어있는 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이유는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남들이 보면 상종도 해주지 않는 더러운 이 여인을 가까이 하시며 이 여자의 섬김을 받으셔서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그러한 더럽다고 손가락질 받는 여인이었지만 예수님은 그의 과거를 보고 그의 섬김을 불결하다고 여기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죄인이었기 때문에 주님을 만난 감격이 있고 그랬기 때문에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랑하는 이 여자의 편을 들어주시기를 사랑없이 논리만 앞서우는 제자들 편들어 주시는 것보다 더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의 섬김은 영원히 기록에 남았고 어디서든지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기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은혜의 복음과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마다 이 여자처럼 자신의 최선의 것을 드려서 말 없이, 최선의 것을 드려서 그리고 비난을 감수하며 주님이 섬길 마음을 갖게 만들어 주셨던 것이에요.
내가 이제 가면 다시 여러분들을 만나기는 쉽기 않겠죠. 그렇지만 결국 우리가 흩어져 있어도 이 하늘 아래에서 한 그리스도인의 몸을 입으며 보편교회의 지체들로 살아갈텐데, 내가 마음을 다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제가 살아보니까 다 지나가는 것들이에요.
(찬양) 잠시 머물 이 세상 헛된 것들 뿐이니 주를 사랑하는 마음 금 보다 더 귀하다
다 지나가는 것이에요. 내 이야기가 아니라 사도요한의 말이에요. 그 정욕도 지나가고 세상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영원히 있다고 말합니다. 헛된 일에 목을 매지 말고 교회에서 무엇이라도 주님이 나에게 섬기기 원하는 것을 찾아서 그냥 꾸준히 적어도 한 10년 쯤 그렇게 변함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서 고난과 시련과 고통과 어려움과 비난이 있어도 그것을 견디며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될 때, 그 때에 주님이 부르시는 날이 가까울수록 여러분들의 영혼은 아름다운 영혼이 되고 마음에는 선한 의지가 가득한 아름다운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